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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들어올 때 노 젓는 장애예술 #4

관객편

진행_문영민,정리_유혜영

제174호

2019.12.19

웹진 연극in은 “장애예술”을 주제로 기획연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최근 주목받고 있는 장애예술의 실제 현황을 확인하고, 현재 연극계(예술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유의미한 활동들을 짚어보고 진단함으로써 장애예술에 대한 창작자와 관객들의 관심과 이해를 더하고자 합니다. - 웹진 연극in 편집부
  • 일시:2019. 11. 25. 월. 오후 7시
  • 장소: 서울연극센터 1층
  • 참석: 변자운, 이정하, 차미경, 하은빈
  • 진행:문영민(장애예술 연구자)
  • 정리: 유혜영(본지 편집에디터)
#장애연극을 만난 계기 #내가 생각하는 장애연극이란
문영민
최근 장애예술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하더라도 실제 관객분들이 이 흐름을 긍정적으로 인식하고 있지 않으면 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오늘의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먼저 자기소개를 부탁드립니다.
하은빈
안녕하세요. 저는 미학을 전공하는 대학원생입니다. 예전에 ‘장애문화예술연구소 짓’에서 작업을 한 적이 있었고, 그것을 계기로 장애예술에 관심을 갖게 되었어요. 사실 최근에 많은 공연을 보지는 못하고 있는데, 어쨌든 장애연극을 늘 염두에 두고 있는 게으른 관객입니다.(웃음) 최근에는 연극보다는 무용 쪽에 더 관심을 가지고 있는데요, 꼭 무용이라기보다는 서사나 캐릭터가 기존 연극보다는 덜 강조되는 ‘퍼포먼스’에 관심을 두고 있습니다.
이정하
저는 대부분 아는 분 소개로 연극을 보러 가거나, 괜찮은 공연이라고 하면 보러 가는 편이라서 일반 연극 경험은 많지 않고요, 공연에 대한 어떤 취향이 있다기보다 저에겐 배리어프리가 좀 더 중요한 요소인 것 같아요.
차미경
장애학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공부하면서 장애예술 쪽에 관심을 많이 가지게 됐고요, 원래는 TV 드라마를 공부하고, 장애인 방송을 쭉 해왔어요. 최근에는 ‘에이블뉴스(www.ablenews.co.kr)’에 장애인 관련한 칼럼을 쓰고 있는데요, 칼럼을 쓰기 때문에도 그렇고, 드라마를 하다 보니 이야기 쪽에 관심을 두고 있기도 하고, 아는 지인들이 연극을 하고 있기도 해서 장애연극도 자연스럽게 좋아하게 됐습니다.
저는 장애인이 하는 연극에서 장애는 어떻게 표현이 되고, 장애인들의 몸과 입을 통해서는 어떻게 다른 방식으로 서사가 이루어질까? 이런 것들에 관심이 있습니다.
변자운
영상 쪽 일을 해왔는데요, 지금은 구청에서 방송을 만들고 있습니다. 어쩌다 보니까 제가 1년에 연극을 50편에서 70편 정도 보는 것 같아요. 이번에 좌담회를 준비하면서 '내가 연극을 얼마나 봤지?' 세어 봤더니 10년 동안 연극을 600편 정도 봤고, 그중에 20편 정도가 장애연극이었더라고요. 원래 하는 일이 영상 쪽이다 보니까 극단의 요청을 받아서 영상 일을 하기도 하고요, 장애연극은 주로 ‘장애인문화예술판(이하 극단 판)’이나 ‘극단 애인’의 작품들을 많이 본 것 같아요. 연극을 볼 때는 주로 이야기 전개, 서사적인 부분에 포커스를 두고 감상하고 있습니다.
문영민
먼저 여쭤보고 싶은 것은 여러분이 생각하는 장애연극, 장애예술이란 어떤 것인지에 대해서예요.
변자운
변자운
저는 글을 쓰든, 연기를 하든, 스태프를 하시든 장애인이 직접 참여하는 연극이 장애연극인 것 같아요. 그렇지 않으면 장애인이나 장애가 쉽게 수단이 되어버렸던 것 같아요. 제가 2011년에 처음 장애인이 참여한 연극을 보게 됐는데, 그분이 자기 이야기를 하시는 것을 보며, ‘장애가 굉장히 주체적으로 말해질 수 있구나’라고 느꼈어요. 다른 작품에서는 장애가 웃음의 소재가 된다든지, 살인사건에서 장애인인 줄 알고 수사망을 피해갔는데 사실 비장애인이었다! 라는 식으로 장애가 수단으로 사용된다는 느낌이 강했거든요.
