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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와 독립을 위한 저항

저항의 각자

박지선

제235호

2023.06.15

저항에 대해 이야기할 때, 연극(계)는 자주 묻습니다. 우리의 저항은 어디를 향해야 하는가. 그러나 줄곧 묻지 않은 것이 있습니다. 너의 저항은 어떤 모양인가. 전자의 질문에 답하기는 어렵지 않습니다. 대상이 있는 저항은 강하고 분명하며 대상의 크기와 우선순위를 가늠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반면, 후자의 질문에 답하는 일은 까다롭습니다. 삶의 부당한 조건들은 목록화할 수 없이 서로 엉키어 있고, 개인의 저항은 제각기 다른 모양을 갖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온도가 높고 욕망이 개입되며 공공선과의 접합부가 불분명하므로 종종 투덜거림, 칭얼거림, 사사로운 것으로 여겨집니다.
웹진 연극in은 ‘저항’에 대해 사유합니다. 저항의 대상으로부터 아니라 저항하는 주체의 특수한 환경으로부터 시작합니다. 몸에 기입되어 습관이 된 저항을, 구호나 선언이 되지 않는 저항을, 그 특이성으로 인해 연대를 요청하기에 적절치 않은 저항을, 대상의 실체가 희미하거나 불분명한 저항을-나는 싸운다. 그러나 무엇과?- 기록하고자 합니다. 이 기록을 통해 동시대 연극의 문제의식 바깥에 있는 인기 없는 문제들을 확인하고, 저항의 안과 바깥을 나누는 경계에 대해 고민하려 합니다.

저항에 대한 글 요청을 받았을 때, 공공극장의 제작 공연을 끝마치고 난 직후였다. 갑질의 세계에 대한 논문을 써야 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할 즈음이었다. 구체적이고 명확한 저항의 대상들이 내 목록에 차곡차곡 쌓이고 있을 때였다. 공공, 기관 주도의 예술계에서 독립 기획자의 정체성으로 살아가는 데 있어 ‘저항’은 필수적이고, 며칠 밤을 새우며 이야기해도 날이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한국을 떠나왔다. 유럽에 머물며 ‘저항’을 다시 생각해본다. 물리적 거리가 멀어지면 마음도 정신도 멀어지는지, 평화로운 몸과 마음의 상태에 항력이 생기지 않아 당황스럽다. 내 목록의 구체적 저항의 대상들을 지우고 나의 저항을 다시 들여다본다.

지금 나는 베를린에 있다. 친구와 지난 3년의 시간과 변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 친구는 도시 외곽의 마당이 있는 주택으로 삶의 터전을 옮겼고, 마당의 작은 텃밭에는 오이, 상추, 호박, 갖은 허브들이 자라고 있으며, 작년 에너지 위기를 겪은 후 태양광 패널을 설치했다. 어느 정도 자급자족의 삶을 실천하고 있는 중이다. 채식주의자가 된 내 삶의 소소한 변화와 지난 3년간 예술가들과 함께한 기후변화 레지던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던 중, 탄소 배출의 주범인 항공 이동에 대한 질문이 나왔다. 비행기를 제외하고, 한국에서 유럽으로 이동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기후변화,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술가 이동성의 중요성과 이동의 가치를 높이는 방법, 유럽 내에서는 기차로 이동하기 등을 나열하며, 나의 유럽 체류에 대한 타당한 이유를 만들어내었다. 사실 비행기를 예약하는 그 순간부터 마음속에서는 끊임없이 타당성의 논리와 그것이 욕망에 대한 핑계일 뿐이라는 두 생각, 그리고 여러 질문들이 충돌했던 것이 사실이다. 기후변화를 고민한다는 것은 변화와 실천이라는 행동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고작 고기를 안 먹게 되었다는 것만으로 내 삶의 변화를 설명하기에는 미미하다. 지난 3년간 기후변화를 고민하고 질문하고 예술가들과 작업을 해나가면서, 내 삶의 습관과 편리성, 예술계 안에서의 익숙한 관행과 관습을 마주하며, 여러 차례 갈등, 저항, 충돌을 겪었다. 창작자의 미학적 성취를 위해, 익숙함과 효율성의 우선 가치를 위해 자연스럽게 따르게 되는 관습에 대한 저항은 나 자신에 대한 설득으로부터 시작된다. 내 스스로의 변화가 우선되지 않을 때, 외부로의 저항은 무력해지기 마련이다. 기후변화를 고민하면서 비행기를 타는 것에 여러 타당한 이유들을 제시하듯이, 창작 과정에서 환경을 고려하지 못하는 작업 속에 내가 세우고자 하는 삶의 철학과 방식에 저항하는 나 자신, 그리고 여전히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다른 가치를 주장하는 또 다른 나 자신 간의 갈등은 고조를 이룬다. 마찰이 없으면 앞으로 나갈 수 없듯이, 내 안의 저항의 힘은 서로 충돌하고 마찰하며, 내가 가고자 하는 길을 열어준다.

