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너메뉴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하단메뉴 바로가기

[연극인이 만난 사람] 이세승X김정

공간과 시간, 무대 그리고 서바이벌

김정, 이세승

제163호

2019.07.11

<사계절 연극제>라는 괴상한 이름의 페스티벌 혹은 단체의 창단 멤버(윤서비, 하수민, 김정, 이세승)로 처음 그를 만났다. 이제 3년 차가 되어가는 이 모임에서 우리는 알 수 없는 서로의 욕구와 정신세계 그리고 결핍들을 숨김없이 보여주었다. <2017 사계절 연극제 ― 봄 ― 햄릿>에서 처음 그의 작업을 보았다. 팬티만 걸치고 구질한 천쪼가리 왕관을 쓴 그의 모습은 내가 늘 비틀어 놓고 비웃고 싶었던 햄릿의 모습 그대로였다. 그는 보기 좋게 마른 몸을 이상하게 흔들어대며 춤인 듯 술주정인 듯 구분할 수 없는 몸짓을 했고 혀 짧은 소리로 대사를 했다. 형광봉을 흔들며 DJ와 함께 햄릿의 독백을 말 그대로 마구 해대는 그의 모습에 완전히 매료되었더랬다. 허나 무대 위의 모습과는 달리 그는 깊게 사유하고 어렵게 말한다. 인터뷰 정리가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지만 그와 나누는 대화가 마냥 재미있었다.
이세승
김정
이세승에 대해 떠올리다 보면 ‘쌍방’이라는 팀 이름에서도, 그리고 지속해온 작업들에 있어서도 ‘즉흥’이라는 단어가 떠올라요. 이세승의 작업에 있어 ‘즉흥’이라는 것이 가장 큰 키워드인가요? 테크니컬한 부분이 아니라. 즉각적인 반응에서 나오는 몸짓?
이세승
즉흥을 좋아하는 것은 제 인간적인 성향하고도 되게 잘 부합하는 점이 있는 것 같아요. 제가 춤추고 할 때 사실 순서나 시퀀스를 따라가고 이런 걸 잘 못하기도 하고, 그런 걸 좋아하지 않거든요.(웃음) 자꾸 벗어나고 싶고 이런 성격이 있는 사람이다 보니. 그러다 보니까, 학교나 바깥에서 워크숍이나 수업 같은 걸 진행 할 때 즉흥적인 요소가 들어갈 때 되게 재밌더라고요. 그리고 춤을 출 때나 퍼포머 입장에서 일단은 내가 재밌다거나, 내가 흥미를 느낀다거나, 내가 감각하고 느끼는 지점이 더 우선이었던 것 같아요. 행동을 하는 사람 위주로. 그런 식으로 자꾸 생각이 가다보니 ‘꼭 공연이 필요한 건가?’ ‘내가 잘하는 것을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사람들은 그것을 감상하고... 이런 것이 나랑 맞는 건가.’ 이런저런 생각이 들기도 하고. 어쨌든 즉흥이 저랑 좀 더 맞는 것 같아요.(웃음) 무용 쪽에서 즉흥이라고 하는 것이 안무 과정에 있어서 어떤 수단으로 많이 쓰이기도 하는데... 연극작업에서도 즉흥 많이 하잖아요. 일단 해보는 거! 공연예술, 그러니까 연극, 무용 다 통틀어서 즉흥이라는 방법이 되게 유효하다는 공통점이 있긴 한 것 같아요. 근데 즉흥이라는 것이 설계적이지는 않잖아요. (즉흥이라고 해도) 연출가나 안무가의 큰 작전 안에 들어가 있긴 한 거니까...
김정
‘공연이라는 것이 꼭 필요한가.’라는 질문에 대해서... 즉흥을 통해서 만들어지는 순간이 그 결과물보다 훨씬 생생하니까. ‘굳이 공연이라는 것이 필요한 것일까.’ 하는 질문을 하게 되는 건가요?
