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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를 잘 나기 위한, 설명이 많은 팬케이크 레시피(비건)

서로를 돌보는 응원 레시피

유선

제249호

2024.01.25

웹진 연극in에서는 새해의 문을 열며 지친 몸과 마음을 잠시 쉬어가기 위한 기획을 마련합니다. 지난 작업의 과정을 돌아보고, 함께했던 이들을 떠올리며, 앞으로 열어갈 세계를 계획해보는 시간 위에, 요리를 준비하고, 나누면서, 기운을 차리는 시간을 얹어 봅니다. 필자분들께는 새로운 시작의 소망과 바람을 담아 ‘서로를 돌보는 응원 레시피’를 공유해주십사 부탁드렸습니다. 책상과 식탁 사이에서 더 건강한 밥을 짓고, 예술을 짓고, 삶을 지어갈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지난해에는 ‘환대의조각들2023’이라는 프로젝트를 공동기획했다. 2021년에 이어 2년 만에 다시 하게 된, 접근성과 마이너리티를 주제로 느슨하게 연 아트 페스티벌 같은 것이었다. 서울과 제주에서 다양한 창작자들이 새로운 작품을 만들어 발표했다. 크고 작은 규모의 여러 전시와 퍼포먼스, 공연을 진행했는데 얼마 전 헤아려보니 참여를 한 예술인이 무려 64명이나 되었다. 그중에는 다양한 유형의 사회적 소수자라 불리는 이들도 많았다. 작품을 창작하여 발표하기로 한 예술인들에게 똑같이 요청했던 것은 “소수자 접근성을 고려한 예술작품을 창작해주세요!”였다. 생각해보면 조금 애매한 요구다. 어떻게 어디까지 고려하라는 것이지? 의아해할 법도 했지만 참여한 분들은 모두 즐겁고 충실하게 응답했다.
발달장애인 창작자들은 자신의 회화에 접근할 수 있는 다른 방식으로 음성해설을 고안했다. 작품과 연결된 세계에 대해 하나하나 설명을 하는 사운드 작업을 그림마다 설치했다1). 오랫동안 그림을 그려 온 비장애인 창작자는 3D펜을 이용해 드로잉을 하거나, 만져서 알 수 있게 판 위에 양각과 음각으로 표현하거나, 덩어리 조각작품 같은 것들을 시도해보기도 했다2). 직접 거리로 나가 자신의 작품을 입거나 들고 자랑을 하기도 하고 함께 걷기도 했다3). 자신의 작품을 입고 야외에서 전시를 했던 기록 사진에 50개가 넘는 대체 텍스트를 붙여 웹에 공유하기도 하고4), 서울에서 먼 거리를 이동해 제주의 차별없는가게에서 낭독극을 하기도 했다5). 수어시와 즉흥 피아노 공연을 하면서는 피아노에 센서를 넣어 소리에 따라 무대와 객석에 바람이 불게 했다. 종이로 만든 오브제가 흩날려 사운드를 시각화했다. 또 가야금 산조가 연주될 때 객석에 앉은 중증발달장애인 창작자들이 음악에 맞춰 손에 든 오브제를 흔들거나 소리를 내어 노래하고, 가야금 소리에 맞춰 오버헤드 프로젝터의 빛과 물그림자가 일렁이게 하기도 했다6). 제주의 다양한 장소에서 들리지 않고 보이는 소리를 탐구하는 리서치와 워크숍도 있었다7). 차별없는가게 중 하나인 제주돌핀센터에서 성소수자와 장애인, 동물해방 운동이 교차하는 순간들을 만드는 전시와 워크숍도 있었다. 드랙을 한 농인 창작자가 수어를 둘러싼 성별이분법의 문제에 대해 설명하는 영상 작품 너머로 느껴지는 스피커의 진동에 따라 춤을 따로 추고 있으면, 반대편 벽에는 수족관에 갇혀 있는 마지막 한 명의 벨루가(흰돌고래) 벨라의 해방과 자기 자신의 해방을 기원하며 여러 참여자들이 함께 그린 피켓이 보였다8). 스쿠버 다이빙을 해서 들어간 물속의 빛과 다른 감각을 사진과 사운드 작품으로 표현한 전시는, 뜻밖에도 예멘 난민들이 자주 드나드는 식당에서 열렸고, 그곳을 지키고 드나드는 많은 이들의 따뜻한 보살핌을 받았다9). 참, ‘예술작품의 접근성’이라는 주제의 연구를 진행하며 수어통역과 문자통역이 있는 줌 세미나를 11회 열었고, 또 같은 이름으로 중간 포럼을 열기도 했다.
접근성을 고려한 작품을 만들어달라는 요청은 참여 예술인들이 각자 자유롭게 해석을 하게 했지만, 그래도 최소한의 물리적인 접근성은 주최하는 다이애나랩에서 제공했다. 서울과 제주의 차별없는가게를 중심으로 최소한 휠체어나 유아차 출입이 가능한 공간을 섭외했다. 수어와 자막이 있는 홍보 영상을 만든다든지, 리플렛이나 음성해설, 조력인처럼 전시장에 꼭 들어가야 할 접근성 장치들도 만들었다. 모든 홍보 이미지에는 대체 텍스트나 음성해설이 있었고, 또 포럼이나 퍼포먼스를 할 때는 수어통역을 조금 더 적극적으로 두고, 수어를 할 수 있는 조력인을 따로 두었다. 그리고 함께 음식을 먹어야 할 일이 있다면 모든 음식은 비건으로 준비했다.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을 제외한다면 많은 사람들이 함께 먹을 수 있다는 점에서 비건 채식이 기본이었던 것은 이 프로젝트에서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래도 모자라고 서툰 부분은 사람들로 채웠던 것 같다. 예술인과 관람객 모두 처음 만나는 서로를 환대해주는 순간들이 있었다. 포럼 도중에 객석에서 발표자의 11개월 된 아기가 왕 하고 울어도 안고 어르며 달래주었던 주변 이모 삼촌들, 워크숍에서 처음 만난 이의 정체성에 대해 무한한 긍정과 응원을 주고받던 청소년들, 주최하는 사람들이 관객에 대해 미리 알아야 할 사항을 알려달라고 하면 세세한 이야기를 적으며 물어봐주어 고맙다고 인사를 남기던 이들, 자신들의 공간에서 이런 행사를 열어주어 고맙다고 좋았다고 말씀해주시던 차별없는가게 운영자들… 뭐가 이렇게 서로 고마운 게 많았는지 모르겠다.

