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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하게 챙긴다고 해서 문제가 되는 일은 아니라고

[무엇을, 어떻게, 왜] 박진아 X 성수연

성수연(파이리)

제252호

2024.04.25

[무엇을, 어떻게, 왜]는 배우이자 창작자인 성수연이 진행하는 대화입니다. 동시대 창작자들이 무엇에 주목하고, 어떻게 작업하며, 그 일을 왜 하는지 들어봅니다.

독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라는 평범한 인사에 담긴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되는 4월이 왔네요. 우리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여러 생각을 하는 시간을 보내고 있겠지요.
극장은 때때로 어둡고, 많은 사람들이 동시에 움직이는 공간입니다. 이런 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안녕을 바랄 때, 연극인들은 구체적으로 어떤 생각과 행동을 할까요?
무대감독 박진아 님과 대화를 나눈 기록입니다.

성수연
안녕하세요(웃음).
박진아
안녕하세요(웃음).
성수연
이 코너에서 무대감독님과의 대화는 또 처음이라 좀 떨리네요(웃음). 제가 아무래도 배우 일에 더 익숙하다 보니 감독님들의 일에 대해서는 섬세하게 다 알지 못하는 부분이 있을 텐데요. 그래도 차근차근 궁금했던 것들을 여쭤보겠습니다.
박진아
좋습니다. 저도 이렇게 말하는 자리에 갈 일이 잘 없다 보니 긴장이 좀 많이 됩니다(웃음).
성수연
어떻게 연극을 시작하게 되셨나요? 무대감독으로 활동하게 되신 계기가 있는지 궁금해요.
박진아
저는 원래 무대 디자이너가 되고 싶었어요. 그래서 무대미술 관련 학과의 입시를 준비하면서 미술학원을 다녔어요. 아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입시 전형에 따라 필요한 그림이 있고 그에 맞추어 준비를 하잖아요. 그런데 하필이면 제가 입시를 하던 해에 원하던 학교의 입시 전형이 바뀌었어요. 준비하던 것들이 쓸모가 없어지면서 고민이 많아졌죠. 조금 시야를 넓혀서 무대 예술과 관련한 다른 꿈을 꿔보기로 했고, 그게 연출이었어요. 그래서 연출과에 지원을 했는데 떨어졌죠(웃음). 다시 입시 준비를 하며 공연을 많이 보러 다녔어요. 결국 문예창작과로 진학을 했고, 입학을 기다리던 중 공연을 보러 다니며 친분이 생겼던 공연팀의 조연출을 맡게 되었어요. 그렇게 공연 일을 시작하게 됐고, 학교에 대한 흥미는 점점 떨어져서 결국에는 자퇴를 했어요(웃음).
성수연
그렇군요. 일을 굉장히 일찍 시작하셨네요.
박진아
네. 그렇지만 1년에 두 편 정도밖에 작업을 못했고, 수입도 너무 적어서 삶이 무너질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다른 공연들을 찾아 나서면서 지금 소속되어 있는 팀인 제12언어연극스튜디오에 들어가게 됐어요. 처음엔 조연출로 계속 작업을 했고요. 이전에 비해 여러 연출님들과 작업을 할 수 있게 됐는데도 어딘가 만족스럽지 않더라고요. 작업의 양도 수입도 어느 정도 늘기는 했으나 생계를 유지하기엔 부족했고, 작업에 대한 욕구 또한 점점 커졌던 것 같아요. 더 많은 공연을 경험하고 싶었고요. 시간을 어떻게 써야 더 많은 연출, 스태프, 배우들을 만날 수 있을지 고민하다가 조연출 일을 하는 사이사이에 오퍼레이터 일도 꾸준히 하고, 무대감독 일도 했어요. 그래서 무대감독으로 데뷔한 것 자체는 빨랐어요. 그때는 완전히 무대감독이 되려고 생각했던 것은 아니었지만요.
성수연
어떤 공연이었어요?
