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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객 산책자 미래연극: [극장전] 다시쓰기

웹진 연극in 창간 10주년

김연재

제220호

2022.06.16

첫 번째 편지

진세 작가님께.

수풀이 우거진 작업실에서 씁니다.
잘 지내고 계시나요?
어떤 영화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어요.
<당신의 세상은 지금 몇 시?>라는 영화입니다.
프랑스로 떠난 친구를 그리워하는 사람이 나오는 영화입니다.
주인공은 어학 교재의 삽화에 의지해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프랑스의 풍경을 상상합니다.
그의 상상을 엿본 친구가 말합니다.
이게 네가 보는 프랑스구나.
그들은 주인공의 머릿속 도시를 함께 여행합니다.
작가님의 대학로와 저의 대학로는 다르겠지요.
우리는 같은 길을 수없이 반복해 걸었을 테지만 분명 각자 다르게 기억할 거예요.

본문사진01
김연재 그림

저의 대학로는 이런 모습입니다.
저는 이 길을 자주 걷습니다.
과거 동숭아트센터였던 예술청을 왼쪽에 끼고 올라가면 잠시간 탁 트인 공터가 나타나지요.
계단을 따라 내려가면 왼쪽에 서브웨이가, 오른쪽에 바오로딸이 있습니다.
바오로딸은 카톨릭 수도회이자 서점이에요. 저는 이곳을 좋아합니다.
대학로에는 극장만큼이나 카톨릭 종교시설이 집약되어 있어요.
어릴 적 수녀가 되고 싶었던 저에게 대학로는 과거의 꿈과 현재의 직업이 교차하는 장소입니다.
저는 대학로를 빠르게 걷습니다.
극장이나 연습실이나 회의장소로 이동합니다.
누가 나를 알아보지 않을까, 이 골목을 빠져나가면 아는 이를 만나지 않을까, 누구를 만나면 좋겠다, 생각하면서,
대학로가 불러일으키는 조바심과 불안감, 음흉한 자의식으로부터 도망치듯 걷습니다.
동숭동 커피와 비투프로젝트가 자리한 조용한 골목에 들어섭니다.
까페의 맞은편에는 작고 평화로운 아파트가 있습니다.
아파트 정문의 벽돌 기둥에는 금속재의 녹색 표지판이 붙어 있고
레지던시, 라고 적혀 있습니다.
대체 여기에는 어떤 사람들이 사는 걸까요?
담쟁이 넝쿨이 붉은 담장을 뒤덮고 있습니다.
계속 생장합니다.
가죽 소파에 파묻혀 높다란 담장을 바라봅니다.
담장 너머를 궁금해합니다.
이곳에서는 궁금해하는 것이 저의 일입니다.
작가님의 대학로는 어떠한가요?

연재




연재 작가님께.

언젠가 한번은 여러 차원으로 조각난 대학로를 한데 엮어 보고픈 마음이 있었는데, 제안을 주어서 반가웠다는 말을 전해드리고 싶어요. (물론, 이번 제안은 점과 선으로 이루어진 2차원의 대학로이기는 하지만요) 저의 드로잉 아니, 낙서에 가까운 끄적임에는 복잡다단한 역사가 담겨있진 않지만, 그림을 그리는 내내 저마다의 대학로가 궁금해졌습니다.

대학로는 제겐 여러 흔들리는 자아가 혼재되어 있는 장소 같아요. 지하철역 출구를 기준으로 말해보자면, 4번 출구를 나서는 나는 오프-대학로에 있는 극장 공연에 지각예정인 관객이고요. 그래서 막 헐레벌떡 뛰고 있겠죠. 3번 출구를 나서는 나는 이화사거리 즈음에 회의가 있어서, 뭔가를 골똘히 생각하며 찌푸린 표정을 하고 걸어갑니다. 2번 출구는 아르코예술극장이나 대학로예술극장으로 연극을 보러 가는 관객입니다. 예술인 패스와 신분증을 체크하면서 계단을 올라갑니다. 그리고 1번 출구는… 놀랍게도 여전히 낯설답니다. 에스컬레이터를 올라갈 때, 대학로에 몇 번 온 적 없는 뜨내기 방문객이 된 것만 같은 느낌. 따지고 보면 압도적으로 이용과 방문 횟수가 적기도 하고요.

