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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을 살릴 수 있는 연극을 하고 싶어요.’

연출가 서지혜

김정_연출가

제147호

2018.09.06

처음 만난 두 연출가, ‘하고 싶은 것’과 ‘할 수 있는 것’ 사이의 괴리에 대한 열띤 토로(吐露), 잠시 후...

연출님은 궁극적으로 뭘 하고 싶으세요?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떤 구체적인 꿈이 있으실 것 같아서. 기술적으로든 뭐든. 구체적이지 않고 허무맹랑하더라도 나중에 이 인터뷰를 보고 ‘내가 저런 걸 하고 싶었구나.’ 생각해보면 재밌을 것 같아서요.(웃음)
지혜
음... 딱히 ‘앞으로 이런 공연을 하겠다.’ 이런 생각은 없어요. 근데... 저는 항상 제가 모자라다고 생각하거든요. 항상 지금 했던 것보다 더 나은 공연. 거기에 대한 생각이 커요. ‘지금보다 더 나은 공연을 해야 한다.’ 기술적으로든 인문학적으로든 조금이라도 더 발전하지 않으면 저 스스로 의미가 없을 것 같은 생각이 들어요. 멈춰 있다는 것에 대해 강박관념이 있는 것 같아요. 어떻게 보면 멈춰있어도 되는 건데. 스스로 멈춰있다고 생각이 들 때 힘들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요. 물론 요즘엔 ‘욜로’ 시대고.(웃음) 사실은 조금 멈춰 있어도 되는 건데. 지금은 그러고 싶지 않아요. 앞으로 나아가고 싶어요.
사실 우리 같이 이런 일 하는 사람들한테는 궁극적으로 맞지 않는 단어일 수 있죠. ‘욜로’니 ‘워라밸’이니...
지혜
‘워라밸’은 뭐예요?
워크 앤드 라이프 밸런스? 워크와 라이프 사이의 밸런스?(웃음) 예전엔 장소만 있으면, 기회만 있으면 앞뒤 안 가리고 무조건 하겠다 그랬었거든요. 하고 싶은 게 엄청 많았으니까. 배우들이랑 작업하는 게 좋았고. 누가 뭐래도 내가 좋아하는 형태로 작품을 만들어 내는 게 좋았으니까. 근데 어느 순간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면서 ‘내가 왜 내 삶을, 나 자체를 깎아먹어 가면서 이일을 하고 있는 거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었어요. 그러다 보니 뭔가 멈춰지더라고요. 맨땅에 헤딩하다가 정신이 갑자기 차려진 느낌? 우리는 이미 밸런스가 다 깨져버린 삶을 살아가고 있는데 ‘아... 그 밸런스를 맞춰가며 살아야 했던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어올 때가 있더라고요.
지혜
저는 항상 밸런스를 고려하면서 살아야 한다고 ‘생각’은 하는 것 같아요. 근데... 어느 정도 포기한 것 같기도 해요.(웃음) 계속 연극만 바라보고 살아왔는데... 예를 들면 결혼이라는 게 눈앞에 닥쳐왔을 때 남자도 여자도 마찬가지로 어떤 ‘책임’이 따르는 거잖아요. 거기에 대해서 아직도 겁나는 게 있어요. 그래서 자꾸 그걸 안 보고 회피하는 것 같아요. 어쩔 수 없이 삶과 일(연극)의 밸런스를 맞춰야 하는 순간들이 올 텐데 그걸 보류하고 있는 것 같아요. 근데 어떨 땐 부럽기도 해요. 선배님들 보면 또 두 가지(일과 생활) 다 잘하시는 것 같기도 하고요. 이런 말씀도 하세요. ‘지금 당장은 네가 두려워하지만 살아보면 두 개 다 하게 돼. 그리고 결혼하고 나면 오히려 일도 더 들어와.’ 뭐 이런 얘기. 근데 저는 아직 안 되는 것 같아요.(웃음)
저도 아직은 그런 생각이 많아요. ‘결국 그 밸런스를 맞추려다가 더 과감해지지 못하고 매끄러운 것들, 안정적인 것들을 뽑아내는 그런 창작자가 되지 않을까.’ 두렵죠. 아직 갈 길이 구만리인데. 쉽지 않을 것 같아요. 유혹도 많을 것 같고요.

