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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들어올 때 노 젓는 장애예술 #3

장애연극 창작자편

진행_김지수, 정리_정소은

제173호

2019.12.05

웹진 연극in은 “장애예술”을 주제로 기획연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최근 주목받고 있는 장애예술의 실제 현황을 확인하고, 현재 연극계(예술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유의미한 활동들을 짚어보고 진단함으로써 장애예술에 대한 창작자와 관객들의 관심과 이해를 더하고자 합니다. - 웹진 연극in 편집부
  • 일시:2019. 11. 17. 일. 오후 7시
  • 장소: 서울연극센터 1층
  • 참석: 권지현(보편적 극단, 아주 특별한 예술마을), 백수연(연출가), 신재(0set프로젝트), 이연주(전화벨이 울린다)
  • 진행:김지수(극단 애인, 본지 편집위원)
  • 정리: 정소은(독립기획자)
#연극에서 나의 역할 #연극을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나 #장애인예술가와의 만남
김지수
이번 좌담회에서는 연출님들을 모시고 얘기를 나누게 되었는데요. 그간 경험하신 것들을 나눠주시면 좋겠습니다. 각자 어떤 활동들을 하고 있는지요.
백수연
백수연
저는 연출 작업을 많이 하진 않았고요, 배우로 활동하다가 연출에 재미를 느끼던 중에 우연히 발달장애인 대상의 수업을 맡게 됐었어요. 그게 인연이 되어 연출 의뢰를 받았고, 해당 극단의 발달장애인 배우들과 작년 겨울 처음 작업을 하게 됐죠. 장애인연극 연출가라고 하기엔 아직은 많이 부족해요.(웃음) 발달장애인 배우들과의 작업이 특히 어떤 매력적인 부분이 있다는 이유에서 하게 된 건 아니고요. 연극 연출을 의뢰받아서 하게 된 거였어요. 저와 기획자만 비장애인이었고, 나머지 분들은 모두 발달장애인이었어요. 발달장애인 배우들과의 작업은 어떤 특유의 재미와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고요. 사람들도 생각보다 발달장애인들만 출연하는 무대를 높이 평가해주더라고요. 최근에는 농인 배우들이 출연하는, 소수의 관객을 염두에 둔 작업을 준비 중에 있어요.
권지현
저는 ‘아주 특별한 예술마을’이라는 단체에서 발달장애아동들이 편안히 볼 수 있는 공연 만드는 일과 장애인 예술교육 프로그램을 기획해오다, 작년부터는 '보편적 극단'을 시작해서 함께 작업하고 있어요. '아주 특별한 예술마을'에서 했던 공연들은 발달장애인 아이들을 관객으로 하는 것이어서 한두 명 장애인 배우를 제외하곤 비장애인 배우들이 많았고요. 그 밖의 외부 팀들과 작업할 때는 다른 장애인 극단이나복지관에서 장애인분들과 연극을 만드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저는 학부 전공이 특수교육이었어요. 대학 다닐 때 연극 작업에 참여하다가 전공 때문에 자연스럽게 하게 됐죠. 처음 했던 활동은 ‘장애인문화예술극회 휠(이하 극단 휠)’의 조연출이었어요. 지방에 살다가 서울에 가야겠다 결정하면서 ‘극단 휠’의 조연출 모집공고가 난 걸 보고 지원해서 시작하게 됐죠. 나중엔 ‘휠’에서 나와 따로 작업하다가, 극단 다빈나오에서도 조연출을 했었어요. 이후 ‘아주 특별한 예술마을’ 작업을 시작하면서 계속하게 되었습니다.
신재
신재
‘0set(제로셋)프로젝트’라는 프로젝트팀에서 작업하고 있습니다. 극장 공간의 시설 접근성, 즉, 누군가는 들어갈 수 있고 누군가는 들어갈 수 없다는 것에 대한 조사라던가, 혹은 그런 것을 기록/공유하는 방식에 관한 작업을 하고 있어요. 다른 한편으로는 서로를 이해한다는 것의 어려움과 불가능함에 대한 지점에도 흥미가 있어서 장애인 창작자분들과 그에 대한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저는 노들장애인야학에서 교사로 일하면서 활동가 친구들과 있다 보니 그곳의 문제의식과 활동에 관심이 많았는데요. 한편으론 언젠가 공연으로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는데, 뭐랄까 ‘감히 어떻게’ 이런 생각이 들기도 했어요. 그러다가 우연히 극장이란 곳을 다른 관점에서 볼 수 있는 프로젝트를 하게 됐죠. 제가 노들장애인야학에서 만난 장애인분들과는 극장에서 이용할 수 없는 곳이 있었고, 그래서 극장 어디를 못 들어가는 건지, 못 들어가는 곳의 턱은 몇 센티이고 경사로의 각도는 몇 도인지 등... 이런 부분을 확인하는 작업을 한다거나, 혹은 사고가 생겼을 때 모두가 대피할 수 있을까? 이런 것을 다 같이 고민해보는 것에서부터 시작하게 되었어요.
이연주
저는 ‘극단 애인’에서 연출을 처음 시작했고요. 2013년까지 계속 진행하다가, 2015년에 ‘극단 전화벨이 울린다’를 운영하면서 저의 작품들을 하고 있습니다. 극단 애인과는 대략 2년에 한 번 꼴로 작업을 해오고 있어요.
제가 연출부로 있었던 비장애인 '극단 산’과 ‘극단 휠’, ‘극단 애인’이 협업하면서 초창기부터 장애인 배우들과의 만남들이 있다 보니, 심리적/물리적인 거리 자체가 가까웠던 것 같아요. 그래서 과정들을 함께 접할 수 있었고. 연출작업은 극단 애인에서 제게 제안을 해주셔서 가능했던 과정이었습니다.
#작업의 시작 #활동을 이어가는 이유 #작업의 동력 #재밌어서?
김지수
어떻게 계속 활동을 하게 되시는지 그 동력과, 왜 하게 되는지에 대한 동기, 이런 걸 여쭤보고 싶어요.
