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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후 ’ 의 이후를 상상하기

프로듀서 좌담회: 상상의 공동체

김연재

209호

2021.11.11

미투 이후 연극은 예술의 윤리적 무게추를 담당하는 듯 보였다. 기존의 기득권 비퀴어 비장애 남성이 독점하고 있던 연극 창작 주체의 외연을 넓히거나 혹은 탈환하고, 연극을 만드는 과정상의 안전과 노동 환경에 주목했다. 최근의 연극들이 사회-현장-관객과 어떤 영향을 주고받는지 전반적으로 살피고자 연속 좌담을 진행한다. 마지막 세 번째 좌담에서는 각 극단/극장/페스티벌의 프로듀서들이, 공연 및 창작자를 만나는 기준과 방법의 변화, 동시대를 감각하고 기획 과정에 반영하는 다양한 관점, 배리어프리 공연 제작 경험, 안전한 연극 만들기 환경, 코로나 이후 변화한 공연 형태, 프로듀서로서 바라보는 담론생산 및 기록 작업에 관해 이야기한다.
일시
11월 2일 화요일 오후 4시-7시
장소
대학로 서울연극센터 아카데미룸
사회
김연재(극작가)
참여
김요안(두산아트센터), 나희경(페미씨어터, 플레이포라이프), 이은주(서울프린지페스티벌), 전진모(신촌극장), 지민주(국립극단), 허영균(삼일로창고극장 공동운영단, 공연예술출판사 1도씨 디렉터)
기록 및 정리
예준미(본지 에디터)
참관
김슬기(본지 편집장)

공연/창작자를 만나는 기준들

김연재
극장/페스티벌의 정체성 및 목표, 중점을 둔 가치 등은 무엇인가. 이것들은 사회, 현장, 관객의 맥락에서 어떻게 변화하거나 다르게 해석되고 있나.
이은주
서울프린지페스티벌(이하 프린지)이 올해 스물네 번째 해를 맞았다. 24년 전부터 현재까지 프린지의 기본 원칙은 자유참가고, 가장 중요한 가치 또한 예술을 하고 싶은 누구나 자유롭게 참여할 수 있다는 데 있다. 사회가 변화하며 고민이 생기기도 한다. 특정 정치인을 우상화하는 작품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이냐, 가해자였던 사람들이 지원할 때 어떻게 할 것인가와 같은 논의들을 하고 있다.
허영균
삼일로창고극장은 2018년 재개관 이후로 문턱이 낮은 극장이 되는 데 집중해왔다. 다양한 창작자들이 극장에 쉽게 접근해 개성적인 공연을 시도하는 프로그램을 일 년에 한두 번 이상 주최한다. 제일 많이 알려진 것이 24시간 연극제다. 내부적으로는 창작자들에게 기댈 곳이 되는 극장이 되고 싶다는 이야길 자주 나눈다.
지민주
국립극단은 작년에 70주년을 맞았다. 역사가 길지만 몸집이 무거워서 유연하게 움직이지 못하는 부분이 있다. 그래서 다양한 요구와 건설적 비판을 듣고자 한다. 고전극도 해야 한다, 규모가 큰 연극을 올려야 한다, 전 연령층을 아우르는 연극을 올려야 한다, 등. 이러한 요구와 동시대적 고민들을 어떻게 절충할지 고민한다.
김요안
두산아트센터는 2007년 개관 이후 젊은 예술가 지원, 신작 개발 사업을 주로 해왔다. 동시대적 상황을 반영하여 극장의 비전이나 프로그램을 보완하고 있다. 최근 몇 년간은 공정함, 공동체적 연대, 젠더불평등의 문제를 인문극장 등 기획 사업에 반영하고자 했다.
나희경
페미니즘 연극제를 1회부터 3회까지 함께했고 4회부터는 한 발 떨어져 있었다. 연극제를 처음 만들었을 때는 페미니즘에 대해 얘기하는 창작자가 많다고 알리는 것이 목적이었다. 기획자로서는 지금 내가 하고 싶은 말과 작품이 만나고 있는지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김연재
페미씨어터는 미투의 영향을 받은 단체였나.
나희경
그때는 그렇진 않았다. 페미니즘연극제 텀블벅 오픈 한 뒤 연극계 내 성폭력 고발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전진모
신촌극장은 옥탑에 있는 한정적 공간에서 가능한 공연이 무엇인지 고민하며 창작자들을 만나왔다. 이 과정에서 아마 정체성 같은 것이 두루뭉술하게 만들어지는 것 같다. 혼자 운영하다 보니 어떤 것들을 갖추고 변화하는 데 어려운 점이 많다. ‘혼자 감당할 수 있는 만큼만’ 하고 있다.
김연재
신촌극장에서는 연극뿐 아니라 시각예술, 무용 등 다양한 장르가 공연된다. 또 포스터에는 배우, 디자이너, 안무가 등 다양한 분야 창작자들의 이름이 적힌다.
전진모
신촌극장이 다양한 예술 형태를 경험할 수 있는 공간이기를 바랐다. 공연을 꼭 연극이라는 말 안에 가둘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처음에는 관객들에게 공연의 장르를 안내하려고 했으나 그렇게 하지 않았다. 장르를 표기한다는 것이 나의 편견을 그대로 유지하는 일 같아서. 또 공연 창작이 꼭 연출가로부터 비롯되는 것은 아니지 않나. 공연의 실험이 여러 경로, 여러 포지션의 창작자를 통해서 발생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냥 ‘작가여도 상관없어, 배우여도 상관없어, 디자이너여도 상관없어, 무언가를 발표할 수 있는 것을 가지고 있고 혹은 발표하고 싶은 의지만 가지고 있다면 이야기해보면 되지’ 한다.
나희경
국립극단이나 두산아트센터에서도 아티스트의 범위를 넓혀서 공모를 받을 수 있을까?
지민주
내가 예술감독이 아니어서 말하긴 조심스럽지만, 아직 거기까지는 못 미친 것 같다. 그러나 닫혀있지 않을 것 같다. 여러 가지 ‘이렇게 하면 왜 안 돼?’의 생각을 한다. 그런 부분도 고민해보고 있다.
김요안
두산아트센터의 경우 공동기획, 두산아트랩, DAC Artist 등의 공모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공동기획 공모사업의 경우, 무용이나 다원, 국악 등에도 열려 있지만, 아무래도 텍스트 기반의 작업, 연극 장르가 많이 선정된다. 공연장의 성격과 위치, 기존 성과 등에서 연극 장르에 유리한 점이 있다.

