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리뷰] 허락받지 못한 자들의 비망록
낭만유랑단 <섹스 인 더 시티>
임나래
제 162호
2019.06.27
“식욕, 수면욕, 성욕 중 한 가지를 포기하고 살아야 한다면, 당신은 무엇을 선택하겠는가.”
이런 극한의 질문 앞에서 우리는 삶의 필수조건과 희망 사항을 구분하게 된다. 그리고 생존을 위해서라면 희망 사항보다 필수조건을 우선시하는 것이 이성적인 판단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논리로 성욕은 삶에서 후순위로 밀려나고, 개인의 성욕과 섹스를 포기함으로써 개인의 생존은 물론 사회 또한 효율적으로 유지되고 관리될 것이라고 믿는다. 연극 <섹스 인 더 시티>는 이렇듯 이성적이고 당연하다고 여겨지는 현실에 의문을 제기한다. 필수조건과 희망 사항을 구분하려는 것은 누구의 뜻인가? 우리는 왜 개인의 자유의지에 반하여 무언가를 포기하고 배제해야만 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가? 애초에 이러한 극단적인 질문이 설정 가능한 현실, 이 질문에 개인의 책임까지 옭아 매인 결단을 내려야만 하는 사회가 잘못된 것 아닌가? 연극은 각기 다른 연차의 전·현직 간호사 다섯 명을 중심으로 진단해간다.
이런 극한의 질문 앞에서 우리는 삶의 필수조건과 희망 사항을 구분하게 된다. 그리고 생존을 위해서라면 희망 사항보다 필수조건을 우선시하는 것이 이성적인 판단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논리로 성욕은 삶에서 후순위로 밀려나고, 개인의 성욕과 섹스를 포기함으로써 개인의 생존은 물론 사회 또한 효율적으로 유지되고 관리될 것이라고 믿는다. 연극 <섹스 인 더 시티>는 이렇듯 이성적이고 당연하다고 여겨지는 현실에 의문을 제기한다. 필수조건과 희망 사항을 구분하려는 것은 누구의 뜻인가? 우리는 왜 개인의 자유의지에 반하여 무언가를 포기하고 배제해야만 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가? 애초에 이러한 극단적인 질문이 설정 가능한 현실, 이 질문에 개인의 책임까지 옭아 매인 결단을 내려야만 하는 사회가 잘못된 것 아닌가? 연극은 각기 다른 연차의 전·현직 간호사 다섯 명을 중심으로 진단해간다.

못/하는 몸
시작은 병원 비품실. 파란 간호사복을 입은 남녀 간호사 세 명. 이들에게는 제대로 된 자기 자리조차 없다. 그럭저럭 걸터앉아 야식이자 아침으로 간편한 한 입 거리 인스턴트 식품을 먹는다. 그러면서 나누는 섹스 이야기. 남자 간호사 성주는 자신을 향해 표출되는 조직 내 불편감과 성차별을 감수하며 묵묵히 일해왔다. 하지만 그로 인한 스트레스 때문인지 조루를 앓고 있는 탓에 애인에게 이별 통보를 받았다.
엄청난 강도의 노동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섹스로 푸는 여자 간호사 윤주. 그녀는 섹스를 복식 구기 종목에 빗대며 파트너의 협력을 강조한다. 그렇기에 병원에서와 달리 섹스에 대해서만큼은 싫으면 싫다고, 좋으면 좋다고 말하는 것이 철칙이다. 사랑, 신뢰, 헤어짐의 문제를 섹스, 콘돔, 낙태, 함께하기라는 구체적인 계약서의 말들로 못 박아두고 관계를 시작한다. 그러나 이 계약서가 늘 기대했던 미래를 보장하지는 못하는 노릇이다.
경력 19년 차이자 가장 연장자인 여자 간호사 경주. 병원 가까이 살고 싱글이라는 이유로 “독립된 윗 것”으로서 긴급하고 치열한 의료 전장에 우선 투입되곤 한다. 목숨을 내놓고 헐떡이며 일하다 보니 “불현듯이 가임기가 지나가고, 불현듯이 폐경기가 다가온다.”
성주, 윤주, 경주는 같은 직업을 가졌지만 각기 다른 삶을 사는 개인들이다. 그러나 병원은 그들에게 개인의 기본적인 욕구와 희망을 지우고, 그들이 먹는 인스턴트 음식처럼 네 몸이 썩지 않는 한 조직을 위해 일하라고 강권한다. 병원은 뒤에 숨고 간호사들의 조직 문화라는 이름 뒤에 숨어서 말이다. 메르스 바이러스 치료 현장에 내던져진 경주가 눈에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와 싸우듯, 간호사들은 왜 이렇게 굴러가는지 모를 노동 현실에 괴롭힘당하고 있다. 성욕과 섹스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지만, 이와 결부해 연극이 가리키고 있는 곳은 노동과 노동하는 몸, 그리고 그 몸이 놓인 현장인 것이다.