박진아
2012년에 남산예술센터에서 했던 <사이코패스 –푸른 수염 이야기->라는 공연이었어요. 무대감독의 역할에 대해서 체계적으로 배운 적도 없었고, 그저 어깨너머로 배워왔던 여러 일을 실제로 처음 해보게 된 상황이었죠. 당시만 해도 무대감독이 프로덕션에 꼭 필요한 역할이라는 인식은 없던 때였어요. 물론 남산예술센터, 국립극단, 국립극장, 두산아트센터 등의 극장에는 당연히 있었지만, 대부분의 소극장 공연 현장에는 무대감독이 상주하지 않았고, 조연출이 대행하거나 다른 스태프들이 그 역할을 나눠서 했었죠. 그래서 저도 무대감독이라는 크레딧을 써본 적은 없었지만, 조연출 일을 하면서 배워왔던 일들을 사실 하고 있었던 거예요. 그런 일을, 정말 제대로 이름을 달고 처음으로 해보게 된 거죠. 그렇게 틈틈이 무대감독 일을 하다가 2018년에 극단에 공표를 했어요. “이제 조연출 일은 하지 않고, 무대감독으로만 참여하겠습니다”. (웃음) 같이 작업했던 극단 외 다른 연출님들께도 이야기를 했어요. “저를 조연출이 아닌 무대감독으로 불러 주십시오”. 그렇게 무대감독을 전업으로 하게 됐어요. 저는 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싶었어요.
무대감독 박진아. 흰색 티셔츠 위에 카키색 진 재킷을 입고 있다. 머리를 뒤로 동그랗게 말아 올렸다.
성수연
그렇군요. 그렇게 무대감독이 되셨는데, 정말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시지요? 일을 굉장히 많이 하시는 편이잖아요.
박진아
네. 많이 만났고, 지금도 계속 만나고 있는 과정에 있어요. 띄엄띄엄이라도 계속 작업을 함께 하는 분들도 있고요. 스케줄이 안 맞아서 못 하는 경우도 있지만, 잊지 않고 계속 찾아주시면 감사하지요. 저 말고도 다른 무대감독님들이 많이 계시고, 또 더 많이 생겨나고 있고, 어떤 인력풀이 커진다는 것은 정말 좋은 것 같고요.
성수연
사람마다 혹은 프로덕션마다 무대감독에게 기대하는 역할이 비슷하면서도 세세하게는 다를 것 같아요. 어떤가요?
박진아
좀 다르긴 합니다. 제가 연습에 참여할 때면, 이 작품이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방향으로 잘 가고 있는지 작품 자체의 힘에 대해 먼저 물어보시는 분들이 있고, 이 작품이 지금 기술적으로 잘 흘러갈 수 있는지 또 어떤 기술들을 쓸 수 있는지 먼저 물어보시는 분들이 있지요. 크게 다른 점은 이 정도인 것 같아요. 그 외에는 비슷해요. 안전과 관련한 역할을 하는 것은 기본이고요.
성수연
배우들도 사실 ‘관객들 앞에서 연기를 한다’는 사실은 공통적이겠지만, 세세하게 보면 해야 하는 일은 프로덕션마다 다르잖아요. 그래도 공연까지 대략의 상황을 가늠해서 그 안에서 제가 해야 할 일들을 스스로 조율해보곤 하는데, 무대감독님들은 어떠세요? 박진아 감독님의 경우엔 어떤 일들을 먼저 하세요? 무대감독의 타임라인이랄까요.
박진아
일단은 프로덕션 전체의 스케줄을 가볍게 짭니다. 보통은 PD님들께서 일정에 관한 큰 틀을 주시거든요. 그 틀을 기본으로 연출님들과 함께 스케줄을 역순으로 따져봅니다. 이 날이 첫 공연이라면 셋업은 이때부터, 그렇다면 셋업 직전 주간에는 최소 몇 번의 런스루가 필요하다, 그 사이 무대 제작소에서 제작이 들어가야 하는 시기는 이때다, 그러므로 무대디자인은 언제까지는 나와야 한다, 그러려면 동선은 이 시기엔 거의 완성되어야 한다, 따라서 테이블 작업은 이 시기엔 마무리가 되어야 하고 장면 만들기를 시작해야 한다, 이런 식으로 논의를 해서 계획을 짜요. 저는 셋업 일정을 조율하는 일에 가장 공을 들이는 편인데, 사실 한국 연극 현장에선 셋업 기간이 굉장히 짧은 편이잖아요. 2, 3일이 평균인 것 같고, 조금 여유가 있는 프로덕션이어야 5일에서 7일 정도 되는 것 같고요. 그런데 또 작업할 때의 관성이 있어서 셋업 시간을 많이 주면…
성수연
많이 주면 그만큼 작업 마무리가 늦어지고…(웃음)
박진아
늦어지고. 맞습니다(웃음). 저희 모두가 공감합니다.
