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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진 연극in을 둘러싼 질문들

편집위원회 좌담

정리_연극in 편집부

제229호

2023.01.26

일시:
1월 9일 월요일 10시 30분 - 13시

장소:
서울연극센터 2층

진행:
김슬기(웹진 연극in 편집장)

참여:
김연재, 성수연, 이연주, 임성현(이상 웹진 연극in 4기 편집위원)

참관:
예준미(웹진 연극in 에디터), 김상민(서울연극센터 웹진 연극in 담당자)

예술행정, 그 결정 과정과 근거에 대하여

김슬기
오늘 좌담에서는 웹진 연극in이 현재 놓여있는 여러 상황과 맥락을 중심으로, 예술행정과 예술 현장이 어떤 관계성 안에 상호 영향을 주고받고 있는지 이야기해보려고 합니다. 지난 연말 웹진 춤in이 잠정 휴간을 결정했고, 웹진 연극in도 폐간될 것이라는 이야기가 이곳저곳에서 들려왔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접하셨을 때 어떤 생각들을 하셨는지 궁금합니다. 현장의 창작자로서, 공공에서 발행하는 매체의 독자로서, 또 연극in이라는 웹진의 편집위원으로서 여러 질문을 마주하셨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편집위원회 내부에서는 이와 관련해 꽤 여러 차례 회의를 가졌지만, 이 논의를 웹진의 독자들과도 공유해야 한다는 합의가 있었기에 이번 좌담을 마련했는데요.
이연주
일단 춤in 휴간 소식을 듣고선 상황들이 급작스럽다고 생각했고, 이유가 궁금했어요. 나중에 올라온 입장문을 봤을 때 구체적인 논의가 없이 진행됐다는 점에서도 이상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고요. 연극in 폐간에 관한 이야기는 사실 여부를 떠나, 이게 소문으로 돌고 있다는 것 자체가 이상하고 불쾌했던 것 같아요. 현재는 폐간은 예정에 없다는 것을 확인했지만, 서울문화재단의 계획이나 그 진행에 관한 내용이 소문으로 떠도는 게 의아했습니다.
그렇게 생각해보니까 ‘최근에 서울문화재단의 사업이나 계획, 구체적 방향과 목적을 현장에서 얼마나 인지하고 있나’라는 질문이 들기 시작했어요. 돌아보면 남산예술센터가 폐관되기까지 굉장히 떠들썩하긴 했지만, 되게 쉽게 종료됐잖아요. 대학로연습실도 계약 기간 만료로 인해 조용히 운영이 종료되었고, 그 이후에 삼일로창고극장이나 서교예술실험센터 같은 경우도 운영에 문제가 있다, 사업이 종료될 수 있다는 이야기가 공동운영단 등을 통해 나오고 있어요. 이 과정과 내용이 다 정확히 전해지지 않다 보니, 되려 소문과 불안만 커진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편집위원 이연주. 귀밑으로 내려오는 단발머리에 얇은 검은 테의 동그란 안경을 썼다. 남색 니트 폴라를 입었고, 책상 위에는 태블릿PC와 종이들이 놓여 있다.
이연주
김연재
무용계에서 춤in이 해왔던 역할이 있었다고 생각해요. 주류로 포섭되지 않은 창작자를 조명하거나, 다양한 작업에 대한 담론을 만들거나, 담론을 통해서 창작의 전후를 지원하는 역할을 했죠. 독립적인 작업이나 소규모 작업, 신진 창작자들의 작업을 조명하고 기록하는 역할도 했고요. 이는 연극in의 맥락과도 비슷하다는 점에서 춤in의 잠정 휴간을 연극in과 떼어서 생각하기 어려웠던 것 같아요. 특히 제가 참여하고 있는 희곡운영단에 비추어 생각을 해보면, [희곡] 코너는 공연 제작과 발표 이전에 극작가들이 자기 작품을 처음 내놓는 장이라는 점에서 어쩌면 예술적 성과로 보이지 않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무엇보다 공적인 예술 지원이나 제도에서 예술의 성취를 가늠하는 방법이 다양하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웹진은 아카이브이자 비평의 공간으로써, 현장의 목소리와 창작 환경에 대한 이야기를 기록하고 읽어내는 일을 분명히 하고 있는데, 이런 식으로 보이지 않거나 손에 잡히지 않는 활동을 읽어내는 상상력이 예술 제도에 부족하지 않나 생각했던 것 같아요. 또 아무래도 공연이나 레지던시 등은 예술 생산자를 중심으로 지원하는 반면, 매체는 글의 수용자, 독자를 향하는 것이잖아요. 재단이 이런 수용자 중심의 예술 활동에 대한 효용성을 다양하게 파악해야 한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재단이 강조하는 시민들의 예술 향유뿐 아니라 지식 공동체를 만드는 일 또한 예술 활동이니까요.
이연주
