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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로 갈지 모르는 대화

[무엇을, 어떻게, 왜] 양대은 X 성수연

성수연

제243호

2023.10.12

[무엇을, 어떻게, 왜]는 배우이자 창작자인 성수연이 진행하는 대화입니다.
동시대 창작자들이 무엇에 주목하고, 어떻게 작업하며, 그 일을 왜 하는지 들어봅니다.

독자 여러분, 날씨가 갑자기 많이 추워졌네요. 올 여름엔 ‘이 여름이 우리의 남은 인생에서 가장 시원한 여름이다’라는 말을 자주 들었어요. 많은 것들이 변하고 있음을 체감하는 요즘, 저는 배우로서의 삶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해보고 있답니다. 배우의 삶에는 어떤 선택지들이 있는지, 이미 다져져 있는 길들 말고 다른 길은 없는지, 달라지는 세계에서 배우는 어떤 존재가 되어야 하는지.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을 때, 무엇이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을 때, 그저 그 상태에 몸을 맡겨보는 일은 어떤 일일까요? 배우 양대은 님과 대화를 나눈 기록입니다.

성수연
안녕하세요. 추석은 잘 보내셨나요(웃음).
양대은
안녕하세요. 네, 잘 보냈습니다(웃음).
성수연
2021년에 혜화동1번지에서 공연하셨던 <그 나쁜 선악과는 어떤 xx가 따먹었을까?>(이하 <선악과>)를 보고, 언젠가 배우님과 함께 ‘남성이 연기하는 여성서사 속 남성’을 주제로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었어요. 또 창작도 하시고, 여러 재미있는 프로젝트들을 많이 하시는 것 같더라고요. 어떤 생각을 하며 살아가고 계신지 궁금했습니다(웃음).
양대은
감사합니다(웃음).
성수연
<선악과>에서 ‘아담’ 역할을 하셨었지요. 저는 여전히 부족하다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연극에서 여성서사들이 늘어나고 있는데, 그런 서사에 등장하는 남성인물들이 악역인 경우가 종종 있잖아요.
양대은
‘아담’도 대놓고 악역이었죠. 진짜 나쁜 사람. 찌질하고요.
성수연
남성성이 강하거나 위압적인 악역은 아니었지만 조금 하찮았달까요. 하지만 진짜로 아주 나쁜 사람이었어요. 그리고 배우님의 연기가 굉장히 인상적이었습니다.
양대은
기록 영상을 보니까 너무 아쉽더라고요(웃음).
성수연
어떻게 했어야 더 잘한 연기가 됐을 거라고 생각하세요?
양대은
그냥 기본적인 걸 잘 못했어서…(웃음). 이미 지나간 일이고, 어쩔 수 없지만요.
성수연
전혀 아니던데요. ‘저 사람은 어떻게 저렇게 미묘한 줄타기를 잘할까?’ 하는 생각을 했어요. 그런 역할을 너무 심각하게 연기하면 부담스러울 수도 있었을 것 같았고, 그런데 너무 적당하기만 하면 그저 연극 같기만 할 텐데, 굉장히 좋은 센스로 그 선을 타고 계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때 같이하셨던 어떤 배우가, 그건 정말 ‘양대은’이라 가능한 연기였다고도 하시더라고요. ‘남성을 욕하는 남성’이 ‘연기하기’를 통해 수행된 느낌이기도 했어요. 굉장히 재미있는 캐릭터였다고 생각해요.
양대은
네. 성현 연출이 잘 만든 캐릭터죠. 그렇게 만들어져 있는 캐릭터라서, 연기할 때 크게 어려운 점은 없었어요. 다만 논의를 많이 했던 부분은 욕설을 세게 하는 장면이나, 필요 이상으로 위협적으로 보일 수 있는 부분들이었어요. 지금은 또 다르지만 <선악과>를 공연했던 2년 전에는 무대에서 ‘씨발’과 같은 욕설을 뱉는 것 자체에 대해 고민이 많았잖아요.
성수연
맞아요. 정말 2년 전과 지금을 비교하면, 고민의 방향이 다들 조금 달라지긴 한 것 같네요.
배우 양대은과 배우 성수연. 
            두 사람은 야외에 놓인 은빛 메쉬 소재의 원탁을 사이에 두고 같은 재질의 의자에 앉아 있다. 
