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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근성에 대한 질문과 답변

부록1. 장애의 경험과 관점, 전문성을 바탕으로

정리_연극in 편집부

제247호

2023.12.07

웹진 연극in에서는 2023년 하반기, 총 다섯 차례에 걸쳐 ‘장애의 경험과 관점, 전문성을 바탕으로’ 어떻게 연극을 읽어낼 수 있을지, 다양한 분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는 연속 좌담을 기획했습니다. 이 기획을 마무리하면서 접근성과 관련한 두 개의 부록 기사를 준비했는데요. 그 첫 번째 기사를 위해, 웹진 독자분들께 극장을 찾고 연극을 만들면서 접근성 실천에 대해 가졌던 궁금증을 보내주십사 요청드렸습니다. 참여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 인사를 전하며, 그간 좌담에 함께 해 주셨던 장애 창작자 다섯 분의 답변을 공유합니다. 언제 어떤 상황에서든 정답일 수 있는 매뉴얼은 없겠지만, 웹진 연극in도 모두를 위해 열린 환경을 만들기 위해 함께 고민해 나가겠습니다.

* 다음의 각 질문을 클릭하시면 필자들의 답변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독자 질문 1. 배리어프리라는 단어 자체에 대한 고민이 있어요. 모두가 동의할 수 있는 단어란 없겠지만, 그래도 배리어프리보다는 더 좋은 단어가 없을까요? 무장애, 배리어프리… 다른 단어로 대체하면 소통이 잘 되지 않으니 약간의 불편함을 가지고 사용하고 있는데요. 저와 같은 고민을 하셨던 분들은 어떻게 단어를 선택해서 사용하시는지 궁금해요.

독자 질문 2. 배리어프리 자막을 보고 싶지 않은 비장애인을 위한 공연 날도 필요하지 않을까요?

독자 질문 3. 장애예술인과 비장애예술인이 함께 협업하는 창작 작업에서의 미학적 접근성은 무엇이라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현재 많은 연극에서 시도 혹은 제공하고 있는 관객을 대상으로 한 배리어프리 서비스, 접근성은 향유 개념에 가까운 것 같습니다. 장애예술인과 비장애예술인이 함께 협업하는 창작 작업에서의 미학적 접근성은 무엇이며 어떤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독자 질문 4. 기존에 접근성으로 불리는 것들(수어통역 문자통역 등)의 영역을 넘어서 공연 환경에 맞춰 그 공연만의 접근성을 만들면 어떨까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런 생각이 접근성을 챙기기 어려운 현실에 굴복한 쉬운 생각일까 고민하게 됩니다. 다른 사람의 생각이 궁금합니다.

독자 질문 5. 열악한 소극장 환경, 크지 않은 예산액으로도 현실적으로 가능한가요? 또 접근성 매니저와 상의하고 싶고, 그들을 소개받고 싶으면 어떤 루트를 통하면 되나요. 그들과 컨택하는 방법, 만나서 협의할 수 있는 기초적인 내용 정보 등을 알고 싶습니다.

편집부 공통 질문 6. 공연과 극장을 오가시면서 가장 접근성이 좋았던 경험을 공유해주세요. 구체적인 접근성의 방법론, 의사소통 방식, 당시의 분위기나 감정 등 내용은 자유롭게 구성해주셔도 좋습니다.

* 답변에 참여해주신 필자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김지수
전동휠체어를 사용하는 지체 장애인입니다. 장애인 극단 애인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장애 연극과 장애 배우의 연기에 대해 고민하고 있고 함께 살아가는 삶에 대해 질문하는 대본을 쓰고 있습니다.
auleala@daum.net

김시락
이야기를 좋아하는 다원 창작자입니다. 주요 참여 프로젝트로는 2021~2022 국립극단 [창작공감: 연출] <커뮤니티 대소동> 출연, 2023 댄스필름 <함께 구르는 기술> 출연, 2022~2023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 <어둠 속에, 풍경> 참여 등이 있습니다. 기획한 프로젝트로는 2023 서울문화재단 ‘장애예술창작지원사업’ 선정 전시 <동시접속>과 2023~2024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 ‘신기술기반 장애예술 창작실험실’ 선정, <들리는 춤> 진행 예정 등이 있습니다.
qpseh0113@naver.com