이세승
공연 형식에 대해서 많이 고민하게 되는 것 같아요. 일반적인 공연 방식이라고 하는 것이 무대하고 객석이 분리되어 있는 상태잖아요. 대게 시각적이거나 청각적인 정보들이 우선하게 되는 것 같아요. 물론 그런 방식들을 탈피하려는 작업들도 많지만. 극복할 수 없는 거리감 같은 것들을 느끼게 되더라고요.
김정
안무자로서도, 퍼포머로서도?
이세승
물론 그런 것을 초월하기 위해서 갖은 애를 쓰며 고군분투를 하고 있는 거겠지만. 근데 사실 제가 ‘쌍방’이라는 단체로 사람들에게 소개하고 있는 콘텐츠들은 아예 시작점부터가 다른 것 같아요. 관객과 애초에 물리적인 접촉을 하면서 하는 것도 있고. 공연이라는 감상자와 공연자의 위치가 시작부터 무너져있는 상태에서 하기도 하고. 그러다 보니까 너무 동떨어져 있기는 한데... (웃음)
김정
어디로부터 동떨어져 있다는 이야기인지요? 메인 스트림으로부터? (웃음)
이세승
네. 하하. 근데 어쩔 수 없는 것 같아요. 아예 처음부터, ‘쌍방’이 생겼을 때부터 그런 것에서 벗어나고자 한 거니까. 본격적으로 ‘쌍방’이 활동을 한 게 7년 정도 됐거든요. 저희가 해오고 있는 것들이 또 나름 하나의 흐름이 되고 있으니까 그것에 비추어서 생각할 수 있게 되기도 하는 것 같아요. 가령 제가 그냥 전형적이라고 생각하는 공연들을 양쪽에서 비교하며 생각해 볼 수 있어서. 그 사이에서 나는 어떤 포지션을 취해야 할 것인가. 사실 김정 연출님은 되게 이렇게... 뭐라 그래야 되나... 하하... 티피컬한 형식을 취하시잖아요. 그러면서도... 음... 하나의 지금... 하나의 흐름을 이루고... 너무 리스펙트 하는데... (웃음)
김정
전형적이고 올드하다는 얘기죠? (웃음)
이세승
아니요... 그게 하하. 티피컬한 방식에서 벗어나는 것을 추구하고 좋아하지만 어떤 스케일의 공연을 소화하기 위해선 당연히 형식이라던가 보는 방식이 필요한 것 같아요. 그건 어떤 필연적인 영역이기도 한 것 같아요. 무대가 있고 관객석이 있고 그런 요소들이 필연적으로 존재해야만 한다고 생각했을 때 시각하고 청각은 거리감이 있어도 어느 정도는 느낄 수 있잖아요. 극장 공연에서는 그런 감각적인 부분이 정말 중요한 것 같아요. 연출님은 어떤 감각이 제일 중요한 것 같으세요? 감각적인 부분들을 중요하게 여기잖아요. 시각이든 청각이든 감각을 자극 하는 데 있어 되게 와일드한 방법을 쓰는 것 같다고 생각했거든요.
김정
김정
‘이것이다’라고 정의하기에는 그렇지만... 요즘에 제가 생각하는 건 ‘공간감’ 인 것 같아요. 아주 절대적으로. ‘무대라는 것은 공간감의 싸움이구나.’라는 것을 정말로 많이 느껴요. 왜냐하면 (배우의) 몸 역시도 공간을 가지고 있는 강력한 요소잖아요. 무대에 서 있는 행위자의 몸에 그런 공간성들이 다 붙어있다고 생각해요. 극의 진행에 있어서 단지 분위기로 공간이 변화하는 것이 아니라 행위자에 의해서 공간이 열리고 다시 좁아져 들어오는 것. 배우에 의해서 일순간 심리적인 공간이 되었다가 또다시, 문득 물리적인 공간으로 돌아오는. 이런 순간들이 무대에서 불러일으켜 지는 가장 강력한 환상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무대 위에서의 공간성이라는 것은 물리적인 부피나 밀도만이 아니라 그 공간 안에 흐르는 시간성도 동반하고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지금 저에게 제일 재미있는 부분이기도 하고요.
