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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을 통해 이해하기, 용서하기, 그리고 한 발 더 나아가기

[연극인이 만난 사람] 박은호 X 이미경

박은호

제231호

2023.03.23

2월 19일, 미경 배우님과 저는 혜화동1번지에서 시상자와 수상자로 처음 만났습니다.
그리고 3월 8일 서울연극센터에서 재회했습니다.
이번에는 연극인이자 배우로서 만나는 자리입니다.

‘이영만연극상’이 만들어지기까지

박은호(이하 은)
이영만연극상 시상식이 2월 19일이었죠. 핸드폰에 남은 기록을 보니까 13일에 고주영 피디님한테 연락을 받았더라고요. 저는 그때 어디 기관 지원서 쓰느라 얼이 빠져 있던 걸로 기억하는데요, 수상 소식을 듣고 꽤나 어리벙벙했습니다. 당일에 미경 배우님께서 말씀하신 걸 들어보면, 이영만연극상 제정을 두고 오랜 기간 준비하신 것 같았는데요, 진행 일정이 상당히 밭았어요. 상을 직접 만드는 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던 것 같은데, 그 과정이 궁금합니다.
이미경(이하 미)
맞아, 되게 밭았어요. 그래서 처음에 걱정이 좀 많았어. 은호 배우한테 연락한 고주영 피디랑 22년 초부터 연극상 관련 이야기가 오고 가긴 했어요. 연말에 시상식을 계획하긴 했는데, 다들 오죽 바빠요. 그래서 영만이 생일날 2월 19일에 맞춰서 하자고 했어. 더 의미 있고 좋을 것 같다고 하더라고요.
아이 보내고 배우로 활동하면서 연극하는 친구들에게 정말 큰 힘을 받았어요. 하루아침에 사는 게 의미 없다는 생각이 들었던 적이 있었어요. 그런 중에 연극을 시작했고, 연극하는 친구들을 만나고, 글쎄, 자꾸 엄마 같은 마음으로 보게 되었던 것 같아. 예술하는 사람들 밥 벌어 먹기 힘들다 익히 듣긴 했지만, 다들 너무 고생하니까(하하). 응원하고 돕고 싶은 마음이 있었죠. 동시에, 거창하지 않더라도 영만이 이름으로 뭔가를 운영하고 싶었어요. 재단이든, 비영리단체든. 이 생각은 늘상 했었어요. 고주영 피디가 듣더니, ‘이영만연극상’을 만드는 게 어떠냐고 얘기를 하더라고. 어머, 그거다! 했어(하하). 처음에 저는 배우에 한정해서 상을 주고 싶었어요. 제가 배우로만 활동을 했으니 당초에는 그렇게 생각했는데, 연극이 배우 혼자 할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작가도 있고, 연출도 있고, 팀 단위로 활동하는 경우도 있으니… 범위를 연극 하는 예술인들로 넓혔어요. 대신 시상할 때 배우는 무조건 한 명 꼭 주기로 약속을 했지.
배우 이미경. 초록색과 갈색 계열의 색상이 섞인 조끼형 원피스에 레이스 칼라의 하얀 옷을 받쳐 입었다. 굵은 컬이 들어간 짧은 머리다. 두 손을 얼굴 아래에 모으고 이야기하고 있다.
이미경
그 배우상을 제가 받았고요. 이 ‘이영만연극상’은 시상자인 미경 배우님에게도, 수상자인 저에게도 의미가 남다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기존에 있는 상들과는 의미의 층위가 조금 다르기도 하고요. 이 부분에 대해 조금 이야기를 해볼까요? 우선 저는 이게 배우로서 받는 첫 상이랍니다. 기뻤고요, 얼떨떨했어요. 그리고 <240 245> 작품으로 수상해서 더 뜻깊었습니다. 해당 작품에 제가 백상예술대상을 갈망하는 장면이 있거든요(하하), 그 장면이 생각이 나기도 하고… 신묘한 기분이었어요. 당일에 수상하러 무대로 나가는데 특히나 그랬네요. 무대 위로 올라와 달라고 하는 상황이잖아요. 어찌 보면 <240 245>는 제가 설 수 있는 무대가 없었던 게… 제작의 시작이 되었던 것 같거든요(하하). 어느 팀 안 그렇겠냐만 <240 245>도 상당히 곡절 많은 작품이어요. 이번 기회로 이 작품 한 번만 더 올릴 수 있으면 좋겠네, 하는 작은 바람도 가지게 되었고요.
