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꼿꼿이 허리를 세우고 앞으로 올 세계를 기다리지는 않는다

[연극인이 만난 사람] 김원영 X 하지성

김원영, 하지성

제245호

2023.11.09

배우 하지성을 만났습니다. 저는 2019년 하지성과 같이 공연을 한 적이 있는데, “(잘생긴) 얼굴로 연기 너무 편하게 하는 거 아니냐”며 타박을 준 기억이 있습니다. 한번은 무용공연을 보러 대학로의 한 극장에 함께 갔습니다. 우리는 각종 오퍼레이팅 장비가 가득한 객석 꼭대기 구석 자리에 휠체어 두 대를 나란히 두고 앉아야 했죠. 그런 하지성이 지난 4월 말 공중파에서 수상소감을 말하는 장면을 보면서 저는 조금 아득했습니다. ‘아 드디어 이런 날이 온 건가’와 더불어, ‘이런 날’이 도대체 무슨 날인가 싶었던 것입니다. 그에게 이날의 경험을 잔뜩 물어볼 요량으로 대화 장소에 나갔지만 정작 배우 하지성은 자신의 호흡과 (주로 장애가 없는) 배우들의 호흡이 어떻게 만나고 어긋나는지에 관한 고민을 길게 말했습니다.

하얀 벽면의 공간에 나무 책상 두 개를 마주 붙여 놓았다. 책상 앞에는 김원영과 하지성이 앉아 있다. 
            수동휠체어에 앉은 김원영은 두 손을 깍지 낀 채, 양팔이 일직선이 되게 책상 위에 올려두었고, 전동휠체어에 앉은 하지성은 휠체어 등받이에서 등을 뗀 채 김원영 쪽으로 몸을 기울이고 있다.
지성
(백상예술대상 이야기를 물으려고 하자) 벌써 시간이 많이 지났고, 그날 기억은 물론 남아 있지만 이제는 다시 시작하고 싶은 마음이에요. 지금부터가 훨씬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니까.
원영
(그래도 묻는다) 여러 곳에서 진행한 인터뷰를 보면서 배우 하지성의 생각이나 경험을 이해할 수 있는 부분도 있었지만, 저는 그 이면 이야기도 듣고 싶었어요. 예를 들어 한 기사 표제에서 나온 “나는 장애를 극복하려고 그 상을 받은 건 아니다” 같은 메시지. 여러 사람이 지성이 장애를 극복하고 이 상을 받았다고 전제한 후 질문을 할 테니 이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었겠죠. 그런데 우리끼리는 사실 당연한 이야기잖아요. 나는 ‘이상적인 몸’의 극단에 있는 저 유명 연예인들 사이에서 지성이 어떤 마음이었을까, 이런 것이 솔직히 궁금했어요.
지성
(웃음) 많은 언론사에서 연락을 받았고 인터뷰를 했어요. 매번 어떤 태도로 임해야 할까 생각을 많이 했어요. 장애에 대해 편견을 가졌다고 볼 만한 경우도 분명히 있었으니까요.
원영
기자분도 다양하잖아요. 고민이 깊은 분도 있고. 자주 받은 질문은 뭐였나요? 별로 였던 질문이 있나요?
