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리장전2017, 2018, 2019… 옛말하는 날 온다고?
극단 전화벨이울린다 <이반검열>
한현주_극작가
제98호
2016.08.18
‘팝업 씨어터 사태’를 겪은 연출가 김정 씨는 한 인터뷰에서 말했다. (세월호 사건을 연상시킨다는 이유로) 공연 방해를 당하는 순간에도 그것이 검열이라는 것을 몰랐다고. 나는 그의 말과 경험에 적극 공감했다. 그렇게 대놓고 검열을 할 수 있는 시대라고는 생각도 못했거니와, 검열 자체가 옛말이라 여겼으니. ‘어떤 사실이나 현상이 지금은 찾아볼 수 없게...
양정윤 배우(좌)와 조아라 배우(우)
‘팝업 씨어터 사태’를 겪은 연출가 김정 씨는 한 인터뷰에서 말했다. (세월호 사건을 연상시킨다는 이유로) 공연 방해를 당하는 순간에도 그것이 검열이라는 것을 몰랐다고. 나는 그의 말과 경험에 적극 공감했다. 그렇게 대놓고 검열을 할 수 있는 시대라고는 생각도 못했거니와, 검열 자체가 옛말이라 여겼으니. ‘어떤 사실이나 현상이 지금은 찾아볼 수 없게 된 경우를 이르는 말’이라는 사전적 정의로서의 ‘옛말’ 말이다. 어쨌든 이후 검열의 대상을 예술에 한정시켜 생각하거나, 국가 권력에 의한 검열만을 논하다보니 열패감이 스멀스멀 밀려왔다. 그리고 함께 나눌 수 있는 이야기의 폭은 점점 줄어드는 느낌이었다. 작은 무대가 꿈꾸는 드넓은 광장은 우리 사회 전반에 가해지는 검열을 말하고 사유하는 곳이기를 바랐다. ‘권리장전2016_검열각하’의 아홉 번째 작품인 극단 ‘전화벨이울린다’의 <이반검열>은 청소년 성소수자와 세월호 유가족(특히 형제자매) 및 친구의 목소리를 전한다. 동명의 영화에서 모티브를 얻었으며, 모두 인터뷰집이나 구술 자료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공연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뉘었다. 아이들의 말들을 담담하게 옮기는 전반부와, 교육과 제도의 문제에 대해 근현대사적 맥락을 가지고 풍자적으로 꼬집는 후반부가 그것이다. 아무래도 관객은 극의 전반부에 대해 긴장감을 가지고 지켜볼 수밖에 없다. 아직 끝나지 않은 사건에 대해 당사자의 목소리를 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쉽지 않은 연기에 도전한 조아라, 양정윤 배우를 만나 작업 과정에 대해 들어보았다.
말에 대한 접근 : 빠져들기와 거리두기
- 한현주
- 본격적인 연습 이전에 자료를 공유하는 시간이 꽤 길었을 거 같은데요.
- 조아라
- 6월에는 책과 기사 등을 리서치하고 공유하며 보냈어요. ‘권리장전’에 대한 서로의 생각도 나누었구요. 한 달 후에 다시 만나, 연출의 주도 하에 자료를 취합하고 선택하는 작업을 했죠.
- 양정윤
- 우선 지나치게 극단적인 내용이나, 배우들이 감정적으로 많이 힘들어했던 인터뷰는 배제를 했어요.
- 조아라
- 감정적으로 내용을 관객에게 전달하는 것보다 말 그 자체가 관객에게 잘 전달될 수 있었으면 하는 게 연출의 의도였고, 배우들 역시 그게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 한현주
- 청소년 성소수자와 세월호, 이 둘의 목소리에 대한 접근이 달랐을 거 같아요.
배우들은 청소년 성소수자에 대해 말할 때 ‘이반’이라고 통칭했다. 2000년대 초중반, 중고등학교에서 동성애자를 색출하던 현상에서 비롯된 말이 ‘이반검열’이다. 일반이 아닌 ‘이반’을 골라내겠다는 것으로, 머리가 짧거나 손만 잡아도 제재를 가하고 스킨쉽의 정도에 따라 벌점을 매겨 행동을 규제했다.