어, 그러니까 지금 은호 배우 같이 그런 생각을 갖게 하는 게 가장 큰 목표였어요. 연극 너무 재밌잖아요. 환경이 어려워도 포기가 안 되잖아요. 고민하잖아요. 연극이 본업인데, 이게 과연 의식주를 책임져주는 직업이 될 수 있나, 만족할 수 있을까, 등. 우리 극단 노란리본 배우들은 경제 활동 수단으로 연극을 하는 게 아니지요. 나는 우리 아이를 빛나게 하기 위해, 아이 이름을 걸고 연극을 해요. 그 외에는 큰 고민 없이, 그저 재미있게 무대 위에 서요.
그렇지만 박은호 배우처럼, 연극배우가 전업인 배우들은 어떤 마음으로 연극을 할까, 고민이 많겠다고 생각을 했어요. 상황이 아무리 어려워도 연극을 할 수밖에 없는 마음. 내가 그런 마음을 가진 사람들을 응원하고 도우면 좋겠다. 내 도움이 약소할 수 있겠지만, 그래도 이렇게 당신을 응원하는 사람이 여기 있다고 알려주는 거죠. 그다음 해에는 누군가는 또 기대를 하고 있을 거예요. 누군가 이 상을 받음으로써 어떤 희망을 가질 수 있게 하는 거, 그게 제일 중요했어요.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건, 아이 보내고 나서 세상이 너무 원망스러웠기 때문인데요. 다 분노스럽고, 내가 왜.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것처럼 나는 그렇게 잘못하고, 그렇게 나쁘게 살지 않았는데, 왜 나에게 이런 일이, 나한테 왜 이런 일이 일어났지. 너무 힘들었지. 근데, 포기할 수는 없으니까. 아이 위해서 끝까지 뭔가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죠.
시상식에서 배우님을 뵀었는데, 굉장히 멋지고 대단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때, 아이 생일날이 다가오면 부모들은 몸도 마음도 다 아프다고 말씀하셨잖아요. 지금까지는 아픈 날이었던 2월 19일을 기쁜 날로 바꾸셨다는 점이 인상 깊었어요. 이제 많은 사람이 영만 씨의 생일을 기억하고 기다리겠죠. 슬픔과 고통을 변화시키는 건, 외부 세계에 기대서 이루어지는 게 아닌 것 같아요. “무언가를 변화시키는 힘은 내 안에 있다. 우리에게는 힘이 있다” <240 245> 작업을 하는 동안 붙들고 간 말이었는데요, 폐회사 하시는데 문득 이 두 문장이 생각나더라고요.
배우 박은호. 어깨 아래로 내려오는 길이의 머리에 검은색 셔츠를 입었다. 왼쪽 손목에 검은색 시계가 보이고, 책상 위에 노트북을 펼쳐두고 있다.
박은호
맞아요. 물론 4월 16일도 아프지만 아이 생일 때가 제일 마음이 힘들어. 아이 생일 돌아올 때 되면 너무 힘든 거야, 마음을 어떻게 할 수가 없어. 그날은 너무너무 힘드니까, 시상식 날 얘기한 것처럼. 이제는 많은 사람하고 같이, 우리 영만이를 생일날에 같이, 기억하고 싶어요. 없는 아이 생일이지만 축하한다는 말을… 어떻게 하면 축하한다고 할 수 있을까. 이제는 그날을 정말로 축하하면서, 아이를 기억할 수 있다는 게 큰 힘이 돼요.
아이가 잊히는 게 두려워요. 누구보다도 사랑스럽고 소중했던 이런 아이가 있었다는 걸 사람들에게 이야기하고 싶었지. 그게 연극 무대 위가 된 거고. 사람들에게 응원 받고, 위로 받고, 나도 받은 만큼 베풀고 싶고, 그러다가 여기까지 왔네요.

