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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예술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연극 읽기: 장애의 경험과 관점, 전문성을 바탕으로

정리_연극in 편집부

제245호

2023.11.09

웹진 연극in에서는 장애의 경험과 관점, 전문성을 바탕으로 연극을 이야기하는 자리를 마련합니다. 극장과 연극 접근성에 대한 장애 당사자 좌담을 시작으로, 장애배우가 출연하는 공연, 장애서사를 다루는 공연, 여러 접근성 실천을 하는 공연들을 선정해 함께 이야기하는 장애창작자 좌담, 장애창작자와 비장애 연극 평론가가 서로의 생각을 나누는 장애연극 비평과 관련한 좌담을 연재합니다.

일시:
10월 17일 화요일 오후 7시
장소:
서울연극센터 2층 다목적실
진행:
김지수
참여:
양근애, 임대륜, 임지윤, 하은빈, 홍성훈
참관:
김슬기(웹진 연극in 편집장), 예준미(웹진 연극in 에디터), 이연주(웹진 연극in 편집위원), 김상민, 임수경(서울연극센터 웹진 연극in 담당자)
지수
오늘은 장애예술비평을 고민하며 연극 <생활의 비용>과 <미래의 동물>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같이 인사를 나누고 시작을 하겠습니다. 저는 극단 애인에서 활동하고 있는 김지수입니다.
대륜
임대륜입니다. 서울 강서구에서 열리는 제1회 별별일일연극제에서 공연하는 즉흥詩어터 팀의 <詩:럼실 실험실 詩:험실>에서 하우스 매니저로 일하게 되었습니다.
은빈
안녕하세요. 저는 하은빈입니다. 글을 쓰고 공연을 합니다. 안티무민클럽이라는 팀에 속해 있습니다.
지윤
안녕하세요. 임지윤입니다. 연출, 기획, 배우로 다양하게 활동하고 있습니다.
근애
안녕하세요. 양근애입니다. 비평과 드라마터그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성훈
안녕하세요. 홍성훈입니다. 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서 활동하고 있고, 공연을 함께 만들기도 합니다.
좌담회 전경. 좌담 참여자 하은빈, 임대륜, 좌담 진행자 김지수, 좌담 참여자 홍성훈, 양근애, 임지윤이 
            테이블 네 개를 각도가 넓은 V자 형태로 붙인 채 앉아 있다. 
            그 뒤쪽으로 참관인들이 책상 세 개를 붙여 앉아 있다. 모두 살짝 웃고 있는 얼굴이다.

<생활의 비용>

지수
오늘 좌담을 위해 만나기 전에, 공연을 보고 함께 나누고 싶은 이야기에 대한 글을 모두 한 편씩 써주셨는데요.(새창으로 열기) 미리 서로의 글을 읽고 이 자리에 참여해주셨습니다. 보내주신 글들을 바탕으로 질문을 정리해보았는데요. 먼저 <생활의 비용>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어떻게 보셨나요? <생활의 비용>은 누구의 관점에서 무엇을 이야기하는 공연인가요?
성훈
저는 어떤 인물이 주도권을 갖고 어떻게 상대를 대하는가에 주목해서 공연을 보았어요. 초반에 존은 돈을 통해, 안나는 죄책감을 통해 각각 관계를 주도하는 것처럼 보였는데요. 존과 안나가 상대방에게 활동지원을 받을수록, 주도권이 비장애인 인물에게 넘어가잖아요. 결국은 비장애인 인물들만 무대에 남고요. 이 공연에서 장애 인물의 위치는 어디인지 계속 곱씹었던 것 같아요.
지윤
장애, 비장애를 떠나서 도움을 받는 관계가 계속되면 고맙고 미안한 마음도 들잖아요. 이렇게 감정이 더해지면 주도권을 명확히 판단하기 어려워질 것 같아요. 후반부에 장애 배역보다 비장애 배역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 걸 보면서, 주도권을 가진 사람들 사이에서 살아가는 장애인들의 모습을 현실적으로 보여줬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근애
이 연극에서 이야기를 가진 사람은 제스와 에디였어요. 결국 자기 이야기를 더 많이 가진 사람이 주도권을 가지게 되는 것이 아닐까요. 그런 점에서 이야기를 가진 두 사람의 외로움은 드러나지만, 안나와 존의 외로움은 감지되지 않아 조금 아쉬웠어요.
지수
장애인물을 그리는 방식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해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인물들의 배경이나,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관계를 어떻게 보시고 생각하셨는지요. 외로움과도 연결해서 이야기해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장애인이라서 더 외롭고, 비장애인이라서 덜 외로울까요?
대륜
네 명의 인물 모두가 외롭다고 생각했는데요. 에디는 알콜 중독에서 회복되는 단계잖아요. 알콜 중독자는 한국에서 등록장애인이 될 수 없지만, 해외에서는 등록장애인이 되기도 하거든요. 지체장애를 가지지 않은 사람들을 무조건 비장애인이라고 보기에는 어려움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지윤
네 명의 인물을 다 장애배우가 연기했다면 어땠을지도 생각해봤어요. 공연의 흐름이 어떻게 달라질지, 비장애인이 장애인을 도와주는 것과 장애인이 장애인을 돕는 것은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인지 고민했습니다.