가로로 긴 사진이다. 제주도 신도리 제주돌핀센터에서 열린 <크로스!> 전시의 연계 프로그램인 물결처럼 흔들리는 피켓 모두의 존재, 다양한 표현 워크숍 참여자 십여 명이 각자의 천 피켓을 들고 바닷가에서 한 줄로 행진하고 있다. 멀리 푸른 하늘과 뭉게구름, 그 너머로 비추는 강렬한 햇빛 때문에 비현실적으로 아름다운 이미지다. 행렬의 맨 앞에 있는 사람은 흰돌고래 벨루가 벨라를 그린 커다란 천을 등 뒤로 보이게 들고 있다.
사진: 양승욱

올해부터는 지원금이 많이 줄어들고 또 아예 사라지기도 해서, 이만큼 접근성에 예산을 쏟을 수 있는 프로젝트를 다시 할 수 있을까? 자신이 없어지기도 한다. 그렇지만 2023년에 참여했던 예술인들의 면면을 생각하면 어쩌면 우리는 더 멀리 더 천천히 더 오래 갈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고 싶은 예술과 활동을 돈과 주변 환경에 꺾이지 않고 수십 년 넘게 해온 이들, 자신이 작가라는 자각이 아직 없고 예술이 무엇인지 몰라도 평생 표현해왔고 또 계속 어떻게 해서든 표현할 이들, 자신이 만든 작품과 세계를 설명할 때 기쁨에 가득 차서 어찌할 줄 모르는 이들, 더 멀리 먼 길을 이동해 어디론가 향하는 이들, 처음 돌고래를 그려 본 이들, 자신의 작품이 가 닿을 수 없는 부분을 생각하며 끊임없이 부수고 또 부수어 다른 감각을 향해 나아가는 이들… 올해는 이분들과 함께 맛있고 값싸고 건강에 좋은 비건 요리나 만들어 먹으면 좋겠다. 그러다 보면 앞으로 뭘 하면 재미있을지 즐거운 생각들이 퐁퐁 솟아나지 않을까?

