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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스키 한 잔이 만들어내는 이야기를 위해

서로를 돌보는 응원 레시피

지승태

제250호

2024.02.29

웹진 연극in에서는 새해의 문을 열며 지친 몸과 마음을 잠시 쉬어가기 위한 기획을 마련합니다. 지난 작업의 과정을 돌아보고, 함께했던 이들을 떠올리며, 앞으로 열어갈 세계를 계획해보는 시간 위에, 요리를 준비하고, 나누면서, 기운을 차리는 시간을 얹어 봅니다. 필자분들께는 새로운 시작의 소망과 바람을 담아 ‘서로를 돌보는 응원 레시피’를 공유해주십사 부탁드렸습니다. 책상과 식탁 사이에서 더 건강한 밥을 짓고, 예술을 짓고, 삶을 지어갈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와서 무슨 얘기든 다 쏟아내. 내가 다 들어줄게

바 쿠엔토의 메인 바 사진이다. 어두운 공간에 부분 조명들이 켜져 차분하고 따듯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벽면에는 선반 가득 다양한 술병이 진열되어 있고, 선반의 한가운데 나무로 만든 쿠엔토 간판이 걸려있다. 그 앞을 지나가는 한 사람의 실루엣이 흐리게 촬영되었다.

2022년 1월. 친한 대학 동기이자 무척 훌륭한 배우였던 친구가 하늘의 별이 되었다. 연극 연습을 하던 중 그 소식을 듣고 제일 처음 한 말은 “…왜?”였다. 늘 밝은 얼굴로, 나만 보면 욕을 뱉어대며 ‘너의 연기가 너무 좋다’고 하던 친구. 자존감이 바닥을 칠 때마다, 나를 바닥에서 꺼내준 소중한 친구의 죽음은 받아들이기 힘든 충격이었다.
언젠가 그 친구에게 얘기한 적이 있다. “나는 나중에 바를 차릴 거야! 힘들면 언제든지 놀러 와! 와서 무슨 얘기든 다 쏟아내. 내가 다 들어줄게”. 쿠엔토의 시작이 이렇다. 바의 이름인 쿠엔토(Cuento)는 스페인어로 ‘이야기’라는 뜻이다. 쿠엔토를 열고 개업파티를 하고 보니, 3월 16일. 별이 된 친구의 생일이었다. 전혀 의도하지 않았지만, 그렇게 생일 선물 같은 공간이 나에게 왔다.

‘술도 잘 안 먹는 사람’이 바(Bar)를 차린 이유

어느덧 바텐더 생활 2년 차, 사장과 배우라는 두 가지 호칭이 더는 어색하지 않은 시점이 됐다. 주변인들은 나를 ‘술도 잘 안 먹는 사람’으로 알고 있지만, 사실 나는 개인적으로 힘들었던 시기에 바를 다녔다. 물론 아무도 모르게. 돈이 많아서 비싼 술을 먹는 것도 아니었고 누구를 만나려고 다닌 것도 아니었다. 그저 바(Bar)라는 공간에서, 혼자 마시는 위스키 한 잔이 내게 주는 위로가 좋았다. 나 자신과 이야기를 나누게 해주는 하나의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위스키를 천천히 음미하며, 나와 오랜 이야기를 마치고 집에 가면 조금은 편안하게 잠이 들 수 있었다. 소주가 주는 위로가 거칠게 느껴질 때, 위스키 한 잔이 주는 위로는 내게 참 다정한 것이었다.

한 사람의 인생을 2시간에 압축해 놓는 연극처럼

위스키 한 잔 값이면 소주로 아주 얼큰하게 취할 수 있는데, 털어 넣으면 끝나버릴 한 모금(약 30ml)의 위스키가 어떻게 몇만 원 혹은 몇백, 몇천만 원- 물론 나는 그런 술은 먹어 본 적이 없지만 -일 수가 있는지 묻는 이들이 많다. 그렇지만 나는 술이 나를 먹는 것보다는 내가 맛있는 술을 즐기며 먹는 게 더 좋다는 생각으로 위스키 바를 운영한다. 위스키 한잔이 만들어지려면 아주 많은 정성과 노력이 들어간다. 보리에 물을 뿌려 싹을 틔워 맥아로 만들고, 그 맥아를 건조시켜 증류하고 숙성하기까지 짧게는 몇 년 길게는 몇십 년의 시간이 걸린다. 그 많은 사건과 시간을 한 모금에 단숨에 압축해 느낄 수 있다. 마치 한 사람의 인생을 2시간에 압축해 놓는 연극처럼, 정성과 역사를 한 잔에 진하게 담은 위스키 한 모금은 얼마나 극적인가. 멀리 있지도 않다. 그냥 부모님 집에 굴러다니는 위스키 한잔을 몰래 따라 조금씩 천천히 음미해 보시라! (물론 과음은 피하자. 내일의 나한테 미안하니까.)

마티니 글라스에 갈색 음료와 비둘기 장식이 달린 가니쉬픽이 담겨 있다. 뒤편으로 여러 술병이 진열되어 있다.

집에서 위스키를 즐기고 싶다면, 몽키 숄더!