근애
이 극에 나타난 외로움은 정서적인 차원을 넘어 여러 맥락 안에 위치하는 것 같아요. 제스는 이민자이고, 집이 없어 빈곤에 시달리고, 엄마와의 관계도 복잡하죠. 하지만 연극은, 마치 존은 자본으로 스스로를 관리하는 것처럼, 제스는 상대적으로 사각지대에 놓인 것처럼 제스의 외로움을 부각해요. 에디와 안나의 관계도 마찬가지인데요. 처음 펍에서 이야기를 하는 장면은 관객들이 에디에게 정서적으로 이입하게 만들어져 있어요. 어쩌면 안나가 훨씬 더 고립감을 느낄 수 있는데 상대적으로 잘 드러나지 않았다고 봤어요. 뭔가 기울어져 있고 비대칭적이에요. 그게 목욕 장면에서 제일 크게 보였던 것 같아요.
연극 <생활의 비용> 공연 사진. 제스가 존을 목욕시키는 장면이다. 
                    리허설 중 촬영한 사진으로, 존은 검은색 바탕에 빨간색과 노란색, 녹색의 그래피티가 들어간 반소매 티셔츠를 입고, 의자에 앉아 
                    하반신과 머리에 청색 수건을 두르고 있다. 그 뒤에 앉은 제스가 오른손에 샤워볼을 들고 존의 어깨를 잡고 있다.
연극 <생활의 비용> 공연 사진. 에디가 안나를 목욕시키는 장면이다. 
                    타일이 깔린 바닥에 유선형의 하얀색 욕조가 놓여 있다. 리허설 중 촬영한 사진으로, 욕조 속에 들어 있는 안나는 회색의 반소매 티셔츠를 입고 있다. 
                    에디가 욕조 밖에 쪼그리고 앉아 몸을 가누지 못하는 안나를 양팔로 꼭 끌어안고 있다.
사진 제공: 극단 청년단, 성북문화재단 / 촬영: 유니온씨
은빈
두 쌍 모두 목욕하는 장면이 있는데, 극장이라는 공간의 구조상 관음적 시선이 작용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어요. 객석은 어둠 속에 잠겨있고 어떤 몸은 드러나고 있다는 게 저에겐 너무 강하게 느껴졌어요. 한편으로는 그 장면에 각각의 기능이 있다고도 생각했거든요. 존과 제스 사이의 섹슈얼한 텐션이나 안나의 섹슈얼리티를 드러내는 장면이니까요. 그러면서도 내가 창작자였다면 어떤 선택을 했을지 잘 그려지지 않더라고요.
저는 터치가 있는 장면들에서도 깜짝 놀랐는데요. 제스가 처음 존의 손을 붙들 때, 뇌병변장애인의 커다란 반응이 드러나는 장면이 배우의 신체적 특성을 활용해서 연출되는데, 저는 좀 놀랐어요. 에디가 안나의 팔을 거칠게 낚아채는 장면에서도요. 극에 집중할 수 없게 만드는 섬세하지 못한 장면들이 아니었나 생각해요. 근애 님이 이런 문장을 써주셨는데요. “장애는 가시화되어야 하지만 어떤 가시화는 더 중요한 응시를 빼앗는다”. 가령 이러한 장면들에서 근애 님께서 적어주신 문장을 감각해서 많이 공감했습니다.
지수
존이 깜짝 놀라는 장면이 두 번 정도 나오잖아요. 거의 경직에 가까울 정도로 크게 놀라는데, 나중에 황철호 배우님한테 들어보니 과장해서 연기하셨대요. 자기의 신체적인 반응보다 더한 반응을 하신 거죠. 목욕 장면에 대해서는 다들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지윤
저도 목욕 장면에서 조금 많이 놀랐는데요. 이용자 입장에서 나의 이동과 생활 환경, 목욕, 신변처리를 도와주는 사람이 동성인 것이 편하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활동지원사와 이용자가 연결될 때 성별을 선택할 수 있나요?
지수
동성 매칭이 원칙인데 이성 매칭이 더 많아요. 일단 성비가 잘 맞지 않아요. 활동지원사의 80% 이상이 여성인 반면, 활동지원 서비스를 받는 이용자들의 절반 이상이 남성이에요.1) 또 여성에게 활동지원을 받는 것에 익숙한 이용자들도 있고요. 외국에서 살다 오신 척수장애인 지인의 말에 따르면 외국도 여성 활동지원사가 많대요.
지윤
설명 감사합니다.
대륜
안나가 사고를 당하지 않았다면, 에디가 안나를 씻겨주진 않았겠죠. 존의 목욕 장면은 다른 대안을 생각해보게 만드는 것 같아요.
성훈
저도 다른 분들처럼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본 것 같아요. 내가 이 장면을 계속 지켜보는 게 맞나 고민했고요. 기존 사회가 장애인을 그리는 방식, 타자화하는 관습을 여과 없이 재현했다는 점에서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봤습니다.
지수
네, 비장애인이 씻겨주는 장면은 너무 많이 봐왔어요. 그런데 그 장면에서도 황철호 배우님이 멋있었다는 이야기가 나오더라고요. 성훈 님도 황철호 배우님 연기가 인상적이었다고 하셨어요.