장애연극이 가지는 매력이나 특징이라고 한다면 장애라는 것 자체를 메인 테마로 삼아 단순히 수단으로 소모하지 않고 그것을 소화한다는 것 같아요. 2013년에 극단 애인이 하는 <고도를 기다리며>를 봤는데, 이전에 본 다른 극단이 했던 공연에서는 이해하기 어려웠던 부분이 새롭게 다가오기도 했어요. 그런 게 장애연극의 매력인 것 같아요.
차미경
차미경
극단 애인이라든지 ‘장애인문화예술극회 휠’(이하 극단 휠)이라든지, 그렇게 다작을 하는 극단은 아니잖아요. 그래서 1년에 한두 번 공연을 보게 되는데요. 장애인 문학도 정의할 때, 장애인 작가가 쓴 것이냐, 장애인이 등장하는 것이냐, 아직도 정의가 내려지지 않아서 논쟁도 많고 그러잖아요. 장애예술, 장애인연극도 아직 확실히 정의하기는 어렵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TV 드라마에 장애인 주인공이 나오면, 그 주인공이 장애를 이야기한다기보다는 장애를 가지고 있는 주인공일 뿐, 사실 장애 당사자가 느낄 수 있는 그런 세밀한 것들은 빠져 있어서 많은 분이 아쉬워할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저는 장애연극이라고 하면 그동안 드라마나 영화에서 장애인 주인공들이 하지 못했던 굉장히 세밀하고 섬세한 장애인 서사가 들어있는 연극이라고 기대를 하거든요. 같은 이야기를 하더라도 예를 들어 드라마 ‘라이프’(2018, JTBC)에 나왔던 이규형은 휠체어를 탄 주인공의 동생일 뿐, 더 자세한 장애인 서사는 나오지 않잖아요. 그런데 만일 이것이 장애인 극단에서 하는 공연이라면, 휠체어를 탄 인물의 서사를 훨씬 더 섬세하고 예민하게 이야기하지 않을까? 그런 기대를 가지고 보게 되거든요.
작년에 저는 ‘극단 춤추는 허리’의 연극을 봤는데 발달장애인이 통장을 만드는 이야기라든지, 그런 이야기들은 솔직히 비장애인 사이에서는 별로 다루어지지 못했던 이야기인데, 장애인의 목소리로 자신의 이야기를 할 때 훨씬 더 깊이 관객에게 다가오는 부분이 있었어요. 장애인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가 들어있다는 게 제가 생각할 때는 장애연극의 장점이고. 앞으로 그 점을 더 강화시켜 가야하지 않을까 생각해요.
그런데 극단 애인에서 선보인 <고도를 기다리며>나 <전쟁터 산책>(2017)이 장애인 이야기는 아니었잖아요. 장애인 이야기가 아닌데 어떻게 장애인 배우들에 의해 구현될까? 그런 기대를 했고 되게 재미있게 봤었어요. 장애를 가진 배우들이 장애 말고 다른 이야기를 하는데, 장애를 또 완전히 배제하고 하는 이야기도 아니고, 관객들이 장애인 배우들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게, 저렇게 얘기할 수 있구나, 그런 새로운 느낌을 줬던 연극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정하
이정하
연극이라는 것은 관객도 있어야 성립이 되는 거잖아요. 그래서 저는 크게 배리어프리를 제공하는 연극도 장애연극으로 포함해서 생각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배리어프리를 제공한다면, 연극을 장애인과 관련해서 생각한다는 거니까요. 한편으로는 그래서 장애연극에 기대하는 기준이 다른 연극에 비해 좀 더 높은 것 같다는 생각도 들어요. 왜냐하면 굳이 장애와 관련된 주제를 골랐고, 굳이 장애인 배우를 섭외했고, 배리어프리를 제공하니까 그런 맥락에서 여성이나 성소수자, 다른 소수자에 대한 관점도 좀 피씨(Political Correctness) 하게 나타나지 않을까 이런 생각도 하고요.
문영민
실제로 장애연극을 보거나 배리어프리 연극을 보면서 그런 기대를 충족하게 되나요?
이정하
공연마다 다른 것 같아요. 어떤 공연은 장애인에 대해서는 섬세하게 다루지만 여성의 입장에서 보면 정말 말도 안 된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었고. 어떤 공연은 장애인 외에 다른 것은 아예 생각할 여지가 없기도 했고요. 그리고 어떤 공연은 괜찮은 것 같은데 내용이 너무 어려워서 이해를 잘 못하겠고, 내용이 너무 어려우면 이것은 배리어프리한 것인가? 아닌가? 생각하게 되고요.
하은빈
하은빈
저는 장애문화예술연구소 짓에서 작업할 당시에 장애예술에 대한 나름의 기준이나 정의를 함께 규정하기도 했었는데요. 장애인 당사자가 등장할 수도 있고 혹은 한 명도 등장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어쨌든 특수한 몸을 가짐으로써 세상과 또는 이 무대와 불화하거나 갈등을 겪기도 하고, 혹은 소외나 억압을 경험하기도 하는데, 그런 경험들이 내용적인 측면에서든, 형식적인 측면에서든 반영되거나, 어떤 방식으로든 표현된다면 그것이 장애연극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이정하 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극장까지의 접근성이나 내용에 대한 접근성이 관객에게 배리어프리하게 제공되는 것이 장애연극이라면 당연히 고려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고요.