공연/창작자를 만나는 방법들

김연재
극장/페스티벌의 정체성 및 목표와 관련하여 어떤 공연을 제작하고 어떤 창작자를 섭외하고 있나. 그 기준은 사회, 현장, 관객의 맥락에서 어떻게 변화하고 있나. 가령 지금까지 나는 시민 모두가 즐길 수 있는 연극을 제작하는 것이 국립극단의 큰 목표 중 하나라고 생각해왔다. 지금은 ‘모두가 볼 수 있는’이라는 가치가 변화하는 것 같다. 이 가치에 대한 해석에 따라 섭외하는 창작자 또한 달라질 것 같다.
지민주
개인적으로는 코로나 팬데믹을 겪으면서 ‘모든 사람이 즐기는 연극이라는 것이 가능한가, 점점 대상을 구체화한 연극으로 갈 수밖에 없겠다’ 생각한다. 국립극단이 우리나라에 하나밖에 없으니까 뚜렷한 색을 나타내기보다는 시민 모두의 요구를 참작해야 하는 면이 있다. 명동예술극장의 경우, 연극을 처음 보는 관객들도 편안하게 볼 수 있는 연극과, 관극 경험이 적은 관객들에게는 다소 난해할 수 있지만 실험적인 연극을 교차해서 올리려고 하고 있다.
나희경
동감한다. 모든 관객을 포괄할 수 없다는 생각이 더 견고해진다. 내가 하는 작품들도 주제가 점점 작아지고 있는 것 같다. 예전에는 ‘페미니즘 연극 해야지’ 생각했는데 지금은 내가 당면한 구체적인 문제를 이야기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것은 나만의 이야기에 그치지 않는다. 같은 생각을 하는 관객들이 모여 힘을 받고 응원한다.
전진모
극장 공연의 맥락이 변했다면, 그건 꼭 신촌극장의 의지라기보다는 창작자들이 말하고 싶은 바가 반영된 결과이다. 공간이 작고 따라서 관객 반응이나 객석점유율에 대한 부담도 적기 때문에 창작의 경험, 경력 등이 섭외의 중요한 기준이 되지는 않는다.
허영균
공연의 관심사, 지향하는 바가 더 미시적으로 변한다. 지금은 더 구체적인 관객을 상상하고 실제로 그들을 만나서 무언가를 하려는 단계에 와있다. 올해 삼일로창고극장 기획 프로그램 <불필요한 극장이 되는 법>에서는 극장을 주제로 서너 가지 작업을 진행했다. 창작자로 초청된 분들 중에는 인간이 아닌 AI도 있었다. 극장이 머지않아 마주하게 될 상황을 극장 안에서 먼저 이야기하고 싶었다. 시민으로서의 관객이 찾아올 수 있는 공간, 무형적인 어떤 것을 지지하는 공간으로 극장을 바라보는 작업이었다.
김요안
주제를 제시한 뒤 공연을 기획하는 두산인문극장과 각 예술가들의 취향이나 관심사를 반영하는 작가지원 프로그램의 두 가지 방향의 사업을 병행하고 있다. 두산인문극장은 2013년부터 진행해 왔다. 공동체 연대의 생성이라는 극장의 본질적 역할과 가능성에 주목하면서 이를 구체적인 주제를 통해 이야기해 왔다. 극장에서 주제를 선정한 뒤 해당 주제에 적합한 작품과 창작자를 찾는 과정으로 진행한다. 2021년에서 순연되어 22년 진행하는 두산인문극장의 주제는 ‘공정함’이다. 불공정이 공동체적 연대를 가로막기도 하고, 공정함에 대한 사회 구성원들의 생각도 다양하고 차이가 큰데, 이러한 상황에서 이번 기획이 도움이 되길 바란다. 작가지원 프로그램에는 두산아트랩, DAC Artist, 두산연강예술상 등이 있다. 두산아트랩, DAC Artist의 경우 공모제를 통해서, 연강예술상의 경우 외부 심사위원제도를 통해서 지원할 작가들을 찾고 있다. 최근 작가들의 취향이나 관심사가 세부적이며 다양한데, 이런 작가지원제도를 통해 작가들의 개별적 관심사로부터 주제를 도출하는 것 또한 흥미롭고 해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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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요안
김연재
두산아트센터 작가지원의 경우 선정 작가의 성비가 달라졌다고 느꼈다. 이런 변화의 의도나 계기가 궁금하다.
김요안
성비를 의도적으로 고려하거나 남녀를 나누려고 하지는 않지만, 여성 작가들의 약진이 눈에 띈다. 사회적 소수자 문제에 관해 확실히 여성 작가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적극적으로 내고 있고 이런 경향이 선정 결과로 나타나는 것 같다.
나희경
두산아티스트 선정 방식을, 자체 선정에서 공모제도로 전환한 계기가 궁금하다.
김요안
DAC Artist 제도는 처음 창작자육성프로그램으로 시작할 때에는 소수의 작가를 선정해 집중적으로 지원하는 데 차별점이 있었다. 공공지원에서는 쉽게 하지 못하는 방식이었고. 이런 식의 장기간의 집중 지원을 통해 좋은 성과를 내기도 했다. 하나의 유의미한 지원모델이 되었다고 생각하지만, 십 년 넘게 사업을 진행하면서 프로그램 운영에 변화가 필요했고, 좀 더 다양한 작가들에게 지원 기회가 열리는 방식을 고민하게 되었다. 이런 고민이 반영되어 1년 단위 공모 지원인 DAC Artist로 변경해 올해 첫 공모를 시행했다. 이 외에도 두산아트랩의 지원 작품 수와 지원액을 늘리고, 신진 극작가 지원 프로그램을 새로 시험 운영하려 하고 있다.
나희경
공모로 선정하는 것도 일종의 극장 큐레이션이기 때문에 무엇이 기준이 되는지 알고 싶었다. 예술가의 성취인지, 미학적 판단인지, 예술가가 말하고자 하는 주제인지, 무엇 에 집중하고 있는지 궁금했다.
이은주
프린지는 작품을 제작하거나 창작자를 섭외하지 않는다. 대신 우리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들로 기획프로그램을 만든다. 또 포럼을 통해 예술가들이 현장에서 무엇을 고민하는지 파악한다. 보통 포럼이라고 하면 무겁고 중대해야 할 것 같지만 우리는 축제 준비 기간 동안 예술가들에게 어떤 주제에 관심이 있는지 물어보고 그 주제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모이자고 한다. 소규모 집담회, 네트워킹 성격의 자리를 많이 만들려고 한다. 올해 사무국은 기후위기와 관련된 집담회를 진행했다. 기후위기를 고민하는 창작자들과 만나서 공연예술축제가 환경을 어떻게 바라봐야할지 이야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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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주

