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를 위한 행동: 백래시를 말하다
거부와 추동의 힘으로 ‘이후’의 이후를 다시 쓰기
정리_연극in 편집부
제261호
2024.09.12
2018년 연극계 미투 운동 이후 웹진 연극in에서는 해마다 ‘미투 이후 1년, 연극은 달라졌는가?’, ‘미투 이후 2년, 무엇을 ‘더’ 바꾸어야 하는가’, ‘미투 이후 3년, 우리의 연극을 돌아보다’라는 기획을 마련해 연극 현장의 변화를 기록하고자 했습니다. 그리고 미투 이후 3년을 넘어서는 시점인 2021년, ‘‘이후’의 이후를 상상하기’라는 기획을 통해 보다 종합적인 관점에서 현실을 진단함으로써 도래할 연극의 미래를 그려보려 시도했습니다. 이를 위해 연극인 좌담에서부터 관객 설문조사, 제도권 시상제도 분석, 그리고 예술지원사업 선정작 조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맥락에서 변화를 추적하고 앞으로 나아갈 길을 모색했습니다. 그 후 다시 3년이란 시간이 흐른 2024년, 연극in은 다시 한번 질문합니다. 지금의 연극은 어떤 현실을 맞닥뜨리고 있는지, 이전과는 또 다른 방식으로 듣고 말해보려 합니다. 세 번째 기사에서는 ‘연극계 백래시 사례수집 설문조사’의 결과 분석을 토대로, 우리가 바라는 연극 창작 환경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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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
2024년 9월 2일 월요일 14시-16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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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행:
이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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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
샬뮈(서울프린지네트워크 스태프), 전서아(극작가, 연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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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관:
김슬기(웹진 연극in 편집장), 예준미(웹진 연극in 에디터), 이인혜, 나수경(서울연극센터 웹진 연극in 담당자)
- 이산
- 오늘 좌담에서는 미투 운동 이후 지금에 이르기까지 연극계에 드러난 백래시에 관해 이야기를 나눠보고자 합니다. 마침 제9차 대학로 X포럼 <연극계 백래시, 어떻게 맞서나갈 것인가 - <두 메데아> 보이콧 운동을 경유하여>(이하 포럼) 이후 후속 포럼을 준비하는 모임에서 전서아 님, 샬뮈 님과 함께 연극계 백래시 사례수집을 위한 설문조사를 열게 되었는데요, 두 분을 모시고 설문을 기획한 취지와 결과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려고 해요. 전체 설문 결과는 오늘의 좌담 기사가 발행되기 전 대학로X포럼 페이스북 페이지에(새 창으로 열기) 공개할 예정입니다. 우선 후속 포럼을 준비하는 모임에 참여하게 된 계기, 그리고 그 활동 중에서도 백래시 설문조사를 기획하기로 마음먹게 된 동기가 궁금합니다.
- 샬뮈
- 사실 저는 <두 메데아> 보이콧 연명 시점부터 고민이 깊었어요. 언론을 통해서 미투운동을 어렴풋이 알고 있는 상황이었는데요. 막상 연명을 하려니 알고 있는 정보도 부족하고, 사태를 바라보는 시선에 스스로 확신이 들지 않아서 결국 끝내 연명을 하지 못했습니다. 이 사건을 고민하던 차에 포럼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현장에 참여했는데, 엄청난 충격이었어요. 미투 운동 이후 연극계 안에서 정작 필요한 이야기들을 나누지 못했고, 그게 곪아서 드러났구나 싶었죠. 앞으로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고민하면서 후속 모임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백래시 사례를 모아보자는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서아 님이 설문을 해보는 게 어떨지 제안해주셨고 모두가 동의했지요.
- 서아
- 저는 <두 메데아> 보이콧 운동과 관련해서 이야기 나누는 자리가 있다고 해서 포럼 준비 모임부터 참여했어요. 그런데 포럼 현장에서 논의가 오가는 양상을 보면서 이 현장이 일종의 백래시를 보여주는 것 같다는 인상을 받았거든요. 이게 저만의 인상인지 궁금했고, 연극계 전반에서 어떤 식으로 백래시가 이루어지고 있는지 궁금해서 설문조사 기획을 제안했습니다.
- 이산
- 저는 이윤택 성폭력사건 공동대책위원회에 참여했지만 그때는 형사 소송 과정에 집중했었고, 연희단거리패 구성원들이 겪은 어려움이나 그 안에서 일어났던 2차 가해에 대해서는 <두 메데아> 보이콧 연명을 통해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어요. 포럼에서 오가는 이야기를 들으며 이런 생각들을 했습니다. 우리가 예술계 내 권력을 이용해서 상습적으로 성폭력을 저지르는 가해자들이 가해를 중단하고 대가를 치르도록 사안의 심각성을 알리며 미투 운동을 했잖아요. 그런데 무엇 때문에 그 운동을 했는지, 또 무엇을 바라는지 충분히 이야기할 기회가 없었던 거예요. 가해자가 처벌받는 것 자체도 어려운 상황이었고 2차 가해를 방어하는 데 힘을 쏟아야 했으니까요. 포럼 자리에서 ‘가해자가 그만큼 잘못한 게 아니다’라는 식의 이야기가 오가는데, ‘우리가 추구하는 가치와 바라는 변화는 이것이다, 그러니 그 사람이 반성 없이 연극계에 돌아올 수는 없다’라고 말하기가 생각보다 힘에 부치더라고요.