이세승
공간감이라는 것은 사실 우리가 신체적으로 느낄 수 있는 오감 안에 들어가 있는 건 아니잖아요. ‘공간’이라는 형식이 있고 ‘시간’이라는 형식이 있다고 했을 때 그 형식 안에 다른 직관(감각)들이 들어오면서 이 공간과 시간이라는 형식이 필터링 되는 것 같아요. 저 같은 경우에 관심을 계속 두고 있는 것은 ‘시간’이예요. 아직은 불투명하긴 하지만 앞으로 내 작업의 키워드로 붙잡고 가고 싶은 것이 있다면 ‘시간’입니다.
김정
저는 그게 같은 고민일 수 있다고 생각해요. 무대라는 제한적 공간 안에서 상상을 통해서 비일상적인, 왜곡된 공간(세계)을 만드는 것이 우리의 일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많이 들어요. 저는 작업자로서의 우리가 자극에 대해 고민하기보다는 무대 위에서의 환상에 대해 더 고민을 해야 하지 않나 이런 생각을 많이 해요. 관객을 어떻게 자극하겠다는 목적보다 이 무대 위에 어떤 환상을 불러올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을 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래서 저는 공간이라는 것과 시간이라는 것이 같은 고민처럼 느껴져요. 작업을 만들어 가는 것에 있어서 ‘나는 저 사람들에게 ‘자극’을 제공하는 사람이 아니라 내 공간으로 저들을 끌어들이는 ‘설계자’여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준비된 자극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이 텍스트에 맞는 혹은 내가 구현하고 싶은 세계를 만드는 것이라는 생각이 많이 들어요. 그래서 우리는 심지어 객석의자의 상태에 따라 얼마나 앉아있으면 관객이 피로감을 느끼는지, 에어컨의 온도, 공기의 밀도, 습도... 그런 것까지 다 예민하게 받아들이잖아요. 관객을 이 공간 안에 불러들였을 때 그 공간을 우리가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어야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를 이 사람들에게 완전히 체험시켜 줄 수 있기 때문인 거죠. 현재보다 더 리얼한 허구의 세계를 만드는 것. 그게 우리가 할 일이고 그것이 무대예술이 가진 유일성이기도 한 것 같아요.
이세승
저 역시 그런 고민을 해요. 오직 무대만이 보여줄 수 있는 힘은 무엇일까. 몇 년 동안, 특히 한국에서 무용이나 춤에 있어서 다원적인 접근이나 매체끼리의 혼성 같은 시도들이 많았던 것 같아요. 저도 그중에 한 사람이긴 한데. 그럴수록 무용이라는 공연예술에 있어서 이 매체가 가진 특성을 잘 건드릴 수 있는 개념이 뭘까 고민하게 됐어요. 우리는 무대 위에서 존재하는 사람이니까. 유일하게 무대만이 할 수 있는 게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인 것 같아요. 다른 것이 대체할 수 없는... 제게는 그게 ‘시간성’인 것 같더라고요. 고정된 공간에서 시간을 다루는 데 있어서 공연예술 그리고 무용은 어떤 식으로 접근을 해야 할까. 그런 고민이 자꾸 드는 거예요. 아직 결론에 닿지는 않았지만 계속해서 ‘시간성’에 대해 공을 들여서 고민하고 싶어요.
