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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뭇거리는 프로파간다와 사건 다음날

<남북한 프로파간다 연극을 중심으로 보는 한국인의 집단 무의식에 관한 논문을 작성하다가 찢어버린 한 사람의 이야기>

장지영

193호

2020.12.17

이 작품은 남북한 프로파간다 연극으로 보는 한국인의 집단 무의식에 대한 논문을 작성한 사람이거나, 작성하고 있는 사람이거나, 작성할 사람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작성하지 않은 사람에 대한 이야기조차 아니다. 이것은 남북한 프로파간다 연극을 중심으로 보는 한국인의 집단 무의식에 대한 논문을 ‘작성하다가 찢어버린’ 사람에 대한 이야기이다. 꽤 길고 기억하기도 어려운 이 제목은, 이 연극의 거의 모든 것을 말한다.
지금 여기의 프로파간다
사전에서 프로파간다를 찾아보았다.
“어떤 사물의 존재나 효능 또는 주장 등을 남에게 설명하여 동의를 구하는 일 또는 그 활동. 발생적으로는 종교상의 포교(布敎)에서 비롯되었지만, 오늘날 선전활동이 전개되는 장(場)은 인간생활의 특정 분야에 국한하지 않고, 종교·도덕·정치·사상·경제 등 광범한 분야에 이르고 있다.” 1)
흔히 선전으로 번역되는 프로파간다는 지금은 자주 쓰이는 단어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프로파간다가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이 작품은 그 지점에 주목하고 있다.
대학에서 연극사를 가르치는 시간강사 경윤은 온라인 수업 도중 누군가가 유포한 사진 때문에 수업을 중단한다. 그에 관한 좋지 않은 소문 때문에 경윤은 수업을 그만두게 되고, 교수의 논문을 대필하는 일을 하게 된다. 새마을 운동을 선전하는 차범석의 <활화산>과 주체사상을 선전하는 김일성의 <성황당>을 비교하여 한국인의 집단 무의식을 연구하는 논문을 작성하던 경윤은, 자꾸만 주인공이 아닌, 작은 인물이 눈에 밟힌다.

작품은 <활화산>과 <성황당>이라는 두 작품을 통해 지금 여기, 우리의 프로파간다는 무엇인지를 질문하고 있다. 아니 보다 정확하게는, 그 프로파간다가 적극적으로 배제하는 사람들이 누구인지를 질문하고 있다. 그것은 두 작품의 배제된 캐릭터 ‘상만’과 ‘복순’, 그리고 경윤이다. 연극은 ‘우리’가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 우리가 무엇을 배제하고 있는지를 명료하게 보여준다. 어떤 이데올로기가 지배할 때, 재난이 발생했을 때 가장 먼저 ‘우리’에서 탈락되는 사람. 작품 안에서 권력을 가진 - 그 권력은 ‘마스크를 쓰지 않을 수 있는’ 것까지를 포함하는데 - 교수가 ‘우리’를 강조하는 것은 그래서 역설적이다.
경윤은 견고하게 구축된 대학 공동체에서 배제된 사람이다. 교수도 학생도 아닌 강사라는 그의 신분과, 불미스러운 사건으로 부당하게 쫓겨난 상황이 모두 그렇다. 그러나 연극 전체를 통틀어 경윤이 확신을 가지고 하는 행동은 없다. 사진을 유포한 범인을 찾으려 하지도, 자신이 피해자임을 주장하지도, 교수에게 항의하지도 않는다. 학생들은 이것은 남의 일이 아니라며 경윤에게 행동을 촉구하지만 경윤은 자신의 사진이 아니기 때문에 상관없다는 말로 일관하고, 자신의 해석과 맞지 않는 논문의 작성을 강요하는 교수 앞에서도 제대로 의견을 주장하지 못한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경윤의 그러한 머뭇거림은 견고한 프로파간다에 균열을 만들어 낸다. 확고하게 구축된 구조 앞에서 머뭇거리는 행동, 그것이 경윤의 유일한 행동이다. 프로파간다가 어떠한 확신에 기반하고 있는 것이라면, 머뭇거림은 그 확신의 정 반대 지점에 있다. 그러므로 프로파간다의 반대는 안티-프로파간다가 아니라 머뭇거리는 행동이 되는 것이다. 확신을 가지고 앞으로 나아가는 일을 하지 않는 것. 그 행동에 대한 적극적인 의심.