이성수
저시력 시각장애 연극인. 2015년 1월 배리어프리 버전 뮤직드라마 <당신만이>를 통해 연극을 시작했다. 이후 장애인 극단 다빈나오와 장애인문화예술판을 거치며 꾸준히 공연 활동을 이어오고 있고, 2016년 안은미컴퍼니와 함께했던 퍼포먼스 공연 <안심댄스>는 이듬해인 2017년 유럽 투어공연을 하기도 했다. 0set프로젝트, 쿵짝프로젝트, 래빗홀씨어터 등과 협업했으며, 최근에는 국립극단 [창작공감: 연출]에서 다큐 연극 <소극장판타지>에 출연했다.
hansole11@naver.com

임지윤
‘즐기며 후회 없이 살자’의 좌우명으로 살아가고 있는 연극쟁이.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예술경영을 전공하고, 연출을 부전공하였다. 여성, 장애, 퀴어, 입양 등의 키워드로 대한민국에서 ‘잘’ 살아가기 위해 매일 노력 중이다. 논문 「장애 관람객을 위한 배리어프리 공연에 관한 연구; 연극·뮤지컬 중심으로」, 연극 2020 <임지윤의 하루> 작·연출·출연, 2015 <또 다른 시간> 작·연출, 2015 <하늘이 붉었던 날> 총감독.
https://freerjy.imweb.me/

해랑
관심사가 많은 사람. 잔잔하게 다양한 것들을 한다. 농인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돌아다니고 있다. <2023 SPAF>, <모두예술주간 2023>, <이런 밤, 들 가운데서> 등에서 접근성 모니터링을 하였다.
deafjam66@gmail.com

독자 질문 1
배리어프리라는 단어 자체에 대한 고민이 있어요. 모두가 동의할 수 있는 단어란 없겠지만, 그래도 배리어프리보다는 더 좋은 단어가 없을까요? 무장애, 배리어프리… 다른 단어로 대체하면 소통이 잘 되지 않으니 약간의 불편함을 가지고 사용하고 있는데요. 저와 같은 고민을 하셨던 분들은 어떻게 단어를 선택해서 사용하시는지 궁금해요.

“배리어프리라는 말은 홍보 시에는 많이 듣지만 시각장애인 지인들과 얘기하다 보면 거의 쓰는 일이 없는 것 같아요. 화면해설 영화를 본다고 하거나 연극을 보러 간다고 했을 때 ‘그건 음성해설 있는 거야?’라고 물어보는 식으로 필요한 접근성을 붙여서 얘기하는 경우가 많은 듯 싶어요. 저만 느끼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배리어프리나 무장애라고 하면 제공할 수 있는 온갖 접근성을 모두 제공한다는 느낌이 들어요. 그래서 제가 쓰기에는 굉장히 부담스럽고 듣기에도 다소 거창하게 느껴질 때가 있어요. 물론 모든 접근성이 제공되면 좋겠지만 현재로서는 부분적인 접근성을 제공하는 공연도 많은 만큼 배리어프리라는 말을 널리 사용하기에 한계가 있다고 생각해요. 반면 접근성 공연이라고 하면 일부 접근성을 제공하는 경우, 모든 종류의 접근성을 제공하는 경우 두 가지 모두로 해석될 수 있는 것 같아요.
더 적확한 의미 전달을 위해서 필요할 수도 있지만 지나치게 영어를 많이 사용하거나 대체 단어로 영어를 고집하는 것도 주의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저는 위스퍼링의 뜻도 최근에야 알았거든요. 낯설고 어려운 용어가 해당 접근성 내용을 이해하는 데 장벽이 되어서는 곤란하지 않을까요. 그래서 배리어프리보다는 무장애라는 표현에 손을 들어주고 싶어요.” - 김시락

