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 진행형의 역사: 극단 아리랑
[창단 3040 극단] 다섯 번째 이야기
김슬기_공연저술가
제95호
2016.07.07
일시: 2016년 6월 27일 월요일 4시
장소: 서울연극센터 아카데미룸
사회: 최윤우
참석: 김명곤, 고동업, 송태성, 김수진, 한동규, 김동순
구성 및 편집: 김슬기
일시: 2016년 6월 27일 월요일 4시
장소: 서울연극센터 아카데미룸
사회: 최윤우
참석: 김명곤, 고동업, 송태성, 김수진, 한동규, 김동순
구성 및 편집: 김슬기

* 극단 아리랑은 1986년 동명의 공연 <아리랑>을 시작으로 지난 30년간 전통 연희의 현대화를 표방한 작품들을 발표해왔다. 세대가 바뀜에 따라 극단의 대표를 승계해가면서 새로운 움직임을 만들고자 했으며, 1996년 개관한 아리랑 소극장은 2015년 문을 닫기까지 20여 년에 이르는 세월 동안, 아리랑의 레퍼토리를 공연하는 동시에 극단 운영의 현실적인 방법들을 고민하고 적용해보는 공간으로 기능했다. 2009년부터는 사회적 기업 활동을 통해 보다 많은 시민들과 함께 연극을 만들고 그 가치를 공유하고 있으며, 2016년 구로아트밸리의 상주단체로 선정되어 최근 <하얀 동그라미 이야기>를 공연했다. 오는 10월, 창단 30주년을 기념해 아리랑의 역사와 현재를 돌아보고 향후 활동들을 기약하는 페스티벌로 새롭게 관객들을 만날 예정이다.
최윤우
- 최윤우
- 웹진 [연극in] 에서는 올해로 창단 30, 40주년을 맞이한 극단들의 이야기를 통해 이 시대 연극 창작의 주체로서 극단이 처한 현실을 진단해보고 앞으로의 향방을 고민해보는 기획 좌담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그 마지막 순서로 극단 아리랑의 30년을 함께 얘기해보고자 합니다. 김명곤 전 대표님, 배우이자 연출가로 활동하고 계신 고동업 선생님, 기획 일을 담당하셨던 송태성 선생님, 현재 극단을 이끌고 계시는 김수진 대표님, 그리고 한동규 배우님, 김동순 배우님 함께 자리해주셨습니다.
극단 아리랑은 1986년 서울 사범대 연극반에서부터 출발한 극단입니다. 창단 당시 연극계 상황과 더불어 아리랑을 창단하기까지 고민하셨던 것들, 그리고 지향하셨던 것들을 먼저 말씀해주시겠어요?
운동이 아닌 예술로서 시대를 고민하는 연극
김명곤
- 김명곤
- 아리랑을 창단했던 건 1986년의 일이지만, 그 배경에는 70년대 중반에서 80년대에 대두되었던 새로운 연극 운동의 영향이 있습니다. 당시는 탈춤과 마당극을 기반으로 전통을 현대화하면서도 시대에 대한 고민을 담아내는 대학 연극반의 활동이 두드러졌던 시기였거든요. 하지만 마당극과 무대극 사이에는 그 방향성에 있어 분명한 차이가 있었고, 아리랑 창단은 그러한 한계를 극복하고 보다 자유로운 연극을 만들어보려는 시도였습니다.
- 최윤우
- 무엇보다도 아리랑은 지난 30년간 몇 차례 대표가 바뀌고 그에 따라 극단의 활동에 있어서도 유연한 변화가 시도되었다는 점에서 여타 극단들과는 다소 다른 행보를 보여줬던 것 같아요.
- 김명곤
- 주로 제가 작품을 만들었던 당시에는 시대의 아픔과 현실적인 이슈들에 대해 깊이 있게 표현해보려는 욕구가 있었습니다. 그러다보니 민주화나 산업화, 통일에 대한 문제들을 다루게 되었고, 분단된 예술관을 극복해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어요. 그 후에는 시대가 변하면서 자연스럽게 좀 더 다양한 주제들을 다루게 되었고, 세대가 교체됨에 따라 창단 때와는 또 다른 양상의 작업들을 해나가게 된 거죠.