            두 사람 뒤로 갤러리의 노란색 유리 벽면과 전시 포스터, 액자형으로 돌출된 전시 작품의 일부가 보인다.
양대은
그땐 누군가에게 트리거가 될 수 있는 부분이 공연에 들어오는 게 마음에 걸렸어요. 지금보다 더 자기검열이 강할 때였으니까요. 연출과 논의 끝에 결국 ‘씨발’은 말하게 됐어요. 그 캐릭터가 극 중에서 하는 악행은 무대에서 재현하지 않았고, 암전되기 직전 가장 고조된 분위기에서 하는 대사여서 납득을 할 수 있었어요.
성수연
가끔 남성인물의 어떤 위협적인 행동이, 여성배우의 몸을 통과해서 드러나면서 또 다른 맥락들이 생기기도 하잖아요. 그런 시도들이 꽤 있는 편이고요. 그런데 <선악과>를 보면서는 문득, ‘아담’ 역할은 남성으로 패싱되는 배우가 연기한 것이 좋은 선택이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미 작품 자체가 여성서사였기 때문이었을지도 모르지요. 어떤 면에서 훨씬 연기하기 자유로울 수 있겠다 싶었어요. 다른 사람을 놀릴 땐 스스로 여러 검열을 하게 되잖아요.
양대은
맞아요. 그런 맥락의 논의가 저희 안에서도 있었어요. 배역을 정하기 전에 성별을 바꿔서 연기하면 어떨까, 어떻게 해야 이 이야기가 더 잘 살아날까 등을 고민했던 시간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해요.
성수연
진짜 남성으로 느껴지는 배우가 그런 못난 남성을 연기하고 있으니 좀 더 흥미롭게 풍부해지는 느낌이었어요. 아마 서사 안에 그 인물을 변호한다고 느껴지는 순간이 크게 없었기 때문이었을지도 모르겠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납작하지 않았고, 심지어 진정성마저 있어 보였어요(웃음). 그래서 더 진짜 같았어요. 배우님께서 하신 연기를 여성배우가 했다면, 어떤 관객들에게는 그냥 ‘여성들이 늘 그렇듯 남성을 비판하고 있구나’ 정도로 보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어요. 하지만 배우님께서 연기함으로써 ‘남성이 남성을 저렇게까지 그리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라는 생각을 할 수 있게 되었던 것 같아요. 좀 더 많은 사람이 함께 뭔가를 비판하고 질문을 나누는 것 같기도 했고요. 그런데 스스로를 놀릴 때에도 섬세한 고민이 필요하잖아요. 배우님께서 여러모로 좋은 선에서 날카롭게 연기하셨다고 생각했어요.
양대은
남성의 어떤 못난 부분을 살려서 표현하는 것에 크게 어려움은 없었어요. 사실 그런 인물을 쓰고, 전체적인 흐름 안에서 인물이 어느 선까지 가야 되는지를 봐준 것은 연출이었고, 연출이 남성의 그런 부분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사람이라 가능했던 것 아닐까요? 기본적으로 크게 어렵지 않고 재미있게 했지만, 쉽지 않은 부분이 있긴 했어요. 저도 제가 왜 그러는지 잘 모르겠는데, 제가 인물을 비꼬는 태도가 필요 이상으로 묻어날 때가 있다고 하더라고요.
성수연
자세히 들려주세요.
양대은
되도록이면 작품에 그려진 그대로 연기했을 때, 작품 자체에서 그 인물을 통해 어떤 현상을 비꼬는 일이 될 수 있잖아요. 그런데 제가 연기하는 톤에서 이미 스스로 그 인물을 너무 비꼬고 있기 때문에 오히려 인물이 그대로 전달되지 않는, 그런 부분이 좀 있었나 봐요. 그래서 그 선을 좀 찾으려고 했었어요.
성수연
아, 어떤 부분인지 알 것도 같아요.
양대은
네. 제가 일부러 더 비꼬면 인물이 쓰여진 그대로 전달이 안 될 수도 있으니까요.
성수연
네. 배우의 비꼬는 태도를 통해 배우와 배역의 거리가 이미 너무 분명히 드러난 채로 서사가 진행될 수도 있고요. 어떤 선 긋기를 이미 한 채로 이야기를 시작해버리는.
양대은
맞아요. 그런 일이 분명히 필요할 때도 있지만, <선악과>는 그런 부분을 좀 빼야 하는 작품이었던 것 같아요.
