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사람을, 만났다
2030 연극인 모임
송경화_낭만유랑단 대표
제115호
2017.05.11
이번호 기획연재는 지난 4월 3일 혜화동1번지에서 진행된 ‘연극계 20~30대 창작자들의 토론회’ 현장을 담았습니다. 연극계 창작단체들이 고민하고 맞닥뜨리고 있는 다양한 이슈들이 특별한 진행이나 절차를 두지 않고 가감없이 서로의 의견을 개진하는 자리로 마련된 이 날 토론회에는 100여 명의 창작자들이 자리를 메웠습니다. 특정된 이슈를 선정하고 해결책을 모색하는 일반적인 토론회와는 달리, 있는 그대로의 현재를 함께 공유하고 서로의 고민을 나누는 자리로 진행됨으로써 창작자들이 현재 무엇을 고민하고, 어떤 화두를 갖고 있으며, 그것이 창작활동과 어떻게 연계되고 있는지를 목도할 수 있었다는 의견이 많았습니다. 이날 토론회에서 진행된 이야기들이 보다 많은 연극인, 독자들과 함께 공유될 수 있기를 기대해봅니다. -편집자 주
일시: 4월 3일 18시 30분
장소: 연극실험실 혜화동1번지
대상: 연극계 20, 30대 창작자
본 모임은 연극계 2030인들이
1. 자기 불평불만
2. 자기 문제제기
3. 자기 존재증명
을 하는 자리입니다. 의제를 제시하고, 해결책을 모색하는 단계보다는 서로의 모습을 확인하고, 또 어떤 이야기를 가지고 앞으로 모일 수 있을지, 우리라는 호칭이 가능할지, 연대로 발전해 나갈 수 있을지를 천천히 고민해보고자 합니다.
SNS와 다단계식 개별연락을 통하여 조심스럽게 2030모임이 제안되었다. 어떠한 의제도 없는 모임이었다. 아무도 안 오면 어쩌나 하는 최초발의자들의 우려와 달리 무려 100여명 이상의 2,30대 연극인들이 연극실험실 혜화동1번지에 모였다. 뿐만 아니라 작가, 연출가, 배우, 기획자, 평론가 등 다양한 군의 연극창작자들이 모였다는 것 또한 매우 고무적이었다.
시작 전, ‘힙하다’는 음악을 틀어보았지만 닟설음과 조심스러움으로 극장 안에는 긴장감이 돌았다. 진행을 맡게 된 전윤환 연출은 “우리가 이렇게 만나서 이야기해본 적이 없습니다. 오늘은 만남, 이라는 것이 가장 큰 목적인 듯합니다.” 라며 2030모임의 시작을 열었고, 이내 첫 모임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열정적인 대화, 경청, 공감, 존중이 5시간 내내 이어졌다.
1부(18시 40분~20시 20분)
첫 논의는 당시 SNS상에서 화두가 되고 있었던 ‘서울예술대학 대자보’였다. 이강호 배우는 대자보를 쓴 분이 학교 선배라며 “학교 내 폭력들, 선후배간의 관등성명 등 이전부터 쌓여온 문화들이 예술인으로서 당연한 과정으로 여기며 계속 침묵되어져 왔고, 대자보를 통해 공론화 된 것 같다.”며 “이전에도 문제제기가 많이 있었지만 현실을 부정하는 분위기였다. 연극계 내에서도 없지 않다고 생각한다. 어떻게 이 문제점들을 해결해나가야 할 지 함께 생각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심재욱 연출은 “당장 예술대학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전체의 문제가 아닌가 생각이 든다.”며, “예전에는 당연시 여겨졌던 것들이 세대가 바뀌면서 문제의식을 가지고 공론화 되고 있고, 분명히 변화하고 있다는 점에서 다음 세대에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거라는 희망이 느껴지기도 한다”고 했다.
다음은 지원사업과 지원사업을 시행하는 관의 태도 등에 대한 문제제기로 논의가 이어졌다. 잘 알려지지 않은 신생극단, 현장에서 막 활동을 시작한 창작자로서 겪는 가장 큰 어려움 중 하나가 공연의 기회와 제작비 마련이다 보니 본 모임 중 가장 열띤 대화가 오고갔다.
