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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투 이후 1년, 연극은 달라졌는가? #2

예술대학교 학내미투 좌담회

참석_ 강윤지, 김옥미, 송진주, 최희범/정리_강보름

제157호

2019.04.11

웹진 연극in은 ‘미투 이후 1년, 연극은 달라졌는가?’를 주제로 기획 기사를 연재하고 있습니다. 이번 호에는 예술대학 재학생 및 졸업생 분들을 모시고 학내 미투 이후 학교 현장의 변화와 지속되는 어려움, 그리고 우리의 연극에 대해 이야기 나눠보았습니다. - 연극in 편집진

일시 : 2019. 4. 1. 월. 오전 10시 30분

장소 : 서울연극센터 1층

진행 : 강보름

참석 : 강윤지(청주대 졸업), 김옥미(서울예대 재학), 송진주(세종대 졸업), 최희범(한예종 연극원 재학)

# 미투는끝났다? #미투ing #백래시
옥미
학교 대나무숲(온라인 익명게시판, 이하 대숲)에 실명 미투를 한 이후 다른 학생에 의한 미투가 쏟아지듯이 나왔어요. 학내 교수님들이 고발되고 다른 대학에도 퍼졌고요. 그런 상태에서 미투는 끝났나? 라고 물으면 사실상 ‘꼬리 자르기’인 지점이 있다고 생각해요. ‘큰 판으로 가서 큰 사람을 먼저 치자’는 취지는 이해하지만, 학내 미투라든지 지역 연극계에 대한 고발은 묻혀버렸어요. 미투 1년 됐는데 언론에서 관심도 별로 없고요. 그래서 미투가 끝나‘졌’다고 생각돼요. 하고자 하는 의지들은 아직 있는데, 그리고 이게 끝난다고 끝나지는 물결도 아닌데. 서서히 또 퍼져나가야죠.
보름
아직 말해지지 않고 있는 이유가 뭘까요?
옥미
제가 생각하는 핵심적인 이유는 사법처리의 어려움이에요. 학교생활 하기가 너무 힘들었어요. 익명미투가 아무리 터져도 실명이 아니기 때문에 사법적 증거로 채택되지 않고요. 실제로 고소한 사람만 사법처리가 가능하다 보니 당사자들이 겁을 많이 내는 것 같아요. 역고소가 들어오는 경우도 있고, 대숲에서도 실명을 밝히라고 요구하니까요. 실제로 음악전공 과에서 2차 가해로 인해 미투 고발자가 누군지 다 밝혀지는 경우도 있었어요. 교수가 수업시간에 자꾸 캐물어서 학생들은 충격을 받았죠. 학교 다니면서 선생님과 마주치는데, 그 사람을 고발하고 있으니 학교에선 누군지 정체를 찾아내는 거죠. 신변보호가 되지 않는 상황에서 미투하기 너무 힘들다고 생각해요.
윤지
당연히 미투가 끝나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가 이렇게 모인 거죠. 그러한 말 자체가 당사자들을 더 힘들게 하는 것 같아요. 왜냐면 다들 끝났다고 생각하고 있으니까. 괜찮다고 생각하더라고요. 얼마 전에 제가 청주대 출신인 걸 모르는 다른 집단에서 미투 이야기가 나왔는데, “청주대 애들은 주변에서 많이 도와줘서 괜찮아졌나보다”고 하는 거예요. 그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대체 누가 우릴 도와줬지?’ 울분과 열받음이 있어요. 피해자 지원에 대한 체제가 전혀 없고 상담 등 경제적인 문제나 가해자들이 돌아오는 것도 힘들죠. 청주대는 대표적인 가해자가 없어졌지만 다른 유형의 폭력을 행한 가해자나, 방관 혹은 침묵했던 사람들은 여전히 있어요. 다른 곳에서 공연을 하고 있기도 하고요. 직접적으로 지목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를 제지할 방도가 없죠.
강보름
옥미
현장을 바꾸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성폭력반대연극인행동(이하 성반연) 등 여러 단체에서 예술학교를 바꿔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예대에서 키워지는 사람들이 현장으로 나오잖아요. 거기서 그 구조를 학습해서 나온단 말이에요. 전체 구조가 변하지 않으면 언제든지 다시 이런 일이 벌어질 여지가 있다는 걸 자각해야 해요.
