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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이들의 뼈 위로 쟁기를 끌어라*

저항의 각자

라시내

제236호

2023.06.29

저항에 대해 이야기할 때, 연극(계)는 자주 묻습니다. 우리의 저항은 어디를 향해야 하는가. 그러나 줄곧 묻지 않은 것이 있습니다. 너의 저항은 어떤 모양인가. 전자의 질문에 답하기는 어렵지 않습니다. 대상이 있는 저항은 강하고 분명하며 대상의 크기와 우선순위를 가늠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반면, 후자의 질문에 답하는 일은 까다롭습니다. 삶의 부당한 조건들은 목록화할 수 없이 서로 엉키어 있고, 개인의 저항은 제각기 다른 모양을 갖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온도가 높고 욕망이 개입되며 공공선과의 접합부가 불분명하므로 종종 투덜거림, 칭얼거림, 사사로운 것으로 여겨집니다.
웹진 연극in은 ‘저항’에 대해 사유합니다. 저항의 대상으로부터 아니라 저항하는 주체의 특수한 환경으로부터 시작합니다. 몸에 기입되어 습관이 된 저항을, 구호나 선언이 되지 않는 저항을, 그 특이성으로 인해 연대를 요청하기에 적절치 않은 저항을, 대상의 실체가 희미하거나 불분명한 저항을-나는 싸운다. 그러나 무엇과?- 기록하고자 합니다. 이 기록을 통해 동시대 연극의 문제의식 바깥에 있는 인기 없는 문제들을 확인하고, 저항의 안과 바깥을 나누는 경계에 대해 고민하려 합니다.

1.

일전에는 한밤중에 산책을 했다. 그런 걸 산책이라고 해야 할까, 그냥 정처 없이 걸었다. 자정에 가까운 시각이었는데 코로나 덕분에 거리가 온통 어두컴컴했다. 그날은 온종일 집안에만 틀어박혀 있었다. 줌으로 수업을 들었고, 이메일로 업무를 처리했고, 아이패드로 책을 읽었다. 굳이 밖에 나갈 이유가 없었다. 그러다 갑자기 자정이 다 되어서야 집에만 있는 것이 견딜 수 없이 답답해져서 무작정 나가서 걷기 시작한 것이다. 오랜만에 느끼는 기분이었다. 전에는 종종 그렇게 걸었다. 그때 살던 원룸에는 창문 곁에 책상이 있었는데, 거기 앉아 있으면 꼭 내가 그 창문으로 뛰어내릴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무서워서 밖으로 나가서 몇 시간이고 걷곤 했다. 나는 내가 폐소공포가 있다는 것을 아주 나중에야 알았다.

길을 잃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길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지난 몇 년간 살아온 동네, 수없이 지나다닌 길. 하지만 어디로 가야 할지를 모르겠다. 횟집 앞에서 발걸음이 멈췄다. 여기에 횟집이 있었던가. 원형의 수조에 물고기가 몇 마리 있었다. 다른 물고기들은 모두 바닥에 가라앉아 있는데, 한 마리가 유독 배를 까뒤집고 빙빙 돌고 있었다. 답답한 걸까, 아니면 미쳐버린 걸까. 어류가 미친다는 것이 가능할까. ‘미친다’는 것은 아무래도 ‘의식’을 전제해야 성립하는 개념이 아닐까. 그렇다면 동물들이 보이는 이상행동은 미친 것이 아니면 무엇일까. 나는 수족관 앞에 서 있는 카프카에 대해 생각했다.

2.

