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너메뉴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하단메뉴 바로가기

관객을 만나는 일이라면 나는 무엇이라도 좋아요

작가·배우·연출가 이상범

김정_연출가

제149호

2018.10.11

작가님이라고 부르는 게 더 편하세요? 연출님이라고 부르는 게 더 편하세요?
상범
음... 아직은 둘 다 불편한 것 같아요...(웃음)
(웃음) 작가님이라고 많이 부르지 않으세요?
상범
네. 아무래도 작가로 더 많이 불렸던 것 같아요.
데뷔하신지 몇 년이나 되셨어요?
상범
작가 입봉을 2016년에 했어요.
아, 얼마 안 되셨네요? 입봉이 <후산부 동구씨>?
상범
네.
그럼 극작전공을 하셨나요?
상범
아니요. 원래는 연기 전공이었어요.
아, 그렇구나. 어떻게 시작하게 되셨어요?
상범
연극을 하고 싶다고 생각하게 된 건... 제가 중학교 3학년 때. 제가 대구 출신인데요. 중학교 때 제가 교지 편집부였는데 선생님께서 연극을 한 편 보고 오라고 하셔서. 반 강제로...(웃음) 그것도 서울에서 온 공연이었는데... <백설공주를 사랑한 난장이>였어요.
아, 저도 옛날에 봤어요. 좋았어요.
상범
그걸 보고... 너무 좋더라고요. 큰 감동을 넘어서 심장이 터지는 줄 알았어요. 그때부터 엄마를 조르기 시작했죠. ‘연기하고 싶어요.’ ‘연극하고 싶어요.’ (웃음)
반대 안 하시던가요?
상범
하셨죠. ‘무슨 딴따라냐. 돈도 안 되는 걸 왜하냐. 공부나 해라.’(웃음) 제가 줄기차게 설득해서 고3 때부터 연기학원을 다니기 시작했어요. 제가 사실 엄마 말을 잘 안 듣는 편이었거든요. 그렇게 연기전공으로 대학교를 갔어요. 중간 중간 대구에서도 활동을 잠깐 했었고, 배우로 무대에서 연기를 계속 했는데... 사실 대학 졸업하고 나서는 연극을 계속 할 생각은 없었어요.
왜요? 그렇게 어렵게 허락을 얻어서 시작하게 됐는데.
상범
졸업하고 나서 보니까 현실의 벽이 참 높더라고요...(웃음) 집에서는 ‘이제 너에게 지원을 해줄 수 없다.’라고 하신 상태였고... 알바를 하면서 영화 오디션 보러 다니고... 한 2년을 영화 쪽으로 해보려고 까불었죠. 그러면서 돈을 벌기 위해 알바를 해야 했는데... 저의 생활이 점점 알바가 주가 되어갔어요. 돈을 벌어야 해서 시작한 알바가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못하게 될 정도로 차지해 버린 거죠. ‘내가 지금 왜 이러고 있는 거지?’ 문득... 무대가 너무 그립더라고요. 마침 그때 친구한테 연락이 와서 ‘상업극인데 큰 역할은 아니다. 그래도 해볼래?’ 묻지도 않고 바로 간다고 했죠. 무대에 서는 게 그리웠던 것 같아요. 작은 역할인데 정말 재밌었어요. 내가 좋아하는 무대에 다시 설 수 있다는 게 행복했고요. 그렇게 다시 연극에 진입하게 된 거죠.
글은 어떤 계기로 쓰게 되셨어요?
상범
제가 학교 다닐 때 워크숍으로 글을 써본 적이 있는데, 글 쓰는 데 흥미가 있더라고요. 그 당시는 사회적 이슈도 많았고 이야기 하고 싶었던 것도 많았던 시기였어요. 수업 때 깨작깨작 그런 이야기로 글을 쓰곤 했는데 친구 소개로 운 좋게 황이선 연출님이랑 연이 닿아서 작품을 올리게 되었어요.
작가님에게는 대단히 좋은 기회였네요. 작업을 많이 하는 프로 극단에서 작품이 올라간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닌데.
상범
네. 저도 쓰면서 공연으로 올라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했었지만 구체적인 방법 같은 건 없을 때였는데 극단 소속 배우인 친구가 대본을 연출님께 한 번 읽어봐 주십사 부탁드렸고 그걸 시작으로 공연까지 올라가게 된 거죠.
배우로서 무대에 서는 것과 작가로서 작업에 참여하는 거랑 엄청난 차이가 있었을 텐데. 어떻던가요?(웃음)
상범
정말... 심장이 터질 것 같았어요.(웃음)
연습과정에도 많이 가셨어요?
상범
아니요. 저는...(웃음) 저는 연습과정에 작가가 가면 안 되는 줄 알았어요. 작가는 대본을 넘기고 나면 참견하면 안 되는 건줄 알았어요. 저는 그렇게 많이 들어서. 그래서... 한 번도 안 갔어요...(웃음)
저런, 섭섭할 수도 있었겠다.(웃음)
상범
어. 맞아요. 저는 그런 의도가 아니었는데... 심지어 연출님이랑 직접적으로 연락한 적도 없었어요. 소개해 준 친구 통해서 의견 듣고 저는 그냥 ‘좋아, 좋아. 연출님 하시고 싶으신 대로 하셔도 된다고 말씀드려줘.’ 이런 식으로. 나중에 알고 봤더니 연출님도 화가 나셨다고 하더라고요. ‘무슨 작가가 한 번도 연습실에 안 올수 있어!’ 이러셨다고. (웃음) 근데 그 이야기도 친구가 저에게 전달해 주면서 많이 순화시켜서 이야기 해주다 보니까 더 몰랐죠. 그러다가 첫 공연 날 프리뷰 할 때 연출님을 처음 뵀어요. 뭔가 데면데면 하더라고요. 지금은 웃으면서 하는 이야기지만. 저를 처음에 안 좋게 생각하셨다고 하더라고요. ‘뭐하는 놈인데 코빼기도 안 비춰.’(웃음)
뭔가 건방진 젊은 작가로 봤을 수도 있겠네요.(웃음)
상범
네.(웃음) 그러다가 첫 공연을 보게 됐는데... 친구한테 이야기 듣기로는 좀 많이 바뀔 것 같다고 들었는데 저는 그렇게 느끼진 않았어요. 연출님께서 작가의 글을 존중해 주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했어요. 감사했죠. 공연을 보는 동안 정말 행복했어요. 너무 좋았어요.
진짜 행운이네요. 거의 처음 쓴 대본이 프로 극단에서 공연화 되고 레퍼토리화 된다는 게.
상범
그렇죠. 정말 감사한 일이죠.
배우도 하셨으니까 글을 쓸 때 그런 상상들을 구체적으로 하면서 글을 쓰시겠네요.
상범
네. 상상하면서 쓰죠. 저도 막 감정이입해서 중얼중얼 하면서 쓰고.(웃음) 움직이는거 상상하면서 쓰고. 그래서 한 번은 어떤 배우가 이러더라고요. ‘너무... 막... 지문이 날 구속하는 것 같아요.’ (웃음) 제가 너무 구체적으로 써서... 그 얘기 듣고 뜨악해서 요즘은 지문을 잘 안 쓰려고 하고 있어요.