극장/극단/페스티벌의 제안들

김연재
최근 몇 년간 라인업, 프로그램의 주제 혹은 기준은 무엇이었나. 프린지 페스티벌은 자유참가가 원칙이고 삼일로 창고극장은 대관심사 때 가장 먼저 고려되는 것이 일정이다. 공연을 큐레이팅하지 않는 데서 생기는 고민과 가치가 있을 것 같다.
허영균
대관은 선착순이 원칙이다. 대관 날짜가 조율되지 않을 때만 심사하는데 여기에서 결국에는 판단을 완전히 배제할 수가 없다. 다양한 판단의 기준이 있겠지만, 미학적 판단을 하지 말자는 계획도 세웠었는데 어려웠다. 심사위원 개개인의 눈이 다르기 때문에 어떤 작품을 선정할 것인지가 첨예한 문제다. 안전한 창작환경을 갖추었는지, 서류 등 제출 자료가 잘 구비되어 있는지, 삼일로에서 소화할 수 있는 공연인지 등을 고려하는데 비율상으로 이러한 사항들은 10퍼센트에 불과하다. 나머지 90퍼센트는 오직 대관 일정이 맞는지에 관한 것이다. 하지만 10퍼센트 안에서 첨예한 고민들이 오간다. 또 삼일로는 코로나 이후 대관료를 70퍼센트 삭감했다. 장비 대여료도 대폭 줄였다. 올해 대관 공연팀 모두에 적용됐다. 2022년에도 잠정적으로는 이런 방향을 유지할 것이다. 문턱이 낮은 극장이라는 가치를 지속하기 위한 결정이다.
이은주
축제의 형태에 대한 고민이 많다. 우리 축제가 동시대 예술가들을 모두 포용할 수 있는 형태인지. 프린지 페스티벌은 2015년 이전까지는 홍대에서 개최되었고 2015년부터는 상암월드컵경기장, 2019년에는 문화비축기지에서 개최되었다. 코로나를 겪으면서는 마포구의 민간예술극장들을 섭외해 진행했다. 이런 식으로 축제의 외형이 변하는 것이 축제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와 만나는 것 같다. 또 축제에 속한 예술가 각자의 주제가 축제의 정체성이 되기도 하고. 다른 축제들이 작품으로 주제를 표현한다면 프린지는 작품의 다양성이 축제의 주제이자 정체성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점에서 자유참가방식이 중요한 가치다.
김연재
프린지페스티벌은 창작자를 섭외하지는 않지만 공간을 섭외한다는 데에 특별한 점이 있는 것 같다. 코로나 이전에는 야외 공간, 복도나 대기실 같은 중간적인 공간도 많이 사용한 것 같은데 올해 극장으로 들어가면서 달라진 것은 무엇인가. 지원하는 예술가나 공연의 성격이 변화하지는 않았나.
이은주
처음 월드컵경기장에서 축제를 개최했을 때 공간이 정말 다양했는데 결국에는 예술가들이 블랙박스를 찾아갔다. 예술가들이 기존에 가지고 있는 습성인 것 같았다. 그럼에도 올해 축제 공간을 찾으면서 너무 전형적인 공간은 섭외하지 않으려고 했다. 다양한 모습의 공간을 제안했기 때문에 월드컵경기장이나 문화비축기지에서 참여하던 예술가들이 이번에도 참여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전진모
극장을 처음 만들었을 때 낭독공연, 쇼케이스, 연습실 대관 문의를 많이 받았는데 이런 것들을 하지 않으려 했다. 극장을 자기의 완결된 창작물을 발표할 수 있는 공간으로 인식하는 창작자들을 만났다. 본인의 작업이 왜 신촌극장에서 공연되어야 하는가, 에 대한 창작자들의 생각이 라인업 구성의 기준이 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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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진모
김연재
세월호, 미투, 페미니즘 리부트, 장애예술, 코로나, 기후위기 등과 관련된 사회적, 정치적 사건들을 어떻게 반영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가령 국립극단은 올해 라인업에 관해 ‘온라인극장, 배리어프리, 기후행동’이라는 목표를 제시했다. 또 작품개발 프로그램에는 명확한 주제가 있었다. 작가 분야의 주제는 ‘다양성, 기후위기와 지속가능성, 디지털 전환’이었고 연출 분야의 주제는 ‘장애와 예술’이었다. 이러한 주제 선정에 어떤 배경이 있었나.
지민주
올해부터 국립극단은 ‘창작공감’이라는 이름으로 크게 세 분야(작가, 연출, 희곡)로 나누어 작품개발 사업을 하고 있다. 작가 분야의 경우, 작가를 중심으로 작품개발 과정에 집중하자는 목표였고 주제를 정하지는 않았다. 동시대적 주제 전반에 열려있는 형태였고 ‘다양성, 기후위기와 지속가능성, 디지털 전환’을 예로 들었다. 지금 세 작가의 작품이 어느 정도 완성된 상태인데 의도하지 않았는데도 공통적으로 동물권에 관한 내용이 들어있다. 연출 분야의 경우 올해는 ‘장애와 예술’, 내년은 ‘기후위기와 예술’, 내후년은 ‘과학기술과 예술’의 주제를 두었다.
김연재
국립극단이 예술현장의 문제의식을 더 큰 혹은 추상적인 주제로 받아들인다는 느낌을 받기도 한다. 가령 페미니즘 연극제에서 ‘연대를 상상하라’ 같은 구체적인 주제를 잡는다면 국립극단에서는 페미니즘, 퀴어, 장애, 기후위기처럼 주제를 크게 제시하는 편이다. 국립극단처럼 규모가 큰 단체에서 제시하는 주제의 언어가 얼마나 구체적일 것인가에 관한 고민도 있을 것 같다.