저도 춤in 입장문에서 ‘창작자들에 대한 직접지원에 초점을 맞춘다’는 내용을 보면서 당황스럽다는 감정이 들었는데요. 현장에는 공연만 있는 게 아니라 공연 제작 환경, 공연을 향유하는 여러 관계도 있잖아요. 시민과 창작자, 기관이 문화를 통해 만나는 관계 안에서 환경과 제반의 문제가 함께 고려되어야 하는데, 직접지원을 강화하는 선택이 곧 매체를 중단하는 선택이 된다는 게 ‘예술인 지원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 것인가, 창작에 대한 환경들을 어떻게 바라보는 것이 좋은 것인가’라는 질문으로 다가왔던 것 같아요.
김연재
그런데 같은 맥락을 공유한다 하더라도 춤in과 연극in은 다른 매체인데, 춤in에 이어 연극in도 폐간될 것이라는 자연스러운 생각의 흐름이 만들어진 것에 어떤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예술 지원이나 제도의 지속성에 있어서 재단과 창작자 간의 연대에 대한 불신이 예술가들에게 있는 것 같았거든요. 또 정권 교체에 대한 감각이 컸던 것 같아요. 많은 것들을 계속 지우기하는 것 같은….
성수연
연주 연출님이 말씀하셨던 소문이 불러일으키는 불명확함에 대한 불안, 연재 작가님이 말씀하신 창작자와 재단 사이 연대에 대한 불안에 일단 동의해요. 저는 웹진의 편집위원과 편집부가 외부로부터 웹진 운영에 대한 소문을 먼저 듣고 그것을 서울연극센터에 질의하고 확인하는 과정에서, 창작자들로 구성된 운영진이 서울문화재단과 긴밀하게 관계하고 있지 못하다는 생각을 했어요. 지금은 매체 운영에 참여하고 있지만, 재단의 결정이나 상황에 의해 언제든지 뭔가가 바뀔 수 있다는 감각을 다시 느끼게 된 거예요.
임성현
연극in이 폐간된다는 이야기가 왜 힘을 갖게 됐는지, 납득 가능한 소문이 됐는지에 대한 맥락도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소문에 힘을 넣어준 것은 무엇인지 이야기해볼 필요가 있죠. 검찰이나 경찰에서 사건 수사를 할 때도 전과자들을 먼저 용의자 리스트에 올려요. 이 소문이 힘을 얻게 된 건 ‘전과’가 있는 분들 때문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정권 교체가 바로 불안으로 이어지는 건 아니지만, 지금 당장 서울시에서도 기존의 여러 사업을 중단시키거나, 축소하고 있죠. 최근 서울도서관 전시에서의 검열 시도도 있고요. 충분히 그럴만한 전과자들이라는 감각이 있는 것 같거든요. 그렇다면 이 불안감은 사라지지 않겠구나, 이 소문은 계속 힘을 가지겠구나 싶어서 지속적으로 이야기를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편집위원 임성현. 짧은 머리에 얇은 검은 테의 동그란 안경을 쓰고 있다. 회색 후드티를 입었으며, 양손을 몸 앞으로 내밀어 무언가를 설명하고 있다.
임성현
김슬기
소문이 어디서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그 실체는 확인되지 않았지만, 웹진 연극in은 계속 발행을 이어가는 것으로 확정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이렇게 말하면서도 ‘웹진 연극in은 계속 발행을 이어가는 것으로 확정되었다’라는 말 자체가 담고 있는 이상한 맥락과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웹진에 어떤 문제나 한계가 있어 발행과 운영에 변화가 필요하다는 논의를 한 것이 아니라, 밖에서 들려오는 소문에 대처하는 과정에서 폐간은 계획에 없다는 확인을 한 셈이니까요. 서울문화재단에서 하나의 사업을 설계하고 진행, 운영하는 데에 있어서 어떤 원칙을 가지고 있는지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는 것 같습니다.
또 성현 연출님 말씀대로 그 원칙이라는 것이 정권의 교체에 따라 어디까지 변화할 수 있는가, 역시 섬세하게 질문해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고요. 실제로 창작자들은 지난 수년간 정권 교체에 따라 예술 현장이 얼마나 큰 영향을 받았는지 경험적으로 학습했기 때문에 이런 불안을 가질 수밖에 없는데요. 그렇다면 행정상의 변화와 결정을 우리가 그냥 따르는 것이 맞는지 다시 질문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나아가 그냥 질문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그게 하나의 발언이 되고 하나의 목소리가 될 수 있는 방식은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고민하는 과정 속에 있는 것 같고요.

