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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극센터 접근성 워크숍

부록2. 장애의 경험과 관점, 전문성을 바탕으로

김영민

제248호

2023.12.21

웹진 연극in에서는 2023년 하반기, 총 다섯 차례에 걸쳐 ‘장애의 경험과 관점, 전문성을 바탕으로’ 어떻게 연극을 읽어낼 수 있을지, 다양한 분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는 연속 좌담을 기획했습니다. 이 기획을 마무리하면서 접근성과 관련한 두 개의 부록 기사를 준비했는데요. 그 두 번째 기사를 위해 서울연극센터의 접근성을 점검해보는 기회를 마련했습니다. 0set 프로젝트의 신재 연출가가 기획·진행한 이 워크숍에는 장근영, 이성수, 하지성 세 분의 장애창작자들과 김은정 접근성매니저가 퍼실리테이터로 참여했고, 서울연극센터를 비롯해 서울문화재단의 여타 공간을 운영하는 여러 직원들이 함께했습니다.

포털사이트 창을 띄워놓고 종종 ‘서울연극센터’를 검색하곤 합니다. 연극센터를 운영하는 일원으로서 습관처럼 하게 되는 일종의 모니터링입니다. 공간에 매겨진 평점이 0.01점씩 오르락내리락하는 걸 볼 때면 때론 흡족하고, 자주 감사하고, 종종 고민하게 됩니다. 식당이나 카페를 운영하는 사장님의 마음이 이와 닮은 걸까 작게나마 짐작해봅니다.

연극센터에 머물다 가는 사람들은 생각보다 다양합니다. 공연 전, 카페에 가기엔 부담스럽고 극장 로비는 협소할 때 그 시간을 채우기 위해 잠시 들렀다는 학생, 애정하는 배우가 출연하는 공연의 리플릿을 소장하기 위해 방문했다는 관객, 1층 라운지에 있는 희곡자판기를 통해 랜덤으로 출력된 희곡 한 문장을 읽고 마음이 동해 그 순간을 기록한 블로거, 오랜 기간 이곳 앞마당에 터를 잡은 대학로 고양이를 알아보곤 반가운 마음을 사진으로 남긴 방문객, 연극센터에서 진행된 공연이나 프로그램에 참여한 창작자, 이곳 시설 중 엘리베이터 사진만 집중적으로 찍어 자신의 SNS에 남긴 엘리베이터 전문가(?)1) 등. 내용은 조금씩 다르지만 누군가의 일상 안에 연극센터가 있음을 실감할 때면 기분이 묘해지곤 합니다. 4층에 위치한 사무실 책상에 앉아 정신없이 업무를 할 때는 미처 느끼지 못하는 감각입니다.

그중에 기억나는 포스트가 있다면 공간 곳곳을 꼼꼼하게 둘러보고 자신의 SNS에 연극센터의 안내판 하나, 조명 하나, 테이블 하나를 세심하게 기록한 누군가의 흔적이었습니다2). 짐작건대 아마도 유사한 문화공간에서 시설 관련 업무를 담당하는 분인 것 같습니다. ‘이건 아이디어가 좋다, 따라 해볼 법하다, 이렇게 해보면 어떨까’ 등이 주된 내용이었기 때문이지요. 문화공간 조성을 위해 일종의 사례조사차 답사를 하셨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이 글은 어쩌면 그런 분들이 읽어주길 바라며 남겨두는 또 하나의 기록일 수 있습니다. 다양한 사람이 수시로 오고 가는 공공의 공간을 가꾸는 (관)계자를 위한 일종의 접근성 오답노트라 할 수 있습니다.

서울연극센터 1층 라운지에서 진행된 접근성 워크숍 결과 공유 사진. 
        워크숍에 참여한 모든 이들이 세 개 조로 나뉘어 원탁에 둘러앉아 있다. 모두가 향한 스크린에는, 1층 유리벽에 붙은 흰색 글씨의 층별 안내도가 띄워져 있다. 
        스크린 양옆으로 워크숍을 진행한 0set 프로젝트의 신재 연출가와 조별 체크리스트를 발표하고 있는 워크숍 참여자가 서 있다.