잠깐 휴식 후

얼마 전에 막을 내린 <옥인동 부국상사> 관련한 인터뷰를 봤는데요. 주인공에게 연민이 가지 않도록 애를 썼다라는 내용을 봤어요. 어떤 과정이었고 의미인지 궁금하더라고요.
상범
그게... 공연을 하기 전 인터뷰였는데... 지금은 공연이 끝난 후의 인터뷰라 좀 다를 수 있는데요.(웃음) 정말 애를 많이 썼어요. 글을 처음 쓰는 순간부터 주인공을 폭력의 가해자로 설정을 해 두었는데. 그 가해자에게 관객이 연민이나 동정이 느끼면 이건 망한다.(웃음) 텍스트 상에서 주인공의 사적인 감정에 빠져 들어갈 수 있는 드라마들을 다 제거했어요. 가족들에 대한 부분, 친구들이랑 엮이는 부분 같은 것들이요. 사적인 이야기를 나누면서 자기의 생각을 감상적으로 녹여낼 수 있는 부분들까지도 제거하려고 노력했어요. 근데 그러고 나니 이 사람이 너무 영혼 없는 껍데기처럼 보이더라고요. 그래서 최소한의 것을 다시 살리기도 하고... 어쨌든 사적인 감상에 젖을 수 있는 부분들을 최대한 제거 하려고 노력을 했던 것 같아요. 쉽지 않더라고요. 어찌 됐건 주인공의 시점으로 따라가게 되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주인공을 연민하게 되는 부분이 생기고요. 그래서 연습과정에서 이입을 깨는 장치들을 넣어 봤어요. 누군가 갑자기 이상한 연기를 시작한다던지 굉장히 다른 에너지로 분위기를 깨버린다던지 하는 식의...
의도하신 대로 관객에게 읽힌 것 같으세요? 리뷰들은 어땠어요?
상범
아... 그 리뷰가...(웃음) 굉장히 사람 심장을 찌르더라고요. 하하
아! 아프죠... 피나죠.(웃음)
상범
네, 아프더라고요. (웃음) 근데 대부분은 의도한대로 봐주신 것 같았어요. 사적인 동정 같은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겪은 시간을 통해서 왜 그럴 수 밖에 없었는지 생각해 보게 되었다는 리뷰가 참 감사했어요. 한편으로는 주인공을 따라가기가 힘들었다. 그래서 집중을 놓치게 되었다는 이야기도 있었고요.
작가님 말씀 들으니까 더 이해가 되네요. 저 역시도 연민이라기보다는 ‘이해’하게 된 것 같아요. 평범한 사람이 변해가는 과정을 보다 보니까 그 ‘사람’보다는 그 ‘시대’를 살피게 되는 것 같아서 좋았어요.
상범
감사합니다.
‘연출 입봉’, 어떠셨어요? 만만치 않은 과정이었을 텐데.(웃음)
상범
제가 공연 앞두고 피부가 완전히 뒤집어 졌어요. 어머니께서 대구에서 공연 보러 올라오셔서 공연 전에 같이 밥을 먹는데 ‘너 얼굴이 왜 그러냐고.’ 놀라시더라고요. 근데 그 이후에 식사하면서 또 잔소리가 시작 됐죠.(웃음) 너 돈은 언제 벌 거냐. 네가 나이가 몇인데...(웃음) 그러고 나서 공연을 보고 나오셨는데 ‘어휴, 얼굴이 그렇게 될 만하네. 얼마나 힘들겠어. 속상하다. 속상해.’ 하시면서 내려가셨어요.(웃음)
이해가 됩니다. 연출하는 분들 다 엄청 공감하실 거예요.(웃음) 첫 공연 올라가기 직전에 어땠어요? 공연을 며칠 앞두고 뭔가 해결이 안 된 게 분명히 있을 테고 시간은 다가오고...(웃음)