숲길을 산책하면서 정면을 찍은 영상이다. 길은 서로 다른 방향에서 오는 사람들이 부딪히지 않을 정도의 폭으로, 비교적 곧게 뻗어 있다가 오른쪽으로, 왼쪽으로 조금씩 구부러진다. 길의 양 옆으로 키가 작은 수풀과 큰 나무가 무성하며, 햇살이 쏟아져 내려와 흙길 위에 나무 그림자를 만든다. 영상 중반쯤, 반대 방향에서 두 사람이 자전거를 타고 지나쳐간다. 서로 다른 새들의 울음소리가 멀리서 들리며, 산책하는 이가 흙길을 걷는 발걸음 소리가 계속 이어진다. 영상 중반쯤, 사람들의 말소리, 이어서 자전거 바퀴 굴러가는 소리가 멀리서 들려오다가 점점 가까워지고, 다시 멀어져간다.

다시 독립 기획자의 정체성으로 돌아와 생각해보려 한다. 최근 나 자신을 소개할 때 한국에서는 독립 기획자 또는 예술 기획자라고 한다. 해외에서는 인디펜던트 프로듀서(independent producer)라고 소개한다. ‘독립+기획자’, ‘인디펜던트+프로듀서’는 나의 삶의 지향과 철학 그리고 내가 하는 구체적인 일의 내용이 합쳐져 있는 명칭이다. 단순히 소속이 없는 상태를 의미하지 않는다. 2014년 아시아의 동료들과 아시아 프로듀서 플랫폼(Asia Producers Platform/APP)을 만들었다. 아시아에서 활동하는 프로듀서들의 네트워크로 해마다 아시아의 도시에서 리서치 중심의 캠프를 연다. 대다수가 독립 프로듀서(중간에 정체성이 변경되기도 하지만)이기 때문에 캠프에서는 늘 예술, 생존, 저항의 단어들이 넘쳐난다. 2019년 홍콩, 광저우, 마카오에서 진행된 캠프에서 광저우의 한 기획자는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인디펜던트’에 강한 의구심을 보이며 ‘독립적’인 것의 불가능성을 설파했다. 스스로를 프리랜서라고 지칭했던 그는, 경제적 독립 없는 (공공/민간)기관, 단체와의 협력은 그들이 원하는 서비스만을 제공하게 된다고 주장했다. 나는 예술계 안에서의 다양한 협력과 협업의 사례들을 공유하고, 기획자는 누군가가 원하는 것을 일방적으로 수행하거나 서비스를 제공해 주는 사람이 아닌, 기획 영역에서의 창의성을 가지고 새로운 제안과 길을 만들어가는 사람이라는 것을 주장했다. 토론은 좁혀지지 않고, 저녁 식사 자리까지 길게 이어졌다. 그의 주장이 우리 예술계 안에서도 완전히 동떨어진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우리의 ‘독립성’을 ‘프리랜서’로 쉽게 대체해버리고 싶지 않았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독립’은 생존의 방식을 넘어 내 삶의 철학이다. ‘독립’은 ‘저항’과 짝을 이룬다. 무엇으로부터의 독립이고, 무엇에 대한 저항인가. 그리고 저항을 통해 독립은 성취된다. 베를린에 도착하기 전 벨기에에서 핸드폰을 잃어버리고, 한국의 모든 시스템과 단절되는 경험을 했다. 시스템에서 떨어져 나왔을 때 느끼는 감정은 불안함과 불편함이다. 독립 기획자로서 생존하기란 이와 비슷하다. 시스템에 속하지 않거나, 못했을 때 삶은 불편하고 불안해진다. 시스템(예술계에서는 공공 주도의 구조)을 활용하면서, 나의 독립적 공간과 구조를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 나의 ‘독립’이 점점 거대한 하나의 시스템으로 묶이고 있는 세상을 어떻게 해킹하고 균열 낼 수 있을까? ‘인디펜던시(independency)’와 함께 ‘인터-디펜던시(inter-dependency)’에 대해 생각한다. ‘독립’과 ‘저항’의 또 다른 단짝은 ‘연대’이다. 누구와 함께 할 것인가? 잘 독립하기 위해 우리는 누구와 서로 의존해야 하는가? 상호의존을 통한 저항과 독립의 쟁취. 한국과 아시아, 해외의 독립 기획자들과 예술가들은 나의 상호의존과 저항, 예술 독립을 통해 균질화되고 있는 세상을 해킹하는 동료들이다.

베를린 저항의 동료의 집 텃밭에서 얻은 채소들로 요리를 해 먹으며, 저항력이 사라진 것이 아닌, 저항이 자유로움을 결실로 맺은 순간을 즐기고 있다.

프랑스 파리의 길에서 촬영한 한낮의 카페테리아 사진이다. 정면 전체가 출입문인데, 문은 완전히 열려 있고, 그 위쪽에는 검은 바탕에 하얀색으로 “RESISTANCE”라는 단어가 쓰여 있다. 출입문 옆의 아래쪽 벽에 깨진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고, 바닥에는 돌조각들이 보인다. 카페테리아 안은 비교적 한산해 테이블 하나를 차지하고 앉은 세 사람이 있고, 안쪽 바 앞에 한 사람이 서 있다.

[사진·영상: 필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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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선

박지선
걸으며 길을 발견하고, 만들기도 하는 예술 기획자이다. 독립 기획자로 멋진 어른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국내외 예술가, 기획자 동료들과 함께 작은 세상들을 구축하고자 한다. 최근에는 기후변화와 경계를 키워드로 시대를 사유하고 예술 작업을 해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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