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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의 이후를 상상하기

베스트 오브 베스트를 ‘넘어서’ : 동시대 한국 연극계의 제도권 시상제도 ‘BEST 선정작’ 탐색

임성현, 김진이

제212호

2021.12.23

이 글은 제도권 연극계 예술상을 대상으로 젠더 감수성 관점에서 ‘이후’의 경향성을 포착하려는 두 번째 글이다. 2016~2020년 ‘한국연극평론가협회 올해의 연극 BEST 3’와 ‘월간 한국연극 BEST 7’으로 선정된 31개 작품 중, 벡델 테스트(Bechdel Test)를 통과한 14개 작품 속 여성 인물과 그 서사에 대한 조사를 시도한다.1) 또한, 우리는 이 글이 일관된 기준으로 다수 작품의 경향성을 살펴보는 ‘조사’임을 밝힌다. 소수의 작품을 한정하여 각 작품의 고유한 맥락을 살피는 세심한 젠더 비평과는 거리가 있으며, 다만 조사를 통해 ‘연극계+제도권+주류’를 표상하는 제도권 연극계 예술상 작품들의 여성 캐릭터와 그들의 서사가 무엇이었는지를 되돌아보고자 한다.

벡델 테스트를 보완할 리트머스 - 마코모리 테스트 & 스핑크스 테스트

우리는 이번 조사에서 마코모리 테스트(Mako Mori Test)2)와 스핑크스 테스트(Sphinx Test)3) 의 도움을 얻었다. 두 테스트는 벡델 테스트의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 등장했다. 벡델 테스트가 여성 인물의 이름, 대화 여부와 같은 단순한 항목으로 구성됐다면, 마코모리 테스트와 스핑크스 테스트는 여성 인물이 가진 자기 서사의 고유성, 역할과 주도성을 주목하며, 나아가 그것이 기존 고정관념을 벗어나고 있는지를 질문한다. 우리는 두 테스트의 주요한 질문을 혼합, 수정하여 질문 항목을 다음과 같이 마련하였다.

1. 주인공(Protagonist) 주연 급의 비중을 가진 여성 인물이 자신만의 독립적인 서사를 가지고 다른 여성과 상호작용하는가?
2. 주도자(Driver) 그 여성 인물이능동적으로 행동을 주도하는가?4)
3. 스타(Star)5) 그 캐릭터가 고정관념을 피하며, 설득력이 있고 복합적인가?

조사 대상 14개 작품 중 세 개의 항목을 모두 통과한 작품은 <베서니(Bethany), 집>, <옥상 밭 고추는 왜>, <그을린 사랑>, <휴먼푸가>, <이게 마지막이야>, <마른대지>, <로테르담>, <화전가>로 총 8개 작품이었다. 나머지 6개 작품인 <모든 군인은 불쌍하다>, <썬샤인의 전사들>, <파란나라>, <손>, <외로운 사람, 힘든 사람, 슬픈 사람>, <빌미>는 벡델 테스트를 통과하긴 하였으나, 여성 인물이 주변적인 인물로만 등장하거나 역할의 비중이 적은 경우, 여성 인물이 행동을 주도하기보다는 수동적으로 사건에 연루돼 독립적인 서사를 갖지 못하는 경우, 극적 행동을 주도하는 여성 인물이더라도 설득력이 부족하거나 인물의 전형성과 고정관념을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 등으로, 새롭게 설정한 세 가지 항목을 모두 충족시키지는 못했다.

우리는 각 문항의 통과 여부를 떠나, 개별 작품이 가지고 있는 ‘이후’의 여성 서사가 어떤 흐름인지 발견하는 데 목적을 두었다. 특히 고정된 ‘성역할’의 측면에서 인물이 고정관념을 탈피하는지 살펴보았고, 캐릭터의 ‘복합성’은 성별 이외의 인종, 계급, 장애 등으로 범위로 확장하여 볼 수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었다. 그 의미가 명확한 작품들에 대해 다음과 같이 짚어보고자 한다.