#관객으로 체감하는 장애연극계의 변화 #다양한 극단과 이야기 #배리어프리 확대와 한계
문영민
최근에 장애연극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는 점에서 이번 좌담회도 준비된 것이겠죠. 그런 흐름에 대해서는 각자 어떻게 생각하고 계시는지 궁금해요. 최근 장애연극이나 공연이 늘어나고 있다거나 좋은 작품이 늘어나고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일동 동의)
문영민
그렇다면 관객으로서, 비평가로서 그 변화를 어떻게 느끼고 계신지, 작품의 수가 늘어난 것인지, 작품성이 변화했다고 느끼시는지 말씀해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최근에 보셨던 공연을 말씀해주셔도 괜찮고요.
차미경
극단 휠이 연극을 시작한 게 2001년인데요, 그때는 일 년에 공연을 한두 편 올릴까, 말까 했었어요. 그런데 제가 올해는 여러 편의 공연을 봤다는 것만 봐도 장애인 공연이 훨씬 많아졌다는 것을 실감하고요. 극장의 편의성도 훨씬 더 좋아졌다는 것이 피부로 느껴져요.
내용 면에서도 예전에는 억압된 장애여성의 이야기나 장애인으로서 겪었던 사회의 불평등, 차별에 대한 이야기가 많았다면, 요즘은 굉장히 다양해졌어요. 극단 애인의 예를 들면, 장애 관련한 작품이 아니더라도, <고도를 기다리며>라든지, <전쟁터의 산책>, <푸른색으로 우리가 쓸 수 있는 것>(2018) 등의 공연들은 장애연극으로서 확장된 이야기들을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문영민
문영민
2000년 중후반에 장애연극을 본다고 하면 극단도 굉장히 소수였고 선택지가 별로 없는 편이었잖아요. 지금은 그보다 훨씬 많은 장애연극이 공연되고 있고, 그래서 다양한 극단의 개성들이 다르게 파악되는 것 같기도 해요.
차미경
극단 휠 같은 경우에는 굉장히 오래된 연극단체이기도 하고, 쌓아온 연륜과 노하우가 있으니 조금 더 다양한 시도를 하면 좋겠다는 기대를 하고 있는데, 사실 아직은 장애 인식 개선 운동 차원의 연극들을 많이 하는 것 같아요. 반면, 극단 애인은 제가 가장 많이 보는 극단이기도 하지만 일단 다양한 이야기, 다양한 도전과 시도를 하고 있다는 측면에서 좋고요. 극단 춤추는허리 같은 경우에는 장애여성의 이야기에 좀 더 집중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문영민
장애연극 접근성의 측면에서도 다양한 시도들이 늘어난 것 같아요. 예전에는 이음센터 같은 공연장도 없었고, 문자통역도 자원봉사자분들이 해주셨지 시스템이 있는 것은 아니었잖아요. 그런데 최근에는 접근성을 보완할 수 있는 지원이 많아져서 그것을 활용하는 공연도 굉장히 많아진 것 같아요.
이정하
배리어프리를 제공하는 연극이 다양해진 것은 확실히 체감하고 있어요. 몇 년 전에는 연극을 보러 가고 싶으면 일단 극단 이메일로 연락해서 ‘대본을 미리 주실 수 있으세요?’하고 받아요. 그래서 몇 번 읽어보고 가거나 했었는데, 요즘에는 포스터에 써 있어요. ‘문자 통역, 수화 통역이 제공됩니다.’ 그걸 보고 가면 되니까 선택지가 넓어지기도 했고요.
문영민
최근에 어떤 형태의 배리어프리를 경험하셨나요?
이정하
휠체어는 대부분 극장 접근이 가능했던 것 같고요. 수화통역은 되는 공연도 있고... 어떤 공연은 일주일에 두 회차 정도 하기도 하고요. 그런데 아무래도 문자통역이 가장 많이 제공되는 것 같아요. 극장에서도 제공하기 편한 방식으로 많이 하려고 하는 것 같아요.
문영민
최근에 어떤 기계로 하는 문자통역 공연을 보셨다고 들었습니다. 그 내용을 좀 더 이야기해 주실 수 있나요?