일반 학생들은 미투를 견뎌낼 힘을 많이 갖고 있지 않아요. 자기가 얘기하는 순간 자기가 성폭력 피해자라는 걸 인지 당해야 된단 말이에요. 저도 제가 괜찮은 줄 알았는데 아니었죠. 언론에 미투가 화제가 되는 것도 중요하지만 피해자를 위한 치료와 제도적 완비가 많이 필요해요. 덧붙여 꼭 얘기하고 싶은 건 피해자성에 대한 편견이에요. 그건 미투 운동을 지지하는 사람들도 갖고 있어요. 피해자가 정말 깨끗하냐, 성적이 좋았냐 등등 피해자의 신상을 털고요. 그런 게 겁나는데 어떻게 미투를 하겠어요. 가해자가 사회에 얼마나 이바지했고 이런 것 상관없이 말 그대로 성범죄는 성범죄라는 공론이 더 필요한 것 같아요.
진주
미투가 터지면서 굉장히 큰일이 난 것처럼 학과가 한 번 휘청거렸어요. 잘못 자체를 이성적으로 바라보고 본질적으로 범죄에 접근해서 피해자와 얘기하는 것이 필요한데, 그 교수가 워낙 위력이 강하다 보니까 안타까워하는 사람도 있었죠. 그냥 재수가 없었다고도 하고요. “나한테는 좋은 선생님이었어, 아빠 같은 분이었어” 이렇게 감정적으로 말하는 사람도 있었어요.
제가 다니던 학교는 영화 제작과 연기 전공으로 나뉘어 있어요. 미투가 터진 건 연기 전공 쪽인데 상대적으로 목소리는 영화제작 쪽에서 많이 내줬어요. 연극영화과 내 연기 전공들은 예고나 연기 입시과정에서부터 폭언을 듣는다든지, 특기를 제대로 못 하면 맞는다든지 등의 일이 너무 비일비재하고 위계가 너무 강했던 거죠. 선생님이 나에게 배움을 주는 사람인 동시에 굉장히 무서운 사람이고. 왕으로 군림하는 대장들이 학원마다 예고마다 있는 걸로 알고 있거든요. 저는 연기전공인데 같이 연대하는 학생들이 거의 없었어요. 혹시나 이렇게 목소리를 냈다가 내가 잘못되면 어떡하지, 하는 마음들이었을 거라고 생각해요.
희범
지금 휴학한 상태인데 지난주에 학교에 갔다가 작년에 처음 학교에 (미투가) 터졌을 때 학생들이 붙인 자보가 여전히 붙어있는 걸 봤어요. 그걸 보면서 두 가지 마음이 같이 들더라고요. ‘아, 방치됐구나. 이렇게 그냥 있는데 그렇게 잊혀졌구나’라는 생각과 ‘아, 그런데도 여전히 여기에 있구나’하는 생각이요. 미투 처음의 역동하는 에너지가 줄어든 건 맞고요. 이미 제가 휴학하기 이전부터 많이 잠잠해졌죠. 하지만 흐름이 끊겼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아요. 얼마 전에 영상원에서 또 고발이 있었다고 하더라고요. 이번 영상원 고발은 준비가 잘돼 보였다는 얘기들을 해요. ‘준비가 잘 된’ 고발이라는 말 자체가 주는 씁쓸함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학생들이 어떻게든 이 고발을 통해서 작년에 우리가 겪었던 상처나 징계 결과가 나온 후에 더 분노하게 되는 상황을 겪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것 같아요. 졸업생 피해자와 재학생 피해자가 아예 연대해서 시작하는 것, 처음에 대자보를 붙일 때부터 가해교수 사퇴를 요구하는 식으로 보다 발전된 양상으로 고발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흘러가던 것들이 주춤하고 에너지가 약해지긴 했어도 아직 이야기할 수 있어서 다행이다, 그리고 그것에 연대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고 이 흐름이 끊이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학내위계문화 #예술가와 범죄자의 얼굴 #연극을 어떻게 다시 배울 것인가
김옥미
옥미