젠더와 계급, 여성 인물의 복합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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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포스터, 왼쪽부터 차례로 <베서니(Bethany), 집>, <휴먼푸가>, <이게 마지막이야>

<베서니(Bethany), 집>(2016)의 여성 인물 크리스탈은 서브프라임 모기지론 사태로 집을 잃고 딸의 양육권을 빼앗겼다. 비정규직 자동차판매원인 그녀는 정부기관으로부터 딸을 되찾고자 노력한다. 남성 인물(찰리)에게 성관계를 강요당하거나 그 모습을 지켜본 다른 남성 인물(개리)에게 비난을 당하는 등 크리스탈이 처한 상황은 위계적인 젠더 질서를 답습하기도 하지만, 이는 한편 여성 인물의 생존에 대한 문제 제기로 해석할 수 있었다. 또한 여성 인물이 계급, 젠더 등 복합성을 띠고 있으며, 당면한 상황 속에서 설득력 있는 결정의 주체로 그려지고 있다고 보았다.

<휴먼푸가>(2019)는 한강의 소설 『소년이 온다』를 원작으로 만들어진 작품이다. 하나의 인물을 한 명의 배우가 전담하여 재현 연기하는 방식이 아닌, 배우의 현존과 오브제의 물질성을 드러내는 방식으로 표현해 다른 작품과 같은 기준으로 분석하기가 까다로웠다. 그럼에도 ‘5장 - 밤의 눈동자’에서 여성 배우들로 선주와 성희의 대화를 구성한 장면이 나오는데 이 인물들은 자신만의 독립적인 서사를 가진 비중 있는 인물이라고 볼 수 있다. 인물들은 여성 노동자이자 희생자로, 자신들이 겪은 기억이지만 차마 말할 수 없었던, 그러나 결코 잊을 수 없는 기억을 소환한다. 트라우마를 마주하면서도 희생자로만 남겨지지 않겠다는 의지와 함께 복합적인 기억의 주체가 된다. 이에 더해 서사와 인물을 재현하기보다는 감각의 현존과 물질성을 드러내는 방식을 택하면서, 무대 위 인물은 더욱 복합적인 층위로 나타난다.

<이게 마지막이야>(2020)는 주인공 정화가 일하는 편의점을 배경으로 진행되며, 극의 중심에는 늘 정화가 있다. 정화는 아이들에게 학습지 교육을 시키는 엄마이자 편의점 비정규직 노동자이며, 굴뚝 농성에 장기간 참여했던 노동자의 배우자다. 정화의 정체성이 단일하지 않은 만큼 정화가 마주하는 갈등/사건 역시 복잡하고 쉽게 해결할 수 없는 것들이다. 복잡한 사건에 둘러싸인 정화는 때로는 머뭇거리거나 양해를 구해보지만 결과는 점점 엉켜버린다. 도무지 해결될 것 같지 않은 상황이 쌓이지만, 그 사이에서 정화는 미안함과 죄책감, 모멸감이라는 복잡한 감정을 동시에 겪는다.

고정된 성역할을 벗어나는 독립된 여성 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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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포스터, 왼쪽부터 <그을린 사랑>, <화전가>

<그을린 사랑>(2019)은 ‘엄마’ 혹은 ‘딸’이라는 역할이 남성 인물의 주변적인 이야기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독립적인 서사를 갖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작품으로 보였다. 여성 인물들은 극을 전개하는 가장 필수적인 역할이다. 어머니 나왈의 죽음 후 그녀의 시간을 쫓는 잔느, 그리고 잃어버린 아들을 찾기 위해 전쟁 속으로 스스로 걸어가는 나왈의 이야기가 작품의 중심 서사로 전개된다. 특히 나왈과 친구 사우다의 연대와 행동은 운명 앞에서 고정된 성역할을 뛰어넘는 선택과 결정을 보여주고 있다.