우리가 해온 연극, 연극으로 만난 세상

오늘 대화 자리를 준비를 하면서 4.16 가족극단 노란리본에 대해 찾아봤어요. 그런데, 노란리본 극단과 <240 245>의 작업 방식이 조금 닮은 것 같아요. 둘 다 자기 이야기를 재료로 연극을 올렸고, 연극에서 자기 말하기를 수행했어요. 쉬운 과정이 아니잖아요.
저는 초연 때가 아직도 기억나는 게, 매 연습마다 마음이 괴로운 거예요. 대본에 재료로 들어가 있는 제 이야기들이, 당시에는 수치스러웠던 기억이지만 이제는 다 지나간 일인데도, 연습을 해도, 해도 괜찮아지지 않는 거죠. 매 연습이 눈물 잔치(하하). 전서아 작가가 했던 말이 큰 도움이 됐어요. “괜찮지 않아요. 괜찮을 리가 없어요. 무대 위에서 괜찮으려고 연습하는 거잖아요” 이렇게 얘기해주더라고요. 미경 배우님은 어떠셨는지 궁금해요.
노란리본 극단의 두 번째 공연이 완전히 우리 이야기로 꾸려진 거였어. 유가족을 대하는 주변에 있는 사람들의 태도, 거기에다가 우리가 들었던 가슴에 상처가 되는 그런 말들을 들었던 그대로 다 쏟아냈어요. 하면서 엄청 괴로웠지.
연습할 때 상당히 힘드셨겠어요.
그렇죠. 극단 레파토리 중에 <기억여행>이라는 공연이 있어요. 우리가 걸어왔던 8년의 시간을 그대로 다 보여줘요. 세월호 엄마들이 겪었던 걸 그대로 다. 막 경찰들이랑 대치하는 거며, 투쟁하고, 욕하는 거 그대로 거기 다 나와요. 타격이 좀 컸어요. 극 중에서 내가 당사자로서 들었던 말을, 그 아픈 말을 그대로 쏟아내고 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으니까.
분명히 허구의 이야기라는 걸 알면서도, 연습할 때마다 실제 기억이 건드려지죠. 저는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것 같은 기억들이 수치심으로 남아있어요. 그런데 무대 위에서 말할 때요, 그러니까 허구의 문장들이 진짜 나의 말이 될 때. 그럴 때마다 회복이 일어났던 것 같아요. 무대 위의 그 시간들이 관객에게 어떻게 다가갔는지, 어떤 순간에 우리가 공명했는지 확인할 때 또 한 번 더… 거듭 연습을 하시면서 또 변화하는 부분이 있었을 것 같거든요. 첫 리딩할 때는 대사가 입에 담기지도 않으셨을 것 같아요. 뱉어지지도 않잖아요.
맞아, 맞아. 근데 어느 순간에 그러니까 이게 사람이 익숙해지는 거 있죠(하하). 그렇게나 아픈데 왜 해, 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근데, 무대 위에서 이야기를 하고 나면 내 속이 진짜 좀 시원해지는 거야.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하고 나면. 치유와 회복이 완벽하게 되는 건 아닌데, 한 발짝 나아갈 수 있는 계기가 되어주죠. 새로운 마음을 갖게 해주지.
우리는 정말 손가락으로 쿡 찌르면 좔좔 나올 수준으로 대사를 달달 외워요. 그만큼 이게 이제 훈련이 되다 보니, 많이 내려놓을 수 있었던 것 같아. 어쩔 수가 없는 거야. 상황이 바뀌지 않지, 바꿀 수 없는 상황이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슬프고 아프더라도 무대에서 또 그거를 꺼내야 하죠. 그렇게 연극을 계속 하겠지.
배우 이미경.
<240 245>의 대본 일부는 제 메모가 그냥 통으로 들어간 몇 부분이 있어요. 큰 재료로 제 이야기가 많이 들어가 있는데… 사실 이 사건 한정해서는 저만 겪은 일이잖아요. 이야기 속의 사건이요. 작품 보면서 우는 관객들이 꽤 있어서 마음 한켠이 씁쓸했어요. 경계 앞에서 방황하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구나, 왜 우린 부끄러워해야 했을까, 왜 이 작품을 보며 이렇게나 공감해야 할까… 함께 웃고 울어서 기쁘고도 슬펐죠. 저 수상소감 했을 때도 이 얘기 했는데(하하), 그때도 이 대목에서 울컥했죠, 지금도(하하).