- 서아
- 포럼 때 대학 극회 활동 중 벌어진 2차 가해에 대해 직접 이야기하신 분이 계셨어요. 너무 충격적이었죠. 저는 연극영화과 출신인데, 어렴풋하게나마 미투 운동 이후 교육 현장도 많이 바뀌었을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아직도 교수나 선생이라는 이름으로 위계폭력, 성폭력이 자행되고 있다는 게 놀라웠고, 이게 우리의 미래가 될까 봐 무서웠던 것 같아요. 그래서 처음에는 미투 운동 이후 연극계에 진입한 세대의 상황을 알아보고 어떻게 연결될 수 있을지 고민하려는 취지에서 설문조사를 제안했어요. 기획 단계에서 두 분과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면서 폭넓은 설문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백래시 사례수집 설문조사의 응답 분석
- 이산
- 사실 ‘미투 운동이 이룩한 변화를 되돌리려는 시도’를 백래시로 규정하면서도, 백래시라는 단어 자체를 선뜻 사용하게 되지 않는다는 이야기도 나눴죠. 그래서 먼저 미투 운동에 대한 인상을 물어본 이후에 백래시 경험의 항목을 객관식으로 제시하고 그걸 설명하는 주관식 응답을 받았어요. 또 그에 대해 어떤 대응을 했는지, 앞으로 어떤 변화나 대응책이 필요한지 물어봤는데요. 질문 자체에 우리가 모으고자 하는 이야기와 전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함께 담으려고 했습니다. 응답자에게 대응을 해봤는지 묻는 것 자체가 대응 시도를 촉구하는 거고, 이후 대응책의 필요를 묻는 것도 동료가 되어 달라는 의사가 담긴 것이었으니까요.
- 샬뮈
- 맞아요. 저는 설문의 구성이 질문을 던지면서 우리가 하고 싶은 이야기, 그러니까 백래시가 있다고 힘주어 이야기하는 방식이라고 생각했어요.
- 서아
- 백래시라고 판단하기에 애매한 상황을 설문 선지를 참고해 확인할 수 있도록 의도하기도 했지요.
- 이산
- 생각보다 응답자 수가 많지는 않았습니다. 총 127명의 응답으로 마무리되었는데요. 응답자 통계를 살펴보면, ‘연극계 진입을 준비 중이거나 현재 종사하고 있음’이라고 응답한 경우가 87명, ‘관객’이 40명으로, 기대했던 것보다 관객 응답률이 높았던 것 같아요. 연령대는 20대가 50명으로 가장 많았고, 30대 39명, 40대 25명 순입니다. 성별로 보면 여성이 109명이고요.
- 서아
- 여성이 많을 건 알았지만 이렇게 차이 날 줄 몰랐어요.
- 이산
- ‘남성’을 선택하신 분이 10명, ‘논바이너리’, ‘기타’를 선택하신 분이 8명이고요. 그리고 122명이 ‘수도권’에서 활동한다고 응답했어요. 그 외 5명 중 2명은 ‘해외’에서 활동하시는 분들이었고요.
- 샬뮈
- 서울 이외 지역에서의 응답이 없는 게 아쉬웠어요.
- 이산
- 설문 초반에 “‘연극계 미투 운동’이라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장면은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을 넣었어요. 전체 응답자 127명 중 65명이 이윤택 사건과 관련된 키워드를 언급했고요. 그중에서도 구체적으로 ‘이윤택 사과 기자회견’과 같은 장면을 떠올린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다음으로 SNS나 온라인 커뮤니티의 흐름을 이야기한 응답이 많았고, 가해자나 관련 단체 이름만 쓰신 분들도 많았어요.
- 샬뮈
- 이윤택뿐만 아니라 오달수나 오태석, 이명행 등 특정 인물이 바로 떠오르는 경우가 많았죠.
- 이산
- 가해자의 이름이 남는다는 게 특징적이라는 생각도 들었어요. 언론 보도에서 범죄자의 이름을 봤다고 해도, 보통 사건 유형과 같은 특징을 기억하지 이름이 각인되기는 쉽지 않잖아요. 연극을 배우면서, 만들면서, 보면서 대표성을 가진 인물로 반복해서 접했기 때문에 가해자의 이름이 강하게 남는 것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백래시 경험을 묻는 객관식 질문(복수 응답)에서는 어떤 응답의 비율이 제일 높았나요?