민관협치, 지원의 대상이 아닌 참여의 주체로서 현장 예술가들

김슬기
아마도 이런 말들이 나오게 된 데에는 최근 서울문화재단의 민관 거버넌스 기조가 흔들리고 있었다는 것도 영향이 있었을 거라고 생각하는데요. 저는 떠도는 소문들에서 어떤 위기의식과 경계태세 같은 것을 실감했어요. 편집위원님들은 구체적으로 이 문제에 대해서 어떻게 감각하고 계시나요. 아까 연주 연출님이 말씀해주셨지만 다른 공간들에도 이런저런 문제가 있다는 이야기가 들리고 있고, 예술청 정상화를 위한 공동행동도 계속 활동을 이어가고 있잖아요.
이연주
몇 년간 민관협치의 과정과 접근에 대한 고민이 있었다고 생각하거든요. 문체부의 예술 검열 이후, 그에 대한 문제의식을 가진 상태에서 현장과 행정의 관계에 대한 고민이 지속되어 왔으니까요. 그런데 최근 서울시의회 행정사무감사에서 시의원과 재단 대표가 거버넌스를 부정하는 발언을 했다고 생각해요.1) 민관협치 과정을 재단 스스로 어떻게 평가하고 있는지, 문제가 있다고 판단한 이유에 대해 질문하고 싶어요.
또 예술행정을 담당하는 기관들이 현장 자문을 많이 구하는데도 그 내용이 현장에 공유된 적이 없는 것도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수치적인 결과만을 놓고, 다양한 현장의 의견은 사업 설계를 위한 근거의 일부로 쓰이는데, 구체적인 내용과 과정은 알 수가 없는 거예요. 지난해 연극in [현장] 코너에서 민관 거버넌스에 참여하셨던 분들의 좌담을 다루었는데, 그 내용 중에도 갑자기 결정 사항만 듣게 됐을 때 무력감을 더 크게 느낀다는 이야기가 있었어요. 거버넌스에 참여하는 현장 예술가들이 마치 주어진 상황에서 아이디어만 내는 사람들 같은 거죠. 서로가 참여 주체로 인지되고 있는 것인지, 공동 주체를 인정한 상태에서 대화가 이루어지고 있는지가 문제인 것 같아요. 단지 예술가의 독특한 아이디어를 구하는 게 아니라 공동의 다양한 의견을 듣는다는 것은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구체적으로 접근해보아야 하고요.
김슬기
저도 동의합니다. 때로는 현장 창작자들이 예술행정 단위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충분히 알지 못한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어요. 그러면 당연히 참여 주체, 감시 주체로 함께 하지 못하게 되고요. 현장의 모든 창작자들이 공공기관의 흐름을 지속적으로 따라갈 수 없기 때문에 민관 거버넌스가 더 중요하다는 생각도 들어요. 그러면서도 공공기관에서 발표하는 자료들이나 추진되는 일들에 얼마나 관심이 있는지, 우리 모두 스스로 질문해봐야 한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임성현