성훈
황철호 배우님의 스타일리시한 휠체어와 외모가 인상적이었어요.
좌담회 전경. V자 대형으로 앉아 있는 좌담 참여자들의 뒷모습과 옆모습. 
            좌담 참여자 홍성훈이 노트북 키보드 위에 오른손을 올려 텍스트를 작성하는 중이고, 
            앞쪽 벽면에 설치된 커다란 스크린에 그 텍스트가 실시간으로 영사된다. 
            스크린에는 “일단 황철호 배우님의 스타일리시한 휠체어와 외모가 인상적이”까지 문장이 쓰여 있다.
은빈
저는 십 년 전에 황철호 배우님과 같이 공연을 한 적이 있는데요. 당시 각자의 장애를 어떻게 무대 위에서 미적인 도구로서 보이게끔 할 것인가가 고민이었는데, 그중 하나가 철호 배우님의 언어장애였거든요. 그런데 십 년의 세월이 흐르는 사이에 발음이 너무 좋아지셔서 자막이 필요가 없다고 느껴질 정도더라고요. 숙련을 통해 이루어진 배우의 성취라고도 할 수 있을 텐데, 한편으로 철호 배우님의 알아듣기 어려운 발음을 좋아했고 그것이 고유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약간의 상실감을 느꼈어요. 이게 장애배우들의 딜레마가 아닌가 싶기도 하고요. 그런데 <미래의 동물>을 같이 본 지인도 하지성 배우님 연기를 보고 똑같은 말을 하는 거예요. 너무 잘하셔서 자막의 도움이 필요 없고, 언어장애를 인식하지 않게 된다고요. 배우들을 지지하는 관객으로서 이런 변화를 어떻게 생각해야 할지, 이게 마냥 좋은 현상인지 고민스러웠어요.
지수
아마 한 배우를 오랫동안 보셨기 때문에 그 변화를 감지하셨을 것 같아요. 철호 배우님은 다른 어떤 작품보다 빠르고 정확하게 말씀하셨어요. 다른 배우들과 호흡을 맞추기 위해 노력하셨을 것 같고요. 극단 애인 배우들의 경우는 ‘하다 보니’라고 하는데요. 정확하게 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하지만, 본인 스스로 하고 싶은 마음이 있으니까 아마 연습하시면서 변화가 생기지 않았을까 생각이 듭니다.
근애
저도 장애배우가 가진 고유한 연기에 대해 고민했습니다. 안나 역할을 하신 배우님이 연기를 너무 잘하셔서 오히려 비장애인이라는 사실을 인지한 것 같아요. 특히 신체의 손상이 일부분의 문제만은 아닐 텐데 너무 정확한 발음과 빠른 속도로 이야기를 하시고, 이런 점들이 장애인 배우와 다르게 보이더라고요.
지수
인물들의 이야기로 조금 더 확장해볼까요. 장애배우의 연기는 인물을 어떻게 드러내나요? 앞서 이야기했던 빠른 호흡, 장애인의 고유성과 연기도 연결이 되어 있는데요. 또 장애인물을 연기한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재현의 방식이나 관습이 비슷하게 적용될 것 같기도 하고요.
대륜
저는 연극 보는 걸 좋아하고 자주 보는 편인데요. 휠체어를 이용하는 배우가 등장하는 연극을 본 경험이 많지는 않아요. 지금 기억나는 건 <인정투쟁; 예술가 편>(2019)과 <생활의 비용> 두 편이네요. 휠체어 이용 배우들이 더 많은 작품에 출연하기도 하고, 저도 더 공연을 챙겨보아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관극을 더 해야 관습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을 듯해요.
지윤
사실 저는 안나 역할을 연기하신 분이 비장애인인지 몰라서 놀랐어요. 만일 비장애인이라는 사실을 알았다면 ‘비장애인이 장애인 연기를 어떻게 하는지 보자’는 마음으로 작품을 봤겠지만, 몰라서 오히려 마음 편하게 공연에 집중했거든요. 비장애인 배우가 장애인 연기를 잘하면 조명받고 찬사받지만, 그래도 장애인 역할은 이제 장애인 배우가 하는 게 맞지 않나 생각해요. 요새 들어 장애인 배우도 많이 늘고 있거든요.
좌담 참여자 임지윤. 빈틈없는 앞머리를 눈썹 아래까지 내린 짧은 커트 머리다. 
            하얀색 긴소매 라운드 티셔츠를 입고 있다.
근애
얼마 전에 캐나다에서 했던 장애연극에서 장애인 배우가 다른 장애 유형을 연기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요. 이런 시도가 가능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비장애인이 장애 연기를 하는 것에 대한 문제의식은 어느 정도 공유되었지만, 장애인 배우가 할 수 있는 연기의 영역을 넓히는 것도 중요하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물론 배우는 자신이 경험하지 않은 역할도 잘 해낼 수 있기 때문에 장애인이든 비장애인이든 연기의 영역을 협소하게 이해할 필요는 없겠지요. 그렇지만 장애배우에게 더 많은 기회가 주어질 필요가 있어요.