지혜
저는 그런 생각이 강하게 들었던 때가. 2015년도. 제가 극단에 있을 때였어요. 제가 연출 데뷔를 좀 일찍 한 편이거든요. 연출 데뷔를 하고 대학원에서 공부도 하고 그랬는데. 대학로에 대한 걸 전혀 모르고 있더라고요. 제가. 저만 겉도는 느낌이 들기도 하고. 저는 연극을 하고 있는데 대학로에 나오면 아무도 모르고. 아는 거 하나도 없고. 저 나름 뭔가를 한다고는 하는데 아무도 모르고.(웃음) 당시에 술집이나 어디를 가도 극단끼리 앉아 있는 게 되게 부러웠어요. 그때쯤 한 선배님 소개로 극단 조연출을 제안받게 됐어요. 그 때 제가 논문을 쓰고 있어서 극단에 들어가는 건 어려울 것 같다고 말씀드렸더니. 괜찮다고. 와서 일하면서 쓰라고 하셔서 조연출로 극단 활동을 시작했는데. 그 해부터 1년에 작업을 8개씩하고 그랬어요.(웃음) 잠도 못 자고. 결국 논문을 포기를 했어요. 그렇게 극단에서 작업을 쭉 해왔죠. 그렇게 몇 년을 지내다가 2015년쯤 극단을 나올 때도 됐었고 저도 제 작업을 해야 할 때였는데. 그때 제가 키우던 강아지가 있었거든요. 슈나우저. 그 아이를 12년 키웠는데. 그 해에 그 아이가 건강이 많이 안 좋았어요. 근데 그때 또 제가 너무 바빴었죠. 당시에 제가 일본에 공연을 하러 한 달 넘게 가있어야 했거든요. 그 시점에 이 아이의 상태가 숨이 헐떡헐떡 넘어갈 정도로 안 좋았어요. 병원에서도 보호자 없이는 입원이 안 된다고 하던 상태였고. 누구에게도 맡길 수가 없는 상태였거든요. 어떻게 할 수 없는 상황에서 고민 끝에... 안락사를 선택했어요... 그게 저한테도 너무 충격이었죠... 그렇게 공연을 하러 일본을 가서 꽤 긴 일정들을 마치고 돌아왔는데. 빈집에 저 혼자더라고요. 그 아이(강아지)도 없고... 아무도 없는 빈집에... 그때 진짜 많이 허무했어요.(눈물) ‘아무것도 없구나. 바쁘게 열심히 살아왔다고 생각 했는데 결국 아무것도 없구나...’ 그래서 정말 1년 동안 아무것도 안 했어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어요. 내가 이때까지 뭘 한 거지... 이 얘기만 하면 눈물이 나서 안 해야 하는데...(웃음)
그러면서 아무것도 하기 싫더라고요. 제 생활이 완전히 깨져버렸어요. 사람들이 이 얘기하면 강아지 때문에 그러냐고 하는데. 사실 제 모든 게 무너진 거죠. 정말 아무것도 하기 싫고 고민도 하기 싫고 사람 만나는 것도 싫었어요. 그냥 아무것도 안 하고 희곡만 읽었어요. ‘내가 다음에 할 희곡이나 찾자.’ 그렇게 희곡 읽는 것 말곤 아무것도 안 하다 보니 일도 안 들어오더라고요.(웃음) 그렇게 1년 내내 아무것도 안 했어요. 그냥... 요기 앞에 혜화로터리 동사무소에 2만5천 원 내면 일본어를 배울 수 있거든요. 그래서 거기 아주머니들이랑 일본어 배우고,(웃음) 자전거 타고 다니면서 서점가서 희곡 읽고... 그러다가 <일상의 광기에 대한 이야기>를 만나게 된 거죠. 그 작품을 만나면서 다시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백수처럼 보낸 그 와중에도 ‘이런 대본이면 다시 하고 싶다.’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이건 꼭 내가 했으면 좋겠다.’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연출님께 특별히 중요한 작품일 것 같았어요. 사실 연출님 인터뷰 찾아보고 왔는데. 서울연극제 대상 수상소감 봤어요. (“절망의 수렁에서 이 작품을 길어 올렸어요. 제 인생에 선물처럼 다가왔으니까요.”) 어떤 마음이었을까 궁금하더라고요.
지혜
하하. 그거 다들 얘기하시더라고요. 너무 주책 떨어가지구...
그 시간이 어떤 것이었을까 궁금했어요. 왜냐하면 누구한테나 오잖아요. 그런 시간이. 분명히 오는 시간들인데...
지혜