- 김수진
- 아무래도 창단 당시부터 90년대 중반까지 아리랑의 활동은 연극이 사회적으로 어떤 역할을 했는지, 그 기능과 관련해 생각해볼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당시 연극은 일종의 미디어였고, 메이저에서 다뤄지지 않는 문제들을 폭로하는 창구라고 인식되었으니까요. 하지만 90년대 중반 이후로는 예술 작품으로서 연극의 완성도를 높이는 데 집중했던 것 같습니다. 특히 제가 입단했던 1997년 즈음에는 막 소극장 아리랑을 개관했을 때라, 공간을 기반으로 창작이 활성화되고 단원들도 늘어나기 시작했죠.
- 고동업
- 저는 일찌감치 아리랑에 스카우트된 배우입니다(웃음). 1985년에 연우무대에 워크숍 단원으로 들어갔고, 김명곤 대표님을 만났던 건 세실극장에서 <이수일과 심순애>를 공연하고 있을 때였어요. <갑오세 가보세>라는 공연을 준비하면서 배우를 구한다고 하셨죠.
- 김명곤
- 처음에 <아리랑>을 올리고 신문에 공고를 내서 5명의 단원을 뽑았어요. 그 이후 <장사의 꿈>이라는 2인극을 한 편 더 공연했고, <갑오세 가보세>를 하면서 20~30명 나오는 대작을 올리려다 보니 많은 배우들하고 호흡을 맞춰야만 했습니다. 이어서 <인동초>, <불감증> 같은 작품들을 통해 지금까지 꾸준히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배우들이 아리랑에 들어왔어요. 당시의 단원들은 대개 아리랑에서 10여년 이상 활동하다가 지금은 방송작가, 촬영기사, 기획자 등 각자의 길을 가고 있습니다.
- 최윤우
- 아리랑의 현재 단원 현황은 어떻게 되나요?
- 김수진
- 극단을 거쳐 간 이들은 정말 많지만, 현재로서는 50여명 정도가 아리랑에 몸을 담고 있습니다. 상근단원이 8명 정도 되고요.
- 고동업
- 단원들이 나이를 먹어가면서 자연스럽게 외부 활동이 늘게 되잖아요. 아리랑에서는 이런 현실적인 상황을 고려해 상근단원과 자율단원을 나눠서 후배들이 중심이 되고 선배들은 외부 활동을 겸해 호흡을 맞추는 시스템을 정착시켰죠.
송태성
- 송태성
- 창단 이후 한동안은 방학 때마다 연극교실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단원들이 모이게 됐었고 오디션을 통해서 단원을 모집했던 건 1995년 즈음이었어요. 그래서 저는 제가 공채 1기라고 이야기하는데요. 처음에는 배우를 하고 싶어서 들어왔지만 연기만 하는 것보다 좀 더 쓸모 있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생각해서 조명을 배웠죠. 그때는 배우 이외에도 연출, 무대, 기획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단원들을 모집했던 것 같아요.
- 김명곤
- 1989년도에 <아시아의 외침>이라는 작품으로 유럽순회 공연을 다니면서 보고 느꼈던 것들이 있습니다. 당시 유럽에서는 이미 정치연극, 혹은 68세대의 왕성했던 소극장 운동과 같은 흐름이 거의 사라지고 없었죠. 우리도 머지않아 그런 시대에 직면하게 될 테고, 그렇게 되면 단지 사회적 이슈만으로 연극을 만들 수 없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아리랑은 물론이고 다른 민족극 단체들에게도 독자적 예술성을 추구해야 한다고 항상 강조했죠.
그런데 마침 그 즈음 예술극장 한마당이 만들어지고 그 운영을 아리랑이 맡아 하면서 소극장 운영에 대한 노하우를 쌓아가고 있었거든요. 돈을 내고 연극을 보러 오는 관객을 만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조금은 다른 차원의 고민이 시작된 거죠. 창작에 집중하다 보니 연출과 배우는 양성이 됐지만 기획, 제작, 홍보마케팅 등의 분야는 상대적으로 취약하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하지만 이런 전문적 역량을 확보하지 못한다면 극단도 살아남을 수 없을 거라 판단해 여러 분야의 인력들을 모집하기로 한 거죠. - 송태성
- 극장을 토대로 기획 영역의 인력들이 들어오면서, 한 작품 하고 1년간 쉬다가 다음 작품을 준비하는 시스템이 점차 개선될 수 있었어요. 극장 대관이 잘 되는 시기에는 다른 곳에 가서 우리 공연을 하고, 그렇지 않을 때는 우리가 극장을 사용하면 됐으니까요.