이정하
우선 문자통역 방식은 쉐어타이핑과 컬처커넥트가 있는데요, 쉐어타이핑1)은 대사를 치고 약간의 딜레이가 생기는 것을 보면, 속기사님이 매 공연마다 듣고 치는 방식인 거예요. 대사가 엄청 많은데 바로바로 쳐야 해서 사실 되게 안쓰러워요. 그런데 연극에는 애드리브 같은 게 있잖아요, 약간 딜레이가 생겨도 그런 대사가 그대로 제공될 수 있어요. 반면, 컬쳐커넥트2)는 미리 제작된 자막을 제공하고, 시간에 맞춰 넘겨주는 거라서 연결이 잘 안 되면 끊기고요. 배우가 애드리브를 한다든가, 원래 대사를 까먹어서 약간 변형을 하게 돼도 그게 반영이 안 돼요. 각각 장단점이 있는 것 같아요. 저는 쉐어타이핑 방식을 좀 더 선호하기는 하는데, 딜레이가 생기는 게 신경 쓰여서 컬쳐커넥트로 보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요.
수화통역도 보통은 무대의 양 끝에서 하거든요. 그러면 보기가 좀 불편해요, 일단 누가 말하는지 헷갈리고. 싸우는 장면같이 대사 핑퐁이 빠르게 되는 장면에서는 고개를 여기저기 왔다 갔다 해야 해서 너무 어지러워요. 그런데 최근에 본 (극단 여기는 당연히 극장, 미아리고개예술극장)는 배치를 좀 다르게 했더라고요. 수화통역사가 무대 가운데 있고, 배우가 양옆에 있었는데 그 방식이 보기 편했어요. 다양한 시도가 있는 것 같아요.
차미경
시각장애인 관객을 위한 화면 해설도 제공되고 있나요?
문영민
문자통역이나 수화통역보다는 빈도가 적은 편인 것 같아요. 최근에 두산아트센터에서 했던 <인정투쟁; 예술가편>(이하 <인정투쟁>)에서는 두 회 정도 지원되었다고 하는데요, 특수한 공연에서 몇 회차만 일부 진행되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차미경
<인정투쟁>을 보러 갔을 때 느꼈던 건데요. 저 같은 경우는 맨 앞줄 휠체어석에 앉아 있었는데 문자통역을 제공하는 스크린은 양쪽 벽에 있더라고요. 청각장애인 분들이 주로 볼 수 있게 해야겠지만, 저는 청각장애가 있지 않더라도 바로 못 알아들을 때가 있어요. 어떤 부분에서는 되게 중요한 대사가 귀에 쏙 안 들어올 때가 있어서 문자통역을 보거든요. 이번 같은 경우에는 스크린을 보려면 고개를 많이 돌려야 하는 상황이 되더라고요.
그런데 고개를 너무 돌려버리면 무대가 보이지 않고. 어떤 부분에서는 전체 화면 해설만 해주고 대사를 쳐주진 않아서 불편하기도 했고요. 이런 점들은 청각장애인들도 불편하고 휠체어를 탄 관객들도 굉장히 불편할 수 있겠다고 느꼈어요. 관객이 들을 수 있고 접할 수 있는 방식을 조금 더 다양하게 고민해 보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푸른색으로 우리가 쓸 수 있는 것> 같은 경우는 일부 대사가 무대 정면에 타이핑이 되었는데, 그조차도 무대의 일환으로 이루어져 있어서 보기가 편했었거든요.
하은빈
<인정투쟁>같은 경우에는 공연 자체가 텍스트 중심이어서 대사를 전달받지 못하면 거의 이해가 안 되는 공연이었기 때문에 많은 분들이 그렇게 느꼈을 것 같은데... 저도 자막을 엄청 봤거든요. 무대를 안 보고 자막을 볼 거면 여기 왜 왔지? 싶을 만큼 그쪽으로 자연스럽게 시선이 갔어요.
공연을 만드는 입장에서는 배리어프리 제공이 여러 가지 면에서 도전이 될 수 있는데, 특히 무대 같은 경우에는 조명이라든가 무대 배치 같은 것이 굉장히 중요한데, 자막을 어디에 배치할 것이고 얼마나 어떤 각도에서 누구에게 노출할 것인가를 고려하기 위해 공연이 본래 하고 싶었던 것들을 못 하게 될 때도 있잖아요. 예를 들어, 조명이 밝아지면 그만큼 자막 화면이 흐려진다든지 이런 어려움이 있어서... 공연이 만들어지고 나중에 배리어프리가 고려되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적극적인 무대 요소로 고려되어서 공연을 구성하는 하나의 중요한 부분으로 같이 가지 않으면 잘 지원되기가 굉장히 어렵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정하
<인정투쟁>에서 따로 문자통역을 제공하기도 했지만, 무대에 자막이 들어가 있는 장면도 있었잖아요. 배리어프리라고 특별함을 부각하지 않는 그런 방식으로 제공한 지점은 좋다고 생각했어요.
문영민
배리어프리라는 게, 엘리베이터를 만든다고 휠체어를 탄 사람만 편한 게 아니고 자막을 만든다고 청각장애인만 편한 게 아니잖아요. 많은 사람이 편해지는 것인데요. 말씀하신 것처럼 공연에 대한 배리어프리가 공연이나, 공연을 보는 모든 사람이 접근하기 편한 방식으로 구성이 되면 좋을 것 같다고 생각합니다.
