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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대교차] 92학번 재엽은 어디로 사라졌을까

국립극단 <알리바이 연대기>

김민조_연극평론가

제172호

2019.11.21

2012년에 나는 박정희 정권기의 역사극에 대한 학위논문을 쓰는 데 꼬박 한해를 다 바치고 있었다. 대학 시절에 4.19 혁명을 겪고 서른 즈음에 유신 체제를 맞닥뜨리게 된 세대의 눈에‘역사’의 운동이라는 것이 어떤 모습으로 비쳐왔을지에 대해 연구한 논문이었다. 허망하게 반복되어 돌아오는 역사 앞에서 수많은 예술가가 연극의 가능성에 대한 질문으로 돌아가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예술이 더 이상 시대의 서기(書記)를 자임할 수 없고 또 그래서도 안 되는 시대에 연극은 무엇이 되어야 하는가? 그리하여 1970년대의 역사극은 역사를 먼 과거의 환영으로 놓아두는 대신 지금 여기의 층과 직접 대질시키고 논쟁을 붙이는 양상을 띤다, 라고 나는 적었다.
그렇게 학위논문에 마침표를 찍고 고개를 들어 세상을 보니 박근혜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당선 소식을 듣고 대학원 원우들과 모여 건강하지 못하게 취했던 날이 기억난다. 이듬해인 2013년 나는 논문을 찍어서 여기저기 돌리고 오랫동안 미뤄왔던 입대 지원을 했다. 내가 지원한 곳은 심사를 통해 적격자를 선발하는 부대였다. 군인들은 면접 자리에서 내 학위논문을 이리저리 들춰보더니 김지하 시인의 박근혜 지지 발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또 황석영 소설가의 불법 방북 전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물어왔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사상 검증을 겪은 순간이자 내 인생에서 가장 그럴싸한 연기를 해냈던 순간이었다. 나는 그런 일들이 있었는지 ‘전혀 몰랐다’고 대답했다. 아니, 1970년대로 논문을 쓴 사람이 그걸 모른다는 게 말이 됩니까? 군인들은 속이 보인다는 듯이 이죽거리더니 다음 질문으로 넘어갔고 나는 여차저차 면접시험에 합격했다.
<알리바이 연대기>가 초연된 2013년은 그런 시기였다. 역사의 한 시점에서 종결되었다고 생각했던 일들이 거짓말처럼 내 삶의 배경으로 스며들어와 있었다. 나는 내 손으로 타이핑했던 글자들이 무슨 의미였는지 뒤늦게 깨달아가는 과정을 거쳤고, 그건 유독 나에게만 일어난 일은 아니었던 것 같다. 주위 사람들은 일종의 정치적 우울증을 앓고 있으면서도 자신의 고름 진 속내에 대해 쉬이 이야기하지 못했다. 말줄임표의 시간이었다. 서로 주고받는 시선과 화제가 계속 어긋나는 것을 느꼈지만, 결렬의 와중에도 차곡차곡 각자의 시간이 쌓여가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은 이듬해인 2014년 세월호 참사 이후의 일이었다.
<알리바이 연대기> 초연을 본 사람들이라면 아마 모두가 그렇게 느꼈을 것이다. 원래 <나의 대통령을 만나다>라는 제목이 붙어 있었다고 전하는 이 연극은 2013년 현재의 대통령 박근혜와 그 시기를 살아가는 ‘나’들의 심적 풍경에 대한 발언이기도 했다. 서술자 재엽은 자신의 이야기를 늘어놓기보다는 아버지 태용이 가로질러 온 굴곡진 시공간을 자전거의 속도로 따라간다. 태용과 재엽이 각자의 자전거를 끌고 서로에게 다가서는 엔딩 장면은 현대사의 불분명한 소음들을 헤치고 2013년 현재의 극장에 재도킹하는 느낌을 돌려주었고, 그 감각은 군 생활을 마칠 때까지 오래도록 내 마음속에 작은 위안으로 남아 있었다.
그리고 6년간 많은 일이 있었다. 평론을 시작한 이후 역사에 대한 내 관점은 많이 바뀌었다. 스스로의 탐구와 성찰에 의한 것이라기보다는 새로운 변화의 흐름 속에서 자연스럽게 시선이 움직인 것이라 할 수 있겠다. 다시 반복되어 돌아온 <알리바이 연대기> 자체는 초연 때와 크게 달라지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이번 관극에서 계속 신경이 쓰였던 것은 ‘92학번 재엽이라는 인물은 누구인가’라는 문제였다. 초연 때는 그다지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던 측면이었다. 도리어 재엽이라는 관찰자/서술자의 개인적 특성이 희미하게 세척되어 있었기 때문에 관객이 자기 자신의 상황을 투사해서 이입할 여지가 많았다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2019년의 시점이 되자 <알리바이 연대기>가 그려내는 역사는 예전만큼 현실과 밀도 있게 연결되어 있지 않은 것처럼 보였고, 그러자 과거의 역사와 지금 이 현실을 매개하고 있는 재엽이라는 인물의 불투명함이 도드라져 보이는 듯했다.