성수연
그러게요. 어떤 서사 속에 존재하는 어떤 인물인지에 따라 다르겠지만, 어떤 경우엔 배우나 단위에서 그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이미 작품에서 충분히 뭔가를 말하며 거리를 두고 있고, 그것을 더 잘 드러내려면 인물은 또 그대로 존재해야 할 때가 있으니까요. 물론 선 긋기를 해야만 하는 경우도 있다고 생각하고요.
양대은
저는 제가 억지로 선을 그으려고 한 것은 아니었어요. 저대로 한다고 했는데(웃음). 이미 제가 갖고 있는 그런 태도들이 많이 묻어났었나 봐요. 그 인물이 너무 나쁘기 때문에 거리를 두려고 했다기보다는, 제가 좀 더 재미있게 놀리려다 보니까 자동 거리두기가 되곤 했던 것 같아요. 아직도 그 선을 잘 모르겠어요. 저는 기본적으로 풍자하고, 비꼬고, 놀리는 것을 좋아하고, 그게 제 삶의 태도여서 그런가.
성수연
놀리는 것이 내 삶이 태도이다(웃음).
양대은
네. 그런데 요즘엔 덜 해야겠다, 자중해야겠다, 혹은 다른 방식의 즐거움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은 해요. 이젠 잘 모르겠어요. 가끔 좀 멋있는 연기를 시도해야 할 때도 있는데, 그런 걸 잘 못하겠어요.
배우 양대은. 검은색 긴소매 셔츠를 입었다. 앞머리가 살짝 이마를 덮었고, 테이블 위에 올려둔 안경이 보인다. 
            그 뒤로 건물 유리에 반사된 주변의 나무와 간판들이 다양한 색을 이루고 있다.
성수연
오, 저는 충분히 멋있으시다고 생각하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멋있는 것을 말씀하신 걸까요?
양대은
폼을 잡아야 하는 역할이라거나. 일단 햄릿, 오델로, 맥베스 등 비극의 주인공은 상상도 안 되고요. 전형적인 남자 주인공이라고 통용되는 그런 역할이나 장면이랄까요.
성수연
네. 그런데 그런 역할을 맡는 것을 꿈꿔본 적은 없으셨어요?
양대은
네.
성수연
그런 역할을 해본 적도 없으시고요?
양대은
대학교 다닐 때, 뮤지컬 <레미제라블>을 했었는데, 그때 ‘마리우스’ 역할을 했습니다. 흑역사입니다.
성수연
와, 로맨스의 주인공. 많은 배우들이 그래도 ‘언젠가 꼭 햄릿 해보고 싶어’ 이런 생각 갖고 있잖아요.
양대은
제 주위에선 그런 사람을 한 번도 못 봤어요.
성수연
오, 저는 많이 봤어요. 어떤 이유에서든 ‘햄릿’ 꼭 해보고 싶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있던데요.
양대은
전 아직 그런 생각이 없어요. 클래식에 대해 좀 더 습득하고 나면, 하고 싶어질 수도 있지 않을까요?
성수연
‘아직’이라고요? 거짓말하시는 거잖아요(웃음). 아직이 아니라 영원히 그런 생각이 없으실 것 같아요.
양대은
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지금은 어떻게 패러디할까 밖에는 생각이 안 나지만요(웃음). 햄릿이 등장하자마자 갑자기 죽고 다른 이야기가 시작된다거나, 그런 생각만 떠오르네요. 사실 또 요즘에는 인간 중심적인 이야기를 하는 것에 대해 크게 관심이 없기도 해서요.
성수연
그렇다면 최근에 하신 연극 <스고파라갈>에 대한 이야기로 넘어갈게요. 인간만의 이야기를 하는 작품이 아니었으니까요. 준비 과정이 궁금합니다.
양대은
작년에 두 차례 워크숍을 했어요. 처음엔 스터디를 주로 했고, 그다음에는 ‘공동 글쓰기’를 했어요. 구글 독스를 열어놓고, 그때 그때의 주제나 목표를 가지고 모두가 함께 글을 많이 썼어요. 새로운 플롯에 대한 이야기도 나눴고, 시공간, 캐릭터 등을 설정해보기도 했고요. 그때 ‘알고 보니’, ‘그러고 보니’, ‘땅거북’ 등 약 스무 개 정도의 키워드들이 나왔는데, 그 키워드들을 기반으로 임성현 연출이 작품을 썼어요.