성수연
조금만 더! 조금만 더!
박진아
이틀이 주어지든 일주일이 주어지든 결과물은 드레스 리허설 하루 전날에야 확정된다는 것을 우리 모두가 아는…(웃음). 그래서 저는 3, 4일 정도의 셋업이 적당하다고 생각하면서 일정을 짜는 편입니다.
성수연
그리고 셋업 기간엔 그 일정대로 잘 진행이 되도록 여러 일을 하시지요?
박진아
맞습니다. 최대한 효율적으로, 그렇지만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드는 것이 무대감독의 제일 중요한 임무라고 생각해요. 아무리 바빠도 두 파트가 무대에서 불안하게 겹쳐서 일하는 상황을 만들지 않아야 하고, 그것을 최우선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결국 상황이 여의찮아 동시에 작업해야 할 땐, 한 팀이 업스테이지에서 작업할 때 다른 팀은 다운스테이지로 내려와서 작업하게 하는 등 현장에서 계속 상황을 주시하면서 분리하고요. 바쁠수록 움직이는 양이 훨씬 많아지기 때문에 현장에서 계속 집중해야 해요. 타이트한 셋업 일정 안에서 모든 스태프가 안전하게 작업할 수 있는 계획을 짜고, 진행하는 일에 가장 공을 들이는 거죠. 배우들의 안전도 마찬가지입니다. 배우들이 안전하려면 무대에 많이 서보고 적응해야 하기 때문에, 그 시간 또한 확보하려고 굉장히 노력을 많이 하죠. 공연 기간과 철거 때에도 최대한 안전 중심으로 일정을 짜서 진행하고요.
성수연
테크니컬 리허설 땐 공연의 큐 진행을 무대감독님이 담당해서 하시지요? 공연 때도 하나하나 큐를 주시는 경우도 있는 것 같던데.
배우 성수연. 베이지색과 검은색, 회색의 체크무늬 남방을 입었다. 전반적으로 갈색이지만 머리칼 끝으로 갈수록 노란빛이 도는 굵은 웨이브 머리다. 왼손을 입가에 댄 채 이야기를 듣고 있다.
박진아
동시에 가야 하는 큐가 많지 않은 경우엔 ‘그냥 오토큐로 간다’라는 용어를 내부적으로 쓰는데요. 공연이 올라가면 제가 시작할 때와 끝날 때만 큐를 드리고 공연 중간엔 오퍼레이터님들끼리 큐 진행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인터컴이 있는 극장도 있고 없는 극장도 있고 극장마다 시스템이 다 다른데, 무전기는 안정성이 떨어져서 정확한 큐를 드릴 수 없는 경우가 생기기도 하거든요. 가급적이면 오토큐로 갈 수 있도록 테크니컬 리허설 때 잘 정리를 합니다.
배우
감독님 덕분에 모두가 안전하게 셋업과 리허설을 마치고 첫 공연을 올리는 중입니다. 공연 때는 어떤 일을 하시나요(웃음)? 지금 어디에 계세요?
무대감독
저는 SM데스크에 있습니다(웃음).
배우
SM데스크가 없는 극장도 있죠? 그럴 땐 어디 계세요?
무대감독
분장실 쪽에서 배회하고 있고요(웃음). 무대 뒤 관객에게 노출되지 않는 곳에 서서 공연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SM데스크가 없는 극장이 많습니다. 무대 뒤에 화면 모니터가 없는 극장도 있고, 제가 서 있을 자리가 없는 경우도 있어요. 그럴 땐 소리만 듣고 있기도 해요.
배우
무대감독이 가까운 곳, 혹은 늘 있는 그 자리에 있다는 사실이 배우들에게는 큰 안정감을 주거든요. 어떤 사고가 생겨도 대처할 수 있는 사람이 가까이에 있다는 믿음.
무대감독
그렇죠. 열악한 극장이 많긴 하지만 그래도 가까운 곳에서 보고 있다는 것을 모두들 또 잘 알고 계시니까.
배우
진짜로 한 편의 연극이, 공연이 되도록 하는 것과 관련된 모든 일을 다 하시는 역할이네요.