우리는 어떤 연극을 기다리고 있나

여기서부터는 우리가 이 시대를 어떻게 읽고 있는지를 얘기해보려고 해요. 더불어 우리는 어떤 연극을 기다리고 있는지. 저는… 해묵은 소리일 수 있는데, 타인의 슬픔에 무감해지기 쉬운 시대라고 느껴요. 록산 게이의 『헝거』라는 책에 나오는 문장이 있어요. “눈을 아주 크게 뜨고 있다. 내 눈은 앞으로 다가올 그 무엇도 정면으로 바라볼 준비가 되어 있다”. 3-4년 전에는 이 말을 정말 좋아했어요. 근데 그때에 비해 요즘은 흐리게 뜰 때가 꽤 많네요. 보기 두렵거든요, 나 하나 건사하기도 바쁘니까. 타인의 아픔을 들여다 볼 여유가 점점 더 없어지는 것 같아요. 부동자세인 세상에 질리는 것도, 탈력감을 느끼는 것도 그만하고 싶고… 미경 배우님의 생각이 궁금합니다.
배우 박은호.
요즘 사람들 공감 능력이 떨어진다는 말이 자주 보이는데, 그보단 그냥 관심을 두고 싶지 않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내 일만으로도 충분히 바쁘니, 관심갖지 않으려고 일부러 피한다고 해야 할까. 그러니까… 효율적으로 산다? 그런 점이 아쉽네요. 나는 내가 좀 손해 보고 말지, 그냥 내가 좀 더 베풀고 말지, 하거든. 언제는 아들이 그런 얘기를 하더라고요. 엄마, 요즘은 남한테 피해 주는 것도 싫어하고, 자기가 피해 받는 것도 싫어한다고.
한때는 세상이 바뀌지 않아서 미쳐버릴 것 같았던 적도 있었어요. 근데 세상을 보는 내가 바뀌었어요. 나뿐만이 아니라, 세월호 유가족 부모들이라고 하면, 21세기, 이 시대에 가장 많이 변한 사람들이 아닐까 싶어요. 상상도 못할 일이지, 어느 날 갑자기, 새끼가 갑자기, 죽는다는 게. 아무 이유 없이 준비되지도 않은 이별을 하게 되고, 분노, 원망, 울분… 이런 게 잔뜩 내 안에 있었어요. 그렇지만 그런 시간들을 겪어내면서, 내 자신이 정말 많이 변화했죠.
배우님은 어떤 연극을 기다리시나요?
나는 앞으로도 이렇게 세월호 이야기를 계속하겠지. 노란리본 극단이 연극을 하는 이유가 여타 극단과 좀 다른 점이 있죠. 우리는 ‘우리의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하니까. 세월호 참사 9주기가 다가와요. 누군가는 기억하고 있겠지만, 많이 잊혀 가. 나한테 연극은, 그 잊혀 가는 기억을 다시 일깨워줄 수 있는 도구라고 생각해요. 내 개인적으로 연극을 좋아하고, 내가 하고 싶어서 하는 것보다, 4.16 세월호를 알리고 잊히지 않길 바라는 마음으로, 진상 규명을 위한 활동으로 합니다. 앞으로도 나는 계속 그런 연극을 할 거고요. 예술로서 사람들에게 다가갈 거예요. 사람들이 세월호 얘기만 하면 마냥 슬퍼하죠. 나는 다른 방법으로 이 사건을 기억하기를 바랐어요. 4.16 합창단도, 노란리본 극단도 그래서 시작했어요. 합창이나 연극 같은 예술로 다가가면 사람들이 조금 더 편안하게 볼 수 있잖아요.
저는 가끔 생각해요. 남이 옆에서 저렇게 아프다고 비명을 지르는데 시끄럽다고 할 수가 있나. 우는 소리 좀 하지 말라고 하잖아요. 진짜 우는 건데. 조금 더 타인에게 너그러워졌으면 좋겠다, 하는 생각이 들어요. 사실은… 저부터가 이렇게 행동하는 게 쉽지가 않아서 더 이렇게 말하는 것 같네요. 지키려고(하하). 거듭 이야기 하지만, 나 어려울 때 남들 들여다보기 힘들잖아요, 피하고 싶고. 그럴수록 각자 고립되고. 예술과 연극이 이런 점에서 힘을 발휘하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창작진이든, 관객이든, 각자의 방식으로 세상과 연결되잖아요.