물론 극 중 경윤의 행동이 프로파간다, 혹은 지배적인 질서에 균열을 내기 위한 의도를 가진 것이라고 보기는 힘들다. 그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 속에서, 자신의 생존에 가장 위협이 되지 않는 선택을 하고 있을 뿐이다. <활화산>과 <성황당>의 인물인 성만과 복순 역시 그렇다. 하지만 그들의 머뭇거림이, 그들의 어색한 존재가 경윤이 쓰는 논문에 균열을 일으켰듯, 경윤의 머뭇거림이야말로 지금 여기의 질서에 균열을 불러일으키는 무엇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이후의 삶
2020년에 ‘코로나 끝나면’과 더불어 가장 많이 들은 말은 아마도 ‘다시는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일 것이다. 나는 이 말을 들을 때마다 늘 막연해졌다. 어째서인지는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지만, 어떻게, 무엇이 달라진다는 것인지, 그리고 어떻게, 무엇이 달라져야 한다는 것인지를 구체적으로 말해주는 사람은 없었다. 이제는 진짜로 끝나기는 하는지조차 확신이 들지 않는 이 길고 긴 바이러스가 지나면, 그 이후에는 무엇이 있을까?
우리는 매일 뉴스로 확진자 숫자를 접한다. 어제에 비해 얼마나 늘어났고, 그들이 어떤 경로를 통해 감염되어 누구에게 병을 옮겼는지를 듣는다. 나는 궁금해졌다. 이 병을 이겨낸 사람들은 지금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병의 후유증, 내 가족과 친구들에게 바이러스를 옮겼다는 죄책감, 일상의 공백, 사람들의 시선, 그런 것들과 어떻게 함께 지내고 있을까? 후유증에 대한 공포감을 조성하는 보도는 있지만, 그들의 진짜 삶을 이야기해 주는 사람은 좀처럼 드물다.
코로나바이러스는 우리 사회의 취약한 지점을 여과 없이 드러냈다. 사회에 만연한 혐오, 기후위기, 저임금 노동의 민낯, 보편적 복지의 그늘…. 어떤 의미에서 이것은 사건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로 하여금 새로운 존재방식을 결정하도록 강요하는 것2)이라는 의미에서 말이다. 하지만 여전히 의문은 남아 있다. 사건, 그러니까 이 사건의 실체가 무엇이든, 이 사건이 현재의 질서에 균열을 내고 당연한 것에 질문을 던지는 어떤 ‘사건적 사건’이라고 하더라도, 사건을 특권화하는 것은 과연 정당한가?
재난이 닥쳐오면 우리는 ‘사건 그 자체’에 집중한다. 그 이후에 무엇이 지속되고 있는지를 거의 주목하지 않는다. 사건에 의미를 두고 그 일에 충실하게 자신을 관여시키는 일은 물론 값어치가 있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사건 이후에 무엇이 오는지를 생각하지 않은 채 사건을 특권화하는 것은 또 다른 방식의 프로파간다 만들기일 뿐이다.
경윤의 일을 도와주겠다고 나선 학생들의 말이 연대의 손길로 이해되는 동시에 어딘가 석연치 않게 느껴졌던 것은, 그들이 경윤을 중심으로 사건을 구성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우려 때문이었다. 시혜적인 시선으로 경윤을 피해자 프레임에 가두는 것뿐 아니라, 그가 겪은 일을 사건으로 만들어 그것에서 그 이후를 단절시켜 버리는 것이 아닐까 우려되었기 때문이었다. 경윤은 사진이 유포된 이후의 삶을 살아가고 있고, 그의 삶은 그 사건 이전과 이후로 나뉘었을 수 있겠지만, 그것이 단 하나의 사건이 될 수 있는지 경윤은 답하지 않았다.
나는 삶은 계속된다는 식의 뻔한 명제를 말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물론 이것은 진실이며, 이 말의 값을 깎아내리려는 의도는 없다. 다만, 이전과 이후를 나누는 것은 쉬운 일이며, 어떤 일을 사건화하는 것은 더 쉬운 일이라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이다. 진짜로 어려운 것은 그 이후의 삶이 무엇이어야 하는가를 상상하는 것이다. 바이러스가 확산 일로를 걷고 있는 12월의 한 가운데, 우리에게는 더 많은 이후의 삶의 이야기가 필요하고, 더 많은 상상력이 필요하다. 그것은 ‘일상의 회복’이라는 단 한마디로는 절대 정리되지 않는다.

[사진 제공: 스페이스몽키ⓒ그누구도(최근우)]

남북한 프로파간다 연극을 중심으로 보는 한국인의 집단 무의식에 관한 논문을 작성하다 찢어버린 한 사람의 이야기
일자
2020.11.21. ~ 2020.11.28
장소
신촌문화발전소
홍기황 연출 정성경
드라마터지
전강희
출연
고은지, 장찬호, 전호현, 조은원, 이미라, 이주형, 허윤경
무대
김혜림
조명
서가영
의상/소품
온달
음악
백하형기
미디
백하형기, 이정아
무대감독
이지혜
액팅코치
홍선우
영상감독
강경호
조연출/오퍼레이터
이은석
사진
최근우
기획/그래픽디자인
이민지
기획보
양하언
조명크루
권일, 김진우, 전석희
돼지그림
오창록
스페이스몽키, 신촌문화발전소
관련정보
https://www.playticket.co.kr/nav/detail.html?idx=1263
  1. 두산백과,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1112046&cid=40942&categoryId=31766
  2. 알랭 바디우, 『윤리학』, 이종영 옮김, 동문선 현대신서, 2001, p.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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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지영

장지영
드라마터그. 좋아하는 것도 싫어하는 것도 많다. 좋아하지도 싫어하지도 않는 것은 더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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