집에서 위스키를 즐기고 싶다면, 나는 두 번 생각할 것도 없이 ‘몽키 숄더’를 추천한다.
몽키 숄더는 부드러움에 초점을 둔 블렌디드 몰트 위스키다. 데일리 샷 기준으로 약 6만5천 원이면 구매할 수 있고, 이마트나 각종 주류마트에서도 꽤나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위스키다. 물론 몽키 숄더라는 이름이 담고 있는 이야기도 아주 재미있다.
몰트를 만드는 과정에서 보리에 물을 뿌리게 되는데 그냥 두면 보리가 다 썩어버린다. 그래서 계속 삽 같은 것으로 뒤집어주는데, 이런 작업을 직업적으로 하는 사람을 ‘몰트맨’이라고 부른다. 몰트맨들이 보리를 뒤집는 작업을 오래 하다 보면 어깨가 안쪽으로 말려 굽어진다. 이들의 어깨가 마치 원숭이 어깨같이 보인다고 해서 ‘몽키 숄더’라고 부른다. 그리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열심히 땀 흘리는 이 몰트맨들의 노고를 기리기 위한 술이 바로 몽키 숄더이다. 몽키 숄더 병의 겉면에는 원숭이 세 마리가 붙어 있는데, 이는 이 위스키에 들어간 원액을 공급하는 세 개의 증류소에서 일하는 몰트맨들의 노고를 기리는 의미다. 몽키 숄더에 담긴 이야기가 흥미로우셨기를 바라며, 이 흥미로운 위스키를 즐길 수 있는 간단한 레시피들을 소개해 보고자 한다.

1) 그냥 마셔라
위스키를 잔에 따라 그냥 마시는 것을 ‘니트’라고 부르는데, 몽키 숄더는 그냥 따라 마셔도 굉장히 부드러운 맛을 낸다. 가격에 비해 아주 부드러운 맛을 보여주기 때문에, 가성비가 좋은 위스키라고 할 수 있다. 칵테일을 만들기 전에 한번 그냥 마셔보는 것을 추천한다.


2) 몽키 숄더 하이볼
  • 몽키 숄더 45ml, 얼음, 음료(탄산수 혹은 토닉워터), 레몬

  • 얼음이 담긴 잔에 몽키 숄더 45ml(대략 소주잔으로 한 잔)를 넣고 토닉워터나 탄산수를 위스키의 네 배 정도 넣는다. 레몬 반 개를 슬쩍 짜주면 훨씬 좋다. (단! 시판되는 레몬 주스 말고 생 레몬을 하나 짜 넣는 것을 추천! 왜냐하면, 맛이 너무 달라진다)


3) 갓 파더
  • 몽키 숄더 45ml, 디사론노 10ml, 얼음

  • ‘갓 파더’는 대표적인 클래식 칵테일 중 하나다. 디사론노라는 리큐르는 달달한 살구씨 리큐르인데, 활용도가 아주 좋아서 집에 하나씩 마련해 놓는 것도 좋다. 얼음 잔에 몽키 숄더 45ml, 디사론노 10ml를 넣고 저어주기만 하면 끝이다! ‘달달구리’하고 맛있는 칵테일이 된다. 위스키 대신 보드카를 넣으면 ‘갓 마더’, 집에 있는 부모님의 꼬냑을 몰래 따라 넣으면 ‘프렌치커넥션’이라는 칵테일이 된다. (다사론노는 정말 뭘 넣어도 맛있는 사기급 리큐르이다!)


4) 몽키 사워
  • 몽키 숄더 45ml, 레몬 반 개, 설탕시럽 15ml, 달걀 흰자(없어도 가능), 얼음

  • 쉐이킹을 해야 하는 칵테일이다. 쉐이커가 없다면? 집에 있는 텀블러에다가 위 재료들과 얼음을 넣고 미친 듯이 흔들어 주면 끝! 달달하고 상큼한데 위스키 향이 살짝 올라오는 맛있는 칵테일이 된다. 얼음 잔에 마셔도 좋고, 그냥 마셔도 좋다!


몽키 숄더 하나로 만들 수 있는 간단한 레시피들을 소개해 보았다. 취하려고 먹는 술도 좋지만, 술에 담긴 이야기를 음미하고, 내 취향에 맞는 술들을 찾아가는 즐거움을 누려보시길 바란다. 힘들고 각박한 생활 속에, 위스키가 하나의 즐거운 취미생활이 될 수 있길 바란다.

바 쿠엔토를 배경으로 액체의 용량을 재기 위해 사용하는 도구인 지거에 음료를 따르고 있는 지승태의 모습이다.

[사진: 이현우 @lee_doc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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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승태

지승태
배우이자 바텐더 혹은 여행가. 부모님께 서른까지는 하고 싶은 거 한다고 선언 후 아직도 그러고 사는 사람. 연극과 뮤지컬을 오가며 활동하려고 노력 중. 현재 성신여대 근처에서 CUENTO라는 바를 운영하며 위스키 바와 연극을 융합하는 새로운 시도를 하는 중.
@main___ji @bar_cuen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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