은빈
어떤 소수성을 가진 인물을, 특권 계층에 속한다고 여겨지는 누군가가 연기하는 관행은 흔하지만, 반대의 경우는 잘 일어나지 않잖아요. 특정 공연에서 소수자가 특권을 가진 인물을 연기한 사례가 있다 하더라도, 아직 갈 길이 멀다는 생각이 들어요.
<생활의 비용>을 보면서 작품의 태도가 애매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판단이 어렵고 마음이 복잡했어요. 오히려 장애인 배우가 비장애인 예술가들과 협업한 작품이라고 생각했을 땐 마음이 편했거든요. 굳이 장애예술 작품으로서의 성취와 한계를 판단할 필요는 없을 거라 생각해서요. 그런데 한편으로는 비장애중심주의적인 세계와 예술계, 극장, 구조와 관습 속에서 장애예술가들이 계속 동원되고 사용된다는 꺼림칙함, 석연치 않음이 남아있었어요.
지수
저도 지금 그런 점을 많이 고민하는데요. 그런 면에서 <생활의 비용>을 이야기하기가 쉽지 않네요.
근애
연극과 영화의 역사에서 장애를 가진 인물을 다뤄온 경우가 많은 데에 반해, 장애인 배우의 연기에 대한 고민은 그보다 깊지 않아서 발생한 차이는 아닐까 그런 생각도 들어요. 장애인 배우의 훈련, 연기 교육, 제작 과정에서의 제도나 환경이 구축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이런 걸 문제시하기가 까다롭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텍스트 안에서의 장애 인물은 이질적으로 느껴지지 않지만, 무대 위에서 배우를 마주하면 석연치 않은 지점이 계속 발생하는 것 같아요.
은빈
사실 장애인 배우도 그렇고, 장애인을 연기하는 비장애인 배우도 그렇고 ‘연기를 잘한다’고 했을 때 그 잘함이라는 것이 어떤 프로페셔널리즘에 포섭되는 것 같아요. 그프로페셔널리즘은 비장애인의 호흡에 맞추는 것, 예컨대 언어장애를 가진 사람이 더 정확한 발음을 하도록 강제된다든가, 한다는 점에서 비장애중심주의적이기도 하죠. 더 나아가서는 극장의 셋업 일정을 맞춘다거나, 시간에 맞춰 도착하거나, 순회공연에 참여할 수 있는 여건을 갖춰야 한다든지. 비단 무대 위에서 일어나는 것뿐만 아니라, 살피고 고민해야 할 더 많은 과정이 공연 안팎에 있는 것 같아요.
지수
협업이 많아지는 것이 기쁜 일이기도 하지만, 아직 나누어야 할 이야기들이 많다는 생각도 듭니다. 장애 정체성을 가진 장애인들이 어떤 역할로, 어떻게 과정에 함께하는지, 그 안에서 기존의 관행대로 여러 과정들을 소화하고 있지는 않은지, 어떤 상황이 발생했을 때 그에 대한 진지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져 있는지, 등에 대해서요.
지윤
공연에 참여하다 보면 장애인식개선교육, KTS에 대해서 모르시는 분들이 많더라고요. 배우, 스태프 상관없이 서로를 존중하고, 자신의 의견과 안전을 보장받을 수 있도록 초기 단계에서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꼭 장애인식개선교육이나 KTS 함께 읽기가 아니더라도, 자신에 대해 충분히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지는 게 좋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소한 차이로 연습환경이 달라지기도 하니까요.
지수
이제 <생활의 비용> 이야기를 마무리해야 할 시간인데, 대륜 님이 글에서 하우스 음악, 조명과 같은 감각적 요소들을 짚어주셨어요. 더 이야기해주실 수 있나요?
대륜
풍요롭고 지적인 분위기의 하우스 음악이 작품과 잘 어울려서 재미있었어요. 알콜 중독으로 기억력이 감퇴한 에디를 빼고는 인물들이 모두 지적인 느낌이었거든요. 또 무대에 주황색 빛이 많이 쓰여서 편안하고 따듯한 느낌도 들었고요. 전 아내의 물건이었던 안전담요를 제스에게 건네는 장면은 당혹스러웠지만, 정서적, 신체적 따스함을 충족시켜주는 물건을 통해서 이들이 가진 정신적 측면의 어려움을 보여주는 것이 의미 있게 다가왔습니다.
좌담 참여자 임대륜. 귀를 덮는 짧은 머리에 검은색의 동그란 뿔테 안경을 썼다. 
            연보라색의 라운드 티셔츠 위에 짙은 회색의 후드 재킷을 입었다.

<미래의 동물>

지수
이제 <미래의 동물>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저는 글 쓰는 게 참 어려웠는데요. 텍스트의 세계 속에서 배우, 특히 장애배우의 연기는 어떻게 의미화되는지 이야기 나눠보려고 합니다. 다양한 배우들이 1인 다역, 다인 1역을 하기도 하고요. 장애배우가 장애가 드러나지 않는 역할을 하기도 하는데요. 어떻게 보셨나요?
근애
이걸 어떻게 말해야 할지 정말 난감하더라고요. <생활의 비용>에서는 장애가 너무 가시화돼서 어려웠는데 <미래의 동물>에서는 장애가 이렇게 안 보여도 되는 건가 싶어서 다른 방식으로 곤혹스러웠어요. 그런데 장애만 안 보인 것이 아니라 외국인 배우 등 다른 인물들의 고유성도 잘 보이지 않았죠. 아주 멋지고 세련된 연극이었지만 공연에서 보여주고자 했던 여러 다름이 좀 더 잘 드러나는 방식을 택했다면 좋지 않았을까 아쉬움이 남았어요.
