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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는 것과 은폐된 것을 질문한다

연극 읽기: 장애의 경험과 관점, 전문성을 바탕으로

정리_연극in 편집부

제246호

2023.11.30

웹진 연극in에서는 장애의 경험과 관점, 전문성을 바탕으로 연극을 이야기하는 자리를 마련합니다. 극장과 연극 접근성에 대한 장애 당사자 좌담을 시작으로, 장애배우가 출연하는 공연, 장애서사를 다루는 공연, 여러 접근성 실천을 하는 공연들을 선정해 함께 이야기하는 장애창작자 좌담, 장애창작자와 비장애 연극 평론가가 서로의 생각을 나누는 장애연극 비평과 관련한 좌담을 연재합니다.

일시:
11월 20일 월요일 오후 4시
장소:
서울연극센터 2층 다목적실
진행:
김지수
참여:
양근애, 임대륜, 임지윤, 하은빈, 홍성훈
참관:
김슬기(웹진 연극in 편집장), 예준미(웹진 연극in 에디터), 김영민(서울연극센터 웹진 연극in 담당자)

장애인문화예술판 <숨 쉬는 바닷말>

지수
다들 잘 지내셨나요. 웹진 연극in에서 ‘장애의 경험과 관점, 전문성을 바탕으로’ 연극을 어떻게 읽어낼 수 있을지 좌담을 연재하고 있는데, 오늘이 마지막이에요. 이렇게 두 번씩이나 같은 분들과 함께 장애연극을 보고 이야기 나눌 기회가 정말 흔치 않잖아요. 기꺼이 함께 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보내주신 글들(새창으로 열기)을 바탕으로 더 이야기 나눠볼 수 있는 질문들을 만들어 보았는데요. 먼저 장애인문화예술판(이하 판)의 <숨 쉬는 바닷말>부터 시작해보겠습니다. 이 작품은 어떤 이야기를 하는 공연이었나요? 장애배우와 비장애 배우들이 협업하는 작품인데 배우들이 각각 어떤 구도 속에서 어떤 배역을 연기하고 있었나요? 그리고 동시대 기후위기에 대한 이야기를 어떻게 보셨는지도 궁금합니다.
성훈
제가 먼저 이야기해볼게요. 공연 포스터에 ‘환경뮤지컬’이라고 적혀있는 것에 혹해서 본 것 같고요. 각각의 캐릭터가 개성이 넘치고 움직임도 달라서 보는 재미가 있었어요. 다만 주제와 그 주제를 풀어가는 이야기가 다소 평면적이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이 살짝 들었어요.
은빈
사실 판뿐만 아니라 장애인 극단, 혹은 장애인이 주축이 되는 공연팀의 작업에서 늘 선악의 구도가 쉽게 만들어진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장애와 관련한 경험이 녹아있는 공연이건 아니건 마찬가지인데요. 정의롭고 좋은 말을 하는 배역이 장애배우에게 돌아가고, 되게 자유롭게 무언가를 가지고 놀 수 있는 ‘빌런’ 배역들은 비장애인 배우들이 맡게 돼요. 오히려 조금 더 입체적이고 도드라지는, 자신의 욕망에 따라 움직이고 당위와 규범으로부터 얽매이지 않는 쪽은 비장애인 배우 쪽이 되고, 그렇다면 뭔가 주객이 전도되는 느낌이 드는 거죠. 스스로 장애인 극단의 작품에서 무엇을 바라게 되는지를 생각해봤는데요. 장애인 당사자가 무언가에 얽매이지 않고 무대 위에서 편안하고 자유로운 모습을 보고 싶은 것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리고 평면적이라고 말씀하신 부분에 대해서, 어느 정도 아동극의 특성상 가져야 하는 단순화의 과정이 있었으리라고 생각해요. 실제로 어린이 관객들이 많이 있었고 그들에게 좀 더 쉽고 문턱이 낮게 다가갈 수 있도록 둥글리거나 깎는 과정이 있었겠지요. 그런데 그 과정에서 무엇이 깎였느냐를 봐야 하는 것 같아요.
<숨 쉬는 바닷말> 공연 사진. 바다쓰레기 역할의 배우가 춤추고 노래한다. 
            폐그물, 비닐, 페트병, 노끈 등 온갖 종류의 쓰레기가 덕지덕지 붙어 있는 검은 의상을 입었다. 
            검은색 그물 소재로 얼굴을 덮었으나, 그물 사이로 웃는 얼굴이 슬며시 드러난다. 오른쪽 팔을 옆으로 쭉 뻗고 있다.
사진제공: 장애인문화예술판 / 촬영: 스튜디오더박스
근애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춰 만드는 과정에서 인간 vs. 바닷속 비인간 해조류, 장애 vs. 비장애, 이런 식으로 다른 존재를 배제하는 문제가 충돌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갈조류인 ‘미역’이 홍조류인 ‘김’을 받아들일 것이냐 말 것이냐에 대해서는 유보적인 태도를 취했다가, 나중에 인간인 ‘아자’를 받아들이고 나서 ‘김’도 받아들일 수 있다고 하잖아요. 이걸 어떻게 봐야 하는지 고민이 됐어요. 장애 내부에서도 다른 장애를 차별하기도 하는데 그런 문제도 생각하게 됐고요.
지윤
저는 공연을 보기 전에 사전 조사를 하는 편이거든요. 그런데 공연에 대한 홍보가 많지 않아서 사전 조사를 거의 하지 못하고 이 공연을 봤어요. 포스터에도 이게 아동극인지, 어떤 아이들을 대상으로 하는지 나와 있지 않았고, 배우들에 대한 정보도 없었고요. 객석의 관객들을 보면서 그제야 어린이 공연이라는 걸 알게 된 거죠. 그런 면에서는, 사전 정보가 있었다면 관객으로서 공연을 좀 더 부드럽게 볼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이 들었고요.