지민주
‘창작공감: 연출’ 분야에는 주제가 있지만 다른 작품개발 분야나 제작 공연에는 특정 주제를 제시하지 않는다. 내년도 제작 공연의 경우도 어떤 주제를 제시한 것이 아니지만 자연스럽게 동물권, 페미니즘, 성소수자 권리 등에 관한 주제로 작품들이 구성되었다. 뚜렷한 색을 지닌 다양한 작품들을 모아놓고 보면 자연스럽게 몇몇 주제들이 형성되는 것 같다. 국립극단은 일 년에 한 편씩 해외의 작품을 소개하는데 국내의 주된 문제의식과 해외의 그것 또한 시차가 있을지언정 자연스럽게 들어맞으면서 어떤 주제가 부각된다.
허영균
제시한 문제들이 프로그램이나 공연으로 모두 반영되지는 않지만, 극장의 운영 방향이나 규칙들에 묻어난다. 예를 들어 삼일로는 2년 전부터 공연에서 만들어지는 것들이 환경에 최대한 덜 해로울 수 있도록 규칙을 고안하고 있다. 작년에는 <클린룸>이라는 기획 공연을 했다. 예전 사무실을 멸균실을 뜻하는 클린룸이라고 칭하면서 아티스트 한 명을 강제로 격리시켜 작업하게 하는 프로그램이었다. 코로나 팬데믹과 전면으로 부딪치는 작업이었다. 또 2019년에 0set 프로젝트와 함께 장애접근성 워크숍을 진행했다. 이를 토대로 극장 구조를 변형하기도 했다. 프로그램에 여러 이슈들이 전면화되지는 않았지만, 안과 밖, 겉과 속에서 이런 이슈들에 발맞춰 극장이 작동한다. 그러다 보면 보편적 상식, 커먼센스가 섬세해지고 높아진다.
이은주
프린지는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당사자성이 있는 단체여서 작년에 블랙리스트 관련 포럼을 진행하고 올해는 기획 전시를 했다. 또 올해 기후위기와 관련된 포럼을 진행했다.
나희경
초기에는 사회적 문제, 페미니즘에 대한 거대한 이야기를 했다면 지금은 세부적인 개인들의 삶에 집중한다. <청년부에 미친 혜인이>도 교회 안에서 일어나는 사실적인 드라마다. 이런 개인들의 다양한 이야기가 많아지는 것에 초점을 두고 있다. 이런 것을 제안하는 데 있어서 혼자 움직이기 때문에 내적 동력이 중요하다. 내적 동력이 생기지 않으면 차라리 공연에 고용되지 않기를 선택한다.
김연재
몇 년간 페미니즘 연극이 많이 제작되고 관객층도 생겼다. 지금 젊은 창작자들의 페미니즘 연극과 외국 페미니즘 희곡을 번역한 연극들이 있는데 관객들의 반응이 어떻게 다른지 궁금하다.
나희경
번역극에 대해서는 페미니즘뿐 아니라 미학적인 부분을 기대한다. 어쨌든 공연된 나라에서 이슈가 되고 화제가 되어서 건너온 것이다 보니 텍스트의 완성도에 대한 기대가 있다. 또 퀴어 연극의 경우 그것이 번역극일 때, 퀴어 문화의 역사가 오래되거나 동성혼이 법제화된 다른 나라에서의 삶, 국내에서는 보지 못한 삶에 대한 궁금증을 유발하는 것 같다. <로테르담>처럼. 보통 한국의 퀴어 작품을 생각하면 커밍아웃부터 시작하지 않나. 그런데 이 작품은 그다음을 이야기하기 때문에 호응을 많이 받았다. 그리고 동시대 창작자들이 만드는 작품의 경우, 관객들의 공감도가 더 크다. 엄청 공감해서 주먹을 불끈 쥐거나 전혀 동의하지 않거나. 지금 현재 발붙이고 있는 내 주변 상황을 들여다볼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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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희경
김연재
주제를 정할 때 타 극장/페스티벌, 타 장르 기관의 큐레이션으로부터 영향을 받나. 동시대 화두에 발맞추기 위해 외부를 내다보는 동시에 각 플랫폼의 고유성을 지키고 드러내기 위한 노력과 긴장이 있을 것 같다.
김요안
두산인문극장의 경우 인문/과학 분야, 출판계로부터 영향을 받아 적극적으로 함께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인문극장 작품 중 일부는 주제를 선정하면 일정 기간 내에 해당 주제의 작품을 찾고 신작을 만들어내야 하는데, 희곡 작가들이 단기간에 주어진 새 주제로 작품을 써내는 것이 결코 쉽지 않다. 다른 한편으로 신작이 다양한 매체와 감각, 다원적 요소를 활용하기를 바라는데 기존의 전형적 글쓰기 방식으로 이런 신작을 만들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최근 두산인문극장의 ‘아파트’, ‘푸드’를 주제로 한 기획들의 경우, 번역극과 공동창작 작품을 혼합해 기획했고 건축가, 안무가 등 다양한 분야 창작자들을 공동창작 과정에 참여시켰다. 반면 이경성 연출의 <비포 애프터>, 김수정 연출의 <이갈리아의 딸들>, 이연주 연출의 <인정투쟁; 예술가 편>처럼 두산의 작가지원프로그램의 경우 작가들과 소속 극단이 그간 해왔던 작업과 리서치의 연장선상에서 신작의 주제가 형성되는 경우가 많다.
이은주
프린지 축제 조직 안에 현장 예술가 그룹이 있다. 프로그래머라고 부르는데 사실 프로그래밍을 하지는 않고 예술가와 사무국의 매개자 역할을 주로 한다. 프린지는 이들을 통해 동시대 문제의식, 현장 생태계와 영향을 주고받는다. 사무국이 놓치지 말아야 할 현장의 이야기를 알려주고 담론을 형성한다.