지성
특별히 별로라고 여긴 질문은 없는 것 같고, 배우로서의 성장 과정, 주로 힘든 점을 많이 물으셨어요. 지금 와 생각해보니 좋았던 것도, 경험이 된 것도 분명 있었는데 주로 힘들었던 것을 얘기하지 않았나 싶기도 해요. (백상예술대상의 계기가 된) <틴에이지 딕>에서는 3시간 동안 계속 무대에 있어야 했거든요. 리처드라는 인물은 많은 대사를 하고 또 모든 장면을 끌어가요. 어떻게든 잘하고 싶은 욕망이 있었어요. 국립극장에서 장애배우가 주연을 하게 된 거니까요.
원영
큰 극장에 많은 관객이 오는 공연의 주연이면 어느 배우나 비슷하지 않나요.
지성
감정선이 복잡하고 어려워서 심리적 압박이 컸고, 공연 준비 막바지에는 3시간의 러닝타임을 소화하지 못했어요. 공연 직전까지 대사를 잊기도 했고요. 너무 불안했어요. 최종 리허설을 끝까지 마치지도 못하고 첫 공연에 들어간 거예요.
원영
그게 지성 배우의 장애와 관련이 있어요?
지성
극단 애인에서는 보통 원작 희곡 전체를 무대에서 소화해내는 방식이 아니라, 말하고 싶은 게 무엇인지에 따라 희곡을 재해석하고 각각의 배우들에게 맞는 방식으로 각색을 해왔어요. 그런데 이 공연은 처음부터 끝까지 희곡 그대로를 표현해내야만 해서 긴장과 두려움이 있었던 거죠. 그렇지만 관객이 있고 어떻게든 해야 한다는 마음으로 했는데 기립박수를 받은 거예요. 지금까지도 생생히 기억해요. 그 기운을 받아 4회차까지 갔어요.
원영
체력적으로 힘든 부분 외에 <틴에이지 딕>이 특히 더 부담이 되거나 혹은 도전인 이유가 있었어요?
지성
아무래도 리처드 중심의 이야기이다 보니 부담은 있었지만, 그와 동시에 주연이라는 건 너무 감사한 일이죠. 제가 늘 갖고 있던 욕망이기도 했으니까, 주저하지 않고 부딪쳤어요.
원영
다양한 극장을 경험했지만 국립극장이라는 공간도 처음이었고, 또 그간 작업을 한 적이 없는 사람들과 함께 한 거잖아요. 그런 부분은 어땠나요.
지성
국립극장에서 한다는 것이 아무래도 긴장이 더 됐는데, 이전에 같이 작업을 해봤던 동료가 있어서 의지가 많이 됐어요.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작업하는 건 언제나 설레고 좋은 일이에요. 앞으로도 계속 새로운 사람들과 작업하기 위해서는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임하느냐가 중요할 것 같은데요. 함께한다는 건 어떤 것인지, 혼자 고민하고 시도해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누군가한테 털어놓기도 해야 하고요. 쉬어야 할 때는 쉬어야 하고요.
하지성이 주먹 쥔 두 손을 모아 책상 위에 올려놓고 웃는 모습이다. 흰색 목티 위에 짙은 회색의 정장 재킷을 입었다.