요즘 자주 만드는 음식 중 레시피로 소개할 만한 것은 한 끼 식사로 먹을 수 있는 팬케이크다. 팬케이크나 부침개나 모두 값싸고 비교적 쉽게 만들 수 있는 음식이면서, 재료를 넣고 빼기에 따라 다양한 변형이 가능하고, 빠르게 만들어 여럿이 나누어 먹기에도 적합하다. 사실 단어만 다르다 뿐이지 비슷한 음식이다. 2011년에 일본에서 한국식 부침개 만드는 워크숍을 한 적이 있는데, 그때 만났던 친구가 ‘가르쳐준 대로 부침개를 집에서 해먹을 수 있어 너무 좋았다’고 말했었다. 어떤 재료를 넣었냐고 했더니 물과 밀가루, 소금, 식용유라고 했다. 그 친구는 가끔 야채를 살 수 없을 정도로 가난해지는 활동가였지만 항상 유쾌한 이였다. 그 이후로 나는 가장 값싸게 만들어 먹을 수 있는 음식으로 쌀밥 이외에 팬케이크 혹은 부침개를 떠올린다. 아마도 즐겁게 잘 지내고 있을 그 친구도 떠올린다. 이 레시피는 아주 기본은 아닌, 견과류와 잎채소가 들어가는 레시피다.

완성된 비건 시금치 팬케이크 사진. 가로로 긴 사진이다. 사진 가운데 흰색 바탕에 분홍색과 회색의 둥글둥글한 면이 겹치는 무늬가 들어간 접시가 놓여 있다. 접시 중앙에는 짙은 초록색 팬케이크가 세 장 정도 겹쳐 올라가 있다. 윗면이 짙은 갈색으로 아주 잘 구워진 것 같다.
사진: 우에타 지로

올해를 잘 나기 위한, 설명이 많은 팬케이크 레시피(비건)

재료
시금치 1줌, 캐슈넛 2큰술, 소금 1작은술, 올리브 오일 1큰술, 밀가루 1-2컵, 두유 1컵

너무 많은 설명에 혼란스러울 수 있으니, 간단하게 시키는 대로 따라만 하고 싶은 사람은 상세 설명을 읽지 않고 조리법대로 하면 된다.



조리법
  • 1.믹서에 시금치, 캐슈넛, 소금, 올리브 오일, 두유, 밀가루를 넣고 곱게 간다. 두유와 밀가루는 약간 남겨둔다.
  • 2.1의 반죽에 남겨둔 밀가루나 두유를 더 넣어가며 농도를 맞춘다. 반죽이 천천히 흐를 정도면 된다.
  • 3.프라이팬을 약불로 3-5분 정도 예열한다. 이때 기름을 살짝 두른다.
  • 4.예열된 프라이팬에 반죽을 원하는 크기로 올리고 약불을 유지하면서 5-8분 정도 기다린다.
  • 5.윗면이 살짝 마르는 느낌이 들거나, 무언가 익는 것 같은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면 뒤집는다. 뒤집은 후에는 3분 정도만 익혀도 충분하다.


