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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각과의 결투로서, 본래로 돌아가는 것으로서

[연극과 지구: 모두를 위한 연극] 세 번째 기사

장소익_나무닭움직임연구소 대표

제182호

2020.07.09

기획연재 세 번째 기사는 공연예술로서 연극과 지구 환경의 관계에 집중해보고자 합니다. 경북 청송에서 상호 교감의 ‘환경연극’을 실천하고 있는 장소익 대표의 칼럼을 통해 연극은 왜, 그리고 어떻게 지구 환경과 연결되어야 하는지 숙고해 봅니다. - 연극in 편집부
글쎄 공연예술이 환경에 관심을 가져야만 하는 이유가 있을까?
지구촌에 사는 인류, 유한한 존재로서 잠시 머물다 돌아가는 존재라면 지구환경에 관심을 가지는 것은 윤리이고 의무가 아닌가. 스피노자는 내일 지구가 멸망해도, 오늘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는다. 아메리카 인디언은 나무 한 그루를 베기 전에 아홉 세대를 생각한다. 다음 그 다음 세대에 대한 생각, 미래에 대한, 내일에 대한 희망이 철학과 삶, 경제, 문화 전 부분에서 당연한 실천이고, 다음 세대들은 윤리의 강령으로 땅과 하늘을 섬기고 복종하는 삶을 살았다.

공연예술이 특히 관심을 가진다면, 가난한 삶을 자발적으로 행하는 존재로서, 자본주의 약탈 문명, 그로 인한 문화 허구와 타락을 한발 앞서 느끼는 예술이라면, 지금 지구의 환경은 눈 뜨고 볼 수 없지 않을까 생각한다. 하나의 작품을 만든다는 것은 현실에 대한 비판과, 미래에 대한 희망이 있을 때 가능한 일이며, 또한 과거를 반추해보려는 기억 저장 능력일 것이다. 공연예술이 자본주의와 함께하고, 타락한 문화를 그럴싸하게 덮어주는 판에, 자본주의 생산 관계가 당연한 공연문화로 자리 잡고 있는 판에, 환경에 대한 관심조차도 반환경 유통구조로 만들지나 않을지 모르겠다.

전기를 아끼기 위해서 조명을 거부하기도 한다. 공연 후 쓰레기를 배출하지 않도록 소품을 공예 수준으로 직접 제작하고 자연친화적인 효과를 사용해왔다. 환경연극과 생태연극을 결합하려고 했다. 당연히 행위자의 삶도 바꿔야 한다. 단순한 대중교통편을 사용하고 공연 규모도 적정선 이상을 넘지 않고자 했고, 무엇보다도 소비 연극을 적대시해왔다. 하지만 대중과 만난다는 미명하에 단숨에 포기되고 무너지기가 일쑤다. 스스로 생태니, 환경이니 운운할 자격이 없다. 지구 미래도, 인류 미래도, 연극 미래도.
‘환경연극’ 워크숍
미래에 대한 생각
2011년 후쿠시마 핵발전소가 터지고 그 방사능이 아직도 멈추지 않고 바다로, 대기 중으로 퍼지고 있다. 10만 년이 지나야 겨우 반 정도가 사라진다니 사멸하지 않은 채 인류와 영원히 공존하게 되었다. 이 방사능은 지구에 원래부터 존재했던 물질이 아니다. 인간이 신의 영역을 넘어선 결과물이다. 결과적으로 지구는 이것을 처리할 능력이 없다. 이 방사능은 체르노빌 보고에서도 나타나듯이, 보이지도 냄새도 맛도 없이, 서서히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명체의 생식 가능한 DNA를 공격해 들어온다. 신화에나 나올법한 반인반수가 등장할 수도 있다. 뭐 그러면 그렇게 살지. 방사능은 무기력하게 만든다. 뭐 지금도 그렇게 사는데. 방사능은 다음 세대 그 다음 세대에게서 그 영향이 강력하게 나타난다. 뭐 죽으면 그만인데, 알 게 뭐야.

농사, 소위 관행농 방식은 엄청난 화학비료를 뿌리고 제초제를 뿌려, 벌레란 벌레는 다 죽이고, 최대한 수확을 내기 위한 온갖 방법을 다 동원한 농법이다. 해가 거듭할수록 비료 양은 많아지고, 수확은 줄어든다. 땅의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 도시는 모두가 한방 하려 한다. 모두 부자가 되어야 한다. 유한한 원료인 지구를 무한한 부자 꿈이 도륙하고 있다. 싸게 먹고 쉽게 버려지기 위해서, 보이지 않는 호모 사케르(Homo Sacer)가 늘어나고 있다. 마구 먹어대고 써대고 버리면서 스스로 버려지고 있는지도 모르며. 당장 이익에 눈이 먼 존재들. 자본주의 물질문명 하에서 탐욕 덩어리가 된 인류.

기후온난화를 인간 능력으로 해결할 수 있을까? 자본의 대상으로, 약탈의 대상으로 지구를 바라보는 인류가 지구 아픈 부분을 약을 먹여 고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탐욕과 오만의 합작품일 수 있다. 악마는 죽지 않는다. 인류 문화는 악마를 피하는, 타협하는, 거리두는, 공존하는 모색으로 위기를 일상으로 받아들이며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구조를 만들어나갈 것이다. 그 한계치에 다다르면 노아의 방주가 필요하겠지. 달나라로.