김정
그러기 위해선 항상 관객을 생각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관객 역시도 이 공간 안에 들어와 있는 존재로서 유기적으로 움직이고 있고 반응하고 있고 영향을 주고 있는 존재인 거잖아요. 그런 의미에서 그들과 함께 가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세계를 확장시킨다는 것은 그게 ‘관객이 보기에 좋더라.’가 아니라 춤이든 노래든 어떤 격렬한 몸짓이든 혹은 아무것도 하지 않던 관객의 마음을 들썩이게 해서 이 공간 자체를 그 들썩임으로 다 채운다든가 하는 거죠. 보통은 무대 위에 서 있는 사람(배우)의 수보다 훨씬 많은 수의 관객이 극장 안에 존재하는 거니까 그들이 가지고 있는 에너지가 엄청 대단할 거잖아요. 그들에게서 나오는 에너지가. 그 에너지를 계속해서 유발시키는 것, 어떨 땐 차갑게 식히고, 어떨 땐 뜨겁게 끌어올리고, 이런 유기적인 관계들을 계속해서 인식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편이에요. 그것이 오직 무대만이 할 수 있는 것, 무대만이 가지고 있는 재미가 아닐까 생각해요. 아까 얘기하셨던 메인스트림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노력은 어떤 의미예요? 어떤 마음에서 시작된 건지...
이세승
구체적인 실천들을 하고 있진 않은 것 같은데... 일단 뭔가를 안 하는 것으로 실천을 해나가고 있는 것 같은데요. 하하. 작년부터 작업을 쉬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게 맞나?’하는 생각이 자꾸 들었어요. 작업이 자꾸 패턴화돼서 내 자신이 자본주의의 산물이 되어버린 것 같은... 이것은 물질적인 것을 떠나서 시스템적으로 자꾸... 잉여를 자꾸... 싸고 있다는 생각이... 하하
김정
배설...
이세승
네...하하...그리고 그런 피드백도 받게 되고요. 어떤 사람은 자기복제라고 표현하기도 하고 내 스스로도 잉여를 자꾸 배출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쳇바퀴처럼 돌아가는 작업 시스템의 흐름을 타버리면 그렇게 되더라고요. ‘과연 이게 내 선택에 의해서 가고 있는 건가.’이런 생각이 들기도 하고. 내가 정말로 원하고 있지 않는데 내가 원한다고 생각하게끔 만들어버리는 멍에일 수도 있고. 그리고 공연하면 좋잖아요.(웃음) 사람들이 보러오고 관심 가져주고 좋아해주고 알아봐주면 기분도 좋고.(웃음) 그런 것들? 그런 게 좋기도 한데..하하..그런데 ‘내가 정말로 추구해야 할 것이 이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한번 이렇게 비워둬야겠다. 싹 좀 비워내고 갈 필요가 있지 않나.’하는 생각이 있어서 1, 2 년 전부터는 작업을 줄여나가기 시작했죠.
김정
그래도 쉽지 않은 거잖아요. 불안하기도 할 테고.
이세승
네, 맞아요. 동료들은 차곡차곡 한 단계, 한 단계 나아가고...누구는 상도 받고...하하 저는 요즘 잘 보이지 않으니까...예전에는 잉여라고는 하지만 그래도 뭔가 눈에 보이는 뭔가를 배출했던 거잖아요. 그렇게 했을 때 안심되는 지점이 있으니까. 하지만 내가 이렇게 매번 똑같이 뭔가를 배출하고 있다는 것에 대해서 거부감이 들기 시작했던 것 같아요. 그렇잖아요. 쓰레기를...아니 쓰레기는 절대 아니고요. 하하. 뭔가 내보내는 사람이 있고 그런 것들을 받아들여야하는 사람이 있는 것이고. 뭔가 음과 양이 맞아야 하는 건데.(웃음) 이 이야기는 갑자기 시대유감인데... 요즘은 다 내보내고 있는 것 같아요. 공연이 일단 많잖아요. 다다익선을 필두로 한 박리다매 (웃음) 진짜 많다. 현실적으로 많은 것 같아요. 그래서 이게 옳은 건가?
