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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가 만난 배우] 김은한X김신록

뿌리까지 씹어 먹는 식이요법, 마크로비오틱(macrobiotic)

김신록_배우

제164호

2019.07.25

이 글을 읽으시려는 독자님, 빌 클린턴, 마돈나, 톰 크루즈 등 해외 셀럽들의 자연 식이요법으로 알려진 마크로비오틱(macrobiotic)1)을 아시나요? ‘매머드머메이드’라는 1인 극단에서 활동하고 있는 김은한 배우님을 만나 ‘마크로비오틱’을 연기적으로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 들어봤습니다.
신촌극장에서 <성 알마의 비즉흥극 리믹스> 공연을 하고 나서, 본인이 연기를 대하는 태도, 혹은 연기 접근법을 ‘뿌리까지 씹어 먹는 식이요법, 마크로비오틱’에 비유한 적이 있었잖아요.
은한
아! 저는 그냥 나한테는 있는데 남들이 버리는 걸 생각하는 거죠. 나한테 뭐가 있나, 내가 뭘 가지고 있나, 남들이 뭘 버리는가를 보고 그런 걸 다 가져오면 좋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양손프로젝트의 <죽음과 소녀> 공연에서 양조아 배우가, 아마 실수는 아닌 것 같은데, 아니면 사레가 들렸는지, 아무튼 공연 중에 이상한 호흡을 한 번 하는 거예요. 쿨럭쿨럭. 근데 그게 그 순간에 너무 절묘한 거예요. 이게 실수인가 아닌가 생각하다가 문득 깨달았죠. ‘아! 버릴 게 아무것도 없구나. 저 호흡마저 쓸모가 있구나.’ 마크로비오틱은 재료를 잎, 뿌리, 껍질까지 남김없이 다 먹는 거라고 하잖아요. 연기에, 작업에 그런 방식을 잘 쓸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예를 들면, 최근의 작품들이 신체성을 강조하니까, 저는 몸을 안 쓰고 말로 하는 게 제 경쟁력이랄까 블루오션이랄까 그렇게 생각하는 거죠. 실은 스스로 부족하다 느끼는 부분에서 도망쳐서 도달한 어떤 지점이 있거든요. 저도 신록배우, 양손프로젝트 좋아하죠. 연극인들이 좋아하는 연극인, 군더더기가 없다, 빈틈없다, 이런 이야기들 하잖아요? 그래서 동경하고 스타일을 모방하고...그런데 그런다고 거기 도달할 수 있는 건 아니잖아요. 제가 손상규 배우가 될 수는 없잖아요. 그래서 도달하지 못할 바에는 다른 걸 찾아보자, 이런 거죠. 비슷한 맥락에서, 많은 공연이 앙상블에 중점을 두면서 창작자와 관객에게 흥미로운 지점을 찾는 와중에, 전 반대로 관객을 지루하게 만드는 포인트를 찾는 거예요. 일단 앙상블 만든다고 다 합을 맞추는 것이 과연 옳은 방향인지도 모르겠고, 특수부대처럼 모든 게 연결되고 일사불란하고 그런 것 보다, 고립되고, 어설픈 게 제 작품의 메인이 되면 재미있겠다고 생각하는 거죠. 이런 작업은 흔치 않으니까요. 물론 혼자 작업을 하니까 가능한 것이긴 하겠지만요.
김은한
합의된 미감이 아닌 새로운 미감을 발견하는 일은 중요하죠. 그런데 이게 그냥 ‘하지 않음’, ‘어설픔’에 머물지 않고 퀄리티를 확보할 수 있으려면 무엇이 담보되어야 할까요?