- 샬뮈
- ‘페미니즘에 대한 검열, 비하, 조롱’(43%)이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요. 그다음으로 ‘성희롱·성폭력 가해자를 비호하거나 가해 사실을 은폐’(41%), ‘미투 운동에 대한 폄하, 축소, 왜곡’(41%)이 그 뒤를 이었어요. ‘성별고정관념에 따른 성역할 강조’도 40% 정도로 큰 비중을 차지하고요.
- 이산
- 객관식 응답에 대한 구체적 설명을 요청한 주관식 질문에서도 페미니스트 혐오, 가해자 옹호, 성역할 강요 등의 답변 유형이 많았어요. 오디션 현장에서 ‘페미니스트는 아니죠’라며 사상검증을 했다는 사례도 있었고요.
- 샬뮈
- 부적절한 발언을 한 뒤 ‘이러다 미투 걸리는 거 아니냐’는 식으로 미투 운동 자체를 폄하하고 조롱한 사례도 있었습니다.
교묘해진 백래시, 왜 가해자를 옹호하는가
- 서아
- 저는 설문의 답변들을 보면서 백래시가 좀 더 교묘해졌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장난이었어, 농담이야’라는 식으로 은근히 불편하게 만드는 방식이 많은 것 같아요. 또 가해자를 옹호하는 사람들이 조성하는 분위기, 예를 들어 가해자의 재능, 업적을 언급하거나 친분을 드러내는 방식의 백래시도 있죠. 그런 말과 행동은 2차 가해로서 파급력을 만든다고 느꼈어요.
- 이산
- 그렇게 되면 논쟁을 하기가 어렵죠. 가해자의 능력을 칭찬하는 순간, 가해자와 피해자가 같은 층위에서 싸울 수 없으니까요. 포럼 때도 그런 순간들이 있었잖아요. 가해자를 칭송하는 것의 의도, 사회적 배경, 효과를 이야기해야 하는데, 그런 층위의 대화는 잘 하지도 않을뿐더러 또 그런 화두들이 바로 떠오르지도 않는 거예요.
특히나 언론의 주목을 받은 사건의 경우 가해자가 인지도가 높고 분명한 이미지를 가진 경우가 많아요. 설문 응답 중에서도 ‘본인이 기억하는 이명행 배우의 부드러운 이미지들이 그 사람의 행위와 충돌해서 힘들다’라는 답변이 있었죠. 그러니까 가해자에 대해선 이런 식으로 사람들을 갈등하게 만드는 정보가 퍼져있는데 피해자는 전혀 드러나지 않는 거예요. 피해자 역시 긍정적인 이미지를 가졌다 해도, 2차 피해의 위험 때문에 신원을 드러낼 수는 없고요. - 서아
- 아마 포럼 때 발언하신 분들은 자기 의견을 말했다고 생각하시겠지만, 결과적으로 가해자나 특정 인물을 대변한 셈이잖아요. 가해자가 엄청난 변호를 받는 느낌이었어요. 반면 피해자는 멀리 떨어져 있는 것처럼 대화가 진행됐고요. 저는 그게 바로 2차 가해라고 강하게 느꼈어요.
- 이산
- 피해자들은 계속 ‘난 여기서 중요한 사람이 아니고, 언제든 대체될 수 있는 사람이다’라고 느끼는데, 가해자는 대체될 수 없는 사람이라고 인식되는 게 너무 불공평하죠.
- 서아
- 대체할 수 없는 실력이 있다는 게 가해자를 복귀시키는 논리이기도 하잖아요. 그런데 대체할 수 없는 실력이라는 게 도대체 무엇인가요? 대체할 수 없다면 복귀를 해야만 하는 건가요? 사실 저는 대체되지 않으면 뭐 어떤가, 하고 생각하거든요.
- 샬뮈
- 물론 연출에 뛰어난 재능을 가진 사람이 있겠죠. 하지만 결국 연극은 공동의 창작영역인데도, 연출자의 권위가 너무 높고 그를 대체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분위기가 있어요. 저는 연극계 사람이 아니니까 이해하기 힘든 측면인데요. 과연 그러한 능력이 범죄의 심각성이나 그에 대한 처벌 위에 있어도 되는 건지, 연극이 아닌 다른 영역에서도 그렇게 이야기할 수 있을지 궁금해요.
- 서아
- 연극이 아닌 다른 일터라고 가정해보면, 보통 한 사람의 능력을 폭력 사건과 별도로 생각하기 마련이잖아요. 저에게 연극은 일터인데, 저는 그 사람이 정말로 대체될 수 없을지언정 그에 대한 처벌은 별개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누군가는 예술작품과 창작자를 동일시하는 거예요. 연극이 일이고 노동이라는 감각이 없으니, 그 사람의 결과물이 그 사람 자체로 쉽게 도식화되는 거죠. 일터라고 생각하고 바라보면 너무 끔찍하지 않나요?