김정
공익성에 근거하여 여럿에게 공평하게 주어지는 것이 공공성이라고 한다면 저는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공공성도 필요하지만 뭔가 집중적으로 불안하고 위험한 것들에 대한 시도를 할 수 있는 판이 깔려야 서로 자극을 받지 않을까 생각해요. 그런 자극들이 장기적으로 보았을 때 다양성을 키울 수 있다고 생각해요. 아주 큰 놈도 있고, 아주 작은놈도 있고, 이런 놈도 있고, 저런 놈도 있는 계가 되어야죠. 아주 집중적으로 그리고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넓게 확장하는 것과 동시에 그런 특화된 부분도 개발해야 하지 않나. 사실 지원 사업에 선정된다 해도. 그 예산은 아직 10년 전 예산에 머물러 있고, 실제 인건비는 그렇지 않고. 이미 모순적인 구조 안에서 출발하는데, 이미 예산 규모 자체가 이토록 불합리하게 출발하는데 어떻게 그런 것이 가능하겠어요. 절대적인 시간과 공간이 필요한 것이 무대예술인데. 뭘 할 수가 있겠냐는 거죠. 어느 순간에는 이렇게 예산 얘기만 하고 있더라고요. 안 그럴 수가 없어요.
이세승
지원금의 규모라는 건 왜 이렇게 오래 멈춰있는 걸까요? 최소한의 금액으로 최대의 가치를 뽑아야 하기 때문에? (웃음)
김정
작업할 때 예산이라는 것에 있어서 늘 주어진 대로 해왔기 때문인 것 같아요. 어쩔 수 없는 거죠. 오히려 어떻게 보면 지금 이야기하는 게 너무 허황된 얘기고 바보 같은 이야기일 수 있지만, 텍스트의 특성 혹은 극장 공간 혹은 하고자 하는 컨셉이나 목표에 따라서 예산이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애초에 그렇지 못하니까. 예산이라는 것은 애초에 고정되어있고 우리는 죽으나 사나 그 안에서 수행해야 한다는 점이 답답한 거죠. 그 텍스트로 무엇을 하고 싶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 고민하기보다는... 그때부터 창작자의 머릿속에서 하나씩 없애가고 줄여나가는 과정인 것이지 마음껏 확장해 나가는 과정이 못 되는 것 같아요. 항상 그런 미션들에 부딪히죠. 정해진 예산안에서 누가 더 잘할 것인가. 이건 사실 서바이벌 게임인 거죠. 잔인한 생존게임의 겉모습은 취하지 않고 있다고 해도 저는 그런 생각이 들어요. 항상 ‘주어진 예산안에 누가 더 잘할 것인가.’ 이런 생존 게임 안에 자동으로 들어가게 되는 거죠. 그런 것들이 쌓이고 쌓이면 창작 욕구도 많이 꺾인다고 생각해요. 분명히 소진되거든요.
이세승
‘경쟁=착취’는 아닌 거잖아요. 근데 착취하기 정말 좋은 수단이 되는 것 같거든요. 경쟁이라는 구도가 만들어지는 것이. 그런데도 경쟁이 필요하다고 보잖아요. 한정된 공공재원이 있고 그것을 받고자 하는 예술가들이 꽤 많으니까. 그러다 보니 어쩔 수 없이 경쟁이 일어나는 건데. 경쟁이라는 것이 사회에서 기능하게 된 것은 그것을 통해서 창의성이나 창조성을 끌어올리고자 했던 건데. 지금은 오히려 그런 것에 대해서 역효과가 일어나는 것 같아요. 지원서 쓰는 시즌에는 예술가들이 지원서 뽑아내는 기계처럼 변하게 되고 예산에 맞춤식 작업을 하게 되는 식의. 미술이나 이런 쪽은 레지던시 같은 것에 대해 경쟁이 치열하다보니 레지던시형 예술가(?)가 된다거나... 우리도 그렇지 않나? 맞춤형 안무가, 무용가 이렇게 되니까. 개인적으로 경쟁에 대해서 부정적으로 생각하진 않는데 겉으로는 그렇지 않은 척 부추기는 가식적인 형태의 지원이 더 싫은 것 같아요. 요즘은 또 아예 대놓고 ‘자낳괴’가 되자 이런 말도 나오니까요. (웃음)
김정
‘자나깨나’가 뭐예요?