대륜
<미래의 동물>은 한 번 더 보고 싶어요. 제가 좋아하는 브이로그나 교환학생 같은 소재들이 나오더라고요. 정말 이국적인 분위기가 나기도 했고요. 제가 코로나 진단받기 이틀 전이라 컨디션이 좋지 않아서 공연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다시 볼 수 없었어요.
지윤
가장 먼저 공간에 너무 압도되었어요. 극장에 들어서니 어두운 공간에 의자가 스물다섯 개 정도 놓여 있더라고요. 엄청 큰 천 세 개가 걸려 있고요. 말씀하신 것처럼 다양성을 보여주고 싶었던 작품인 것 같아요. 남성, 여성, 장애인, 비장애인, 내국인, 외국인, 자연에 관해서도 나왔는데, 볼 것이 너무 많았던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 집중하기 어려웠어요. 동시에 의자 말고도 나무, 책상, 털실을 형상화했다면 더 많은 것이 보였겠다는 아쉬움도 있고요.
성훈
방대한 텍스트와 중간중간 나오는 사운드, 수많은 인물 혹은 사물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고민했어요. 처음에는 제가 공연을 이해하는 능력이 부족한가 했는데, 여러분의 리뷰를 보니 좀 안심이 되었어요.
연극 <미래의 동물> 공연 사진. 등받이가 있는 검은색 의자가 공간 이곳저곳에 
            일정한 간격을 두고 서로 다른 방향으로 놓여 있다. 
            중앙에 한 인물이 정지한 채 서 있고, 다른 인물들은 의자에 앉아 몸을 움직이고 있거나 공간을 걸어 다니거나 휠체어로 이동하고 있어 
            빠르게 흘러가는 듯한 모습이다. 천장에서부터 내려온 세 개의 스크린에는 수많은 단어들이 빼곡히 들어차 있다.
ⓒ옥상훈
은빈
광활한 세계에서 무엇도 무엇이 아니고, 동시에 모든 것이 될 수 있는 이들이 나오다 보니 제게는 다소 부유하고 흩어지는 감이 있는 공연이었어요. 스크린에 자막이 제공되긴 하는데, 배리어프리 한 자막은 아니었던 것으로 기억해요. 저는 이 공연의 주인공이 텍스트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이 공연에서 신체가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궁금해하며 보았어요. <생활의 비용>은 장애가 있는 신체가 있어야 하는 이유가 너무나 명확했다면, <미래의 동물>은 하지성 배우님을 비롯한 모든 이들이 반드시 그 배우여야 하는 이유가 있었는지 궁금했어요. 어떤 면에서 <미래의 동물>은 개별 몸들 간의 차이가 무차별적인 차이 그 자체로 존재하는 공연이었고 그런 면에서 이상적이었다고도 할 수 있죠. 하지만 장애를 가진 신체가 장애를 통해 의미를 전달하기 위해서는, 그 장애를 장애로 만드는 세계와 사회의 관계망들이 있어야 하잖아요. 그런데 그런 맥락과 관계가 없는 세계와, 다양성을 부각하려 하는 연출 의도 속에서, 굳이 장애를 가진 배우가 들어왔다는 건 다양한 차이를 보이는 데에 그 몸이 너무도 유용하기 때문이 아닌가라는 생각도 하게 되어 고민스러웠어요.
근애
제목이 <미래의 동물>이어서, 저는 동물보다 미래에 닿는 시간성에 집중해서 공연을 보려고 애를 썼는데요. 말씀하신 것처럼 어떤 맥락들이 지워진 채로 외따로 떨어져 있었어요. 어떤 맥락에서는 장애가 되고, 외국인이 되는 지점들이 교차하지 않으니 의미가 어떻게 발생하는지 의문이 들더라고요. 미래의 시간성에서는 구획된 규범이나 질서를 다른 방식으로 의미화할 수 있을 텐데, 그럴 기회가 없어서 아쉬웠습니다.
지수
저는 제일 앞줄에 앉아서 전체적인 하지성 배우님의 움직임이 전혀 파악되지 않았는데요. 의자 사이사이로 이동했나요? 지성 배우가 멈춘 자리는 어디였나요? 의자로 공간을 구획하고 다른 배우들은 의자에 앉기도 해서, 휠체어를 탄 인물은 어디에서 말을 하고 있는지 궁금했거든요.
지윤
왜 무대에 의자를 썼는지 고민해봤어요. 큐빅이나 다른 무엇일 수도 있잖아요. 그런데 휠체어가 의자 모양이라는 점에서, 의자 사이를 움직이는 지성 배우님의 모습이 움직이는 의자처럼 보이더라고요. 그래서 지성 배우님을 통해 또 다른 움직이는 의자를 표현하지 않았을까 생각했어요.