“‘배리어프리 가게’, ‘배리어프리 연극’ 등 이제는 ‘배리어프리’라는 단어가 전보다 많이 노출되고 있습니다. 배리어프리가 무엇인지 위키백과에 검색해보면 이렇게 나옵니다. ‘배리어프리(barrier-free)는 장애인 및 고령자, 임산부 등의 사회적 약자들의 사회 생활에 지장이 되는 물리적인 장애물이나 심리적인 장벽을 없애기 위해 실시하는 운동 및 시책을 말한다. 일반적으로 장애인의 시설 이용에 장애가 되는 장벽을 없애는 뜻으로 사용되고 있다.’ 문장을 읽어보면 장벽의 내용이 물리적인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물리적인 문턱’이라는 의미가 무겁게 다가옵니다. 계단을 없애고, 엘리베이터를 설치하는 것으로 사람들의 장벽이 과연 사라질 수 있는가는 참으로 의문입니다. 물리적인 것이 해소되어도 심리적인 장벽은 여전히 존재합니다. 휠체어가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이지만, 발달장애인은 들어갈 수 없기도 합니다. 물리적으로 장벽을 제거한다고 해서 모든 배리어가 사라지지는 않습니다. 타인으로부터 배제당하고 차별당하는 것도 일종의 배리어일 수도 있습니다. 이 말은 계단, 엘리베이터만 배리어라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죠.
최근에는 ‘무장애’라는 단어를 심심찮지 않게 봅니다. 전에는 사용하지 않던 단어였는데 언제부턴가 ‘무장애 여행’, ‘무장애 연극’이라는 말이 보이게 됐습니다. 배리어프리를 번역하면 무장애가 나와서 사용하는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 ‘무장애’라는 말을 선호하지 않습니다. 처음에는 ‘무장애’라는 단어가 좋게 느껴졌습니다. 장애와 장벽을 허물고 같은 위치상에 있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지인들과 대화를 해본 결과 결코 긍정적인 단어가 아님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장애는 분명히 존재합니다. 장애 자체를 ‘없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장애가 없다고 하는 순간, 정체성이 부정되고 존재가 지워집니다. 마치 거리에 장애인이 한 명도 보이지 않는 모습이 떠오릅니다. 북한의 수도에는 장애인이 없다고 합니다. 지상낙원에는 불구자가 없다는 것이 이유입니다. 무장애라는 단어가 저에게는 그렇게 느껴집니다. 분명 장애가 있는 사람은 존재하고, 그들은 집이나 시설이나 어떠한 공간에만 있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무장애가 배리어프리의 대체 단어로 적절한지는 의문입니다.
세 번째로 배리어프리 대안으로 ‘배리어컨셔스(barrier-conscious)1)’라는 단어가 등장했습니다. 배리어컨셔스라는 단어가 있기는 하지만 해외에서도 많이 쓰이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또한 단어가 사용되는 걸 보면 그 목적이 동일하지는 않은 것 같아 배리어컨셔스가 배리어프리보다 더 좋은 단어라고 확정 짓기는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상황에 따라서 배리어프리보다 더 좋은 단어라고 느낄 수는 있겠지만 대체될 수 있는 단어는 아닌 것 같습니다. 계속해서 더 좋은 단어가 무엇일지 고민하는 것이 필요하겠습니다. 저도 같이 생각해보겠습니다.” - 해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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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 질문 2
배리어프리 자막을 보고 싶지 않은 비장애인을 위한 공연 날도 필요하지 않을까요?

“자막이 있는 공연은 자막 또한 공연의 중요한 구성 요소라고 생각합니다. 배우의 몸과 말, 빛과 조명, 음향과 음악, 무대장치와 소품과 같이 무대 위에서 일어나는 모든 소리를 글자로 나타내는 것이 자막이니까요. 공연을 올릴 때 음향이 없는 날의 공연, 조명이 없는 날의 공연, 배우가 없는 날의 공연을 상연할 수 없듯이 자막이 있는 공연에서 자막을 뺀다는 것은 미완성의 작품을 선보이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특별히 자막이 없는 미완성의 작품을 보고 싶은 관객이 계시다면 이야말로 자막을 보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을 관객 스스로 찾아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 김지수

