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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가깝고 편안한 집, 창작실현의 초원 ‘플랫폼 팜파’

채민

제153호

2018.12.06

1. 찾아가는 길

서울 서대문구 연희로11마길 39

찾아간 곳은 극장이 아닌 집이었다.

"여기가 맞을까?"

긴 골목길을 바래다준 동행에게 물었다.

딛고 선 계단 위쪽으로 더 밝은 조명이 보였다. 아무래도 저기 위쪽인 것 같은데…

"벨 눌렀는데 아니면 어떻게 해?"

"… 튀어"

도움이 되지 않는 동행을 골목 밖으로 내보내고 다시 대문을 마주했다. 이곳이 아닐 경우를 대비한 핑계거리를 떠올리고 벨을 눌렀다. 대문을 열어주러 나온 이는 다행히도 내가 무엇을 하러 온 지 아는 눈치였다. 그녀의 안내에 따라 작은 마당을 지나 현관으로 들어갔다. 거실에 놓인 소파에 앉았다. 그림자가 생기지 않는 밝은 형광등 아래 양말을 신은 발이 어색했다. 그날 플랫폼 팜파는 무척 고요했다.
가장 가깝고 편안한 집, 창작실현의 초원 팜파

대초원이라는 뜻의 팜파는 연희동에 위치한 한 채의 집입니다.

가장 사적인 공간에서 지금 해야 할 이야기를 나누면서

쉬었다 갈 수 있는 공간으로 나아가려 합니다.

팜파는 건강하고 꾸준한 예술적 담론을 지향하는 창작실현 플랫폼입니다.