2019년에는 한국여성학회에서 간사로 일했다. 매년 개최되는 여름 캠프를 담당했는데, 실제로 캠프를 꾸리는 일은 학부생과 대학원생으로 이루어진 기획단이 도맡아 했으므로, 나는 주로 그 친구들을 잘 먹이고 재우는 일에 골몰했다. 회의가 있으면 다과를 준비한다거나, 세미나 뒤풀이 장소를 알아본다거나, 캠프 참가자들이 묵을 숙소를 예약한다거나. 기획단에는 비건인 친구가 한 명 있었다. 그를 위해서 매번 음료수 뒷면 라벨을 확인하고 햄과 어묵과 계란을 뺀 김밥을 주문해야 했으므로, 나는 그가 비건이라는 사실을 모를 수가 없는 사람이었다. 어느 날 회의가 끝나고 집에 가는 길에 우연히 방향이 맞아서 말을 섞게 되었는데 — 아마 그날이 우리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사적인 대화를 나눈 날이었을 것이다 — 이런저런 한담을 나누다가 그가 물었다. “이제 집에 가면 뭐 하세요?” 나는 무심코 대답했다. “친구랑 고기 먹으러 가려고요”.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나는 얼굴이 시뻘게지는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그리고 화가 났다. ‘말실수’를 한 내 자신에게 화가 나는지 — 하지만 사실을 사실대로 말한 것을 ‘실수’라고 할 수 있을까 — 그동안 나를 수없이 귀찮게 했을 뿐 아니라 이런 기분까지 느끼게 한 그에게 화가 나는지 분간이 가지 않았다. 그동안 당연하게 누려온 것이 사실은 특권이고 타자에 대한 폭력이라는 것을 자각하게 되었을 때 이는 부정적 기분, 그 뜨겁고 불쾌한 감정은 어떤 의미에서는 진실로 ‘진실한’ 것이리라. 나는 왜 내가 무슨 말만 하면 남자들이 걸핏 화를 냈는지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자신을 부끄럽게 한 것이 자기 자신인 줄도 모르고 너 때문에 내가 기분이 나쁘다고 그렇게 화를 낸 것이었다니, 남자란 실로 감정적인 동물이다. 그날 저녁 나는 소고기를 입에 욱여넣으면서 친구에게 말했다. “나 채식을 시작할까 봐”.

3.

2017년과 2018년에는 공동작업을 한 공연에 대한 저작권 분쟁으로 긴 법정 싸움을 치렀다. 송사는 누구에게나 물심양면으로 타격을 입히게 마련이지만, 특히나 힘들었던 것은 사법기관 남자들의 태도였다. 이 사건의 가장 큰 피해자이자 당사자는 나인데 분당경찰서의 수사관은 나에게는 한 마디도 질문을 하지 않고 동석한 파트너에게만 질문을 했다. 질문받지 않은 자는 답할 권리가 없다. 가해자가 중언부언 거짓말로 자기변명을 해도 인내심 있게 듣던 판사는 내가 조금이라도 자기 질문의 의도에 벗어나는 대답을 하는 것 같으면 말을 가로막았다. 지금도 나는 가끔 도끼를 들고 가서 그 판사 놈의 머리를 둘로 쪼개는 상상을 한다.

고소장을 접수하기 전에는 망설였다. 법은 저작권을 작품에 대한 권리가 아니라 상품에 대한 권리로 다루고, 사법기관은 공동저작에 대해서는 ‘남의 것을 훔친 게 아니기 때문에’ 관용적인 태도를 취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승산이 거의 없는 싸움을 시작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괜히 무혐의 처분이 나면 그들에게 면죄부만 부여하는 셈이 되지 않을까. 내가 존경하고 마음으로 의지하는 선생님은 이렇게 말해 주었다. “그래도 네가 문제 삼지 않으면 그 사람들이 잘못했다는 것을 알려줄 방법이 없잖아”.

법정에서 상대방은 내가 전공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근거로 나에게 창작을 할 능력이 없다는 주장을 펼쳤다. 답변서에 나는 이렇게 적었다. 예술가를 예술가로 만드는 것은 학위가 아니라 작품입니다.

4.

어느 날은 송사로 마음이 힘들어서 엄마한테 전화를 걸었다. 전화기를 붙들고 울먹울먹하니까 전화기 너머에서 천주교 신자다운 말투로 엄마가 말했다. “그 사람들을 네가 용서하면 안 되겠니”. 나는 엄마를 용서하기로 했다.