배리어프리 공연 제작의 경험들

김연재
배리어프리 공연을 제작한 경험을 듣고 싶다. 배리어프리 공연 제작 경험이 운영에 어떤 영향을 주었나. 배리어프리 공연 제작이 어려운 환경이라면 무엇 때문이고 무엇이 필요한가. 또 장애인 창작자들과의 공연 제작 과정은 어땠나. 장애인 창작자들과의 작업을 위한 준비는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나.
나희경
배리어프리 공연은 내가 주도한다기보다는 처음부터 연출 방향에 포함되어 있어야 할 수 있다. 연출의 의지, 그다음으로 예산 확보 문제.
김연재
<어디로 갈지 미루는>은 작은 공간에서 공연했는데 배리어프리를 어떻게 진행했나.
나희경
수어통역을 한 회차 진행했다. 또 수동휠체어를 이용해 휠체어를 들고 계단 아래로 내려가는 이동지원을 준비했다. 사실 계단에서 사용하는 휠체어 이동 리프트가 있다. 공공에서 이 리프트를 사서 공연 팀이 대여하게 해달라고 말해왔지만, 아직 아무 곳에서도 사지 않았다. 장비뿐 아니라 인력도 필요하다. 예를 들면 장애인 관객 관극도우미가 연극센터에 상주하고 있다면 사전에 관극지원을 신청할 수 있을 것이다. 또 수어통역의 경우 통역사 분들을 창작자로 만나 새로운 시도를 하고 싶은데 시간이나 예산이 한정적이어서 어렵다. <김이박이 고등학교에 입학할 때 김이박이 고등학교에 입학한다>는 김홍남 선생님이 수어 번역을 하시고 동선을 짜오셔서 연습실에서 맞춰보는 과정들이 재미있었다.
김연재
앞선 좌담에서 <춤의 국가>가 언급되었다. 객석 진동은 기존 배리어프리 매뉴얼에 있는 것인가.
나희경
연출이 고안한 방식이었다. 농인 관객이 음악을 느낄 수 있도록 객석 밑에 우퍼를 심었고 배우 수가 많기 때문에 캐릭터마다 다른 색깔 자막을 사용해 인물을 구분했다. 자막과 의상의 색도 맞추려고 했다.
전진모
극장이 4층 옥탑에 있는데 엘리베이터가 없고 극장 공간이 좁을 뿐 아니라 대기 공간이 없기 때문에 배리어프리 공연을 만들기가 어렵다. 장비를 설치하는 것부터 난관이다. 혼자서 매표와 이동지원을 겸할 수도 없다. 최근에는 배리어프리 공연의 방식이 여러 조건, 다른 활로에서 모색되는 것 같다. 지금은, 프로덕션에서 고민해 온 방식을 가능한 선에서 최대한 수용하고 받아들일 수 있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다.
허영균
삼일로는 제작극장이 아니기 때문에 배리어프리 공연을 제작한 적은 없었다. 그런데 관객들이 공연만 보는 것은 아니지 않나. 홍보물을 접하거나 예매하거나 후에 비평 및 아카이브 자료를 접하는 것까지도 관객마다 배리어의 차이가 있다. 삼일로 개별 프로그램을 아카이빙하는 ‘창고창고’라는 홈페이지가 있다. 홈페이지를 리뉴얼하는 과정에서 음성해설을 추가하고 자료집을 점자로 만들어 배포한다거나, 음성해설을 다운로드할 수 있게 하는 등 아카이빙의 여러 방식을 고민하고 계획 중이다. 배리어프리 공연을 제작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공연 이후의 과정까지 모두가 팔로우할 수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
김요안
<인정투쟁; 예술가 편> 공연 때 장애인 배우들과 작업했다. 이연주 연출가가 장애예술 주제를 가져왔고, 함께한 극단 애인은 장애인 당사자로서 장애예술의 방법들을 오랜 기간 발전시켜온 팀이었다. 두산아트센터가 대학로 소극장보다는 하드웨어적인 컨디션이 조금 더 나은 편이지만 대형 국공립 극장에 비해서는 아직 부족한 부분도 많다. 관련 전문교육단체와 함께 장애인 관객 응대서비스를 위한 워크숍, 장애인 예술가들과 함께 극장 스태프들의 장애인 출연자에 대한 인식과 협업에 대한 워크숍 등을 진행했다. 이 작업을 통해 우리 극장 및 연습실의 여러 높은 문턱들을 발견하게 되었다. 배리어프리 공연을 제작할 때 장애 범주 안에서도 고려해야 할 세부적 차이가 많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코로나가 확산되면서, 장애인 관객들의 극장 출입이 제한되고 배리어프리 관련해서는 두산을 포함한 극장의 변화 흐름이 다소 늦추어진 것이 아쉽다.
허영균
유념해야 할 것은 수어도 하나의 언어라는 것이다. 모든 언어가 그렇듯이 음성언어와 수어가 일대일로 치환되는 것이 아니다. 수어의 발화자에 따라 다양한 번역이 가능하고, 표현법도 다양하다. 같은 개념이어도 사람마다 다르게 표현하지 않나. 따라서 수어통역사를 공연에 모신다는 것이 곧 대사를 잘 전달했다는 것을 보증하진 않는다. 현재 극장의 창작 시스템 내에는 언어로서, 대사로서의 수어를 검증할 시스템이 갖추어져 있지 않다. 아주 먼 일이다.
이은주
프린지페스티벌은 작년까지는 월드컵경기장이나 문화비축기지와 같은 공공시설, 휠체어 이동이 용이하고 접근성이 좋은 곳에서 공연을 진행했다. 다만 개별 작품에 밀접하게 다가가 제안하지 않기 때문에 배리어프리 공연을 제작하거나 자막설치에 대한 개별적 논의들을 진행하는 데에는 어려움이 있었다. 코로나 이후 민간극장으로 공간을 이동하게 되면서 접근성이 좋은 환경이 거의 없었다. 이 점이 우리를 많이 좌절시켰다. 대신 홍보물, 웹디자인 등에서 배리어를 낮추는 방향을 고민하고 있다.
나희경
올해 <유니버셜 스튜디오>는 낭독공연을 준비하다가 온라인 공연으로 전환하면서 원래 준비하던 배리어프리 매뉴얼을 줌(ZOOM) 환경에 어떻게 적용할 것인가 고민했다. 각 대학에 시각장애 학생들을 위한 줌 이용법 매뉴얼이 있는데 이것을 참고해서 안내문을 만들어 배포했다.
지민주
올해 초 <스카팽>을 온라인극장으로 올리면서 수어통역과 자막, 음성해설을 제공했다. 현장성이 중요한 공연을 영상화하는 데 여전히 거부감은 있지만 반대로 접근성이 높아진다는 장점도 있다. 극장을 찾기 어려운 분들도 공연을 볼 수 있다는. 다만 난이도가 높은 공연은 배리어프리를 시행함에도 장애인 관객이 접속하기 어렵다는 지점에서 고민이 발생한다. 현재 ‘장애와 예술’을 주제로 하는 ‘창작공감: 연출’ 사업에서 한 팀은 극장접근성을, 한 팀은 시각장애를, 한 팀은 농문화(聾文化)를 주제로 작업하고 있다. 이 세 팀이 다 모여서 워크숍을 한 적이 있다. 어떤 장애인 참여자에게는 배리어프리인 것이 다른 장애인 참여자에게는 배리어가 되기도 한다. 예컨대 자막을 띄우기 위해 조도를 낮추면 수어나 종이에 적힌 글이 안 보인다거나 시각장애인을 위한 공연이 휠체어 이용자에게는 안전하지 않다거나. 또 추상적 단어를 통역할 때 통역사마다 풀어내는 방식이 다 다르다거나, 구어와 수어의 발화 길이가 다르다거나. 연습실 운영에 있어서도 연습 소요 시간이나 참여자들의 컨디션을 고려해야 한다. 궁극적으로는 장애인 예술가가 참여하는 방향까지 가야 하는데 국공립기관에서도 여러 변수를 맞이하는 상황에서, 민간단체가 배리어프리 공연을 제작하려면 더 많은 지원과 노력이 필요하겠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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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민주