학교 페미니즘 동아리에서 열성적으로 활동하시던 분이 있었어요. 그분이 없어지니까 대자보가 다 사라졌어요. 저도 졸업하면 어떻게 될지 모르죠. 그리고 예술대학 안에서 전공이 다른 과끼리 단합을 못 하게 하는 시스템이 있는 것 같아요. 서로 안 친해요. 제작반 안에 가둬두면서 고착화시키는 게 있어요. 시위를 나가려고 해도 제작반 수업 때문에 가지를 못해요. 그리고 이렇게 말하죠. “너는 체홉을 해야 되잖아. 너네는 갈매기를 연구해야지, 지금 사회가 문제야? 딴 데 나갈 때야?” (일동 웃음)
진주
저도 <갈매기>에서 ‘뽈리나’라는 엄마 역할을 했었거든요. 근데 제가 치마를 잘 안 입어요. 제가 그때 무대감독이기도 했으니까요. 근데 교수가 계속 “야 너 이제 치마 입고 다녀” 이렇게 말씀하시는 거예요. 그래서 “왜요?”라고 물어봤더니 여성스러움에 대해 얘기하시는 거예요. 치마를 안 입으면 여성스럽지 않은 거고, 어머니가 아닌 거고. 뽈리나가 극중에서 하는 역할이 짝사랑하는 캐릭터인데, 치마를 입지 않으면 그런 게 보이지 않는 걸까? 체홉이나 셰익스피어 작품에서 나오는 고착화된 캐릭터성에 대해서 생각을 많이 했어요. 그렇게 연기를 해야 돼, 라는 믿음과 또 그것을 교과서처럼 학습하는 연기과 친구들이 있죠. 왜냐면 우리 머리에도 공주, 니나, 허미어 하면 딱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잖아요. 그런 상황에서, 예를 들면 여자 주인공 역할인 친구가 자세가 좀 구부정하다든지 다리를 꼬고 있으면 “너 그렇게 해서 어떻게 여자주인공 하겠어, 그런 자세는 기생들이나 하는 자세지” 그런 발언을 들을 때 욱해요. 나중에 문제 교수가 “내가 언제 너희들한테 그런 얘기를 했냐, 나는 지도를 한 거다”라고 얘기 하는데, 그 순간 이윤택이 기자회견 때 했던 말과 겹쳐 들리면서 기시감이 들더라고요.
옥미
미투 사태의 가해자라고 해서 그 예술가의 작품을 버려야 하는 건가, 하는 생각도 했어요. 저 조차도 정리가 안 되더라고요. 차라리 까놓고 조롱을 하든 풍자를 하는 게 낫지 않나. 오태석과 그 작품을 쉬쉬하고 입 막아버리는 경우나, 학생들은 다 불편해하는데 꿋꿋이 오태석을 강의하는 경우나, 동일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것에 관해서도 이야기가 많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진주
이윤택은 연극사 수업을 할 때 빼놓을 수 없잖아요. 한국연극사 수업하면 ‘이윤택의 경우 이런 문제가 있지만, 일단 중요한 사람이니까 이론적으로 공부를 해봅시다’ 이렇게 짚는 경우가 있어요. 알고 하는 것과 그냥 묵인하고 가르치는 것은 다르다고 생각해요.
옥미
우리가 영원히 오태석의 <자전거>를 못 하게 되면 그건 누구 손해지? 라는 생각이 들어요. 가해자의 작품이라고 해서 다 삭제하고, 무조건 안 하는 것보다 차라리 텍스트를 다시 해석하고 다시 올려보는 과정에서 분명히 얻어지는 것은 없을까, 하는 질문이 생기죠. 그런데 지금 상황은 책장에서 그냥 빼버리잖아요. 결국 범죄자는 형을 살고 나올 것이며, 가만히 있는 누군가도 정체가 밝혀질 텐데요. 저도 사실 잘 모르겠어요. 솔직한 토론이 필요하다고 느껴요.
강윤지
윤지
저는 일단 우리가 정말로 그것을 다 제하고 있는가? 그리고 정말로 그가 가해자로 지목되고 있는가? 라는 문제가 관건으로 남아있다고 생각해요. 아직 여기(서울연극센터 책장) 있는지 모르겠는데요, 얼마 전에도 이윤택 오태석 희곡집을 봤거든요. 여전히 현장에서 버젓이 존재하고 있는데... 지금 시점에서 정말 가해자라고 사회가 인지하고 있는가? 예술성만을 두고 토론할 수 있는 시점인가? 라는 의문이 들어요.