엄청난 강도의 노동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섹스로 푸는 여자 간호사 윤주. 그녀는 섹스를 복식 구기 종목에 빗대며 파트너의 협력을 강조한다. 그렇기에 병원에서와 달리 섹스에 대해서만큼은 싫으면 싫다고, 좋으면 좋다고 말하는 것이 철칙이다. 사랑, 신뢰, 헤어짐의 문제를 섹스, 콘돔, 낙태, 함께하기라는 구체적인 계약서의 말들로 못 박아두고 관계를 시작한다. 그러나 이 계약서가 늘 기대했던 미래를 보장하지는 못하는 노릇이다.
경력 19년 차이자 가장 연장자인 여자 간호사 경주. 병원 가까이 살고 싱글이라는 이유로 “독립된 윗 것”으로서 긴급하고 치열한 의료 전장에 우선 투입되곤 한다. 목숨을 내놓고 헐떡이며 일하다 보니 “불현듯이 가임기가 지나가고, 불현듯이 폐경기가 다가온다.”
성주, 윤주, 경주는 같은 직업을 가졌지만 각기 다른 삶을 사는 개인들이다. 그러나 병원은 그들에게 개인의 기본적인 욕구와 희망을 지우고, 그들이 먹는 인스턴트 음식처럼 네 몸이 썩지 않는 한 조직을 위해 일하라고 강권한다. 병원은 뒤에 숨고 간호사들의 조직 문화라는 이름 뒤에 숨어서 말이다. 메르스 바이러스 치료 현장에 내던져진 경주가 눈에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와 싸우듯, 간호사들은 왜 이렇게 굴러가는지 모를 노동 현실에 괴롭힘당하고 있다. 성욕과 섹스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지만, 이와 결부해 연극이 가리키고 있는 곳은 노동과 노동하는 몸, 그리고 그 몸이 놓인 현장인 것이다.
밖에서 안으로, 다시 안에서 밖으로
한편 연극은 병원 안에 있다 밖으로 나가거나, 밖에서 안으로 들어오는 간호사들의 에피소드를 통해 특정한 직업군에 대한 현장 안팎의 편견, 성차별적인 이미지, 노동계약에 대한 상식적인 기대와 이에 대한 배반으로 이야기의 범주를 넓힌다.
누가 언제 만들었는지도 모르는 임신순번제를 제때 맞추지 못하고 아기를 가진 현주. 현주는 임신 중단과 퇴직 사이에서 고민하다, 끝내 퇴직을 하고 자신이 간호사 시절 야침(야식이자 아침)으로 먹었을 맥 모닝을 만드는 알바생이 된다. 누군가는 “아기가 있으니까 그래도 행복하시겠어요”라고 말하지만, 현주는 쉽게 그렇다고 말할 수 없다. 여자-간호사-언니를 대하는 아이의 태도에서 성별에 따라 직업적 전문성을 뭉개 버리는 사회의 인식을 읽으며 씁쓸함을 느낀다.
“혼자 해결할 수 있는 남자”가 되기 위해 인공지능 섹스돌을 사겠다는 목표를 가진 승주. 그는 미스터 정규직 나이팅게일이 되고자 했지만, 무슨 뜻인지도 모를 파견근로계약서에 서명하고 나서야 겨우 간호사라는 조직의 말단 계약 인력이 되었다. 권리는 없지만 잘못되면 모든 것을 책임져야 하는 나이팅게일이 된 것이다.
간호사의 끝과 시작에 있는 현주와 승주는 각기 생애 전환기 앞에서 타의로 밀려나는 노동자와 이제 막 사회생활에 뛰어드는 청년 노동자를 대변하는 듯하다. 처한 시점과 상황은 다르지만, 이들 역시 앞선 간호사들과 마찬가지로 삶의 중대한 선택 앞에서 누군가 정해둔 선택지를 강요받고 있다. 우리는 이것을 과연 선택이라고 할 수 있을까? 선택이라고 인정해야만 하는 걸까?
누가 언제 만들었는지도 모르는 임신순번제를 제때 맞추지 못하고 아기를 가진 현주. 현주는 임신 중단과 퇴직 사이에서 고민하다, 끝내 퇴직을 하고 자신이 간호사 시절 야침(야식이자 아침)으로 먹었을 맥 모닝을 만드는 알바생이 된다. 누군가는 “아기가 있으니까 그래도 행복하시겠어요”라고 말하지만, 현주는 쉽게 그렇다고 말할 수 없다. 여자-간호사-언니를 대하는 아이의 태도에서 성별에 따라 직업적 전문성을 뭉개 버리는 사회의 인식을 읽으며 씁쓸함을 느낀다.