성수연
올라오던 홍보물에, 참여자들이 기후위기행동에 관한 어떤 실천들을 하고 있다는 내용이 있더라고요.
양대은
네, 맞아요. 그 이전에 국립극단에서 공연한 <기후비상사태 리허설>의 참여자들이 그런 실천들을 많이 했다고 알고 있어서, 그 부분을 참고하며 우리가 할 수 있는 실천은 무엇일까, 프로덕션 내내 논의를 했어요.
성수연
어떤 실천을 혼자서 하다 보면 지속하기가 어려울 때도 있는데, 여러 사람이 함께 하니 서로에게 힘이 되기도 했을 것 같아요. 저도 노력은 하는데 쉽지 않을 때도 있어서,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하는지 궁금해요. 그 실천이라는 것이 결국 일회용품 안 쓰기, 대중교통 타기 등의 작은 행동들일 때가 많은데, 그 실천의 원동력이 ‘기후위기’와 늘 직접적으로 붙어있는지.
배우 성수연. 살짝 웨이브가 남아 있는 가슴께까지 오는 긴 머리. 
            푸른색 긴 소매 셔츠를 입고 테이블 위에 태블릿 PC를 열어 두었다.
양대은
늘 그렇진 않은 것 같아요. 그래서 작년에는 기후위기와 자본주의에 대한 책을 읽기도 했는데, 개인적으로는 생각보다 상황이 훨씬 심각했고, 다 함께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경각심이 생기더라고요. 원동력은 모두에게 다 다른 방식으로 작동한 것 같아요. 공동의 실천도 있었지만 ‘기후위기’가 각자에게 감각되는 방식에 따라 실천 내용도 다양했어요. 일단 멈춰야 할 것들이 참 많구나 했죠.
성수연
그런 경각심으로 한동안은 행동을 하는데, 삶에 치이다 보면 지속이 어려울 때가 있더라고요. 저는 그냥 제가 아직은 이것밖에 안 되는 인간이라는 점을 인정하고, ‘기후위기’라는 사실과 ‘일회용품 안 쓰기’ 사이에 어떤 실질적인 욕구로 치환될 수 있는, 그래서 실천을 지속할 수 있는 욕망의 다리를 만들어 놔야 하나 싶기도 해요. 예를 들어, 제가 만약 공언한 내용을 어기는 것에 대해 수치심을 크게 느끼는 사람이라면, 공언을 하는 일을 해두는 것이죠. 기후위기 때문에 일회용품을 안 쓰는 것이기도 하지만, 말을 바꾸는 게 자존심이 상해서라도 일회용품을 안 쓰게 되는, 좀 더 나 개인에게 붙어있는 일로 만들어두는 일이요.
양대은
맞아요. 그런 부분이 각자 다 달랐어요. 저 같은 경우는 챌린지 형식, 그러니까 공언 퍼포먼스 같은 것을 했어요. 그랬더니 한 몇 달 효력이 있었어요. 그런데 저는 합리화를 잘해요. 제가 한 말 어기기를 너무 잘하는데, 할 수 없지요. 작심삼일을 여러 번 해야죠.
성수연
저도 뭐가 저에게 효과적인 방법일지 빨리 찾아보고 싶어요.
<스고파라갈>에서 배우님들의 움직임을 보는 것이 좋았어요. 하나의 덩어리인 것 같기도 하고, 별개인 것 같기도 하고. 그리고 정말 다들 움직임이 좋으시더라고요. 어떤 방식으로 움직임을 찾았는지 궁금해요.
양대은
움직임으로 참여하신 구시연 배우님께서 연습 초반에 ‘뷰 포인트 워크숍’을 진행해주셨어요. 그 과정에서 움직임에 대한 공통의 언어를 만들었고, 그 후에도 구시연 배우님과 임성현 연출님과 함께 장면을 만들었어요.
성수연
멋있었어요. 대은 배우님께선 잠깐이었지만 엄청난 댄싱도 하셨고(웃음). 정말 잘 추시던데요.
양대은
(웃음) 아닙니다. 사실 이번 작업에서 하나가 되는 것이 중요한 포인트였어요. 그것과 더불어 ‘자본주의에 역행하는 작업으로서의 연극’이 중요한 개념이었던 것 같고, 모두가 같은 이야기를 전달하고 있다는 것이 굉장히 중요했어요. 그러면서도 어차피 똑같은 사람들이 아니기 때문에 각자의 것을 또 갖고 있어야 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그 한 덩어리처럼 움직이는 것이 중요했는데, 체력도 달리고 힘들었어요(웃음).