지난 12월 11일, 연극센터 휴관일인 월요일에 맞춰 ‘0set 프로젝트’와 함께 이곳의 접근성을 점검했습니다. 장애인 창작자, 접근성 매니저와 더불어 연극센터를 이용하는 창작자 혹은 방문객의 관점에서 전 층, 모든 공간을 살펴본 시간이었습니다. 연극센터는 연면적 1,000㎡을 넘지 않는 데다 공연장은 아니기에 대체로 층마다 구성도 단순한 편입니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고자 하니 어느새 점검을 시작한 지 3시간 30분이 훌쩍 지나 있었습니다. 1층의 라운지, 2층의 창작자를 위한 공유랩, 세미나실, 다목적실, 3층의 스튜디오, 그리고 층별 화장실까지 곳곳을 뜯어본 결과, 아쉬운 부분들이 고구마 줄기처럼 줄줄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방화문의 역할을 겸한 문들은 그만큼 무겁고 턱이 높아 휠체어 이용자가 지나는데 좀 더 힘을 들여야 했고, 문고리 바로 아래 놓여 있어야 할 점자블록은 조금씩 위치가 어긋나 있어 시각장애인이 손잡이를 찾기 위해 수고를 더해야 했습니다. 성별 고정관념으로부터 탈피하기 위해 동일한 색으로 제작된 화장실 표시는 언뜻 구분이 쉽지 않았고, 장애인화장실 세면대 양옆에 설치된 핸드레일은 휠체어의 회전각을 제한해 화장실 이용을 어렵게 했습니다.

3층 스튜디오의 접근성 점검 현장. 휠체어를 이용하는 퍼실리테이터와 함께 조를 이룬 네 명의 참가자들이 모여 있다. 
                    퍼실리테이터가 오른손을 들어 경사로가 없는 덧마루 무대를 가리키는 모습이다.
층별 계단의 접근성 점검 현장. 
                    계단 핸드레일의 점자를 확인하는 시각장애 퍼실리테이터와 함께 조를 이룬 다섯 명의 참가자들이 모여 있다. 
                    몇몇 참가자들이 회색빛의 계단 미끄럼 방지 패드에 발을 올리고 있다.

재개관한 연극센터의 건축적 특징으로는 전면이 통유리인 점을 꼽을 수 있습니다. 이에 따라 본격적인 개관 전에 별도의 안전도 검사를 진행했으며, 검사 결과 안전에는 문제가 없다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다만 전동휠체어 이용자에겐 여전히 안전벽이 부재함에 따른 심리적 불안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었습니다. 또한 통유리 복도는 대학로 거리의 풍경을 즐길 수 있도록 놓아둔 벤치 등으로 인해 휠체어 이용자가 안정적으로 이동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넓다고 할 수 없었습니다. 이외에도 1층 안내데스크 뒤편에 있는 화장실은 한눈에 찾기 쉽지 않았으며, 리플릿 게시대의 맨 위 칸은 휠체어 이용자에겐 너무 높았습니다.

체크리스트의 항목들이 더해질수록 공간을 운영하는 담당자의 한숨과 부끄러움, 아쉬움도 비례해 커졌습니다. 공간의 운영 주체가 건축물의 설계단계부터 공사 과정, 개관까지 일관적으로 참여하기 어려운 환경, 담당부서 및 담당자의 잦은 변동, 제한된 예산 등을 요인으로 꼽을 수 있겠지만, 결과적으로는 변명일 수 있다는 반성을 합니다. 그럼에도 조금은 뼈아픈 이 오답노트를 기록하고 공유하는 이유는 결국 하나입니다. 공공에서 공간을 조성할 때 이와 같은 시행착오를 조금이라도 덜 하길 바라는 마음, 그리하여 이런 공간들이 좀 더 다양한 사람을 환대하고 많은 사람에게 환영받는 열린 공간으로 쓰이길 희망하는 근원적인 바람 때문입니다.