무대감독
네, 맞습니다. 무대감독은 한 편의 공연이 안전하게, 원활하게 올라가기 위한 모든 과정을 신경 쓰는 사람이라고 생각해 주시면 제일 쉬울 것 같아요.
성수연
무대감독의 이야기 재미있네요. 얼마 전 제2회 이영만연극상에서 스태프상을 수상하셨지요. 정말 정말 축하드립니다(박수).
박진아
감사합니다(웃음).
성수연
처음에 수상 소식 들었을 때 어떠셨어요?
박진아
‘왜?’라는 질문을 제일 먼저 했어요. “예? 제가요? 왜요? 제가 왜요?” (웃음) 그 상을 나에게 주는 이유가 뭘까 생각했어요. 알고 보니 이영만연극상에 스태프상이 새로 생겼고, 그 부분에서 제가 처음으로 받은 것이더라고요.
성수연
수상 소감을 어떻게 하셨을지 궁금해요.
박진아
정확하게는 기억이 나지 않아요.
성수연
기억을 더듬어보세요. 혹은 이 지면을 통해 다시 말씀하셔도 돼요(웃음).
박진아
“이렇게 많은 사람 앞에 나서는 것이 좀 낯서네요. 사실 저는 극장에서 제일 안 보이는 곳에서 움직이는 사람이다 보니 지금 이런 시선을 받고 있는 것이 너무 부끄럽습니다. 제 목소리도 지금 마이크를 통해서 나가고 있는데 이것이 너무 낯설어요. 저는 극장에서 진행할 때도 아예 마이크를 안 씁니다. 마이크로 나가는 제 목소리가 낯설어서요. 저는 목도 잘 안 쉬는 타입이라서 대극장에서도 마이크를 안 쓰거든요. (관객들, 웃음) 이영만연극상에 스태프상이라는 것이 처음 생겼는데, 그것을 처음 수상하게 돼서 너무 영광입니다. 감사합니다. 무대감독이 상이라는 것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습니다. 보통은 스태프 부문도 디자이너님들이 받거나 연출님들이 받으니까요. 정말 영광입니다. 이 상에, 어떤 안전한 환경을 만들기 위해서 노력하고, 안전의 의미를 전달하는 사람들에게 주는 상이라는 의미가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래서 더 감사하는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 사실 이제 조금 일을 줄이고 싶은 마음도 있었는데, 이렇게 상까지 받으니 더 작업을 많이 해야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감사합니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대략 이런 내용이었어요.
무대감독 박진아. 왼손을 입가에 대고 멋쩍은 듯 웃는 모습이다.
성수연
멋진 수상 소감이네요. 다시 한번 축하드려요(박수).
박진아
정리가 안 돼서 주저리주저리 말하고 내려왔던 것 같아요. 그래도 다들 잘 들어주셨어요.
성수연
보는 사람들에게는 그게 더 재미있잖아요.
박진아
큰 영광이었어요. 의미가 남다르니까 더, 더, 더 영광이었어요. 지금까지 무대감독 일을 하면서 ‘안전’이라는 부분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고, 그것을 중요하다고 생각한 것에 대해 어떤 인정을 받은 느낌이었어요. 물론 저도 완벽하게 체크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고 더 열심히 해야 하고 발전해야 하지만, 지금까지 가졌던 생각과 해왔던 일들이 틀리지 않았고 이렇게 해야 했던 것이 맞았다고, 어떤 인정을 받은 것 같아서 정말 감사했어요. 원동력이 되기도 했어요. ‘안전에 더 많이 더 많이 신경 써야지’.
성수연
와, 안전에 대해 더 많이 신경 쓰겠다는 생각으로 이어졌다니, 정말 멋있어요.
박진아
안전에 대해서는 모두가 신경을 쓰고 있지만, 급해지고 바빠지면 그냥 넘어가게 되는 경우가 많잖아요. 지금까지 문제 없었으니까 앞으로도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기도 하고.
성수연
맞아요.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사고가 날 수도 있다는 것도 또 잘 알고 있지만, 어떻게 하지 못하고 다른 일로 넘어갈 때도 있고.