이세승
요즘 어린 친구들 사이에서 쓰는 용어인데요. 자본주의가 낳은 괴물이요. 자낳괴. (웃음) 그 말을 들여다보면 되게 재밌어요. ‘나는 자본을 추구하고 돈을 추구하는 괴물이 되겠어.’ 되게 자조적인 거예요. 그러면서 한편으로 좀 긍정적이기도 한 거죠. ‘현실주의적으로 나의 태도를 설정한다.’ 그런 부분도 있는 것 같아요. 당연히 예술가도 그런 부분에 대해서 어떤 태도를 취할 것인가를 좀 생각해 봐야 되는 것 같아요. 사람마다 조금씩은 다를 텐데. ‘공공성이라던가 사회적인 부분을 더 생각해야해.’ 하는 사람도 있을 테고 아니면 ‘나도 <자낳괴 예술가>가 되자.’ 이런 사람도 있을 것 같고.(웃음) 저도 좀 고민이 되요. ‘자본, 돈 이런 건 어떤 의미일까. 내가 작업하는데 있어서.’
김정
그렇다면 이세승의 다음 스텝은 어떤 모습일까요?
이세승
‘움직임이 어떻게 일어나는가.’에 대해 본격적으로 찾는 작업을 하게 될 것 같아요. 되게 심플하긴 한데...워낙 무용에서 뻔한 거기도 하고. 하지만 지금 제게는 이런 직접적인 질문을 어떤 식으로 풀 수 있을까 하는 것이 제일 궁금해요. 제가 어렸을 때 기억이 있는데 그게 여전히 되게 흥미로워요. 어릴 적에 혼자 손가락을 이렇게 쥐었다 폈다, 쥐었다 폈다 하는데 ‘이게 어떻게 가능한가?’ 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던 적이 있었어요. 이게 되게 신기한 작용인 거예요. ‘이게 어떻게 가능하지?’ 그게 어떻게 보면 지금까지도 제가 춤추고 있는 이유와도 맞닿아 있는 것 같아요. 이게 어떻게, 왜 가능한가에서 퍼져나가면 ‘이렇게 단순 움직임이 어떻게 춤으로 발현되는가?’ 이런 식으로 확장이 가능할 것 같거든요. 되게 심플한 것부터 되게 큰 이야기까지 가능한 것 같아서 이렇게 단순한 것부터 찾아 나가는 작업을 하게 될 것 같아요. 저도 계속 몇 년 동안은 담론을 쫓아가는 작업을 했었거든요. 그것에서 한 발짝 빠져나오고 싶은 마음도 있고요.
김정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아요. 저는 무대 위에서 이유 없는 움직임은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차라리 움직이지 않는 것이 가장 정확한 움직임일 수 있다고 생각하구요. 그것도 정말 어려운 일이죠. 그저 존재하는 것. 그렇게 하나의 작은 움직임이 그 완전한 긴장을 깨고 나왔을 때. 이 손가락 한 마디의 움직임이 귀해 지는 거죠. 그게 너무 놀라운 일인 것 같아요. 퍼포머로도 활발히 활동하시다가 요즘에 퍼포머로서의 모습을 보기 어려운데 의도하신 것인지?
이세승
선택해야 하는 시기라고 생각했어요. 내가 이제 관심을 두고 있는 문제가 만만치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런 것에 대해서 풀어나가는 것에 집중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저도 퍼포머 성향의 활동을 계속해왔잖아요. 무용수로서 무대에 서기 위해 투자해야 하는 것이 정말 만만치 않다고 생각해요. 자신의 몸을 매체로 해서 움직임을 할 때의 상태는 정말 고귀한 것이기도 하고요. 그리고 퍼포머로서 그걸 해내는 과정에서 창작자로서의 내가 앞으로 하고자 하는 작업 방향과 달랐을 때 또 어려운 부분이 있는 것 같아요. 퍼포머로서의 작업을 멈추는 것은 아니지만 제가 원하는 방향으로 투자를 좀 더 하고 싶어서 그런 것 같아요.