성수연
한 덩어리이면서도 각자의 개별성이 툭툭 튀어나오는 순간들, 그런데 그게 또 그렇게까지 막 개인이 주장되지는 않는 어떤 선에 있었다고 생각하고, 저는 그것이 아름답다고 느꼈어요.
조금 아까 연습 중 시도하셨던 챌린지에 대해서도 또 ‘공언 퍼포먼스’라는 표현을 하셨잖아요. 배우님은 늘 뭔가 재미있는 일을 꾸미고 있다는 인상을 받아요. 공개적으로 어떤 모임 같은 것을 제안하기도 하시잖아요. 영어도 잘하셔서 지금도 영어 스터디 그룹을 주도하고 계신 것으로 알고 있어요.
양대은
그건 모임은 아니고 그냥 사실 알바입니다. 알바죠, 네.
성수연
지금 하고 계신 모임 ‘굴러라 동동’에 대해 소개해주세요. 올해 초에 발표회도 하셨지요?
양대은
플레이업 아카데미의 강량원 연출님 수업에서 만난 배우 다섯 명의 모임이에요. 스터디를 더 이어가 보고 싶어서 만들게 됐어요. 비정기적으로 만나서 공연 이야기도 하고, 연기 이야기도 해요. 그러다 올해 초에 작은 발표회를 한 것이고요. 배우들 각자 다른 배경을 갖고 있고, 연기하는 방식도 다 다르기 때문에 재미있었어요. 각자의 장면을 발표하고, 마지막엔 다 같이 하는 장면 두 개를 발표하는 식으로 했어요. 마실 나가는 느낌으로 하는 재미있는 발표였어요. 가볍게, 그리고 재미있게.
배우 양대은과 배우 성수연. 양대은은 검은 긴소매 셔츠에 청바지 차림이고, 성수연은 푸른색 긴소매 셔츠에 하얀색 바지를 입었다. 
            성수연이 오른손을 머리 높이로 들어 무언가를 설명하고 있다.
성수연
그런 비정기적인 만남, 스터디 이런 것들이 배우님께 어떤 영향을 미치나요? 삶에 활력이 생긴다든지, 연기에 도움이 된다든지 그런 부분이 있나요?
양대은
‘굴러라 동동’의 경우, 모이면 약간 해외여행에 나와 있는 기분이 들어요. 각자 너무 일만 하며 살다가 모였는데, 와서 아무것도 안 해도 되고, 생산적인 일을 해야 한다는 강박도 없고, 맛있는 것도 먹고, 잡담도 많이 나누고, 그러면서 연기 이야기도 하고. 이전에는 같이 작품을 한 것도 아니고 마주치는 일도 없었던 사이거든요. 그렇다고 사교 모임 같은 느낌도 아니고요. 그냥 좀 릴렉스가 많이 되는 것 같아요. 최근에는 뭔가를 읽고 글을 써오기도 하고, 즉석에서 장면을 만들어서 발표를 해보기도 하고 있어요.
성수연
갑자기 궁금한데 연기는 어떻게 시작하게 되셨어요?
양대은
저는 MBTI로 보자면 극도의 P이고, 계획을 하지도 않고, 오히려 계획을 그때 그때 바꾸는 것을 굉장히 좋아합니다. 충동적인 편이고요. 대학원에서 공부를 하던 중 대학 때 함께 연극을 하던 제 동료들이 연극을 시작했고, 같이 하다 보니, 어쩌다 보니 연기를 계속하게 됐습니다. 연극과 관련된 일을 ‘같이’ 한다는 것이 재미있었습니다. 연기 자체도 재미있지만 그보다는 뭔가를 같이 도모하는 일이 재미있어요.
성수연
그래서 계속 어떤 것들을 도모하시는군요.
양대은
네. 종종 에너지나 시간이 남을 때면 아이디어가 떠오르기도 하고, 상상도 많이 하는 편이죠. 굳이 제가 연기하지 않아도 좋으니 어떤 사람들끼리 만나서 이런 것들을 해보면 정말 재미있을 것 같다는. 그래서 내년에도 뭔가를 하나 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성수연
뭐랄까, 배우님은 에너지 효율이 좋은 분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웃음). 남들이 2시간 걸려서 할 일을 30분 만에 해치우고 또 뭔가 재미있는 일들을 하는. 머리가 굉장히 좋으신 건가 싶기도 하고요.