김모은 배우는 동료들과 함께 2016년 창작산실을 통해 올린 공연을 레퍼터리화하기 위한 방법을 모색 중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주최한 ‘2017년 문예회관과 함께하는 방방곡곡 문화공감사업’에 지원하였고 최종 선정되었다. 그러나 워크숍을 통해 알게 된 사실은 선정된 작품이라 할지라도 각지역문예회관의 선택을 받아야만 공연을 올릴 수 있다는 것이었다. “‘290개나 되는 민간예술단체의 리스트를 각 문예회관으로 발송하는데 누락되는 단체도 있지 않겠느냐, 그럼 누락되는 단체들은 어떻게 해 줄 것이냐’ 질문을 했더니, ‘그런 일이 있긴 하죠, 유감입니다’라고 하더라.” 워크숍 이후 김모은 배우는 극단 동료들과 문예회관에 일일이 전화를 걸어 단체와 작품을 소개했지만 어느 곳에서도 연락오지 않았다. 이러한 사례는 ‘듣.보.잡’인 신생극단이라면 일상적으로 겪는 배제의 양상이다. 공기관의 문화예술 지원 시스템은 안전장치가 없고, 지원제도 자체의 모순으로 인해 세대를 넘어 수많은 창작자들이 무력감과 열패감을 느끼도록 만들고 있다.
서울연극제의 ‘미래연극제((구)미래야솟아라)’ 심사와 관련한 2,30대의 분노도 끊이지 않았다. 공연관련전공자가 아니었던 설유진 연출은 “1차 서류심사를 붙고 2차 인터뷰심사에서 심사위원에게 내가 널 뭘 보고 뽑아주느냐는 말을 들었다. 그럼 왜 1차를 뽑았냐고 되물었다.”며, “미래야솟아라든, 뉴스테이지든 신진예술가 사업은 믿지 않는다”고 했다. 반면 2009년 창단을 한 이기쁨 연출은 “작년 처음으로 지원 신청한 ‘미래야솟아라’ 인터뷰 심사에서 당신이 지원할게 아닌데 하더라”며 “올해 제 나이는 34세”라고 밝혔다. “올해는 독을 품고 협회의 정단체로 등록 한 후 서울연극제에 선정되었다. 하지만 선정된 이후, 작품에 참여하는 배우와 스태프가 협회원 60%이상이 되어야 한다고 했고, 정단체, 정회원으로 등록하는 과정에서 많은 돈을 지출해야만 했다. 뿐만 아니라 제비뽑기로 결정된 극장과 공연 날짜 또한 번복하며 다른 극장으로 바꿔야만 했다”고 토로했다. 변영진 연출은 “작년까지 실행되었던 ‘미래야솟아라’는 1차 인터뷰 대상 팀을 공고하였고 그 중 최종후보는 홈페이지에 공지가 되었다 또한 역대 ‘미래야솟아라’ 선정 연출 중 한 번 더 선정되었던 연출은 단 한 명 뿐이었지만, 제7회 ‘미래연극제’에서는 1차 선정자에 대한 공고가 나지 않았고, 최종 선정자에 대한 심사평과 심사위원 조차 공개하지 않았다. 작년에 선정된 3명의 연출이 다시 선정되기도 하였다.”며 “협회 측에 문의하니 ‘이번 미래연극제는 젊은 팀들 발굴이 목적이 아니라, 젊은 연극을 발견하는 게 목적이다’(?)라는 답변을 들었고, 최종적으로는 담당자조차 심사기준을 모른다고 했다. 미래연극제에는 107개 단체가 지원하였다. 선정 기준과 선별과정에 대한 투명성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했다.
발언자와 경청자 모두, ‘젊은’ 연극인이라는 이유로 겪어야만 했던 차별과 배제의 순간들을 떠올렸고, 마음 깊은 곳에 꾹꾹 눌러 담아두었던 분노와 수치심으로 진동, 아니 진통해야했다, 그 울림은 옆에서 옆으로 전해져 더 크게 울렸고 또 울었다.
자연스럽게 ‘지원금 없이 건강하게 작업을 지속하는 방법은 없는가’에 대한 논의로 이어졌지만, 어느 누구도 시원한 대책 혹은 대안을 내놓기가 어려웠다. 제작비의 문제는 창작자의 희생, 소위 열정페이로 이어질 수밖에 없기 마련이다. 우리는 이미 열정페이로 신음하고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관이 그때그때 내놓는 지원사업 방향과 요즘 힙하다는 심사위원의 트렌드에 맞도록 자신의 예술세계를 카멜레온처럼 바꿔가며 영원한 지원금 헌터로 연명해나가야 한다는 것일까. 이여진 배우는 “기획서를 썼다고 하는 게 아니라 지원서를 썼다고 말하는 거 자체가 함정에 빠지는 것이다”라고 했다. 아아, 우리는 그동안 나의 예술이 지원할만한 좋은 것이라는 걸 증명하기 위해 그 뽀오얀 A4 용지들을 이면지로 전락시켰다. 대체 왜 우리 ‘젊은’ 연극인들에게 오래된 연극이 느껴져서는 안 된다는 것일까.