“최근에 연극을 보고 왔습니다. 제가 관람한 날은 관객과의 대화가 있는 날이었습니다. 여러 질문 중 마지막 질문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내용을 다듬어서 적어 보면 이렇습니다. ‘시각장애인과 청각장애인을 동시에 만족시키는 것은 너무 어려운 일이 아닌가. 한글자막이 있는 것이 개인적으로 시선을 어지럽혔다. 과연 이런 연극이 괜찮은지 모르겠다. 한글자막과 음성해설이 없는 비장애인을 위한 연극도 만들어달라’. 이에 대한 연출님의 답변이 좋았습니다. ‘청각장애인과 시각장애인을 모두 만족시키면서 거기에 비장애인까지 만족시킬 수 있는 공연은 없다’. 배리어프리 자막을 보고 싶지 않다는 것은 결국 나는 그들을 내 삶에서 지워버리고 싶다는 말과 다름 없다고 생각합니다. 참으로 ‘있는 자의 배부른 소리’입니다. 배리어가 있는 사람은 배리어프리 연극을 보면서도 배리어를 느낍니다. 완벽한 배리어프리 연극은 만들기 어렵고 창작자들은 배리어를 최소한으로 줄이기 위한 노력을 하면서 공연을 올립니다. 일상생활에서는 각자 나름의 배리어가 있겠지만 그럼에도 연극에서 배리어를 느끼지 않는 사람들이 다수입니다. 한글자막, 수어통역, 음성해설이 없다면 연극이 아주 깔끔하죠. 내가 불편함을 느꼈다고 해서 그게 없는 다른 버전을 만들어야 할 의무는 없습니다.” - 해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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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 질문 3
장애예술인과 비장애예술인이 함께 협업하는 창작 작업에서의 미학적 접근성은 무엇이라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현재 많은 연극에서 시도 혹은 제공하고 있는 관객을 대상으로 한 배리어프리 서비스, 접근성은 향유 개념에 가까운 것 같습니다. 장애예술인과 비장애예술인이 함께 협업하는 창작 작업에서의 미학적 접근성은 무엇이며 어떤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우선 창작 과정에 함께하기 위해서는 관객들에게 제공되는 정도의 접근성 제공은 기본적으로 필요하겠죠. 한 걸음 더 나아가 진정한 의미의 협업이 되려면 서로를 이해하기 위한 시간을 충분히 가질 필요가 있어요. 타인에 대한 수용성을 높이는 것이죠. 처음에 서로에게 기대한 역할과 역량 사이에 어느 쪽으로든 간극이 있을 수 있는데 이 간극을 좁히고 안전한 창작 환경 속에서 원활하게 소통하기 위해 필요한 과정이에요. 더 나아가 다양한 시도와 실험, 아이디어로도 이어질 수 있죠.
이러한 새로운 발견은 상호적이에요. 비장애인 창작자에게 장애인 창작자의 몸을 쓰는 방식, 감각을 받아들이고 처리하는 방식이 새롭듯 그 반대도 마찬가지이고 장애인 창작자 간에도 똑같아요. 서로의 다름이 불편함이 아니라 창작의 동력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이죠. 접근성의 미학이라고도 말할 수 있을 것 같네요.” - 김시락

“내가 생각하는 가장 이상적인 작업 현장은 장애-비장애인 할 것 없이 모두가 똑같이 성취감을 느끼고 자긍심을 가질 수 있는 작업 현장이다. 그런데 나는 주로 비용과 시간에 쫓기는 작은 프로덕션에서 작업하다 보니 안타깝게도 그렇지 못할 때가 많았다. 소규모 프로덕션에서는 한가지 역할만 하는 것이 아니라 동시에 여러 가지 일을 해야 하는 경우도 많고 예측불허의 상황도 많은데 시각장애가 있는 나로서는 여러 상황에 순발력 있게 대처하며 일을 거들기는커녕 시시각각 변하는 상황을 제대로 파악조차 못 하고 우두커니 있어야만 할 때가 많기 때문이다.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는데 작은 힘조차 보태지 못하고 나의 제약을 재확인하는 순간에 느끼는 자괴감과 동료들에 대한 미안함은 말로 설명하기 어렵다. 이런 상태는 공연이 끝난 후에도 지속된다. 누군가는 고된 노동의 대가로 찬사와 성취감을 얻지만, 나는 무기력함을 떨치지 못하는 것이다. 이런 마음은 타인이 쉽게 공감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외로움이 뒤따른다. 그리고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들이 이어진다. 인정의 욕구는 인간의 본성 중에 하나라는데 나에겐 사치인 걸까? 어떻게 하면 그런 상황이 반복되지 않을 수 있을까? 나 또한 성취감과 자긍심을 맛보고 싶다. 한계를 재확인하는 것 말고 가능성을 새롭게 발견하고 싶다. 그러기 위해선 무엇이 필요할까? 나는 고민 끝에 우선 속도의 조절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대부분의 작업 과정이 능률과 효율을 중시하며 급하게 진행되다 보니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해서 어리둥절할 때가 많은데, 모두가 변화하는 상황과 흐름을 이해할 수 있도록 천천히 천천히 진행되는 작업 과정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능률과 효율보다는 비효율성과 느림의 아름다움을 실천하는 작업 현장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물론 지금의 환경에서는 쉽지 않다. 그래서 나는 동료들에게 조금씩 조금씩 가치관을 변화하자고 이야기한다. 나의 이야기를 귀담아듣는 사람도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다. 그러나 이것은 서두른다고 될 일도 아니며, 이 역시 느리고 오랜 시간이 필요한 일이기에 평소 조금씩 조금씩 동료들을 세뇌하듯 말하고 다닌다. 서두르지 말자고. 천천히 가자고. 서두르다가 사고가 나기도 하고 누군가가 소외되기도 한다고. 우리 모두 느림과 비효율성의 아름다움을 추구하자고.” - 이성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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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과 극장에서 제공하는 접근성 내용을 표시하기 위해 사용하는 쉬운 이미지들을 모아놓았다. 
            수어통역, 문자통역, 음성해설, 한글 자막, 대본 제공, 쉬운 내용, 휠체어 접근, 터치투어, 안내 보행, 릴렉스드 퍼포먼스에 해당하는 이미지들이 있다.
* 웹진 연극in의 [달력] 코너에서 사용하는 접근성 안내 이미지들로,
필자들의 답변과는 직접적인 상관이 없습니다.