- 최윤우
- 김동순 배우님도 오디션을 통해 입단을 하신 거죠? 극단에 들어오기 전 관객으로서 아리랑의 공연은 어떻게 보셨는지요.
- 김동순
- 저는 1998년도에 극단에 들어왔어요. 그 전에는 춘천에서 직장을 다니면서 연극 활동을 했는데, 보다 본격적으로 연극을 해보고 싶어서 서울에 왔죠. 한 1년 동안은 대학로 연극을 엄청 보러 다녔어요. 그때 아리랑에서 <점아점아 콩점아>를 공연했는데, 정말 놀라웠죠. 그 작은 무대에서 상자가 넘어지면 관이 되었다가 인형도 나왔다가 하는데 이런 연극성은 처음 접해본 거였거든요. 그 공연을 보면서 이 정도의 상상력을 발휘하고 그걸 구현할 수 있는 곳이라면 나도 여기서 연극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 김명곤
- <점아점아 콩점아> 같은 공연은 굿이라는 형식을 어떻게 연극으로 만들 수 있는지, 연희단거리패의 <오구>와 더불어 당시 연극계의 대표적인 논쟁의 중심에 있었죠. 그런데 아리랑의 공연들이 주로 시대의 첨예한 이슈들을 다루다보니 여러모로 화제가 되곤 했어요. <격정만리>는 의도치 않은 이념 논쟁에 휘말려 서울연극제 공연 취소라는 초유의 사태에 직면하기도 했죠.
그래서인지 아리랑에서 작품을 하면 운동권 연극, 혹은 좌파 연극이라고 분류하는 경향이 있었고, 그 근저에는 아리랑이 예술을 하는 게 아니라 운동을 하는 거라는 편견이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저는 어떤 주제로 연극을 하느냐가 아니라 그 주제를 어떻게 연극적으로 표현하느냐가 중요하다고 늘 강조해왔거든요. 이념 취향에 예술을 희생시켜서는 안 되니까요.
김동순
같은 꿈을 꾸는 사람들의 열린 공동체
- 김동순
- 그런데 무엇보다도 아리랑은 작업이나 생활에 있어 단원들 사이에 불필요한 권위의식이 없었어요. 선후배를 떠나 작품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얘기할 수 있었고, 배우임에도 불구하고 연출적이고 작가적인 고민을 통해 작업에 주도적으로 참여할 수 있었거든요.
- 송태성
- 재정적으로 투명했던 것도 아리랑이 이렇게 유지되기까지 큰 힘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수익과 지출을 공유하고, 이제 막 극단에 들어온 단원도 대표와 동일한 발언권을 가지고 그에 대한 자기 의견을 얘기할 수 있었죠.
- 한동규
- 저는 2000년에 입단했는데, 마침 선배가 이 극단에서 활동하고 있어서 고민할 이유도 별로 없었어요. 다만 한 극단 안에 특정 대학 출신이 너무 많으면 안 된다고 해서 빌다시피 해서 들어온 기억이 있고요(웃음). 그런데 아리랑은 극단이 거의 생활 공동체에요. 저도 극단에서 만난 사람과 결혼했는데, 그간 부부가 된 이들만 14쌍이나 되니까요.
- 김수진
- 이전에는 극단이 예술적, 사상적 공동체로서 유지되었던 시절이 있었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지금 아리랑은 연극적으로 같은 꿈을 꾸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입니다. 특히 아리랑이 사회적 기업이 된 이후에는 단원들이 계속 상근을 하게 되니, 매일 모여서 작업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되었거든요. 정식 공연의 형태는 아닐지라도 다양한 맥락에서 생각을 모으고 그것들을 구현해보려는 실험들을 해나가고 있습니다.
- 최윤우
- 그렇다면 아리랑을 통해서 분화된 움직임들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혹은 현장의 다른 연극인들과 어떻게 협업하고 계신지 얘기해주셔도 좋을 것 같아요.