대륜
저도 공연을 보면서 이 작품이 환경뮤지컬이면서 전체 이용가 공연이라는 걸 느낄 수 있었는데요. 저는 만화 노래 같은 거 종종 듣는데 그런 걸 좋아하는 분들은 재밌게 봤을 것 같아요. 물론 사전에 관련 정보가 있었다면 좀 다른 기대를 하고 봤을 거라고 생각하고요. 그리고 미역, 파래, 톳, 김 같은 해조류 배역들을 휠체어 이용하시는 배우분들이 연기하셔서, 이동하는 방식에서의 통일감이나 해조류들끼리의 연대 같은 것도 느껴졌어요. 그러는 한편, ‘김’과의 갈등이 있어서 단순히 해조류 대 인간으로만 나뉘는 게 아니라, 복잡한 상황을 보여줬던 것 같고요.
지수
저는 아동극이라 하더라도 환경과 장애에 관련한 이야기는 좀 더 섬세하게 다룰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했어요. 장애와 기후위기에 대해서는 생각할 것이 너무 많은데요.
은빈
현실의 엄청 많은 환경보호 캠페인에서 기후위기의 결과로서 장애나 질병을 제시한단 말이죠. 지금 여기서 살고 있는 장애인들이 전 인구의 10-15% 정도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못하면 이들(장애인)처럼 된다’는 메시지가 지속적으로 생산되는 거예요. 이 공연이 과연 그러한 메시지와 얼마나 멀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보았어요. 장애인 배우들이 주도하고 있는 공연임에도 ‘건강한 지구를 지켜야 해, 안 그러면 우리는 위험해질 거야’라고 계속해서 말하잖아요. 그 안에서 이미 손상과 훼손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미끄러질 수 있는 거죠. 그래서 장애의 몸을 가진 사람들이 그러한 메시지를 소리 높여 노래할 때 복잡한 심경이 있었어요. 더군다나 지금의 이 비장애중심주의적 사회에서는, 모든 제도가 비장애인에 맞춰져 있기 때문에 장애인들은 더 많은 자원을 쓰게 되고, 그러면 더 많이 환경을 파괴할 수밖에 없잖아요. 단순히 ‘쓰레기 생산하지 마, 탄소 배출하지 마’ 하는 게 장애인들에게는 어떤 의미를 가질까 질문하게 되기도 했어요.
지수
장애배우들의 연기는 어떻게 보셨나요? 많은 분들이 휠체어를 이용하는 네 명의 배우가 나오는 첫 장면이 인상적이었다는 말씀을 해주셨는데요. 저는 판에서 이런 장면들을 잘 만든다고 생각해요. 이전에 한 중증 장애 남성 배우가 전동휠체어 라이트를 켜고 무대에서 엄청난 속도로 도는 장면을 본 적이 있는데, 그때 엄청 대리만족 했던 기억이 납니다. 이번에도 휠체어 움직임이 좋았어요. 그러면서 그 안에 다른 호흡들도 있었지요.
지윤
휠체어 이용하시는 분이 네 분 나오시는데 공연장이 그에 비해서 조금 작은 느낌이어서, 저는 부딪힐까 봐 조마조마하긴 했어요. 물론 연습을 많이 하셨겠지만, 보는 사람 입장에서는 걱정이 된 거죠. 하지만 해조류 배역에 휠체어 바퀴의 부드러운 움직임이 잘 맞았어요. 다만 기술적인 부분인지 역량 차이인지 모르겠는데, 합창하실 때 어떤 목소리가 커서, 혹은 어떤 목소리가 작아서, 그게 합창처럼 느껴지지 않더라고요. 어떻게 하면 그런 것들을 맞출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해보았어요.
그리고 조금 다른 문제인데, 장애인 배우들에 대한 사전 정보가 얼마나 필요할지 고민하게 되더라고요. 관객 입장에서는 배우를 딱 봤을 때 나와 다르거나 처음 보는 특징이 있으면, 배역이 아니라 배우에 더 주목한 채 공연을 보게 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그런 걸 방지하기 위해, 관객들이 공연을 유연하게 볼 수 있도록 사전에 배우에 대한 상세한 정보를 다 알려줘야 하는지, 좀 어려웠어요. 예를 들면, 관객들이 입장할 때 배우들이 미리 무대에 나와서 대화를 한다든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보여줄 수도 있을 것 같고요. 그런 걸 미리 학습하면 공연을 볼 때 배우가 아닌 배역에 금방 빠져들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숨 쉬는 바닷말> 공연 사진. 톳, 미역, 소녀(아자), 엄마, 파래, 김 역할의 배우들이 일렬로 나란히 자리 잡고 노래를 부르고 있다. 
            톳, 미역, 파래, 김 역할의 배우들은 모두 전동휠체어를 타고 있으며, 옷깃과 소매 등에 레이스 프릴이 달린 초록색과 검은색 계열의 의상을 입었다. 
            아자는 흰색 티셔츠에 보라색 멜빵 바지를 입었고, 엄마는 옅은 분홍색 원피스를 입었으며 아자의 팔짱을 끼고 있다. 
            배우들로 가득 찬 무대의 뒷벽에는 흰색과 초록색 커튼이 레이어를 만들고 있으며, 여러 색깔의 화려한 조명이 이들을 비추고 있다.
사진제공: 장애인문화예술판 / 촬영: 스튜디오더박스
대륜
저는 이 공연의 등장인물이 많지 않아서, 시작하면서 바로 배우들을 봐도 캐릭터 하나하나를 알아가는 데 큰 무리는 없었던 것 같아요. 대형 뮤지컬에 인물이 많으면 누가 누구인지 헷갈릴 때도 있잖아요. 그리고 보통 뮤지컬은 큰 공연장에서 하는데, 이 공연에서는 공간이 좁아도 움직임이 유연해 보였어요. 작년에 휠체어 탄 배우들이 큰 무대를 누비는 공연을 본 적이 있는데, <숨 쉬는 바닷말>도 잘 다듬어서 넓은 데서 재공연하면 멋질 것 같아요.