서울문화재단의 전 대표이사가 취임했을 땐, 민관 거버넌스가 엄청난 정답인 것처럼 여겨지면서 규모가 커졌어요. 그땐 거버넌스에 대한 의문도 있었고 거부감도 없지 않았는데, 여러 과정을 거치면서 예술가들의 이해도 변화하고, 재단도 그러한 기조 안에서 공진화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런데 갑자기 지금 와서 거버넌스 자체가 잘못됐다고 해버리니까 황당한 것 같아요. 무조건 거버넌스가 옳다는 건 아니지만, 불과 3-4년 전만 해도 예술 정책과 생태계의 미래인 것처럼 얘기했는데 그걸 아예 뒤집어 버리니까요. 조금 다른 이야기지만 최근 예술교육 TA 사업도 종료되었다고 하더라고요. 서울시에서 교육청 예산과 중복된다고….
김연재
제가 작년에 그 사업에 참여했는데, 마지막 회의에서 개선이 필요한 사항에 대해 이야기했거든요. 그런데 그 뒤에 사업이 종료된다는 소문이 도는 거예요. 참여자들의 의견이 어떻게 반영되었는지 공유받지 못하는 채로 사업 폐지의 소문을 들으니까 개개인의 책무감과 추측이 커지더라고요. 작게는 이런 식의 사업 종료, 넓게는 전태일기념관 예산 삭감이나, 서교예술실험센터, 예술청 같은 사례들로 실감을 해요. 법의 선을 넘지 않는 정도에서 극단적 권한을 발휘해 조정하는 느낌이기도 하고요. 인사 이동이라든지, 레지던시 강화, 예산 문제처럼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형태로 진행되니까요. 조금 다른 이야기일 수 있지만, 동료 중에 서울형 뉴딜일자리 사업의 일환으로 서울문화재단에서 근무했던 직원이 있어요. 작년에 그 사업 심사 기준이 변경되면서 갑자기 6주 후에 계약 종료라고 통보를 받은 거예요. ‘공적 제도가 변했으니 받아들여라’라는 식의 통보를 계속해서 보게 되는 거죠.
편집위원 김연재. 짧은 커트 머리에 검은색 니트를 입고, 안에 푸른색 셔츠를 받쳐 입었다. 두 손을 앞으로 모아 맞잡고 이야기하고 있다.
김연재
이연주
예술검열도 처음에는 범법행위라고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시작했던 것 같아요. 오랫동안 한 단체에 대한 지원을 계속해도 되는가? 하는 고려를 했다거나, 극장에 공사 일정이 있다거나, 누군가는 수긍할 수 있는, 납득 가능한 이유를 들었던 거죠. 한편으로 서울문화재단은 유독 사업의 신생과 폐기가 다른 곳에 비해 잦고, 담당자 인사 이동으로 인한 사업의 공백이 생기는 경우도 많죠. 물리적인 시간을 들여야 그 공과를 판단할 수 있는 사업이 있는데, 판단 이전에 빠르게 생기고 없어지는 것들이 많아요. 청년예술단 사업도 마찬가지고요. 서울문화재단과 서울시의 기준, 그리고 우선순위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은 계속 생겨요. 다시금 예술 지원이라고 하는 것을 너무 단순하게 만들어버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다양한 지원을 만들어내는 방식이 있을 것이고, 이를 찾는 과정에서 거버넌스에 대한 고민도 있을 텐데, 그게 너무 쉽게 사라지는 것 같아요.