- 샬뮈
- 예술은 꼭 지켜야 하는 절대적이고 소중한 가치라는 생각이 지배적이다 보니, 사람과 분리해서 노동으로 생각하기 어려운 것 같아요.
- 서아
- 공적으로, 동시에 사적으로 긴밀하게 오랜 시간을 알고 지낸 사람이 가해자라고 하면, 심정적으로 동의한다는 말을 하고 싶어지는 거예요. 그런데 마음 아픈 것은 아픈 것이고, 처벌과 재발 방지를 위한 노력을 같이 할 수 있어야 하는 거죠.
- 이산
- 안타까울 수 있고 나까지 위험에 처할 것 같은 위기감이 들 수도 있어요. 그런데 가해자를 반성하게 하는 방향으로 그 힘을 쓸 수 있거든요. 적어도 피해자를 보호할 수 있게, 문제제기를 비난하지 않고 판단을 유보하고 발언을 유의하는 정도로요. 가해자와 연루된 관계에서 자신이 가진 힘을 어떤 방향으로 쓸 건지 선택할 수 있다는 걸 더 널리 공유하고 싶어요.
- ‘무용인희망연대 오롯_#위드유’가 무용계 교수 성폭력 사건을 지원했을 때 자문을 위해 모임에 참석한 적이 있어요. 무용을 가르치는 활동가들이 가해자와 연이 있기 때문에 괴롭지만, 학생들을 가르치는 입장에서 가만히 있을 수 없다, 가해자와의 관계가 있는 만큼 오히려 피해자를 지원해야겠다고 하셨어요. 그런 표현을 그때 처음 들었는데, 그 이후 이와 같은 방향으로 힘을 쓸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자주 했죠. 그 마음이 피해자에게 얼마나 강한 힘을 줬을까 싶었거든요. ‘무용계에서 활동하고 있는 우리가 그 피해 사실을 다 알게 되는 것을 피해자가 원하지 않을 것이다’라며 피해자가 먼저 요청하지 않으면 만남을 시도하지도 않으셨어요. 그 모든 말들에 얼마나 많은 고민이 담겨 있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내가 가진 힘을 어떻게 쓸 것인지 깊게 고민하고 동료들과 토론한 데서 나온 말들이었죠.
- 샬뮈
- 피해자가 얼마나 위축될지 배려하면서도, 책임을 안고 이 모든 상황을 균형 있게 바라보려면 엄청난 섬세함과 고민이 필요하죠. 현실적으로 누구나 그런 실천을 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을 거예요.
- 서아
- 가해자를 옹호하고 피해자를 비하하는 것이 아주 개인적인 선택으로 여겨지지만, 설문조사 결과에서 알 수 있듯이 장기적으로 보면 많은 사람이 무력감을 느끼게 만들고 업계에 대한 신뢰도와 애정을 떨어뜨리잖아요. 그러니 내 선택의 영향을 생각할 필요가 있어요. 가해자를 옹호하는 것이 가해자를 위한 것도, 업계를 위한 것도, 연극을 위한 것도 아니라는 거죠.
- 이산
- 저희도 피해자를 지지할 때 그게 모두 피해자를 위해서라고는 말할 수 없는 부분이 있잖아요. 내가 겪은 경험, 내 주변 피해자의 상황을 이입하기도 하고, 내가 추구하는 가치와 피해자의 주장이 같아서 뜻을 함께하기도 하죠. 나에게도 어떤 동기와 목표가 있는데, 가해자를 옹호하는 사람도 그럴 거예요. 본인의 이해관계, 추구하는 가치, 목표와 의도가 분명히 있는데, 그것을 서로 이야기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포럼 때도 저는 누가 나쁜 사람이냐 아니냐를 이야기하는 게 무의미하다고 생각했는데요. 서로의 관계나 위치, 이해를 밝히지 않은 상태에서 그 사람의 평판을 주고받는 게 논점을 흐리면서 대화를 어렵게 만들었거든요. 내가 연극하고 싶은 마음과 그 사람의 안위가 강하게 붙어 있는 게 무얼 의미하는지, 이런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저도 그런 느낌을 받거든요. 피해자가 연극을 계속하느냐가 저의 안위와 붙어 있어요. 이것을 밝히고 대화할 수 있는 힘이 성평등한 사회를 만들어나가는 동력이 된다고 생각해요.
- 샬뮈
- 저는 포럼 현장에서 어떤 분이 가해자를 변호하면서 ‘그분이 그렇게 잘못한 게 없습니다’라고 했던 말을 곱씹었어요. 가해자와 밀접한 관계에서 연극을 하고 있다가, 가해자를 둘러싼 사건들로 인해 연극을 하지 못하는 것에 울화를 느끼는 것으로 보이기도 했거든요. 그러니 여기 모인 사람들은 ‘내가 연극을 할 수 없게 만드는 사람들’인 거죠. 집에 돌아가면서 그분은 진짜 절박함에서 토해냈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가해자를 둘러싸고 같이 예술을 하던 주변부 모두가 공고한 조력자는 아니었을 거예요. 그런데 그들의 목소리를 듣는 공론의 장도 없었고, 쉽사리 이야기할 수 없는 어려움도 있었겠죠. 감정이 가라앉으면 어떻게든 서로 이야기해봐야 한다고 생각해요. 가해자를 옹호하는 내면의 목소리를 더 파악해야 하지 않을까요. 그 사람에게는 연극이 너무 중요한 거예요.
