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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인이 만난 사람] 조한진희 x 손성연

회복의 시작은 건강하다는 게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믿는 것이다

손성연

208호

2021.10.28

아픔, 과거 상태로 돌아갈 수 없습니다

조한진희
성연 님이 경험하고 있는 아픔에 대해서 더 설명해주셨으면 해요.
손성연
저는 성인 ADHD(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이고 실수를 많이 했고……. 학교 교육 시스템에서 완전히 낙오된… 계획하는 것이 어렵고……. 실패와 실수의 누적과 폭력에의 노출……. 사회공포증과 범불안장애가 있고……. 정말 길고 오래 아픔을 설명해도 오히려 만족스럽지 않아요. 저 말고도 정신장애인들은 자신의 증상을 설명하는 것에 어려움을 느낄 것 같아요. 그 설명을 듣는 사람도 이해가 잘 안 되는……. (한도 끝도 없이 말이 쏟아진다, 이것도 증상인데, 란 생각을 했다) 진단을 받고 콘서타란 약을 먹으면서 실수하는 일이 줄어들고 계획하는 것에 도움을 받고 책을 읽거나 글을 쓰는 게 변화하는 것을 보는 즐거움은 있었지만……. 이젠 완벽해졌겠지? 생각하면 또 실수가 생기고……. 이젠 정말, 정말 완벽해졌겠지? 생각할 때 또 실수가 생기면서……. 뭔가 아, 이게 치료가 안 되는 거구나……. 란 걸 인식했어요. ADHD가 없는 나……. 란 건 없구나.
조한진희
팔레스타인을 다녀온 뒤로 몸이 아파졌어요. 투병을 했던 5년 동안 신문도 안 보고 TV도 안 보고 책도 안 읽고 글도 안 쓰고…….
손성연
투병할 때 어땠어요?
조한진희
우울했죠. 치료를 많이 받기도 했고……. 규칙적으로 생활했어요. 원래 아프기 전에는 아침에 일어나서 수영장에서 20바퀴를 돌고 출근했어요. 이게 아침 루틴이었어요.
손성연
오 마이 갓, 되게 건강하셨네요?
조한진희
예전에는 자신이 노력하면 건강을 지킬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90년대 학생운동을 시작했기 때문에 지금 얘기하면 웃겠지만 활동가의 몸은 혁명의 무기……. (웃음) 건강을 자신이 관리하는 것도 사회운동의 의무다. 그런 영향도 있고 스포츠를 좋아하기도 했고……. 원래는 스포츠를 통해서 스트레스를 풀었는데……. 투병할 때는 이런 걸 못하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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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성연
지금은 어때요?
조한진희
완치와 투병 사이에 살고 있다고 설명해요. 수영은 배영으로……. 배영 하면 되게 몸에 힘이 안 들어가잖아요. 누워서 천천히 즐기면서 하는 거니깐……. 일주일에 3회 정도 사회활동하는 건 가능해요.
손성연
저는……. 저는……. 방에만 있었어요. 골방에서 극작만……. 책 읽고……. 글만 쓰고……. 밖에서 열심히 시위하시는 분들 보면, 춥고 더운데 왜 그럴까? 솔직히 저 혼자만 지옥에 산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집 밖을 나오니깐 여기도 지옥, 저기도 지옥, 젠장 지옥이 너무 많은 거예요!

아픔, 지금 당장 해야 하는 일은 무엇일까?