웹진 연극in의 운영 방향, 그리고 근본적인 문제들

김슬기
지난해 마지막으로 발행된 춤in의 [기획]과 [대화] 코너에서는, 웹진 춤in이 잠정 휴간에 이르기까지, 두 달여의 짧은 기간 동안 일어난 일련의 일들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일방적인 결정과 통보로 하나의 매체가 중단될 수 있다는 것에 대한 무력감과 실망, 분노를 표하는 의견들도 접할 수 있었고요. 이런 와중에 웹진 연극in은 발행을 이어가게 되어서 다행이라고 말할 수만은 없겠지요. 그렇다면 지금 이 시점, 연극in이 무엇을 어떻게 할 수 있는가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발행은 이어가지만 연극in도 올해 운영에 변화를 줄 수밖에 없었잖아요. 예년과 동일한 예산을 확보했지만, 이미 그 예산이 기존의 콘텐츠 수를 유지하면서 격주 발행 주기를 맞출 수 없는 정도였지요. 코로나 시기 이례적으로 다른 사업들이 축소되면서 웹진은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발행을 할 수 있었지만, 결국 지난해에는 두 달 반 동안 휴간을 할 수밖에 없었고요. 그나마 다른 예산을 편성해 그 기간 동안 홈페이지 개편을 할 수 있었지만, 올해는 서울연극센터 재개관 등 이슈가 있어, 정해진 예산 안에서라면 전체적으로 웹진 운영을 축소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연극센터에서는 월간으로의 전환을 제안하셨지만, 지난해 말 여러 차례 회의를 통해 결국 현재의 발행 주기를 유지하면서 매 호 발행하는 콘텐츠 수를 줄이는 것으로 최종 방향성을 결정하게 되었는데요. 이런 과정에서 편집위원님들은 어떤 문제의식을 느끼셨는지, 각자 어떤 것들을 근거로 의견 개진을 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서로 논의하는 과정 중에 생각이 바뀌기도 했었고, 아주 근본적인 문제들을 발견하기도 했던 것 같아요.
김연재
처음에는 지난해와 비슷한 볼륨을 유지하면서 월 1회 발행하자는 제안이 있었잖아요. 월 1회 발행이 안정적이고 모양새가 좋을 것이라고 상상하기도 했어요. 그런데 저에게 춤in 잠정 휴간은 아카이브, 비평, 텍스트, 예술노동 환경에 대한 논의, 비물질적 담론의 효용 같은 것들의 자리가 희미해지는 일로 다가왔거든요. 이런 상황에서 연극in은 좀 더 결과중심적인 것의 반대 방향으로 가야 한다, 봉합 없는 것들을 옹호해야 한다, 현장을 담으면서 현장 창작자나 독자의 실체를 만나야 한다는 생각을 했어요. 월 1회 발행을 한다면 좀 더 긴 시간 준비된 글을 제공할 수는 있겠지만, 2주 간격의 발행이 소통을 빈번하게 할 수 있는 조건이라고 생각했고요. 콘텐츠 수를 줄이면서도 2주 발행을 하는 것이 연극in의 본질과 목표를 지키는 동시에, 지금 우리가 처한 예술계 상황에서 옹호해야 할 것들을 해나가는 발행주기라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임성현
현실적인 조건 때문에 웹진의 볼륨을 줄여야만 하는 상황에 놓여서 머리를 굴리다 보니까 뭘 해도 께름칙하고 찝찝했던 것 같아요. 그런 상황에서 저는 나중에 회복, 복구가 가능한 부분을 최대한 고려했어요. 발행주기를 바꾸는 건 비가역적인, 여지가 없는 선택이라고 생각했거든요. 사실 콘텐츠 수를 줄이는 것도 탐탁지 않지만 어쩔 수 없이 차악을 고르게 된 것 같고요.
웹진의 예산이 왜 안 늘어났을까에 대한 것도 생각해봤어요. 사업의 축소나 폐지를 얘기할 때 예산이 근거가 되고 어쩔 수 없는 일로 받아들여지는 경우가 많은데, 사실 거기엔 엄청난 가치판단이 들어가 있잖아요. ‘예산이 부족하니까 솔선수범해서 대표이사 월급부터 줄이자’고 하진 않으니까요. 먼저 없어져도 되는 것이기 때문에 없어지는 거라서…. 물론 현실적인 문제지만 마냥 예산 문제만으로 쉽게 받아들일 수는 없는 것 같아요.
성수연
저희가 월 1회 발행, 3주 간격 발행, 격주 발행 등 여러 안을 고려했잖아요. 저는 독자의 입장에서 생각했던 것 같아요. 한 달에 두 번 나눠서 오던 정보가 한 번에 몰려왔을 때 독자의 감각은 분명 다를 거예요. 격주 발행이 익숙하기도 하고, 현장과 소통하기에도 좋은 주기라는 생각이 들어서, 포기해야 하는 상황이 아쉽게 느껴졌어요. 그러다가 3주 발행 얘기가 나왔을 때 괜찮을 수 있겠다, 매체의 발행주기가 꼭 규칙적일 필요가 있나? 그런 생각까지 하다가 일종의 현타가 왔어요. 이 모든 고민이 매체가 하는 일을 더 잘해내기 위해 시작된 것이 아니라, 결정된 상황 안에서 그나마 최선을 찾아내기 위해 시작되었다는 점에서요.