기후위기의 주범을 굳이 들자면, 어차피 누군가 책임을 져야 한다면 그중에 일등은 당연히 자본주의이다. 물질화된 인간 또한 불에 타고 회색으로 재만 남는다고 항변할 수 있지 않다. 2011년 후쿠시마의 충격이 불과 10년도 되기 전에 망각의 늪으로 빠져들고 있다. 환경에 관심을 가지고 공연예술이 무엇인가 행한다면 결국 망각과의 결투가 아닐까?

초록은 새로 부활한 순수한 영혼이 입게 되는 옷의 색이라고 한다. 초록은 완성된 인간으로서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과정인 연민과 자기희생 공감능력을 마음에 담은 인간을 상징한다고 김융희(인문학자)는 쓴다. 예술은 탐욕과 부패한 문화 속에서 피어나고, 또 사라진다. 그래서 예술은 자본주의와 불화관계에 놓인다. 초록과 예술이 만나는 일은 기적이다. 다음 세대의 새싹을 떠올리며 기적을 간절히 기원해본다.
계속될 연극에 대한 생각
배우 선조에 샤먼이 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샤먼은 주로 농사를 지며 칩거하다, 마을에 또는 어떤 개인에게 일이 생기면 소환된다. 몸이 아프고, 고독하던 샤먼이 마을과 만나며 스스로 아프고 고독했던 시간을 잠시 벗어난다. 운명적 존재로서의 아픔에 마을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샤먼 삶은 환경, 자연이다. 정공철 배우는 봄이 되면 조그맣게 호박을 심는다. 그가 죽기 전에 보았던 모습이다. 왜 심었을까? 샤먼 삶은 초자연, 초현실 세계에 있다. 모든 예술 이미지, 상상은 그 초현실 세계로부터 온 것이다. 배우로서 예술가로서 당연히 초현실에 다가가다 보면, 나무, 풀, 달, 별, 행성 등등에 관심이 깊어진다. 물론 도시의 아스팔트, 고층빌딩, 지하철 사람들. 뚫어져라 보고, 조곤조곤 들려오는 소리를 듣다 보면 탈이 난 세계가 보이고 아픈 영혼들이 나타나고 그 너머 세계로부터 이마고가, 미래 희망이 샤먼 배우 몸에 깃든다.

배우가 에너지를 받는 것은 외부로부터이다. 하늘, 땅, 태양, 바람, 어둠으로부터 에너지를 받아 소리 내고 움직이고 울고 웃는다. 내면에서 끌어낸 - 가까스로 - 다는 말도 안 되는 자폐적 배우 시대는 끝났다. 둘러싼 환경은 자유로운 배우 존재 자체이다. 공간이란 공간감 없이는 성립되지 않는 개념이다. 교감능력, 신비적 교감능력이라고 해두자. 컴퓨터, 인터넷, SNS 등등, 가상공간 중독기재에 헤어 나오지 못하고 빠져있으면, 미래를 이끌어 올 수 있을까? 연극이 그 본연의 세계로 돌아가고, 배우가 그 출발점을 되돌아보고, 그렇게 하면 환경에 관심을 가지는 공연예술이란 자연스러운 것 그 이상도 아닐 것이다.
‘환경연극’ 퍼레이드
나는 나무를 보면 벨 생각을 먼저 한다. 정리 안 된(?) 강가를 보면 불도저로 밀어버리는 생각이 올라온다. 꾸불꾸불 고개를 넘으며 터널을 떠올린다. 근대화를 무지하게 밀어붙이던 1970년대에 초, 중, 고를 다닌 덕에 근대는 뼛속까지 스며들어 있다. 근대문명은 구체로 몸에 붙어 근대 상상력에 입각한 환경을 만난다. 곡선은 직선으로, 느린 것은 참지 못하고, 노는 꼴을 못 보고, 성장 발전만이 미덕이다. 근대가 언제 어떻게 어떤 경로로 몸속에 들어와 이토록 굳건하게 자리 잡고 있는지 신비하기까지 하다. 확실한 건 삽입됐다는 것이다. 학교에서 TV에서 물론 부모로부터도. 근대적 감수성이 바라보는 환경과 생태적 감수성이 바라보는 환경, 같을 수 없겠지. 2000년 IMF 이후 우연히 접하게 된 생태. 아직도 근대 몸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벗어났다가는 되돌아오기를 반복하고 있다. 근대에서 탈근대로, 생태적 감수성으로 회복하기를 기대한다.

[사진 제공: 나무닭움직임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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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익

장소익 나무닭움직임연구소 대표
현) 나무닭움직임연구소 대표. 전) 극단 한강 대표, 국제환경연극프로젝트 총연출 (2009-2019). 1인극 <부네굿>, <지나가리라>, <대머리소녀>, <큰 입 속으로> 연출 및 배우, <낭만제의 Che Gueavara>, <꼭두노래극 공장의 불빛>, <할미풀이>, <오래된 단지>, <2020연극전태일> 등 연출. 작업장 경북 청송.
https://namoodak.wordpres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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