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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즐겁게, 재밌게 연극하고 싶어요.”

배우 노기용

김정_연출가

제145호

2018.08.09

새내기 유부남들의 공감토크 이후...

기용씨는 음성이 워낙에 저음이라서 사람들이 어리게 잘 안 보죠?
기용
(웃음) 그런 것 같아요. 제 또래로 안 봐요.
제가 기용씨 공연을 은근히 많이 본 것 같은데 나이 때문이라기보다 무대에서 봤을 때 어른스러운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원래 성격이 좀 차분한가 봐요?
기용
아니요. 까불까불하기도 하는데.(웃음) 뭐라고 해야 될까? 저는 그렇게 얘기를 많이 하는 편은 아니거든요. 친구들 하고 있을 때도 농담 따먹기하고 막 그러는 편은 아니에요. 그냥 내 할 일하고 남들 하는 거 보고... 작년 겨울에 작업할 때도 그런 경우가 있었어요. 배우가 잘 안되거나 고민이 있으면 연출하는 입장에서 그게 보이잖아요. 눈에는 보이는데 내가 그걸 말을 안 하니까 답답한 거예요. 나는 말을 안 하려고 하는 게 아니라 생각을 하고 있는 건데.(웃음) 연출이나 상대 배우가 답답해하는 걸 몰랐던 거죠. 가정환경이나 자라온 과정 때문에 저를 어른스럽게 본다든지 그런 것도 있는 것 같아요. 그리고 말을 많이 안 하다 보니까 한편으로는 ‘저 녀석이 뭔가 있는 것 같은데 말을 안 해.’ 이렇게 보시는 분도 있는 것 같고...(웃음)
배우는 어떻게 시작하게 되셨어요?
기용
처음 시작한 거는 고등학교 때죠. 열여덟... 아니다. 엄마가 열아홉 때라고 하더라구요. 고3때. 열아홉살 1월달. 원래는 피아노를 오래 쳤어요. 그러다가 가수 하겠다고 엄마, 아버지한테 얘기했다가 반대에 부딪혔죠.
가수요?
기용
네. 포스트모던음악학과에 가고 싶었어요.
피아노가 아니라 가수를?
기용
네. 피아노는 초등학교 들어갈 때부터 배웠는데 맨날 도망만 다녔데요. 엄마말로는.(웃음)
근데 어떻게 그렇게 오래 쳤어요? 진로를 그쪽으로 갈 생각이었어요?
기용
클래식을 배웠어요. 고등학교 진학할 때 피아노 선생님께서 너 예고 가라 그러셨는데. 피아노 치기 싫어서 도망치던 사람이 무슨 예고를 가고 싶겠어요. ‘안 한다고 싫다고.’ 근데 엄마는 계속 배우라고 하고... 집에서도 선생님 불러서 레슨도 받고 그랬어요. 교회에서 반주하는 누나한테도 배우고...
혹시 어머니께서 피아노에 한이...(웃음)
기용
엄마의 자그마한 꿈이 있었어요. 내가 피아노 치고, 엄마가 노래 부르고, 동생이 바이올린 켜고. 이런 꿈이 있었는데... 망했지 뭐.(웃음) 나는 이렇게 되고. 동생도 노래한다고 지금 혼자 작업하고 있고. 엄마 복장 터지죠. 머리 아프죠. 큰아들 연기하지, 뭣도 없는데 결혼했지. 작은아들이라도 뭔가 해야 될 텐데 동생은 저러고 있지. 머리 아프죠.(웃음)
근데 어떻게 하다가 배우의 길로 오게 된 거예요?
기용
갑자기 배우가 하고 싶다고 그랬대요.
갑자기?
기용
네. 갑자기... 근데 사실 이유는 있죠. 근데 그게 약간 이상... 애매한 것 같아요. 뭔가 멋있고 좋은 계기로 시작했다기보다는 어떻게 보면 되게 웃길 수도 있고...(웃음) 그게... <왕건>이었나 <대조영>이었나. 아무튼 그 때 사극을 보고 있었어요. 어떤 배우분의 연기를 보는데... 물론 드라마는 재밌게 봤어요. 근데 그분의 연기가 뭔가... (내 성에) 안 찼나 봐요.(웃음) 일차적으로는 연기를 한다는 것이 그 자체로 멋있었겠죠. 굉장히 멋있었으니까 내가 하고 싶었겠죠. 그러면서 속으로는 내가 저것보다는 잘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었던 것 같아요.(웃음) 그래서 엄마한테 연기를 해 보고 싶다고 얘기했는데 이번엔 반대를 그렇게 심하게 하진 않으셨던 것 같아요. 어느 정도 반대는 있었지만.(웃음) 그때부터 학원 들어가서 공부해서 시험을 보게 됐고... 여기까지 왔죠.(웃음)
고3때 티비 보다가 ‘내가 저것보단 잘하겠다.’ 하고 연기를 시작했다... 시작은 했지만 그게 그렇게 쉽지는 않았을 텐데 실제로 겪어보니 어땠어요?
기용
말은 그렇게 쉽게 했지만 실은 마음이 있었나 봐요. 되게 하고 싶었나 봐요. 해야겠다고 마음먹은 순간부터는 그것만 생각했던 것 같아요. ‘일단 학교를 들어가자.’는 생각으로 정말 열심히 준비했던 것 같아요. 그때 같이 학원 다녔던 친구들이 지금도 친한데. 그때 얘기하면 다들 제가 되게 이상했데요. 나름 독했데요. 1차 시험 붙고 2차 최종을 해야 했는데 그때 지정연기가 <보이체크>였어요. 그걸 하겠다고 학원 탈의실 혼자 쳐박혀서... 되게 꿉꿉하고 냄새나고 그랬는데. 거기 들어가서 불 끄고 쪼그려 앉아서 구석에서 대사 연습하고 그랬대요. 그 정도로 깔롱직이면서(까불면서) 지 혼자 해보겠다고 막 아등바등하고. 그랬던 것 같아요.
어머니께서는 뭐라고 하시던가요?(웃음)
기용
그 당시 유명한 학교들을 찾아봤는데 등록금이 워낙에 비싸니까. 근데 제가 나온 학교는 국립이라서 등록금이 싸니까.(웃음) 어머니께서 ‘네가 거기 붙으면 내가 보내주겠다.’하시더라구요. 오케이. 이제 그때부터 그것만 본 거죠.
진로가 그렇게 확 틀어질 수 있다는 게 신기한 것 같아요. 그때부터 지금까지 배우를 해오면서 어느 순간 확 틀어버리고 싶은 적은 없었어요?
기용
음... 있었던 것 같기도 하고. 근데 잘 모르겠어요. 순간순간 그런 생각들이 들어오긴 하는데 그게 왜 그런지는 아직 구체적이지 않으니까. 그리고 학교 다니면서도 그랬고 극단에 있으면서도 그런 고민이 들  때마다 선배들이나 형들이 조언을 많이 해줬던 것 같아요. 그리고 그런 생각이 들어 올 때쯤에 작업이 있어서 작업하다 보면 잊어버리기도 하고 그랬던 것 같아요.