고정된 성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을 기준으로 두었을 때, <화전가>(2020)는 그 통과 여부를 가장 판단하기 어려웠던 작품이다. 이례적으로 9명의 등장인물이 모두 여성인 이 작품은 어머니 김씨의 환갑을 축하하기 위해 함께 모여서 화전놀이를 준비하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 그리고 무대에 등장하지 않지만 이 여성 인물들의 아들, 오빠, 남편들의 이야기가 작품의 주요한 축이다.6) 부재한 남성들의 서사를 극의 중심으로 볼 때, 여성 인물들의 이야기가 고정된 성역할로 한정되었다고 해석할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극 중 여성 인물들을 제한적인 시대적 상황 안에서 각자의 서사를 가진 다양한 주체들로 바라보았고, 여성 인물들의 선택이 고정관념을 벗어날 수 있는 가능성에 더 주목하였다.

여성들의 상호작용: 대화를 넘어 ‘관계 맺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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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포스터, 왼쪽부터 <마른대지>,<로테르담>

<마른대지>(2020)는 주제적으로도 여성과 관련된 이야기이며, 여성 캐릭터인 에이미와 에스터를 중심으로 흘러간다. 에이미는 임신을 겪은 당사자로서, 에스터는 에이미의 곁을 지키는 사람으로서 사건을 함께 마주하며 능동적으로 행동한다. 흔히 ‘임신 중단’ 소재 스토리를 가진 인물들은 불행하게 그려지거나 비극적으로 이야기되곤 하는데, <마른대지>는 에이미의 임신을 불행하게 나타내거나 에스터를 안타깝게 그려내지 않는다. 에이미는 원치 않는 임신을 어떻게 마주해야 하는지 혼란을 겪으면서도 “누가 슬프대?”라고 쿨한 척 반문하며 슬픔이나 불행 속에 갇혀 있지 않는다. 이것은 에이미를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여러 겹을 가진 인물로 보이게 한다. 에이미의 곁에 함께하는 에스터 역시 별로 친하지 않은 에이미의 조력자가 되어 함께 혼란을 겪으면서도 자신의 상황과 꿈을 고민하며 나아가는 복합적인 인물로 그려진다.7)

<로테르담>(2019)은 레즈비언 커플인 피오나와 앨리스라는 두 인물을 주인공으로 삼고 출발한다. 그러나 피오나는 극이 진행되면서 에이드리언이라는 남성으로 트랜지션 한다. 에이드리언이 트랜지션 하는 과정, 그런 에이드리언을 앨리스가 받아들이며 갈등하는 과정, 커플의 관계가 흔들리고 붙으며 요동하는 과정이 이 극의 주된 내용이다. 이 과정에서 주인공인 앨리스와 피오나/에이드리언은 능동적으로 선택하고 행동하는 주도자이다. <로테르담>은 퀴어 로맨틱 코미디 드라마이다. 주지하다시피 로맨틱 코미디라는 장르는 대중적으로도 친숙하며 드라마 문법이 고정되어 있는 장르이기에 극적으로나 인물 면에서 고정관념을 피하기 어려운 장르이다. 그러나 <로테르담>은 이 로맨틱 코미디 장르의 주인공을 퀴어로 세우면서 장르적 고정관념과 주제적 전형성을 벗어난다.8) 그 과정에서 계속 갈등을 마주하고 행동을 선택하는 주인공 앨리스와 피오나/에이드리언 역시 전형성에서 벗어나는 인물이 된다.

테스트의 한계, 그 너머의 작품들
- <비평가>, <우리는 농담이(아니)야>

벡델 테스트와 마찬가지로 마코모리 테스트와 스핑크스 테스트에서도 논바이너리(non-binary)와 같은 제3의 성은 배제될 수밖에 없으며, 젠더 프리 캐스팅(gender-free casting) 등 전복적인 의미가 발생한 경우를 포착할 수 없다. 이러한 한계로 인해 특정 문항의 통과 여부를 가리는 테스트로써는 필터링될 수 없지만, ‘이후’의 경향으로 <비평가>와 <우리는 농담이(아니)야>를 주목해야 한다고 보았다.