은한
저는 기본적으로 메타 픽션이나 메타 연극을 좋아하지만, 시도가 성공하려면 관객들에게 즐겁게 다가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관객들이 재미있어 할 거야!’라는 관점에서 작업을 하고 있어요. 보면, 잘하는 배우들은 절대 틀리지 않아요, 흐트러지지 않아요, 훈련이나 추구하는 것들이 완벽하게 갖춰져서 무대에 올라오는 즐거움도 있겠지만, 배우가 무대에서 틀리거나 무너지는 지점을 관객들이 재미있어하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웃음을 줄 수 있지 않을까. 그런데 이 웃음이, 상업극에서 보여주는 웃음과는 다른 방향의 웃음, 다른 방향의 즐거움이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남산 서치라이트에서 <구구구절절절하다>를 공연할 때도 얘기한 게, ‘무대와 관객이 함께 훈련되어야 한다’는 것이었어요. 코미디 연극을 한다고 할 때, 공연자도 관객도 코미디의 방식을 협소하게 이해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어린 시절의 경험이 우리의 웃음의 취향을 결정해버린 거죠. 개그콘서트나 웃찾사, 지금은 넷플릭스의 스탠드 업 등으로 분화되고는 있지만... 조심스럽게 말하자면, 잘 훈련된 배우들이 이런 ‘개콘식 콩트’의 전통을 재현하고 싶어 안달 낼 때 아쉬워요. 우리가 만들어 낼 수 있는 다양한 방식의 웃음이 있을 텐데...창작자도 관객도 웃음에 대한 취향, 코미디라는 것의 영역을 확장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확장할 수 있는 방식을 찾아야죠.
일본의 만담 같은 것에서 그 새로운 웃음의 방식이나 소스를 찾고 있는 건가요?
은한
일본의 만담이라던가 라쿠고라는 전통이 영향을 많이 줬어요. 일본에는 ‘슈르’라는 웃음의 종류가 있어요. ‘쉬어리얼리즘(surrealism, 초현실주의)’의 ‘쉬어(sur)’에서 온 건데, ‘맥락을 알 수 없는 웃음’ 같은 거예요. 이런 것이 다양한 상상력으로 작용하는 것 같아요. 일본에서는 친숙한 것이지만 한국에서는 아직 익숙하지 않은데, 다양한 웃음을 만들어 내는 기법이 만들어지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또, 최근 몇 년간 호평을 받은 부분이 있다면, 제가 ‘전환이 빠르다’는 것이었어요. 무대 위에서 배우가 다양한 결로, ‘다양한 나’로 서 있을 수 있잖아요. 그냥 나, 공연을 하는 나, 서술자로서의 나, 역할 연기를 하는 나 등등. 보통 큰 극장에서 하는 공연들은 무대에 이미 세계가 완성되어 있고 배우는 그 안에서 인물로서의 역할만 수행하죠. 그런데 저는 공연 안에서 ‘나’로 들어와서 역할이 되는 등의 전환을 많이 하는데, 이렇게 ‘경계를 넘나드는 것’, 이런 전환을 좋아하는 분들이 있더라고요. 이것도 혼자 공연을 하다 보니까, ‘어떻게 1인극을 만들 것인가’하는 고민에서 발현된 것 같아요. 안내도 내가 해야 하고, 매표 매수도 내가 해야 하는데, 어떻게 관객을 이 세계로 잘 끌어들여서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을까를 고민한 거죠.
배우님 작품 보면서 ‘패러디의 미학’이라는 말을 떠올렸어요. 텍스트도 연기도 구성도 어떤 원전을 패러디함으로써 생경함과 웃음을 유발하는 힘이 있었어요. 무대 위 배우의 존재 양태의 ‘전환’ 역시 고전적인 방식의 인물 연기를 패러디하는 방식에 적합하다고 여겨졌고요.
은한
저는 제 작업을 소개할 때 ‘작고 작가와 같이 공동 창작을 합니다.’라고 말해요. <성 알마의 비즉흥극 리믹스> 같은 경우도 이오네스코와 공동창작을 한 셈이죠. 내가 재미있다고 느낀 작품의 재미를 어떻게 전달할 것인가가 주된 고민이에요. 최근에 공동창작을 하는 팀들, 신체를 많이 사용하는 팀들은 배우들 자신의 언저리에 대한 이야기로 텍스트가 한정되어 버리는 경우가 많아요. 저는 이 방식이 자칫하면 얄팍해질 수 있다고 느꼈어요. 그래서 저는 오히려 나와 비슷한 상황, 같은 고민이 담긴 작품에 내 이야기를 얹어서 작품을 다시 만들어나가는 방향을 취하고 있죠. 그러니까 작품 자체에 대한 풍자라기보다는 그 안에서 내가 가지고 있는 것에 대해 풍자를 하고 있다고 볼 수 있어요.
김신록
<성 알마의 비즉흥극 리믹스> 공연 때 짧은 타령 같은 걸 한 소절 부르기도 하셨죠. 가사가 뭐였죠?