박진아
모든 사람이 모든 것을 다 확인하고 가기에는 시간이 없을 때도 있고, 버거울 때도 있으니까요. 그렇다면 그 부분을 꾸준하게 보면서 확인하고, 계속 염려하고 우려하고 있는 누군가가 있어야 하는 거죠. 결국 그 역할을 무대감독이 제일 많이 해야 하고, 그래서 저도 나름대로 열심히 많은 상황을 대비하려고 해요. 안전이란 과하게 챙긴다고 해서 문제가 되는 일은 아니라고,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과하게, 과하게, 계속, 계속 체크를 해야 하는 것.
성수연
과하게, 과하게.
박진아
‘이렇게까지 한다고?’ 싶어도, 돌다리도 두들겨보고 건너야 하니까.
성수연
안전의 중요성에 대해 자세히 들려주시니 좋네요. 잠시 나눠보고 싶은 고민이 있어요. 저는 최근 몇 년 사이에, 특히 연극계 미투 이후에 여러 맥락에서의 ‘안전한 창작환경’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인식이 상당히 자리 잡았다고 생각해요. 많은 분들의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이 인식이 그 시기에 활발하게 작업을 하던 사람들 안에만 머물러 있는 것은 아닌지, 수많은 논의를 통해 만들어진 어떤 생각들이 이제 막 활동을 시작하신 분들이나 학생분들에게는 잘 전해지고 있는지 고민을 해보게 되더라고요. 최근에 어떤 사례들을 들으면서 그 노력이 이 안에만 머물러 있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안전을 중요하게 여기는 생각은 사실 희미해지면 안 되는 것이잖아요. 그래서 지금 감독님께서 이렇게 공연장에서의 안전을 자꾸 강조해주시니 참 좋네요. 아주 사소하거나 당연하다고 생각해서 넘기는 부분까지 한 번 이야기를 해주셔도 좋을 것 같아요. 저도 그렇고 이 대화를 읽으실 여러 독자분들이 다시 한번 생각해볼 수 있도록요.
박진아
사실 의상, 소품, 무대 대도구, 소도구까지도 정말 체크를 많이 해야 해요. 또한 당연히 안전한 등퇴장로를 확보해야 하고요. 소대에는 워크라이트가 있어야 하고요. 소품의 경우, 사용하다가 다칠 가능성이 있는지 확인해야 하고, 그렇다면 안전하게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을 각 파트 디자이너님들과 논의를 해야 해요. 제작되어 들어오는 대도구의 경우에도 혹시 날카로운 부분이 없는지 움직이다가 다칠 가능성이 없는지 확인해야 하고, 약간이라도 문제가 있으면 당연히 보수해야 하고요. 저희가 늘 이야기하지만 안 보이는 데가 제일 위험해요. 공연 중 암전 때도 그렇고요. 야광 테이프가 무대 바닥에 많이 붙어있는 것을 싫어하시는 분들도 계세요. 그런데 그건 또 배우의 안전과 직결되어 있기 때문에, 저는 연출님들과 협상을 할 때도 있어요. 그건 결국 무조건 제가 이겨야 하는 협상이에요. 작게 붙이는 한이 있더라도 필수적으로 붙여야만 한다고 설득을 하는 것이죠. 저도 실제로 겪어보고 더 알게 됐어요. 어느 날 암전 중에 전환을 하러 무대에 들어갔다가 나오면서 뭔가에 걸려 콰당 넘어졌거든요. 제가 해놓은 마킹이 있었는데도요. 무대 안에 있는 감각은 또 다르더라고요. 연출님들도 한 번 암전 중에 움직여 보시고, 역지사지를 해보시는 것도…(웃음).
성수연
(웃음) 그리고 무대에서 조명을 받으며 있다가 암전이 되면 더 안 보일 때도 있어요.
박진아
맞아요. 순간적으로 아무것도 보이지 않잖아요. 가끔 암전 중에 배우들이 퇴장해야 하는 상황인데, 연출 입장에서는 그 암전의 길이가 짧으면 좋을 때가 있어요. 그럴 때 연출님들과 이런 대화를 나눠요. “물리적으로 15초 정도의 암전이면 배우들이 다 나갈 수 있나요?”, “아뇨, 그런 것은 없고, 우리가 약속을 하면 될 것 같아요. 시간 약속이 아니고, 배우들이 다 안전하게 퇴장했는지 확인하고 제가 콜을 드리는 것으로요. 그때 다음 큐 가는 것으로요”. 이런 식의 약속들을 만들어요. 시간에 쫓기면, 그러다 사고가 나기 때문에, 배우님들이 아무리 몸에 익어서 할 수 있게 되어도 약속은 지켜야 해요.
