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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② 공연예술가 한윤미

[연극과 지구: 모두를 위한 연극] 두 번째 기사

한윤미_공연예술가

제181호

2020.06.18

연극in은 지구 환경과 예술의 관계에 대한 고민을 작품 활동에 직접 담아내고 있는 창작자로서 시각예술 큐레이터 윤민화, 공연예술가 한윤미, 뮤지션 솔가를 인터뷰했습니다. *인터뷰는 서면으로 진행되었습니다.
- 연극in 편집부
한윤미
1. 환경에 대한 관심을 토대로 진행해 온 활동들을 소개해주세요.
<고기, 돼지>는 돼지가 고기가 되기까지의 가려진 과정을 드러내는 공연입니다. 관객이 참여하는 이동형 오브제 극입니다. 참여 관객들은 작은 돼지(오브제)와 특별한 관계를 맺고 함께 투어를 하게 됩니다. 관객들은 돼지에 대한 묵념을 시작으로 돼지고기 부위에 대한 기억, 돼지고기 함유 식품 전시, 돼지의 지능과 특징, 야생 돼지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때로는 돼지가 되었다고 가정하여 농장에서 도축장까지 가는 과정을 겪기도 합니다. 농장의 커다란 돼지(오브제)들과 만나 시간을 보내며 돼지들이 어떻게 태어나고, 자라는지에 관해 이야기를 듣는 중, 구제역이 발생합니다. 그리고 구제역 살처분 현장을 함께 목격하게 됩니다. 작은 돼지들을 포함하여 그 지역 반경 3Km 이내 모든 농장의 돼지들이 살처분됩니다. 인간이 동물을 먹는 것은 과연 자연스러운가... 동물들은 자연스럽게 태어나거나 자라거나 죽지 않습니다. 어떻게 어떤 동물은 당연히 식용(!)동물이고, 어떤 동물은 사랑하는 존재가 될까요. 공연은 인간이 동물의 삶을 결정하는 태도를 질문하고, 인간과 동물의 관계를 교란해 체험하도록 하며, 공연이 끝난 후 저녁 식사를 하면서 지구에서 인간의 위치와 역할을 생각해보기를 기대합니다.
<고기, 돼지> 공연사진 ⓒ서울거리예술창작센터
공연의 창작과정에서 작품이 교조적이지 않도록 주의했습니다. 그리고 온전히 돼지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했습니다. 동물이 등장하는 공연 중 동물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공연은 거의 없고, 대체로 동물에 빗대어 인간의 어떤 면을 표현하려는 작품들이 많습니다. <고기, 돼지>는 동물 자체가 목적이 되는 공연이 되도록 노력했습니다. 과정 중 어려웠던 점이라면, 물론 폭염에 돼지 농장 답사도 어려웠지만, 도축 과정이 담긴 영상 콘텐츠를 봐야 하는 일 등 이미 존재하는 사실들을 직시하는 것이었습니다. 감정적 소모가 커서 그만큼 시간이 오래 걸렸습니다.
서울 청계천에서의 공연은 성인과 외국인 관객이 대부분이었지만, 수원 경기상상캠퍼스 공연 때는 어린이 관객들이 많이 참여해주셨는데요(공연은 전체 관람가입니다) 작품의 중반부에 돼지가 너무 불쌍해서 슬프다고 하거나, 후반부에 울음을 터트리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공연이 끝난 후, “이제 고기 안 먹을래!”와 “우리 고기 먹으러 가자.”는 반응이 공존하기도 했고요. 공연팀 내부에서는 작품의 참여 연령을 높여야 하는가에 대한 논의도 있었습니다.
작업 이후에도 고민과 질문은 이어지고 있습니다. 우선 공연의 주요 오브제는 비닐로 만든 돼지입니다. 정해진 예산 안에서 그만큼의 부피를 표현할 수 있는 재료가 비닐이었고, 작품의 의미와도 잘 맞았습니다. 그러나 비닐은 환경에 좋지 않죠. 재공연을 하면서 대체재를 찾으려 했지만, 아직 찾지 못했습니다. 해결해야 하는 부분입니다.