이런 거였죠. ‘번 아웃’처럼 그런 게 온 상황에서 사람도 안 만나고 피해 다니고 연락 안 받고 이렇게 지내가다 한 희곡(<일상의 광기에 대한 이야기>)이 제게 들어 온 거예요. 하고 싶더라고요. 연극이 다시 하고 싶어지는 순간이 왔죠. 서점에서 사서 읽으면서 ‘이걸 내가 꼭 해야겠다.’하는 생각은 드는데... 아무것도 없는 거예요. 하려고 보니까. 내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서 아무것도 안 하며 지낸 시간들이 꽤 길었고. 뭔가 하려고 해도. 극단도 나왔고. 주변에 사람도 없고. 새롭게 뭔가 시작할 아무 발판이 없는 거예요. 공간도 없고. 나는 바쁘게 뛰어왔는데 다시 시작함에 있어서 아무것도 갖춰진 게 없는 거예요. 돈도 없고. 그래서 16년도에 출판사에 먼저 전화했죠. 전화해서 ‘제가 돈이 없는데 이 작품으로 하반기에 워크숍을 좀 해봐도 되나요.’ 그랬더니 ‘워크숍이요?’ 그러더라고요. ‘네. 제가 돈이 없어서요.’ 그랬더니 ‘허락해드리겠다.’고 ‘대신 워크숍 할 때 좌석만 몇 자리 보내주세요.’ 그러더시라고요. 다행히 출판사에서 허락해 주셔서. 일단 제가 아는 배우분들을 집으로 초대한 거예요. 함께 읽어보고 피드백을 좀 받고 싶어서요. 근데 대본이 너무 기니까. 원작 그대로 읽으면 3시간이 넘거든요. 그래서... 일단 카레를 만들었어요.(웃음) 식사를 다 차려놓고 일단 밥부터 먹고 읽기 시작했죠. 되게 지쳐하시는 것 같더라고요. 너무 기니까. 그렇게 다 읽고 이야기를 나누는데... ‘씬도 많고 인물도 많이 나오고 힘들 것 같다.’고 하시는 분도 계셨고 어떤 분은 ‘재밌다. 꼭 해봐라. 돈 없어도 그냥 하는 거지.’ 라고 해주시면서 ‘굳이 워크숍을 할 바에 그냥 공연을 하는 게 낫지 않겠냐.’고 해주셨어요. 그렇게 격려를 해주셔서 지원 사업을 냈는데... 다 떨어졌어요.(웃음) 근데 사실 그때 제가 지원 사업을 낼 때쯤에 미리 배우 캐스팅을 다 했어요. 워낙에 배우분들이 바쁘시니까. 캐스팅 부탁드릴 당시에는 지원사업에 선정된 것도 아니었고 아무것도 없는데 일단 찾아가서 출연해 주십사 말씀드리고 공연 7개월 전에 스케줄을 못을 박았죠.(웃음) 근데 결론적으로 지원사업은 다 떨어졌지... 어쩌겠어요. 다시 찾아갔죠. ‘제가 지원사업에 다 떨어졌는데. 빚을 내서 돈을 다 끌어와도 실질적인 제작비 정도밖에 안 될 것 같다.’ 말씀드렸더니 선배님들께서 ‘그래 네가 우리한테 빚을 한 번 지는 거다. 그냥 가자.’ 이렇게 말씀 해 주셨어요. 그 덕분에 시작을 할 수 있었죠. 제가 할 수 있는 만큼 끌어모으기도 했고 다행히 수익금이 생겨서 최소한의 개런티를 드렸어요. 물론 많이 부족하죠. 저희 단원 배우들께는 사례도 거의 못 했어요. 그렇게 어렵게, 어렵게 초연을 올렸어요.
저는 <일상의 광기에 대한 이야기> 초연 당시에 제 작업하느라 공연을 못 봤는데. 이야기를 많이 들었어요. 공연이 참 좋았는데 특히 배우들이 돋보이는 공연이라 더 좋았다고. 저도 워낙에 배우들의 기량에 기대는 연출이라 되게 궁금하고 반가웠어요. 제가 좋아하는 배우분들도 많이 나오시고.(웃음)
지혜
저는 연출적인 콘셉트에 있어서 (무대)기술적인 것도 되게 중요하지만 배우가 우선이 되어야 된다고 생각하거든요. ‘배우가 최전방에 서 있는 작품의 중심인데 그것보다 다른 기술이 앞서가는 것은 그게 무엇이든 과하다.’ 라는 생각을 해요.
저도 생각이 거의 비슷해요. 연출의 상상보다 더 과감하게 돌진해주는 배우들에게 엄청나게 많은 자극을 받아요. 연출이 할 수 있는 일은 여기까지구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요.(웃음) 저는 오히려 그랬을 때 내가 연출로서 할 일이 선명해지고. 배우도 관객과 제대로 된 게임을 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연극과 배우에 대한 ‘이야기보따리’... 잠시 후 정신을 차리고 다시.