공연한 적이 손가락에 꼽을 정도라, 여전히 대학로는 저에게 공연을 보러 가는 곳입니다. 관계자로 공연을 보러 갈 때도 있고, 아무 상관도 없이 공연을 보러 갈 때도 있지만, 아무래도 대학로를 찾을 때 종종 손님이 된 것 같은 기분은 아마도 관객의 역할이 가장 많아서가 아닐까요.

헷갈리는 골목이 많아서인지, 대학로는 마치 ‘미로’ 같습니다. 아까 지나온 길을 다시 되돌아 온 것 같고, 비슷한 사거리 골목인데 또 다른 곳이고… 공연 시간이 임박하거나 이미 늦어버렸다면 길을 잃었다는 감각은 허망함을 더하게 되지요. 물론, 지금은 거의 정확하게 대학로 지도를 그려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지금은 사라진 정보소극장이 떠오릅니다. 이 극장엔 갈 수 있는 여러 경우의 수가 있었는데요, 혜화역 2번 출구에서 KFC와 구 샘터사옥의 사잇길로 들어가, 왠지 감이 오는 골목에서 왼쪽으로 빠지면 그 구역의 끝에 자리하고 있지요. 1번 출구에서 구 동숭아트센터로 올라가는 고개를 넘어와 내려오는 길도 있습니다. 감이 안 좋을 때는 헤매다가 기어코 몇 번의 시도 끝에 찾아지기도 하고요, 감이 좋을 때는 우연찮게 한 번에 찾아서 놀랄 때도 있었습니다.

본문사진2
정진세 그림

지난 20세기에 마로니에 공원에서 소개팅(?)을 했던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대학로에서 만나 식사를 하고 차를 마시고 연극을 보거나 하는 통상적인 단계들을 뛰어넘고, 공원에 앉아서 세 시간 넘게 대화를 나눈 상대였었는데요, 그 기억이 여전한 걸 보면 인상이 깊었나 봅니다. 그러니까 연극을 전혀 몰랐던 시절에 대학로는 저에게 만남의 장소였거나 혹은 두근거리는 젊은이들의 공간이었던 것이죠.

상대와 나는 눈을 마주치고, 정체를 확인하고 묘하게 안도의 한숨을 쉬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소개팅에 대한 여러 강박에서 벗어난 해방감이랄까요. 연결이 되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이었을까요. 저보다 키가 살짝 컸던 상대는 저를 잘 이끌어 주었습니다. 차를 마시거나 연극을 보는 게 내키지 않으면 앉아서 이야기나 할래? 하는 제안이었고, 저도 고개를 끄덕이면서 응했습니다. 대화 내용은 대학생활에 대한 회의감이나 스물 이후에 찾아오는 고정된 역할에 대한 의문들이었습니다. 가까운 지인들에게 하지 못했던 속내를 털어놓기도 했습니다. 이번이 처음이자 마지막 만남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 마냥. 그렇게 해가 지고 밤이 될 때까지 우리의 이야기는 이어졌고, 서로가 할 말이 남아있지 않았을 때 자리를 털고 일어나 안녕을 고했습니다.

우연처럼, 인연처럼 만나고 헤어진 ‘일시적 친구’였지만, 묘하게 그 존재가 마음속에 있습니다. 당시 누군가에게도 절대 이해되지 않았던 내 말들을 잘 들어주려 했던 마음, 방황하던 나를 다독여주려 애썼던 마음이 제 속에 포개어져 있습니다. 예술가도 관객도 아니었던 시절에 대학로는 ‘그’와의 소개팅의 이미지로 자리했고, 지금도 여전히 그 기억은 남아있습니다.

작가님에게도 대학로 하면 떠올리는 사람이 있나요? 예술가나 관객이 아닌 자아로 만났던 상대가 있었을까요? 저는 그런 게 궁금해요. 지금의 우리가 아닌 다른 우리를 상상해줄 수 있는 또 다른 무언가/누군가.

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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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재

김연재 본지 편집위원
작가, 단추학자, 이미지 수집가
<매립지>, <상형문자무늬 모자를 쓴 머리들>, <폴라 목> 등을 쓰고 전시 <불완전 운동>에서 <달과 종>을 연출했다. 1960년대 서울의 건축물과 오컬티즘에 관심이 있다.
인스타그램 @publish_serial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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