2018년 BEST 7 선정작 <비평가>는 두 명의 남성 인물로 전개되는 원작 희곡에 여성 배우를 캐스팅하였다. 이러한 젠더 프리 캐스팅 시도는 당시 미투 운동의 영향이자 공연자 내부의 젠더 감수성에 대한 인식으로부터 촉발되었다.9) 또한 무대에는 등장하지 않고 남성 인물들의 언급으로만 그려지는 여성이 “소외되고 타자화”되어 있다는 점을 재고하여 텍스트를 전복하고자 하는 의도가 있었다.10) 극 중 스카르파 역할을 연기한 김신록 배우는 한국 연극계에서 데뷔 15년 만에 ‘여자’가 아닌 ‘인간’을 연기해봤다는 소회를 남겼다.11)이러한 젠더 프리 캐스팅의 결과가 예술상 수상을 비롯하여, 관객들의 호평과 재공연, 그리고 비평계에 다양한 담론으로 이어졌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우리는 농담이(아니)야>(2020)는 트랜스젠더 당사자인 극작가가 트랜스젠더의 이야기를 거침없이, 그러면서도 유머와 복합적인 형식, 다성적인 이야기 구조를 통하여 제시했다는 점에서 동시대 한국 연극에서 유의미한 공연으로 평가되었다.12) <우리는 농담이(아니)야>는 기존의 성별 이분법적인 테스트들의 한계를 넘어 그 이상의 젠더 비평적 가치를 지녔다는 점에서 ‘이후’의 변화를 유의미하게 포착할 수 있는 선정작이었다. 아울러 이 공연은 수어통역, 문자통역, 음성해설 등 배리어프리 요소들을 공연 안으로 적극적으로 끌어들인 작품으로, 이 또한 ‘이후’의 변화로 의미 있게 포착되는 지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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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포스터, 왼쪽부터 <비평가>, <우리는 농담이(아니)야>

결론 - ‘이후’의 과제

우리는 다음과 같은 질문으로 이번 조사의 첫 번째 글을 시작했다.

“정말로 젠더/퀴어/페미니즘은 오늘날 연극계의 주류이자 핵심 키워드로 등극했는가? 그렇다면 그러한 경향은 어떤 식으로 나타나고 있는가? ‘이후’의 연극에서는 ‘누구’의 서사를 ‘누가’ ‘어떻게’ 이야기하고 있는가? ‘이후’를 통과하며 연극계는, 그중에서도 제도권과 주류 연극계는 어떤 영향을 받고 있는가? ‘이후’의 변화는 어떻게 확인할 수 있는가?”

우리는 제도권 연극계에서 ‘이후’의 변화를 가시적으로 확인할 수 있도록 통과 여부와 통계 결과를 보여주는 테스트들을 차용하였다. 물론 이 테스트들은 최소한의 성평등 기준에 가까우며, 작품의 개별적인 맥락과 고유성 아래에서 여성 서사를 분석하기에는 명백한 한계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사 결과는 당초 질문에 회의적인 답변을 제시한다. 31개의 조사 대상 작품들 중 21개(67.7%)는 여성 인물이 이름이 없거나 서로 대화하지 않고, 자신의 서사가 없거나 혹은 행동을 주도하지 못한다.

그렇다면 제도권 연극계 예술상에서 2018년 연극계의 미투 운동을 기점으로 뚜렷한 ‘이후’의 경향성을 발견할 수 없는 것일까? 2020년 <마른대지>, <로테르담>, <화전가>, <우리는 농담이(아니)야>가 젠더/퀴어/페미니즘 관점에서 창작되었고, 예술상으로 조명되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또한, <비평가>와 같이 젠더 프리 캐스팅이 불러온 남성 서사에 대한 전복적 시도도 큰 반향이 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시도들이 주로 2020년 한 해의 결과로서, 제도권과 주류 연극계에 미치는 영향력과 그 확장성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기엔 다소 이르다고 생각한다.