마지막 질문인데요, 배우님은 어떤 관객들을 기다리세요?
우리 극단을 응원하려고 연극을 보러 오는 사람이 대다수예요, 우리가 올리는 공연은요. 지역 같은 데에서도, 우리를 초청하는 사람들은 어디 활동 단체들이죠. 그렇다 보니 지인 관객들이 많고. 음, 새로운 사람들이 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지. 물론 기존 관객들, 마니아 관객들, 우리 연극을 즐기고 응원하기 위해서 찾아와 줘서 고맙죠. 근데 또 모르는 사람들이 찾아왔으면 좋겠다는 게 바람이야. 어떨 때는… 세월호 참사에 대해 비난하고 손가락질 했던 사람들도, 누군가의 손에 이끌려 우리 연극을 보기를 바라요. 단 한 명에게라도 진실을 전할 수 있다면, 연극인으로서 정말 뿌듯할 것 같네.
그리고 여담이지만, 나는 여기 대학로 연극하는 친구들에게 관심이 아주 많아요. 궁금해요. 어떤 공연을 올리는지, 어떤 모습들로 연극을 하고 있는지… 바빠서 다 챙겨보지는 못하지만(하하). 이제 곧 고주영 피디랑 만나기로 했는데, 앞으로 이영만연극상은 어떻게 꾸려갈 건지 다시 또 논의를 해야지.
많은 분들이 기다리실 거예요. 당시에 ‘저요?’ 하는 어리둥절함은 있었지만요, 무척 기쁘고 즐거웠어요. 누구 생일 잔치에 가면 보통 축하하고, 선물을 주고 오잖아요. 근데 저는 영만이 생일 파티 가서 축하도 하고, 받고, 어유, 상도 받고(하하). 기존의 상들은 ‘최고의’라는 수식어가 잘 어울리는 작품을 선정하잖아요. 이영만연극상은 그런 맥락에서 의미가 남다르죠. 그 첫 시작에 제가 함께 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그렇다니 나도 기뻐요. 근데 나는 뭐 한 게 없어. 그냥 돈(상금)만 준비했어. 새 돈으로 준비했지. 그것도 좋았죠(하하)?
어우 네네, 황금 봉투에(하하). 소매치기 당하면 어쩌나 노심초사 하면서 집에 갔어요. 다음날 황금 봉투 들고 그대로 은행으로 직행했습니다.(하하)
고주영 피디는 당연히 송금하는 거라고 생각했대. 상금은 당연히 현금 지급이죠. 이것도 세대 차이인가(하하)? 아무튼, 나도 되게 뜻깊었어요. 이제는 그 생일날이 정말 슬프기만 한 게 아니라 지금 얘기한 것처럼 기다려질 것 같아요. 내년 2월 19일을 또 빨리 맞이했으면, 할 거야.
배우 박은호와 배우 이미경이 각자의 책상 앞에 앉아 서로를 마주 보고 있다. 두 사람의 배경으로, 밝은 베이지색 벽에 나무 바닥의 공간이 보인다.

[사진: 김지성 jasonk1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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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은호

박은호
배우입니다. 내 몸을 통해 세워지는 세계에 관심이 많습니다. <240 245>, <커튼>, <오르막길의 평화맨션> 등에 출연했습니다. 인스타그램: @e_u_n_o

이미경

이미경
416가족극단 노란리본 배우. <그와 그녀의 옷장>, <이웃에 살고 이웃에 죽고>, <장기자랑>, <기억여행>, <배우에 관한 역설>, <연기연습-배우는 사람>, <초록빛 목소리> 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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