“읽어보지도 않을 것들을 대체 왜 써야하나?” (강훈구 작가·연출가)
“대관료, 식비, 인건비, 제작비... 이 모든 걸 내 돈으로 해결하는 것이 연출의 조건이라고 생각했다.” (최하은 작가·연출가)
“평생 창작 못 할 수도 있겠다, 라는 초라한 생각” (장병욱 연출가)
“지원사업이 되면 적절한 예술가가 된다.” (김기일 작가·연출가)
“국가나 정부에서 예술의 공공성에 대해 얼마나 생각했느냐 의문이 든다.” (이재민 연출가)
“연극은 소수자와 약자를 대변하는데, 정작 이 안에는 여성, 소수자, 장애인 차별이 아무렇지 않게 나온다.” (쭈야 기획자)
2부(20시 35분~22시 30분)
지원금에 관한 연출가들의 열기를 쉬는 시간으로 식힌 후, 배우들의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작가·연출가가 최전방에서 지원금을 받기 위해 애쓰고 있다면, 특히 ‘젊은’ 배우들은 그야말로 가장 후방에서 제작여건에 따라 고무줄처럼 출연료를 조정당하는 일이 부지기수다. 전민호 배우는 “한 집단 안에서 배우의 위상과 가치는 어떠해야 하며, 작품 안에서 그 노동력에 상응하는 인건비는 어떻게 환산 되어져야 하는가.”에 대한 물음을 던졌고, 최근 설립된 ‘공연예술인 노동조합’과 ‘예술과 노동’에 관한 논의로 이어졌다.
이창현 배우는 “공연예술인노조의 사측은 어디인가? 대형기획사? 지원금 주는 기관들? 우리랑 같이 못사는 연출들? 만일 제일 후자라면 뭔가 투쟁의 동력이 참 없겠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동료 배우의 죽음이 기사화되면서, 댓글에 하고 싶은 일 하다 죽었는데 세금으로 그들을 지원해야 하는가. 수많은 직장인이 힘들게 일하고 있다. 하고 싶은 일을 하는 대가를 치러야한다는 요지의 글이 올라왔다. 예술가가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받는 직업이라는 인식이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배우를 노동자라고 칭하는 것에 굉장히 동의한다.”고 말했다.
하고 싶은 일을 한다는 것이 어떻게 죽음의 대가로 치환 될 수 있는가. 여전히 예술이 천시되고 있는 사회인지라 예술가의 죽음 또한 쉽게 비난의 대상이 되는 것일까. 아니다. 아니다. 한국사회는 모든 죽음, 그리고 모든 삶을 조롱거리로 만들어 버릴 수 있는 비상한 능력을 가졌다. 애통하고 또 애통하다.
“자신은 배우를 노동자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밝힌 정대용 배우는 “그럼에도 예술인의 고용인, 즉 노동조합의 사측은 국가이며, 국가에서 사측이 되어준다”고 했다. 보이스 트레이너이기도 한 류미 연출가는 “영국의 국립극단이나 로열셰익스피어컴퍼니는 배우를 연기라는 기술을 가지고 있고, 여기에 가치를 두고 페이를 준다.”며 “연출도 연출의 기술을 가진 자이다. 외국에는 평생 조연출하는 사람도 있다. 조연출의 기술을 가진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고도 전했다.
권기양 연출가는 “예술가는 우리 사회의 공공재” 라고 말했다. 필자 또한 “문화예술은 모든 국민이 향유해야한다고 문화법에 적시되어 있다. 문화법이 제정되었다는 것은 우리가 하고 있는 모든 것이 공적 영역에 있다는 것이다. 공연예술인 노조가 생겼을 때에도 마찬가지로 댓글에, 왜 나의 세금으로 너네를 지원해야 하냐는 글이 많이 올라왔는데, 국가가 국민들에게 예술이 무엇이고 문화예술을 향유할 기회가 모든 국민들에게 왜 평등하게 주어져야 하는지 알리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생각을 전했다.