5.

내가 아는 한 신실한 노부부는 오랫동안 마당에서 작은 개를 키웠다. 유기된 강아지를 거두셨다고 들었다. 개는 평생을 아주 짧은 줄에 묶여 살았지만, 그래도 두 분을 보면 꼬리를 흔든다. 그 댁 따님의 간곡한 부탁으로 일이 년 전부터 두 분은 개를 데리고 산책을 나가기 시작했다. 처음에 따님이 동물의 권리에 관해서 이야기했을 때 노부인은 정색하며 하나님의 말씀에 따른 만물의 질서를 운운했다고 한다. 때로 나는 두 분 앞에서 짐짓 성경을 인용하며 “기독교 신화에 따르면…”이라고 말하는 상상을 한다. 두 분은 내게 정말 잘 해주신다. 하지만 가끔은 나에게 잘 해주는 사람들을 견디기가 힘들다.

6.

어렸을 때는 38선 이북에 살았다. 휴전선과 가까운 작은 시골 마을이었다. 우리 할아버지는 원래 통영 사람인데 6.25 전쟁 때 간첩으로 몰려서 누명을 벗기 위해 전역을 하지 못하고 전방에 주저앉았다고 한다. 마을에서는 집집마다 개를 키웠다. 우리 집에도 개가 있었다. 개가 새끼를 낳고 새끼들이 눈을 뜨고 어느 정도 크면 박스에 가둔다. 거기에서 제일 먼저 밖으로 나오는 강아지는 우리 집에서 키우고 나머지는 이웃에 나누어 주거나 어디론가 보낸다. 새끼가 어느 정도 커서 교배가 가능해지면 어미는 잡아먹는다. 강아지가 어렸을 때는 집안에서 물고 빨고 같이 노는데도 줄에 묶여있는 개가 불쌍하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개고기를 먹기 싫다고 생각해 본 적도 없다.

7.

채식을 시작하면서 한동안 SNS를 열심히 했다. 낯모르는 이들과 연대감을 느끼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처음으로 알았다. 하지만 SNS를 통해 쉬이 접하는 비거니즘의 레토릭 — 다른 존재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무해한’ 존재가 되겠다는 다짐들과 고통의 총량을 줄이는 것이 선한 것이라는 공리주의적 도덕관 — 에는 동의할 수 없었다. 물론 불필요한 고통은 줄이는 것이 좋을 것이다. 하지만 고통에 대해서 이야기하면서 고통의 수량을 이야기하는 것은 너무 이상한 일이다.

결국 나는 동물을 죽이면 안 되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살게 (만들고 죽게) 내버려 두어서는 안 되는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채식을 한다는 것은 단지 식이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 이 세계를 만나는 방식과 지금 여기를 꾸려가는 방식 그리고 앞으로의 날들에 대한 기대와 전망을 바꾸는 것임을 알게 되었다.

8.

송사는 힘들었다. 사실상 졌지만 싸움을 시작한 것을 후회하지는 않는다.

9.

후회는 무척 진실한 감정이라고 생각한다. 아주 작은 가능성이라도 돌이킬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면 그것은 계산이지 후회가 아닐 것이다. 후회하는 것은 돌이킬 수 없기 때문이다. 다른 길을 택했더라면 물론 다른 일들이 벌어졌을 것이고 다른 내가 되었을 것이고 다른 세계에 살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뿐이다. 반드시 가야만 했던 길이 있는 것도 아니거니와 정답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우연들의 일치가 이끄는 대로 달려왔을 따름이다.

* 이 글의 제목은 올가 토카르추크의 소설 제목을 따왔다. 글의 내용은 일부 사실이고 대부분 거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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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시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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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출가. 공연예술 연구자. 안무가 최기섭과 함께 프로젝트 이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facebook.com/projectyy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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