그때 알게 된 건, 사업에 참여한다는 게 근본적인 상황에 대한 질문을 하기가 어려운 조건이라는 것과 그러다 보니 주어진 상황을 타개하고 최선을 찾아내기 위해서 머리를 쓰는 입장에 처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거였어요. 최종적으로는 발행 주기를 유지해서 나중에 다시 예산이 충분해질 때를 열어두고 있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어요.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2주 발행을 통해 빠르게 담아내고자 했던 현장의 모습이 무엇인지 고민하게 됐습니다. 웹진의 편집위원으로 있는 동안 어떻게 누구를 만나야 할지 재고하게 된 계기이기도 했던 것 같아요.
편집위원 성수연. 긴 퍼머 머리를 위로 높게 올려 묶었다. 카키색 바탕에 주황색의 커다란 꽃무늬가 들어간 티셔츠를 입고 회색 목도리를 두르고 있다.
성수연
이연주
웹진 자체의 방향이나 콘텐츠에 대한 고민으로부터 시작한 논의가 아니다 보니까, 나중에 저는 웹진 연극in의 효용성이 무엇인지에 대해서까지 혼란이 오더라고요. 연극in이 결국에 무엇을 위한 거고, 누구를 위한 것인지를 계속 확인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했고요. 연극in의 방향성을 구체적으로 결정하는 것은 편집위원회가 하고 있지만, 매체가 계속 유지되고 진행된다는 것은 여러 사람의 목소리를 담아내고 있기 때문이고, 그걸 읽는 독자들이 있기 때문이거든요.
연극in은 발 빠른 취재나 정보 수집에 능하다기보다는, 현장성을 잘 살리는 매체라고 생각해요. 현장에 있는 사람으로서 이상하고 불편한 감각이 있을 때, 기민하게 그것을 체감하고 있다고 이야기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해볼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현장성이 전문성이다’를 조금은 넘어서, 현장에 대한 더 구체적인 논의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현장 창작자로서의 영역이 어디까지인지, 우리의 책임과 역할의 범위가 어디까지인지를 모르겠다는 것에서 느끼는 혼란이 분명히 있는데, 그게 민관협치의 과정에서 예술가들이 가장 무력해지는 이유 같거든요. 역할과 한계를 고민하기 시작하면 끝도 없는 거죠.
김연재
또 저는 일련의 회의를 하면서 제가 문제의식을 잘 느끼지 못하는 사람이었다는 생각을 했어요. 예산의 삭감 때문에 변화를 논의하면서도 당연하게 변화하는 상황에 티 없이 대처해야 한다는 마음이 있었어요. 편집위원님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다시 생각하게 되는 경험이었습니다
김슬기
예산은 언제나 한정되어 있죠. 그런데 그것을 어디에 어떻게 쓸 것인가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수혜, 나아가 시혜를 받는 입장에 놓이거나, 수동적으로 결정된 것을 받아들여야 하는 상황에 무력감을 느끼지 않기 위해서는 우리가 먼저 무언가를 하는 수밖에 없다는 생각도 들어요. 이를테면 웹진에도 물가상승률을 반영하지 않은 예산이 책정되는데, 아주 근본적으로는 예술가의 노동에 대해 적절한 사례를 지급하는 원칙과 기준을 세우도록 해야 하는 거죠.
이연주
현장 예술가의 활동에는 노동의 영역을 넘어서 일종의 자발적이고 능동적인 참여, 적절한 노력과 희생, 감수가 요구되는 부분이 늘 있죠. 사례비 책정에 대한 가이드를 언급하거나 요구하는 건 불순한 것으로 인지되기도 하고요. ‘예술가에게 왜 활동비를 지급해야 하는가’라는 맥락을 들여다보면, 현장 참여가 예술 활동으로 인정되지 않는다는 인식이 있어요. 공연 제작이나 글쓰기 외의 제반적인 활동도 예술 활동인데, 이걸 인정하지 않는 데서 오는 문제가 있다고 생각해요. 이건 특정한 몇몇이 해결해야 할 몫이 아니라, 누구라도 거버넌스에 참여하고, 활동을 할 수 있다는 생각이 공유되어야 체감되는 감각일 텐데요. 다양한 측면에서 논의해야 할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다른 질문 던지기, 다양한 목소리 듣기