은빈
전동휠체어가 이동할 때의 압도감, 어떤 기동성 같은 것들이 있는데 그런 장점은 큰 무대에서 보다 잘 살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그리고 장애 정보에 대해 사전 고지를 얼마나 해야 할지 고민이 되는데요. 어떤 고지를 했을 때 배우의 다양한 특성이나 배경 중에 장애가 그를 너무 과잉대표하게 될 수 있는 것 같아서요. 하지만 저는 특히나 장애연극, 장애를 활용하는 공연에 장애의 경험이 반영될 때가 많다고 생각해요. 단순히 ‘어떤 몸이 이 배역을 수행한다’가 아니라, ‘이 몸’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수행이나 맥락이 사후적으로 발생한다는 거죠. ‘이 몸’이 할 수 있는 것을 찾아가다가 공연이 이렇게 되었다, 이런 이야기일 수 있는데요. 그런 맥락에서 배우가 가진 개별성과 역사를 알 수 있는 길이 있으면 좋겠는데, 다만 그 고지의 과정은 굉장히 섬세해야 할 것 같아요.
근애
저도 어려운 문제라는 생각이 드네요. 식별되는 장애가 있고 아닌 장애도 있잖아요. 그것을 관객이 얼마나 알아차리느냐의 문제라기보다는 장애배우가 자기를 얼마나 드러내고 싶어 하느냐의 문제일 수 있다고 생각해요. 장애를 대상화하는 건 문제가 있지만, 배우로서 자신을 드러낸다는 의미에서 기꺼이 대상화를 자처하는 경우 그 드러냄은 적극적이고 주체적인 행위일 수 있으니까요. 내가 나의 몸을 통해 뭔가를 이야기하고 싶다면 그 정보가 캐릭터를 이해하는 데 중요해질 수 있겠지요. 하지만 무대에서 연기하는 몸이 장애로만 환원되는 것은 위험하다고 생각합니다.
성훈
저도 만약 사전정보가 주어진다면 관객의 시선이 인물이 아니라 그 인물을 연기하는 장애배우의 몸에 더 꽂힐 것 같아요. 판의 공연은 아닌데 올해 <난, 태수야>라는 작품을 보았거든요. 그 공연에 <숨 쉬는 바닷말> 배우님들이 몇몇 나오셨는데, 도입부에 커다란 천으로 몸 전체를 가리고 대사만 하는 장면들이 있어요. 처음에는 하얀 천에 가려진 몸들이 궁금했지만 나중에는 별로 관심이 가지 않더라고요. 만약에 사전에 장애인 배우에 대한 장애 정보가 주어진다면 저로서는 공연에 몰입하지 못할 것 같긴 한데, 지윤 님 얘기 들어보니까 맞는 것 같기도 하고, 어려운 문제네요.
<숨 쉬는 바닷말> 공연 사진. 김 역할을 맡은 배우가 눈을 감고 노래한다. 
            소매와 어깨에 화려한 주름이 들어간 초록색이 섞인 검은 의상을 입었고, 볼에는 검은색 직사각형 두 개가 나란히 그려져 있다. 
            휠체어 팔걸이와 조이스틱 옆쪽에 놓인 왼손이 주먹을 꼭 쥐고 있다.
사진제공: 장애인문화예술판 / 촬영: 스튜디오더박스
지수
이제 마지막 질문으로 넘어가 볼게요. 장애인 극단에서 공연을 하면서도 배리어프리는 전혀 없었잖아요.
대륜
공연 도중에 불이 반짝일 때가 있었는데 뇌전증 장애인분들께는 확실히 트리거가 될 것 같았어요. 요새는 영화든 연극이든 그런 것들이 있을 때 주의를 주잖아요. 그리고 저도 공연 보러 가면서 자막이나 수어가 있을 줄 알았는데, 없어서 의외라는 생각도 들었어요.
지수
저는 어린이극일수록 배리어프리를 더 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그래야 나중에 ‘자막 보고 싶지 않은 비장애인의 권리를 인정해달라’ 이런 이야기들이 안 나오지 않을까요. 지금 성인 관객들은 예전엔 없었던 것들이 들어오니까 거부감이 드는 걸 텐데요. 어린 시절부터 모두를 위해 그게 당연하다는 걸 경험해야 하는 거죠. 대륜 님이 지금 이야기해주신 것도 너무 중요하고요.
은빈
요즘에는 트리거 워닝, 콘텐츠 워닝도 배리어프리의 확장으로 얘기하는 것 같아요. 어떤 방식으로든 가장 취약한 관객이 객석에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는 걸 상상하자는 맥락에서요. 휠체어를 위해 경사로를 놓는 것처럼, 누군가에게는 접근성의 문제라는 이야기죠. 한편, 제작하는 과정에서 배리어프리가 자꾸 후순위로 밀리기도 하잖아요. ‘초연에서는 못 하지만 재연에서 하자’ 하는 식으로 후일을 기약하게 되고요. 미리 만들어 놓은 공연에 플러스 알파를 하는 것이 아니면 어렵다는 인식이 분명히 있어요. 기획 단계에서부터 배리어프리를 함께 고민하려는 시도가 더 많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국공립 지원사업에서도 처음부터 배리어프리 예산이 따로 지원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지윤
저도 자막과 수어가 없어서 아쉬웠는데요. 공간이 너무 좁아서 자막을 위한 자리를 만들지 못했거나 예산 때문에 수어통역사를 모시지 못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정말 상당한 비용이 들고 연습시간도 맞춰야 하는 일이잖아요. 자막도 PPT로 제작하려면 몇천 페이지가 되는 걸 만들 수 있는 여건이 필요하죠. 아니면 속기사를 섭외해서 리허설을 해야 하고요. 이런 것들이 모두 비용이라, 소극장에서 하는 대부분의 공연들은 예산 때문에 배우 페이를 줄이는 상황까지 부딪히게 돼요.
성훈
아직까지 배리어프리는 ‘후속작업’이라는 인식이 강한 것 같아요. 물론 돈 문제가 공연 제작에 있어서 엄청 중요하다는 걸 알지만, 후속으로 두다 보니 배리어프리는 해도 되고 안 해도 된다는 인식이 생긴 것 같아요. 이건 좀 과한 걱정일 수도 있겠지만, 지금까지 장애인 극단들이 ‘어떻게 보일 것인가’에 대한 문제의식을 발전시켜왔던 반면에, ‘누구에게 말을 걸 것인가’에 대해서는 조금 비중을 적게 두었던 게 아닐까 생각해요.