- 서아
- 동시에 그런 식의 절박함이 너무 많은 폭력을 발생시키기도 했어요. 포럼 중에 ‘누구 같은 걸출한 연출가 한 사람이 큰 작품을 해서 단원들 월급도 주고’ 이런 식의 발언이 있었잖아요. 이런 발언은 같이 연극하는 사람들을 우습게 만들뿐더러 이것이야말로 미투 운동 때 가장 경계했던 권력이라고 생각해요. 여전히 그렇게 생각하니 또 다른 가해를 하기도 하고요. 절박해서, 너무 연극을 사랑해서 폭력적으로 바뀔 수도 있는 거잖아요.
고립, 그리고 공공 영역의 부재
- 이산
- 저는 “연극계 백래시와 관련해서 누구와 이야기를 나누십니까?”라는 질문에 ‘연극계 동료’ 응답이 85%일 줄은 몰랐어요. 아마도 업계 상황을 알아야 이야기가 통하니까 그렇겠지요?
- 서아
- 모든 직군에서 80% 이상이 ‘연극계 동료’를 택했죠.
- 샬뮈
- 저는 그 결과가 연극인들이 고립되어 있는 것으로도 읽히는데요. 상황의 특수성도 있겠지만, 사건을 마주할 때는 다양한 각도도 필요하잖아요. 다른 시선으로 시야를 넓힐 수 있는데, 너무 안에서만 돌고 도는 이야기를 하면 상황을 벗어나기가 어려운 것 같아요.
- 서아
- 연극에 종사하지 않는 사람들이 이 특수성을 이해하지 못해 말하기 어렵기도 하지만, 미투 운동 때의 경험도 커요. 복합적인 관계와 위계가 얽혀있는 상황에서 폭력이 발생하는데 종사자가 아닌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하면, 단순하게 ‘연극계는 그런 문제가 있다’라는 식으로만 인식되니까요. 상황을 바꿔가기 위해 노력하는 동료도 많은데 그런 노력까지 먹칠하는 것 같아 말하지 못할 때도 있어요. 동료들에게 말하는 것과 다르다는 걸 아니까요. 그게 고립을 만들어내기도 하죠.
- 이산
- 어떤 질문을 받느냐도 중요해요. ‘연극계는 정말 그래?’라는 질문은 이야기를 편안하게 이어 나갈 수 없게 만들죠. 또 연극을 잘 모르는 이들이 자세히 물으면 내 이야기가 일반화되어 오해를 살까 봐 조심스러워지기도 하고요. 사실 연극계 동료끼리도 프로덕션 내부의 일들을 자세히 이야기하는 게 약간 금기시되어있기도 하잖아요. 그래서 어려운 상황을 이야기하려면 많은 설명이 한꺼번에 필요해지는 것 같아요.
- 샬뮈
- 연극 작업은 작품에 따라, 자신의 위치에 따라, 누구와 함께 하는지에 따라 상황이 달라지니까, 같은 팀 안에서 다른 해석에 부딪히기도 하겠죠.
- 이산
- “창작 현장과 연극계 전반에서 백래시에 대한 어떠한 대응책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십니까?”라는 문항에 대한 주관식 응답에서도 ‘말할 수 있는 공론장이나 커뮤니티’가 필요하다는 답변이 제일 많았어요.
- 샬뮈
- ‘소통창구, 공간’ 이런 표현이 자주 언급됐죠. 누구나 그런 문제가 있을 때 이야기 나눌 수 있는 공공의 공간이 있다면 좋지 않을까요.
- 서아
- 백래시 대응 시 어떤 창구가 있는지 모르겠다는 응답도 있었죠. 이런 문제가 있을 때 찾을 수 있는 창구가 없으니 동료에게 이야기할 수밖에 없게 돼요. 그러니 자구책을 마련하거나, 개인적 차원에서 대응할 수밖에 없는 현재의 실태를 명확하게 확인한 것 같습니다.