“혼자 해결할 수 있는 남자”가 되기 위해 인공지능 섹스돌을 사겠다는 목표를 가진 승주. 그는 미스터 정규직 나이팅게일이 되고자 했지만, 무슨 뜻인지도 모를 파견근로계약서에 서명하고 나서야 겨우 간호사라는 조직의 말단 계약 인력이 되었다. 권리는 없지만 잘못되면 모든 것을 책임져야 하는 나이팅게일이 된 것이다.
간호사의 끝과 시작에 있는 현주와 승주는 각기 생애 전환기 앞에서 타의로 밀려나는 노동자와 이제 막 사회생활에 뛰어드는 청년 노동자를 대변하는 듯하다. 처한 시점과 상황은 다르지만, 이들 역시 앞선 간호사들과 마찬가지로 삶의 중대한 선택 앞에서 누군가 정해둔 선택지를 강요받고 있다. 우리는 이것을 과연 선택이라고 할 수 있을까? 선택이라고 인정해야만 하는 걸까?

가치비교분석수치통계 리서치드라마다큐멘터리
연극은 목표한바 전달을 위해 몇 가지 전략을 사용한다. 인물 사이의 대화를 줄이고 간호사 혹은 노동자의 노동 실태를 일러주는 각종 기사와 보고서의 수적 지표를 제시한다. 많은 정보를 연기를 통해 빠르고 직접적으로 관객에게 전달함으로써 힘을 얻고자 한다. 속사포처럼 쏟아지는 수치통계 앞에서 우리 삶은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 같은 이야기가 되어 연극으로 들어가고, 연극은 재차 고증을 거친 탐사 다큐멘터리가 된다. 이로써 의미 있는 주장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노동자 개인의 목소리를 대단위 숫자로 치환해 호소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고발한다. 또한 점층적으로 반복되거나 연쇄적으로 대사를 전개하고, 에피소드별로 주된 인물이 처한 상황, 심리, 고민, 대응을 동료 간호사들이 대리하여 내레이션으로 풀어낸다. 이는 너의 문제가 곧 나의 문제이고, 나아가 우리 사회에서 반복되는 병폐임을 깨닫게 한다.

욕망, 실패, 그리고 그 다음
인물은 아니지만 무대 위에서 누구보다도 바삐 움직인 오브제가 있다. 극의 거의 모든 에피소드에 등장했던 붉은 공이다. 파란 간호사복과 대비를 이루는 붉은 공은 무대에 처음 불이 켜질 때 간호사들 손에 하나씩 들려 입장한다. 극의 전반에서 섹스와 놀이의 비유가 되는가 하면, 후반에는 임신순번제의 당첨권 혹은 피임에 실패한 난자가 되기도 한다. 그러다 극의 마지막, 다섯 명의 간호사가 한 명씩 차례로 나와 자기 이야기를 직접 읊조릴 때에는 인물들의 품에 안겨 버려진 욕망, 풀지 못한 고민, 치유되지 않은 아픔, 현재진행형인 과거 따위가 된다. 주목해야 하는 점은 이때의 붉은 공이 다섯 개가 아니라는 것이다. 하나의 공이 다음 인물에게 넘겨지며 독백의 시간을 함께한다.
선택 아닌 강요 앞에서 포기하고, 체념하고, 거세당해야 했던 사람들. 그러나 그 모든 순간에 있었던 붉은 공을 다시 떠올려 본다. 누군가의 품에서 다른 이의 품으로 전해진 하나의 공. 이 연극은 삶의 고단함 속에서도 끝내 버려지지 않는 각자의, 그리고 우리의 붉은 공을 찾으라 권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선택 아닌 강요 앞에서 포기하고, 체념하고, 거세당해야 했던 사람들. 그러나 그 모든 순간에 있었던 붉은 공을 다시 떠올려 본다. 누군가의 품에서 다른 이의 품으로 전해진 하나의 공. 이 연극은 삶의 고단함 속에서도 끝내 버려지지 않는 각자의, 그리고 우리의 붉은 공을 찾으라 권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사진제공: 낭만유랑단]
섹스 인 더 시티
- 일자
- 2019.06.05(수) ~ 06.09(일)
- 장소
- 아름다운청년 전태일기념관 울림터
- 작/연출
- 송김경화
- 출연
- 김민기, 류경인, 송김경화, 이유성, 황재희
- 무대
- 최현주
- 조명
- 문동민
- 음악
- 김운환
- 기획
- 이정은
- 제작
- 낭만유랑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