독자 질문 4
기존에 접근성으로 불리는 것들(수어통역 문자통역 등)의 영역을 넘어서 공연 환경에 맞춰 그 공연만의 접근성을 만들면 어떨까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런 생각이 접근성을 챙기기 어려운 현실에 굴복한 쉬운 생각일까 고민하게 됩니다. 다른 사람의 생각이 궁금합니다.

“그 공연만의 접근성을 고민하신다는 말은 어떤 의미인지 이해하기 어려운데요. 위스퍼링 통역이나 폐쇄형 자막이나 대본 제공, 혹은 휠체어 관객이 일반 객석에 앉을 수 있도록 지원하는 등의 접근성을 말씀하시는 걸까요? 배리어프리가 창작자에게 영감을 안겨주는 계기가 될 수도 있겠지만 수어통역이나 문자통역은 청각장애인과 농인에게는 제1의 언어입니다. 수어통역이나 자막, 음성해설이 있고 더 나아가 그 공연만의 특별한 접근성이 있다면 저도 경험해 보고 싶은데요. 그것이 아닌 개별적이고, 단편적인 접근성이라면 또 다른 차별이나 배제의 상황이 될 위험도 있겠지요. 공연 예술의 목적이 불특정 다수의 관객을 만나는 일이라면 그 불특정 다수에 분명 여러 신체적·정신적인 특징을 갖고 있는 관객이 있고, 그렇다면 할 수 있는 만큼 기본적인 접근성을 마련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려운 현실의 문제를 깊이 이해합니다만 기본을 지켜가는 마음으로 접근성을 실천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 김지수