- 김명곤
- 창단 이전을 보자면 연우무대와 한두레라는 단체에서 아리랑과 극단 현장, 극단 한강이 나왔고, 그 외에도 지방의 많은 단체들이 있었죠. 그리고 아리랑 출신의 방은미 대표가 만든 극단 나비, 고동업의 신화극장, 그밖에도 극단 신명나게, 극단 청명 등이 있고, 기획 제작을 하고 있는 경우도 있어요.
- 김수진
- 이렇게 다양한 움직임들로 분화되는 게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한 극단에서 그 모든 것을 소화하는 게 불가능하니까요. 저희가 농담 삼아 쓰리랑을 만들어서 아리랑에서 할 수 없는 것들을 해보자는 얘기도 하는데요(웃음). 이렇게 아리랑을 거쳐 갔던 현장의 다양한 작업자들하고는 지금도 계속해서 유연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협업하고 있어요.
- 고동업
- 최근에 오세혁 작가가 쓴 <게릴라 씨어터>를 아리랑에서 공연했는데, 제가 걸판 초반에 연기 워크숍 같은 것들을 같이 했거든요. 그 사이에 아리랑에서 제가 쓰고 연출했던 작품을 걸판에서 공연하기도 하고, 그걸 바탕으로 새로운 작품을 만들기도 했고요. 이런 식으로 교류하면서 작품을 업그레이드하는 활동은 앞으로도 계속 이루어질 것 같습니다.
- 김명곤
- 무엇보다도 극단의 창작 역량을 어떻게 길러낼 것인지가 중요한데, 굳이 아리랑 안에서만 해결할 필요는 없다고 봐요. 주변에 뛰어난 예술적 인재들을 찾고 같이 작업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개방된 시스템을 구축해야죠. 동인제를 프로덕션으로 전환하겠다는 차원이 아니라 좋은 작품을 위한 기반을 갖추겠다는 겁니다.
- 최윤우
- 한편으로는 아리랑 바깥에서 다양한 연극인들을 만나고 여러 작업들에 참여하시면서 이 시대 연극에 대해 고민하시는 것도 있을 것 같아요. 아리랑 후배들과는 어떤 것들을 공유하고 계신가요?
한동규
- 한동규
- 저는 일찌감치 자율단원으로 활동을 시작했는데, 운 좋게도 계속 작업의 기회들을 얻을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그렇다보니 그간 다양한 연출과 배우들을 만나게 됐는데, 그 경험을 아리랑 후배들하고 나누려고 해요. 주로 연기술에 대한 얘기인데요. 이를테면 요즘 관객들은 참 빠르잖아요. 그에 비하면 아리랑의 연극 스타일은 너무 친절하고 설명적이라고도 할 수 있죠. 그것을 어떻게 아리랑만의 방법으로 헤쳐 나갈 수 있을지, 관객들보다 한 발짝 앞서 나갈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지 같이 고민하고 있어요.
- 김수진
- 요즘은 연극이 대형 공공극장에서 하는 것과 소극장에서 하는 것으로 양분된 것 같다는 인상을 받습니다. 심지어는 관객층도 조금 다른 것 같고요. 이런 맥락에서 아리랑이 해야 하고 할 수 있는 예술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됐어요. 좀 전에 템포 얘기를 하셨는데, 저는 한편으로 지금의 관객들이 자기표현 욕구가 강하다고 느끼거든요. 예전의 관객들은 연극이 전달하는 메시지를 받아들이고 그걸 찾기 위해 분석적으로 연극을 봤지만, 지금은 자기만의 스토리를 창조해내는 관객들이 연극을 찾아요. 그런 욕구를 어떻게 충족시킬 수 있을지 고민하는 것이, 우리처럼 자본이 없고 작은 단체가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이 되리라고 봅니다.
- 김명곤
- 고민의 내용이 각자의 입장에 따라 조금씩 다를 거예요. 관객들도 공연을 보러 올 때 저마다 기대하는 바가 다르니까요. 그렇다보니 예술적 동지의식이나 연극에 대한 헌신 같은 것들이 퇴색한 것도 사실입니다. 연극의 예술적, 사회적 위상이 무너져 가고 있는 게 굉장히 안타깝긴 하지만, 현실적으로 그것만을 요구하기에는 어려운 시대가 됐다는 것도 부인할 수 없습니다.