백수연
배우로 활동할 때 신체극을 했었거든요. 기존에 없던 걸 창작해서 만드는 작업을 좋아했었는데, 발달장애인 배우들과는 이오네스코 작품 같은 것을 해보고 싶어서 시도해 보기도 했죠. 제가 장애에 대해 잘 몰라서 처음엔 많이 힘들었어요. 그들의 특성을 모른 채 인간 대 인간으로만 만나서 서로 이해 못 하는 것도 많았지만, 어떤 부분에선 제 방식대로 밀고 나간 게 오히려 좋았다는 반응도 있었고요. 하지만 그간 해오던 연출 방식대로 하면 안 되겠구나 싶어서 작업을 시작하면서 방법론을 만들어가기 시작했어요. 발달장애인들과 만나는 방법, 그들과 공연을 만들어가는 방법들을.
내 방식대로 하겠다는 욕심보다는 배우들을 그대로 보여주고 싶었어요. 발달장애인 배우들의 한마디 한마디가 예술적이라고 생각했어요. 저도 즐거웠고 그들도 즐거웠으면 좋겠다 싶었죠. 배우들에겐 연습실이 놀이터처럼 행복한 공간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접근했어요.
권지현
권지현
연극 예술강사를 오랫동안 했는데, 제가 만나는 장애가 있는 아이들과 함께 보러 갈 수 있는 공연이 너무 드물었어요. 대개는 쫓겨나니까요. 발달장애 아동이 있는 가족들은 공연을 보러 가기가 너무 어렵죠. 어떻게 하면 우리가 편안하게 같이 공연을 볼 수 있을까, 이런 고민에서 시작했어요. 저희가 2년에 한 번씩 신작을 올렸는데 그 과정이 너무 재미있었어요. 우리 안에 여러 가지 고민이 있었거든요. 이것은 발달장애 아이들만을 위한 공연인가, 함께 볼 수 있는 공연인가, 그러면 특별히 무엇이 필요한가 등의 고민을 하는 과정에서 ‘중요한 건 장애를 가진 관객들을 받아들이는 태도의 문제이지 특별한 건 필요 없다’는 쪽으로 생각이 조금씩 바뀌었어요. 초기 작업에서는 발달장애 아이들이 관극할 때 생기는 어떤 태도나 특수한 지점들을 반영하기 위해 가장 많이 고민했었는데, 후반부 작업으로 갈수록 그런 것들은 다 없어지고, 그냥 보통의 아동극에서 하드웨어적인 부분(공간/등퇴장/좌석 등)을 좀 더 신경 쓰거나 자극적인 걸 배제하는 정도... 점점 더 보편적인 극장으로 간 것 같아요.
지금 갖고 있는 고민은 성인 발달장애인들이 편안하게 볼 수 있는 공연은 어떤 걸까. 발달장애인들과 공연을 보러 가게 되면 대개 소리가 크게 나는 대형 뮤지컬이나, 청소년극, 어떤 경우는 아동극을 보러 가는 경우가 많아요. 성인 장애인들 생활 연령에도 맞으면서 편안하게 볼 수 있는 건 뭘까, 하는 것이 고민이에요.
신재
저는 ‘문제가 있다’는 점에서 시작된 것이긴 해요. 생각이 이어져 오고 있지만, 여전히 해결은 안 되는 문제죠. 해결이 안 되고 있으니까 계속 동력이 생기는 것이기도 하고요.(웃음) 작업하면서 부딪히는 지점에서 계속 다른 질문들을 만나게 되는 것 같아요. 극장 공간에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있을 수 없는 문제를 생각해 보면, 어떤 면에선 매뉴얼/체계/강제 같은 게 명확히 필요해서, 매우 법제도적이어야 하고, 싸워야 하고, 계속 드러내야 하는 측면이 있는가 하면, 한편으론 쉽게 없애기 어렵다는 지점도 있어요. ‘배리어프리’라는 말을 많이 하고, 배리어프리 건물 인증과 같은 요소들은 무척 많은데, 그런 작업들이 중요하다는 생각은 하지만, 다른 한편으론 그게 배리어프리한 순간에만 이루어지고, 사회로 나왔을 때 존재하는 수많은 장벽들은 막상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들이 너무나 많기 때문이에요. 저는 배리어들을 없애는 것보다 ‘배리어들을 보게 만드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그래서 장애인 창작자와 작업을 할 때 ‘힘들고 불편하지 않냐’라던가 ‘어떤 걸 신경 써야 하냐’는 질문을 받을 때면 오히려 반문하게 돼요. ‘비장애인들끼리는 뭐가 그렇게 쉽지? 그 사이에는 과연 배리어가 없을까?’ 하는. 서로를 이해하는 것을 너무 쉽고 단순하게 생각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죠.
이연주
이연주
저는 연극을 하고 싶었고, 연출을 하고 싶었는데. 어떤 작품을 해야 하지? 나는 누구와 작업을 해야 하지? 하는 게 잘 구체화되지 않았어요. 뭘 봐도 확 하고 싶은 욕구가 잘 생기지 않았었는데요, ‘극단 애인’과 처음 작업을 하면서 서로의 에너지가 만나는 걸 확인할 수 있었어요. 저도 연출이 처음이었고. 극단도 막 시작하는 극단이라서, 서로가 답이 뭔지에 대한 것 없이 부딪히는 시도를 했었죠. 그것이 지금 저로 하여금 ‘이렇게 혹은 저렇게 해볼 수 있지 않을까?’, ‘무엇이 연극적인 거지?’하는 등의 망설임 없이 작업하게 만들어준 어떤 힘이었던 것 같아요.
출발점은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보편성과 개별성에 대한 고민, 배우라는 존재에 대한 고민을 구체적으로 하게 된 작업들이 있었던 것 같아요. 대개는 보편성에 주로 집중하는 연극을 잘된 공연이라고 얘기하는 경우가 많은데요. 저는 연출이란 역할은 배우와 계속 소통하는 과정 그 자체이고, 배우가 자신의 정확한 의미를 갖고 움직이며 존재하는 것이 무대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했었어요. 그래서 배우 한 명 마다의 개별성이 어떻게 하면 잘 드러내는가에 집중을 하게 됐고, 그건 지금의 작업에도 계속 영향을 미치고 있는 듯해요. 함께 작업을 하면서 구체적으로 나눈 이야기들이 생기니까 그다음의 작업이 하고 싶어지더라고요. ‘연극이 하고 싶어졌다’라는 생각을 구체적으로 했던 것 같아요. 그러면서 우리는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가, 어떤 관심사를 갖고 이야기하는가 등... 각자가 고민하는 이야기들을 나누다 보니, 개별적인 삶을 공유하게 되고, 그런 이야기들이 갖는 힘을 더 많이 확인할 수 있었어요.