양대은
잔머리 쪽인 것 같습니다(웃음). 많은 것을 하기도 하지만, 그만큼 많은 것을 놓치기도 하고, 항상 일장일단이네요.
성수연
배우님의 창작작업들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어디로 갈지 모르는’ 시리즈를 비롯해서 종종 창작 작업도 하시잖아요. 최근엔 어떤 창작작업을 또 하셨나요?
양대은
사실 창작이라고 할 것은 아니고… 아니죠, 사실은 창작이 맞죠. 맞아, 인정하자.
성수연
(웃음).
양대은
최근엔 신촌문화발전소에서 진행한 정진세 작가님의 ‘무대를 위한 글쓰기’라는 프로그램에 참여해서 글을 썼어요. 그때 쓴 작품으로 다같이 짧게 발표를 했는데 재미있었어요. 그래서 이태원에서 한 번 더 작품을 올렸어요.
성수연
어떤 작품을 쓰셨나요?
양대은
좀 민망한데요… <Josh go away> 라고…
성수연
조씨… 고… 아… (큰 웃음)
양대은
포부는 컸으나 원하는 것은 이루지 못했고, 껍데기만 패러디한…
성수연
왜 ‘조씨고아’였나요?
양대은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의 연기톤을 우선 따라해보고 싶었고, 더불어 연극 만드는 과정을 패러디해보고 싶었어요. 주인공이 아버지의 복수를 하려고 하는 내용의 연극을 연습하는 연습실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그려진 20분짜리 짧은 연극이었고요. 마지막에는 갑자기 배수관에서 물이 쏟아지고 다 같이 물에 잠기고 막 휩쓸려가는… 별 거 없는 내용이었습니다.
성수연
못본 것이 너무 아쉽네요. 굉장히 웃기고 재미있었을 것 같아요. 원래 연극을 하시기 전에도, 어릴 때부터 그런 일을 좋아하셨어요? 패러디나, 흉내 내기나.
양대은
네. 어릴 때부터 좋아했던 것 같아요. 누군가를 따라 하는 것을 좋아했고, 특정한 특성을 부각시키고 강조하는 일이나 닮은 꼴 찾는 일 같은 것을 좋아했어요. 그런 점이 연극을 하면서 좀 강화된 것 같은데, 이제는 좀 다른 것을 찾아보고 싶어요. 그런 일이 유효했던 시대가 바뀌고 있다고도 생각하고요. 남는 게 별로 없는 것 같다는 기분이 들기도 해요. 재미만 조금 있고, 오래 가지는 않고. 그런데 아직 제가 할 줄 아는 것이 그 정도라서…
성수연
그렇지만 패러디와 같은 것이 정말 날카로울 때, 그러니까 정말 여러 레이어에서 조준이 잘 됐을 때, 정말 효과적이고 멋지잖아요. 그럴 때 터지는 웃음은 비록 오래가지 않더라도, 정말 소중한 웃음이고, 소중한 순간이라고 생각해요. 저는 정말 좋아해요. 그리고 배우님께서는 약자를 희화화해서 따라 하거나 놀리는 방식으로 그런 일을 하는 것이 아니잖아요. 정말 빛나는 재능이라고 생각해요.
배우 성수연. 얼굴과 어깨까지 클로즈업한 옆모습.
양대은
필요할 때만 좀 쓰는 것으로…(웃음) 사실 그런 것 정말 좋아해요. 그런데 맨날 연극에 대한 연극 얘기만 하게 되고… 아무래도 연극을 제일 많이 하면서 살아가고 있으니…(웃음)
성수연
지겨워 죽겠는 메타 연극…(웃음)
대화를 나누다 보니 배우님의 독백, 혹은 장광설을 들어보고 싶어요. 어디로 갈지 알 수 없는, 의식의 흐름대로 말하는. 이 인터뷰에 대한 이야기도 좋고요.
