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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문자, 침입자, 목격자

야광 개인전 《카인드 : Kind》 퍼포먼스 <날것의 증거(Raw Proof)>

심세연

제260호

2024.08.29

퍼포먼스의 제목에 집중해보자. 이것은 ‘날것의 증거’다. 전인과 김태리로 이루어진 2인 콜렉티브 야광의 개인전 《카인드》의 작품 중 하나인 영상의 제목은 <침입자>이다. 누가 침입을 하는 것인가? 대체 어디로? 이런 질문들을 하기 앞서 다시 퍼포먼스의 제목이 떠오른다. ‘날것의 증거’. 이 퍼포먼스는 <침입자>에 대한 날것의 증거다.
시작과 함께, 퍼포머들은 줄을 지어 얼굴을 거의 다 가린 가면을 쓰고 등장한다. PS Center의 좁은 복도를 지나 퍼포머들은 이미 가려진 얼굴 사이로도 무표정한 상태를 유지한다. 가면을 쓴 채로 퍼포머들은 <방문자의 초상>이라는 작품 앞에서 사진으로 기록된다. 퍼포머의 이름이 불리고, 각각의 퍼포머에 대해 정면, 측면의 모습이 촬영된다. 그 이후, 첫 번째 장면을 알리는 목소리가 들린다.
퍼포먼스 내내 한 명의 퍼포머는 계속해서 현재 상황을 중계, 혹은 감독하는 역할을 한다. 퍼포먼스를 시작하기 이전, 관객들은 도중에 촬영이 진행될 것이니 진로에 양해를 구한다는 안내를 듣는다. 퍼포먼스가 시작되면, 짐벌을 든 촬영 작가가 3개 정도로 나뉜 방 곳곳을 오가며 퍼포머들의 모습을 촬영한다. 테크노 음악이 연주되는 방을 큰 스크린으로 나눈 채, 스크린에는 짐벌로 촬영되는 영상이 그대로 동시 송출된다.
나는 퍼포먼스의 초반부에 레슬링 경기장이 놓여 있는 가장 큰 공간에 있었으므로, 영상이 동시 송출된다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물론, 이때 내가 보고 있던 레슬링을 하는 두 퍼포머의 모습 또한 잘 보이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비닐 막으로 가려져 있기 때문이다. 실루엣으로, 그림자로, 그들이 서로에게 공격을 하고 있거나 바닥을 뒹굴고 있음을 알아차릴 수 있을 뿐이다. 공연이 조금 진행된 후, 이 비닐 막은 퍼포머들에 의해 가위로 찢겼다. 나는 그 모습을 직접 보지 못했다. 동시 송출되는 화면으로만 볼 수 있었다.
어디에 서 있든, 나는 무엇이 날것의 증거인지 알 수 없었다. 오히려 카메라가 촬영하는 그 비닐의 찢어짐이 더욱 진짜 같이 느껴지는 것은, 내가 시야각이 좁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퍼포먼스 <날것의 증거(Raw Proof)>의 기록 사진. 가로와 세로가 2m 남짓되는 링 위에 두 사람이 앉아 있다. 흰색 바닥에 갈색 물감을 거칠게 칠해두었으며, 바닥에 검고 긴 머리칼 같은 것을 커다란 십자 모양으로 붙여 좌우로 흩뜨렸다. 링 위의 두 사람은 중앙에 가부좌를 틀고 있으며, 한 사람은 붉은 눈의 가면을, 다른 이는 눈과 입 부근이 동그랗게 뚫린 망사를 머리에 쓰고 있다. 사진의 우측에 짐벌을 들고 이들을 촬영하는 이의 뒷모습이 촬영되었다. 촬영자의 맞은편 링 바깥쪽에는 비닐 막이 천장에서 늘어뜨려져 있고, 그 뒤와 옆으로 관람객들이 이들을 지켜보고 있다.

6명이나 되는 퍼포머들의 의상에도 모두 주목해야 한다. 레슬링을 하던 두 명의 퍼포머 중 어떤 이는 포유류 같은 가면을 쓰고, 넥타이를 한 채, 다소 긴 반바지를 입고 있었다. 나머지 한 명은 망사 같은 가면을 쓰고, 얇은 민소매 상의를 입은 채, 빨간 운동복 반바지를 입고 있었다. 또 다른 퍼포머는 메이드복에 망사 스타킹, 포유류의 모습을 한 모자를 쓴 채 손바닥에 걸레를 끼고 공연장 여기저기를 닦으면서 다녔다. 감독의 역할을 하던 퍼포머도 역시 눈, 코, 입만 보이게 얼굴을 가린 상태였고, 한 퍼포머는 커다란 껍데기에 완전히 갇혀 구석에 있었다. 얼굴, 피부, 몸이 완전히 보이는 이는 몸에 부항을 뜨고 있는 퍼포머뿐이었다.
퍼포머들이 쓰고 있는 가면은 포유류의 모습을 하고 있기도 하지만, 그 질감은 곤충의 껍데기 같다. 사진으로 본다면 내장에 가까운 질척이는 느낌일지도 모르겠지만, 실제로 보면 그것은 바삭바삭하거나 우두둑 소리를 내며 부서질 것만 같다. 가면들을 의상과 엮어 생각해본다면, 퍼포머들의 몸은 “인간의 몸이라기보다 괴물과 외계인, 크리처가 등장하는 B급 영화에서 주인공을 공포에 젖게 하는 무엇인가에 가까워 보”1)이는 이형(異形)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그렇기 때문에 무언가 굉장히 과장되어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한다.