옥미
제가 말하고 싶었던 요지는 다들 쉬쉬하는 느낌이 있다는 거예요. 가해자로 제할 생각도 없고 제하지 않을 생각도 없고요. 왜냐면 문제를 제기하기에는 그간 연구자들이 그에 대한 논문을 엄청 많이 썼거든요. 살펴보면 오태석, 이윤택으로 박사 학위를 딴 교수들이란 말이에요. 그러니까 가해자니 피해자니 얘기를 할 수 있는 공론화의 장이 없고, 그것을 말하는 것 자체가 겁이 난다는 거죠. 그러나 이 담론이 제대로 열려야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저는 작가와 작품은 구별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가해자가 잘못은 했지만 시대적인 맥락도 있으니까요. 그런 것에 관해서도 토론이 많이 필요한데, 우리들보다 정말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이 쉬쉬하고 있다는 느낌이 많이 들어요.
진주
아직도 상처받은 사람들이 있고 해결되지 않은 것들도 너무 많아요. 말씀하신 대로 그냥 쉬쉬하고 있어요. 저희 학교 경우에도 징계위 회부돼서 처리되고 결론이 났으니까 빨리 덮고 일상으로 돌아가자 하는데 일상성의 회복이라는 게 모두의 일상이 돌아와야 하는 거잖아요. 근데 그냥 가능한 사람들만 돌아오죠. 그들은 살아야 하니까. 물론 다 같이 못 살아야 된다는 건 아니에요. 당연히 저마다 갖고 있는 당사자성에 따라 회복 속도 자체가 다를 수밖에 없는 거잖아요.
윤지
학교라는 특수성이 존재하는 거 같아요. 스승과 제자라는 관계에서 내가 앞으로 평생 하고 싶은 예술의 가치를 그에게서 처음 배웠다는 점에서 오는 혼란이죠. 가해자를 마냥 가해자로 바라볼 수 없는 것. 특히 4년 동안 거의 매일매일 새벽까지 함께 공연을 만들었던 시간들, 추억들이 있기 때문에... 미투 직후에는 그분들을 굉장히 믿고 사랑했는데 내가 스승을 다 잃었구나, 라고 생각했어요. 단순히 교수가 아니라 친구, 동료, 스승, 가족이면서 이런 복잡한 관계들이 얽혀있으니까 힘든 것도 있고, 그래서 미투를 믿지 않는 분들도 이해는 할 수 있어요. 그들을 비난하지 않으려고 하지만 사실 좀 힘들어요. 왜 나를 고민하게 만들지? 왜 나의 소중한 시간과 추억들을 다 훼손시키지? 그리고 왜 누구는 약을 먹어야 되고 누구는 공황 장애를 갖고 있어야 되고 누구는 지금 상담을 받아야 하지? 밖으로 나오는 것조차 힘들어하지? 대체 저 사람이 나와 내 친구들, 동료들, 동문들에게 무슨 짓을 한 거지?
옥미
우리가 예술이라는 명목 아래 얼마나 많은 것들을 묵인했는가에 대해서 솔직하게 다 털어볼 시점이지 않나 싶어요. 제가 보기엔 우리의 문화 자체가 해결되면 덮어버리는 식이에요. 혼란스러운 상황을 견디지 못해요. 사실 이 혼돈은 당연한 건데... 제가 얘기하고 싶은 건 자꾸만 아무도 질문하지 않는 방식으로 묵인된다는 점이에요. 그리고 범죄자와 예술가의 얼굴을 분간하기가 어려운데, 사실 누가 가장 혼란스러운지를 생각해본다면 피해자가 제일 혼란스럽거든요.
송진주
진주
가해자들도 그렇게 쉽게 돌아온다고 말할 수 있는지 모르겠어요. 저희가 언론에 보도하고 징계위에 회부와 빠른 파면을 촉구하면서 시위할 때에도 언제 어떻게 한 건지 모르게 해명기사가 뜨고 ‘나는 어린 딸아이를 가진 한 아버지고 그런 입장에서 다 오해고’ 이런 식으로 인터뷰를 하고... 결국 자기 일자리 때문에 돌아오려고 하는 거잖아요. 그게 너무 이해가 안 되고 분노하고 있는데...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자고 쉽게 말할 수는 없는 거예요.
보름
피해자가 되려면 초인이 되어야 하는 거네요.
