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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투 이후 1년, 연극은 달라졌는가?

연극계 현장의 변화와 웹진 연극인의 반성

강보름_연출가

제155호

2019.03.14

20대 신진 여성 연출. 연극과 관련된 필자의 정체성을 정의해보자면 이러하다. 짧은 경력에 편집위원 직함을 달고 기획연재 개관 원고를 쓰는 것이 미투 운동으로 인해 가능했다고 생각하기에 이를 서두에 밝히고자 한다.
집단예술이라는 연극 장르의 특성에서 기인한 문제와 한국 사회의 가부장적 요인으로 인한 문제가 겹겹이 산재하여 2018년 2월 연극계는 폭발했다. 그리고 2019년 3월 현재, 미투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서울공연예술고 등의 스쿨 미투와 이윤택 항소심이 진행 중이다.
필자가 연극을 하면서 마주하는 가장 큰 어려움은 열악한 제작비나 환경에 수반되는 폐쇄적이고 위계적인 연극 문화이다. 모르는 것이 용인되지 않는, 다름이 미숙함이 되는,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창작 방식과 그런 ‘계’의 태도 때문에 눈물 쏟는 날들이 많았다. 한편 짧은 사회생활에서도 비슷한 의문이 들었다는 것을 상기하며 한국 사회 자체에 무력감을 느끼기도 했다. 이러한 무력감은 여전히 남아 있다. 겉으로 보기에는 연극계나 한국 사회가 크게 달라지지 않은 것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가해자들의 사회적 합의 없는 복귀가 눈에 띄기도 한다. 그렇기에 미투 이후 1년, 연극계 내에서 여전히 변하지 않은 것은 무엇인지, 혹은 변화했다면 무엇이 변화했는지 웹진 연극인 기획연재를 통해 고민해보고 싶었다.
미투 운동을 기점으로 성폭력반대연극인행동(이하 성반연), 페미니스트연극인연대(이하 페연연) 등 여성 연극인이 주도하는 단체가 결성되었고, 성반연이 주최하는 관련 집담회들도 정기적으로 열렸다. 그렇게나 진입하고 싶었던 연극계 안에 ‘나’도 갈 수 있는 자리가 있음을 알게 됐다. 일상에서 싸우는 여성 연극인들의 용기 있는 발언들을 들으면서 할 수 있는 것들을 고민하고 실행할 에너지가 생기기 시작했다. 이는 여러 집담회나 포럼 행사 등에서 받았던 환대 받는 느낌, 연극계 일원으로 존중받는 느낌에서 비롯되었다. 20대 여성인 ‘나’를 수동적 정체성으로만 환원하지 않게 되면서 스스로를 규정했던 시선에서 좀 더 자유로워지는 계기가 된 것이다.
평등한 연극 만들기를 위한 약속(주최: 페미씨어터, 페연연), KTS(Korea Theater Standard) 제작을 위한 로라 피셔(Laura T. Fisher) 초청 국제 워크숍(주최: 성반연) 등 함께 모여 새로운 연극 문화에 대해 고민해보거나 2-30대를 주축으로 하는 단체의 내규 등을 공유하면서 더욱 힘을 받았다. 동료, 선배 여성 연극인을 집단으로 만나면서 우리가 가장 원했던 것이 안전한 제작 환경임을 확인한 것이다.

지난 2월 11일, 연극계 자치규약 마련을 위한 로라 피셔 초청 ‘시카고씨어터스탠다드(CTS) 오픈 워크숍’이 서울연극센터에서 열렸다. (사진제공:성폭력반대연극인행동)


또한 관객들의 목소리가 더욱 크게, 자주 들리기 시작했다. 관객들은 연극인들보다 앞서 미투 연대 집회를 주최했고, 여러 행사, 집담회나 포럼 등에서 발화하거나 글을 쓰면서 연극계 내부와 소통하고 있다. 관객들은 작품 내 여성 혐오에 대한 비판을 비롯하여 건강한 생태계를 구축하는 공연 제작과정 등에도 관심이 있음을 알려오고 있다. 이는 실제로 배우 캐스팅을 교체하거나 장면 연출을 수정하는 등의 변화로 연결되고 있다.
고백하자면 필자는 미투 이후 더 많은, 그러나 꼭 필요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제작방식이나 작품의 내용, 형식에 대한 새로운 시도에 실패했을 때 그 원인을 어설픈 민주주의로 돌려버리는 자포자기적 태도, 순간순간 멈칫하는 권력을 가진 연출로서의 ‘나’의 위치성 자각, 그로 인한 이불킥 등등이다. 20년 넘게 한국에 살면서 체화된 위계적 관성에서 벗어나려면 앞으로 좀 더 겪어나가야 하는 어려움이라고 생각한다.