지수
실제로 비장애인을 관객으로 상정하는 경향이 있기도 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현실적으로 장애인 극단에서 자막을 만들 때 어떤 위험을 감수해야 하기도 해요. 자막이 나오는데 무대에서 배우가 대사를 다르게 하면, 배우에 대한 신뢰도가 떨어지면서 관객들이 배우의 소리를 듣지 않고 자막을 보는 일들이 생기거든요. 굉장히 고민이 되는 부분이에요. 특히나 발달장애인 분들은 대사를 다른 식으로 할 수도 있고, 또 유연하고 자유롭게 대사를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하기도 하니까요. 그것이 어떻게 자막과 만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을 하셨을 거라고 생각해요.
성훈
저도 그 지점에 공감합니다. 부끄러운 얘기지만 어떤 뇌병변 장애인 배우가 등장하는 공연에서, 저도 장면보다는 그 위에 깔리는 자막에 시선이 더 많이 갔거든요.
대륜
우리가 코로나 이후 온라인으로 무언가를 많이 하게 되면서 배리어프리에 대한 고민도 더 깊이 하게 된 것 같아요. 그래서 이전과는 다르게 좋아지고 있는 것들이 있다고 생각하게 되고요. 지난 겨울에 배리어프리 예산을 따로 책정한 지원사업을 봤는데, 계속 그렇게 예산을 배정하면 문화적으로 더 확산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장애인문화예술극회 휠 <생일파티>

지수
그럼 이제 장애인문화예술극회 휠(이하 휠)의 공연 이야기를 시작해보겠습니다. 장애배우의 연기로부터 무엇을 읽어내는가, 하는 질문인데요. 장애배우들은 이 공연에서 어떤 배역을 연기했나요?
은빈
저는 사실 공연을 보면서 낭패감이 너무 많이 들었고, 어떤 상실감마저 느꼈어요. 이런 중요한 장애인 극단의 창단 20주년 공연은 과연 어떠해야 하는지 고민이 되었고요. 무엇보다 장애인 배우들이 너무 조미료처럼 사용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들의 배역을 놓고 생각해 보자면, 대개 취객으로 나오거나 너무 큰 사기를 당한 나머지 심신이 미약해진, 몹시 서툴고 어리숙한 인물로 그려진단 말이죠. 공연이 그런 것들을 통해 웃음을 유발하려고 시도하는 것, 장애를 우습게 보거나 질 낮은 어떤 것으로 상정하지 않으면 결코 촉발되지 않을 종류의 웃음이 객석에서 터져 나오는 것이 저는 당혹스러웠어요. 다른 극장과 공연팀도 아니고 이음센터에서 하는 휠의 공연에서 제가 이런 웃음을 들어야 한다는 것에 대해서…. 장애배우들이 맡은 인물들은 대사도 많지 않고, 나왔다가 금세 들어가는 경우도 있었어요. 장애로 인한 특성이 반영된 발화라는 게 취한 것, 헛소리하는 것으로 포장되고 스며들어 갈 때에는 장애를 감추려 하거나 숨기려 한다는 생각까지 들었어요.
근애
저도 끝나고 굉장히 속상했는데, 그게 상실감이었나 봐요. 마음이 허전하더라고요. 장애를 다루는 방식도 문제였지만 마지막에 모든 걸 다 이해하고 화해하는 이야기가 현실과 너무 멀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는 이번에 두 번의 좌담을 하면서 장애를 재현한다는 건 애초에 가능하지 않은 일일 수 있겠다고 생각하게 됐어요. 연극에서 드라마를 만들고 재현하는 익숙한 문법과는 다른 새로운 방식을 고민하지 않으면, 말 그대로 장애를 연기하게 되거나 장애의 실재, 원본을 가리고 그 앞에 다른 걸 세우는 방식으로 대리할 때 발생하는 오류를 반복하는 것이 아닌가, 이런 생각까지 하게 되더라고요. 의도는 그러하지 않았겠으나, 연기하려는 캐릭터에 근접할수록 고유성이라고 할 수 있는 장애는 계속 뒤로 물러나는 것 같았거든요.
<생일파티> 공연 사진. 취객 역할의 배우가 소파 위에 무릎을 꿇고 앉아 고개를 숙인 채 양손을 모아 용서를 구하고 있다. 
            소파 앞에 벗어둔 구두가 있고, 정장 옷차림은 잔뜩 흐트러진 채다. 그가 용서를 구하는 방향으로 도둑 역할의 배우가 손에 먼지떨이를 들고 있으며, 
            반대쪽에는 민수 역할의 배우가 당황한 표정으로 수동휠체어에 앉아 있다.
사진제공: 장애인문화예술극회 휠
은빈
그렇다면 퍼포먼스나 무용의 경우는 좀 다를까, 생각해 보면 그렇지도 않은 것 같거든요. 분명히 이상적으로 목표로 하는 상태가 있고 거기 도달하기 위해 애쓰는 순간에, 그 목표로 하는 상태에 장애가 없는 이상 장애는 뒤로 밀릴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어요. 최근에 노경애 안무가의 <21° 11'> 공연을 봤는데 좀 고민스럽더라고요. 결국 안무가의 어떤 의도 안에서 장애무용수를 포함한 여러 몸들이 편재해 있었는데요. 의도하지 않았을지 모르겠지만, 객석에서는 이미 숙련된 몸과 그렇지 못한 몸, 잘하는 몸과 서툰 몸의 비교 대조가 일어난다고 느꼈어요. 그리고 비장애 무용수들의 솔로가 지나치게 길게 나온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고요. 어느 순간에는 장애가 차출되는 건 아닌가, 모티프로서는 사용이 되되 종국엔 주인공은 아닌 건가, 장애는 어떤 가능성으로서는 보여질 수 있지만 결국 목적지는 아닌 건가, 하는 의심과 회의를 품기도 했었어요.