2층 공유랩 접근성 점검 현장. 창가 책상과 의자 앞으로 시각장애 퍼실리테이터와 워크숍 참여자가 서 있다. 
                    왼손에 흰지팡이를 든 퍼실리테이터가 오른손을 의자 쪽으로 뻗고 있고, 그 뒤로 같은 방향으로 손을 뻗고 있는 워크숍 참여자가 있다.
비상대피 안내도를 점검하는 워크숍 참여자들. 
                    회색 벽면에 붙은 검은색 안내도에는 공간 평면도와 안내 문구가 흰색으로 표기되어 있다. 
                    참여자들은 각각 안내도의 세부 내용을 확인하면서 체크리스트 문서를 작성하거나 점검 사항을 스마트폰으로 촬영하는 중이다.

공간을 운영하는 이들에게 접근성을 개선해야 한다는 책임이 주어질 때면, 자칫 섣부른 기대를 갖고 접근성에 ‘접근’하는 우를 범할 수 있습니다. 우선 정답과도 같은 매뉴얼을 손에 얻고, 그 매뉴얼대로 시설만 구축하면 많은 문제가 해결되리라 생각하게 되는 것이지요. (저 역시 일정 부분 그런 기대를 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배리어프리, 유니버설, 무장애 등 다양한 명칭으로 불리고 있는 접근성에는 정답이 없는 것이 정답임을 다시 한번 깨닫습니다. 사실 사람은 조금씩 다른 몸과 언어를 지녔기에 내게 유효했던 방안이 누군가에게는 전혀 닿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지요. 길게 돌아와 당연한 결론에 이르게 되었는데요. 프로그램 전체를 이끈 ‘0set 프로젝트’의 신재 연출가는 “접근성은 계속해서 예외를 인정하고 발견해나가는 것”이라고 이야기합니다. 누군가의 일상 안에 연극센터가 있음을 확인했을 때 비로소 이곳이 방문객 몇만 명, 프로그램 수 몇 개로 단순 측정되는 곳이 아닌, 사람이 머무는 공간이었음을 실감하는데요. 조금은 빤하지만, 접근성 너머엔 사람이 있다는 당연한 생각을 한번 더 하게 됩니다. 결국엔 이 모든 과정이 사람과 구체적으로 닿기 위함이었다는 것, 이를 위해 계속해서 새로운 것들을 발견하겠다는 태도의 문제라는 것도 한번 더 상기합니다.

접근성 워크숍 결과 공유 현장. 한 참여자가 점검 내용을 적은 커다란 전지를 작은 크기로 접어 들고 발표하는 중이다. 
                    전지 위에는 서울문화재단 웹페이지에서 서울연극센터 공간 대관을 신청하기까지의 접근성이 상세히 적혀 있다.
접근성 워크숍 결과 공유 현장. 두 명의 참여자가 점검 내용을 적은 커다란 전지를 반으로 접어 들고 발표하는 중이다. 
                    전지 위에는 검은색으로 서울연극센터 1층과 2층의 평면도가 그려져 있다. 
                    파란색으로 점형 점자블록을 표시했으며, 녹색으로 구체적인 접근성 점검 내용을 적었다.

* 서울연극센터는 이번 점검을 통해 발견한 것들을 하나씩 개선해나갈 예정입니다. 주어진 환경 안에서 당장 시급한 시설을 보수하고 사인물들을 보완하면서, 다양한 방문객을 위한 더 나은 응대 방법 등을 찾아가려 합니다.

[사진: 김지성 jasonk17@naver.com]

  1. 본인이 이용했던 빌딩 엘리베이터의 각종 형태(문, 버튼 모양, 내부 등)를 사진으로 아카이빙하는 계정이었습니다.
  2. 여러 복합문화공간을 답사하고 감상과 의견을 기록하는 계정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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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민

김영민
입사 후 첫 배치부서가 서울연극센터였다. 서울연극센터에서 3년, 홍보팀에서 3년 반을 보낸 후 다시 연어처럼 서울연극센터로 돌아와 웹진 연극in을 담당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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