성수연
맞아요. 사실 공연을 하다 보면 몸이 알아서 익히는 것들이 있기 때문에 몸을 믿고 움직이면 될 때도 있어요. 그런데 외부에 어떤 상황이 생길지 알 수 없으니까요.
박진아
그리고 사실 감각이기 때문에 컨디션에 따라서도 굉장히 다를 거라고 생각해요.
성수연
맞아요. 컨디션에 따라 유독 암전 때 앞이 안 보일 때도 있고, 그럴 때면…
박진아
손부터 내미시죠(웃음)?
배우 성수연과 무대감독 박진아가 하얀색 테이블에 마주 보고 앉아 있다. 성수연이 양팔을 좌우로 벌리고 있고, 박진아는 그 모습을 보고 웃고 있다.
배우 성수연과 무대감독 박진아가 테이블 건너편에서 오른팔을 내밀어 서로의 손을 꽉 쥐고 있다.
성수연
네(웃음). 간절하게 막.
박진아
배우들의 그런 모습이 SM데스크에서 보이거든요(웃음).
성수연
다 보시겠구나, 진짜(웃음).
박진아
저도 배우들과 비슷하게 감각이 엄청 예민해지기도 해요. SM데스크가 없고 적외선카메라가 없는 극장에서는 발소리로 상황을 감지하는 경우들이 있고요. 저는 눈이 조금 안 좋은 편인데, 어떤 상황에서는 초인적인 눈의 능력치가 생겨서 막 보여요.
성수연
공연 끝나면 너무 피곤하실 것 같아요.
박진아
아마 배우님들만큼은 아니겠지만 사실 늘 엄청 곤두서 있죠.
성수연
그래도 1인극이 아닌 이상에야 배우들은 퇴장해서 숨도 고르고 하는데, 오퍼레이터님들과 무대감독님에게는 사실 1인극이나 다름없네요.
박진아
거의 모니터에서 눈을 못 떼고 계속 보고 있지요. 한 번은 공연 때 정전이 된 적이 있었는데, 상황을 수습하느라 정말 미친 듯이 뛰었어요. 다음 날 약간 몸이 아프더라고요.
성수연
아플 만하죠. 왜 정전이 되었어요?
박진아
한전 공사 중 뭐가 잘못 건드려졌는지, 혜화역 1번 출구, 2번 출구 뒤쪽 한 구역이 아예 싹 정전이 된 적이 있어요. 저희는 그래도 한 7분 만에 공연을 재개했어요. 다른 극장에서는 어땠을지 모르겠어요. 안전과 관련한 체계적인 시스템을 보유한 극장이 있기도 하지만 사실 그렇지 않은 극장도 많기 때문에. 그래서 저는 안전 매뉴얼을 따로 제작을 한 적도 있어요.
성수연
어떤 항목들이 들어있나요?
박진아
일단 정전, 기계 셧다운 등 기계에 관한 물리적인 부분들이 있고요. 화재, 지진 등의 비상상황에 관한 부분이 있고, 사실 가장 중요한 것은 배우의 부상과 관련된 부분이에요. 그에 관한 이야기를 제일 많이 하고, 약속을 만들어요. 어떤 신호를 만들고, 대처 방식에 대해서도 논의하고요. 실제로 그 안전 매뉴얼을 만들었을 때, 당시 극장에는 제세동기가 없었어요. 그래서 심폐소생술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을 미리 체크 해놓고, 가까운 곳에 있는 제세동기 위치를 확인하고 사진을 찍어 공유해두기도 했어요. 그런 일들을 하다 보니 든 생각이 있는데요. 가장 안전이 필요한 곳에 안전과 관련된 시스템이나 담당자가 없구나. 저는 어쩌면 열악한 환경의 극장에서 올리는 공연에야말로 정말 무대감독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환경적 제약과 시간적 제약이 많으니까요. 무대감독이 있으면 말 그대로 시간을 아낄 수 있고, 모든 사항을 좀 더 안전하게 정리할 수 있거든요. 그런데 현실적으로 그런 공연일수록 예산이 적으니까 무대감독 없이 공연을 하게 되는 경우가 많잖아요.