“보통 공연 프로덕션은 그 공연만의 관객 타깃을 잡는데요, 예를 들어 어린이·청소년·중장년층 등이나 가족·커플·부자·모녀 등처럼 공연의 성격에 맞게 다양하게 타깃을 잡을 수 있습니다. 그 후 그 타깃에 맞게 홍보도 하고 관객 맞을 준비를 하는데요. 하지만 모든 공연이 다양한 장애 유형이나 공연장 접근성에 취약한 관람객을 대비해서 모든 준비를 갖출 수 있는 여건을 만들기엔 쉽지 않습니다.
현재 크게는 시각장애 관람객을 위한 음성해설, 점자 팜플렛, 큰 글자 팜플렛 등이 있고, 지체장애 관람객을 위한 휠체어석, 엘리베이터, 경사로 등이 있고, 청각장애 관람객을 위한 자막통역, 수어통역 등이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엔 15가지의 장애 유형이 있는데요, 나머지 12가지에 대한 접근성은 아직 잘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추가 장애 유형의 배리어프리에 대해 제 논문2)을 통해 간단히 말씀드리면, 언어장애와 뇌병변장애 관람객은 그들만의 속도가 있기 때문에 그들의 말과 보행속도를 기다려줘야 합니다. 그리고 지적장애와 자폐성장애 관람객은 공연 전에 반복적인 사전 설명이 필요할 수도 있습니다. 정신 장애 관람객이 섭취하는 정신과 약물은 갈증을 유발하기 쉽기에 음료 마실 환경을 제공해야 하며, 신장장애 관람객은 투석하는 팔목이나 복막이 약하기 때문에 세게 잡거나 밀치면 안 됩니다. 심장장애 관람객은 쉽게 깜짝 놀라기에 해당 장면이 있다면 사전에 미리 공지를 해야 하고, 호흡기장애와 안면장애 관람객은 건조한 환경이나 자극적인 환경에 예민하기에 극장의 습도와 온도를 수시로 확인해야 합니다. 간장애 관람객은 갑자기 황달 증상이 발생할 수 있고, 장루·요루장애 관람객은 배변·배뇨 기능이 어렵기에 출입문을 수시 개방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뇌전증장애 관람객은 수시로 발작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높은 위치 좌석이나 위험한 기계 근처엔 배치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각 장애 유형별로 간단히 설명한 것이지만, 현실적으로 이 모든 것을 대비하며 공연을 제작할 수 있는 공연팀은 거의 없을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특정 장애 유형만 타깃으로 잡아서 그 유형만을 위한 준비를 하게 되면, 다른 장애 유형의 관극 기회를 앗아가 버리는 경우가 될 수도 있어 사실 모두를 위한 공연을 준비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부분입니다.
만약 공연팀에서 접근성에 관한 기술적, 예산적 여건이 주어지지 않는다면, 다양한 관객을 맞이할 수 있는 최소한의 접근성 구상을 하면서 관객들에게 접근성에 대한 사전 조사를 하는 등의 준비로 누구나 관극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는 게 중요하다고 합니다. 이런 시도들이 모여서 더 나은 관극 환경이 만들어지지 않을까요?” - 임지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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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 질문 5
열악한 소극장 환경, 크지 않은 예산액으로도 현실적으로 가능한가요? 또 접근성 매니저와 상의하고 싶고, 그들을 소개받고 싶으면 어떤 루트를 통하면 되나요. 그들과 컨택하는 방법, 만나서 협의할 수 있는 기초적인 내용 정보 등을 알고 싶습니다.

“원론적인 이야기처럼 들리겠지만, 환경이 열악할수록 연대가 중요하다. 이것은 약한 신체를 가진 인간이 생태계에서 살아온 방식이다. 서로에 대한 애정과 감수성을 가진 팀은 열악한 환경에서도 단합하며 아름다운 결과를 만들 수 있다. 그렇지 못한 팀은 풍요로운 환경에서도 분열한다. 우리 모두는 이기적이고 폭력적인 존재라는 것을 스스로 인정하고, 자신의 이기심과 폭력성을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하는 자세로 함께 한다면 지금의 환경은 얼마든지 바뀌지 않을까? 나는 고맙게도 그런 동료들을 많이 만났다. 좋은 인연이 지속되고 동시에 새로운 만남도 이어지다 보니 어느새 내 주변엔 뛰어난 예술인인 동시에 훌륭한 접근성 매니저인 사람들이 많다. 나는 그들이 있기에 다음 작업을 계획할 수 있다.” - 이성수

“요즘 추세를 보면, 극장별로 혹은 공연팀별로 접근성 매니저를 배치하고 있습니다. 공연 관극 전 포스터 혹은 예매사이트에 나온 공연팀 연락처로 컨택하여 미리 해당 공연에 대한 접근성에 대해 알아볼 수도 있고, 혹은 예매사이트에 있는 접근성 안내사항을 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예산적으로 혹은 기술적으로 접근성 매니저나 접근성에 관한 사전 정보가 없다면 공연팀에 연락을 해서 어떤 접근성이 제공 가능한지 문의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입니다. 사실 접근성에 대해 사전 정보가 없으면 접근성이 준비되지 못한 공연팀일 확률이 높긴 합니다. 하지만 이런 문의들을 계속 이어나가야 공연팀이 지각할 수 있는 계기가 됩니다. 그러면 앞으로 공연팀들은 관객들이 공연을 더 잘 관극할 수 있도록 접근성에 대한 방법들을 고심하게 됩니다.” - 임지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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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부 공통 질문 6
공연과 극장을 오가시면서 가장 접근성이 좋았던 경험을 공유해주세요. 구체적인 접근성의 방법론, 의사소통 방식, 당시의 분위기나 감정 등 내용은 자유롭게 구성해주셔도 좋습니다.