상범
돌아버리겠더라고요. 정말.(웃음) 거의 공연에 임박해서는 해결이 안 되는 그 부분이 뭔가 물리적으로 어떻게 할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게 시간이 있다고 해결 될 것 같진 않지만... 그 해결되지 않은 뭔가가 마음 한쪽에 무겁게 자리 잡고 있는 느낌이 들었어요. 그리고 공연을 일주일 앞두고는 뭔가 분위기가 달라지더라고요. 그 전까지는 뭔가 ‘으쌰으쌰’ 하면서 ‘팀워크로 헤쳐 나가보자.’ 이런 느낌이었다면. 배우들 각자가 관객을 만날 준비를 하더라고요. 배우들은 배우 나름의 긴장을 갖고 있고 저 역시도 연습실 오는 길이 마냥 설레고 좋다기보다는 뭔가 쎄해지는 느낌도 들고.(웃음) 그 시간 동안은 뭔가 외롭다는 생각도 들었던 것 같아요. 묘한 경험이었어요. 그렇게 시간이 지나서 첫 공연 날에 관객들이 입장하는데 숨고 싶은 생각이 들더라고요. ‘와, 나 못 보겠다.’ 무서웠어요. 관객들이 오는 게 괜히 얄미워 보이기도 하고.(웃음) 내 속은 타 들어가는데 관객들은 생글생글 웃으면서 들어오잖아요. 그게 왠지 모르게 얄미운 생각이 들더라고요.(웃음) 공연 시작하고 구석에 앉아서 공연 내내 관객들 얼굴만 봤던 것 같아요.
관객들 얼굴이 어떻던가요?
상범
음... 마지막 장면에서 객석 쪽으로 조명이 환하게 비춰지는 씬이 있는데 그때 관객들 표정을 쭉 봤어요. 뭔가... 섬뜩했어요. 지금 저 사람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정확히는 모르겠으나 분명히 이 공연을 보고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 거고 어떤 평가를 내리고 있을 거잖아요. 근데 그게 뭔가 전부 내 책임 같은 생각이 들었어요. 작가로서나 배우로서 느끼지 못했던 감정이었던 것 같아요. 배우를 할 때는 관객과 함께 호흡하고 있는 그 행위 자체가 좋았던 것 같고 작가로서는 글을 연출에게 넘겨주고 연출이 그걸 무대 위에 구현을 했을 때 내 머릿속에 있던 어떤 이미지 들이 형상화 되서 나타나는 걸 보는 게 너무 즐거웠어요. 근데 연출은... 관객의 눈치를 많이 보게 되는 것 같아요.(웃음) 무섭더라고요. 뭔가 묘한 경험이었어요.
그렇게 무서운 일을 앞으로도 계속 하실 거죠?(웃음)
상범
사실 이번 11월에 함께 작업하는 극단에서 연출 의뢰를 받았어요. 이번엔 다른 사람이 쓴 걸 연출하게 될 것 같아요.
아, 그럼 그건 또 다른 경험이네요. 다른 사람이 쓴 글을 연출만 하시는 건 처음이실 테니까. 그럼... 2016년에 작가로 데뷔하셨고, 그 전엔 배우를 하셨고, 올해는 직접 쓰고 연출하셨고, 올해 말에는 다른 사람이 쓴 대본을 연출을 하시고... 이야, 정말 연극으로 해볼 수 있는 건 다 해 보신 거 아닌가요? 4년 정도 안에 계속 역할이 바뀌면서 작업을 하고 있으신 건데. 어떠세요?
상범
저도 제가 뭘 하고 있는지 잘...(웃음) 저도 이렇게 될 거라고는 예상 못했는데. 흘러가는 대로 기회가 주어지면 ‘한 번 해보자!’ 그런 생각으로 온 것 같아요.
그렇게 다양한 역할을 해낼 수 있었던 동력은 무엇이었을까요? 작가님의 매력이랄까?(웃음)
상범
하하. 매력은... 잘...(웃음) 그런 생각은 잘 안 해본 것 같네요. 제가 의도해서 온 길이 아니라서...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나를 필요로 하는 곳에 내가 있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게 내가 좋아하는 일이었으면 좋겠다.’ 저는 배우로 무대에 서는 일도, 글을 쓰는 일도, 연출의 경험도 즐겁더라고요. 포지션은 달랐지만 관객을 만난다는 건 정말 소중한 것 같아요. 저의 원동력이라면 그것 아닐까 생각해요. 그리고 관객을 만날 수 있다면 세 가지 역할 중 어느 것이어도 좋다. 그렇게 생각해요. 내가 필요한 곳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즐겁게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얘기를 하다보면 작가님은 관객을 만나는 일 자체, 무대를 좋아하시는 것 같아요.
상범
그런 것 같아요.
이제 다른 작가가 쓴 작품을 연출하시고 그 다음으로 남은 건 작, 연출, 주인공 다 해보는 일만 남았네요. 도전! (웃음)
상범
하하. 학교에서 제가 쓴 작품에 제가 출연을 한 적이 있는데... 주인공으로...(웃음) 못 할 짓 같더라고요.(웃음) 뭔가 소외되는 느낌도 들고 연출도 디렉팅이 뭔가 어색해지고... 이건 아니구나 싶더라고요. 앞으로 그럴 일은 없지 않을까...(웃음)