- 김수진
- 한편으로 아리랑은 사회적 기업으로 활동을 시작하면서 연극이 어떤 역할을 해야 하고, 어떤 사람들과 만날 것인지 이전과는 또 다른 질문들을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지금으로서는 여러 가지 사업들 중 특히 커뮤니티 연극에 상당히 관심을 가지고 있는데요. 일반 시민들을 만나 그들을 통해서 연극의 소재를 얻기도 하고 새로운 작업도 만들어보려 하고 있어요. 물론 그 이후 극단의 복지가 좋아져서 단원들이 모두 4대 보험에 가입하고 월급을 받아가게 된 것도 큰 변화라 할 수 있죠.
이 시대, 극단으로서 연극을 한다는 것
- 최윤우
-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는 극단도, 이제 막 시작하는 젊은 극단들도 이 시대 연극을 만들면서 생존의 문제를 피해갈 수는 없는 것이 지금의 현실인 건 분명해 보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결국 작업과 창작, 극단의 방향성과도 긴밀히 연결되어 있겠지요.
- 김명곤
- 내 기억으로는 <아리랑>도 흥행이 잘 되어서 거기서 생긴 돈으로 사무실을 얻었고, 아리랑 소극장도 <배꼽춤을 추는 허수아비>의 흥행 수익으로 마련한 거였어요. 그때 연극은 무엇보다 대학가에서 인기가 많았고 관객을 만날 수 있는 기회는 얼마든지 열려 있었죠. 그런데 지금은 시대가 변하고 관객층도 달라졌어요. 이러한 변화는 결국, 극단이 활동을 지속하려면 시대와 사회, 그리고 관객과 어떻게 소통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필수적이라는 사실을 직시하게 만듭니다.
- 최윤우
- 그렇다면 아리랑은 지금 이 시대 극단의 정체성에 대해 어떤 생각들을 하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김수진
- 김수진
- 사실 지금 아리랑에서 하고 있는 작업들에 대해 옛날만 못하다는 평가나 아리랑에서 왜 이런 작품을 하느냐는 질문을 듣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작업들을 2000년대 이후 아리랑이 내용적, 형식적으로 변화하고자 했던 시도의 연장선상에서 읽어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90년대 중반까지의 연극은 담론을 보다 직접적으로 다룸으로써 관객들의 공감을 얻었지만, 이제는 개인의 이야기를 통해 담론을 끄집어낼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리고 형식적으로는 전통연희를 중심에 두되 이것을 어떻게 우리만의 특성화된 방법으로 보여줄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습니다. <정약용 프로젝트> 같은 공연이 그런 노력이었는데, 물론 그것을 지속적으로 이어오지 못했다는 것도 알고 있어요. 그런데 선배들이 이뤄낸 연극적 업적들과는 또 다르게 우리의 연극을 찾으려면 실패의 두려움을 감수하고 다양한 시도들을 해야만 하잖아요. 지금 아리랑은 계속 그것들을 찾아가는 과정에 있습니다. - 고동업
- 현장에서 아리랑의 작업을 두고 이런저런 얘기를 들을 때마다 제가 하는 이야기가 있어요. 그래서 뭘 바라는 건데? 라고 물어보죠(웃음). 계속 지켜봐주시니 고마운 일이지만, 지금은 주변의 반응을 신경 쓰기보다 뭐든 해봐야 하는 것 같아요. 우리가 계속해서 예술을 하고 그 예술이 시대에 따라 변화해야 한다면 두려워 할 게 뭐가 있겠나 생각하는 거죠. 후배들이 주축이 되어 꾸준히 워크숍을 하고, 선배들은 같이 작업할 수 있는 틈을 보면서 기회를 만들고 있습니다.