작품 외적 환경은 어떠할까? 연극계에서는 기초적인 성평등 통계조차 확인하기 어려웠다. 영화진흥위원회의 경우, 한국영화성평등소위원회를 통해 한국영화 성평등 현황을 데이터로 조사하고13), 2021년 지원사업 심사에 ‘성평등 지수 가산점’을 도입했다는 점을 상기할 때, 연극계는 기초 성비 조사조차 미비한 실정이다. 또한 조사의 기준을 마련하면서는 우리 연극계에 ‘여성 서사’, ‘여성 연극’에 관한 담론이 부족함을 절감했다. 연극 비평 담론 영역에서는 요즘 연극계에 페미니즘/젠더/퀴어 이슈가 많아졌음을 환영하거나 그러한 연극을 ‘소재주의’로 우려하는 일차적인 반응들이 많았다. 그러나 여타 장르의 비평계가 ‘여성 서사’, ‘퀴어 서사’를 섬세하게 논의하였던 것과 비교했을 때 연극계에도 보다 세심한 논의가 필요하다는 것을 느꼈다.14) 조사 과정에서 우리는 문학계나 영화계에서의 젠더 비평 담론을 참고하였다. 그러나 연극은 두 장르와 다른 고유의 매체성을 가지므로 완벽하게 그 논의들이 들어맞지는 않았다. 특히나 동시대 연극은 ‘서사’가 가장 중요한 요소로 자리하고 있지 않을 때가 많아, ‘서사’ 이외의 수행적 측면과 형식적 부분에서 젠더 비평 언어가 필요하다.

끝으로, 이 조사는 ‘여성 서사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을 남긴다. 여성이 많이 등장하면 여성 서사일까? 여성 창작진이 만들면 여성 서사일까? 여성을 주제로 다루면 여성 서사일까? 벡델 테스트를 통과하면 여성 서사일까? 우리의 조사가 그 한계와 더불어 보여주었듯, ‘여성 서사’는 하나의 답이나 정의를 가지고 통과 여부를 가늠할 수 없다. 이 기준점은 어디로부터 주어지는 것이 아닐 것이다. ‘여성 서사’가 시대와 맥락에 따라 계속해서 변화하고 있다는 점, 그 너머를 상상하고 질문해야 한다는 점 15) 은 ‘이후’의 과제로 남겨둔다.

  1. 조사 대상 및 범주에 대해서는 지난 호를 참고.
    https://www.sfac.or.kr/theater/WZ020300/webzine_view.do?wtIdx=12609
  2. 2013년 영화 <퍼시픽 림>의 유일한 여성 캐릭터의 이름을 딴 마코모리 테스트의 세 가지 기준은 다음과 같다.
    1. 1. 한 명의 여성 캐릭터가 등장할 것
    2. 2. 그 캐릭터가 자신만의 서사가 있을 것
    3. 3. 그 이야기가 남성의 이야기를 뒷받침하는 데 그치지 않을 것
    영화 <퍼시픽 림>은 극 중 조종사로서 성장하는 여성 인물 ‘마코모리’의 이야기가 차지하는 비중이 크지만, 이름을 가진 여성 인물이 마코모리 한 명이라는 점, 그리고 군대라는 극 중 배경에서 그녀가 대화를 나누는 대상이 모두 남성라는 점 때문에 백델 테스트는 통과하지 못한다. 벡델 테스트가 여성의 비중과 역할을 평가하기에는 한계가 있기에 이를 보완하기 위해 ‘마코모리 테스트’가 등장했다.
    이호, 「영화 속 여성의 비중을 체크하는 '마코모리 테스트'」, 『시선뉴스』, 2019.03.31,
    https://sisun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100977, (2021.12.17 접속).
  3. 스핑크스 테스트는 벡델 테스트를 계기로 영국의 스핑크스 씨어터 컴퍼니가 고안한 테스트다. 여성 인물과 여성 서사에 대한 질적 평가를 위한 문항이자, 극작가를 비롯한 연극 제작자들이 무대에서 젠더 불균형을 해결하는 데 참조할 수 있는 도구로써 만들어졌다. 주인공(Protagonist), 주도자(Driver), 스타(Star), 힘(Power) 총 4가지 항목으로 이루어졌으며, 세부 질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주인공
    (Protagonist)
    1. 무대 중앙에 여성이 있는가?
    (Is there a woman centre stage?)
    2. 그 여성은 다른 여성들과 상호작용하는가?
    (Does she interact with other women?)
    주도자
    (Driver)
    1. 행동을 주도하는 여성이 있는가?
    (Is there a woman driving the action)
    2. 그 여성은 수동적이기보단 능동적인가?
    (Is she active rather than reactive?)
    스타
    (Star)
    그 캐릭터가 고정관념을 피하는가?
    (Does the character avoid stereotype?)
    2. 그 캐릭터가 설득력이 있고 복합적인가?
    (Is the character compelling and complex?)