‘환경을 생각하며 지속 가능한 작업을 어떻게 꾸려갈 수 있을까’하는 고민도 있습니다. 작업에 쓰이는 재료들뿐만 아니라 이후 작업 활동의 방향을 정하는 데에도 중요한 지점입니다. 우선은 바람컴퍼니의 다른 작업에 쓰이는 재료들을 크루얼티 프리(Cruelty-Free)1)로 교체하는 중입니다. 이제 시작이지만, 비슷한 관심사가 있는 작업자들과 만나 환경과 관련한 스터디를 시작하기도 했습니다. 바람컴퍼니 구성원의 일부는 개인적으로 비거니즘을 지향하고 있고, 인스타그램 ‘풀뜯는_바람컴퍼니’에서 비건 식당이나 음료들을 함께 소개하고 있습니다.
<고기, 돼지> 공연사진 ⓒ바람컴퍼니
2. 창작자로서 환경 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어느 날, 텔레비전 뉴스에서 살아있는 돼지를 봤습니다. 2010년 11월에 시작된 구제역2)으로 347만 9,962마리의 발굽이 있는 동물들이 죽었습니다. 제가 본 건 살처분 현장이었고, 돼지들을 포클레인으로 옮겨 구덩이에 넣는 모습이었습니다. 처음으로 살아있는 돼지를 봤는데 물건처럼 다뤄지고 있었어요. 당시의 저는 돼지를 좋아한다고 말했었는데, 사실 제가 좋아했던 건 돼지가 아니라 돼지의 ‘살’이었어요. ‘살과 고기 그 사이’에 의문이 생겼습니다. 그 후로도 해마다 동물 전염병이나 인수공통전염병, 아니면 동물에게서 온 바이러스로 인한 전염병이 발생했습니다. 2016년에 시작된 조류독감 때는 약 3,800만 마리의 조류가 매장되었습니다.
저는 창작할 때(다들 그러시겠지만) 주로 일상에서 경험한 일에서 출발해 작업으로 이어갑니다. ‘살과 고기’에 대한 의문은 숙제처럼 남아있던 작업의 주제였고 그러다가 ‘지금 이 이야기를 안 하면, 앞으로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거의 6년 만이었죠. 2017년에 6개월 정도의 준비과정을 계획하고 ‘살과 고기 사이’를 중심에 둔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관련 책과 영상을 스터디하고, 목장 답사, 인터뷰 등을 진행하면서 공장식 축산업에 대해 알게 됐습니다. 축산업이라는 거대 산업유기체가 환경에 심각한 영향을 끼친다는 것도요. 공장식 축산업은 가축 방목을 위해 아마존의 숲을 베고, 전 세계 곡식 생산량의 85%와 물살이3)의 6-70%를 동물 사료로 사용하고 있으며4), 최대 수질오염원이기도 합니다. 뿐만 아니라, 온실가스 배출, 생물 종 다양성 위협5), 계속되는 바이러스의 출현, 먹는 것뿐 아니라 모든 분야(의류, 신발, 가방, 세면도구, 약품, 의료 등)에 걸쳐 동물의 고통과 착취가 촘촘히 연결되어 있었어요.
이후 <고기, 돼지> 공연을 올리고, 비건 페스티벌, 환경영화제의 토크 세션, 동물권행동 카라의 수업, 비건 캠프 등에 참여하면서 환경에 대한 관심을 키우게 되었습니다.
3. 환경을 위한 실천으로서 예술계 또는 연극계에 제안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최근 기존에 사용하던 창작 재료에 탄소 발생량이 많고 환경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자각한 팀이 그동안 대안을 찾기 위해 노력해 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또 어떤 연출은 공연을 위해 무대디자이너와 논의할 때 쓰레기 발생을 최소화하는 방식을 고려한다고도 했습니다. 연극계에는 이미 ‘공쓰재’와 같은 재사용 공유 플랫폼이 있기도 합니다.
