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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들어올 때 노 젓는 장애예술 #5

우리는 노를 저어 어디로 갈 것인가

문영민_장애예술연구자

제175호

2020.01.23

웹진 연극in은 “장애예술”을 주제로 기획연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최근 주목받고 있는 장애예술의 실제 현황을 확인하고, 현재 연극계(예술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유의미한 활동들을 짚어보고 진단함으로써 장애예술에 대한 창작자와 관객들의 관심과 이해를 더하고자 합니다. - 웹진 연극in 편집부
2019년은 여러 면에서 한국 장애예술, 특히 장애연극 활동을 하는 이들에게 기억에 남는 한 해였다. 작년 5월, 장애/비장애인의 ‘공존’을 모토로 한 예술포럼 “같이 잇는 가치”(서울문화재단 주관)가 다양한 장애, 비장애 예술가들을 ‘이어내는’ 행사로 주목받았다. 10월에는 이음센터의 주최로 배리어프리 플레이그라운드가 열렸다. 상업공연과 예술공연을 가리지 않는 대표적인 극장인 두산아트센터에서 극단 애인이 공연 <인정투쟁; 예술가편>을 상연하여 장애연극 관객의 바운더리를 확대한 것도 주목할 만한 변화였다. 이 흐름 속에서 미국, 호주 등에서 활동하는 해외 장애예술가들이 한국을 방문해 시의적절한 시사점을 제언하기도 했다.
사실 그보다 더 가깝게 체감하는 변화는 공연장이라는 공간이 장애인 관객을 맞을 준비를 하게 된 것이다. 서울의 대표적인 공공극장 중 하나인 남산예술센터에서 2019년 상연한 공연 <7번 국도>, <명왕성에서>, <묵적지수>, <그믐, 또는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에서 배리어프리 공연을 진행하였다. 공연이 가지는 고유성을 반영해 서로 다른 색깔을 가진 배리어프리 공연을 구현해내었다.
공공에서 진행하지 않는 공연에서도 장애, 혹은 배리어프리에 대한 관심이 이어졌다. 청각장애인이 자신의 언어를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야기를 담은 공연 <트라이브스>(제작_극단 여기는 당연히 극장)는 전회차를 배리어프리 공연으로 진행했다. 2019년에 상연한 배리어프리 공연을 일일이 나열하지 않아도 그 변화는 가까운 곳에서 이루어지고 있었다. 연말에 청각장애인 친구들과 함께 지하의 작은 소극장에서 진행하는 공연을 관람하러 갔다. 사전에 관람을 요청하였더니, 속기사를 위한 자리를 별도로 마련해주었고, 대사가 많은 공연이니 내용을 숙지하도록 대본을 미리 보내주었다. 마치 공연 스태프가 화장실을 안내하듯 자연스럽게, 그러나 조심스럽게 배리어프리를 안내하던 배려가 낯설지 않았다.
장애연극 자체에 대한 관심이든 접근성에 대한 관심이든, 어떠한 변화가 우리가 함께하고 있다는 것은 확실하다. 이러한 변화를 감지하며 지난 두 달간 웹진 연극in의 기획 “물 들어올 때 노젓는 장애예술”에 참여했다. 장애연극에 창작자로, 매개자로 혹은 관객으로 참여하고 있는 사람들을 만났다. 이들은 모두 변화를 크고 작게 경험하고 있었고, 변화를 환영하거나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우리는 노를 저어 어디로 가야할까. 아니, 우리는 계속 노를 저어야 할까?
0set 프로젝트 <관람모드-보는방식> (사진 : 이영건)
기존 예술계가 장애예술에 주목하고 있는 이 시기에 창작자들은 장애예술이 왜 존재하는지, 이것이 갖는 가치가 무엇인지를 주류 예술계에 증명해야 한다는 부담에 직면하고 있었다. 그러나 장애예술의 창작자(혹은 매개자)들은 현재의 예술 체계 하에서 장애예술의 가치와 의미를 ‘단시간에’ 드러내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라는 점에 동의하고 있었다. 재미든, 의미든, 새로움이든, 끊임없이 장애예술에서 가치를 찾고자 하나, 저마다 다른 속도/리듬/시간이 필요한 장애예술가들에게 쉬이 그 ‘가성비’를 찾아낼 수 없다. 어쩌면 장애예술은 가성비가 아주 떨어지는 활동일지도 모른다. 오랜 시간 저마다의 목적으로 장애예술 활동에 참여해온 이들은 장애예술이 가지는 힘이 “꾸준히 관찰하다 포착하게 되는”(매개자편/정소은) 지점에서 온다고 했다. “개별적인 사람들을 만나는 구체적인 경험”이 필요하며(창작자편/신재), “각자의 몸의 경험이 쌓여야”(매개자편/최선영)한다고 입을 모았다. 이처럼 장애인이든, 비장애인이든 누군가의 개별성과 고유성을 인식하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다. 빠르게 무언가를 만들어내고 증명하려 하기보다는, 늘 해왔던 것처럼 관찰하고, 기록하고, 이야기를 듣는 일을 지속하는 것이, 반짝거리다 사라지는 물살이 아니라 길고 꾸준한 물줄기를 만들어내는 힘이 되지 않을까.