긴장감

원영
많이 힘들었군요. 극단 애인에서도 그런 생각한 적 있어요?
지성
극단에서 많은 공연을 하던 시기가 20대여서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은 없는데.
원영
단지 나이의 문제? 애인에서 장애가 있는 배우들, 지성과 익숙한 배우들과 작업을 하다가 최근 몇 년간은 다양한 분들과 함께했잖아요. 몸이 더 힘들었나요.
지성
물론 연습을 더 많이 해서 에너지가 점점 빠지는 경우가 있지만, 비장애 환경이 주는 긴장감? 근데 이건 해결할 수 없는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원영
해결이 안 된다니. 어떤 순간 가장 커져요? 대사를 틀렸을 때? 혹은 밥 먹다가 음식을 흘렸을 때? 모든 순간?
지성
리딩할 때.
원영
처음 대본 읽을 때?
지성
아무래도 처음이니까, 더 많은 에너지를 쓰는 것 같아요. 그리고 대본 놓고 움직이면서 동선 짤 때. 연습 시작하고 들어갔을 때 긴장감이 있어요. 나와 다름에서 오는. 원영은 장애에서 오는 긴장감은 없어요?
원영
많죠. 연극뿐 아니라 여러 영역에서, 일상에서도. 커피를 마시러 가서 실수로 쏟을 수도 있잖아, 그런데 만약 쏟으면 사람들이 내가 삶에 서툴 것이라는 생각을 강화하잖아요. 그런 (어쩌면 나 혼자만의) 의식 때문에 삶을 더 잘 통제하려는 경향이 있죠. 그런데 지성은 나랑 <인정투쟁; 예술가 편>에서 처음 작업을 같이 했잖아요. 그때 지성은 긴장하지 않았어요.
김원영이 살짝 주먹 쥔 왼손을 입가에 대고 이야기를 듣고 있다. 옅은 청색의 셔츠 위에 흰색과 회색을 섞어 짠 카디건을 입고 있다.
지성
속도가 있잖아요. 물론 대사의 속도 등에서 오는 긴장도 있는데, 제 호흡을 지키면서 대사를 하지만 상대방이 편하게, 아무렇지도 않게 툭 친다, 가볍게. 그럼 나도 이걸 받아내기는 하지만 상대방이 너무나 편하게 쳐서 오는 미세한 긴장이 있어요. 그럴 때 내 장애의 고유함으로는, 내가 아무리 가볍게 치려고 해도 비장애 배우가 하는 만큼은 안 돼요. ‘힘겹게’라는 표현은 쓰고 싶지 않지만, 내 ‘말’이 있는데 너무 가볍게 받아쳐서 나도 똑같이 받아쳐야 할 때, 그 간극의 긴장감.
원영
지성의 말이 가진 질감이 있는데, 건너가서 매우 순식간에 돌아오면 이걸 어떻게 해야 하나 이런 건가요? 멋대로 비유해 보면, 열심히 손으로 편지를 써서 우체통에 넣어서 보냈는데 상대는 이메일로 답신을 보내왔다. 경쾌하고 빠르게. 그럼 나는 다시 손편지로 대답을 해야 한다. 이런 거랑 비슷할까.
지성
비장애인의 속도와 장애인의 속도 차이를 느끼는 순간인 거죠.
원영
지성이 느끼는 그 속도의 차이, 그 차이가 주는 긴장감을 ‘비장애인’과의 관계에서라고 표현했는데, 예를 들면 극단 애인에도 ‘비장애인’이라고 보통 분류될 수는 없지만 언어장애는 없는 배우가 있잖아요. 그 경우에도 비슷한 걸 느끼나요?
지성
아니요. 아닌 것 같아요. 이게 장애의 동질감인 것 같은데.
원영
나한테는 언어장애가 없잖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장애인이라고 불리는 사람이고 그래서 나와 대화를 할 때 긴장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나와 비슷하게 말하지만 ‘비장애인’에게서는 느껴지는 긴장감?
지성
제가 다르다고 생각해서 그런가 봐요.