무대감독 박진아가 직접 만든 안전 매뉴얼의 일부 내용. 불가항력적인 문제로 인한 비상 상황 시 관객 안내 멘트와 공연 구성원들이 수행해야 할 일들이 적혀 있다. 그중 공연 구성원들이 수행해야 하는 내용은 다음과 같다. “무대 위, 분장실 안 모든 배우는 움직임을 멈춘다. 무대감독이 무대 위로 나와 안내멘트를 한다. (손전등, 아이패드 이용) 안내멘트 후 배우들 분장실로 이동. 스태프들은 핸드폰, 손전등을 이용해 극장에 불을 비춘다”.
성수연
맞네요. 체계적으로 잘 갖춰진 공연에 보통 무대감독님이 계시고, 그런데 또 흥미로운 건 그렇게 다 갖출 수 있었던 프로덕션은 이미 또 어느 정도 안전이 확보되어 있는 극장에서 공연을 올릴 확률이 높네요.
박진아
안전함이 확보가 안 되는 곳에 무대감독 역할이 더 필요한 거죠. 결국 그 일들을 다른 사람들이 나눠서 할 텐데, 물론 잘하는 분들도 많지만, 배우분들은 연기에 집중하고 연출분들은 연출에 집중하고 조연출분들은 조연출 역할에 집중할 수 있으면 더 좋잖아요.
성수연
그러게요. 그런데 또 최소한의 인원으로 여러 시도를 하는 공연도 많지요.
박진아
네. 여러 창작자들이 지원금 없이도 공연할 수 있는 생태계를 만들려는 시도를 하고, 그게 우리가 지금 활동하고 있는 이곳의 여러 시스템에 대해 질문을 만든다는 점에서 엄청난 발전이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한편으로는 스태프 없이 공연을 만드는 경우들도 생기니 설 자리가 점점 작아지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해요(웃음). 더군다나 저는 디자인 스태프가 아니기 때문에 더 고민이 많이 되었죠. 어쩌면 필수적인 역할은 아닐 수 있으니까요, 무대감독은.
성수연
사실은 필수적인 역할인데.
박진아
그런 고민이 많이 돼요. 요즘엔 배우분들도 그렇고 연출분들도 그렇고 1인 공연을 많이 하잖아요. 배우가 연출을 하면서 출연도 하는 1인극.
성수연
죄송합니다. 그게 전데요.
박진아
아니, 아니에요(웃음). 많은 분들이 그런 작업을 하실 때, 어쩌면 단계가 줄기 때문에 무대화를 하는 과정이 훨씬 수월할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안전을 담당하는 역할의 필요성을 인지하면서도 예산 문제로 포기하는 경우에 대해서도 너무 잘 알고 있고요. 그래서 저는 연극협회나 문화재단들에서 좀 나서서, 기본 매뉴얼을 만들어 배포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대학로 현장의 실제적인 상황을 반영해서요. 그렇다면 그 매뉴얼을 기본으로 각 극장이나 공연의 특성에 맞게 수정해서 각각의 공연에 맞는 매뉴얼을 갖게 될 수도 있으니까요. 그와 더불어서 지금 대부분의 소극장에는 제세동기 등 안전과 관련한 중요한 물품들이 구비되어 있지 않은 경우가 많아요. 재단이나 협회처럼 재원이 있는 쪽에서 구비해놓고 대여를 해주신다든지, 이런 방향으로 힘을 써주시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작은 극장이라고 해서 심장과 관련한 사고가 안 벌어질까요? 무대감독 역할로서도 그렇고, 할 수 있는 부분들은 개인이 열심히 하겠지만 사실 큰 단체에서 여러 제반을 만들어주시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성수연
그렇게 된다면 좋겠네요. 정말 많은 것들을 살피고 계시는데, 이 일이 적성에 잘 맞으세요?
박진아
적성에는 맞는 것 같아요. 주변 사람들은 저에게 일할 때 빼고는 손 많이 가는 사람이라고 얘기하지만요(웃음). 일할 땐 조금 넓게 보려고 하고 하나하나 사사건건 간섭하고 꼼꼼하게 체크하려고 하는데, 성격에 맞는 것 같아요. 이런 제가 힘든 사람들도 있겠지요.
성수연
든든하겠지요.
배우 성수연. 슬며시 미소를 머금고 태블릿 PC에 연결된 키보드에 손을 얹고 있다.