하은빈
짓에서 연극을 할 때만 해도 공연할 공간이 없어서 애를 먹었었는데 이제 이음센터도 생겼고, 국제장애인무용제가 올해 네 번째로 열리고 있기도 하고요. 제가 굳이 찾아가지 않아도 멀리서 들리는 소식이 많아서 ‘수요가 늘어나고 있구나’ 또는 ‘활발히 논의되고 있구나’ 이런 생각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제가 몇 년 전에 알던 극단들의 공연 소식이 여전히 들려오고, 더 큰 공연장, 더 많은 사람이 찾는 공연장에서 공연할 기회도 생겼다는 것이 ‘메인스트림에 진출하고 있다?’ 이렇게도 보이고요. 더 많은 관객을 만나게 되면 새로운 장애예술인들이 활동하게 될 수도 있고, 좀 더 많은 시도와 실패와 그것을 통한 성취를 할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변자운
저는 예전보다 일반 관객이 늘어난 것 같다고 느껴요. 공연이 끝나고 배우들이랑 인사를 나누는 시간이 있잖아요. 제가 장애연극을 보기 시작했을 무렵에는 관객들 대부분이 아는 배우랑 인사를 하겠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런데 한 2, 3년 전부터 공연 끝나면 그냥 나가는 분들이 많아졌어요. 그런 것을 봤을 때 예전보다 일반 관객이 늘어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고요. 또 예매하기가 어려워졌어요. 이번 <인정투쟁> 같은 경우는 티켓이 없어서 전화 문의도 많이 했었거든요.
내용에 있어서도 예전에는 장애인 본인들의 이야기가 굉장히 많았던 것 같아요. 그런데 극단 애인이나 극단 휠, 판 등 여러 극단이 원래 있던 작품으로 새로운 공연을 만든다거나, 완전히 새로운 것을 창작하는 것을 보면서 그런 시도에 많은 관객이 호응하고 있는 게 아닌가 생각이 들어요.
#인상 깊었던 공연 #실망스러웠던 경험 #장애여성연극인
문영민
앞서 <인정투쟁> 공연 이야기도 많이 나왔는데요, 좀 더 구체적으로 최근에 본 공연이나 인상적이었던 작품, 혹은 실망스러웠던 작품에 대한 경험을 나눠주실 수 있을까요?
이정하
최근에 본 공연은 완전 청각장애인만 다루는 연극이어서 되게 인상이 깊었어요. 왜냐하면 그동안 배리어프리 제공을 하는 공연이라고 해도 지체장애인이나 발달장애인을 중심으로 다룬 것들이 많아서 저랑은 다르니까 진짜 저 선 너머에서 보는 느낌도 있었고... 그런데 청각장애인을 다루는 공연을 보고 나니까 공감되는 부분을 친구랑 이야기할 수도 있었고, ‘저 배우는 이렇게 하더라’ 하는 좀 더 연극에 대한 대화를 할 수 있었어요.
문영민
확실히 공연에서 다루는 장애 유형도 확장되고 있다는 생각이 드네요.
이정하
그런데 실망스러웠던 점은 청각장애인이 나오고 청각장애인을 주제로 다루면서도 배우는 비장애인이었거든요. 이런 것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청각장애인을 배우가 흉내 낸 거잖아요. 외국에서는 흑인을 흉내 내는 백인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이 있기도 하잖아요. 흉내 내는 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지? 비장애인 배우의 여러 시도에 대해서 무조건 비판할 수는 없는 것 아닌가 싶기도 하고. 그런 면에서 고민이 있었어요.
하은빈
저는 최근에 <인정투쟁>을 보고 나서 이 작품을 장애연극이라고 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 개인적으로 고민이 좀 있었어요. 공연이 텍스트 위주이고 많은 대사를 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비해서 그 텍스트와 배우들 간의 관계를 잘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공연에서 말하는 ‘나’와 ‘너’와 ‘그’가 이 배우들이어야 하는 이유를 잘 모르겠더라고요. 모두가 신체장애를 가진 극단 애인과 함께했고, ‘나는 예술가이다’라는 선언과 그것에 대한 고민을 한다고 할 때, 저는 필연적으로 이들의 몸이 자신의 의도와 다르게 겪게 되는 불화의 경험이 연관될 것이라고 예상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텍스트는 그런 것을 이야기하는 것 같지 않아서 아쉬웠어요.