- 샬뮈
- “다음과 같이 연극계 백래시에 대한 대응을 시도한 경험이 있으십니까?”라는 질문에 대한 ‘관객’ 응답을 보면 ‘온라인참여(연명, 공유 등)’가 65%로 가장 많았고 ‘연극계 종사자’도 ‘공론화(SNS 게시, 서명운동 등)’, ‘공동체 내의 토론 및 논의’를 선택한 경우가 적지 않았어요. 어떤 사건이나 현장에 대처할 때 온라인이 가장 활발한 창구로 쓰이고 있다는 건데요. 하지만 온라인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일상에서 거리에 흩어져있는, 나와 바로 소통할 수 없는 무명의 상대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오프라인 창구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어요. 사이버 불링에 대한 우려도 큰데, 사실 이건 온라인 상의 페미니즘 테러와 연관된 부분이기도 하고요.
- 이산
- “연극계 백래시에 대응하기 위해 지금 나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에 대해서는 상위 세 개 응답 비율이 비슷한데요. ‘예술지원기관 및 공공극장의 가이드라인’, ‘말할 수 있는 커뮤니티’, ‘대응을 조력할 동료’가 그 응답입니다.
- 서아
- ‘성인지역량강화 교육’의 응답률은 거의 0%에 수렴하거든요. 서약서를 쓴다거나 문화예술분야 성희롱·성폭력 예방 교육 이수가 추가적 대응책으로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분들은 거의 없어요. 교육이나 개인의 서약에 맡기는 것만으로는 유효하지 않다고 느끼는 거죠.
- 샬뮈
- 문화예술분야 성희롱·성폭력 예방 교육이 하나의 절차로 있을 뿐이지, 현장에서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의미로도 읽혔어요.
- 이산
- 교육에 대한 지원도 적어서 거의 온라인으로만 수강하니까 한계가 많죠.
- 샬뮈
- 온라인 교육은 틀어놓고 제대로 듣지 않아도 클릭 몇 번으로 교육수료증을 받을 수 있어요. 현장 교육이 더 강화될 필요가 있습니다.
- 이산
- 물론 현장에서 더 집중되는 것도 있지만, 모두가 모여앉아 듣는 것 자체에 현장 교육의 효과가 있죠. 누군가는 동의하고 누군가는 꺼리는 태도가 다 눈에 보이는 장이 만들어지잖아요.
- 샬뮈
- 공공의 영역에서 그만큼의 시간, 인력, 예산을 확보해야 하는 거죠. <두 메데아> 사건에 대한 대학로극장 쿼드의 대응을 보면서 많은 분들이 공공기관의 역할에 대해 고민했잖아요. 백래시나 성폭력 사건을 개인의 차원에서 해결하면 엄청난 부침이 생기고 계속 균열이 발견되죠. 개인이 아니라 공공의 장에서 논의를 길게 끌고 가야 하는데, 공공 영역이 그럴 의지가 있는지는 의문이에요. 그러니 제도에 대한 신뢰도 갖기 어려운 거예요.
무력감의 실체와 영향
- 샬뮈
- “연극계에서 이와 같은 백래시가 얼마나 심각하다고 체감하십니까?”라는 질문에 대한 응답을 5점 척도(1=심각하지 않음, 5=매우 심각)로 받았는데요. 관객은 3.78점, 연극 종사자들도 3.70점, 평균은 3점대 후반으로 비슷했어요. 그리고 “연극계 백래시에 대해 본인이 시도했던 대응은 무엇이었습니까?”라는 질문에 연극 종사자들은 ‘표정, 몸짓, 자리를 벗어나는 등 비언어적 표현’이라고 답한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았고요. 그만큼 백래시 상황에서 언어적 표현이 힘들다는 걸 확인할 수 있었는데요.
- 서아
- 상황 안에서 백래시를 즉각적으로 판단하기 힘든 경우가 많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그렇지만 예상외로 직접 문제제기 하시는 분들도 있었어요.
- 이산
- “백래시에 대한 대응을 고려할 때 느낀 어려움은 무엇입니까?”에 대한 응답으로는 ‘대응해도 어차피 상황이 바뀌지 않을 것 같다는 예측’(55%), 그다음으로 ‘커리어와 평판에 대한 불이익 우려’(48%)가 높은 응답률을 보였어요. 상황이 바뀌지도 않을 건데 내 커리어에 불이익만 올 것 같은 거죠.
- 서아
- 그리고 ‘문제 제기에 동의하는 사람이 없어서 고립될 거라는 불안’이 세 번째로 높은 응답률로 집계되었는데요. 저는 이게 다 같은 맥락이라고 생각해요. 나만 예민한 사람으로 여겨지고 피해를 받고, 이 조직이나 상황은 변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는 거죠.
- 샬뮈
- 연극계 백래시에 대한 본인의 대응 경험을 묻는 질문에 ‘문제제기를 했으나 동료들의 싸움이 될까 봐 중단했다’는 주관식 응답도 있었어요. ‘대응할 수 없는 경우가 더 많다’는 응답도 있었고요.