연극은 어떻게 시작하게 되셨어요?
지혜
저는 고등학교 때 연극반 하면서 시작했어요. 사실 고등학교 때 우여곡절이 있었어요. 고등학교를 한 번 옮겼어요. 전에 있던 고등학교에서 선생님이랑 잘 안 맞아서... 자퇴를 했어요. 어떻게 보면 불량학생으로 볼 수 있죠.(웃음) 그 당시에 자퇴라는 건 어마어마한 거였잖아요. 지금 생각하면 너무 고맙죠. 엄마한테. 허락해주셔서. 근데 가끔 집에 엄마 친구가 놀러 오면 신발 들고 방에 들어가 있으라고 하시기도 했어요.(웃음) 자퇴를 하고 나서는 학교에 가고 싶지 않았어요. 사춘기도 심했고.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가. 막판에 ‘학교는 졸업해야겠다.’ 싶어서 시험 쳐서 다른 학교로 옮겼죠. 그 사이에(자퇴하고 다른 학교로 옮기기까지) 제가 열일곱 살 때였는데. 할 게 없는 거예요. 그때 다행히 제 방에 비디오가 있었거든요.(웃음) 영화 비디오테이프 쌓아놓고 하루 종일...
오. 진짜 좋았겠다. 나도 학교 안 가고 하루 종일 그러고 싶었는데.(웃음)
지혜
근데 그게 나중엔 되게 괴롭더라고요. 몰래 있어야 되니까. 숨죽이고 있어야 되고. 아니면 ‘나가라. 나가 있다가 들어와.’(웃음) 공부할 생각은 없고. 그 때 제가 할 수 있는 게 영화 보는 거랑 연극 보는 거밖에 없었어요. 그 당시에 제가 살던 곳에 다락방같이 생긴 소극장이 있었거든요. 그때 그 극단이 인기가 많아서 극장에 올라가는 계단에까지 사람들이 꽉 차 있는 거예요. 심지어 그 자리에서는 무대도 잘 안 보이는데. 소리만 듣고 있는 거예요. 그 정도로 인기가 많았죠. 근데 어린애가 자리도 못 잡고 땀 삐질삐질 흘리면서 가방 매고 서 있으니까... 아, 그때 제가 그냥 돌아다니기 창피하니까 교복 입고 가방 매고 나왔거든요.(웃음) 사람들이 저보고 ‘너, 여기 뭐하러 왔어?’ 물어보시더니 올라가라고 비켜주시는 거예요. 어떻게 하다 보니 엄청 가까이서 연극을 보게 됐는데... 코앞에서 배우가 옷이 다 젖도록 땀을 흘리면서 연기를 하고 있고 총 쏘는 소리도 막 들리고 하는데. 그게 너무 충격적인 거예요. 내용은 하나도 모르겠는데. 그게 그 때 저한테 엄청 큰 충격으로 다가왔나 봐요. 그 뒤로 저 혼자 연극 보러 막 돌아다닌 거죠. 이곳 저곳 연극 보러 다니면서 교복 입고 앉아있을 때도 있었고. 아가씨인 척 사복 입고 나가기도 하고.(웃음) 그 시간이 저에게 되게 소중했어요. 처음으로 하고 싶은 게 생긴 것 같았거든요. ‘나 연기 한번 해보고 싶다. 연극 한번 해보고 싶다.’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막 찾아봤죠. 연극반이 있는 고등학교가 어딘지. 막 물어보고 그랬어요. 그때는 뺑뺑이라서 원하는 고등학교에 갈 수 있는 건 아니었지만.(웃음) 다행히 제가 가게 된 고등학교에도 연극반이 있었어요. 그렇게 연극반에 들어가서 연극을 시작한 거죠. 지금 생각해 보면 제 삶에 있어 그 당시에 잠깐 빗나갔... 다고 해야 하나?(웃음) 그 시기, 영화 많이 보고 연극 많이 보고 미술 많이 보러 다닌 그 몇 개월이, 제가 지금까지 해왔던 시간들과 비교해서도 가장 생각을 많이 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어요.
저도 첫 순간이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제일 궁금하기도 하죠. 왜 하게 되었고, 어떤 순간이 생생하게 몸에 남아 있어서 이일을 하고 있는 건지.
지혜
어려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그때의 찰나들이 저에겐 사진처럼 엄청 강렬하게 남아있어요. 그 당시에 봤던 연극들, 무대 위의 모습들. 그런 것들을 목격하면서 생각들을 많이 하게 되었어요. 이상한 짓도 많이 했고요. 야자 째고 연극 보러 다니고, 교감선생님 찾아가서 ‘우리 학교 연극반이 잘되려면 극장이 있어야 된다...’고 교감선생님이랑 슬리퍼 끌고 학교 앞에 극장 자리 보러 다니고.(웃음) 나도 아무것도 모르면서 ‘배우는 이래야 돼.’ ‘연극은 이런 거야.’ 하면서 족보 같은 거 만들어서 애들한테 나눠주고. 지금 생각해보면 왜 그랬나 싶어요. 제가 연극을 너무 좋아해서 모든 친구들이 연극을 알았으면 좋겠고 막 알리고 싶고 그랬나 봐요. 그 시간들이 지금 저한테 행복으로 남아있어요.