맞아요. 한 참 바쁠 때는 문득문득 그런 생각이 들어오다가도 작업하느라 바빠서 고민할 새도 없이 지나가 버리죠. 작업하다 보면 어느 새 일이 년이 훅훅 지나가 버리잖아요. 이러다가 금방 마흔이 될 것 같아요.(웃음) 기용씨는 학교 졸업하고 바로 극단 생활을 꽤 오래 했잖아요. 많은 작업들이 있었고 앞으로도 많은 작업들을 해 나갈 텐데 개인적으로는 어떤 스타일의 작업을 좋아해요?
기용
극단에서 했던 작업들이 사회적인 이야기나 약자에 대한 이야기가 많았고 아픈 얘기가 많았으니까 그걸 대하는 내가 그걸 잘 못 받아들일 때가 있었어요. 내가 그 아픔에 백프로 공감할 수 있는 건 아니니까. 내가 그걸 직접 겪은 건 아니니까. 내 딴에 최대한 그 상황에 들어가 보려고 애쓰다 보면 내가 계속 어두워지는 거예요. 내가... 괜히 심각해지고. 그래서 끝나고 나면 ‘아, 힘들다. 내가 왜 이래야 되지?’ 근데 생각해보면 그런 이야기가 아닌 게 어디 있겠어요? 그래서... 생각을 해보면... 뭔들 상관없다는 생각도 좀 들어요.(웃음)
혹시 안 그런 적 있었어요? ‘이런 역할은 끝나고 나면 좀 시원하더라.’ 이런 거?
기용
생각해보면 그런 면에서는... 극단에서 했던 작업 빼고는 다 괜찮았던 것 같아요.(웃음) 작업 자체의 무게를 비교하는 건 아니지만 극단에서 했던 이야기랑은 다르게 외부작업들은 그래도 저에게 좀 가벼웠던 느낌이에요. 누가 보면 ‘이게 왜 연극이야. 이게 뭐야.’ 라고 할 수도 있는데. 그냥 똑같은 사람 사는 이야기고. 그러면서도 조금 더 쉬운 이야기. 좀 더 유쾌한 이야기였던 것 같아요. 잘 모르겠어요. 왜인지는.
이야기를 듣다 보니까 그런 거 아닌가 싶어요. 거리감이라는 것이 있잖아요. 달나라 동백꽃(이하 달동)작품들은 그 사람이 온전히 돼야만 하는 스타일이랄까. 김은성 작가님의 작품들도 그렇고, 부새롬 연출님이 하시는 공동창작이야말로 자기 것들을 다 꺼내야 되니까. 어떤 겹 없이 그 인물에 바짝 붙어있어야 하는 작업들이라서 그런데서 오는 차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기용
음... 동의가 됩니다. 배우로서 되게 뭔가를 해보고 싶을 때가 있어요.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보고. 근데 극단 작업을 할 때는 ‘이렇게 해보고 저렇게 해보고 싶다.’가 아니라. ‘이건 뭘까? 저건 뭘까? 얘는 왜 이러는 거지?’ 이런 것들을 되게 많이 고민하게 되는 것 같아요. 근데 어떻게 보면 결국 내가 하는 건데. 뭐가 그렇게 다를까 하는 생각도 들어요.
기용씨는 배우를 결심한 이후부터의 과정이 학교에서 관계들을 맺고 연극을 만나고 또 극단으로 이어져 온 거잖아요. 시작은 갑작스러웠지만 오히려 지금은 더 자연스럽겠네요. 이 시간이.
기용
네 자연스럽게 흘러 왔던 것 같아요. 지금까지의 10년은 학교라는 울타리가 있었으니까 맘 편하게 친구들이랑 많이 놀고 그러면서 5년 정도를 보내고 졸업 이후에 뭘 해야 하지 고민할 때 쯤 달동이라는 극단에 관심을 갖게 됐고 극단에 들어와서 작업을 계속해 오다 보니 시간이 이렇게 지났어요. 가끔 (같이 입시 준비했던) 친구들한테 제 고민 같은 걸 이야기하면 그런 얘기를 해요. ‘네가 무슨 걱정이냐. 좋은 학교 나와서 작업 많이 하는 극단에도 들어가고. 네가 걱정할 게 아이다. 그런 고민 할 것도 아이다.’(웃음) 앞으로의 10년이 중요하지 않을까.
10년 금방 가죠. (웃음)
기용
25살 땐가 미국에 삼촌 댁에 갔을 때 삼촌한테 ‘10년 뒤에 서른다섯, 여섯 때 쯤 내가 브로드웨이를 가니 마니 뭐 이러면서 초대를 하겠다.’ 그랬는데.(웃음) 그 시간이 다가오니 내가 왜 그런 이야기 했나 싶고.(웃음) 아무튼 앞으로 10년이 정말 중요할 것 같아요. 극단도 규모가 작아지기도 했고. 앞으로의 작업이 어떻게 될지도 모르고. 앞으로의 10년은 또 어떨지. 또 금방 지나가겠죠?(웃음)
이런 경우는 처음이지만... 연극인 웹진을 보고 계실 많은 창작진들께 본인을 어필 한다면? (웃음)
기용
저요?(웃음)
나는 이런 장점이 있다! 나는 이런 창작자다!(웃음)