#작업자들과의 연습 #예술가의 특이성 #어떻게 소통할 것인가
#기존의 연극의 개념을 다시생각하다
김지수
각기 다른 신체, 속도, 리듬을 갖고 있는 배우들과 함께 연습할 때 어떻게 조화를 이루고자 하시는지, 그것을 무대화할 때 고민이 많을 것 같아요. 그런 건 공연작업에서 어떻게 반영하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백수연
연극은 앙상블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는데, 발달장애인 배우들에게 앙상블을 기대하기 어려워서 난감했어요. 제가 주로 봤던 장애인 배우들이 등장하는 연극은 주로 ‘자기 이야기’를 하는 작품이 많았어요. 그런데 발달장애인은 자기 얘기를 생각해서 하기를 어려워한다는 얘기를 들어서 마음이 무거워지더라고요. 그런데 생각보다 발달장애인 배우들은 아주 가벼운 친구들이에요. 너무 제 식대로만 생각했던 거죠. ‘난 연출이니 이 공연을 만들어야 해’ 이 생각만 계속했던 거예요. 그러다 보니 배우들은 ‘도구’로만 남게 되고 제가 하라는 대로 끌려만 다녀야 했던 거예요. 너무 힘들어했죠.
학부에서 심리학을 복수전공 하면서 경험해봤던 연극치료를 토대로, 자기 이야기를 자기 수준에서 하도록 계속 시도해봤어요. 다양한 수단 방법을 써봤죠. 어느 날 자폐 증세가 있는 한 배우가 자기가 옛날에 심하게 왕따를 당한 적이 있었다고 얘기하더라고요. 평소엔 눈 맞추고 인사도 잘 안 했었거든요. 그런데 과거에 상처받거나 기억에 남는 것들을 얘기하는 거예요. 저는 의도하지 않았었거든요. 무언가 배우들이 조금씩 변해가는 것 같아 재미있었어요. 그 워크숍을 9개월 정도 계속했어요. 잘 안 되는 날에는 오늘 연습실 오는 동안 기억에 남는 것이 무엇인지 등의 이야기부터 시작하기도 했어요. 그러면서 하나씩 찾아 나가고. 이들이 자기 얘기를 하는 것에 있어서 제가 도움을 주는 연출가가 되면 좋겠다, 하는 쪽으로 생각이 바뀌었어요. 너무 다행이었죠.
저는 발달장애인 배우들에게 왜 맨날 흥부놀부 아니면 토끼전만 시키는지 이해할 수 없었어요. 어린이들과 하는 아동극만을 반복해서 외우게 하고 무대에 간신히 올린 후 고생했다며 박수쳐주는 게 너무 이상했어요. 그래서 그들 수준에 맞는 창작극 만들기를 시작했는데 생각보다 배우들이 잘 따라와줬어요. 발달장애 배우들이 스스로 만들었고, 저는 그들이 만든 것 중에서 그림이 되겠다 싶은 것을 선택해 구성한 정도라고 할 수 있죠.
권지현
저는 결국 소통의 문제라는 생각이 들어요. 장애인과 작업할 때와 비장애인과 작업할 때 동일하게 발생하는 문제인데 나는 배우들과 어떻게 소통하는가를 따져보는 거죠. 내가 만나는 저 사람을 내가 원하는 소통의 방식으로 가져올 것인가, 아니면 공유할 수 있는 소통의 방식을 찾아낼 것인가의 문제인 것도 같고. 그렇다면 누구의 방식만으로 갈 수는 없잖아요. 나의 방식으로 데리고 와도 소통이 어려울 것이고, 저 사람의 방식으로도 내가 100% 넘어가게 될 수는 없고요. 우리가 공유할 수 있는 소통의 방식이 뭘 지를 생각해보는 정도가 아니었을까.
신재
<나는 인간>(2018) 연습할 때 즐거웠어요. 그 안에서의 고충이 없진 않았지만요. (웃음) 그때 발견해서 지금까지 계속하는 것 중 하나가 ‘시간을 갖는 것’이에요. 몸을 쓰는 공연이었기에 움직임을 시도해보려 했는데 각자의 움직임, 속도, 리듬이 모두 다르다 보니, 같이 해보려고 준비했던 것들을 막상 해보니 잘 안되고 재미가 없더라고요. 오히려 몸이 더 긴장되고 굳는 것 같은 느낌이 들고. 그래서 짧게는 10분에서 길게는 30분까지, 불을 다 끄고 완전히 어둡게 해서 그냥 각자의 시간을 가졌어요. 음악도 틀어놓고, 캄캄한 상태에서 자기 몸을 인지해보고, 움직이고 싶으면 움직이고. 그 시간이 참 좋았어요. 그런 시간을 통해 생각하게 된 게 개별성이에요. 우리가 뭘 하기 위해서는 저마다 다른 속도/리듬/시간이 필요한 거예요. 그 시간을 갖는 게 무척 중요하다는 것.
공연작업을 할 때, 우리가 지금 이걸 왜 하고 있고, 뭘 하고 싶은지에 대해 서로가 계속 얘기를 나누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관람모드:보는방식>(2019)과 <나는 인간> 모두 언어장애가 있는 배우가 출연했는데, 우리가 소통이 어렵다고 느끼는 경우 대부분은 ‘우리가 이 작업을 왜 하고 있는지’를 충분히 얘기 나누지 못했기 때문이거나, 혹은 언어장애라는 걸 너무 의식하고 있기 때문이었을 것 같아요. 연습하면서 너무 좋았고, 공연보다 연습에서 더 좋은 순간들도 있었어요. 그런데, 좋았던 것들 중 일부만이 공연에 올라가게 되는데 그 선택 권한은 연출에게만 있죠. ‘다섯명 배우의 매력적인 부분들을 잘 선택한 것일까? 그 선택의 권한은 나에게 어디까지 있으며 이건 무엇일까?’하는 윤리적인 질문이 들기도 했어요.