또한 장애연극에 대한 비평의 언어를 만드는 일 역시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좌담회 ‘관객편’에, 나 또한 장애연극의 관객으로 즐겁게 참여했다. 그 자리에서 장애연극에 대한 정의가 관객마다 다르게 정의되는 것이 흥미로웠다. 장애인이 글을 쓰거나 연기를 하거나 스태프를 하는 경우를 장애연극이라고 정의하는 관객이 있는가 하면, 장애인이 등장해도 장애인 서사가 들어있지 않다면 공연을 장애연극으로 보지 않는 관객도 있었다. 장애 서사와 상관없이 배리어프리를 제공하는 연극도 크게 장애연극의 범주로 보기도 했다. 좌담회에서는 최근에 관람한 좋았거나 혹은 실망스러웠던 장애연극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 ‘비평’들은 창작자와 관객 모두에게 정말로 흥미롭고, 도움이 될 만한 이야기들이라고 생각했지만, 이를 나눌 수 있는 플랫폼이 없다는 것이 안타까웠다.
장애연극에 대한 최근의 관심, 그리고 배리어프리 공연의 확대(배리어프리는 장애인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로, 앞으로 장애예술가들이 만나게 될 관객의 범주가 완전히 달라질지도 모른다. 지금까지 관객들은 장애인 창작자의 공연을 본 적이 없고, 장애인의 공연에 익숙하지 않았기에 쉽게 비평을 시도할 수 없었다. 앞으로 장애인 창작자와 관객이 만날 수 있는 더 많은 무대들이 만들어질 것을 기대한다. 관객들이 장애인 창작자의 공연을 보고 별 다섯 개를 남기거나 혹은 ‘“이 공연 너무 싫었어!”라고 말할 수 있는 장’(창작자편/권지현)이 만들어졌으면 한다. 영국의 장애예술 비평웹진 ‘Disability Art Online’이 장애예술에 대한 담론을 생산하는 플랫폼으로 기능하는 것처럼, 장애예술 비평의 공간이 담론을 만들고 물길을 유지시키는 공간이 되기를 바란다.
Disability Art Online 사이트 메인화면 (https://disabilityarts.online)
마지막으로 배리어프리를 만들어가는 과정으로 “배리어 컨셔스(barrier-conscious)”(창작자편/신재)를 함께 고민해볼 수 있기를 바란다. 얼마 전 ‘0set 프로젝트’와 함께 한 공공극장의 배리어프리 점검 작업에 참여했다. 0set 프로젝트는 2017년 대학로 공연장 접근성 워크샵을 진행하며 대학로 120개의 공연장 중 휠체어를 탄 관객이 접근할 수 있는 공연장은 14곳뿐이며, 그중 장애인 창작자가 접근할 수 있는 공연장이 단 3곳이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우리가 점검한 공공극장의 상황은 나은 편이었다. 분장실이나 화장실에 접근할 수 있었고, 시설의 보완을 통해 극장에서 공연을 하는 것이 불가능해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공연의 스태프들은 “접근성이 미비하여 장애인 창작자나 관객을 초대하기에 미안해서 초대하기 어려웠다”고 말했다. 배리어프리를 도달해야 하는 완벽한 목표로 상정할 때, 모든 장애인의 접근성을 만족시키는 그 닿을 수 없는 상을 고민하다가 배리어프리를 포기하곤 한다. 배리어프리에 대한 고민의 시작을 “우리가 가진 배리어들이 얼마나 많은지 확인하고 인식”(창작자편/신재)하는 작업을 통해 서서히 시도해볼 수 있으면 한다. 창작자, 관객, 그리고 극장이, ‘공연장’이 가진 배리어가 무엇인지를 함께 고민하는 기회들을 통해 만들어나갈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어떤 곳을 향해 가고 있을까. 장애가 인식되지 않는 무대? 혹은 장애인의 개별성과 고유성이 더욱 더 큰 매력으로 관찰되는 무대? 모든 배리어가 제거된 무대? 지금까지 모두가 해왔던 것처럼, 각자의 목적지로, 각자의 속도대로, 느리고 천천히 함께 노를 저어갔으면 좋겠다. 그리고 함께 배를 타고 있는 창작자, 매개자, 관객들이 지치지 않도록 계속해 서로가 힘을 실어주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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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영민

문영민 장애예술연구자
서울대학교 사회복지연구소에서 장애인 공연예술, 장애정체성, 장애인의 건강 불평등을 연구한다. 프로젝트 극단 0set의 공연 <연극의 3요소>, <불편한 입장들>에 참여하였고, 공연으로 장애인 접근성 문제를 알리는 활동에 관심이 있다. 현재 『이음온라인』 기획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saojungym@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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