호흡과 몸

원영
자기 호흡을 잡기 위해 뭘 해요?
지성
아무리 상대 배우의 호흡이 있다고 해도 그걸 모방하는 걸 경계해요. 인물마다의 목소리를 연기하는 배우들이 있지만(지성은 이를 ‘비장애인 연기법’이라고 불렀다) 나는 내 목소리 외에 다른 발성법을 쓰지 않으려 해요.
원영
다른 배우의 연기 흐름, 혹은 속도에 지성의 호흡을 잃지 않기 위해 경계한다고 했어요. 그런데 연기는 다른 배우의 흐름이나 호흡에 내 것을 접속하는 과정이기도 하잖아요. 내 호흡을 지키며 다른 배우와 잘 연결되는 길을 어떻게 찾죠.
지성
그건 연습을 해야만 알 수 있는 부분이에요. 물론 말에서 풍기는 에너지와 느낌이 사람마다 있지만 결국 맞춰가야 하는 건, 작품 속에서 인물들이 갖는 성격, 태도 같은 것들이잖아요. 내가 상대 인물을 어떻게 생각하는지가 가장 중요해요. 작품으로 정보를 찾죠.
원영
발성이나 호흡을 따라가지 않는다고 했어요. 몸은 어떤가요. 장애가 없어 보이고 싶어서 무대에서 휠체어도 안 타려 하던 시절이 있었다던데.
지성
극단 애인 초기였던 스물한 살 즈음 걷기 위해서 골반 수술을 했어요. 수술 후 6개월 동안 누워서 고생했지만 결국 걷는 데 실패했어요. 실망감이 너무 컸죠. 어떻게든 걷자, 운동을 하자, 운동을 하면 좋아질 것이다, 그래서 워커(직립보행을 돕는 보조기구)를 끌고 다녔어요. 아파서 잘 안됐지만, 걸어서 연기 하겠다고요. 전동휠체어랑 워커 사이를 왔다갔다 하면서, 스물다섯에 소용돌이를 겪었어요.
원영
이제 소용돌이를 벗어났나요.
지성
내가 아직도 서 있고 싶어 하나… 이런 질문은 들어요. 근데 서 있을 때 에너지가 생기기도 하거든요. 그렇지만 언제든 넘어질 수 있으니까.
원영
꼭 서 있는 게 아니더라도 머릿속에 떠오르는 욕망이 향하는 이상적인 배우의 몸이 있어요?
지성
음… 최대한 워커를 쓰지 않고서, 무대 위에 방이라는 공간을 상상했을 때요. 가구, 이런 걸 놓으면 손으로 짚을 수 있으니까 워커가 필요 없거든요. 그런 상태로 내 방 안을 활보하는 거예요. 공간이 좁든 넓든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아무런 보조 이동 기구가 없이 벽을 짚고 다니는 모습.
하지성이 양손을 모아 책상 위에 올려두고 이야기하는 중이다.

나는 지성에게 이상적인 배우의 ‘몸’을 물었는데, 지성은 워커 없이 자신이 주변의 사물들에 지탱해서 움직일 수 있는, 방의 조건을 제시했다. 이 이야기를 나는 잘 이해할 수 없었다. 우리가 서울연극센터에서 진행한 인터뷰가 끝나고 며칠이 흘렀을 때 지성에게 연락이 왔다. “형, 나 이상적인 몸에 대해서 솔직하게 말하지 못한 거 같아요”.

일단은 계속 서울연극센터에 머물러보자.