은한
“카멜레온이~~~인생인 거죠~~~~”
지금 판소리를 흉내 내신 건가요? 아니면 타령? 아니면 그냥 느낌을 재현하신 건가요?
은한
흉내 내는 거랑은 다른 것 같아요. 느낌을 재현한다는 것에 더 가깝기는 하지만... 오히려, 국적 불명이지만 공통적으로 느껴지는 흥, 가락을 재현한 것이랄까요? 일본의 엔카도 타령의 느낌이 있긴 한데, 사실 즉흥에 가깝고 연습은 그다지 안 했어요. (머리 위 허공에 두 손을 들었다가 두 손을 머리 쪽으로 훅 가져오며) 일단 받아들이는 거죠. 일단 집어넣는 거예요.
(같은 동작으로 움직이며) ‘받아들인다’는 표현이 많은 걸 시사해주는 것 같아요. 배우가 뭔가를 애써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이미 있는 것을 몸과 마음을 열어 그냥 흠뻑 받아들이는 느낌이랄까요.
은한
자신의 근원적인 탤런트의 힘으로 해야 하는 것 같아요.
근원적인 탤런트라... 자신이 가진 달란트에 대한 신뢰가 필요할 것 같네요. 내 안에 있는 것, 내 뿌리, 잎, 껍질 모두 영양가가 있다는 그런 신뢰랄까요.
은한
그렇죠. 제가 조금 경쟁력이 있겠다 생각한 부분이 있다면, 한국 배우들은 자세가 너무 좋잖아요, 유연하고. 그렇다 보니 무대에서 저를 보면 ‘그렇지 않은 신체를 보는 즐거움’도 있지 않을까. 학교 후배들은 ‘선배, 그렇게까지 흉하지는 않아요.’라고 하는데, 결은 다르죠, 확실히. 그러니 보는 사람들도 좀 더 릴렉스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공연을 준비할 때 어떤 연습 과정을 거치나요?
은한
기본적으로 스토리 기반의 재미를 전달해주고 싶다는 생각을 합니다. 내 나름의 방식으로 이야기를 잘 전달할 수 있는 기법을 빠르게 찾는 것이 연습 과정이에요. 저한테서 끝까지 다듬어진 움직임을 보러 오는 사람은 없을 거예요. 제 움직임의 기본은 그냥 마음 내키는 대로 움직이면서 뭉치거나 걸리는 부분을 푸는 거예요. 결국 무대에서 하는 모든 것은 이야기를 잘 전하기 위해서 나오는 움직임과 말인 거죠. 텍스트나 구성을 위해서는 보통 제 광기의 메소드, ‘아무 말 쏟아내기’를 이용합니다. 현재의 고민, 문제 등을 말로 쏟아내다가 재밌는 걸 캐치해서 사용해요. 그런 혼돈 속에서 아이디어를 얻는 편이에요. 정말 궁지에 몰리면 ‘광기의 아무 말 쏟아내기 메소드’를 하루 종일 합니다. 거울은 안 봐요. 정말 좋은 것, 재미있는 것은 거울을 보지 않아도 ‘좋다’는 것을 알 수 있으니까요.
1인이 창작하고 연기하는 경우에, ‘연기’에 대한 이야기만 나눈다는 것은 사실 불가능한 것 같아요. 창작의 주제와 내용, 형식, 그것의 구현으로서의 연기가 하나로 맞물려 돌아가기 때문이죠. 연기는 그냥 본인의 작품을 잘 전달하기 위한 하나의 유연한 도구인 것이고요. 그래서 어떤 방식이라도 가능하죠. 연극의 형식과 방식, 경계가 확장되고 있는 지금, 연기에 대해서도 보다 열린 이해와 접근이 필요한 것 같아요.
은한
저는 고전적인 의미에서 연기를 잘하지는 못하지만, 무대에서는 자유로워요. 무대에서의 규범이라는 것을 생각하지 않아서 그런 것 같아요. 어떤 인물이 이건 하고 저건 하지 않을 거야라는 제약이 없다고 할까요. 삼일로 창고극장 <24시간 연극제>에 팀을 꾸려 참여했는데, 우리 팀은 연기에 대한 부분은 서로 전혀 이야기하지 않았어요. 앞으로 누군가와 협업을 하더라도, 혹은 ‘매머드머메이드와 함께 하는 연극 만들기 워크숍’ 같은 것을 한다면 연기에 대한 이야기는 하지 않을 것 같아요. 배우들이 자기만의 방식으로, 몇 가지 버전으로 텍스트를 연기해 준다면, 그중에 하나를 선택할 수는 있을 것 같지만요.