양대은
네. 인터뷰라는 것은 사실은 이제 밖에서 봤을 때는 매끈한 한 인터뷰처럼 보일지 몰라도 이것이 두 번째 만남1)일 뿐만 아니라 제가 처음 말했던 내용들을 계속해서 집에서 샤워하면서 산책하면서 재구성하고 또 내가 했던 말들이 과연 괜찮을까 하는 생각을 끊을 수 없었는데요. 왜냐하면 이것을 보는 입장, 관객들 혹은 그냥 제3자가 봤을 때, 사실 모두가 노력을 하고 있고, 어떤 창작자 입장에서 각자의 입장이 있을 텐데 제가 그것을 너무 무시하고 제 어떤 재미, 혹은 너무 한 가지 면만 전달이 된 거 아닌가 싶은 마음에, 만약에 내가 그 사람들의 입장이었으면 이게 좀 오해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일례로 제가 <Josh go away>라는 희곡에 대해서 말씀을 드렸는데, 사실 저도 이제 ‘조씨고아’의 어떤 형식이나 전달하는 방식에 대해서 굉장히 흥미를 갖고 있고 너무나 그게 효과적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게 어떤 따라 하고 싶은 그런 마음이 생겼었고, 그 공연에 대해서 제가 갖고 있던, 어떤 면들이 조금 이런 이야기로 흘러갔으면 어땠을까 라는, 그런 생각을 가지고 만들어보려고 했었으나 저의 어떤 능력 부족으로 인해서 실패했던 점이 있었다는 것을 저도 분명히 인지하고 있고요. 물론 그것과 더불어서 어떤 연습실 상황에서 조금 재미난 해프닝들이 있으면 어떨까 해서 그런 해프닝들을 같이 병행해서 넣어보려고 했었습니다. 저에게는 굉장히 즐거운 작업이었지만 완성을 더 시켰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있고요. 제 역량 밖의 일이라서 그 정도로 마치겠습니다.
또 동시에 <스고파라갈>이나 다른 작업들에 대해서 질문을 해주셨는데 제가 거기에 대해서 떳떳하게 말할 어떤 자격이 없지 않나, 라는 생각을 처음에는 했었습니다. 그것은 왜인고 하면, 공연은 비단 저의 것뿐만 아니라 같이 했던 사람들, 연출, 다른 배우들, 스태프들의 어떤 노력이 들어갔던 것이라서 왠지 제가 이러이러한 실천을 했다고 말하는 것이 굉장히 민망하고 부끄럽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또 이 얘기를 안 하는 것도 이상하다는 생각이 동시에 들었고, 인터뷰라는 것이 말을 줄인다고 해서 다가 아니라는 생각을 동시에 했습니다.
현재까지가 이제 제가 지난 인터뷰에 했었던 내용들을 어떤, 스스로 생각하면서 반성하는 부분에 대한 이야기이고요. 이제 어떤 쪽으로 넘어갈까 하면, 현재 아이스크림 가게에 대해서 얘기를 해보고 싶습니다. 그러니까 지금 무인 가게가 많이 늘어났지 않습니까? 우리가 들어가서 과자를 먹고 아이스크림을 먹고 하는 그 일련의 행위들이 어떻게 보면 굉장히 위험하다, 라는 생각이 들고 있어요. 사람과 사람이 더 만나지 못하고, 그 와중에 24시간 그 아이스크림 가게의 에어컨은 돌아가고, 그러면 이 전기세는 누가 낼 것이며, 이 에어컨은 어떠한 프레온가스를 만들어낼 것인가. 어떤 경우 누구는 아이스크림을 그냥 가져가고 누구는 그것을 경찰에 신고하고, 이런 어떤 신뢰가 무너지는 방향으로 우리가 넘어가는 것이 과연 옳은 선택인가 하는 생각이 들고요.