이연주
저도 비슷해요. 배우들은 장애인 배우건 비장애인 배우건 다 다른데 너무 비슷하다고 착각할 때가 많아요. 심지어 ‘이렇게 해봐, 넌 이게 왜 안돼?’하는 식의, 비장애인 배우/연출이 서로에게 쉽게 했던 말들을 장애인 배우에겐 쉽게 못 하게 되는 거죠.
이번 <인정투쟁;예술가편>(2019) 작업하면서 약간 ‘예단’하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가령, 극단 애인 공연에 대해 사람들이 ‘그런 느림을 보여줘서 좋았어’ 하는 얘기들을 많이 하곤 해요. 그런데, ‘정말 느린가?’ 생각해보면 다들 다르거든요. 어떤 부분에선 저 사람의 느린 모습 안에서의 리듬이 좋았다면, 어떨 땐 굉장히 즉발적으로 에너지가 생기는 모습들을 확인하게도 되고요. 지체장애인의 움직임이나 말에는 항상 느림의 미학만 있다고 착각하는 건 아닐까? 자꾸 그렇게 생각해버리는 와중에 미처 확인되지 못하고 있는 것들이 또 있는 건 아닐까? 그런 부분들을 생각하게 되었고요.
저도 앙상블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데, 연출과 배우 사이뿐 아니라, 배우와 배우, 배우와 무대, 배우와 관객 사이의 리듬감을 서로가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가에 대한 것 같아요. 끝까지 말하고 끝까지 듣기가 저에겐 가장 중요한 방법인 것 같은데요. 배우들께 그렇게 말씀드리곤 해요. 상대방의 대사 호흡이 끝나기 전까지는 절대 그 대사의 호흡을 먼저 놓지 말아 달라고요. 그러면 좀 어려워하시는 것 같아요. 상대방의 장애를 순간적으로 현실로 느꼈을 때의 어려움이 생기는 거죠. 무대 위에서는 서로 어떤 방식으로든 일종의 대화잖아요. 서로가 끝까지 자기가 하고픈 말을 하고 있는가, 서로 듣고 있는가. 이것이 무엇을 위해 계속 흐르고 있는가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면서 작업했어요.
김지수
김지수
저도 장애가 있지만, 저와 다른 장애를 가진 분을 무대에서 만날 땐 어려워요. 저도 저 자신도 모르지만, 그를 안다는 것에 많은 시간이 필요하고요. 한편 이런 생각도 들어요. 저는 활동하면서 장애인보다 비장애인들을 더 많이 만나죠. 비장애인들의 호흡이나 말은 너무 익숙하고, 장애를 갖고 있는 분들과 소통하는 건 더 어렵다고 느껴요. 그건 아주 다른 문제라는 걸 연습하면서 저 스스로 자주 생각했던 것 같아요. 연출님들께서 매개자로서 장애인들과 작업을 하시면서 협업할 때 가장 많이 고려하는 지점은 무엇인가요?
이연주
작품마다 다른 것 같아요. 모든 작품이 동일하진 않아요. 배우들이 자신의 이야기로 작업할 때는 그 이야기 자체가 얼마만큼 잘 전달되는가, 나의 이야기를 무대에서 한다는 것이 관객들과는 어떤 겹들을 가지고 만나는가, 하는 부분에서 고민하는 거죠. 리뷰를 읽으면서 ‘장애인 배우가 무대에 계속 출연하는 과정들을 보면서 나도 모르게 장애를 잊고 공연을 보게 되었다’ 혹은 ‘공연을 보는 동안 장애가 더 이상 중요하지 않은 것이 되었다’라는 관객 반응들이 많은데요. 어떤 의미인지 알 것 같긴 해요. 무대 위의 인물, 배우로서의 존재가치가 훨씬 더 부각되어 보였다는 식의 좋은 표현일 텐데, ‘우리에게서 장애가 잊혀지는 게 과연 좋은 걸까’, '잊혀질 수 있는걸까'하는 질문이 계속 드는 거죠.
신재
제 경우 배우 영역의 창작자들은 장애인인데, 그 외 영역(스태프)은 비장애인들로 구성되곤 하니까, 절대다수가 비장애인 창작진이죠. 공연할 때 ‘장애’라는 걸 드러내는 방식으로 홍보하진 않았던 것 같고요, 섭외할 때는 이 공연의 목적이 뭔지, 왜 하는지에 관해 최대한 명확하게 제안하려 하고, 제안자로서 그걸 계속 통역하는 역할을 하려고 했어요.
제가 이번에 청각장애인, 시각장애인 창작자분들과 프로젝트를 함께 했는데, 그런 작업이 저로 하여금 그들과 더 정확하게 소통하기 위해 계속 여러 가지를 시도해야 한다는 성찰을 하게 해줘요. 이번에 청각장애인 무용수, 시각장애인 배우, 그리고 음성언어 장애가 있어서 문자로 소통하는 작가분과 작업을 하면서, 모두가 모이는 첫날 제가 너무 걱정이 되는 거예요. 시각장애인과 청각장애인 배우 두 분이 곧바로 소통하는 건 어렵지 않을까, 언어장애가 있는 분이 문자로 타이핑하는 걸 시각장애인은 어떻게 보실 수 있을까 등... 그런데 다들 그런 걱정들을 미리 하셨는지 어떻게 소통할지를 어느 정도 준비 해오셨더라고요. 그날 ‘어떻게 대화를 나누지?’ 하는 상황에 부딪히면서 깨달은 건 ‘장애인’이란 얼마나 추상적인 이미지인가 하는 거였어요. 시각장애인들도 저마다 시력이 다르고, 청각장애인들의 청력도 다들 다른데, 장애 유형별로 소통 방식이 이럴 거다, 하는 생각을 제가 미리 갖고 있었던 것 같아요. 그날 충분히 소통이 안 된 부분도 있었겠지만, 서로가 조금씩 더 노력하면서 신경 쓴 지점들이 있다 보니 의외로 소통이 너무 잘 돼서 놀랐어요. 공연 뒤풀이할 때도 너무 즐거웠어요. 하나도 안 불편하더라고요. 같이 술 마시면서 카톡방에서 대화하는 거 같이 보고, 제 옆의 시각장애인 배우분께 제가 카톡 읽어드리고, 그런 것들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질 수 있었는데, ‘구체적인 사람’으로서 만나면 가능해지는 것 같아요. 장애인, 비장애인, 장애유형, 이런 걸 생각하면 만나기 전부터 참 어렵다는 생각이 들 수 있지만, 구체적인 사람으로 만나서 이 사람은 뭘 좋아하고, 이 사람은 뭘 어려워하는지를 생각하면... 그렇다고 해서 구체적으로 만나면 다 해결된다 이런 얘길 하려는 건 아니고요. 당연히 AAC(보완대체의사소통, Augmentative and Alternative Communication)라던가 소통에 어떤 게 필요한지에 대한 학습도 중요하죠. 그리고, 그런 학습을 할 땐 추상적 군집으로서의 장애인으로 학습되지 않도록 해야겠죠. 개별적인 사람들을 만나는 구체적 경험들이 많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권지현
장애인 예술가와 협업할 때 가장 걸림돌이 된다고 생각하는 건 제가 미리 알고 있는 정보들, 그리고 다른 장애인 창작자들과 작업하면서 가졌던 경험들, 즉 선행경험이나 사전정보들이 방해를 많이 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요즘 고민하는 건 어떻게 이런 생각들을 버려두고 만날 수 있을까 하는 거예요. 다른 비장애인들과 만날 때에도 당연히 그런 것들은 작용하겠죠? ‘나는 저 사람을 잘 모른다’라는 걸 인정하자고 생각해요.