92학번 재엽은 아버지의 덕담에 감히 토를 달지 않으려 애쓰는 효심 깊은 아들, 또는 인터뷰 진행에 최대한 영향을 미치지 않으려 조심하는 인터뷰어처럼 보인다. <알리바이 연대기<가 부계 역사를 다루는 여타의 작품들과 구별되는 지점도 여기에 있다. 아버지의 삶과 아들의 삶이 상호작용하는 대목은 신기할 정도로 발견되지 않는다. (그래서 엄밀하게 말하자면 이 작품은 가족사를 다루고 있다고 말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자는 깊은 유대감을 공유하고 있으며 태용 세대가 그려온 삶의 궤적은 바통을 넘겨받듯 자연스럽게 재엽 세대에게로 이어진다. 그렇기 때문에 태용이 평범하게 살아낸 인생사가 조금씩 숭고한 빛을 띠어갈수록, 극작가 김재엽의 전작 <오늘의 책은 어디로 사라졌을까?>(2006)에서 묘사되었던 것과 같은 ‘낀 세대’의 고뇌와 방황 역시 그 빛에 의해 축성을 받는다. 요컨대 92학번 재엽의 침묵과 겸손은 매우 전략적인 것이다. 아버지의 역사를 공손하게 받들어 모실수록 그들 세대의 알리바이가 점점 확실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40대 남성이 아버지와의 뒤늦은 화해나 이해를 통해 자기변명을 대리하는 서사는 일일이 열거하기 어려울 만큼 흔하게 퍼져 있는 유형에 속한다. 그러한 남성종(種) 서사에서 가부장의 어두운 면모를 들추어낼 수 있을 만한 존재들이 희미하게 축소되거나 이야기 밖으로 씻겨 나가는 것 역시 자주 관측되는 현상이다. 기괴할 정도로 여성이 존재하지 않는 역사, 어머니와 정치의 관계는 ‘얼굴이 잘생겼다는 이유로 노태우를 뽑았던 일’ 정도로 기억되는 어떤 역사를 지켜보는 일은 더 이상 기껍게 느껴지지 않는다. 초연과 달리 이번 <알리바이 연대기>가 이미 경질화되어 있는 어떤 유형이나 현상의 반복처럼 느껴진 것도 그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추상적인 질문을 넘어 “누구의 역사인가”라는 실정적인 질문이 활발하게 제기되고 있는 2019년 현재 상황에 비춰 보았을 때는 더욱 그렇다.
반복해서 말하자면 나는 92학번 재엽이 어떤 사람인지 더 궁금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정치적인 것은 가장 개인적인 것이다”라는 구호에 걸맞지 않게 가장 개인적이지 않은, 공익 광고에서 튀어나온 듯한 이 반듯한 청년은 어딘가 수상쩍어 보이지 않았나. 그것을 서사극이나 뉴 다큐멘터리 형식의 ‘효과’ 속에 녹여서 설명하는 방식에 여전히 동의할 수 있는가. <병동소녀는 집으로, 돌아가지 않는다>(2017)를 비롯한 여러 작품에 거의 유사한 모습으로 등장했던 재엽들을 기억하며, 나는 현실과 연극 사이에 끼어드는 자의식의 피막에 점점 더 불편해지고 있음을 느낀다. 여전히 뭉클했던 태용의 고백과 자전거 장면에도 불구하고 연극 전체가 그 불투명한 피막 너머로 달아나는 듯한 위화감이 가시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진제공: 국립극단]

알리바이 연대기
일자
2019.10.16(수) ~ 11.10(일)
장소
명동예술극장
작/연출
김재엽
드라마투르그
이지현
무대
서지영
조명
이주야
조명
최보윤
의상
오수현
음악/음향
한재권
영상
윤민철
소품
박현이
분장
이지연
출연
남명렬, 백운철, 유병훈, 유종연, 유준원, 이종무, 전국향, 정원조, 지춘성
국립극단
관련정보
http://www.ntck.or.kr/ko/performance/info/2568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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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조

김민조
협단체에 소속되지 않은 프리랜서 비평가를 지향합니다.
동시대 퀴어, 페미니즘, 장애, 포스트휴먼 연극의 흐름에 대한 반응과 아카이빙에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집 밖으로 나오기와 공연 시간에 맞추어 도착하기를 잘 못해서 큰일입니다.
wingmn1k@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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