연출님 이야기를 듣다 보면 굳이 말하지 않아도 그때 연극이란 것이 연출님에게 무엇이었는지 너무 잘 느껴지는 것 같아요. 기분 좋네요.(웃음) 지금은 어떠세요? 서지혜에게 연극이란 무엇일까요?
지혜
아... 어려운 질문인데. 음... 연극이란 서지혜에게 ‘23년이다.’ 저의 나이에 반 넘게 차지한... 눈물이 또 나려고 하네. 감회가...하하.
벌써 23주년? 23주년 기념공연 한 번 하시는 건 어떨까요.(웃음)
지혜
에이... 23주년인데 저를 아는 분이 많지도 않고 저를 알린 순간이 얼마 안 됐으니까요. 음... 그렇게 살아온 것 같아요. 그냥... 뗄 수 없고, 그저 나의 생활로 받아들이는... 삶으로 받아들여 온 어떤 것. 그게 좀 고통스러워도... 내가 외로웠던 그 고등학교 시절에 아무도 없었거든요. 그때 제 옆에 연극이 있었어요. 항상 친구같이. 내 옆에 항상 있어줬던 건 연극이었어요. 근데 그걸 버릴 수 없죠. 그래서 버릴 수 없는 것 같아요. ‘내가 가장 외로운 순간, 혼자 있는 순간에 내가 할 수 있는 게 연극’이라는 생각으로 가고 있는 것 같아요. 그런 생각으로 가고 있는데. 글쎄... 아닐 때도 많죠.(웃음) 그것 때문에 너무 힘들고 생활하는 것 역시 어려우니까요. 지금도 저는 제 모든 걸 연극에 맞춰놓았거든요. 후회할 지도 모르겠어요. 나이가 더 들면. 하지만 지금은 연극이 내 모든 것들을 점령하고 있고... 돌이켜보면 또 그만큼 연극을 하면서 23년 동안 많이 즐거웠고, 행복했고, 도움도 많이 받았어요. 그래서 그런가. 그 23년을 보내고 난 후에 지금 나에게 연극은 ‘책임’으로 많이 다가오기도 해요. 그 전엔 단지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이었다면. 지금도 그건 마찬가지이지만 어떤 책임감이 들어요. 저희 극단의 목표도 ‘타인에 대한 책임’인데요. 제가 지금 무언가 사회적인 활동을 하고 있는 건 아니지만... 제가 요즘 가진 화두는 ‘사람 하나 죽이기는 너무 쉽지만. 사람 하나 살리기는 너무나 많은 에너지와 사랑과 시간이 필요한 일이다. 한 사람 살리기는 너무 어렵다.’는 생각을 해요. 연극을 하면서 ‘한 사람을 살리고 싶다.’는 생각을 되게 많이 해요. 그게 어떤 방식으로 어떻게 표현될지 모르겠지만. 내가 받은 사랑만큼... 나 역시 흔들리고 방황하던 시절에 연극을 만나서 지금 이렇게 사람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고 있잖아요. 그런 면에서 책임을 느끼고 있는 것 같아요. 앞으로 작업을 해나가면서 한 사람을 살릴 수 있고 한 사람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일을 연극을 통해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해요. 지나온 23년의 세월만큼 앞으로의 23년을 그런 책임감을 가지고 하고 싶어요. 답이 될지 모르겠지만 이게 지금까지 제가 고민해 온 저의 진심이에요.

[사진: 김지성 jasonk17@naver.com]

서지혜(연출가)
주요작품
<일상의 광기에 대한 이야기> <아일랜드> <황금밥 식당> <현장검증> <더 라인>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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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

김정 연출가
'프로젝트 내친김에' 연출

주요작품 <광장의 왕> <베르나르다 알바의 집> <꿈> <손님들> 외
shinji840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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