기용
관계자분들께 말씀드리자면...(진지) 사람은 겪어봐야 알겠죠. 저는 뭐가 주어지든 어떻게든 끝을 보는 성격이고 재밌게 하려고 노력하는 편이고. 물론 그 과정 중에 고민도 되게 많이 하고 우울해지는 경우도 있지만.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보고... 그런 시도들을 많이 하는 배우 중에 한 명이지 않을까. 그래서 같이 작업하면 뭐라도 되지 않을까.(웃음) 그 다음 이야기는 작업으로 만나본 다음에 이야기하는 것으로 하고. 제가 필요하면 불러주시고.(웃음)
재밌네요.(웃음) 앞으로 험난할 10년을 같이 잘 헤쳐 나가 보아요. 힘들겠지만.(웃음)
기용
제가 생각하기에 힘든 건 딱하나, 생활인 것 같아요. 이게 직업이라고 하면 뭐가 됐든 먹고 사는 게 보장이 되어야 ㅎ는데... 따지고 보면 남들보다 적게 번다고 해도 먹고 살수는 있지만 우리 생활이라는 게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는 직업이다 보니 불안하죠. 그런데도 왜 나는 계속 이걸 하려고 하나. 진짜 모르겠어요. ‘하고 싶어서 한다.’ 외에는... 근데 내가 연극을 안 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와 미칠 것 같아요. 뭐하고 있을까. 상상이 잘 안 돼요. 다른 일이라고 하면... 음악? 아닌 것 같고... 회사를 다니나? 안될 것 같고...
회사 다녀도 되게 잘할 것 같은데. 잘 어울릴 것 같고.(웃음)
기용
못 참을 것 같아요. 만약에 다른 일을 한다고 해도 결국에는 돌아올 것 같아요. 그래서 지금도 계속하는 것 아닐까. 근데 지금까지 저는 극단에 소속이 되어 있으니까. 그런 고민들을 할 때면 또 다른 작업들이 있고 그게 끝나고 또 다른 작업들이 있고 그랬으니까. 그렇게 계속 하게 된 것 같은데. 나도 언젠가 그런 흐름들이 끊기고 좀 더 오래 쉬게 되고 뭔가 다른 상황들이 들어오면 달라지겠죠.
질문을 이어 볼게요. ‘노기용에게 연극이란?’ (웃음)
기용
야... 굉장히 어려운 질문인데 이거... 진짜 생각 많이 하게 된다... 고등학교 때 처음 연기를 배울 때 늘 선생님께서 하신 말씀이신데. ‘내가 하고 있는 연극이 나에게 무엇이며 내가 왜 연극을 하고 있는지 늘 고민을 해야 된다.’ 그걸 늘 마음속에 담고는 있었는데 질문을 받으니까 바로 나오지는 않네요.(웃음) 연극이란... 누군가를 변화를 시켜 버리는 것. 그게 내가 될 수도, 관객이 될 수도 있는. 내가 하는 연기 혹은 무대를 통해서 누군가를 변화 시킨다는 것. 다른 세상으로 데려가 버리는 것. 그게 어떻게 보면 굉장히 이기적인 말 일 수도 있는 거잖아요. 누군가는 ‘니가 왜 다른 사람을 변화시키려고 하냐.’(웃음) 근데 그런 공연을 하고 싶더라구요. 누군가를 변화시키고 바꾸어 버리는... ‘내가 살아가는 세계가 아니라 또 다른 세계를 경험하게 할 수 있는 그런 일을 하고 싶다. 그래서 나는 연극을 한다.’라고 이야기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좋네요.(웃음)
기용
이건 여담인데... 최근 작업이 끝난 지 두 달이 채 안 됐지만 벌써 일이년이 지난 것 같아요. 결혼이라는 큰 산을 넘어서 그런 게 아닐까.(웃음) 이게 내 삶에 엄청난 변화가 됐다기보다 그 전의 삶들이 엄청나게 멀게 느껴져요. 마치 없어져 버린 것처럼. 모든 걸 새롭게 생각해 봐야 할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을 받아요. 연극이란 무엇인지 새롭게 고민해봐야 할 것 같아요. 어쨌든 지금의 나로서는 계속 할 거라는 느낌이 들기 때문에 그 누구든지 무대 위의 제 모습을 보시고 ‘아 이놈이 이래서 연극을 계속하는구나.’라고 느껴지는 게 있으면 꼭 말씀해 주셨으면 합니다.