안전한 작업 환경

김연재
연극계는 미투 이후 KTS(한국공연예술자치규약), 성인지 감수성 교육, 장애인식 개선 교육, 계약 및 저작권 윤리 교육 등 안전한 제작 환경을 조성하기 위한 약속과 규칙들을 고안하고 또 실천하고 있다. 이러한 규칙들을 제작 과정에 어떻게 반영하나. 규칙이 잘 이행되고 있는지 어떤 경로로 개입해 살피나. PD 본인의 노동 환경은 어떻게 바뀌었나. 규칙 및 교육을 통한 제작환경 변화를 어떻게 감각하고 있나.
전진모
제작하는 입장도 아닌 마당에 창작자들에게 무엇을 갖추고 무엇을 하라고 말하기는 어렵다는 입장이다. 다만 팬데믹을 거치면서, 어떤 일이 발생했을 때 공연을 쉽게 취소하거나 중단하도록 독려한다. 공연을 멈추어도 상관없다고 신호를 주는 정도.
김연재
공연이 취소된 기간 동안의 경제적 손실 등은 극장이 감당하는 구조다. 민간 극장에서 이 부분을 그냥 감내하는 것에 대해 창작자들과 이야기해본 적이 있나.
전진모
프로덕션 또한 연습과정 등에서 발생한 손실들이 있을 것이다. 신촌극장은 대단한 원칙을 가진 극장이 아니고 팀마다 상황마다 가급적 유연하게 대처하고자 한다. 그때그때 대화를 통해 해결방안을 모색한다.
나희경
예를 들어준 교육, 규약, 지침은 기본적으로 알고 있어야 하는 것들이다. 보통 내가 함께하는 팀들은 KTS를 공연 팀 안에서 공유하고, 그것을 기반으로 각자의 개인적 상황에 맞춘 규칙들을 공유한다. 이를테면 지침들에는 보통 프로덕션에서 연출에게 권력이 있다고 쓰여 있는데 사실은 그렇지 않은 미묘한 지점들이 있다. 연출인데 나이가 어리다거나, 지침만으로 표현되지 않는 수많은 상황들이 있다. 신뢰하면서 대화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중요하다.
김연재
프로덕션 안에 있는 독립기획자와 달리 기관에 속한 기획자는 팀과 소통하는 방식이나 거리가 또 다를 것 같다.
지민주
국립극단 직원 및 공연 참여자 모두 성폭력 예방교육을 의무적으로 들어야 하고 내부적으로 성폭력 고충상담원을 두고 있다. 미투 운동 이전에도 극장 직원들은 의무적으로 교육을 받았지만, 만약 참여 창작자들에게까지 확대하여 의무화했다면 강요한다고 반감이 컸을 것이다. 미투 운동 이후에는 이러한 교육을 창작자들이 먼저 요청하기도 했다. 지금은 시간이 흐르면서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었다. 올해부터 장애인식 개선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공연장 안전교육은 의무적으로 모두 듣고 있다. 필요한 것들이 많아졌고 사회적 감수성도 그에 맞춰가고 있다. 다만 PD의 노동 강도는 세졌다.
김연재
제작 과정에 필요한 것은 많아지는데 그 일들을 수행하는 역할은 세분화되지 않고 전부 PD에게 몰리기 때문에 피로도가 높을 것 같다.
허영균
의무 참여에 대한 창작자들의 반발감에 대해 들으니 PCR 검사가 떠오른다. 삼일로에서 공연을 하려면 최소 3일 전 코로나 음성 판정을 받은 기록을 제출해야 하고 매일 같은 시간에 자가격리키트로 코로나 검사를 해야 했다. 물론 최소한의 안전망을 설정한다는 약속이고 지침이지만 개인적으로는 반대했다. 코로나 검사를 반드시 받고 오라, 자료를 반드시 제출해라, 요청하는 데에 대해서 누군가는 불편하거나 폭력적으로 느낄 수 있다. 의무 PCR 검사는 코로나 이후에 대두된 또 다른 안전에 관련한 이슈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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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영균