미세먼지, 잦은 태풍, 바이러스로 인한 감염의 우려로 공연과 축제의 취소가 잦아지고 있습니다. 이미 환경의 변화(기후위기)는 우리에게 직접적으로 큰 영향을 행사하고 있습니다. 예술 작업을 하는 우리는 환경과 공존/공생할 수 있을까요? 재현적 리얼리즘을 위해 일주일 뒤에 무너질 집을 짓는 것. 그 자원들을 사용하는 방식에 대한 재고가 그 시작이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환경 인식이 올라감에 따라 산업도 변화하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제작비 부족과 인식 부족으로 종종 생략되던 과정들이지만, 지금은 필요성을 느껴 (제작비가 늘어나지 않았어도) 보험에 가입하고, 성폭력예방교육과 극장안전교육을 위한 비용을 지출하는 것처럼, 환경을 고려하는 비용도 같은 맥락으로 접근할 수 있습니다. 무대 위에 동물이나 곤충 등을 실제로 등장시키는 일과 어떤 방식으로 소비하는지에 대해서도 생각해보면 좋겠습니다.
종 차별이 아닌 종 평등을 위해 지금 지구에서 인간의 위치를 인지하고, 함께 고민하고 의제로 삼아야한다고 생각합니다. 개인의 작은 실천(예를 들면, 오늘은 고기가 없는 식사를 하는 일)이 가장 큰 변화를 일으킬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모든 변화가 예술적 표현의 제약이 아니라 우리가 계속 예술 작업을 해나갈 수 있게 만드는 힘이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4. 함께 보면 좋을 서적이나 영상 등을 추천해주세요.
유튜브의 게리 유로프스키 강연6), 조너선 사프란 포어의 『동물을 먹는다는 것에 대하여』, 피터 싱어가 지은 책 『동물 해방』과 멜라니 조이의 『우리는 왜 개는 사랑하고 돼지는 먹고 소는 신을까』, 황윤 감독님의 영화 <잡식가족의 딜레마>와 연결된 서적 『사랑할까, 먹을까』를 추천합니다. <비건편의점 WIKI>에서 비거니즘 생활정보도 검색해보세요!
  1. 동물실험을 거치지 않고 동물성 재료가 사용되지 않은 제품이나 제품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의미.
  2. 발굽이 있는 동물(소, 돼지, 사슴 등)들이 걸리며, 입과 발에 수포가 생기는 병. 예방 백신과 긴급 백신 등이 있으며, 치사율은 낮지만, 청정국의 지위 유지와 감염 위험 등을 이유로 우리나라에서는 보통 발생지의 반경 3km 까지 모든 농장의 동물들을 예방적 살처분한다.
  3. ‘물고기’라는 말은 식용을 전제하여 하는 말이라 생각하여 물에서 사는 생물이라는 뜻으로 이를 대체하여 이르는 말.
  4. UN 식량 농업 기구.가축, 환경, 개발 계획,「가축의 긴 그림자-환경 문제와 선택」(2006) http://www.fao.org/3/a0701e/a0701e00.pdf
  5. 전 세계적으로 육류가 없는 생활을 하면 생물 다양성 손실의 60%이상이 예방되는 것으로 추산된다.(지구 생명 다양성 전략 재고, 네덜란드 환경평가국, 2010)
  6. 게리 유로프스키의 조지아 공과대학 강연(2010) https://youtu.be/71C8DtgtdS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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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윤미

한윤미

바람컴퍼니 창작자, 비거니즘 지향 퀴어 페미니스트.

주로 거리에서 작업하며 <고기, 돼지>, <달고나>연작, 입을 대다>등을 창작, 연출하였다. 안전한 창작환경에 관심이 많다.

kamandal@live.co.kr 페이스북 baramcompan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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