지난 3월 8일, 광화문광장에서 개최된 제 35회 한국여성대회 3.8거리행진에 페미니스트연극인연대가 참여했다. (사진제공: 페미니스트연극인연대)

<미투의 정치학>1)의 첫 문구를 인용해보자면 미투 운동은 “누가 협상 자리에 앉아 있지 않은지, 누구의 관심사가 명확히 표현되지 않고 있는지, 누구의 이득이 표명되지 않고 있는지, 그리고 누구의 진실이 발언되거나 인정되지 않고 있는지”에 대한 사고를 가동케 하는 전환의 시간이다. 지금까지 한국 사회 내부 권력을 배분하는 협상 테이블은 늘 중년 남성들로 채워져 있었다. 미투는 이러한 가부장제 남성 권력에 대한 총체적인 문제 제기이며, 예전으로 돌아가지 않을 것을 선택한 여성들과 함께 일하려면 남성들 또한 변화해야 할 것이라는 경고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웹진 연극인은 어떠한 관성을 갖고 있었는지 점검해보았다. 그동안 웹진은 “관객을 좋은 연극으로 안내하는 네비게이터”2) 를 표방해왔다. 여기서 ‘좋은 연극’으로 다뤄져 온 작품들은 권위 있는 극단, 공공극장의 제작 공연 등이 주를 이루었고, 할당제처럼 신진 극단의 것이 포함되었다. ‘좋은 연극’에는 ‘완성도 있는, 검증된, 유명한 제작진이 만든’ 등의 수식어가 생략되어 있었던 셈이다. 미투 이후 연극과 연극계를 바라보는 관점 자체가 변화하고 있기에 ‘좋은 연극’이 무엇인지 다시 질문해야 했다.
따라서 연극을 만드는 특정 주체에 무의식적으로 편중된 시선을 분산시킬 필요가 있었다. 웹진 연극인의 편집위원은 여성, 20대, 장애인, 배우, 기획자의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로 구성되었다. 기존 연극계의 자장 안에서 당연하게 40대 비장애인 남성 연출에게 부여되었던 대표성에 대해 반성하고 좀 더 다양한 주체들의 이야기를 들어보고자 함이다. ‘한국연극의 위기’란 ‘한국 남성사회의 위기’라는 일갈처럼 한국연극의 남성성에 대한 충분한 고민이 선행되어야 미투 이후의 시대에 연극을 한다는 것의 의미를 다시금 짚어볼 수 있을 것이다. 웹진 연극인 또한 이 고민을 게을리 하지 않으려 한다.
그 시작으로 ‘미투 이후 1년, 연극은 달라졌는가?’라는 기획연재를 이어가고자 한다. 피해/가해 구도의 진행형 미투, 연극계 창작환경과 예술학교 문제, 제도적 측면에서의 이슈 등 다면적인 접근을 통해 미투 담론의 확장을 이어갈 것이다. 이를 위해 변화를 경험하고 있는 배우, 법집행 과정에 있는 피해자, 예술학교 재학·졸업생, 스태프, 관객, 민간/공공 제작수칙 관련 담당자 등 그룹별 간담회를 개최하여 다양한 집단의 이야기를 듣는 자리를 준비하고있다. 6월까지 긴 호흡으로 진행되는 자리이며, 미투 이슈에 관심 있는 분들의 참여가 필요하다. 복귀하거나 여전히 침묵하는 가해자들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 연극과 연극을 둘러싼 현장은 어디에 와있는지, 여전히 말해지지 않는 것들이 있다면 무엇인지 등을 개별 그룹 간담회 참여자들과 함께 고민해보려 한다.
  1. <페미니스트 유토피아>, 리아 페이-베르퀴스트, 정희진 외, 김지선 옮김, 휴머니스트, 2017. p.155. 재인용. <미투의 정치학>, 권김현영, 루인, 정희진, 한채윤 공저, 교양인, 2019. p.7.
  2. 2019년 3월 13일까지 ABOUT US > 웹진소개 에는 “서울연극센터가 만드는 연극 전문 웹진 [연극in]은 관객을 좋은 연극으로 안내하는 네비게이터가 되고자 합니다.”라고 명시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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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보름

강보름 프로젝트 레디메이드 연출가
연출작으로 <레디메이드 인생>, <우리가 고아였을 때>,<모던걸타임즈> 등이 있다.
rkdekdzhd@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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