코로나 이후 홍보의 방법과 온라인 공연

김연재
코로나 이후 예매 경쟁이 치열해진 데다 예매가 전부 온라인에서 이루어지는 탓에 SNS 접근성이 낮은 중장년, 노년층은 관극에 상대적으로 더 큰 어려움을 겪는 것 같다. 극장 접근성에 대한 새로운 고민이 생긴다. 코로나 이후 예매, 홍보 방식은 어떻게 변화했나.
나희경
<김이박이 고등학교에 입학할 때 김이박이 고등학교에 입학한다>, <어디로 갈지 미루는>의 경우 인터넷 활용이 어렵거나 이동지원이 필요한 관객은 티켓 오픈 며칠 전에 선 예약을 받았다. 요새는 인쇄물도 없애는 추세인데 인쇄물이 없는 상태에서는 SNS에서 공연 정보를 주로 접한다. 또 작은 공연은 보도 자료를 뿌려봤자 잘 실어주지도 않는다. 나중에 정보를 알고 전화를 주시는 관객도 있지만, 그때는 이미 매진이 된 상태여서 여전히 어려움이 있다.
김연재
코로나로 인한 공연 취소, 온라인화에 어떻게 대비하고 있나. 공연 취소 시의 인건비나 재공연 문제, 공연을 온라인화할 때의 저작권, 사이버 불링 등의 문제에 대해.
나희경
<남산예술센터 대부흥성회>를 공연할 때 온라인 스트리밍은 우리의 선택지가 아니었지만, 그동안 연습한 시간과 인건비를 생각하면 다른 대안이 없었다. 퀴어, 종교 이야기를 다루는 작품이고 창작자들 중에 퀴어 당사자들이 많았기 때문에 일부러 기록을 남기지 않으려고 실시간 스트리밍으로 공연했다. 공연을 네이버로 생중계하면 배우들 외모 비하하는 댓글이 달린다. 이런 위험 때문에 유튜브에서 진행했고 댓글창을 아예 닫았다.
지민주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한 온라인 공연송출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시즌단원이 한 해에 참여해야 하는 작품 수가 정해져 있는 데다, 취소된 작품을 공연하기 위해 예정된 다른 공연을 취소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온라인 공연은 창작자들이 작품을 발표하고 작업을 마무리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질 좋은 영상을 송출하고자 얼마 전 온라인극장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극장 방문이 어려운 관객들, 학술적 목적으로 공연을 보려는 관객들이 온라인 극장을 필요로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디렉터스 컷이라고 해서 영상 편집에 연출가의 의도를 반영했다. 수어통역과 음성해설을 적용하기도 했다. 또 어린이 청소년극은 지역에 거주하는 학생들, 코로나 때문에 극장을 못 찾는 학생들을 위해서 온라인으로 송출한다.
나희경
영화의 계약 금액이 큰 이유는 영화가 상영될 때마다 발생하는 수익을 감안한 것이지 않나. 그러나 공연 영상의 경우는 추후에 수익을 발생시킬 수 있을지 확실하지 않다. 이러한 상황에서 영상 송출에 대한 부분을 어떻게 계약에 반영해야 하는지, 수익이 발생한다면 그것을 누가 관리하고 어떻게 분배해야 하는지, 여러 문제가 따른다.
이은주
프린지페스티벌은 올해 코로나로 인한 공연 취소에 따른 문제들이 있었다. 작년에는 아예 메타버스 방식의 페스티벌을 만들어서 온라인으로 작품을 볼 수 있게 했다. 자유참가로 운영하다 보니 참가팀이 취소를 원하지 않는 한 취소를 권하지 않았다. 그러나 올해는 정규 공연장 시설이 아닌 곳들에 공연 취소 권고가 내려왔다. 갑작스럽게 장소를 옮기거나 온라인화했다. 극장 아닌 공간에서 촬영을 한 뒤 극장에서 상영을 하는 식의 작업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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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재