손성연
원래 극작을 했어요. 그래서 드라마로 표현되는 세계가 가장 멋진 예술이라고 생각을 했어요. 그러다 고주영 선생님을 만났어요. (극작을 했지만 연극 만드는 방법을 1도 몰라서 그랬다) 고주영 선생님에게 기획하는 마음에 대해서 배웠어요. 기획서를 쓰는 것부터 시작해, 기획서를 실행하는 방법까지……. 선생님이랑 함께 걸으면서 배우기도 하고 힘들다고 징징대기도 하고 있어요. 자연스럽게 가치관이 물든 것 같아요. 선생님이 보는 책도 따라 보고……. 말하는 것도 다시 생각해보고……. 무대의 한계를 인지했어요. 완벽한 드라마를 창작해도 그것이 결국엔 허구이며 완벽해질 수 없다는 것. 미친존재감의 첫 번째 프로젝트인 “우리는 미쳤다!”는 정신장애인들이 직접 캐릭터를 창작했고 이야기를 함께 만들었어요.
조한진희
각자가 겪고 있는 혼란, 언어화되기 굉장히 어렵고, 설명되기 어려운 그것을 그대로 가시화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는 거죠?
손성연
네, 맞아요. 예를 들면 제 증상에 대해서 설명을 하면 그것이 변명처럼 느껴져요. 누구나 그런 실수를 하지만, 사실 누구나 신경 쓰면 고칠 수 있거든요. 근데 전 안 돼요. 이런 사람들이 많아요. 반대로 양성증상(환청, 환시, 환후, 환미)과 망상이 감각되지만 그것을 드러내는 것을 두려워하는 당사자들도 있어요. 왜냐하면 이상한 시선으로 바라볼 게 뻔하니깐. 사실상 이것은 함께 늙어가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함께 살 수밖에 없으니깐……. 지금 현재 의학은 약물 치료와 강제적인 감금이 치료라고 생각하니……. 어렵죠,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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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성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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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한진희
조한진희
정신장애나 정신적 질병들은 당사자의 경험이 인정받기가 훨씬 어렵죠.
손성연
선생님은 『아파도 미안하지 않습니다』, 『질병과 함께 춤을』 책을 출판하셨는데 다음에는 무엇을 하실 건지 궁금해요.
조한진희
최근 2~3년 동안 아픈 몸의 가시화에 전념했어요. 가시화시키는 방식은 당사자들의 서사를 통해서였고. 저항적 질병서사, 자신의 질병이 사회와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발견하고자 했어요. 아픈 몸의 가시화는 어느 정도 된 것 같아요. 질병서사 자체가 하나의 장르화가 되었고, 질병서사에 대한 강의를 할 계획이 있어요. 앞으로 해야 할 일은, 숙제가 너무 많죠. 다뤄야 할 이슈가 너무 많으니깐. 이슈를 계속해서 만들어야 할 때라고 생각해요.
손성연
더 구체적으로 들어가는 거네요?
조한진희
아픈 몸의 노동권. 건강한 사람들만 취업할 수 있다고 생각하잖아요. 모든 직업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신체 건강한 자여야 할까? 신체가 건강하지 않은 사람들도 일할 권리가 있다, 아픈 몸들이 노동 시장으로 들어가면서 우리 사회의 노동시장이 더 좋아질 것이다, 그리고 청년에 대해서도 말하고 싶어요. 청년이란 이미지가 건강하다는 거잖아요. 청년들 중에도 아픈 몸을 가진 이들이 있다고 생각해요.
손성연
나중에 저도 그런 식으로 교차적으로 담론을 확장시키고 싶어요. 현재 정신장애 담론이 크게 확장되지 못하고 소멸되고 있다는 느낌을 많이 받고 있거든요. 그렇게 되기 위해서 제가 할 수 있는 건 ‘미친존재’들의 다양한 현재 상태를 보여주는 것이라 생각해요. 저의 상태는 저 자신을 혐오할 때도 있고 사랑할 때도 있는 것 같아요. 이게 계속해보고 싶은 원동력인 것 같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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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장애? 정신질환? 어떤 기준에서 투쟁해야 하는 걸까?