공연의 첫 장면이 커튼콜이잖아요. 배우들이 나와서 무대를 가로질러 걸어가는 모습이 보이는데, 저는 그 장면이 너무너무 좋았거든요. 몸과 표정과 얼굴을 다 볼 수 있어서요. 그런데 이후 극이 진행될수록 공연을 이해하기 위해 기계적으로 자막을 보고 있는 저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 거예요. 그러다 보니까 이 몸들이 무대에 들어와서 보여줄 수 있는 것을 아쉽게도 많이 보여주지 못한다는 인상을 받았어요. 장애연극으로서 의미를 가지려면 배우들이 무대와 맺는 관계, 각자의 다른 몸들과 맺는 관계, 관객과 맺는 관계, 텍스트와 맺는 관계가 있을 텐데 저로서는 그 매개가 잘 안 보이고 어떻게 해서 이들이 여기까지 도달하게 되었을까? 어떤 작업 과정에서 이곳에 올 수 있었을까? 이것을 짐작하기가 어려웠어요.
문영민
굉장히 좋았던 장면과 아쉬운 장면이 공존하는 공연이었군요.
하은빈
제가 장애연극에서 어떤 경험을 바라는 것일까를 생각해보면 객체화된 몸으로써 소비되는 특정한 기호들 - 비극성, 숭고함 등 - 을 비켜나면서 결국 그 몸만이 할 수 있는 표현, 그 몸을 가진 사람이 수반하고 있는 구체적이고 역사적인 것들이 같이 들어오는 공연을 보기를 바라는 것 같아요. 제 친구가 쓰는 표현으로는 ‘얼굴이 있는 춤’, ’얼굴이 있는 몸’ 이렇게도 얘기할 수 있을 것 같고요.
무대가 배우의 예술 활동을 더 자유롭게 하는 좋은 제반이 되는 것을 목격하고 싶기도 하고... 우리가 평소 일상에서 많이 만나지 않았던, 발견되지 않은 몸이기 때문에 갖는 어떤 환원 불가능한 순간들에 대해서는 당연히 일상적인 언어로 표현하기가 어려울 것 아니에요. 이 좋았던 경험을 잘 설명하기 어렵다는 경험을 해 보고 싶어요. 이를테면, 다른 몸으로 대체될 수가 없는, 그 배우가 아니면 발견할 수 없는 그런 독창적인 무엇을 발견하고 싶은 것 같아요.
이정하
그런데 저도 <인정투쟁>을 보면서 하은빈님과 비슷하게 느꼈거든요. 시작할 때 그런 문장이 나오잖아요. '어떤 사람이 지나가고 누가 그것을 보고 있으면 그것 자체로 무대가 된다.' 그리고 나서 한 명씩 나오길래 ‘장애와 관련된 것을 하는구나’ 기대를 했는데, 시간이 갈수록 그게 아니다 보니까 내가 굳이 장애랑 관련해서 연극을 보려고 하는 게 어쩌면 편견에 사로잡힌 건 아닐까? 이런 고민을 하게 되기도 하고, 굳이 장애를 강조하지 않을 거면 왜 이 배우들과 작업을 했는지 잘 모르겠더라고요. 내용 자체도 너무 어려웠고요.
변자운
그런데 저 같은 경우는 장애라는 게 연극에 자연스럽게 녹아나길 기대하는 점이 있거든요. <인정투쟁>에서 장애라는 요소를 직접적으로 드러내지 않고 자연스럽게 녹여냈다는 점이 좋았어요. 아쉬웠던 점은 처음에는 선명하게 시작했지만, 그 이야기가 ‘너’로 가고 ‘그’로 가면서 어디론가 사라져버린 것 같아요.
올해 8월에 구로에서 극단 휠이 “마이스또뤼”라고 해서 장애인 극작가 발굴 프로젝트의 작품 발표 형식으로 7편의 공연을 했어요. 거기서 박찬영 작가의 <달려라 찬영이>라는 작품이 인상 깊었는데, 코미디였어요. 왜 이게 재미있었을까 고민해 봤더니 제가 본 장애연극 중에 코미디가 없었던 것 같아요. 특히 자신들의 이야기를 극으로 녹여낼 때는요. 그런 면에서 휠이 대놓고 코미디를 만든 것, 굳이 그 안에서 장애를 드러내지 않는 점이 인상적이었어요. <달려라 찬영이>는 모태솔로 찬영이가 연애할 수 있겠느냐는 주제였고, 호종민 작가의 <세 틴구>는 정말 바보스러운 세 친구가 놀러 가기 위해서 준비하다가 말아먹는 이야기. 이런 자연스러운 소재가 녹아나는 게 좋았던 것이 아닐까요?
일반 관객들도 많았거든요. 토요일이라서 그럴 수도 있지만, 가족 단위 관객이 와서 깔깔깔 웃더라고요. 무대에서 연기하고 계신 분들이 장애인인 것을 모르진 않으실 텐데 그 점을 별로 인식하지 않고 즐기는 것이 좋았던 것 같아요.