옥미
사실 우리가 분노한 지 얼마 안 됐어요. 당연한 줄 알았고 내가 문제이겠거니 생각하고 살았기 때문에 저도 가해자가 한 행동을 묘사하면서 울어본 게 얼마 전이에요. 정신과 교수님이 그 말을 되게 많이 하시더라고요. “가해자는 그냥 가해자고 너는 그냥 화를 내면 돼. 그 다음에 용서하고 처벌하고 그 사람을 어떻게 평가하고 이런 건 다음 문제야. 너는 지금 화를 내야 해.” 나는 그게 계속 안 되는 거예요. 스승이니까 너무 아꼈으니까.
희범
너무 공감해요. 피해자가 범죄자와 예술가의 얼굴을 구분하기 가장 힘들고 가장 혼란스럽죠. 그리고 화나잖아요. 왜 내가 이렇게 됐을까? 그러니까 가장 필요한 건 피해자 지원인 것 같아요. 그 혼란 속에서 내가 이 가해자의 작품과 인간과 그와 나와의 역사를 재평가하는 기회로 돌릴 수 있는 힘, 에너지가 생기려면 지원이 잘 이뤄져야 해요. 그게 없으면 그 모든 것들이 나를 누르는 것밖에 되지 않아요. 나와 연대해주고 지원해주는 것들이 있을 때 비로소 조금이나마 너무 힘들어도 내가 재평가해볼 기회구나, 슬프지만 그래도 기회라고 생각할 수 있는 단초가 생기는 거 같아요.
윤지
학교 들어가면 가장 먼저, 가장 빠르게 배우는 게 “네 알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제가 하겠습니다” 하는 위계문화거든요. 이게 0.1초안에 안 튀어나오면 일단 머리를 박아야 되니까요. 정말 바로 튀어나올 수 있을 만큼 학습을 해요. 저는 학교 안에서 의견과 소신을 이야기할 수 있는 방법 자체를 배우지 못했어요. 현장에 나와서도 분위기가 비슷하기 때문에 몰랐고요. 내가 아는 생존전략이 그것밖에 없었던 것 같아요.
최희범
희범
저는 한예종 가서 제일 놀랐던 게 연출과 학생들이 자기 돈을 들여서 스튜디오 공연을 올리는 것이었어요. 알바를 해서, 몇 백 만원씩 들여서, 자기 돈으로 작품을 만들고, 그렇게 만든 작품의 저작권은 본인이 갖고. 대혼란이 왔었죠. 연출 중심의 제작 환경이니까 연출이 작업 안에서 가부장으로 존재하는 거죠. 결국 마지막 선택을 내려야 하고 마지막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에요. 어쩌면 가족주의도 필요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사실 요즘 다양한 청년예술지원정책이 생기면서 바뀌고는 있지만 여전히 작품 중심 지원이 많잖아요. 작품 중심으로 지원하다 보면 결과 중심이 되고 작품을 만드는 주체, 대부분 그 주체도 대표자 1인을 중심으로 지원하게 되어 있고요. 그럼 그 대표자는 대부분 연출이고. 시행착오를 겪어가면서 안전한 창작문화를 같이 만들어나갈 수 있는 그런 역량과 에너지를 지닌 창작 공동체를 만드는 게 아무래도 어려운 환경인 것 같아요. 그러니까 청년들 사이에서는 점점 더 프로젝트성 그룹들만 많아지고. 아직 옛날 제작문화를 가진 극단들에서는 왜 젊은 애들이 안 들어오지? 이렇게 되는 것 같고요.
보름
얘기를 자꾸 듣다 보니까 예술대학이 없어져야 하나? 이런 생각까지 드네요. (웃음)
진주
집단예술의 장점은 똑바로 선 개인과 개인이 만나서 시너지를 일으킬 때잖아요. 같이 의견을 맞대서 힘을 합쳐서 하는 게 연극의 제일 좋은 점이라 생각했고 이게 좋아서 연극을 시작했는데 연극영화과 왔더니 그게 아니니까 괴리감이 생기죠.
희범
한예종에서 작년에 1학기 동안 ‘성폭력 위계폭력 근절을 위한 TF’가 운영됐었고 거기서 설문조사 했는데 결과적으로 연출과 학생들이 연루된 문제 보고가 상당히 많이 나왔어요. 어떻게 생각하면 당연한 거예요 교내 작업 문화가 연극계 문화를 답습하고 있으니까. 그 결과 데이터를 해석한 결과문을 발표하려고 했는데 그 과정에서 연출과 교수와 학생들이 ‘이거 왜 우리를 겨냥해서 이런 걸 내는 거야?’ 이런 반응을 하면서 불편해하고, 문제를 제기해서 결과문을 내지 못했어요. 데이터만 드라이하게 발표하는 걸로 결론이 났는데, 그 일련의 과정 자체가 연극계의 문제를 그대로 반복해서 보여주고 있다고 느껴지더라고요. TF에서 그런 설문을 하고 결과를 냈을 때는, 좀 더 구조적인 문제가 있다는 해석을 통해서 우리 같이 얘기해보자, 다른 방법을 모색해보자, 우리 학교를 어떻게 자정할 수 있을까, 하는 문제 제기를 하고자 했던 것인데, 특정한 과에 대한 문제 제기로 받아들여지니까 동력을 잃게 되었죠.