손성연
안 풀리던 것들이 있었어요. 우울증, 불안장애, 공황장애 같은 진단명을 보면 질병으로서 투쟁을 해야 하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조현병, 양극성장애, 경계성 성격장애, 망상……. 이 진단명을 보면 정신장애로서 투쟁을 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조한진희
질환과 장애, 그 경계가 왜 그렇게 어렵게 느껴지시는지 궁금하네요.
손성연
완치가 불가능하다는 것. 이것은 우울증도 마찬가지란 생각이 들었어요. 우울증 또한 다시 재발할 수 있다는 거죠. 이렇게 보면 장애로 보고 수용하는 과정이란 생각이 들다가……. 질병에서는……. 약물을 먹으면 완치는 안 되지만 완화되어 가는 건 분명해요. 예전에는 누군가를 만나면 “너 병원 가봐야 할 것 같아.” 이런 말을 했어요. 이게 아무래도 의료적 모델에 흡수돼, 의사와 마찬가지로 낙인을 찍는 것인가? 지금은 안 하려고 해요. 또 정신병원에 대한 공포……. 정신의학 자체가 공포 장르로 소비되는데 그런 두려움을 없애는 새로운 서사를 발굴한다면……. 이건 의료적 모델을 옹호하는 건 아닌지? 고민하게 돼요. 정리가 안 되네요.
조한진희
둘 다 하면 되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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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성연
그래서 지금 머리가 트였어요. 화해시킨다는 얘기를 본 적이 있어요. 그런데 화해라는 게 양쪽이 동등해야 하는데……. 정신의학의 권력이 너무 강하다 보니……. 다시 고민이 되지만.
조한진희
제가 환자가 아닌 아픈 몸이라는 단어를 쓰는 건 의료 권력과 거리를 두기 위해서예요. 병명으로 다 설명되지 않는 것도 있거든요.
손성연
그렇다면 아픈 몸들도 의료 권력과 싸우나요?
조한진희
의료를 서비스로 이용하되 의료통제에 갇히지 않는…….
손성연
쉽지 않네요. 예를 든다면 무엇이 있을까요?
조한진희
폐쇄병동에 갇히는 문제. 예전보다 절차가 까다로워졌지만 여전히 바뀐 건 없다는 것. 그것은 의료적 서비스가 아니라 강제적인 거잖아요. 의료가 서비스가 되려면 의사와 환자 사이가 동등해야 해요. 그 작업을 계속하는 거죠.
손성연
‘동료지원활동가’라는 직업이 있어요. 이 직업의 의미는 정신장애 정체성을 가진 이들이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공유하고 정신장애를 수용하는 걸 서로가 돕는 것이라 생각해요. 그런데 의료적 모델에 흡수되었을 때 동료지원활동가는 동료를 환자로서 보고 약물치료를 잘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게 다니깐…….
조한진희
보건의료 운동에서 건강불평등, 질병의 사회적 결정요인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왔어요. 보건 의료 운동을 주도하는 건 의사, 간호사, 보건 정책 전문가들, 그중에서도 의사들이거든요. 보건의료 운동 덕분에 한국사회가 좋아진 점도 있어요. 암 환자의 자부담률이 5%거든요. 그런데 아픈 몸들 당사자들의 이야기가 잘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게 되죠. 모두 전문가들 중심으로 이뤄지니깐. 의료화에 대한 저항은 시민들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운동하면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작은 조직이에요.
손성연
저도 마찬가지예요. 미친존재감은 조직으로 운영할 생각이 없어요. 계속 다양한 담론을 연구하고 창작하는 데 있어서, 안전한 환경은 조직의 ‘불완전성’에서 나온다고 생각하거든요.

[사진: 김지성 jasonk1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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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성연

손성연
미친존재감에서 기획과 극작을 합니다.
정신장애 담론을 중심으로 다양한 사회적 문제를 당사자가 직접 참여하는 방식을 통해, 연구와 창작을 합니다.
2021 한국문화예술위원회 한국예술창작아카데미 “우리는 미쳤다!” 프로젝트 11월 19일 ~ 11월 21일 이음센터 이음아트홀 공연예정
2018 국립극단 희곡우체통 <헤어드라이어> 낭독회
인스타그램: @madpresence, austinsohn2@naver.com

조한진희

여성,장애,평화 영역을 넘나드는 활동가. 영역과 형식에 갇히지 않는 활동을 중시한다.
책 『아파도 미안하지 않습니다』를 썼고, 『포스트 코로나 사회』, 『비거닝』, 『질병과 함께 춤을』을 함께 썼다.
2021백상예술대상 연극 부분 후보에 오른 시민연극 <아파도 미안히지 않습니다>를 기획했고, RTV시사다큐 <나는 장애인이다>, <처벌하라> 등 여러 편의 다큐를 연출했다.
iingmodo@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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