지수
한편으로 세 개의 스크린에 수많은 단어가 뜨고, 단어와 상관없는 사운드가 들리기도 하잖아요. 스크린에 띄워진 단어들은 말씀하셨듯 배리어프리라고 보기는 어려운 것 같아요. 공연 접근성과 정보 전달은 연극의 경험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더 이야기해볼게요. <미래의 동물>은 긴 사전음성해설이 있었지만, 공연에서는 음성해설이 없어 시각적 정보가 전달되지 않았어요. 공연의 특성에 따른 선택이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다양한 감각을 어떻게 같이 공유할 수 있을지 고민이 되기도 하더라고요.
좌담 진행자 김지수. 짧은 커트 머리에 동그란 안경을 썼고, 흰색 셔츠 위에 회색 카디건을 입었다. 
            양손을 앞으로 모아 쥐고 조금 위쪽을 바라보며 말하고 있다.
성훈
저는 텍스트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이해하는 사람이어서 자막의 도움을 많이 받는데요. 이 공연에서는 텍스트들이 다 쪼개져서 무대에 흐르고, 또 그 텍스트를 발화하는 배우들의 대사에서도 어떤 방향성을 찾기 어려워서, 농인 관객이 이 공연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걱정도 됐어요.
근애
모든 감각을 동원해서, 종합해서 보여주는 것이 과연 좋은 방식인지 의구심이 들어요. <미래의 동물>은 다양한 청각, 시각 정보가 동시에 제공되니까 저는 오히려 감각이 분산되는 느낌을 받았거든요. 가득 채워져 있지만, 한편으로는 비어 있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문자 텍스트, 소리, 시각적 정보 어느 하나 중요하지 않은 것이 없었는데 동시에 작동하는 걸 보는 건 쉽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하나의 감각에 집중할 수 있게끔 하면 어떨까 상상하면서 보게 되더라고요. 예전에 봤던 연극 중에 시각적 정보와 청각적 정보가 일치하지 않는, 가령 자막에는 ‘비행기 소리가 들린다’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공연이 있었는데 그때 연극에서 감각의 과잉에 대해 생각하게 됐어요. 어쩌면 <미래의 동물>에서도 감각을 분할하고 또 이를 깨트리는 방식의 시도도 가능했을 것 같아요. 그런데 이런 방식이 장애인 관객들에게는 다르게 와닿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지윤
QR코드로 제공된 팜플렛에 대해서도 이야기해보고 싶어요. 종이로 된 리플렛은 휴대폰이 없이도 바로 볼 수 있고, 공연 중에도 볼 수 있잖아요. 환경 보호 차원에서 온라인을 통해 리플렛을 제공하는 것도 유의미하겠지만, 모든 관객이 접근할 수 있는지, 모두에게 편리한지 재고해 봐야 할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특히 공연의 내용이 어려워서, 사전정보가 필요한 관객들도 있었을 것 같거든요.

종합토론

지수
이제 종합토론으로 넘어가 보려고 합니다. 오늘 이 자리에서도 여러 이야기를 나누었는데요. 과연 장애예술은 무엇이고 이때 장애 정체성은 어떤 의미를 가질까요?
은빈
저는 장애예술을 주체와 주제의 차원에서 장애를 주요하게 다루는 예술이라고 생각해요. 장애정체성을 가진 누군가가 주체가 되며, 주제적 측면에서 장애를 소외하지 않는, 더 나아가서는 장애를 통해서만 할 수 있는 중요한 이야기를 하는 예술이라고요. 장애를 가진 사람이 예술을 한다고 해서 다 장애예술인 것도 아니고, 장애인 예술가와의 협업이 장애예술과 무관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장애라는 범주 자체가 계속 이동하고 변화하기 때문에 장애예술의 개념 규정 또한 까다로워지는 면이 있는 것 같은데요, 그래서 저는 장애예술이 무엇이냐를 묻기보다 장애예술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질문하는 게 더 실천적이고 유효하지 않을까 싶어요.
좌담 참여자 하은빈. 눈썹을 살짝 덮는 앞머리에, 층이 진 긴 갈색 머리다. 
            푸른색과 갈색, 하얀색, 검은색 바탕에 커다란 하얀색 꽃이 들어간 하늘하늘한 옷을 입었다. 
            양손을 펼친 채 몸 앞쪽으로 들어 이야기하고 있다.
대륜
저에게는 주제와 내용이 중요한 것 같아요. 무엇이라고 규정할 수는 없지만, 제가 언제 장애예술 작품을 찾아보는지 생각해보면 주제와 소재, 내용에서 장애를 다루는 작품에 관심 갖게 되더라고요. 이번 좌담회에서 선정된 두 작품 <생활의 비용>과 <미래의 동물> 모두 휠체어 이용 배우들이 등장해 존재감을 내뿜는 것이 가시적으로 드러나는 데 비해, 정신장애는 은폐되기도 한다는 생각도 듭니다.
지수
정신장애인분들은 어떻게 은폐되지 않고 장애정체성을 드러내면서 예술을 할 수 있을까요?
