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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들어올 때 노 젓는 장애연극? 물길을 만들어 온 장애연극!!

장애예술에 대하여

김지수

제170호

2019.10.24

웹진 연극in은 “장애예술”을 주제로 총 6번에 걸쳐 기획연재를 시작합니다. 최근 주목받고 있는 장애예술의 실제 현황을 확인하고, 현재 연극계(예술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유의미한 활동들을 짚어보고 진단함으로써 장애예술에 대한 창작자와 관객들의 관심과 이해를 더하고자 합니다. - 웹진 연극in 편집부
“물 들어 올 때 노 젓는다“
작년부터 가장 많이 들어 온 말 중의 하나다.
최근 들어 장애예술에 대한 관심이 그야말로 증폭되면서 다양한 곳에서 장애예술에 대한 이야기가 펼쳐지고 있고 곳곳에서 다채로운 전시와 공연 등이 이루어지고 있다. 연극계도 마찬가지다. 미투운동과 함께 여성 신진 연출가들의 등장이 늘어나고 자연스러운 세대교차가 일어나는 흐름 속에서 장애인 극단의 공연과 극단 사람들에게도 관심이 늘어나고 있다. 필자가 본지의 편집위원으로 활동을 하게 된 것 또한 그 변화의 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이에 웹진 연극in에서는 2019 하반기 기획연재를 통해 ‘장애인연극’을 하고 있는 당사자들과 그들과 함께 작업해 온 분들을 만나 장애연극과 장애예술에 대한 다양한 관점과 생각을 들어 보는 자리를 마련하고자 한다. 장애인연극에 대한 관심이나 주목이 순간이 아닌, 연극의 한 장르로 올곧이 자리매김 하고 또 다른 가능성의 무대로 이어질 수 있을지를 함께 논의해 보는 시간이 되리라 생각한다. 기획 연재의 시작으로 필자가 경험하고 있는 장애인 극단과 무대를 잠시 소개해 본다.
2019년 5월 문화예술포럼 ‘같이 잇는 가치’에서 극단 춤추는허리
(사진제공: 서울문화재단)
장애인 극단의 역사는 그리 짧지 않다. 필자가 처음으로 무대에 오른 장애인들을 만난 것이 2000년도 장애여성 문화 공동체 ‘끼판’이었다. 장애 여성에 대한 차별을 드러내는 운동의 일환으로 만들어진 ‘끼판’의 첫 공연은 흰 천만 깔려있는 무대에 장애여성 세 명이 온전히 자신의 몸을 드러내는 퍼포먼스였는데 열 명도 되지 않는 관객들이 있었지만 무대 위의 장애여성들에게 느껴지던 그 열기와 당당함은 비어있는 객석을 가득 메울 만큼 뜨거웠다.
그 후 2002년도에 장애인, 비장애인들이 함께 만든 ‘극단 휠(현 장애인문화예술극회 휠)’이 창단하였고, 2003년도에 역시 장애여성공감의 회원들로 구성된 ‘극단 춤추는 허리’의 공연이 시작되었다. 2000년대 후반부터 장애인 극단이 속속 창단되면서 현재 장애인극단은 서울에만 10여 개에 달한다. 최초의 장애인 극단으로서 첫 시도와 변화가 많았던 ‘장애인문화예술극회 휠’과 장애 여성의 삶을 펼쳐내는 ‘극단 춤추는 허리’ 외에 ‘장애인문화예술판’은 노들장애인야학 연극반에서 시작해 장애인의 창작 공연과 문화예술 교육을 병행해왔고 현재는 성북마을 극장을 거점으로 지역 사회 활동과 영상 미디어 교육, 인권연극제 등의 활동을 펼치고 있다.
‘극단 다빈나오’는 시각, 뇌병변 등 다양한 장애 유형의 배우들과 연극 외에 소리극, 뮤직 드라마 형식의 무대를 올려 오고 있다. ‘극단 애인’ 또한 고전과 창작을 병행하면서 개인 창작자들로서의 성장을 위해 주력하고 있고, 지금은 활동을 접었지만 장애예술과 문화에 대한 연구와 공연을 했던 ‘장애문화예술연구소 짓’의 역할도 컸다.
장애인 연극의 또 다른 한 편에는 발달장애인들로 구성된 ‘멋진 친구들’, 청각장애인 극단 ‘핸드 스피크’와 ‘한국시각장애인여성연합회’와 같이 장애 유형별 특징이 있는 극단도 활발하게 활동중이다. 장애인 극단은 아니지만 장애인, 비장애인들이 함께 극장, 공연, 감각의 접근성에 관한 조사, 워크숍을 진행하고 공연 제작을 하는 0set프로젝트와 장애 예술가들과 꾸준히 작업하고 있는 개인 창작자들도 꽤 있다.