은한 배우님은 스스로 창작자이기 때문에 연기에 대한 이런 발상이나 방식이 가능한 것 같아요. 하지만 프로덕션에 고용되는 배우들의 경우는 사정이 달라요. 고전적인 방식의 연기에 대한 이해와 훈련도 필요하고, 새롭게 확장되고 있는 연극 문법에 대한 적응도 필요하죠.
은한
맞아요. 사실 전 아직 공동 작업에 취약해요. ‘쿵짝 프로젝트’, 그리고 ‘丙소사이어티’와 함께 작업을 한 적이 있어요. 연출자들이 힘들어하셨는데, 오케이 받은 장면이 거의 없었거든요. 이렇게 생각하니까 나도 ‘플레이업 아카데미’라도 들어야 하나 고민이 됐어요. 하지만 지금으로선 그렇게 필요를 느끼지는 않아요. 오히려 나만의 스타일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필요한 건 스스로 찾아가면 되니까요. ‘내가 너무 오만한가?’ 생각도 해보지만, 그 오만함으로 5년간 해온 거니까. ‘난 괜찮은 것이 있다. 정련된 아름다움은 아니지만 내가 만든 새로운 아름다움을 관객들이 즐길 수 있어’라는 어느 정도의 오만이 있는 거죠. 기본적으로 스승을 두지 않는다는 게 제 모토이긴 한데, 사실 전 ‘열어놓은 상태 자체가 스승’이라 느껴요. 그래서 혼자 있으면 고립되니까 공연 중에도 계속 책을 읽고, 공연 보고, 사람을 만나고, 무엇이든 찾으려고 노력해요.
열어놓고 레이더에 걸리는 건 무엇이든 자신만의 방식으로 섭취하려는 거군요.
은한
맞아요. 요즘도 그런 사람들이 있다면서요? 작가나 연출 지망생, 배우 훈련하는 사람 중에 ‘다른 작품 안 본다, 물든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요. 저는 정말 많이 보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들이 내가 가지 못한 길에서 어떤 실험을 하는지, 무엇을 탐구하는지, 혹은 나와 같은 고민을 해서 어디에 도달했는지를 보며 참고하는 거죠. <성 알마의 비즉흥극 리믹스> 이전에 카프카의 변신을 바탕으로 <변신하지 않음>이란 작품을 만들었는데, 그건 사실 ‘극단 창세’의 작품을 보고 느낀 걸 바탕으로 만든 거였어요. ‘잘 훈련된 배우만 벌레를 연기할 수 있는 건가? 그리드에 매달릴 정도로 훈련이 되어야 <변신>을 연기할 수 있는 건가?’ 저는 계속해서 도망 다니는 방식으로 작업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이건 안 되니까 다른 방법으로 하는 거죠. 사실은 계속 편한 방식으로 작업하는 거예요. 내가 잘하는 것만. 연기 도전 따위는 없는 거죠.
연기 도전 따위는 없다는 말이 도전적이네요. 스스로 창작하고 구성하고 실연하는 입장에서, 연기가 본인 작업에서 특별히 두드러진 독보적인 영역이 아니라고 보는 거잖아요.
은한
맞아요. 고도의 연기술을 탐구하는 대신, 내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나 작업 스타일에 어울리는 여러 가지 기법 같은 것을 여기저기서 차용하고 나만의 방식으로 이용하는 거죠. 이번 프린지 때부터 포스트 블랙메탈에 대한 리서치를 시작하려고 해요. 포스트 블랙메탈은 다른 장르와 혼합되어 탄생한 블랙메탈인데, 사악함을 갖고 있지만 거기에 좀 익숙한 아름다움도 있어요. 기승전결이 있다는 점에서 연극과 비슷하고요. 소리의 전개를 쌓아서 팍 터뜨리는 거죠. 작품을 할 때 이런 흐름을 만들기 위해 신경 쓰고 있어요. 그리고 힙합이란 장르가 매력 있고 연극이랑 비슷하다 생각해요. 아무리 잘해도 다 탈락한다는 점이? 하하. 짧은 시간 안에 많은 서사를 전달하고, 즐겁고 흥이 난다는 점도요.