대륜
저는 조현병 스펙트럼 장애를 갖고 있는데요. 정신장애인들과 모여서 연극을 준비하면서 덕혜옹주가 조현병을 앓았다는 사실을 알았어요. 장애예술인들이 더 많이 모여 무언가를 해볼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면, 이렇게 같은 주제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 모여 작품을 올릴 수 있을 거라 생각해요. 또 당사자의 특성을 고려한 환경도 중요하죠. 얼마 전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에 출현했던 정은혜 배우의 경우, 작가가 평소 배우의 생활습관을 관찰해서 역할을 만드셨다고 해요. 이를테면 저는 조현병 스펙트럼 장애를 갖고 기억력이 감퇴해서 많은 대사를 외우는 게 어려워요. 대사나 동선을 외우기 힘든 배우가 있다면, 이를 고려한 연습이나 장면 연출을 해볼 수 있을 것 같고요.
지수
취약한 부분을 대신하거나 보완하는 방법을 찾아내는 게 장애예술가들이 해야 하는 일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성훈
저는 장애예술에서 당사자성이 중요한지 의문이 들어요. 장애인 배우가 다른 장애 유형 인물을 연기하는 경우처럼, 역할은 얼마든지 변할 수 있잖아요. 장애로 인해 세계와 불화하는 지점을 얼마나 끈기 있게 끌고 나가느냐가 장애예술의 핵심인 것 같아요.
근애
장애예술이 무엇인가 하는 질문을 장애예술이 무얼 할 수 있는가로 바꾸어 보아야 한다는 의견에 동의합니다. 저는 장애연극이 기존 연극의 규범이나 관습을 흔들어 놓는 장면을 좋아하는데요. 그때 생겨나는 균열이 연극이 무엇인지, 또 누구를 위한 것인지 질문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장애배우가 무대에 존재하면 당연히 장애를 문제시하는 연극이겠구나 하는 예상을 깨뜨리는 것도 중요하고 또 장애가 가상이 아니라 실재라는 점을 보여주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장애예술을 표방하지 않는 연극에서도 장애를 충분히 읽어낼 수 있을 텐데, 장애가 마치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그래서 비장애 중심의 질서에 포함될 수 있는 것처럼 지나가는 것도 실은 소외시키는 것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장애예술이라는 개념이 나중에는 더 흐릿해질 때가 오지 않을까요. 그때가 되면 각 배우와 연극의 고유성을 더 자세히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좌담 참여자 양근애. 어깨 밑으로 내려오는 웨이브가 들어간 머리에, 검은 테의 안경을 쓰고 있다. 
            남색 니트를 입었고, 초록색 계열의 스팽글이 박힌 검은색 머플러를 느슨하게 두르고 있다.
지윤
각자 장애예술을 규정하는 기준은 다양하고, 아직 논의가 진행 중이라고 생각해요. 장애예술인이 나오는지, 주제나 소재에 장애가 포함되는지, 장애 관객이 편하게 볼 수 있는지 등이요. 아직은 더 많은 관객에게 장애예술가들을 알려야 하는 단계라는 생각이 들어요. 궁극적으로는 장애예술의 경계가 희미해지고 장애 비장애를 떠나 예술인으로 바라봐 주는 게 가장 좋겠지요. 제가 비장애인 역할을 할 수도 있고, 다른 장애인물을 연기할 수도 있을 거예요. 더 많은 장애예술가들의 열정적인 모습을 더 많은 작품에서 만나볼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지수
저는 아직 장애 정체성이 장애예술에서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장애 정체성이라는 것도 개인별로 다르겠지만 나는 장애인이고, 나의 장애가 사회 구조 안에서 어떤 의미, 맥락과 정치성을 갖고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아직 더 많이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직 나오지 않은 이야기와 무대가 너무 많다는 생각이 들어요. 저희가 지금도 장애배우의 고유성을 이야기하기가 어렵잖아요. 장애배우가 경험을 통해서 ‘나의 고유성이 어떤 것인지, 그것은 어떻게 변화하고 그 변화 안에서 나는 어떤 무대를 만들 것인지, 또 어떻게 연기할 것인지’를 스스로 이야기할 수 있을 때까지는 아직 가야 할 길이 멀다는 생각이 듭니다. 충분한 논의를 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이야기가 나와야 하고요. 이제 좌담을 마무리하려고 하는데요.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를 나누어 주시면 좋겠습니다.
은빈
저는 무대 위, 혹은 객석에서 장애를 가진 신체가 극장과 연극을 만나는 순간 발생하는 정지의 순간이 있다고 생각해요. 기존의 극장을 작동케 하는 관습, 구조, 이념, 제반과 불화하고 불일치하며 발생하는 정지죠. 제가 보고 싶은 순간이 있다면 장애가 역으로 극장을 패배시키는 순간이에요. 그 순간을 볼 수 있게 하는 것이 장애예술의 중요한 하나의 목적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한편으로는 장애예술에 대한 관심과 제도적 지원이 이전에 비해 규모가 커지고 많아졌음에도 불구하고, 장애예술을 새로이 시작하고 지속하는 이들이 많지는 않은 것 같거든요. 매번 공연은 너무 힘들고, 매번 하는 사람만 진이 빠지게 하잖아요. 지금의 지원을 넘어서는 풍요로운 장을 만들기 위해서 고민해야 할 지점이 많다고 생각해요.