제가 참여하는 작업이든 아니든, 제가 작업할 때 보아온 사람들이 좋은 사람이면 소개해 주는 게 가장 마음이 편해요. 제가 해온 작업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 혹은 장애와 관련되어 있지 않더라도 소수자 이슈에 관심이 있었던 사람이면 더 좋다고 생각해요. 아무래도 어떤 무리에서건 다수 집단과 소수 집단이 나눠질 수 있잖아요. 소수 집단에 관심을 가졌던 사람들이 개개인/개별성으로 사람을 만나는 경험이 있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어떤 사람을 집단으로 카테고리화해서 만나지 않고 개별자로서 만나는 경험에 좀 더 익숙한 분들인 것 같아요.
백수연
저는 출연하는 배우들에게만 집중하다 보니 스태프들과 소통할 때 어려움이 상당히 많았어요. 제가 스태프 분들한테 설명을 잘 못 하는 연출가였던 거예요. 저 자체가 일단 문제였죠. 저희는 포스터에 이렇게 명시하려고 했었어요. ‘본 공연은 당일 날씨와 배우 컨디션에 따라서 그때마다 다른 공연이 나올 수 있습니다.’ 라고요.(웃음) 기본적인 뼈대는 있지만, 배우가 오늘 어떤 대사를 할지 아무도 모르는 그런 연극이었거든요. 그래서 계속 긴장하면서 봐야 하는데 그것이 주는 신선함 때문에 저는 즉흥 연습 방식의 연습을 계속 밀고 나갔고, 그러다 보니 스태프들에게 알려줘야 하는 정보, 이를테면 큐사인이 너무 어려운 거예요. 그러면 스탭회의에서 설명을 하죠. ‘이것은 정해진 대본 없이 가는 연극이라서 어려우시겠지만...’ 이렇게요. 그런데 스태프 분들은 이런 작업을 해보지 않으셨고, 제 설명이 충분하지 못했고... 그래서 궁여지책으로 대본을 만들기도 했었죠. 하지만 만들어봤자 배우들이 하는 건 대본에 있는 대사와 매번 다른 거거든요. 가령 ‘사랑해요’라고 했다가 다음번엔 ‘좋아합니다’라고 할 수도 있어요. 그러면 대사에는 절대 큐를 맞출 수가 없어요. 그래서 스태프들과 소통이 힘들었어요.
제가 맨 처음에 스태프 분들도 ‘이런 작업에 관심이 있는 분들이 왔으면 좋겠다’고 기획자 분께 말씀드렸어요. 저는 화려한 조명이나 세련된 음악보다도 이 작업에 관심 있는 분들이 와서 처음부터 같이 갔으면 좋겠다, 나는 여기서 연출가로 남고 싶은 게 아니다, 이 친구들이 빛날 수 있는 공연을 만들 수 있는 조력자이고 싶다... 그런데, 비용이나 일정 등 여러 문제 중에 가장 아쉬웠던 부분은 바로 저였어요. 제가 연출가로서 충분히 설명하지 못했던 건 제 잘못이거든요. 그런데 당시엔 화만 나더라고요. 왜 이 친구들의 상태는 이해하지 못하고 자꾸 나한테 자료를 달라고만 하지? 왜 내 설명을 이해하지 못할까? 이런 생각만 했는데. 저는 연출로서는 0점이었다. 스태프들과 소통을 전혀 못 했구나 하는 후회를 남겼습니다. (웃음)
이연주
유일한 금기 목록이 있는데(웃음), 저는 일단 ‘도와줄게’라고 이야기하는 사람과는 작업하지 않으려 해요. ‘좋은 의미’같은 것에 의미 두지 않는 사람, 당시 극단 애인이 고민하는 지점이 뭔지에 따라서 그 고민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사람이 누굴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당사자성 #누가-어떻게-왜 연극을 할 것인가 #알고 있다는 착각과 오해
김지수
당사자성에 대한 고민을 작업에서 어떤 방식으로 반영하고 계신가요?
이연주
지금 우리 작업 안에 장애에 대한 것만 있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해요. 저는 오히려 어떻게 ‘연극’을 할 것인가를 주로 고민했고, 극단 애인과의 작업을 한창 많이 할 때는 그 고민의 출발점으로부터 시작되니까 당연히 훨씬 더 많이 가깝고. 어떤 때는 그 전보다는 거리감이 있고요. 가장 중심에는 ‘나는 이걸 왜 하지?’ 하는 질문을 두게 되는 것 같아요. 지금 하는 의미가 뭘까 하는 부분이죠.