이런 아이디어나 리서치가 텍스트 창작이나 구성, 연기 등의 측면에 두루 적용된다는 점이 재밌네요. 고전적인 방식의 연기에 대한 이해나 접근에서는 확실히 멀어져 있지만,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가장 효과적으로 제시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어떤 방식의 연기적 시도도 가능하다는 점이 파격적이에요. 뭔가 더 파격적인 연기도 보고 싶네요. 아직 점유되지 않은 독자적인 방식과 영역을 발견한다는 점이 의미 있는 것 같아요.
결국에는 ‘계속하는 것의 문제’ 같아요. 예를 들어 ‘넬’(2003년 데뷔한 대한민국의 모던 록 밴드) 같은 경우에 ‘포스트 라디오헤드’란 말을 들었단 말이죠. 그런데 쭉 하니까 언제부턴가 자기들만의 그루브가 생겼어요. 결국 좋아하는 것에 영향을 받아 시작하는 건 좋다고 생각해요. 저도 영국의 ‘포스드 엔터테인먼트’ 팀의 <스펙타큘라>라는 작품이 한국에 왔을 때 그 작품이 인상 깊었고. 2012년까지의 극단 성북동 비둘기를 좋아해서 좋은 영향을 받았어요. ‘저렇게 해도 되는구나’를 넘어 ‘저렇게 해도 재밌구나’라는 걸 느꼈죠. 관객을 즐겁게 하기 위해서 사실 뭘 못하고, 뭘 하면 안 되고 그런 건 없는 거죠, 제 생각엔. 그런 태도들에 관심이 있어요.
마지막으로 더 하고 싶으신 말이 있으신가요?
전 이게 좀 이상한 고민이라고 생각하지만, 작품이 선택되지 않은 작가도 많고, 좋은 배우를 만나지 못한 연출자도 많고, 좋은 프로덕션을 만나지 못하는 배우도 많잖아요. 다들 분리되어 있는 거죠. 잘 만나야 하는데 ‘네트워킹 파티’ 같은 것은 답이 아닌 것 같고... 그래서 전 다들 많이 읽고 많이 봐야 한다고 생각해요. 저도 2017년부터 간신히 사람들을 만나가고 있는데, 내가 잘 본 작품, 내 작품을 잘 보는 사람들하고만 가까워지는 것 같아요. 결국엔 그래야 좋은 관계가 만들어지는 것 같고요. 서로의 공연을 안 보고 만났으면 다소 의미가 없다고 생각해요. 선언이나 주장보다도 그 사람이 어떤 작품을 만드는지를 보고 교류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신록배우님께서도 제 작업을 보러 와주셨기 때문에, 저희도 간신히 가까워질 기회가 생겼다고 생각해요. 어느 한 쪽이라도 서로 보지 못한 창작자라면 친해지기 어렵지 않을까요? 인터뷰를 끝내기는 아쉽지만, 더 아는 게 없어서... 하하하.
집에 가면 또 생각날 거예요. 다들 인터뷰 끝나면 진짜 할 말이 생각난다고 하더라고요.
맞아요. 이게 기도 같은 거죠. 마치고 나면 떠오르는.
이 글을 다 읽으신 독자님, 아직 준비가 덜 되었다는 생각 때문에 자꾸만 어떤 일을 미루고 계신가요? 레이더를 열고, 내 안의 달란트를 믿고, 뿌리와 껍질과 잎사귀까지 씹어 먹는 방식으로 시작해 보는 건 어떨까요?
  • 이번 호 인터뷰 내용은 김은한 배우의 말투와 화법을 그대로 살리는 방식으로 정리했음을 밝힌다.

[사진: 김지성 jasonk17@naver.com]

  1. macro(큰) + bio(생명) + tic(기술, 학문)의 합성어로, 건강을 위한 식생활법, 식이요법 또는 식사를 뜻한다. 씨앗, 뿌리, 줄기, 잎, 열매, 껍질 등 식재료의 모두를 먹는 일물전체(一物全体), 음과 양의 균형을 이루는 식사법을 지향하는 음양조화(陰陽調和), 태어나고 자란 땅과 그 곳의 계절에 맞게 수확된 채소, 과일, 곡식 등을 먹는다는 신토불이(身土不二), 자연생활(自然生活) 등을 원칙으로 삼는다. (위키백과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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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신록

김신록 배우, 창작자, 워크숍 리더
rock2da@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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