- 송태성
- 사실 2000년대 후반에 들어 연극계 제작 시스템 자체가 많이 달라졌잖아요. 동인제에서 프로덕션으로, 기획에서 피디 체제로 바뀌었고, 극장도 늘어나기 시작했고요. 그 이후 기획 대행을 했던 팀들이 점차 사라지게 됐고, 대자본이 들어오면서 전용관 시대가 열린 거예요. 기존의 극단들이 활동을 지속하기에 결코 녹록한 상황이 아니었죠. 이런 시대적 맥락에서 보자면 지난 10년간 아리랑의 활동은 30년 이후를 준비했던 과도기라고 볼 수 있습니다. 선배들이 극단 작업으로부터 빠져 있던 원죄가 있기도 할 테지만, 전환의 시기에 필요한 것들을 잘 다져왔던 것 같아요.
- 김명곤
- 하지만 현실적으로 아리랑의 예술적 성과가 예전보다 못하다는 비판이나 지적이 있을 때는 그것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앞으로의 방향성을 모색하려는 자세도 물론 필요합니다. 역사가 30년 됐다고 반드시 잘하는 건 아니잖아요. 오히려 처음 시작할 때의 에너지와 열정, 치열함은 시간이 흐를수록 퇴색하고 긴장도가 떨어지기도 한단 말이죠. 다만 아리랑은 김명곤 한 개인의 흥망성쇠에 영향을 받은 게 아니라, 자연스러운 세대교체와 변화의 흐름에 따른 부침을 겪어왔기에, 향후 활동에 대해서도 별로 걱정하지 않습니다.
- 최윤우
- 그렇다면 이 시대 연극을 한다는 것, 극단에서 작업을 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요?
- 김명곤
- 결국 이건 아리랑만의 고민이 아니고 연극계 전반의 문제이면서 동시에 나의 화두이기도 한데요. 우리가 창단을 하고 30년의 세월을 지나는 동안 시대가 달라졌고 연극계 토양도 변모했잖아요. 연극을 했던 훌륭한 이들이 있었지만 이제는 사라진 이들도 많고요. 지금은 더더욱 연극이라는 장르가 위축되고, 연극인들도 생존의 위기에 처하게 돼버렸죠. 그러니 이럴 때일수록 왜 연극을 해야 하는지 질문하고 그것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극단을 유지해나가야 하는 것 같아요.
고동업
- 고동업
- 그런데 한편으로는 아리랑의 30년만 생각하더라도, 여전히 유효한 작품들이 있다고 생각해요. 그만큼 세상이 바뀌지 않았다는 거고 계속해서 싸워야 할 것들이 있다는 얘기겠죠. 그러니 아직 우리가 이루지 못한 것들을 얻어내기 위한 저력도 가지고 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최윤우
- 이제 오늘 좌담을 마무리하면서 올해 아리랑의 창단 30주년을 기념해 계획하고 있는 것들을 말씀해주시겠어요.
- 김수진
- 오는 10월 말, 한 달 정도 아리랑 30주년 기념 페스티벌을 기획하고 있어요. 10주년과 20주년에는 하나의 작품에 극단의 역량을 총동원했는데, 이번에는 극단의 역사를 돌아보고 현재의 활동과 앞으로의 방향성을 담아낼 수 있는 몇 개의 프로젝트를 하려고 해요. 먼저 <배꼽춤을 추는 허수아비>를 김명곤 선생님 연출로 다시 공연할 거고요. 지난 30년 동안 아리랑이 어떻게 연극을 만들고 여기까지 오게 됐는지 우리 이야기를 바탕으로 다큐멘터리 연극을 하나 만들 생각이에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간 저희를 꾸준히 지켜봐주신 관객들, 지금 아리랑과 교류하고 있는 시민 단체들과 더불어 관객이 만드는 아리랑 연극을 올리는 것으로 페스티벌을 마무리하려고 합니다.
- 최윤우
- 2012년 서울연극제에서 극단 아리랑이 <동백꽃>으로 자유참가작 작품상을 수상하셨을 때, 큰 박수를 받았던 것이 기억납니다. 그만큼 아리랑에 거는 기대와 관심이 크다는 얘기겠지요. 또 한편으로는 앞으로 아리랑의 활동에 대한 바람과 응원이 담겨있기도 했을 테고요. 극단의 30주년을 축하드리며, 올해를 기점으로 더 좋은 작업들을 해나가는 아리랑의 모습을 기대하겠습니다. 오늘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진: 장우제 woojejang@gmail.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