문영민
차미경님의 이야기도 궁금한데요. 특별히 장애연극에서 장애여성배우가 어떠한 위치에서 공연하고 있는지에 대해 고민해 보신 바가 있으면 같이 이야기해 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차미경
장애여성배우들이 손에 꼽을 정도로 없는 실정이죠. 저는 장애여성배우 중에서 어선미님을 좋아하고요. 어선미 님은 볼 때마다 굉장히 새로운 느낌으로 공연을 볼 수 있게 해주셔서 그런 배우가 좀 많아졌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들어요.
제가 국제장애인무용제를 해마다 보러 가는데 같이 갔던 일행분이 했던 말씀이 기억에 남아요. 국제무용제는 다양한 나라에서 많이 오잖아요. 우리나라 무용과 해외에서 오는 무용에 확연히 다른 부분이 있는데, 국내 무용에는 아직도 장애를 가진 몸을 표현하는 것에 있어서 주저함이라든가, 자기연민이 많이 남아있다고 하시더라고요. 저도 굉장히 공감했거든요. 외국 무용수 같은 경우에는 ‘내가 원래 이런데, 뭐?’ 이런 식의 당당함과 자연스러움이 묻어나는 경우가 더 많았어요.
우리 장애연극도 그 많은 자기연민의 과정을 다 녹여내고 이렇게 넘어서는 과정을 지금 겪고 있는 것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드는데... 우리 사회에서 장애여성으로 산다는 것은 남성보다 더 힘든 상황이잖아요. 장애여성연극인들이 이토록 적은 것이 내 장애를 당당히 무대 위에 드러내놓고 살 수 있는 분들이 그렇게 많지 않다는 것을 방증하는 것은 아닐까 싶기도 하고. 그렇다면 계속 자기연민을 해내고, ‘어디서 신세타령이야?’ 하는 과정을 쭉 넘어가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해요. 우리나라 장애연극 역사가 얼마 안 됐잖아요. 저는 관객의 입장으로 봐도 그 짧은 기간에 되게 많이 왔다고 응원해 주고 싶어요.
문영민
자기연민을 넘어서기 위해서 뭐가 필요할까요?
차미경
집 안에서 밖으로 나오는 과정에서 가정에서 소외되고, 제도에서 소외되었던 경험들이 있었어요. 그 과정에서 관계 맺기에 서툴렀던 부분이 자기연민, 자기비하로 이어지지 않았을까 생각이 되고요. 요즘은 더 다양한 사회 활동을 역동적으로 하고 관계도 다양해지고 있기 때문에 그 많은 관계 속에서 자기 들여다보기를 다시 한다면, 전과는 다른 경험들이 자연스럽게 묻어나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앞으로 장애연극에 바라는 점_기대하는 점 #홍보와 공유와 예매의 방식에 대해
문영민
시간이 많이 흘러서 이제 마지막 질문드릴게요. 앞으로 장애연극 창작자들에게 바라는 점이라든지, 장애연극에 기대하고 있는 점을 나눠주시면 좋을 것 같은데요, 특히, 물리적 또는 심리적 배리어에 있어서 실제로 개선할 수 있는 점들은 무엇이 있을지도 이야기해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변자운
먼 미래를 봤을 때는 장애연극이라는 말이 없어지고 장애라는 게 연극에 더 자연스럽게 어울리게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장애인 극단'이라는 표현보다는 다양한 극단 중에 자연스럽게 어울릴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극단 휠도 좋고 극단 판도 좋고 다 좋은데, 이게 토양이 되어서 이곳에서 성장한 배우분들이 더 다양한 무대, 더 다양한 곳에서 활동하실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문영민
모든 극단이 장애를 고려하고 자연스럽게 장애가 이야기될 수 있는 것이 가지는 장점도 있지만, 그러면 장애인이 가지고 있는 매력이나 특징 같은 게 사라지지는 않을까요?
변자운
없어지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요. 오히려 더 다양해지고 풍성해지지 않을까요? 아직 갈 길이 먼 것 같기는 해요. 하지만 인식 변화가 많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도 느끼고 있잖아요. 어디서나 장애인이나 비장애인 신경 안 쓰고 장애인 배우가 당연히 출연하고 그런 게 매력적이지 않을까요? 드라마 '왕좌의 게임'(HBO, 2011~2019)의 배우 피터 딘클리지(Peter Dinklage)가 그렇잖아요. 장애인이라서 사람들이 주목한 것이 아니라, 멋진 연기에 주목한 것처럼. 그런 식으로 발전해가면 좋지 않을까 하는 바람입니다.
차미경
요즘에 콜라보레이션 많이 하잖아요. 장애인 작가의 작품을 희곡으로 하고, 장애인 화가의 작품이 무대로 들어오고, 장애인 음악인의 음악을 공연에 사용해서 다양한 장애 예술인들의 작품을 연극 한 편에서 감상할 수 있도록 하면 장애예술에 대한 비장애인들의 관심이 높아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봐요. 장애 당사자들조차 장애예술을 비하하거나 폄하해서 이야기하는 경우도 있거든요. 그분들에게 예술하는 장애인들의 작품을 다양한 통로를 통해서 보여줄 수 있으면 좋을 것 같고요. 사실 장애인 문학이 크게 조명되지 않고 있는데, 장애인 작가의 작품으로 연극을 하면 연극이 또 다른 의미를 가지게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요.