한편, 김기일 연출가는 “우리 안의 분배 문제에 대해서 한번쯤 생각해봐야 되지 않을까. 오히려 애초에 지원사업으로 받는 돈이 적더라도, 분배에 대해 엄밀하게 따져본 적 있는가 의문이 든다.”며 가장 원초적인 질문을 던졌다. 전윤환 연출가는 “연극 작업은 다양한 포지션의 사람들이 함께 만드는 공동의 결과물인데, 공연이 잘 되면 관심과 주목이 연출에게 쏠린다. 이 분배 또한 어떻게 할지가 우리의 숙제이다.”며 물질적 분배의 반대편, 작품성과 분배에 대한 질문을 던지기도 했다.
“모든 예술인은 공공재다. 우리는 국민 모두가 밟아야하는 풀밭이다.
국가는 국민이 파릇파릇한 풀밭을 밟을 수 있도록 유지시켜야 한다.” (설유진 작가·연출가)
예술의 공공성에 대한 논의는 ‘국립극단, 작가의 방’에서 글을 쓴 김슬기 이오진 작가의 발언으로 이어졌다. 공공극장으로서 지속적인 비난을 받아온 국립극단이 면피용으로 시작한 국내창작희곡개발 프로그램 ‘작가의 방’은 성과주의에 혈안이 된 국립극단이 참여 작가들과 상의 없이 경쟁구도 프로그램으로 바꾸면서 일이 벌어졌다. ‘젊은’ 창작자를 ‘교육’의 대상으로 바라보고 ‘젊은’ 창작자이기 때문에 프로그램의 목표와 의도 따위는 바뀌어도 괜찮다고 생각하고 ‘젊은’ 창작자들에게 ‘공연기회’를 빌미로 ‘젊은’ 창작자들에게 ‘갑’질을 하고도 그게 ‘갑’질인 줄도 알량한 ‘사과문’을 올려 여러 ‘젊은’ 창작자들을 분노에 빠지게 했다. 어렵게 입을 열은 이오진 작가는 “국립에서 7개월 동안 작업하면서 자신이 겪은 부당함을 부당하다고 국립극단에 이야기 하지 못했고, 작품이 선정되지 않은 이유 역시 페미니즘이라는 소재의 문제가 아니라, 작품을 잘 쓰지 못했기 때문인데, 작품이 떨어져서 목소리를 내려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창피했고, 스스로 당당하지 못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이어 김슬기 작가는 “국립극단이 작가를 도구로 여긴다고 느꼈다.”며 “국립극단에서 여기서 글 한 편 쓰고 갈 애가 필요하구나. 그래서 내가 여기 와있구나, 생각했다. 그들의 프로덕션 목적과 방향에 휩쓸렸고, 나 역시 내가 겪은 부당함에 대하여 발언 하지 못했다. 어쨌든 공연을 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연극계뿐만 아니라 한국 사회 전체가 ‘젊은’ 혹은 ‘청년’의 욕망을 이용하고, 그것을 쉽게 상업화하면서, 정작 그들이 겪는 부당함들을 개인의 문제나 능력 탓으로 일축하는 분위기가 만연하다. ‘젊은’, ‘청년’으로서 대상화된 우리는 너무나 쉽게 자신을 ‘가치 없는 인간’으로 여겨지게 만든다. 인간의 가치와 그 존엄성에 대하여 소리를 높여야 할 국립극단이 거꾸로 ‘젊은’ 창작자들의 가치와 존엄성을 짓밟았다.
“작가는 늘 지워지는 존재예요.” (김슬기 작가)
“우리의 존엄성은?” (김정 연출가)
3부(22시 40분~23시 30분)
긴 시간 이어진 모임에도 불구하고 정말 많은 사람들이 자리를 지켰다. 공연이나 연습을 마치고 모임에 참석한 2,30대 창작자들 또한 많았다. 그래도 집에는 가야하는 법, 거리가 먼 창작자들이 아쉬운 발걸음을 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극장 안에는 50여 명의 창작자들이 남아있었다. 2030모임에 참석한, 단 한 명의 연극평론가가 있었다. 애정어리고도 따듯한 리뷰를 써내려가는 김태희 평론가다. 난데없이 소개가 길었다. 4시간 만에 첫 발언이자 유일한 평론가인지라 반가운 마음에 힘주어 눌러써본다.