연극의 담론 생산 방식

김연재
비평과 피드백, 아카이빙은 작품의 생명력을 가동시키고 창작자가 작업을 지속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작업의 형태와 내용은 다양해지고 있는데 연극 비평가의 수가 적기도 하거니와 연극 비평의 언어가 그만큼 다양하지 않다는 데서 오는 갈급함이 있다. 비평 언어와 아카이빙이 부족하다고 느끼는 창작자들은 기획자에게 학예사의 역할을 기대하기도 한다. 외부 비평이 아닌 내부 비평이 피드백에 대한 갈증을 해소해 주기도 하니까. 이러한 기대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나. 기획자의 역할은 담론 생산 및 아카이빙과 어떤 관계에 있다고 생각하나. 개인적으로 친구들과 신촌극장이 젊은 연구자, 비평가와 협업하면 좋겠다고 이야기한 적도 있었다.
전진모
극장을 처음 만들 때부터 신촌극장의 작업들을 지속적으로 다뤄줄 비평가 혹은 비평가 그룹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러나 운영비용을 감당하기가 어렵다는 판단에 포기하였다. 포럼 등도 적극적으로 유치하고 싶었는데, 공간을 공연 위주로 사용하면서 그 여지를 만들어내기가 쉽지 않았다. 비평이나 리뷰의 관점에서 중요하게 생각했던 자리는 신촌극장 파티였다. 공연 마지막 날 관객, 관계자, 작업자들이 같이 남아서 맥주를 마시며 공연 피드백을 나누는 자리였다. 이 자리에서 협업자를 만나기도 하고 스터디 모임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코로나로 인해 사라지게 되어 아쉽게 생각한다.
나희경
내가 기대하는 비평은 작품이 이 사회에서 어느 위치에 있는지를 짚어주는 비평이지만 아직은 미학적 측면에서의 비평에 익숙하다. 어떤 작품에 비평이 있다고 하면 ‘어딘가에 기록이 남았구나’ 이상을 생각하기 어려웠다. 내가 기획하는 작품들의 목록으로부터 담론이 형성되기도 하지만 나 또한 고용되는 입장이기 때문에 내가 기획한 작품들이 온전한 나의 큐레이션이라고 하기도 어렵다. 나로서는 내가 왜 이 작품을 기획하는지 이유를 밝히는 것이 내부적 비평 작업이 될 것 같다. 또, 단순하게 공연이 있었다는 것을 남길 수 있는 플랫폼이 있으면 좋겠다. 특히 구글폼으로 예매하는 공연들은 기록이 남지 않으니까..
지민주
담론 생산의 경우, 공연 작품별 드라마투르그, 분야별 운영위원들을 통해 이루어진다. 또 공연평가위원회가 있는데 평론, 연출, 배우 등 여러 분야의 전문가가 모여서 극단에서 올린 모든 작품들에 대한 의견을 나눈다. 아카이빙의 경우 실물과 디지털 자료를 모두 수집하고 디지털 자료들은 온라인으로 공유하고 있다.
김요안
한국연극평론가협회와 두산아트센터에서 올라가는 공연들에 대한 비평워크숍을 함께 진행하고 있다. 새로운 젊은 비평가들의 성장에 작게나마 도움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다. 한국의 연극 비평이 텍스트 위주의 비평 중심인데 다양한 매체성에 기반한 비평이 더 많아지길 바란다. 공연을 더 다양한 층위에서 봐주고 비평해주면 좋겠다. 한편으로는 관객들 개개인의 전문성과 관심도에 기반한 개인 리뷰들도 많아지고 있는데 매우 흥미롭고 읽으며 자극도 많이 받게 된다.
이은주
프린지와 상생하는 단체로 『인디언밥』이라는 웹진이 있다. 독립예술작품들에도 비평이 남을 수 있도록 웹진과 협업하고 있다. 젊은 비평가를 만나는 일이 어렵다. 휘발성이 있는 예술 장르를 어떻게 잘 기록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다.
김연재
허영균 피디님은 공연예술출판사 1도씨 디렉터로도 일한다. 공연 프로그래밍, 아카이빙, 출판 등의 서로 다른 작업이 어떻게 결합되나.
허영균
아카이빙을 통해 무언가를 만들거나 아카이빙이 하나의 프로젝트가 되는 등 다양한 목적의 아카이빙이 있는 반면, 기록 및 보존만을 위한 아카이빙이 있다. 나는 이 둘을 분리해 생각한다. 지금 내가 삼일로에서 하는 아카이빙 작업은 홈페이지 운영, 프로그램이 끝난 뒤 결과자료집 발행이다. 결과자료집은 온라인에서 pdf로 다운받을 수 있는 형식이다. 예전에는 인쇄될 책을 기준으로 자료를 편집했다면 요즘에는 모바일 환경에 맞추어 편집한다.
또 1도씨 출판사에서 ‘추적선’이라는 아카이빙 북 시리즈를 펴내고 있다. 추적선은 하나의 포커스를 가지고 창작이 시작되는 단초에서부터 공연이 끝날 때까지의 과정을 추적하는 책이다. 이번 달에 나오는 책은 극단 신세계의 『공주들』인데, 공동창작이라는 작업 방식에 초점을 두고 관객들이 공연을 볼 때, 공동창작으로 만들어진 봉합선을 어떻게 인식하는지에 관하여 2018년부터 2022년까지의 작업을 선명하게 추적한다. 아카이빙 작업에는 두 가지의 과제가 있다. 충실하고 균형감 있는 아카이브를 만들기, 아카이브의 기능을 수행하면서도 특정 관점을 부여하기. 공연이 본질적으로 순간성을 가지고 있다면 책은 보존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공연과 관련된 책은 그 자체로 아카이브가 된다. 책이라는 물성을 통해 기록될 의미가 있겠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찾게 된다. 내가 책을 만들 때 느끼는 감각은 공연을 만들 때 느끼는 감각과 거의 일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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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예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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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재

김연재 극작가
작가, 단추학자, 이미지 수집가
<매립지>, <상형문자무늬 모자를 쓴 머리들>, <폴라 목> 등을 썼다. 기계 및 광물과 상호침투하는 배우의 몸 그리고 오컬티즘에 관심이 있다.
인스타그램 @publish_serial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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