- 플랫폼 팜파 소개
2. 플랫폼 팜파의 2018년 기획프로그램 <살아보고 결정해>
2017년 개관 기획프로그램이었던 <집안전>이 전시에 중점을 두고 있었다면, 올해 연극릴레이<살아보고 결정해>는 퍼포먼스가 주를 이룬다. 굳이 ‘연극릴레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공연은 은연중에 관객에게 ‘이것도 연극인가?’라고 묻는다.
2-1. 균열 속 존재로의 생존
잠시 후 우리는 2층으로 올라갈 수 있었다. 계단을 오를수록 발밑에서 서늘한 기운이 느껴졌다. 팜파의 2층은 탁 트인 느낌을 준다. 계단 끝에 서면 정면에 넓은 창이 보인다. 가까이로는 팜파를 찾아오기 위해 걸었던 골목에서부터, 저 멀리 서정적인 밤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압도적인 프레임이다. 누군가의 작업실 같아 보이는 이 공간에서 생경한 냄새가 났다. 아니. 익숙한 냄새지만 이곳에서 날 법한 냄새가 아니라 생경하게 느껴졌다. 바닥 중앙에 넓게 깔려 있는 것은 카펫이 아닌 이끼였다.
<균열 속 존재로의 생존>은 안내 멘트로 공연의 시작을 알린다. 그리고 약 20분 동안 아무런 사건도 벌어지지 않는다. 이끼의 한 가운데에는 큰 의자가 놓여있고, 앰프에서는 집을 배경으로 한 일상의 소음이 흘러나온다. 누군가의 등장 혹은 어떠한 지령을 기다리던 세 명의 관객은 이내 공간을 배회하기 시작했다.
‘어느 것도 선택하지 못하는 우유부단함이 나의 정체성이라고 생각될 즈음, 내가 밟은 그선 또한 한 조각의 면적임을 상기했다. 여기가 정확히 어디인지는 모르겠다. 다만 이 한 자락의 틈이 나를 유난히 살아있게 한다.’ - 프로그램북 중
창작자 김나은은 자신이 밟은 선을 확장하고, 가시화시켰다. 어두운 틈새에서 강인한 생명력을 발휘하는 이끼를 일상의 공간, 집에 가져왔다. 카펫, 이끼, 일상의 소음, 화려하지만 정적인 창밖 풍경. 서로 다른 맥락에 위치하는 형태와 물질들의 재배열로 초현실적인 분위기를 연출했다. 이끼 냄새로 가득한 서늘한 공기가 상쾌했다. 숨 막히는 일상의 권태 속에서 나를 깨어있게 하는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불안하고 불편하게 밟고 있는 애매한, 그 선이 아닐까.
2-2. 먹어보고 결정해
차고를 개조한 공간이 열렸고 벽에는 다양한 야채의 이름이 붙어 있었다. 우리는 샐러드에 들어가는 재료를 함께 맞춰야 다음 장소로 이동할 수 있었다. 관객은 정답을 맞히기 위해 상의하고, 힌트를 얻기 위해 어색하게 함께 노래를 부르며 조금 유연해진다. 차고의 계단은 주방과 연결되어 있다. 관객은 싱크대에서 손을 씻고 식탁에 앉아 차고에서 몇 번이고 반복해 들었던 ‘중동식 파투쉬 샐러드’를 먹게 된다. 이 샐러드는 이전 공연에 참여했던 관객들이 만들어 둔 것이다.
우리도 셰프(임재혁)의 지도에 따라 다음 회차 관객을 위해 샐러드를 만들었다. 셰프는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며 카레를 만들기 시작했다. 그는 어린 시절을 함께 보냈던 할머니가 끓여주었던 선지해장국의 하드코어한 면모를 마주했을 때의 충격, 그리고 어느덧 너무 작아진 할머니에 대한 소회를 이야기한다. 그의 이야기와 소소한 질문들은 음식과 관련된 기억들을 추억하게 만든다. 음식과 관련된 에피소드를 이야기하며 셰프는 구운 야채에 레디메이드 카레를 붓고 있었다.
어느덧 준비된 한 상을 들고 관객은 뿔뿔이 각자의 방으로 흩어졌다. 지난 시리즈에서는 닫혀 있었던 2층의 방문이 열렸다. 이곳에도 작지만 그림 같은 창문이 있었다. 팜파는, 이 집은 창문이 참 인상적이다. 누군가 생활하는 흔적이 역력한 방에서 혼밥을 하며 얼굴도 모르는 사람의 인상 깊은 이야기를 들었다. 이렇게 <먹어보고 결정해>는 계속 ‘연결고리’를 만들기를 시도한다. 다음 혼밥자를 위해 나도 에피소드 하나를 녹음해 두고 와야 했다. 그가 잊지 않고 삭제해주길 바라며.
3. 미리 보는 플랫폼 팜파
다가오는 해에도 플랫폼 팜파의 화두는 ‘집’이다. ‘팜파지기’ 이자 기획자인 심이다은은 두 가지 주제로 내년 기획프로그램을 준비 중이다. <우리는 집이 필요해요>라는 제목으로 집을 갖지 못한 사람들, 노숙자, 폐지 줍는 노인 등 다양한 주체를 살펴보고 싶다고 한다. 팜파에서 확장하여 연희동 일대를 공연 공간으로 실험해 볼 예정이다. <가사노동>은 팜파의 구조를 십분 활용하여 주방, 세탁실 등 일상에서 반복되는 가사노동을 소제로 삼아 다양한 방식으로 풀어 내보고자 한다.
프로젝트를 위해 1년 동안 상주하며 공간을 탐구할 네 팀의 창작 단체를 공모한다. 창작자에게 공간을 충분하게 살피고 실험할 수 있는 시간을 주고자 하는 것이 목적이다. 이번에도 ‘연극’이라는 제목을 달지만, 그것을 확장하거나 비틀고자 하는 의도를 가진다. 따라서 여러 창작분야의 다양한 언어를 환영한다. 선정 기준에 대해 문의했다가 흥미 있는 답변을 들었다. 심이다은은 연출을 중심으로 한 수직적 구조의 창작 방식에 대안으로 여겼던 ‘공동창작’의 맹점에 대해 고민하고 있었다. ‘공동창작’의 과정에서 소외되거나 착취되는 구성원 없이. 각자의 역할이 서로 균형 있게 유기적으로 구성된 팀과 함께 작업할 수 있다면 좋겠다고 이야기했다.

대관 및 문의사항 platformpampa@naver.com

플랫폼 팜파 인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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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민

채민
 연극학을 전공하고 드라마터크, 축제기획자로 활동하고 있으며, 공연과 관련된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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