원영
<틴에이지 딕>에서는 휠체어에서 안 내려왔어요?
지성
리처드가 발레 바를 잡고 앤(데이트를 받아준 친구)과 함께 서서 그 동작을 따라 하는 장면이 있었어요. 연습 중반까지는 휠체어 없이 서서 했지만, 결국엔 그 장면 뒤로도 많은 장면들을 해야 했기 때문에 휠체어를 선택했어요. 서서 하는 모습도 보여주고 싶었는데 너무 아쉬웠죠.
원영
리처드가 학생회장 되려고 하잖아요. 선거 연설하고 이런 장면도 있어요? 그땐 앉아서 해요?
지성
네.
원영
나는 실제로 고등학교 때 학생회장 선거에 나갔는데, 후보자 연설 시간에 일어 서서 말하겠다는 계획을 세운 적이 있어요. 친구 보조기를 빌려서 키가 커 보이도록 서겠다고. 그런데 실패했죠. 그래서 물어보고 싶었어요. 백상에서 상 받을 때 일어서고 싶지 않았어요? 마이크가 높이 있었잖아요.
지성
아니요. 왜냐면, 그 시상식에 휠체어를 탄 장애인은 저 한 명뿐이었거든요. 거기에 대한 자부심이 있었던 것 같아요.
원영
그 시상식 자리에서도 아까 말한 긴장감을 느꼈나요? 혼자 장애인이고, 그곳의 사람들은 그냥 장애가 없는 사람들이 아니라 사회적 부와 유명세를 가진 사람들, 전형적으로 멋지고 아름답다는 외모 기준을 충족하는 사람들이잖아요. 그 사이에서 어땠어요?
지성
쫄지 말자, 나 역시 배우니까 있는 그대로 가자. 너무 긴장하지 말고. 그런 생각을 했죠.
원영
대단하네… 그 자리에서 자폐 스펙트럼 장애인 변호사를 연기한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박은빈 씨가 대상을 받았잖아요.
지성
어떻게 생각하세요? 장애배우가 (비장애인 배우의) 연기술로 대체될 수 있다고 생각하세요?
원영
비장애인 배우가 장애를 연기할 수 없다거나, 하면 절대 안 된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가급적이면 장애배우가 연기하기를 바라지만요. 우영우라는 캐릭터의 상업적 성공과 그것이 빛나는 시상식에 하지성이라는 연극배우의 수상장면을 공중파가 내보내는 장면은 조금 아이러니했어요. 지성이 수상소감 할 때 앞에 앉은 연예인들 울려고 하고. 대중적인 시상식이 연극배우를, 특히 장애인 연극배우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이런 물음이 있죠. 그렇지만 그 상을 받음으로써 장애배우들이 그간 만든 길에 대한 작은 인정을 받았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생각해요.
지성
의미가 크다는 것에서 끝이 날까요, 앞으로가 더 있을까요.
원영
모르겠어요. 상을 받았다고 지성의 인생도 바뀐 건 없잖아요. ‘앞으로’는 지성에게 달려있겠죠. 그래서 뻔한 마무리 질문을 하겠습니다. 앞으로의 계획과 목표는 무엇인가요?
지성
연기 워크숍 등에서 나만의 고유성을 찾고 기록하는 작업을 계속하고 있고, 그것을 바탕으로 비장애인이 쉽게 사용하는 (장애에 대한) 부정적인 단어, 표현 이런 것을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 이런 걸 연구하고 있어요. 움직임 워크숍이라고 하면, 보통 어떤 몸의 움직임을 ‘정상’으로 전제하는 용어를 쓰잖아요. 그럴 때 장애인은 부정당할 수 있는 거죠. 그걸 어떻게 우리 용어로 바꿀 것인가, 그걸 고민해요. 저한테도 숙제고요.
원영
그 “우리”는 누구예요?
지성
장애배우요. 장애배우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거죠.
원영
그게 지금 한창 하고 있는 작업이라는 거죠? 예정된 작품이 있나요?
지성
지금은 말할 수 없어요(웃음). 그런데, 지금 우리가 쓰는 이 ‘장애배우’라는 말이 미래에도 쓰이길 원하세요? 아니면 그냥 ‘배우’?
원영
저는 장애배우라는 말이 계속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 말로만 표현할 수 있는 게 있다고 생각해서요. 일반적인 배우라는 말로 담을 수 없는 정체성이 있다고. 다만 장애를 가진 배우를 모든 상황에서 그렇게 지칭할 필요는 없겠죠. 보통은 ‘배우’로 충분하지 않을까.
김원영이 팔꿈치를 몸에 붙인 채 손바닥이 위로 가게 양팔을 들어 보이며, 눈을 동그랗게 뜨고 이야기하고 있다.

그렇게 인터뷰를 마쳤고 지성이 내게 메시지를 보냈다. 우리는 6일 후 온라인에서 만났다.