저는 당사자성에 대한 약간 다른 고민이 있어요. 창작환경에 대한 고민인데요. 시설 접근성이 더 우선순위가 되어야 하는데, 어떤 경우 제가 그걸 덜 우선시한 경우도 있었어요. 이번에도 연습실/극장에 들어가면서, 제작극장에 기본적으로 뭐가 갖춰져 있고, 뭐가 없는지에 관해 확인을 하고, 그것에 대해 극장 측과 소통해가는 과정에서 이런 생각도 들더라고요. 휠체어 이용자를 위한 엘리베이터나 경사로가 없는 거라면, 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인에게 접근성이 떨어지는 문제이기도 하지만, 가령 부상을 당한 비장애인 배우가 연기를 할 수 있는 신체 상태일 때에도 그 배우는 공연을 할 수 없는 것이 정석인 거구나 하는 생각이요. 배우들 몸 관리에 대한 걸 그런 맥락에서 ‘자기관리 잘해야 한다’고 얘기들 하잖아요. 자기관리란 뭘까, 누군가는 어떤 공연에서 배제되었을까, 이런 생각들을 이번 공연하면서 했었어요.
신재
누군가가 개별적으로만 존재하는 순간이 있을 수 있는 건지 모르겠지만, ‘함께 있다’라고 했을 때는 당사자성이 또 달라질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럴 때도 당사자성이라는 단어가 유효한가 하는 의문이 들어요. 정체성, 주체성에 대한 의문도 생기고요.
작품을 왜 하는가? 그런 질문을 저에게도 했었어요. 압축해서 얘기하자면 정치적 올바름 때문에 하나? 어쩌면 그것도 맞겠죠. 그런데 저는 그냥 ‘우리는 같이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같이 들어갈 수 없는 곳이 있다고 할 때, 내가 어떤 태도를 갖게 될 것인가에 대한 질문에서 오게 되는 것 같아요. 그때 내가 뭘 선택하느냐가 내 정체성을 규정지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고요. 공연을 할 때엔 저도 당사자라고 생각을 하는 것 같아요. 그런데 그 당사자의 의미는 분명 다르겠죠. 내가 장애인 당사자와 동일하다는 의미가 아니라, 이 작업을 하는 동안 함께 이 주제에 집중했고, 우리는 함께 있기 때문에. 그 생각을 놓치는 순간 이건 할 이유가 없는 작업이 될 수도 있겠죠.
권지현
어려운 질문인 것 같아요. 저희가 ‘아주 특별한 예술마을’을 처음 시작했을 때 비장애인 세 명이 시작했거든요. 각자 외부작업을 했었지만 ‘아주 특별한 예술마을’을 시작한건 목적성이 뚜렷했어요. 지원서를 쓸 때 장애인예술단체/비장애인예술단체 체크를 해야 하는데 우리 팀은 목적성이 분명했음에도 불구하고 비장애인 예술단체인 거예요. 대표자가 장애인이거나, 구성원 40% 이상이 장애인이어야 하는데 우리는 해당되지 않아서 약간 억울했어요.(웃음) 당사자가 있어야만 당사자성을 가질 수 있는 것인가, 하는 생각도 들고요. 당사자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이야기인가 하는 질문도 생기고, 당사자성이란 도대체 뭔가 하는 질문이 쌓인 상태예요.
작업하면서 단지 장애인에 국한된 게 아니라 다른 소수자들도 함께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함께 하면 생각의 지점들이 훨씬 더 넓어지는 것 같아요. 고려할 지점이 훨씬 많아지고, 놓치고 갈 수 있는 부분들을 계속 생각나게끔 하더라고요. ‘같이’하게 되면 여러 가지 고민의 지점들을 볼 수 있게 되죠. 막연히 ‘그럴 것이다’라고 생각하는 것에서 실재하는 어떤 사람과 함께 하는 건 느낌이 다르잖아요. 실제적인 문제들을 고민할 수 있어지는 거죠. 막연히 장애가 뭐지?, 장애라는 주제를 어떻게 무대화하지? 하는 고민에서 가령 휠체어 타는 분들과 뒤풀이 장소 어디를 가지? 비건(vegan)인 분들과 작업할 때 간식을 뭘로 준비하지? 이런 실질적인 문제로 내려오는 게 좋은 것 같아요. 기회가 닿는다면 최대한 같이 하는 것이 여러 면에서 생각할 지점을 많아지게 해준다고 생각해요.
백수연
배우 개개인 특성을 알기 위해 9개월간 발달장애인 배우들과 워크숍을 했었어요. 함께 하면서 여느 작업처럼 접근했는데, 그중에서 ‘저 사람은 혼자 서서 발표를 할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드는 배우가 있었어요. 모두 앞에 서서 혼자 이야기한다는 건 비장애인에게도 쉽지 않잖아요. 그런데 그 친구는 서서 자기 이야기를 다 하더라고요. 물론 자기방식대로였긴 했지만... 워크숍에 참여한 발달장애 배우들은 무대에 서는 것에 엄청 프라이드를 갖고 있는데, 제가 미처 생각지 못한 게 있었다는 걸 알았어요. 그다음부터 더 꾸준히 관찰하고, 대화하는 식으로 방법을 바꿨어요. 제가 관심을 주고 그들이 마음을 열 때 그 당사자성이 더 드러나는 것 아닌가 싶어요.
#장애예술의 미학 #장애예술을 바라보는 관점 #장애연극을 즐길 수 있나
김지수
작품의 예술성 혹은 장애예술의 미학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해요. 미학이란 뭘까에 관한 것보다도, 어떻게 볼 것인가, 본 걸 솔직하게 말하는 것부터 시작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드는데요. 연출님들은 어떠신가요?
신재
서로를 이해하는 건 참 어려운데 장애에 대해서는 너무 쉽게 ‘이해해버린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공감이나 동의를 떠나서 자기 식대로 해석한 후 쉽게 ‘버려지는’ 것 같은 생각이 많이 들었죠. 결국 비장애인들 스스로가 어떻게 보고 있는지에 대한 자기관찰이나 성찰 없이는 어떤 변화라는 게 불가능한 것 아닐까. 그래서 <관람모드:보는방식>를 시작하게 되었고. 이런 문제의식과 관심 있는 사람들이 모여서 장애인이 등장하거나 장애를 주제로 다룬 공연들을 보고 각자 어떻게 보고 있는지를 기록/공유하는 워크숍을 시작하게 되었어요. 그 과정에서 공연은 그걸 제공하기 힘들 거란 생각이 들었어요. 공연을 보는 그 짧은 경험이란 건 그냥 경험인거예요. 공연이 뭔가를 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원래도 안했지만, 그러다가 <관람모드> 워크숍 과정에서 ‘자기 기록’을 하면서 결과적으로 도달한 지점은 자기가 공연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 각자가 공연에 대해 기대하는 게 뭔지였어요.