    (Power)
    1. 그 이야기가 필수적인가?
    (Is the story essential?)
    2. 그 이야기가 광범위한 청중에게 영향을 미치는가?
    (Does the story have an impact on a wide audience?)
    https://sphinxtheatre.co.uk/resources/
    Georgia Snow, 「Theatre gets its own Bechdel Test」, 『The Stage』, 2015.11.30,
    https://web.archive.org/web/20151208064541/https://www.thestage.co.uk/news/2015/theatre-gets-its-own-bechdel-test/ (2021.12.17 접속).
    Elaine Aston, 「The Sphinx Test」, 『Drama Queens Review』, 2017.2.15,
    https://dramaqueensreview.com/2017/02/15/the-sphinx-test/ (2021.12.17 접속).
  4. 여성 인물이 행동을 ‘주도’하는가? 그리고 그 인물이 ‘능동적’인가에 대한 문항은 서사와 인물에 대한 해석이기도 했다. 우리는 극 중 메인 서사 안에서 인물의 행동과 선택을 집중하여 관찰하였고, 그 행동이 어떤 결과로 도출되지 못하더라도 인물의 주도성에 주목했다. 또한 스핑크스 테스트 ‘힘’ 항목의 1번 질문(그 이야기가 필수적인가?)을 함께 고려하였다.
  5. ‘스타’ 항목의 문항에 대한 해석은 한창완·안진경의 논문을 참고하였다.
    한창완·안진경 「애니메이션의 부상문화 수용성에 따른 이데올로기 상품화 과정 연구 - 월트 디즈니 프린세스 시리즈의 스핑크스 테스트를 중심으로」, 『만화애니메이션 연구』 60호, 한국만화애니메이션학회, 2020, 79-97.
  6. <화전가>는 1950년 한국전쟁을 앞두고 기존 남성 중심 서사에서 벗어나 여성의 삶을 주목했다는 점에서 개막 전부터 ‘여성 서사’ 연극에 대한 기대를 불러 모았고, 이후 공연에 대한 평가는 ‘여성 서사’가 무엇인지에 대한 더 깊은 질문을 끌어냈다. 평론가 양근애는 이 작품이 “‘여인들이 모여 있는 자리’를 마련”하고 “기억의 주체”로서의 여성과 “그들의 미시사적인 일상을 복원”하였다는 평가를 제시했으나, 평론가 노이정은 <화전가>의 “여성 인물들의 서사가 온전히 자신과 ‘짝’을 이루는 남성 인물들과 관련되어” 있으며, “이 여성 인물들이 도입된 것이 해방기의 억압된 남성성과 남성성의 부재를 더 강조”한다는 점을 지적하기도 했다.
    양근애, 「연극 <화전가>의 여성사 재현과 ‘문화적 기억’의 재구성」, 『한국극예술연구』 72호, 한국극예술학회, 2021, 45-69.
    노이정, 「부재할 때도 편재하는 남성 서사-<화전가>」, 『연극평론』 98호, 한국연극평론가협회, 2020, 64-67.
  7. <마른대지>의 연출 윤혜숙은 “‘임신 중단’이 뻔한 이야기가 아니라, 사실은 내 주위에서 빈번하게 발생하는 ‘흔한’ 일이라는 것을 새삼스럽게 환기시키며, 흔한 소재로 뻔하지 않은 이야기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고 설명한다.
    윤혜숙, 「[연출 노트] 〈마른 대지〉: ‘내 주위의 흔한 일’이라는 것에 대한 환기」, 『공연과 이론』, 공연과이론을위한모임, 2020, 129.
  8. <로테르담>의 연출 진해정은 “트랜스젠더 인물이 드라마의 중심에 있다는 점, 사태를 주체적으로 마주하는 여성들의 모습이 그려졌다는 점, 재정체화의 문제를 다룬다는 점, 혐오세력과 같은 외부요인과의 충돌 과정이 아닌 서로 간의 관계에서 빚어지는 개개인의 내적 갈등이 깊이 있게 보여진다는 점 등이 여타 퀴어 작품들과 명확히 변별되는 <로테르담>만의 특징”이라고 이 작품의 차별점을 설명했다.