김정
그래도 무대에서 다시 그 자유분방한 모습을 보고 싶어요. 개인적으로는 연극작업도 함께 하고 싶고요. 이렇게 이야기 나누다 보면 결국 우린 장르는 다르지만 같은 고민 속에 있는 것 같아요.
이세승
너무 뻔한 말이긴 한데 연극과 무용은 참 가깝잖아요. 가깝고도 먼 당신. 부부들처럼 곁에 있지만 또 싸우기도 하고...(웃음) 안 그런가요? 연극과 무용, 진짜 가까운 것 같아요. 그래서 서로 더 잘 알아야 하는 것 같아요. 공연예술이 꽃피웠던 때에 대해 선배님들이나 선생님들께 들어보면 각 장르들끼리 적극적으로 교류하고 소통했던 것 같아요. 서로의 레시피들이 많이 오고 갔을 때 다시 그런 시기가 오지 않을까. 하하
김정
무대에 대한 고민이 같으니까. 결국에는. 같은 고민이니까.
이세승
맞아요. 시간, 공간, 이런 얘기들. 분명히 다른 점도 있고 공통된 점도 있고 그래서 자꾸 소개팅을 만들면서 그런 이야기들을 많이 하면 더 흥미로운 작업들을 많이 볼 수 있지 않을까?(웃음) 저도 그래서 좀 더 그런 방향으로 가야겠다고 생각해요. 적극적으로. 과감하게. 서로한테 위축되지 않고, 또 너무 숨기지 않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김정
근데 나는 왜 이렇게 무용 공연 보러 가면 로비에서부터 위축될까요. 다들 훤칠하고 멋있고 옷도 잘 입고 힙하고 그래서...(웃음)
이세승
저 보면 안 그런 거 아시잖아요.
김정
아이 그래도... 멋이 있잖아요. 물론 연극인들도... 뭔가 서로 확실히 다른 멋이 있죠.(웃음)
가끔 무용수 혹은 춤꾼들을 보면 한없이 초라해질 때가 있다. 세상 어디에 떨어져도 맨몸으로 살아갈 것 같은 그들의 몸이 부럽다. 음악과 몸만 있으면 먹고 살 것 같은 그런 풍류와 대담함이 있을 것 같아 그런 듯하다. 무대 위의 이세승을 본 이후로 늘 그에게 다양한 방식으로 작업을 함께 하자 청해왔다. 때로는 노골적으로 때로는 슬쩍 흘리며... 그는 아직 한 번도 걸려들지 않았다. 서글서글한 얼굴이 거절하는 순간엔 뭔지 모를 엄격함으로 바뀐다. 내가 그에게 티피컬하고 전형적인 작업자인가... 자괴감이 든다. 하지만... 그럴수록 나는 더욱 큰 매력을 느낀다.
장르를 부러 알려주지 않는 그의 몸이 좋다.
언제든 흥에 몸을 맡길 수 있는 자유로움. 부러운 몸.

[사진: 김지성 jasonk17@naver.com]

기사가 좋았다면 눌러주세요!

좋아요 선택 버튼

이세승X김정

이세승X김정
김정_연출가
[프로젝트 내친김에] 연출. <레드올랜더스>, <처의 감각>, <손님들>, <꿈>, <광장의 왕>, <임영준 햄릿> 등을 연출했다.

이세승_무용가
이세승은 현재 독립안무가, 공연연출가, 무용교육자로 활동하고 있다.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에서 안무를 공부했다. 포스트모던댄스 사조에서 파생된 움직임 형식인 '컨택 임프로비제이션'을 다양한 사람들에게 소개하는 집단 '쌍방'을 동료들과 함께 조직했다. 주로 큰 역사에서 작은 무용사를 오가는 리서치를 기반으로 한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주요작으로는 <삼고무>(2019_남산예술센터), <먹지도 말라>(2017_차세대열전), <삼인무 교육부>(2015공동안무_국립현대무용단)등이 있다.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