다시 <생일파티>로 돌아오자면 저는 이 공연의 소개글이 너무 당혹스러웠는데요. 장애를 도둑질과 비교하면서, ‘장애를 가지고 홀로 세상과 유리되어 머무는 것은 자신의 영혼을 도둑질하는 일’이라고 말하고 있거든요. 그러니까 세상으로 나가지 않는 장애인을 질책하거나 독려해서 이들이 마음을 바꾸면 해결되는 문제처럼 설명하는 거죠. 그 메시지들이 전적으로 비장애인으로 패싱되는 배우들에 의해서 전달된다는 점도 문제적이었고요. 그런데 정작 민수는 방에 틀어박혀 있는 게 아니라 상담을 하고 세상과 소통하면서 적극적으로 자립생활을 영위하고 있잖아요. 공연이 20년 전의 맥락과 지금의 맥락 속에 무엇을 같이 하고 또 무엇을 달리해야 하는지를 포착하지 못한 채로 올라갔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성훈
저는 공연을 볼 당시에는 불편한 지점을 발견하지 못했는데요. 생각하면 할수록 걸리는 지점이 고구마 줄기처럼 나오더라고요. 우선 장애인운동에 살짝 발을 담그고 있는 활동가로서, 저도 20년 동안 변화된 지점이 많다는 것을 알고 있는데, 왜 이 극단은 처음의 이야기를 고집하는지 의아했어요. 저도 민수를 제외한 장애 캐릭터들이 휘발되어버리는 재현에 문제의식을 갖게 되었고요. 제가 봤던 날에 장애청소년들이 정말 많이 왔는데 그분들이 이 공연을 보고 무엇을 느꼈을지 생각하니까 무섭기도 하더라고요.
지윤
저도 다른 분들의 글을 읽어보면서 얘기할 게 많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먼저 캐스팅에 관해 얘기해보자면, 9명의 배우가 나오는데 장애인 배우 6명, 비장애인 배우 3명이 나왔잖아요. 수적으로 그렇게 조화롭게 배우들이 구성된 공연을 보지 못했던 터라 그 점은 좋았고요. 다만 민수를 힘들게 하거나 위협을 가하는 인물들은 장애배우였고, 민수를 도와주는 건 비장애인 배우들이 맡았던 것 같아요. 이 캐스팅에 장애, 비장애 배우들이 섞여 있었다면 이분법적이지 않은 시선으로 다양한 사람들이 민수를 힘들게 하고 도와주는구나, 생각하지 않았을까요. 그리고 취객, 장콜맨, 희정 등의 역할 인물들이 짧은 시간 등장하며 취한 인물이나 어리숙한 인물을 연기하는데, 장애배우는 비장애 배우가 하는 것과 어떻게 다른 방식으로 이 배역을 연기할 수 있을까, 장애배우가 취한 연기를 잘 표현한다는 건 어떤 것일까, 이런 고민이 들더라고요.
<생일파티> 공연 사진. 자신이 사기당한 사연을 상담하기 위해 한 손에 핸드폰을 들고 서 있는 희정 역할의 배우가 
            무대 뒤편 한 단 높은 난간 뒤에 서 있다. 
            앞쪽으로는 민수와 도둑 역할의 배우가 마주 보고 있는데 사진의 초점이 흐려, 그 뒤로 울부짖는 희정의 모습이 도드라진다.
사진제공: 장애인문화예술극회 휠
대륜
민수 역할을 맡았던 배우가 저시력 장애인인 걸 다른 분들의 글을 보고 알았는데요. 저는 공연을 보면서 배우의 다른 장애 여부는 캐치하지 못했어요. 반면 엄마 역할은 남성 배우로 보고 싶었고 그나마 다르게 생각해보자는 마음이었습니다. 여성 배우가 엄마 역할을 했으면, 전통적으로 여성이 돌봄을 전담해왔던 현실이 겹쳤을 것 같아요.
그리고 어떤 속상함도 이해는 가지만, 20년 전 초연한 작품을 재공연한다는 것이 만드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의미가 있었을 것 같거든요. 장콜맨 같은 경우 서울에서 춘천으로 가는 데 어려움을 겪잖아요. 이게 최근에야 바뀌었는데, 그런 것들도 어떤 맥락을 만들어내죠. 제가 장애청소년들과 얘기를 나눠보진 않았지만, 20년 전 공연을 만들었던 사람들과 여전히 동시대를 살아가고 있잖아요. 예전에는 장애 아동을 임신했을 때 낙태를 하고 장애를 가진 사람들은 불임수술을 요구받았던 시절이 있었죠. 장애인으로 태어났으니 홀로 살아야 한다는 사회적 압박 속에 장애 당사자들이 결혼을 한다는 게 의미가 있었을 거예요. 그런데 그런 시절을 겪은 사람들도 동시대를 살아가고 있어서, 감수성이 올드하긴 해도 현실에서 마주치는 부분들을 간과할 수는 없는 것 같습니다. 이를테면 실제로 주변에서 로맨스 스캠을 당한 사람을 봤는데,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쉽게 넘어가기도 해서 피해자 입장에서 보게 되기도 했고요.
근애
저는 엄마 역할을 하신 분이 남성이었기 때문에 돌봄의 문제에 대해서 거리를 둘 수 있었다는 의견에 의문이 생기는데요. 그 인물이 입고 나온 의상이나 가슴을 강조하는 행동 같은 것들이 여성성과 모성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방식이었잖아요. 그렇게 과하게 하지 않아도 무슨 맥락인지 알 수 있었을 텐데요. 또 어떤 말들은 지금, 2023년에는 더 이상 하지 않는다는 공감대가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런 말들을 듣는 게 낯설기도 했고요. 한편으로는 경찰 역할을 맡은 분이 레이스 달린 자주색 내복을 입고 나왔는데, 아주 예전에 희화화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던 퀴어 대상화를 생각나게 해서, 저는 보면서 안절부절못했어요. 현실에 있다고 해서 연극에서 그걸 그대로 재현한다면 폭력이든 혐오든 그것을 재생산하는 것 이상이 될 수 없지 않을까요. 장애를 재현하기 위해 다른 윤리적 문제가 발생하는 것에 대해 한 번 더 고민해야 할 것 같아요. 20년이 지나는 동안 무엇이 바뀌었는지를 밟아나가면서 다른 방식의 ‘생일파티’를 할 수 있지 않았을까 싶어서 아쉬웠어요.
대륜
근애 님이 방금 말씀하신 대로 엄마 역할 배우의 몸짓 등이 여성혐오에 기반한 표현들이라는 게 적확한 용어로 와 닿습니다. 공연에서 느끼신 낭패감 등을 인정하고 수용해서 더 나은 감수성과 고민 등을 지향해나가고 싶습니다.