공연이라는 건 맥락을 만들어주는 거구나, 하는 생각을 했어요. 일상에서 함께 생활하고 경험하면서 맥락이 쌓였을 때 어떤 작은 사건도 커다란 생각의 전환으로 오기도 하잖아요. 그걸 누군가는 경험하겠지만 누구는 못 하거든요. 그래서 공연은 관객으로 오는 사람들이 살면서 경험하는 수많은 것 중 하나의 맥락으로 남을 수 있어도 좋지 않을까. 그래서 관객이 극장이란 공간을 다르게 보고, 자기가 보고 있는 것을 다시 볼 수 있는 맥락을 만들어주면 좋겠다, 극장이란 공간은 공연을 보러가는 곳뿐 아니라 극장 자체를 봤으면 좋겠다, 가령 극장의 높은 턱이라던가, 없는 것들, 있는 것들을 봤으면 좋겠다, 그런 생각을 했죠.
공연이란 대부분 어두운 곳에서 창작자가 하는 걸 보는 거였는데, 완전히 1:1 관계로 관객이 노출되어 만났을 때의 당혹스러움, 이해할 수 없음에 대한 경험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1:1형식의 공연을 한 거였어요. 그게 무척 낯설거나 당혹스럽거나 이해할 수 없을 수도 있을 것 같은데, 그런 공연의 경험이 삶에서의 작은 맥락으로 기능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백수연
지난번 공연에 남자배우 셋이 얘기하는 장면이 있었어요. 어떤 관객이 그 장면을 보고 별로라는 반응을 보였는데, 흥미로운 대사도 아니고 그분한텐 신선하지도 않았던 거예요. 그래서 궁리하다가 배우들과 장난을 좀 쳤어요. 누구는 9000번, 누구는 3번. 난 지금 3000번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데 그걸 못 타면 엄마한테 혼날 텐데... 하는 장면인데요, 여기서 배우들에게 ‘우리 이 대사에서 ’버스‘라는 말을 빼고 해볼까?’ 했어요. 그래서 배우들의 대사에서 단어를 하나씩 뺀 거예요. 그렇게 하고 보니 분위기가 <고도를 기다리며> 같은 거예요. 제가 억지로 유도했다면 아마 이상한 장면이 되었을 텐데요, 배우들을 편안하게 해주면서 단어 한 개씩 빼 보니까 재미있는 거죠. 발달장애인 배우들과 작업을 할 때는 이런 방법을 써도 자연스러운 연기를 끌어내는 것에 도움이 되겠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특수한 특성을 가진 배우들이 자연스러운 연기를 하는 걸 보여주는 게 공연의 목적이었거든요. 그런 점에서는 저에겐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권지현
최근 같이 작업하던 비장애인/장애인 창작자들 함께 우리의 공연은 ‘너무 쉽게 칭찬받는 건 아닌가’하는 얘기를 나눈 적이 있어요. 이것이 과연 장애인 창작자에게 도움이 되는 일인가 하는 얘기를요. 감히 누가 이 작업을 비판할 수 있을까. 이 공연에 대해 예술적/미학적으로 어떻다는 얘기를 지금 누가 감히 할 수 있을까. 공연을 보고 관객들이 감동하는 지점은 저마다 다른데, 장애인 창작자들의 공연을 보고 ‘이 공연 너무 싫었어’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 별로 없을 거라는 거죠. 왜 그럴까 생각해보면, 사람들은 장애인 창작자들의 공연을 본 적이 별로 없다는 거예요. 비판할 수 없어서가 아니라 너무 경험이 없어서. 내가 몰랐던 감각들이 무대 위에 올라오는 걸 보면 너무 좋을 것 같거든요. 내가 몰랐던 세계를 공연을 통해 접한다는 건 감격스러운 순간이잖아요. 단지 장애인 연극이 아니더라도. 언제쯤 장애인 창작자들의 공연을 마음껏 비판할 수 있는 날이 올까. 결국 기회의 문제가 아닐까요? 우리에겐 관객들이 무대에서 장애인들이 공연하는 것에 익숙해질 시간이 필요해요. 저 감각이, 저 몸이, 우리에게 더 이상 특별하지 않은 것이 될 때쯤이면 장애연극 작품을 어떻게 수용하고 비판할지에 대한 감각들이 자연스럽게 생기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이연주
저는 일단 장애예술가가 하는 장애예술에 대한 비평을 보고 싶어요. 청소년 연극을 비평하는 청소년 관객의 글을 읽었을 때 다른 감각이 생기는 것처럼. 비장애인 시각에서의 비평이 아닌 좀 더 구체적인 시선으로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 관객들은 창작자의 시선을 바라보는 거잖아요. 창작자 시선의 맥락들이 어디까지 공유되고 있는 걸까, 어디까지 소통되고 있는 걸까, 지금은 아직 만남의 과정이지 않을까 싶어요.
이 연극을 어떤 시선으로 바라봐야 해요? 하는 질문을 이번에 <인정투쟁> 공연하면서 연극하는 분들로부터 많이 받았어요. 그래서 리플렛엔 ‘어떤 시선도 갖지 않는 관객을 만나고 싶다’는 이상한 홍보 글을 썼었는데요.(웃음) 저마다의 주관적 시선들을 만나보고 싶어요.
권지현
최근에 장애예술계가 급물살을 타게 되면서 오히려 주목받지 않았을 때보다 더 말조심하게 되는 느낌이 들어요. 섣불리 뭔가 말하기가 힘들어요. 우리가 뭔가 담론을 형성할 만큼 쌓아온 무엇이 있을까? 지금의 담론을 형성하고 있는 우리들은 정말 뭔가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가? 저에게 향하는 질문인 것 같아요.
이연주
해외 사례들이 우리의 상황에 잘 적용될 수 있다고 생각하진 않았으면 좋겠어요. 물론 다양한 모델과 가능성이 공유되는 건 중요한 것이지만요. 어떤 예술에 대해 논하는 것은 그 주변의 맥락, 문화적 요건이라든지, 실제로 복지와도 분리될 수 없는 부분들도 많고요. 해외 사례들의 가능성과 그곳의 시도를 자칫 한국에 적용하려는 건 아닌가 하는 고민을 갖게 되기도 해요. 우리의 장애예술에 대한 것들을 ‘포용적 예술’이라는 말로 다 설명할 수 있을까, 그 안에는 너무나 많은 층위가 있는데, 그것이 자꾸 하나의 개념 안으로 묶이는 건 아닐까 하는 우려가 있어요.