<이반검열>
- 양정윤
- 이반에 대해 다가가는 건 크게 어렵지 않았어요. 중고등학교 때 친구들을 통해 경험하기도 했으니까요. 유행의 측면도 있었고, 반항의 표출로 작용하기도 했어요. 하지만 그게 정체성이었던 친구를 떠올리면서 제 연기에 다가가려고 해보기도 했죠.
- 조아라
- 저한테는 오히려 세월호보다 이반의 이야기가 더 거리가 있었어요. 그래서 알아간다는 자세로 임했고, 저의 편견과 세상의 편견에 대해 생각해보는 과정이 되었어요.
- 한현주
- 세월호는 자료를 읽어내는 것도, 말하는 것도 힘들었을 거 같은데, 어떻게 연습을 진행해갔나요.
- 양정윤
- 정말 눈물바다였어요. 그래서 최대한 거리를 두고 해보자고 했는데, 이상하게 이반을 연습하다가 세월호 부분으로 넘어가면 분위기가 침체되더라구요. 감정적인 부분들을 더 줄여나가다 보니, 공연 길이도 이반에 비해 좀 짧아지게 됐죠.
- 조아라
- 실존인물들을 대신해서 말하는 거다, 라는 걸 놓치지 말자고 다짐하곤 했어요. 캐릭터 분석이란 게 없는 작업이잖아요. 나의 사견이나 해석 없이, 오로지 이 사람이 어떤 상태로 이 말을 하고 있는가에 집중하고 그것을 드러내는 것이 과제였어요. 그러기 위해서는 신체적 정신적 충격을 털어가면서 연습하는 게 중요했죠. 감정이 풍부한 배우의 입장에서 인터뷰를 읽을 때, 그분들이 굉장히 고통스럽게 말을 했을 거라고 상상하게 되기도 하지만, 어떤 면에서는 아니라는 거죠. 꽤 시간이 흘렀고 어떤 유가족은 이걸 담담하게 말할 수 있겠다 싶었어요.

진실성에 대한 어쩔 수 없는 강박
- 양정윤
- 연습 중반 즈음, 어느 정도 감정을 덜어내게 되면서 동선을 자유롭게 쓴 적이 있어요. 그런데 순간 갑자기 말이 다 날아가더라구요. 진실성이 사라져버린 것 같기도 하구요. 결국 평소에 접근하던 캐릭터 연기는 아니지만, 말투 등을 통해서 말하는 사람의 캐릭터를 만들어내고 다시 천천히 긴장을 되찾으려고 했죠.
- 조아라
- 진실성이 떨어지게 될까봐 쉽게 움직이지 못한 지점도 있었죠. 그러다 연습 막바지가 되었을 땐 나와 실존인물이 만나는 지점이 생겨나더라구요. 조금씩 움직이게 됐죠. 일어서고 안고, 동선도 조금씩 다듬어지고 리듬도 생겨났죠.
- 양정윤
- 연습 중에 팽목항에 다녀왔는데요. 매번 인터넷으로만 보던 그 많은 영정사진과 수많은 사람들의 글귀, 그리고 그 바다의 기운을 느끼고 나니까 감당이 안 되더라구요. 유가족 분들과 얘기도 나누고 해서 더 그랬나봐요. 그런데 연습실로 돌아오고 나니까 오히려 덤덤해지더라구요. 툭하면 나오던 눈물도 없어졌구요. 내가 달라졌구나 싶었어요.
- 조아라
- 우리 작품에서 단원고 졸업생이 학교를 찾았다가 후배들의 빈 의자를 보는 장면이 있잖아요. 제가 실제로 단원고 교실이 철거되기 하루 전에 가서 봤거든요. 그때는 제가 이 작품을 하게 될지도 모를 때였어요. 근데 실제로 봤던 그 의자, 책상, 사진, 선물들이 연습하면서 겹쳐지더라구요. 그런 면에서 저한테 이 작품은 제가 살고 있는 세상의 진실과 예술이 연결되어 있다는 걸 더 알게 해준 작품이에요. 사실 이 작품은 말을 잘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잘 듣는 게 중요한 작업이었어요. 내가 실존인물의 말을 잘 들어야하죠.