은빈
연극에 반영된 현실이 지금의 것이 아니라고 할 수는 없으나, 그것을 코드화하는 방식이 더 이상 우리가 따르지 않기로 한 문법들을 따르고 있었던 거죠. 이렇게 하면 관객들이 즐거워한다는 문법을 의심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고, 그것이 어떤 인물들을 배제하면서 가능해지는 코드인지를 간과한 것이 아닐까 싶어요.
지윤
우리가 고전을 다시 보고 각색하는 경우가 많잖아요. 동시대와 안 어울리는 친척 간의 결혼이라든지 일부다처제 같은 것들이 나오더라도, 고전의 힘을 읽고 다시 공연하는 거죠. 그렇다면 <생일파티>는 어떤 의미인지 고민하게 돼요. 20년 전의 시대를 그대로 보여주려고 했던 건지, 지금 이 시대를 보여주려고 했는데 표현이 잘못됐던 건지 좀 애매했고요.
한편으로는 장애인 극단에 장애인 배우는 많은 것 같은데 장애인 스태프는 얼마나 될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는데요. 스태프 중에 한 분이라도 장애인 당사자가 계셨으면 프리 프로덕션 과정에서 어떤 발언을 할 수 있지 않았을까, 지금의 현실을 보면 이 내용으로는 각색이 필요하다는 말도 해주지 않았을까 생각을 해봅니다. 지금 대부분의 단체에 장애인 스태프가 많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제작 환경에 대해서도 고민해봐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생일파티> 공연 사진. 민수와 희정, 엄마와 경찰이 함께 모여 생일파티를 하고 있다. 
            민수 역의 배우는 경찰 제복을 입고 머리에 고깔을 쓴 채 무릎 위에 케이크를 올려 놓았다. 
            엄마 역의 배우는 초록색 원피스에 망사와 리본, 구슬 등으로 만들어진 초록색 머리 장식을 얹었다. 
            경찰 역의 배우는 레이스가 달린 자줏빛의 내복을 입은 채다. 
            그들의 뒤쪽으로 도둑 역할의 배우가 옆쪽을 바라보며 한 손을 쭉 뻗어 반갑게 누군가를 맞이하고 있다.
사진제공: 장애인문화예술극회 휠
지수
이제 마지막 질문으로 넘어가 보겠습니다. 사실 많은 장애인 배우들이 또 다른 장애 배역을 연기하기도 하고, 지난 좌담에서 이에 대해 같이 이야기를 나눈 바가 있습니다. 얼마 전 극단 애인의 백우람 배우님도 <불굴의 왕 리처드 3세>에서 리처드 역을 맡았는데 다른 장애를 부각시키는 연기를 했죠. 저는 휠의 이승규 배우님이 민수 역할을 연기하는 걸 보면서 많은 생각을 했는데요. 장애배우가 다른 장애를 연기한다는 것이, 배우니까 당연히 할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어느 정도 제한이 있어요. 누구는 할 수 있고 누구는 할 수 없는 부분이 존재하고요. 또 장애배우라고 다른 장애를 더 잘 연기할 수 있는 것도 아닌 것 같습니다.
근애
<불굴의 왕 리처드 3세> 같은 경우는, 장애배우로서 가지고 있는 고유성을 충분히 활용해서 캐릭터를 해석할 수 있음에도, 원래 캐릭터를 고정적으로 해석하고 배우에게 그것을 연기하도록 한 거잖아요. 그래서 장애배우가 다른 장애를 연기하는 것이 가능하냐 아니냐가 아니라, 연극이나 공연이 장애를 어떻게 다루고 있는가, 장애를 통해서 무엇을 보여주고 있는가, 라는 질문을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지난 좌담 때 이야기한 것처럼 장애배우의 연기 스펙트럼을 넓히면서도, 그동안 연극에서 해왔던 관습적인 것들을 깨뜨릴 수 있어야 의미가 생기는 거죠.
사실 <불굴의 왕 리처드 3세>는 여러모로 문제가 많았는데, 가령 백우람 배우님이 대사를 할 때만 자막이 나왔거든요. 이런 선택을 하는 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너무 힘들게 공연을 봤습니다. 또 마치 여성 배우들이라면 당연히 <갈매기>의 니나 같은 역을 원한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장애배우들이 가장 선망하는 배역이 ‘리처드 3세’인 것처럼 이야기하는 것도 구태의연한 접근이라고 생각해요. 우리가 장애 재현에 대해 여러 이야기를 했지만, 결국 장애의 고유성을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캐릭터가 장애로 완전히 환원되지 않는 방식을 고안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대륜
저는 장애배우가 연기하든 비장애배우가 연기하든 정신적 장애를 다룬 것들을 많이 접했고, 상대적으로 휠체어 배우가 연기하는 것을 많이 보진 못했거든요. 사실 휠체어를 이용하는 경우 굉장히 가시적인 장애로 생각하기 쉬운데, 이 공연에서 어둠이 깔려 있을 때 그것이 드러나지 않는다든지, 그런 것들이 조금은 신선하게 다가왔어요.
조금 다른 이야기인데, 사람마다 어떤 교차성을 가지고 있잖아요. 그 가운데 여러 취약성, 이를테면 장애, 젠더, 계급 관련된 것들에 대해, 같은 커뮤니티 안에 있는 이들이라도 특정한 다른 부분에 대해서는 잘 모를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저는 서로 다른 집단에 동일한 기대를 하게 되는 경우 실망하고 포기하게 되는 부분이 있더라고요. 그렇다고 감수성을 놓아버리는 것도 속상한 일이고요.
은빈
다른 유형의 장애를 가진 사람이, 대사로 유추해보건대 몸이 굳는 뇌병변장애 인물을 연기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생각했어요. 저한테는 어떤 아쉬움들이 정서적으로 왔는데요. 그 유형의 장애를 연기하기 위해서, 그 배우가 본래 가진 장애는 어떤 방식으로든 감추거나 숨기는 방식으로 연출했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저 배우는 어떤 과정과 마음을 통과해서 이 공연을 하고 있나, 이것이 그에게 어떤 의미를 가지고 어떤 감정을 불러 일으키는 작업이었나, 그런 것들이 궁금해졌습니다. 공연에 다른 장애인 배우들이 출연을 아예 안 했으면 모르겠는데, 분명히 비슷한 유형의 장애를 가진 배우들이 있었으니까요. 결국 이 배우가 민수를 하게 된 것은 긴 대사를 할 수 있고, 어떤 차원에서는 그냥 휠체어에 앉아 있는 비장애인으로 보일 수 있기 때문에 배역을 맡은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하면 아쉬운 마음이 많이 들고요.