“작년에 봤던 <극동 시베리아 순례길>이 무척 인상 깊었어요. 당시 접근성 테이블에 공연 중 사용되는 다양한 소품이 소개되어 재미가 있었는데, 제가 봤던 공연 중에서는 비장애인 관객에게도 개방된 첫 접근성 테이블이었어요. 접근성 매니저님께서 살펴 보고 가라고 적극적으로 독려하기도 하셨는데 제가 옆에서 보기에 다른 관객들도 상당한 흥미를 보이는 것을 알 수 있었어요.
또, 해당 공연에서는 시베리아, 산티아고, 마가단 등 낯선 고유명사들이 다수 나왔는데 이 단어들의 수어 이름을 만들어 사용하는 방식이 낯설고 신기해 재미있었어요. 그리고 이 사실을 음성해설로도 해주어 제가 알 수 있었다는 점도 좋았고요. 아직 적용해 보거나 적용한 사례를 접해본 적은 없지만 음성해설이나 점자 표기 시에도 자주 등장하는 길고 어려운 이름은 약어로 대체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봤어요. 다양한 접근성 확장 방식을 경험하고 고민해 볼 수 있었던 공연이었어요.” - 김시락

“저는 전동휠체어를 사용하기 때문에 개인적으로는 공연정보를 찾을 때 휠체어석이 있으면 접근성이 좋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휠체어석이 2석 이상 있는 극장이 많지 않아서 휠체어를 사용하는 지인들과 함께 가자고 말하기는 어려울 때가 많아요. 게다가 시각장애가 있거나 청각장애가 있는 지인들과 함께 공연을 보러 가기로 하면 볼 수 있는 공연은 제한적이고 서로의 시간을 맞추기도 무척 어렵습니다. 질문을 받고 가능하면 접근성이 좋았던 경험을 찾고자 그동안 봐왔던 공연들의 기록을 샅샅이 뒤져 보았지만 가장 접근성이 좋았다고 말할 수 있는 공연이나 극장은 아쉽게도 없습니다.
다만 공연은 아니지만 자립생활센터에서 근무할 때 일주일에 한 번씩 청각장애인, 시각장애인, 지체, 언어장애가 있는 뇌병변장애인이 모여서 서로의 방식으로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정기적으로 가졌던 적이 있습니다. 지체장애인은 필담으로 전하고, 필담을 읽은 청각장애인은 수어와 함께 본인의 구어로 언어장애인에게 말을 하고 시각장애인은 언어장애인의 말을 알아듣고 지체장애인에게 전달하는 형식이었죠. 대화를 할 때 상대적으로 지체장애인이 여러 가지의 의사소통 방법을 수행하기 쉬울 수도 있지만 각자가 서로의 소통 방법을 배우는 자리라고 생각했었고, 서로의 말이 전달되는 시차도 있고, 표현과 이해의 차이도 있어서 뉘우침의 탄식과 깨달음의 감탄이 오가는 시간이었는데 일주일에 그 두 시간, 그날을 무척 기다렸던 기억이 있습니다. 접근성이라는 말이 여러 의미를 포함하여 사용되고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나와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과 소통하고 싶은, 공감하고 싶은 열망에서 서로의 언어가 통하는 접점을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런 순간들을 공연장에서 경험하고 싶네요.” - 김지수

“음성해설 자문으로 참여했던 극단 여기는 당연히, 극장의 <그로토프스키 트레이닝>과 관객으로서 감탄했던 최현비 연출의 <이리의 땅> 두 작품이 떠오른다. <그로토프스키 트레이닝>의 경우 시각장애인의 특성과 다양성 등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자 유심히 듣던 구자혜 연출이 유니버설 디자인을 전복해서, 채우는 것이 아닌 비우는 방식으로 시각장애인의 소외감을 덜어주었다. 나만 잘 안 보이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잘 안 보이게끔 만드니 눈을 혹사시켜가며 억지로 보려고 애쓰지 않아도 되었다. 시각적 에너지 소모가 줄어드니 한결 편하게 관람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 대가로 비장애인 관객들로부터 컴플레인을 많이 받았다고 들었는데 잘 안 보여서 불편했을 그들을 생각하며 내심 속이 시원하기도 했다.
<이리의 땅>의 경우 그 어떤 공연보다도 접근성을 꼼꼼하게 준비한 작품이었다고 생각된다. 여러 유형의 장애인을 위한 물리적 접근성은 물론 음성해설에 있어서도 한 가지 방식이 아닌, 폐쇄형과 개방형을 모두 사용했다. 그리고 배우들의 대사를 적절히 활용하여 음성해설인 동시에 효과음의 역할도 하도록 만든 방식이었는데, 이것은 시각장애인의 관극을 도울 뿐만 아니라 비시각장애인에게도 재미를 더하는 요소가 되었다. 지금까지 수많은 음성해설 공연을 보았지만 이런 경우는 처음이었다.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 이성수