    진해정, 「[기획노트] 누군가의, 누구나의 〈로테르담〉」, 『공연과 이론』, 공연과이론을위한모임, 2020, 168-169.
  9. 박소영·임승태, 「시스템 관점에서 본 연극 <비평가>의 페미니스트 번역 실천」, 『번역학연구』 21호, 한국번역학회, 2020, 87-113.
  10. 박소영·임승태, 위의 글, 97.
  11. 김신록, 「우리가 꿈꾸는 현장 어디까지 꿈꿀 수 있을까」, 『수잔나딜버 초청포럼_연대의 힘이 만들어 내는 새로운 동력』 포럼 자료집. 성폭력반대연극인행동·부산문화예술계반성폭력연대·서울시성평등활동지원센터·한국여성인권진흥원. 2018.10.7, 51-57.
  12. <우리는 농담이(아니)야>는 베스트 선정작일뿐만 아니라 제57회 동아연극상(작품상, 연출상, 연기상, 유인촌신인연기상), 제57회 백상예술대상(백상연극상, 남자연기상)을 수상하였다.
  13. 이 데이터에는 개봉 영화 스태프 성비, 국내 3대 국제영화제 공식 초청 한국 영화감독 성비, 전국 영화 관련 학교 입학생 및 교수 성비, 영진위 지원 프로그램 감독 및 신청자 성비가 담겨있다.
    김수정. 「통계로 재확인된 ‘영화계 남초 현상’」, 『CBS 노컷뉴스』, 2019.10.07,
    https://www.nocutnews.co.kr/news/5224359, (2021.12.17 접속).
  14. 연극계 담론 영역에서 젠더 감수성이 길러지고 논의되기 보다는, 한 연출가의 말마따나 “젠더 감수성에 대한 감수성이 진화”하는 식의 대응만 있는 건 아닌지 다시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구자혜, 「젠더 감수성에 대한 감수성이 진화하는 연극계에 대하여」. 『연극포럼』,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2017.
  15. ‘주체로서의 여성’이라는 테제에 대해 질문하는 오혜진의 글은 ‘여성 서사’를 규정하려는 시각과 '여성이 주체가 된다는 것'이 시민권의 문제로 수렴된다는 점을 지적한다. 시민권의 영토를 벗어난, 경계 안팎을 오가는 ‘나’를 상상하는 그의 시각은 벡델 테스트나 스핑크스 테스트 등의 ‘전제’를 다시금 재고하게 한다.
    오혜진. 「‘주체’와 불화하는 글쓰기 ─최근 한국 퀴어/페미니즘 문학의 에토스에 대한 메모」, 『SEMINAR』 Issue 09, 2021,
    http://www.zineseminar.com/wp/issue09/ohaejin-queerfeminismwriting/#easy-footnote-bottom-2-12266, (2021.12.17 접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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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성현, 김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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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성현
연극이 적성에 안 맞아 난감한 연극 만드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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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이
독립기획자. 사람이 만나는 장소로서 극장을 배우고 있다.
sogget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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