성훈
복잡한 생각이 드네요. 저도 <생일파티>처럼 장애인 배우가 단순히 다른 장애 유형을 연기하는 것에 대해서 좋지 않은 평가를 할 수밖에 없고요. 좀 심하게 말해서 민수 역할을 맡으신 승규 배우님이 선택된 이유를 짐작해 보면, 긴 대사를 외울 수 있고 ‘정확한’ 발음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주인공으로 캐스팅되지 않았나 생각해요. 물론 장애인 배우가 다른 장애 유형을 연기할 순 있겠죠. 하지만 그 인물을 연기하기 위해서 본인의 장애 경험을 소거해버리면서, 다른 장애유형을 제대로 이해하고 연기하기란 어려울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이 공연을 보고 나서, 보이는 것과 은폐된 것은 무엇일지에 대해 생각했어요.
지윤
저는 배우로 활동하기도 하니까, 혼자 좀 심각한 고민을 해봤는데요. 손에 장애가 있는 제가 시각장애, 혹은 다른 장애를 가진 캐릭터를 연기할 수 없는지 생각하게 되는 거죠. 그러면 배우로서 한편으론 도전할 수 있는 캐릭터 범위가 줄어들 수도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요. 배우는 표현을 잘 해내야 하고 그것을 드러내는 직업이잖아요. 정말 유명한 배우들은 그 배역을 만들기 위해서 몸무게를 변화시키거나 캐릭터를 알기 위해 그렇게 살아보고 공부하는 과정들을 거친다고 하잖아요. 직업적, 신체적 특성에 대해 다른 누군가를 연기한다는 건 배우가 할 수 있는 일이고, 자신이 아닌 다른 삶을 산다는 것이 바로 배우의 일이니까요. 제가 수어를 한다거나 손을 많이 사용하는 일은 못 할 수도 있지만, 손이 아닌 부분에 장애는 없으니 다른 장애 유형을 연기하는 일에도 도전해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이 많아져요. 다른 장애를 연기한다는 것이 위험한 도전일 수 있는데, 그래서 한편으로는 연출가와 프로덕션이 이걸 어떻게 보여주느냐가 관건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생일파티> 공연 사진. 소파와 협탁, 책장 등으로 구성된 실내 공간. 
            소파 앞 바닥에 카펫이 깔려 있고, 얼굴엔 빨간 복면을 쓴 채 위아래로 검은색 의상을 입은 도둑 역할의 배우가 서 있다. 
            그의 바로 옆에는 빈 수동휠체어가 놓여 있고, 휠체어로부터 몇 발짝 떨어진 곳에 민수 역할의 배우가 몸을 잔뜩 웅크린 채 
            모로 누워 고개를 들어 무언가 이야기하고 있다.
사진제공: 장애인문화예술극회 휠

종합토론

지수
이제 종합토론의 마지막 이슈로 넘어가 볼게요. 얼마 전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이하 장문원)의 모두예술극장이 문을 열었지요. 지하철을 타니 충정로역에서 방송이 나오더라고요. 모두예술극장으로 가려면 몇 번 출구로 나가라고요. 그런데 그 출입구로는 휠체어 접근이 안 되거든요(웃음). 어쨌든 극장에서 여러 개관 공연들이 올라가고 다양한 강연과 워크숍들이 진행되었는데요.
근애
모두예술극장 개관 소식을 듣고 저도 기대가 컸어요. 지금까지 나온 공연을 다 챙겨봤고 이번 모두예술주간 강연도 거의 다 참여했어요. 장애예술 표준 극장을 표방하는 극장이 생긴 것은 환영할 일인데 생각이 좀 많아지긴 하더라고요. 모두예술극장이 장애인 예술가를 위한 극장인지 장애인 관객을 위한 극장인지 혼란이 오기도 했고요. 예를 들면 휠체어석이 객석 맨 앞줄에 마련되어 있는데요. 그러면 휠체어 이용자가 비장애인 동행인과 함께 앉기 어렵잖아요. 휠체어석도 다른 좌석들과 같이 선택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여전히 외따로 떨어져 있는 게 의아했어요. 또 모두예술극장이 장애예술을 담당한다고 생각해서 지금 막 활성화 되고 있는 장애예술의 실천들이 그쪽으로 다 쏠리게 되는 것은 아닐까 우려가 되기도 하고요. 새로운 시설과 제도를 만들었을 때 그 시설만의 특성을 예외적인 것으로 만들거나 고립시킬 수 있다는 점을 생각하게 되니 마음이 복잡했습니다. 모두예술극장은 사실 어디에나 있어야 하니까요.
그리고 좀 다른 맥락이지만 모두예술주간에 한국의 장애예술가와 학자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프로그램이 없어서 아쉬웠어요. 해외 학자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은 유익하기도 했지만, 더불어 한국의 사례들도 듣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지난 몇 년 동안 한국의 현장에서도 장애예술에 대해 많은 노하우와 이야기들이 쌓여 왔는데, 그런 것들을 같이 나누는 시간은 언제 가질 수 있나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지수
실제로 개관 이후 수많은 프로그램이 진행되면서 많은 분들이 모두예술극장을 찾으셨죠. 그런데 경험하셨겠지만, 휠이나 판의 공연에는 관객이 그리 많지 않은 날들도 있었어요. 그리고 현장에서 꾸준히 활동하고 있는 한국팀은 개관 프로그램에 하나도 초대받지 못했지요.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인데 정작 장애예술가들은 다른 현장에 있으니 거기에선 어떤 분들이 예술을 하고 있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지윤
저는 강연과 워크숍 하나를 다녀왔는데, 한번은 차를 가지고 갔어요. 그런데 두 시간 동안 진행되는 워크숍이었거든요. 주차가 무료가 아닌데, 주차 할인도 딱 두 시간밖에 안 되는 거예요. 우리가 워크숍에 가면 미리 가서 준비도 하고 끝나고 나서도 더 머무르면서 이야기를 나누잖아요. 공지에는 프로그램 참여자는 2시간에 3천 원, 이후 5분 초과 시 5백 원으로 나와 있었거든요. 그렇다고 추가 복지할인이 되는 것도 아니었어요. 모두예술극장은 공공기관인데, 그런 것들이 좀 아쉬웠어요.