- 양정윤
- 연습할 때 한 인터뷰를 배우들이 돌아가면서 읽어보기도 했는데, 다른 배우가 읽는 걸 들어보는 것도 굉장히 중요한 작업이었죠. 배우가 독백 하나를 잘라서 디자인하고, 그걸 연습하는 건 자연스러운 거죠. 하지만 이번은 달랐고 너무 어려웠어요. 배우로서의 내가 어디까지 들어가도 되는지를 잘 모르겠더라구요. 아직까지 정확한 답은 못 찾았어요. 좋은 질문 하나를 얻게 된 것만으로도 감사하죠.

배우로서 겪는 검열
- 한현주
- 제가 배우라면 캐스팅에 쉽게 응하지 못했을 거 같아요.
- 조아라
- 저는 예전에 성소수자의 삶을 다룬 <바후차라마타>라는 작품을 한 적이 있는데요. 그때 한 5년 정도 작품을 준비하면서 그때 만난 트렌스젠더 분이 제가 살면서 만난 가장 긍정적인 에너지를 가진 사람이었어요. 많은 영향을 받았고 그 후에 단편 영화도 찍어서, 이번 작품에서 이반의 얘기를 전할 때는 거짓말하지 않을 수 있겠다는 자신이 좀 있었어요.
- 양정윤
- 이연주연출과는 다른 작품에서도 만났는데, 오랫동안 얘기를 나누다보니 생각이 다르지 않다는 걸 확인했고, 그래서 쉽게 결정을 했어요.
- 한현주
- 배우로서 겪는 자기 검열은 전혀 없었다는 말인가요?
- 조아라
- 저는 한 작품을 선택함으로써 예술가로서 하나의 발언권을 선택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더 배우고 떳떳해지고 단단해져야겠다는 생각을 할 뿐이죠. 당연히 힘들고 도망치고 싶어지지만요.
- 양정윤
- 그동안 사회성이 강한 작품들에 잇달아 출연해서인지, 주변에서 걱정을 하는 분들도 꽤 있었어요. 솔직히 저도 좀 겁날 때도 있었구요.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면 저는 배우가 되기 전부터 이미 시선의 검열에서 자유롭지 못했어요. 어렸을 때부터 뭔가 튀는 행동을 하고 다른 에너지를 표출하면 주변 사람들이 ‘너는 왜 그러니’라고 반응했으니까요. 오히려 배우로 살면서 그런 시선으로부터 좀 자유로워진 면이 있죠.
<이반검열>
청소년 성소수자와 세월호의 연결은 검열에 대한 시선의 확장에서 충분히 의미가 있다. 이 둘을 묶어내려는 연출의 시도에 대한 배우들의 생각은 어떠할까도 궁금했다. 두 사람은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은 대답을 꺼내놓았다. 처음에는 잘 몰랐다가 런 스루를 해보니 알겠더라고 얘기하기도 했고, 어느 날 연습실에서 모두가 똑같아 보이는 경험(?)을 했다고도 했다. 스텝과 배우 들이 서로 다른 경험과 생각을 갖고 있지만 고통을 느끼고 이해하는 감각에 있어서만은 모두가 같지 않을까 하는… 그래서 청소년 성소수자와 세월호의 연결이 자연스러웠다는 말이다. 사실 나는 배우의 이러한 말들을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한다. 아니, 그들의 인식 방법이 낯설고 놀랍다. 배우들이 활짝 열어놓는 통감각(統感覺)과 직관은, 수많은 약자에게 가해지는 검열로 인한 고통을 유기적으로 연결하는 듯하다.
사실 나머지 극의 절반, 즉 풍자적으로 전해진 검열의 역사적 맥락에 대해서는 얘기를 별로 나누지 못했다. 연출의 구성이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극의 전반부가 청소년의 목소리에 집중되어 있듯, 후반부 역시 청소년의 시선에서 수많은 이반들을 대하는 우리 사회의 태도가 그려졌다면 풍자성이 더 강한 힘을 발휘하지 않았을까 싶기도 했다. 어쨌든 무대에 펼쳐진 영상을 보며 저런 야만의 시대도 있었다니, 하면서 피식피식 웃었다. 옛말하는 날이 오긴 했다. 하지만 오늘에 대해 우린 또 어떤 옛말을 하게 될까. 여러모로 상황이 나아졌다는 전제하에 ‘옛말하기’가 가능하다. 그리고 상황을 호전시키는 힘은 사유의 긴장에서 비롯될 것이다.
[사진: 장우제 woojejang@gmail.com & 극단 전화벨이울린다 제공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