“올해 1월 해외 공연장 FOX THEATRE을 방문했습니다. 먼저 가장 충격적이었던 부분은 극장 내에서 취식이 가능했다는 점이고, 매점에서는 탄산음료와 알콜음료, 나쵸, 팝콘 등을 판매하고 있었습니다.
<하데스 타운>이라는 공연을 보았는데 극장에 들어서니 역시나 관객이 가득했습니다. 극장 내부는 계단 없이 완만한 경사로로 되어 있어 이동하기 편했습니다. 휠체어석은 제일 뒷줄과 중간중간에도 마련이 되어 있었습니다. 휠체어석 옆엔 이동 가능한 간이의자도 배치 되어있어 동행인도 같이 앉을 수 있었습니다.

극장 좌석의 가장 마지막 줄, 넓은 공간에 접이식 의자 여러 개가 비치되어 있다. 
                등받이에 휠체어 이용인의 이미지가 그려져 있다.
극장 객석의 중간쯤, 고정된 좌석들 사이에, 통로 옆 넓은 공간이 비어 있고, 
                휠체어 이용인의 이미지가 그려진 접이식 의자가 하나 놓여 있다.

외부엔 장애인 화장실, 가족 화장실이 있었습니다. 또한 저청력 관람객을 위해 오디오 기기를 대여해줬고, 감각에 예민한 관람객을 위한 감각가방(손 장난감, 헤드셋, 선글라스 등으로 구성)도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검은색 가방에 “SENSORY INCLUSIVE BAG”이라는 글씨와 함께, 
                동그라미와 하트, 헤드셋 등을 연상시키는 이미지가 그려져 있다.
가방에 들어 있는 물건들을 꺼내어 가지런히 올려두었다. 
                헤드셋과 손장난감 등 여러 물건들로 구성되어 있다.
사진: 필자제공

그리고 휠체어를 대여할 수 있었고, GALAPRO라는 어플을 다운 받으면 각자 휴대기기로 공연 자막을 볼 수도 있었습니다.
사실 가기 전에 접근성에 대해 알아보지 못하고 방문하였지만, 이미 많은 부분들이 마련이 되어 있었습니다. 처음엔 외국 공연장이라 더욱 긴장이 되고 불편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직원들의 친절한 안내와 편안해지는 분위기 속에서 공연을 즐겁게 관극할 수 있었습니다.” - 임지윤

“접근성이 좋다고 느끼는 건 무대 한글자막과 수어통역이 더할 나위 없이 좋아서가 아닙니다. 물론 중요한 지점이기는 하지만 그게 다가 아닙니다. 공연 관람은 무대 위에 배우가 등장하고 퇴장하는 약 2시간가량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여유롭게 집에서 출발해서 극장에 도착하는 것, 매표소에서 불편함 없이 티켓을 수령하는 것, 물품보관함이나 물품보관소를 이용하는 것, 객석으로 들어가기 전 안내를 받는 것, 공연 시작 전 비상대피 안내를 받는 것, 공연이 끝나고 물건을 찾는 것 그리고 집으로 돌아가는 것. 이 모든 과정이 공연 관람에 포함된다고 느낍니다. 극장을 오가면서 접근성이라는 건 사실 그리 크게 대단한 것이 아니라는 걸 느낍니다. 음성언어보다 먼저 다가오는 종이에 적힌 글씨, 립뷰마스크 너머의 입술, 반갑게 인사하는 얼굴, 수어통역/문자통역이 잘 보이는 좌석 그리고 안내를 도와주는 태도까지. 그러면 공연 내용이 조금 불만족스러웠더라도 전체적으로 ‘공연 잘 봤다’고 느끼게 되는 것 같습니다.” - 해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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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배리어가 있음에도 없다고 말하기보다는 배리어를 인식하고, 그 존재를 확인하는 것’. 법인 탄포포노이에 [민들레의 집] 편저, 오하나 역, <소셜아트 - 장애가 있는 이와 예술로서 사회를 바꾸다> 중 미쓰시마 다카유키 인터뷰.
  2. 임지윤, 「장애 관람객을 위한 배리어프리 공연에 관한 연구: 연극·뮤지컬 공연 중심으로」,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예술사 졸업논문, 2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