신재
지금 변화의 시작은 중요한 지점이란 생각은 들고요. 변화가 없는 것보다 낫다는 생각은 들지만, 저도 비슷한 우려는 있어요. 해외 사례나 공연을 한국에 소개하는 움직임에 반해서, 막상 국내에서 이루어지는 장애인예술 공연은 별로 보지 않거든요.
권지현
물이 들어온다면 노를 저어야만 하는 것일까요.(웃음)
신재
그것도 잘 봐야 할 것 같아요. 물이 어디서 들어오는가, 누가 물을 넣고 있는가, 물의 양은 얼마나 되는가, 이 물의 방향은 우리를 어디로 끌고 가는지 정도는 인지하고 있어야 할 것 같아요. 유행일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고, 후퇴하지 말아야 할 지점들도 생기겠고, 더 나아가는 지점들도 생기겠지만, 물이 슥 지나가 버렸을 때 소모되거나 휩쓸리거나 하지 않고 하고 있던 것들을 꾸준히 지속할 힘을...
권지현
다들 비슷한 마음이 아닐까요. 반갑기도 하지만 한편 걱정스럽고 조심스럽기도 한...
김지수
저도 다른 극단들과 다 얘기를 나눠보진 못했지만, 마음이 복잡하기도 하고, 같은 고민을 하는 분들이 계셔서 든든하기도 합니다. 앞으로의 작업계획은 어떻게 되시나요?
신재
<관람모드:보는방식> 작업에 인용구를 넣었었는데요. ‘배리어 컨셔스’ 작업을 앞으로 더 해보고 싶어요. 배리어프리는 ‘자, 이제 배리어 프리 됐어, 해결됐어’ 이런 느낌인데. 그런 게 아니라, 우리가 서로 소통하려 할 때 우리 사이에 얼마나 많은 통역과 배리어가 있는지를 확인하는 작업을 장애인 창작자들과 함께하고 싶어요. 문자통역이나 화면해설로 접근하는 식의, 기존 시스템에 넣는 접근도 있겠지만, 다 만들어진 것에 넣는 방식이 아니라, 원래 우리가 가진 배리어들이 얼마나 많은지에 대한 확인에서부터 인식하게 하는 작업을 해보고 싶어요.
이런 작업이 처음은 아니죠. ‘장애인문화예술판’에서도 극장에 경사로 놓으면서 공연하며 문제제기도 많이 했었고요. 그때는 지금처럼 장애예술에 대한 관심도가 훨씬 없었던 때였죠. 시도했지만 포착되거나 기록되지 않았기에 다 흘러가 버린 거죠. 지금 해외 사례들을 소개하는 시도도 좋지만, 국내의 이런 가능성을 포착하고 기록하는 작업을 했더라면, 이 안에서 더 다른 것들을 시도할 수 있었을 텐데... 해외 사례에서는 어떤 큰 의미들을 잘 찾아내는데 반해서, 국내에서는 어떤 가능성을 발굴해서 판을 키우는 역할이 부족했던 거죠. 어떤 면에선 성급하게 완성형을 보고 싶어 하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들어요.
백수연
저는 배우들만 선택받아야 작업할 수 있는 건 줄 알았는데 연출도 마찬가지더라고요. 누군가 저한테 손을 내밀어주지 않으면 안 되더라고요. 이런 생각은 들어요. 관객이라는 불특정 다수의 구미에 맞는 공연을 만든다는 게 너무 어렵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아주 소수의 사람만이 오더라도 그 사람들만을 위한 공연을 만들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지금의 발달장애인 배우들과 작업하면서 들었어요. 제가 이전에 했던 작품이 비장애인 성인들 대상으로 만든 작품이었다면, 같은 배우들 구성원 그대로, 가령 발달장애 청소년/어린이 등으로 관객들을 딱 제한해서 그분들을 위한 공연을 하면 좋겠어요. 많은 관객이 와서 볼 수는 없겠지만, 공연을 원하는 사람들이 충분히 즐길 수 있는 공연을 만들고 싶어요, 언젠가는.
권지현
저는 ‘아주 특별한 예술마을’이라는 단체와 ‘보편적 극단’이라는 두 단체에 속해있는데. 이 두 단체는 어찌 보면 하나예요. 주요 구성원도 동일하고. ‘보편적 극단’으로 가면서 배우들이 좀 더 많이 늘었는데. 주요 구성원은 동일해요. 저희가 ‘아주 특별한 예술마을’을 시작할 때 이건 언젠가 사라지면 좋겠다, 더 이상 우리가 하는 일들이 특별한 일로 여겨지지 않는 시점이 되면 접자는 마음으로 시작한 단체예요. 이름처럼 특수성에서 보편성으로 넘어가고 있지 않나 싶고요. 예전에 비해 장애예술에 관심 갖는 분들도 많고, 여기저기서 많은 일이 일어나고 있으니까, ‘아주 특별한 예술마을’은 사라질 수도 있겠다, 이런 가능성을 기대하고 있다고나 할까요.(웃음)
김지수
오늘 긴 시간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연출님들도 각자 다른 분들 이야기를 들으면서 우리는 어떻게 앞으로 나아가야 하나 고민도 많아졌겠지만, 비슷한 고민을 하는 사람들이 있으니 흔들리지 않고 제대로 물길을 만들어갈 수 있는, 어디로 가야 할지를 정하는 일을 함께하실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어요. 앞으로 무대에서, 대학로에서, 거리에서, 자주 만나길 기대하겠습니다.
[사진: 김지성 jasonk1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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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소은

정소은 독립기획자
과거 몇 년간 근무했던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예술교육프로그램과 축제를 담당했었고, 지금은 간간이 독립기획자로 활동 중. 작년에 진행한 파인텍 굴뚝농성 펀딩 프로젝트 <마음은 굴뚝같지만>이 계기가 되어 최근에는 문화예술의 정치.사회적 효용성 및 가능성을 주로 고민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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