김슬기
우리는 계속해서 예술가와 예술이 어떤 역할을 하고, 어떤 필요성과 효용 가치가 있는지 스스로 증명해야 하는 상황을 마주합니다. 그런데 그 요구에 응답하지 않고, 오히려 그것을 무력화하는 것이 예술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닐까 생각하게 되는데요. 웹진 연극in의 편집위원회는, 매체 전문가들이 참여했던 창간 당시를 제외하면, 줄곧 현장의 창작자들로 구성되어왔잖아요. 그런 만큼 연극in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이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우리는 어떻게 다른 질문들을 던질 수 있을까요?
편집장 김슬기. 짧은 커트 머리에 초록색과 갈색으로 짜인 니트에 연한 청남방을 받쳐 입었다. 책상 위에 노트북과 텀블러가 보인다.
김슬기
임성현
말씀하신 것처럼 질문에 응답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크지만, 응답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많은 것 같아요. 뾰족한 언어가 떠오르지 않는 프레임의 함정같이 느껴져요. 그래서 웹진 편집위원으로 활동할 때는 오히려 적극적인 독자로서 참여하려고 합니다. 제가 현장을 잘 모르는 것 같기도 하고, 창작자를 대표할 수도 없고요. 그러니 현장 창작자로서 현장을 대변하고 객관적으로 의견을 전달한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거든요. 창작자이기도 하지만 한 명의 창작자―독자로서 적극적으로 내 몫의 의견을 내자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웹진에는 제 주관과 여러분들의 주관이 뚜렷하게 담길 수밖에 없고 그래야 맞는 것 아닌가 생각해요. 연극in의 편집위원을 창작자로 구성하는 이유도 오히려 주관을 더 반영하라는 의미 아닐까요.
이연주
스스로 활동의 존재 이유를 늘 질문하는 입장에서, 결국엔 스스로 말하지 않으면 아무도 응답해주지 않는다는 걸 매번 느끼는 것 같아요. 어떨 땐 이유를 자꾸 만들어내기도 하죠. 상황 때문에 이유를 만들면서 그걸 납득시키는 과정이기도 하고요. 현장의 응답이라고 하는 게 그럼 뭘까, 결국 그건 확언할 수 없는 이야기를 다양하게 들여다보는 일이 아닐까 생각해요.
저도 연극in의 오래된 독자로서의 입장을 크게 갖고 있어요. 언제 내가 연극in을 재미있게 읽었었나, 언제 나와 거리가 생겼었나 생각하고요. 그런데 또 누군가는 내가 웹진과 멀어졌을 때 더 가깝게 느꼈다는 것을 확인할 때도 있죠. 그런 과정에서 서로의 생각을 더 많이 들어볼 수 있는 접근 경로를 고민하게 되기도 합니다. 여기에 누가 오고 있지? 우리 주변에 누가 있지? 왜 모르고 있었지? 이런 것들을 계속 발견해가는 과정들이 어떤 면으론 창작자로서 관객의 접근성을 고민하는 과정과도 맞닿아있는 것 같아요.
김연재
저는 작년에 웹진 연극in이 예술을 평가하는 일에 대해 지속적으로 이야기했다고 생각해요. [꽃점]에 대한 논의부터 시작해서, ‘이후의 이후를 상상하기’ [기획]에서도 양적, 수적 평가에 걸리지 않는 것들의 가치를 찾으려 했던 것 같고요. 그러면서 우리가 느끼는 가치를 지탱하는 방식은 이 감각을 언어화하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자연스럽게 해왔고 그런 이야기가 지속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고요. 또 예술 안에서도 필요성의 역설이 있는 것 같다고 느껴요. 필요성과 효용 가치로부터 자유로워야 하는 작품일수록 필요성을 증명하기 위해 사회적 이슈를 전면에 내세우기도 하잖아요. 그릇되고 불공정한 세상에 대한 응답을 강력하게 요청하는 것이 더 잘 보이기 때문에 웹진에서 다루게 되는 것들도 있었을 거고요. 지금도 보이지 않거나 틈으로 빠져나가는 것이 분명 있을 텐데, 그것을 주목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성수연