“평론가로서의 연극 활동이 어떤 상황인지 공유하고 싶기도 하고. 평론가에게 기대하는 바도 알고 싶기도 해서 여기 온 것도 있어요.”라며 ‘쓰리잡’ 뛰는 평론가로서 정체성이 직업이 될 수 있는가 고민 중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연극평론가의 삶이나 연극창작자들의 삶이나 다르지 않구나 싶어 조금 놀라웠다. “고액의 지원사업에 선정된 작가님이 인터뷰 중에 평론가들이 좋아하는 작품 정해져 있다고 했다. 본인은 떨어지면, 붙은 작품들 쭉 분석하고, 그거에 맞춰 작품을 쓴다는 얘기를 듣고 너무 쪽팔렸다. 그런 작품을 뽑고 있구나, 라는 게 정말 챙피했다.” 물론, 모든 평론가들의 좋아하는 작품이 일괄적으로 정해져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4년간 한국평론가협회에서 간사 일을 하면서 문예위 서류 작성을 했다. 재작년 공이모와 평론가협회의 지원금 결과보고서를 A4용지로 각 200쪽 씩 총 400쪽을 작성했다. 관이 원하는 대로 써주다 보니 한 달 내내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이런 것에 대한 논의도 분명히 필요하다. 다들 아시잖아요.”라고 했다. 김태희 평론가는 기고하는 글은 많지만 돈을 받는 작업은 하나도 없다고 했다. 젊은 평론가로서의 고뇌가 젊은 창작자로서의 고뇌와 많이 닿아 있었다. “평론가가 여러 작품을 봐야하는 의무가 있다고 생각하는데 물리적으로 그게 안 된다. 기성 선생님들 계시는 곳에 글 쓸 때는 자기검열이 작동한다. 어떻게 지원사업이나 잡지 지면에 구애받지 않고 글을 쓸 수 있을까 고민하고 있다. 하지만 평론을 아무리 써도 벽을 보고 이야기 하는 거 같다. 내가 쓰는 글을 누가 읽을까 고민한다. 창작자나 관객에게 전달이 되는 지도 잘 모르겠다.”고도 했다. 김태희 평론가의 말대로 ‘우리 사이에 넓은 강이 있는 것 같아’ 평론가와 창작자 간의 소통의 장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안고 있는 수많은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평론가와 창작자가 따로 또 같이 움직이는 힘이 반드시 필요하다.
서현민 배우는 “연극계 사태에 대해서 관심이 크게 없었다. 묵인하고 넘어가려고 했던 부분이 컸던 것 같아 죄송하다. 무명배우이긴 하지만, 사회적, 정치적, 연극계 이슈에 참여한다는 거 자체가 무서웠다. 다른 사람들이 저를 바라보는 시선 또한 두려웠다. 이제 더 이상 묵인하지 않으려고 한다. 우리가 어떻게 하면 겁내지 않을 수 있을까 하는 지점 또한 중요하게 느껴진다.”며 솔직한 심정을 이야기하기도 했다. 어쩌면 많은 동료들이 서현민 배우가 갖는 두려움에 떨고 있을지 모른다. 네 옆에 내가, 그리고 우리가 함께 서 있다는 믿음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러한 맥락에서 남아있던 창작자들 사이에서 2, 30대 간의 건강하고 지속적인 모임과 연대가 필요하다는 이야기가 스스럼없이 나왔다. 현재 학교에 재학 중인 정해린 씨는 “2030이라는 제목 때문에 올 수 있었다. 2030이라면 누구든 와도 될 것 같았다. 관심도 가고 발언하고 싶기도 한데, 먼저 내가 가도 될까 하는 마음이 들었다. 나 같은 애들도 많다”며 “2030이라는 이름으로 오프라인 모임을 지속하면 좋겠다.”고 했다. SNS를 하지 않는 동료들도 많고, 단체 채팅 창에서는 소통의 한계가 있기 때문에 오프라인을 통해 꾸준히 이야기 나누는 것이 중요하다는 의견으로 모아졌다. 가능한 모든 창구?텔레그램, 이메일, SNS, 개별연락, 오프라인 만남-를 동원해서, 이번 모임에 오지 못한 많은 동료들 또한 함께 할 수 있도록 손 내밀고 서로의 작업을 독려하기로 했다. 그리고 누군가들의 모임이 되지 않기 위해 발의문, 모임 진행, 기록 등의 일들을 돌아가면서 하자며 다음 모임을 기약했다.
5시간 동안 2030모임에 함께한 창작자들 모두 자신의 예술세계를 펼치고자 하는 욕망과 오랜 시간 쌓여온 연극계 안의 적폐들을 바꿔내고자 하는 열망으로 뜨거웠다. ‘만남’ 그 자체로 ‘연대’가 형성된 것 같은 착각과 환상은 필자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이 긴 글을 읽는 누군가는 불평불만 가득한, 답도 없는 질문만 난무했던, 무책임하고 수다스런 모임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맞다. 그렇다. 어쩌면 그것이 전부일지 모른다. 비록 그것이 전부일지라도 충분하다. 우리는, 사람을, 만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