- 이산
- “연극계 백래시가 본인에게 어떤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십니까?”라는 주관식 질문에 대한 47명의 응답 중 무력감을 언급한 경우가 8명 있었는데요. 이렇게 반복적으로 등장한 단어는 무력감이 유일해요. 성폭력에, 백래시에 대응해도 성차별 구조 자체가 바뀌지 않는다는 사실이 무력감을 야기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샬뮈
- 또 “백래시에 대한 대응을 고려할 때 느낀 어려움은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에 대해서도, ‘대응해도 어차피 상황이 바뀌지 않을 것 같다는 예측’이 높은 응답을 차지했는데, 이것 역시 무력감을 확인할 수 있는 지표였어요. 사실 무력감은 설문조사에 참여한 분들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가 겪고 있는 것이기도 하죠. 저희도 이 무력감에 대항하고자 모였지만 뾰족한 해결책을 찾기 어렵다는 걸 알고 있으니까요.
- 이산
- 무력감은 상대적인 거잖아요. 미투 운동이 활발하던 시기에 가졌던 무언가를 잃었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당시는 논쟁이 가능했죠. 2019년 즈음에 대학로의 어느 술집에 들어갔는데 이 테이블 저 테이블에서 성폭력 이야기를 하는 걸 봤어요. 그게 생경하고 두려웠던 기억이 있는데요. 예전에는 성폭력이라는 말을 입에 담는 것조차 금기시했으니까요. 그런데 지금은 그 말을 입에 담기 어려워하는 게 아니라 왜곡된 방식으로 쉽게 입에 담는 느낌이 있어요. 성폭력 문제에 대해 보수적 관점을 가진 경우에 미투라는 말을 더 쉽게 쓰는, 그러니까 성폭력이라는 말을 미투라는 말로 쉽게 대체하는 것 같달까요. 확실히 지금은 예전보다 논쟁을 하기 어렵고, 무력감은 말을 많이 할 수 있는 시기를 지나면서 갖게 되는 감각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 서아
- 저는 미투 운동 때 막 연극계에 진입한 작업자로서, 연극계의 체제가 바뀌겠다는 희망이 있었어요. 스승과 제자, 선후배, 나이, 역할 등 연극계를 구성하는 시스템이 있는데, 모두가 잘못된 걸 알면서도 지켜야 했던 룰이 다 무너진 거예요. 세상이 바뀔 수 있고 앞으로 내가 부당한 일을 겪어도 이 업계는 그것을 내버려 두지 않을 것 같았죠. 모두 다른 위치에서 한목소리를 냈던 기억이 있어서 자정 가능하다는 믿음이 제가 계속 창작을 할 수 있는 힘이었어요. 하지만 지난 2, 3년 사이 위계폭력이나 성폭력의 가해자가 교수로 임용되고, 현장으로 복귀하는 걸 목격하게 된 거죠. 누가 그를 임용했는지, 공공이 누구에게 기회를 주는지 생각해보면, 우리가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는 무력감, 업계가 변하지 않는다는 위기감이 들어요. 설문 결과에서도 업계가 동조하고 있다는 응답이 있었잖아요. 이건 연극 종사자뿐만 아니라 관객들이 느끼는 분노이기도 하거든요.
- 샬뮈
- 관객 응답에서는 특히 가해자를 캐스팅하는 것에 대한 엄청난 분노가 느껴졌어요.
- 서아
- ‘가해자를 캐스팅하는 걸 연극계, 공연계에서 묵인하는 것 아니냐’는 답변도 눈에 띄었는데요. 가해자 복귀의 문제를 단순히 한 작품의 문제만으로 보고 있지 않은 것 같아요. 한편으로는 성인지 감수성이 떨어지거나 성차별적 내용을 공연하는 경우도 눈여겨보고 있었고요. 또 미투 운동 이후에 유입된 관객과 정보량이나 관점 차이가 있다는 언급도 있었죠. ‘시간이 지났기 때문에 너무 오래전 일이고, 다른 관객은 이런 거에 대해 신경을 쓰지 않는다는 점에서 고립감을 느낀다’는 거예요.
- 서아
- 우리가 미투 운동을 관객분들하고 같이했잖아요. 함께 공연계를 위해 운동했는데, 백래시가 더 큰 배신감으로 느껴질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배우에 대한 비난이기도 하지만 그를 캐스팅하고 그와 함께한 모두에 대한 분노일 수도 있고요.
- 이산
- 실제로 연극계에 종사하면서 내가 사건에 대해 느끼는 거리감은 멀더라도, 관객 입장에서 보자면 나는 멀지 않은 사람이기 때문에 관객의 질문에 답할 수 있어야 하는 거죠.
- 샬뮈
- 관객들은 그런 캐스팅에 정말 민감해요. 작품을 본다는 게 많은 가치를 투여하고 반영하는 적극적인 행위이기 때문에 더 목소리를 낸다는 생각도 들고요.
- 이산
- 사회에 대한 신뢰, 기대와도 관련 있는 것 같아요. 연극인들이 연극계에 계속 있어야 할지 고민하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겠죠.