그러니까... 결론을 내리지 않을 테니 저를 보러 와주십시오?(웃음)
기용
저도 잘 모르겠어요. 저도. 연극이 뭘까. 제가 계속하고 있는 거고. 앞으로도 계속 해나갈 거예요. 직업이라고 볼 수도 있고. 근데 삶이라고 하고 싶진 않아요. 연극이 내 삶의 전부면 되게 힘들어질 것 같고...
작업하면 내 삶이 없어지니까. 사실 작업하다 보면 그럴 겨를이 없잖아요. 그러다 보면 곁에 있는 사람이 너무 외로워하고. 근데 또 그렇게 안 하면 작업이 안 되니까.
기용
근데 (작업)하면 너무 재밌지 않아요? 저는 너무 재밌어요.(웃음) 그건가 보다. 재밌어요. 재밌어서 하나보다. 이왕에 하는 거 조금 더 재밌었으면 좋겠다. 전 그냥 재밌게 연극하고 싶어요.(웃음)

[사진: 김지성 jasonk17@naver.com]

노기용(배우)
주요작품
<검은 입김의 신> <당신이 알지 못하나이다> <한여름밤의 꿈> <로풍찬 유랑극단> <2센치 낮은 계단>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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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

김정 연출가
'프로젝트 내친김에' 연출

주요작품 <광장의 왕> <베르나르다 알바의 집> <꿈> <손님들> 외
shinji840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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