지난해에는 필요한 일, 해야 하는 일의 이면에 어떤 문제들이 있었는지, 혹은 어떤 상황 안에 우리가 있었던 건지를 생각하게 됐던 것 같아요. 그 과정에서 연극in이 현장을 기록하거나 담아내는 방식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그리고 각자 현장이 너무 다르다는 것, 내가 모르는 다른 현장이 있다는 것을 계속 생각하게 되었고요. 아마 제가 할 수 있는 것들을 하되 계속 제가 생각하는 범주 너머를 인식하면서 활동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처음에는 여러 포부를 가지고 [대화] 코너를 시작했지만 제가 만난 상대들을 보면 배우의 수가 압도적으로 많아요. 제가 잘 아는, 기본적인 경험과 지식을 공유하는 분야의 사람을 만났을 때 재미있으면서도 깊이 있는 대화가 진행되니까요. 그걸 억지로 바꿀 필요까지는 없다고 생각하는데, 그래도 좀 더 다른 분야나 제가 잘 모르는 현장의 창작자를 만나려는 시도를 더 해보고자 합니다.
김슬기
저희가 이제 1년 5개월 정도 활동을 했는데, 이 편집위원 자리는 사실 한시적으로 맡겨진 역할이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저는 독자로서 참여한다는 감각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여태까지 웹진을 읽어왔기 때문에 독자로서 할 수 있고 해야 하는 이야기들이 분명히 있다고 생각하고요. 물론 현장의 창작자로서 편집위원님들이 고민하시는 바도 더 구체적으로 들을 수 있었습니다. 연극in이 격주로 발행하긴 하지만, 이미 말씀해주셨던 것처럼 상근기자가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현장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기민하게 취재하지는 못하잖아요. 그렇지만 각자가 속해 있거나 관심 가진 현장이 다르니까, 그러한 것들을 함께 이야기하면서 발견하는 것들이 있는 것 같아요. 그럼에도 알지 못하는 것들을 어떻게 배우고 확장할지 계속 고민해야 할 것 같고요. 그런 점에서 현장의 창작자들로 편집위원회가 꾸려졌다는 것이 다른 매체와 비교해서 아주 특별한 점이라고 생각하거든요. 4기 편집위원회뿐만 아니라 그 이전부터 웹진 연극in은 언제나 그랬던 것 같아요. 너무 궁금한데 어디서도 알려주지 않는 것, 분명히 감각하고 있는데 가시화되지 않는 것들을 쌓아왔다고 생각합니다.
이번에는 당면한 연극in의 문제가 있었기 때문에 편집위원님들과 함께하는 좌담 자리를 마련했지만, 사실 이와 관련해서는 더 세분화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더 다양한 위치에 계신 많은 분들의 목소리를 들어야 할 필요도 있을 것 같아요. 웹진의 발행은 축소되지만, 앞으로 해야 할 일들을 더 잘 찾아나가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긴 시간 이야기 나눠주셔서 감사합니다.
좌담회 전경. 마룻바닥에 상아색 벽면의 공간이다. 두 사람이 앉을 수 있는 책상 네 개가 정사각형 모양으로 놓여 있다. 각 책상에 좌담회 참여자들이 한 명, 혹은 두 명씩 앉아 있다. 공간의 한쪽 벽면의 큰 창으로 바깥 풍경이 내다 보이고, 다른 벽면엔 스크린이 내려와 있다.

[사진: 김지성 jasonk17@naver.com]

  1. 해당 내용은 문화체육관광위원회회의록(2022년 11월 11일) 중 이효원 위원의 질의 과정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https://ms.smc.seoul.kr/record/recordView.do?key=46b644e492eb2bcc7c640f352657792d94c51665a2222d932702b405cf66778565fce593cbf347a6&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