대륜
제가 요새 참여하는 연극 워크숍에서 즉흥연극을 해요. 만일 제가 상대의 눈을 마주치지 못하거나, 무언가를 만들어내지 못했을 때 이것이 고유성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을지 고민되더라고요. 고유성으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겠지만, 계속 반복되면 그것이 부각되겠죠. 어려운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가시적으로 보이지 않는 정신장애나 발달장애인 배우들의 연기도 더 많이 드러나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근애
제 안에 내면화된 비장애중심주의나 남성중심주의를 깨닫는 순간이 있어요. 장애인 배우들이 비장애인 배우의 연기를 모방하며 연기를 배운다는 이야기를 책에서 본 적이 있어요. 그때 장애배우들이 자기 언어와 표현을 개발하기 어려운 환경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연기 역시 비장애중심으로 학습된 영향이 큰 것 같아요. 장애배우의 연기가 표현할 수 있는 고유성을 이야기하려면 비장애중심주의로부터 벗어나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는 점에서 더욱 복잡한 싸움이 되겠다는 생각이 들고요. 장애배우의 연기를 해석할 수 있는 더 많은 언어를 찾아야 한다는 생각도 들어요. 분명 다른 연기방식인데 기존의 언어로 설명하다 보면 그 다름이 희석되잖아요. 한편으로 장애배우들이 자신의 연기에 자부심을 느끼고 그것을 적극적으로 표현해주었으면 좋겠습니다. 더 구체적이고 세밀한 이야기들을 함께 나누면 좋겠습니다.
성훈
우리가 공연을 보는 것은 배우와 스태프들이 만들어낸 약속의 결과를 보는 거잖아요. 물론 어떤 작품을 평가할 때 결과물 위주로 이야기하게 되겠지만, 결과물에 따르는 수많은 협의와 약속들도 평가에 포함되었으면 좋겠어요. 장애인 배우가 접근하기 용이한 연습실을 찾아본다거나 호흡을 빨리 하지 않고도 연기를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본다는 식으로요. 극장 밖의 이런 맥락과 문화가 먼저 정립되어야 무대 위에서도 그것을 실현할 수 있지 않을까요.
좌담 참여자 홍성훈. 검은색 후드 짚업을 입고 있다. 건너편을 바라보며 환하게 웃는 얼굴이다. 
            등받이에 카키색의 큰 배낭이 걸려 있는 전동휠체어에 앉아 있고, 책상 위에는 노트북을 펼쳐두고 있다.
지윤
무대뿐만 아니라 연습실이나 리허설 때의 안전이 안전한 작품을 위한 시발점이라고 생각해요. 연기하는 사람으로 무대에 서면, 제 손을 먼저 보는 분들이 가끔 계세요. 돌이켜 보면 제가 10년 전 장애배우들을 처음 봤을 때, 저도 그랬던 것 같다는 생각도 드는데요. 장애배우를 처음 접하는 관객들에게 우리를 어떻게 보여드려야 하는지 창작자로서도 고민해봐야 할 지점이 있다고 생각해요. 지금은 비장애인 배우들에 비해 장애배우의 수가 많지 않지만, 점차 장애배우가 늘어나서 정말 실력을 겨룰 수 있는 때가 오면 좋겠습니다. 그때가 되면 장애배우의 예술성, 연기력을 더욱 명확히 바라보고 이야기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해요.
지수
네. 오늘 다양한 이야기 나누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 좌담에서는 장애배우들이 출연하는 장애인문화예술판의 <숨 쉬는 바닷말>과 장애인문화예술극회 휠의 <생일파티>를 보고 이야기 나누어 보겠습니다. 긴 시간 수고하셨습니다.

[사진: 김지성 jasonk17@naver.com]

극단 청년단 <생활의 비용>
  • 일자 2023.9.6 ~ 9.10
  • 장소 미아리고개예술극장
  • 마티나 마이옥(Martyna Majok) 번역·연출 정지수 조연출 이슬, 최지혜 출연 김용준, 김은희, 이화정, 황철호 무대감독 한희태 음악감독 김정용 무대디자인 남경식 조명디자인 노명준 음향디자인 이현석 의상디자인 김우성 분장디자인 장경숙 영상디자인 임리원 홍보물디자인 정김소리 홍보마케팅 협동조합고개엔마을 매니, 이다원, 홀연 제작총괄 양정현 제작 극단 청년단 협력 성북구, 성북문화재단 후원 서울시, 서울문화재단, 한국문화예술위원회
  • 관련정보 https://tickets.interpark.com/goods/23011247?tab=2
상상만발극장 <미래의 동물>
  • 일자 2023.9.8 ~ 9.17
  • 장소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
  • 김상훈 연출 박해성 출연 박하늘, 김현, 하지성, 김슬기, 베튤, 전혜인 무대 강지혜 조명 김형연 사운드 카입 의상 홍문기 분장 이지연 영상기술 윤민철 영상기록 삼인칭시점 사진 옥상훈 조연출 조서연 무대감독 이라임 홍보물디자인 박먼지 홍보 전강채 제작PD 이시은 제작 상상만발극장
  • 관련정보 https://theater.arko.or.kr/product/performance/257966
  1. 경기도장애인복지종합지원센터 누림, 경기도 장애인활동지원서비스 실태조사 https://www.ggnurim.or.kr/PageLink.do?link=forward:/cop/bbs/selectBoardList.do?bbsId=B002_main&tempParam1=&menuNo=020000&subMenuNo=020600&thirdMenuN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