그리고 워크숍에는 장애예술가들, 장애 당사자들이 많이 참여하지 않았는데요. 비장애인들에게 장애예술가와 함께 해야 하고, 그러려면 이런 과정이 필요하다, 교육을 받아야 한다는 것을 알려주려는 목적으로 만들어진 것 같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습니다. 장애인 단체나 장애인 예술가들을 더 많이 초대하고 더 널리 홍보했다면, 서로 만나고 알아가는 시간이 되지 않았을까 싶었어요.
성훈
저는 올해에는 챙겨보지 못해서 별로 드릴 말씀이 없긴 한데요. 그동안 해왔던 ‘무장애예술주간’을 상기해보면 장문원의 지향점이 너무 해외예술 쪽으로 쏠려 있지 않나, 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만약 우리가 해외예술을 ‘따라 한다면’ 그것을 장애예술로서의 성취라고 봐야 하는지 의문이 들기도 했고요. 이제는 우리가 어떤 작업들을 아카이빙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할 때가 된 것 같습니다.
대륜
저는 지금 서울 강서구에서 하는 마을연극제 공연팀에서 하우스매니저로 일하고 있는데요. 시기가 겹쳐서 이번엔 다른 프로그램은 많이 못 참여하고 공연을 하나 보려고 예매해뒀어요. 이전의 프로그램들을 떠올려보면, 그래도 장문원의 작품들이 배리어프리에도 많은 신경을 쓰는 것 같아요. 예를 들면 언젠가 터치투어를 체험해볼 수 있었는데, 저한테는 재미의 한 부분이었지만 시각장애인분들에게는 필수적으로 필요한 것들이잖아요. 하지만 마을연극제에 참여해 본 입장으로는 서울 충정로에만 연극이 몰리면 곤란할 것 같고요.
얼마 전에 시각장애인 친구와 함께 시각장애를 가진 배우가 출연하는 공연을 봤는데요. 사실 그 친구가 없었다면 저는 공연에 대한 정보도 몰랐을 거예요. 그래도 장문원에서 하는 프로그램들은 홍보가 많이 되는 편인데, 다른 것들은 모르고 넘어가는 경우가 많아요. 온라인 이음에서는 신청하면 확인하고 소식을 올려주는 창구가 있긴 있죠. 그런데 그렇게 정보를 전달하기 힘든 경우도 있을 수 있잖아요. 그래서 더 아카이빙에 한계가 있다는 생각도 들어요.
은빈
‘모두예술’ 혹은 ‘무장애예술’이라는 이름을 보면서 ‘모두’, ‘무장애’ 같은 말들이 마음에 걸렸어요. 왜 장애예술이라고 안 하는 거지? 포커스는 장애에 있어야 하는 게 아닌가? 장애가 교묘하게 삭제되는 느낌이 들어서 늘 이름에 의문을 가지고 있었고요. 무엇보다 장애예술의 기획자를 장문원 같은 기관에서 잘 육성해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홍보가 안 되고 모객이 되지 않아서 관객층을 확장할 수 없는 것이 장애예술에서도 한계로 작용하는 것 같아서요. 모두예술극장 개관 홍보물에서 라인업을 확인했는데 분명히 있을 법한 팀들이 없다는 느낌을 받았거든요. 장애예술에 대한 깊은 이해를 가진 기획자가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었으면, 이 행사의 라인업도 달라질 수 있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이 들기도 했고요.
한편으로는 해외예술을 들여오는 것뿐만 아니라 국내의 장애예술을 해외에 내보이는 시도도 많이 이루어져야 하지 않나 싶어요. 해외진출사업이 지금도 있긴 하지만, 개별 극단이 준비하기 어렵거나 캐치할 수 없는 기획의 영역이 분명히 있잖아요. 그래서 좋은 기획자가 많은 장애예술 팀에서 활동하면 여러모로 수월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아카이빙 또한 기획의 영역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고요.
지수
네, 오늘 많은 이야기 나눠주셔서 감사드립니다. 한 달이 넘는 시간 동안 이 좌담을 위해 마음에 담아주시고 생각해주시고, 또 글도 써주시고 좌담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가 나눈 이야기들이 현장과 담론이 함께 성장하는 계기가 되길 기대하겠습니다. 그럼 또 공연장에서 뵐게요. 수고하셨습니다.
장애인문화예술판 <숨 쉬는 바닷말>
  • 일자 2023.10.26 ~ 10.30
  • 장소 성북마을극장
  • 연출 최윤, 좌동엽 출연 금민정, 김미란, 김진옥, 박미용, 임일주, 주은아 기획 백시현 극작 좌동엽 각색 서진희 음악 김소원 안무 임유진 무대 무밍(황무초) 의상 박소영 조명 서진희 음향 최윤 스탭 이승혜
  • 관련정보 http://www.artpan.net/notice/?uid=298&mod=document
장애인문화예술극회 휠 <Again 2003 - 생일파티>
  • 일자 2023.11.10 ~ 11.12
  • 장소 대학로 이음아트홀
  • 제작프로듀서 송정아 윤정환 연출 최문주 출연 이승규, 임영란, 이호철, 정유미, 조아해, 호종민, 이정현, 안희정, 박찬용 음악 홍종화 안무 권기중 무대 강제권 조명 박성민 음향 최윤정 무대감독 오현우 의상/소품 주안(박상윤) 분장 이훈경 수어통역 황선희 영상 정해린 음향장비 유니콘 사운드 진행 오수희 홍보디자인 황유나, 차세령(김혜영) 기획/홍보 이진희, 정조준, 전소영, 전세환 주최 장애인문화예술극회 휠 후원 문화체육관광부, 장애인문화예술원, 은민S&D, 창작집단 문, 유니콘 사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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