상세 설명
  • 시금치 대신 좋아하는 잎채소를 쓸 수 있다. 루꼴라나 케일을 추천한다.
  • 캐슈넛 대신 아무 견과류나 넣을 수 있다. 아몬드, 호두, 땅콩 다 괜찮다. 불릴 필요 없이 한번 씻어서 믹서에 넣으면 된다. 땅콩버터처럼 넛버터 종류를 넣어도 된다. 씹히는 것이 좋다면 대충 다져서 반죽에 섞는다. 견과류가 없으면 빼도 된다.
  • 두유는 달지 않은 것이 좋다. 오트밀크나 넛밀크 종류로 대체 가능하다. 없으면 찬물을 넣는다.
  • 달콤하게 먹고 싶다면 반죽에 설탕을 추가하거나, 완성된 팬케이크 위에 시럽을 뿌린다.
  • 컵이나 숟가락은 대충 아무거나 써도 된다. 반죽의 농도는 밀가루나 두유를 조금씩 더 넣어서 맞춘다. 반죽을 주르륵 흐르는 정도로 하면 부드럽고 얇은 팬케이크가 되고, 흐르지 않을 정도로 되게 하면 질감이 있는 팬케이크가 된다. 어떤 농도여도 맛있다.
  • 폭신한 질감을 원하면 베이킹파우더를 1/2작은술 정도 넣어도 된다.
  • 통밀가루는 수분을 더 많이 빨아들이기 때문에 두유나 물을 좀 더 넣어야 한다. 통밀을 쓰면 좀 더 부풀고 구수한 맛이 난다. 우리밀은 수분 함유량이 많아 액체류를 좀 적게 넣어야 하지만, 그렇게 큰 차이는 없다.
  • 반죽을 믹서에 넣어 갈 때, 감자나 불린 콩을 넣어도 된다. 이때는 밀가루를 줄인다. 병아리콩을 많이 갈아 넣고 기름을 넉넉히 해서 부치면 중동 요리인 팔라펠처럼 된다. 병아리콩을 넣을 때는 생 파슬리를 듬뿍 갈아 넣으면 맛있다.
  • 철이나 스테인레스 팬을 사용한다면 예열을 약불에서 10분 이상 하고, 한쪽 면을 완전히 익힌 다음에 뒤집어야 팬에 들러붙지 않는다. 그래도 들러붙을 것 같으면 팬에 기름을 약간 더 두른다.
  • 완성된 팬케이크는 냉동하면 오래 보관할 수 있다. 밥이 없을 때 카레와 같이 먹어도 좋다. 땅콩버터나 비건 요거트를 발라 먹어도 되고, 비건 치즈를 올려볼 수도 있다. 토마토와 양파를 잘게 썰어 소금, 후추, 레몬, 빨간 고추, 고수를 넣어 만든 샐러드를 올리면 멕시코 음식처럼 된다. 얇게 부쳐서 안에 볶은 야채를 넣어 둘둘 말면, 간단히 들고 나가서 먹을 수 있는 랩 샌드위치가 된다.
  • 잘게 자르면 8개월 무렵의 아기부터 먹을 수 있다. 2살 이전의 아기가 먹을 때는 소금을 빼고 기름을 줄인다.
  1. 김동현, 한영현의 전시 <사랑랜드>.
  2. 엄유정의 전시 <눈 손 바람>.
  3. 노들장애인야학 진 수업 창작자들의 <PZZZ: 움직이는 진 무리>.
  4. 하마무의 <초롱초롱 분홍분홍>.
  5. 춤추는 허리와 김화용의 <서로를 길어 올리는 이동, 서로에게 매달리는 문장>.
  6. 박하늘, 백구, 오로민경, 손청, 장리향, 정유희, 하라다 요리유키, 노들장애인야학 진수업 창작자들의 <나 자신이고자 하는 감각>.
  7. 백구와 김은설의 <므브프: 만지는 소리 보이는 차카차카 츠-츠->.
  8. 우지양, 양승욱, 허호의 전시 <크로스! CROSS!>.
  9. 최혜영의 전시 <떠다니는 물방울, 젖지 않는 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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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선

유선
노들장애인야학 낮수업 교사이지만 한 번도 교사라고 생각해 본 적은 없다. 가르칠 수도 없고 가르치기도 싫지만 어쩔 수 없이 생기는 비장애인 교사의 권위에 대해 생각한다. 인포숍카페별꼴의 매니저 7인 중 1명이며, 3명으로 구성된 다이애나랩에서 33.3%의 일을 맡고 있다. 아기를 낳고 커밍아웃이 어려워진 팬섹슈얼, 비건, 고양이 추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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