필자가 생각하는 장애인 극단의 큰 특징 중 하나는 대부분의 활동기간이 5년 이상으로 길다는 것이다. 창단하고 일 년에 한두 번 공연을 올리더라도 극단의 배우와 스탭들은 단원으로서의 정체성과 연극에 대한 열정과 소속감을 잃지 않고 있다. 필자가 처음으로 극단 활동을 시작한 곳은 극단 휠이었는데 그때 만났던 배우와 스텝들 역시 대부분 지금도 건재하게 각자의 위치에서 작업을 하고 있다.
장애인 극단의 활동은 어쩔 수 없이 사회적이고도 정치적일 수밖에 없다. 장애인들의 삶과 관점이 녹아있는 이야기를 하지 않더라도 장애인이 무대에 오르는 그 모든 과정이 ‘장애’에 대한 편견과 차별에 대응하는 순간들이기 때문이다. 연극을 하고자 모인 사람들이 오가는 데 필요한 교통수단과 시설물들과의 대면에서부터 그들이 모여 연습을 할 수 있는 공간을 찾고 밥을 먹는 일, 배우들이 접근하고 공연할 수 있는 장소를 만들기 위해 수리하고 보완하는 일, 장애인 관객들이 불편하지 않게 공연을 볼 수 있는 객석을 마련하는 등 일련의 과정이 ‘운동’이었고, 함께 무대를 만든 스탭들과의 ‘만남’ 그 자체도 ‘대상’에서 ‘주체’로서 인정받기 위한 시간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또한 관객은 가족들과 지인들밖에 없었던 고독한 시간을 오래도록 견뎌왔다. 장애인 극단은 그렇게 갈 수 있는 곳이 적었고, 부르는 곳 또한 적은 가운데서도 자신들의 무대를 만들어내고 그 무대를 지켜온 것이다. 가끔 장애인연극이나 극단에 대해, 마치 새로 만들어진 분야처럼 이야기 되는 것을 듣거나, 신진 연극인으로 여겨질 때는 안타까운 기분이 든다.
대중 예술을 하는 사람으로서 요즘처럼 많은 사람의 관심을 받고 있다는 것이 불편한 일 만은 아니다. 아니, 아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지금까지 해 왔던 과정을 넘어 앞으로 어떤 무대를 만들어야 할지에 대한 고민이 더욱 깊어진 것은 사실이다. 지금까지는 하고 싶은 것을 먼저 생각해 왔다면 지금은 해야 하는 일이 무엇인지에 더 많이 고심하고 있다.
다만 장애인연극과 더불어 장애 배우들이 소비되지 않기를 바란다. 장애인 극단에게 혹은 장애 배우에게 무엇을 기대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완벽하고 자유로운 신체가 만들어 내는 움직임에 식상해진 관객들의 눈요기가 되지 않기를 바라고, 장애인과 그 주변의 이야기들이 일상적이지 않다는 이유로 감동이라는 포장을 덮어쓴 한순간의 위안이나 흥밋거리로 여겨지지 않기를 바란다. 더불어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해서 장애인 극단의 사람들도 끊임없이 이 시대의 정신을 읽어내고 성찰해야 할 것이다.
갈 길은 멀지만 가고 있다. 만날 수 있는 동료들도 많아졌다. 무대를 봐 줄 관객도 늘어나고 있다. 장애인 연극과 장애연극 혹은 그런 수식어를 거부하는 연극을 만들어 가는 사람들도 늘어날 것이다. 배우들은 무대 위에서 보다 자유로운 한 사람으로 인정받게 되길 바라고 그것을 바라보는 관객의 평가 또한 풍성해졌으면 좋겠다. 그것이 장애인연극이 노를 저어갈 뱃길이 될 것이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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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수

김지수
극단 애인 대표. 재미있는 연극하고 싶은 휠체어 탄 사람. auleala@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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