<날것의 증거(Raw Proof)>의 기록 사진. 반소매 흰 셔츠 위에 주황색과 짙은 갈색 다이아몬드 무늬 넥타이를 성기게 매고, 검은 반바지를 입은 이가 링 위에 있다. 그는 까치발을 들고 앉아 두 손을 바닥에 짚고 있다. 그의 가면은 얼핏 닭의 머리와도 같은 모양이지만 형태가 모호하다. 그의 뒤편에 망사를 머리에 두른 이가 서있다.

관객이 목격하고 있는 이 순간들. 레슬링하는 두 명의 기묘한 옷을 입은 사람들. 손에 걸레를 낀 사람. 감독처럼 촬영을 진행하는 사람. 부항을 혹처럼 등에 달고 있는 사람. 껍데기에 갇힌 사람. 그리고 계속되는 테크노 음악. 이 테크노 음악은 심지어 나 자신이 클럽에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하게 하며 퍼포머들의 목소리를 잘 들리지 않게 만들기도 한다. 이 모든 시청각적인 요소와 분위기는 관객들이 환영을 보고 있다고 착각하게 만드는 것일까? 환각에 대해 생각한다. 환각은 정말로 존재하지 않는 것인가? 다음 장면 촬영으로 넘어가자는 목소리가 이렇게나 들리는데, 또렷하지는 않아도 누군가 진행하고 있다는 것이 이렇게나 들리는데, 그게 정말 환각이라고 할 수 있을까?
환각은 현실에서 출발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환각은 전부 작은 것에서 출발한다. 나비가 벗고 나간 번데기에서 이 환각은 출발한다. 그것 때문에 퍼포머들은 기이한 형태를 입게 된다. 부항을 클로즈업한 동시 송출 장면에서는 부항의 상품 번호가 너무도 잘 보였다. 안경을 벗으면 그 번호가 잘 보이지 않게 될 것이고, 안경을 벗는다는 것은 분명히 감각이 덜 예민해진다는 것이다. 즉, 덜 예민해지는 그 과정에서 환각이 일어날 수도 있다. 이형(異形)은 이렇게도 발생한다. 부드러운 노브를 돌리듯, 우리가 지각할 수 있는 것들을 이리저리 조절하다 보면 우리가 알고 있는 것 안에서,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의 정도가 어떤 경우에 딱 들어맞을 때, 위태롭게 그 값은 유지된다. 우리는 환각을 느낀다.

퍼포먼스 <날것의 증거(Raw Proof)>의 기록 사진. 메이드 복장에 턱 부분이 손을 뻗은 것만큼 앞으로 긴 가면을 쓴 퍼포머가 서 있다. 그의 좌우와 정면에는 눈과 입 부분이 뚫린 검은 마스크를 쓴 세 명의 인물이 있다. 왼쪽의 이는 마이크를 들고 무언가를 설명하고 있고, 정면에 선 이는 몸을 낮추어 카메라로 퍼포머를 촬영한다. 오른쪽 이는 퍼포머의 긴 가면 아래로 두 손을 넣고 있다. 그의 뒤편으로 가면의 모습을 촬영한 사진이 크게 걸려 있다.

퍼포머들 또한 파편 속에서 환각을 본다. 한 퍼포머는 이렇게 말한다. “내가 누울 자리를 마련해줘. 내가 죽을 자리를 마련해줘. 내가 죽을 연습을 할 자리를 마련해줘.” 그에게 다른 퍼포머가 말한다. “오케이. 좋습니다. 이번에는 좀 더 감정적으로 해주세요.” 퍼포머는 좀 더 울부짖는다. “내가 죽을 자리를 마련해줘.” 관객들은 더욱 흩어진 파편 속에서 환각을 본다. 관객들은 퍼포머보다 알고 있는 정보가 적다. 이 인물은 왜 그렇게 말하는 것인가? 다분히 감정적인 이 대사를 왜 처음에는 감정적으로 말하지 않는 것인가? <침입자>에서 몸에 침도 놓지 않고 부항 자국만 잔뜩 갖게 된 인물은 이것들을 잘라내고 싶다고 한다. 한 퍼포머는 이렇게 말한다. 그것을 잘라낼 수는 없지만 “내가 더 예쁘게 만들어줄 수 있어.” 무엇을 어떻게 더 예쁘게 만든다는 것인가?
관객들은 전시가 어떻게 이루어지는 것인지 날것의 증거를 보는 목격자가 된다. 방문자가 침입자가 될 수 있듯, 목격자가 침입자보다 객관적인 존재라고는 절대 할 수 없다.

[사진 촬영: 홍지영/ 제공: 야광]

야광 개인전 《카인드 : Kind》 퍼포먼스 <날것의 증거(Raw Proof)>
  • 일자 2024.7.26 ~ 8.15
  • 장소 PS CENTER
  1. 야광 개인전 《카인드: Kind》 서문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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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세연

심세연
문학과 연극을 포함하는 예술 텍스트에 관심이 있다. celbb2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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