지금 이 말을 하면서 재미가 있을까 없을까 하는 생각이 또 계속 저를 이제 검열하게 만드는데, 우리 안에는 검열하는 존재가 있습니다. 우리는 그 존재를 우리의 머리 위에 놓고 이렇게 얘기를 하죠. 이것은 우리가 초자아라고도 하고, 때로는 대통령 혹은 각하라고 부릅니다. 이 검열 각하가 우리에게 하는 이 행동이 사실은 사회 구성원들과 함께 사회생활을 할 수 있게 만드는 어떤 쿠션들로 작용하긴 하지만, 동시에 우리를 옥죄고 있고 자유롭지 못하게 만든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제가 그 어떤 맨날 자유를 외치는 그 남성, 어떤 특정 남성들에 대해 동의하는 바는, 동조하고 싶은 마음은 절대 없습니다. 그 사람들이 말하는 자유, 너무나 징그럽고, 자기들만 생각하는 자유에 대해서 자꾸 막 징징거리는데, 저도 너무나 처참한 마음이고 비참한 마음이고 스스로 혐오하는 마음이 또 없지 않아 있습니다만, 혐오에 대한 얘기는 넘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제가 그, 안경을 새로 바꾸고 싶습니다. 제 안경은 현재 한 4년 정도 썼던 안경으로서 이 안경이 이제 슬슬 헐거워지기 시작했고 고개를 숙이면 안경이 툭툭 떨어지려고 자꾸 안간힘을 쓰고 있는데, 그래서 만약에 제가 안경을 쓰는 공연을 했을 때 고개를 숙인다, 그러면 안경이 떨어지겠죠. 그럼 지나가던 배우가 그걸 밟겠죠. 안경이 부서지겠죠. 그러면 어쨌건 공연 중에 안경을 바꾸나 공연 전에 안경을 바꾸나 매한가지일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그 안경을 밟으면서 하는 즉흥적인 어떤 행동을 보면서 재미있어 할 거고요. 어떤 배우는 그 즉흥적인 행동이 굉장히 난처로울 것입니다. 굉장히 당황스러울 것이고요. 그렇기 때문에 저는 안경을 사실 미리 바꾸는 게 좋겠죠. 안경이 떨어지지 않게요. 물론 안경 뒤에다가 줄을 연결해가지고 어떤 연출이나 어떤 감독이나 어떤 누구처럼 어떤 안경 줄을 달아가지고 이게 떨어져도 목에 걸릴 수 있게 할 수 있겠죠.
어떻게 할까요? 계속할까요? 현타가 오네요(웃음).
배우 양대은. 검은색 긴소매 셔츠를 입었다. 건너편의 성수연을 바라보며 옅은 미소를 띠고 있다.
성수연
(웃음) 와, 진짜 잘한다. 정말 잘하시네요. 이건 계획에 전혀 없었던 다른 질문인데요, 혹시 배우로서의 미래나 인생 전체를 그려보시나요? 앞으로 어떤 길로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신다거나. 길이 많은 것 같지는 않지만, 어떤 길들이 몇 개 있잖아요.
양대은
그것을 미리 그리는 사람이 있나요?
성수연
많을 텐데요? 그럴 때가 오는 것 같기도 하고요.
양대은
그렇구나. 그럼 그런 모임을 해보는 것도 좋겠네요. 인생 그리기 모임.
성수연
시작하실 때 연락 한 번 주세요(웃음). 저도 계획 없이 매번 지금 하는 일들만 생각하면서 살아왔는데, 막연한 꿈은 있었던 것도 같기도 하고, 그런데 지금 그게 맞는 꿈인지 생각해보고 싶기도 하고요. 그냥 흘러가는 대로 두고 싶은데, 불안하기도 하고요.
양대은
맞아요. 그건 그렇죠.
성수연
즐거운 이야기 많이 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설명할 순 없지만, 저는 오늘의 대화를 통해 뭔가 긍정정인 영향을 받은 것 같아요. 배우님께서 도모하시는 재미있는 일들 기대하겠습니다. 그럼 질문 주고받기와 함께 대화를 마무리해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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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대은과 성수연, 서로를 바라본다

성수연
불안함을 느낄 때가 언제야? 그럴 때가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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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대은
너는 끝맺음에 어떻게 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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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수연
니가 끝맺고 싶은데, 아주 오랫동안 끝맺지 못하는 뭔가가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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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대은
너는 콜라, 사이다, 물 중에 뭘 마시는 편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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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수연
니 앞에 놓인 선택지에 니가 원하는 게 없다면, 넌 그래도 그중 하나를 선택하는 편이야, 다른 길을 찾는 편이야, 선택을 안 하는 편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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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대은
너는 “으으으” 할 때 누구한테 먼저 연락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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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수연
정말 그 누구도 모르는 너만의 비밀이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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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대은
너는 몇 명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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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수연
너를 인터뷰 하면서 난 몇 명의 너를 만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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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대은
숫자 6이 좋아 7이 좋아?

* 장소 협조: 두산아트센터

[사진: 김지성 jasonk17@naver.com]

  1. 양대은과 성수연의 대화는 두 번에 걸쳐 진행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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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수연(파이리)

성수연(파이리) 본지 편집위원
배우, 창작자. 다양한 형태의 연극작업을 하고 있다.
인스타그램: @sooyeons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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