지성
(인터뷰 당시) 장애배우의 입장에서 신중하게 말해야 하지 않을까 싶었어요. 그래서 솔직하지 못한 면이 있었는데요. <틴에이지 딕>의 리처드는 장애인 역할이에요. 나는 그걸 최대한 대본대로 표현하고 싶었어요. 3시간이 넘는 공연 시간과 많은 대사량, 대본이 지시하는 모든 장면을 다 정확히, 제대로 소화하고 싶었던 거죠. 그러고 싶은 욕망이 강했어요. 그런데 체력이, 몸이 그걸 할 수 없었어요.
원영
‘장애인’ 리처드의 장애를 지성의 장애 때문에 똑같이(정확히?) 표현하지 못한 거군요. 거봐 ‘장애배우’라는 표현으로만 말할 수 있는 게 있다니까.
지성
본래의 리처드라는 인물은, ‘보행이 가능한 장애인’이라고 나와 있어서 오히려 ‘나’로 표현할 수 있겠구나, 편하게 생각했어요. 그렇지만 그것과 별개로 장애배우도 이렇게 대사가 많은 작품을 소화할 수 있다는 걸 관객들에게 보여주고 싶었어요. 힘이 들더라도 체력의 극한까지 가고 싶었죠. 방으로 만든 무대에서 가구랑 벽을 딛고서라도 서고 싶다는 말. 그것도 마찬가지예요.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걷는 연기. 그렇게 활보하고 싶은데 나는 그 몸이 아니니까. 현재의 몸 상태를 생각해서 최대한 이상적인 몸을 말한 거예요. 솔직히 말한다면 무대에서도 2시간씩 서서 연기하고 싶고, 시상식에 가도 워커 없이 걷고 싶은 그런 욕망이 있는데. 그렇게 할 수 없으니까. 그런 이상적인 몸을 버리기가 지금까지도 힘들어요.
원영
두 발로 움직이는 것이 분명 효과적이고 표현의 선택지가 많죠. 하지만 지성이 지금의 몸을 숨기는 건 아니잖아요. 얼마든지 지금의 몸으로서 무대에서 배우로 살고 있잖아요.
지성
발성이나 호흡 같은 경우는 지금의 내 방식을 바꾸려고 하지 않아요. 그런데 움직임은 좀 다른 거 같아요. 몇 년 전까지도 휠체어에서 내려오고, 서기도 하고 다양한 움직임을 했는데 지금은 어려움이 있으니 생각이 많아져요. <틴에이지 딕>, <미래의 동물> 같은 작업에서는 휠체어에서 가능한 행위를 찾으려 시도했어요. 그 과정에서 재미를 찾으려고 해요. 그렇게 앞으로도 재미를 찾아가면 좋겠어요.
원영
(대사를 전달하는 측면에서의 연기 이외에) 휠체어에서의 움직임을 통한 연기의 선택지는 아직 충분히 발명되지 않은 것 같네요. 지성이 그걸 계속 찾고 있고요. 우리의 ‘앞으로’를 위해서라도 꼭 필요한 작업이라고 생각해요.

하지성에게 연기의 ‘재미’와 ‘고통’을 처음 알려준 사람은 극단 애인의 배우 강희철 님이었습니다. 지성이 데뷔한 작품 <고도를 기다리며>에서 지성은 고고(에스트라공)를 희철은 디디(블라디미르)를 연기했죠. 희철 배우의 차를 얻어 타고 지성은 대사를 외우는 법, 긴장을 다루는 법에 관한 조언도 얻었습니다. 그리고 강희철 배우는 지난 10월 먼저 세상을 떠났습니다. 지성과 극단 애인의 배우들은 장례식을 마친 후 그와의 추억을 공유하고, 그가 좋아하는 음식을 함께 먹으며 애도했습니다. 지성은 강희철이 누구보다 강인하고 솔직한 배우였다고 기억했습니다.

[사진: 예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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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영

김원영
공연, 법, 장애에 관심이 있다. 국가인권위원회 등에서 일했고, <사랑 및 우정에서의 차별금지법>, <인정투쟁; 예술가 편>, <무용수-되기>, <현실원칙> 등의 연극 및 무용 공연을 만들고 출연했다.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 등의 책을 썼다. greece815@gmail.com

하지성

하지성
연극을 하고있는 배우다. 사람들과 만나기, 사람들과 있기, 그래서 함께하기를 좋아한다. 최근에는 <틴에이지 딕>, <장애, 제3의 언어로 말하다_선택>, <미래의 동물>에 출연했다. 인스타그램 @ha_ji_sung / 페이스북 jisungha105@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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