저는 한번 기대해 볼게요.(웃음) 이상범에게 연극이란 무엇인가요?
상범
아, 제일 어려운 질문이네요. 음... 요즘 본격적으로 연극을 하게 되고 부터는 다른 알바를 하지 않았어요. 물론 빚은 생기고 있지만,(웃음) 근데 마음이 불편하지가 않아요. 즐겁고.
이 분야와 관련되지 않은 일은 일부러 안 하시는 건가요?
상범
일부러 안 하는 건 아닌데. 굳이 하고 싶지 않더라고요. 그냥 지금 이 상태를 즐기고 싶어요. 글을 쓰는 것 부터해서 공연을 올리는 것 까지 ‘너 정말 수고 했어.’ ‘나 정말 수고 한 것 같아.’ 스스로 이야기해요. 그래서 지금은 그냥 돈 없어도 그냥 이대로가 좋아요. 열심히 연극 했고 스스로 그게 대견하고 지금 이 상태가 편안해요. 지금 저에게 연극은 그런 존재예요. 내가 자연스럽게 살아지게 만드는 것. 저에게 연극은 그냥 ‘삶’이에요.
자연스러운 의미의 ‘살아지는 것’이군요.
상범
네, 작가라는 호칭도 연출이라는 호칭도 아직은 어색하지만...(웃음)
앞으로 계속 연극을 하게 될 것 같으세요? 누군가 너는 죽을 때까지 연극을 하게 될 거야, 라고 하면 어떤 기분이 들 것 같으세요?(웃음)
상범
음... 해야겠죠?(웃음)
공연을 정말 좋아하시나 봐요. 나는 왠지 숨이 턱 막힐 것 같은데.(웃음)
상범
네. 저는 무대를 좋아해요. 그래서 계속하게 될 것 같아요.(웃음)

이상범(작가·배우·연출가)
주요작품
<후산부 동구씨> <소년소녀 전투헌장> <유나를 구하라> <옥인동 부국상사> 외

기사가 좋았다면 눌러주세요!

좋아요 선택 버튼

김정

김정 연출가
'프로젝트 내친김에' 연출

주요작품 <광장의 왕> <베르나르다 알바의 집> <꿈> <손님들> 외
shinji8406@naver.com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