- 서아
- 백래시가 사안이나 사람에 대한 인식을 넘어 업계와 반드시 연결되는 일이고, 가해 상황도 공연팀의 분위기, 태도와 직결되니까 관객분들이 이렇게 해석하시는 것도 무겁게 받아들여야죠.
- 이산
- 결국 저희가 백래시 이야기를 듣고 싶었던 건, 징후를 알고 방지하자는 거였죠. 백래시로 그전의 사건 대응을 폄하하거나 부정해버리면, 가해자가 처벌받았어도 다음의 사건을 방치하는 상황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성희롱·성폭력으로 명명하기 어려운 차별이나 언행을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 샬뮈
- 저는 최근 딥페이크 범죄를 보면서 이건 우리 사회가 같이 만들어낸 재앙이라고 생각했어요. 사실 N번방 사건이 잘 처벌되고 페미니즘에 대한 올바른 사회적 담론이 만들어졌다면 터질 수 없는 사건이었죠. 지금 모두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고요. 문제가 터지기 전에 잘못된 것을 이야기하고 고쳐 나가야 하는데, 그렇지 않으면 또 손 쓸 수 없이, 다 같이 울분을 터트리며 현장에 나왔다가, 또 다시 분리되고 유리되는 상황이 반복될 수밖에 없어요.
- 이산
- 그런 반복에서 오는 무력감도 있겠지요.
- 샬뮈
- 이 자리에서 꼭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이 있는데요. 우리가 백래시를 이야기하는 건, ‘남자가 잘못했다, 발언하는 사람을 매장하자’ 이런 맥락이 아닙니다. 동료로 함께 살아가기 위해서 단절된 지점을 찾아 소통하고 싶은 거거든요. 백래시하는 방식으로 이야기하는 게 누군가를 위축시키고 상처를 주면서 문제가 될 수 있음을 말하고 싶었어요. 정말 모른다면 배울 수 있지 않을까요? 혹은 알면서도 상처를 주고 있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지 이야기하는 자리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페미니즘은 남성을 배제하는 게 아니라 같이 살아가는 방식을 모색하는 거니까요. 서로 이야기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지 않고, 각자 눈 가리고 싶은 걸 하면 우리는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할 거예요. 그런 이야기를 조심스럽더라도 더 많이 했으면 좋겠어요. 지금은 너무 뾰족하니까 힘들 수 있는데 다듬어나가야 하지 않을까요.
- 서아
- 전 아직도 포럼의 이미지가 사라지지 않거든요. 아마 쉽게 안 사라질 것 같아요. 사실 그 포럼에서 ‘다들 연극 사랑하시죠?’ 이렇게 외치고 싶었거든요. 아까도 이런 이야기가 나왔지만, 연극을 너무 사랑하고 지키고 싶어서 간절하게 이야기한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그런데 저도 연극을 너무 사랑해서 그 자리에 있었거든요. 무엇이 연극을 사랑하는 ‘행동’인지 생각해봐야 한다고 느꼈어요. 우리가 믿었던 연극이 성폭력 성희롱을 방조하고, 가해자를 옹호하고, 반성과 재발방지 대책 없이 돌아오게 만드는 일이라면 그걸 왜 해야 하는지, 내가 지키고 있는 것들이 정말 지켜져야만 하는 것인지. 이런 질문을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연극 종사자로서도 질문해야 하고, 연극을 사랑하는 마음으로도 질문해야 하는 거죠. 저도 한 사람의 종사자이자 직업인으로서 연극을 사랑하는 행동을 많이 할거거든요. 이 행동이 다음 세대에 부끄럽지 않은지 질문하면서 나아가면 바뀔 수 있다고 믿습니다. 우리는 이미 바뀌어봤잖아요.
- 이산
- 사랑의 방식이라는 것이 풍요를 이끌기도 하지만 자신이나 상대를 해치기도 하는 결과를 너무 많이 봤거든요. 그게 사랑인지 아닌지를 이야기하기보다 그 방식이 무엇을 초래했는지를 이야기해야 한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런 이야기를 나눠볼 수 있는 기회가 더 만들어지면 좋겠어요. 연극을 한다는 건, 제작비를 확보하고 작품을 무대에 올리는 것뿐만 아니라 아주 구체적인 많은 과정들로 구성되잖아요. 그 우선순위가 유연해야 하지 않나 생각이 들고요.
‘연극을 사랑한다’는 말을 더 이상 설명할 필요가 없어질 때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것도 기억해야 합니다.
이번 설문조사는 규모도 크지 않았고, 후속 포럼에서 어떤 설명을 할지도 고민 중이지만 이런 이야기들을 계속 발굴하고 수집할 필요성에는 확신을 갖고 있어요. 이런 구체적인 언어와 순간을 공유하는 게 우리가 무엇을 할지 찾는 힘이 될 거고요. 이후에도 이런 시도들이 지속되면 좋겠습니다. 두 분 오늘 어려운 이야기 함께 나눠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진: 김지성 jasonk17@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