그리고 장애인 극단의 연극은 홍보되는 범위가 너무 좁다는 생각이 들어요. 일반 연극들처럼 좀 과감하게 홍보하고, 열린 곳에 홍보했으면 좋겠어요. 관심이 없어서가 아니라 몰라서 못 보는 분들도 계실 수 있으니까 홍보에 좀 더 적극적인 전략을 사용하면 좋을 것 같아요.
더불어 장애연극이라든지 장애를 다룬 연극이라든지 공연하고 난 이후에 관련된 이야기가 많이 이루어질 수 있는 창구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어요. 관객과의 대화 같은 프로그램도 더 많았으면 좋겠고요. 예전에 제가 <한달이랑 방에서 나오기만 해>(극단 애인, 2018)를 보고 장애인 딸이 치매에 걸린 엄마를 이해하고 스스로와 화해하는 이야기라고 쓴 적이 있는데, 다른 장애인 관객분이 결국 장애인 자식을 가둔 이야기를 왜 미화하냐고 하신 적이 있어요. 보는 입장에 따라서 그것이 폭력이었던, 화해였던 장애연극에 대한 다양한 논쟁이 오가면 앞으로 연극이 더욱 풍요로워질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런 이야기를 할 수 있는 판이 더 만들어졌으면 좋겠어요.
문영민
저도 장애연극을 보는 장애인 당사자이거나 장애연극에 관심을 가진 분들의 리뷰가 공유되는 플랫폼이 많아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전문가나 평론가뿐만 아니라 당사자들의 리뷰도 나눠질 수 있는 창구가 더 많았으면 좋겠어요.
이정하
저는 인터파크에 예매하려고 들어가면 장애인 할인은 전화만 가능하다고 하는 점에 대해서 말씀드리고 싶어요. ‘휠체어 좌석은 꼭 전화주시기 바랍니다’ 이런 식으로 안내가 되는데, 전화를 사용하기 어려운 장애인의 경우에는 다른 사람에게 부탁해서 예매해야 하니까 심리적 장벽이 큰 것 같아요. 수화통역사가 조명 때문에 묻힌다든지, 어플로 제공되는 문자통역의 경우 중간에 작동이 안 되면 연극에 집중할 수 없게 된다든지, 그런 부분에서도 여전히 배리어를 느끼게 되고요.
그리고 저는 장애연극이 기존 연극을 새롭게 해석하는 작업들이 더 많이 이뤄지면 재미있을 것 같다고 생각합니다.
하은빈
장애문화예술연구소 짓은 더 이상 활동하지 않지만, 더 많은 재정 지원과 기회와 공감이 있었다면 더 마음껏 실패하면서 다양한 시도를 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도 들어요. 창작자들이 지치지 않도록 더욱 더 많은 지원과 기회, 과정을 지지하고 인내심 있게 지켜봐 주는 환경이 만들어졌으면 좋겠어요. 주요 단체들이 더 많은 자원을 가지고 장애예술에 관심을 가져줬으면 좋겠고요. 사실 창작자들이 이대로만이라도 더 사라지지 않고 남아줬으면 하는 마음이 제일 큰 것 같아요.
그리고 조금 다른 얘기지만 배리어프리를 지원하는 공연이 디폴트 값이 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기대합니다. 요즘 배리어프리 공연이 많아진다고는 하지만, 장애인 친구들과 연극을 보러 가기에는 여전히 접근성이 취약하거나, 직원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경우가 많거든요. 접근가능한 극장, 배리어프리가 지원되는 공연이 당연한 관람 환경이 조성되었으면 합니다.
문영민
장애예술 창작자분들이 굉장히 열악한 조건에서 지금까지 작업을 지속해 오신 것 자체만으로도 굉장한 일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오늘 중요한 얘기를 많이 해 주신 것 같아요. 정말 감사하고요, 그 어떤 공적인 지원도 중요하지만, 관객분들의 관심이 없다면 장애예술의 변화 자체가 지속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계속해서 관심과 지지를 부탁드립니다.
  1. 에이유디 사회적협동조합에서 제공하는 실시간 문자통역 플랫폼이자 서비스. https://www.sharetyping.com/
  2. IT 솔루션을 통해 공연관람을 위한 배리어프리 서비스를 개발하고 서비스하는 벤처기업 https://www.ccnt.kr/
[사진: 김지성 jasonk1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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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혜영

유혜영
본지 前편집에디터. 공연이 일어나는 공간을 좋아하고, 기록하는 일과 기록되지 않는 사람들에 관심이 있다.
yoohy_8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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