보름
일단 그런 문제가 내부에서 발견이 됐으면 같이 반성하고 방향성을 모색해야 하는데 저격당한 것에 너무 분노하고 기분이 나쁘니까 더 이상 논의가 나가지지 않았던 것 같아요.
#미투와창작 #연극하는 우리를 위하여
보름
미투가 나에게 미친 영향이 있다면 뭘까요? 창작의 동력이 되고 있나요?
윤지
작업하기 힘들어졌죠. 함께 할 작업자들을 선택하는 과정에서 더 예민해지고 함께 할 사람을 만나기 어려워졌다고 해야 할까요. 인간 대 인간으로 나와 함께 할 수 있는 사람이 누구인가, 예술보다 인간을 상위 가치로 둔 사람이 누구인가. 근데 선별을 어떻게 해요? 새로운 사람과 작업하고 싶지만 자꾸 안전하게 지인을 선택하게 되죠. 긍정적으로 보자면 좀 더 예민해졌죠. 무조건 계약서를 쓴다든가, 상호협의를 한다든가, 서로를 존중할 수 있는 권리장전 자치규약들을 만든다든가. 연습 들어가기 전에 호칭 경어 여부 정한다든가. 좀 더 평등한 환경을 만들기 위한 안전 고리들, 장치들은 계속해서 만들어나가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그렇지만 분명히 과도기고 이것을 정말 어떻게 긍정적인 변화로 이어지게 할 수 있을까, 시스템으로 자리 잡게 할 수 있는지가 고민이에요. 연출이 어떤 권한을 내려놓음으로써 발생하는 부가적인 문제들도 어느 정도 체감하고 있고. 그렇다면 그 안에서 어떻게 바로 설 수 있는가? 이런 질문과 고민들이 여전히 계속 남아있는 것 같아요.
희범
저희 팀은 2012년도에 같이 모였어요. 동아리를 통해 만나서 했던 연극 작업을 대학 이후에도 계속하고 싶은데, 나는 저기 연극계로는 가기 싫은데 어떡하지? 이런 사람이 주로 모였던 거 같아요. 우리끼리 안전한 지대를 위한 규칙들을 정하고 실천하는 걸 처음 만들 때부터 해왔었거든요. 그런데 작년에 미투를 겪으면서 우리가 안전지대라고 부른 게 진짜 안전지대였나? 라고 반성하게 되더라고요. 비교적 안전했지만, 여전히 우리 개개인이 위계문화에 익숙해져 있었고. ‘아 죄송합니다’, ‘제가 하겠습니다’에 익숙한 사람들이었고. 그런 게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다 보니까 나도 모르게 연출이 가부장이 되길 바라는 경향이 있었던 것 같아요. 연출은 자기도 모르게 ‘거지 왕초’ 역할을 하고 있고 다른 사람들은 자꾸 그에게 그런 역할을 하기를 기대하고요. (모두 웃음) 작년에는 그걸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어요. 어떻게 서로 독립적이고 자유로운 창작자로 만나서 예술을 할 수 있을까. 페미니즘이나 젠더 문제에 관한 작업을 작년에 한 번 했거든요. 근데 이게 ‘이 얘기를 해야 되겠어!’ 가 아니라, 이걸 해야지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과정이었던 것 같아요. 그 작업을 하면서 우리 문화를 바꾸기 위해 노력했고, 과정을 기록하고, 공유하고, 내규를 만들고, 외부에 공유하고, 그런 과정들을 지금도 거치고 있어요. 미투는 저희 팀에 그런 계기가 되었어요. 저희끼리 그런 얘길 해요. 페미니즘이 우리의 주제나 우리가 해야만 하는 유일한 것이 아니라, 연극하는 우리 존재 자체가 페미니즘이 됐으면 좋겠다, 그래서 우리가 재밌게 할 수 있는 거 하자, 그런 방향이 됐으면 좋겠어요.