박진아
그러고 보니 애초에 공연 보는 것을 좋아해서 이 일을 시작한 건데, 다른 공연을 보기가 어려워서 아쉬울 때는 있어요. 지금도 공연 보는 것을 정말 좋아해요. 그래서 직업을 잘못 선택했나, 보는 게 좋았다면 이 일을 해서는 안 됐구나 싶을 때가…(웃음)
성수연
저도 원래 공연을 좋아해서 연기를 하게 됐는데, 어느덧 일하는 마음으로 공연을 볼 때가 많아져서 슬퍼요.
박진아
맞아요. 일하는 마음과 무조건적인 팬심이 반반씩 있는데…(웃음). 그래도 여전히 공연을 보는 것은 좋아요. 창작자들이 들려주려는 이야기가 궁금하고요.
성수연
저도 아주 오랫동안 연기를 하고 창작을 하고 싶어요. 세부적인 방향에 대한 고민은 있지만요. 진아 감독님은 언제까지 무대감독 일을 하고 싶으세요?
박진아
이 얘기를 사실 다른 무대감독 친구들과 정말 많이 했었어요.
성수연
아, 그러셨군요. 그런 고민을 하시는 시기인가요?
박진아
네. 일을 할 수 있는 시간과 체력이 한정되어 있으니, 농담 반 진담 반으로 45세쯤엔 이렇게까지 뛰어다니지는 못할 것 같다는 이야기를 친구들과 나눴는데…(웃음) 지금 활동하고 있는 무대감독님들도 많지만, 특히 소극장 쪽엔 더 많은 무대감독님들이 왔으면 좋겠어요. 더 많은 무대감독님들이 생기면 좋겠다는 생각을 계속 해요. 아직은 잘 모르겠어요. 무대감독이라는 역할을 함께 할 수 있는 동료를 더 많이 만들고 싶은 것 같기도 해요. 능력이 된다면 자격증도 따고 싶고요. 전공자가 아니더라도 무대감독을 할 수 있는 어떤 커리큘럼들을 만들어서 이 일을 해보고자 하는 친구들과 함께 공부하고 싶은 욕심도 있어요. 실제로 학교에서 무대감독의 역할을 세세하게 배울 수 있는 수업이 많지는 않다고들 하더라고요. 물론 아카데미나 인력개발원 등에는 있다고 하는데 한정적인 인원만 수용하잖아요. 아마 결국 무대감독을 창작자로 보기보다는 기술인력으로 보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것이 아주 틀린 이야기는 아니라고 생각하고요.
성수연
꼭 하시면 좋겠어요. 안전과 관련한 부분을 만들어 공유하는 일도 그렇고 어떤 네트워킹을 계속 떠올리시는 게 아닐까 싶은데, 모두에게 좋은 일이 될 것 같아요.
오늘 의미 있는 이야기를 많이 나눠주셨네요. 감사합니다. 그럼 질문 주고받기를 하며 대화를 마무리하면 어떨까요?
박진아
좋아요. 감사합니다.


박진아와 성수연, 창 밖으로 보이는 대학로 풍경을 함께 바라본다.
 
배우
공연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가장 긴장될 때가 언제야?
무대감독
연습실에서 스태프들이 다 모여서 리허설 보고 있으면 기분이 어때?
배우
공연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가장 뿌듯함을 느끼는 순간이 언제야?
무대감독
배우로서 무대감독에게 바라는 게 있다면 어떤 것들이야?
배우
무대감독으로서 배우에게 바라는 게 있다면 어떤 것들이야?
무대감독
배우는 아플 때 어떤 생각을 해?
성수연
너는 아파도 이 일을 계속하고 싶다고 생각해?
박진아
‘쇼 머스트 고 온’이라는 말이 꼭 지켜져야 한다고 생각해?
성수연
너라는 사람에게 머스트 고 온 해야만 하는 일이 있다면, 그건 뭐야?
박진아
너 연출을 해봤잖아. 천만 원 받고 연출하기와 백만 원 받고 연기하기 중 무엇을 선택할래?

[사진: 김지성 jasonk1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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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수연(파이리)

성수연(파이리) 본지 편집위원
배우, 창작자. 다양한 형태의 연극작업을 하고 있다.
인스타그램: @sooyeons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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