진주
미투가 딱 수면위로 올라왔을 때는 내가 연극을 계속할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을 많이 했어요. 그런데 학교의 커리큘럼이 연기과 학생들을 굉장히 바쁘게 만들어요. 자기반성과 고민을 할 새도 없이 해당 학기 워크숍 연출 맡아서 어어 가게 해요. 바쁘게 살면서 싹 하고 덮었죠. 사실 그게 다 끝난 게 아닌데 덮어지게 됐어요. 다들 자치규약 정비하시고 한다는데, 부끄럽지만 저는 사실 비교적 최근까지도 안일하게 잊고 살았어요. 그간 졸업도 했고요.
윤지
부끄럽지 않아요. 안일해도 괜찮아요.(웃음)
진주
제가 재학할 당시 성평등 인권위랑 같이했던 회의록을 다시 받아 읽어보면서 ‘아, 그랬었지’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저는 연기과를 나왔지만 앞으로 가고 싶은 길은 연출인데 사실 그게 제일 어려워요. 배우와 연출이 아니고 창작자와 창작자로 어떻게 만날 수 있을까가 제일 어려운 지점이라 그런 고민을 가장 많이 하고 있어요. 점점 안전지대를 넓혀나갈 수 있을까 하는 고민도 하고요. 관객들이 보기에도 현재의 판이 뒤집히는 과정이 필요하겠죠. 마음 맞는 사람들을 찾아서 집단을 꾸리는 것, 그게 꿈이기도 해요.
윤지
누가 봐도 우리 극단이 하는 공연들은 페미니즘 연극이거든요. 성매매나 불법 촬영물이나 탈코르셋이나 연극계 위계 폭력이나 다 페미니즘 화두여서 ‘관객과의 대화’에서나 페이스북 메시지로 비슷한 고민들을 많이 보내주세요. ‘제가 지금 학교를 다니고 있는데 연극을 보러 대학로에 나오면 다 너무 피해 서사나 빻아서 졸업하고 어디를 가야 할지 모르겠어요. 연극을 포기해야하나 고민하고 있어요.’ 한 걸음 더 가서 ‘같이 이 집단과 작업하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되나요?’ 이런 메시지들이예요. 저는 이게 변화라고 생각했어요.
진주
최근에 테이블 작업을 할 때나 블로킹할 때 미투 이슈가 직접적으로 나오지는 않아도 이런 얘기들을 많이 나눠요. “이건 좀 논란이 되지 않을까?” 예전 같으면 ”이거 웃긴데? 이렇게 가자.” 이렇게 흘러갔을 텐데, “잠깐만, 다시 한번 보자.” 이게 되니까요. 저는 20대 중반이지만 연출이나 배우들이 30대 중후반이거든요. 한창 공연을 만들어나가는 사람들이 브레이크를 걸고 있다는 것 자체가 희망이 있다고 생각해요.
옥미
제가 어떻게 살아내느냐에 따라 이 나라의 미투 운동도 같이 간다고 생각하거든요. 피해자가 죽으면 미투도 죽게 되고, 피해자가 살게 되면 미투도 살게 되죠. 저도 이제야 제가 피해자고, 그 사람은 가해자고 인지하게 됐어요. 분노하고 토론하고 변화하면 미투가 충분히 드라마가 되리라고 생각해요.
진주
아직 학교 안에 있는 1,2학년 친구들이 연기과의 폐쇄적인 분위기 안에 매몰되지 않고 많이 얘기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어요. 자정의 축이 되는 주체들이죠. 너희들이 연극계를 바꿔나갈 축이고 불꽃의 시작이니까 말을 많이 했으면 좋겠다, 더 소리 높이고 더 행동해라, 이렇게 이야기를 전해주고 싶습니다.
보름
미투를 겪어낸 작업자들이 현장에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예비 연극인들이 알게 되고 같이 힘을 얻을 수 있으면, 현재의 판이 뒤집어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런 좌담회나 학교별 모임들이 많아져야할 것 같아요. 언제든 얘기할 수 있게. 오늘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진: 김지성 jasonk1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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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보름

강보름 프로젝트 레디메이드 연출가
연출작으로 <레디메이드 인생>, <우리가 고아였을 때>,<모던걸타임즈> 등이 있다.
rkdekdzhd@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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