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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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능한 매개 속 최선의 매개 팔륙 <불가능한 매개>

조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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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개성 실험을 위한 명상, 확인, 관찰
‘서로 떨어져 있는 양편의 관계를 맺어주는 것’을 뜻하는 ‘매개’의 사전적 정의에 따라 바라보면, 공연에는 ‘작품’과 ‘관객’ 사이를 이어주는 ‘퍼포머’가 존재한다. 하지만 만약 공연의 ‘목적’이 되는 작품이 없다면? <불가능한 매개>는 이와 같은 질문에서 시작한다. 그렇다면 기존에 퍼포머가 갖고 있던 ‘매개자’로서의 역할은 여전히 유효할까? 퍼포머의 수행이 달라지면 관객과 퍼포머의 관계는 어떻게 달라질까? <불가능한 매개>는 세 번의 관객참여형 퍼포먼스를 통해 공연의 목적이 되는 작품이 존재하지 않을 때 변화하는 ‘매개성’을 실험한다.
각 퍼포먼스의 중심부에는 작품 혹은 작가를 제외한 퍼포머와 관객만이 존재한다. 퍼포머는 약 45분 동안 관객과 동행하며 정해진 코스로 안내하는데, 시작점은 퍼포먼스 별로 상이하지만 세 퍼포먼스 모두 신촌 일대를 공연 장소로 삼는다. 각 퍼포먼스의 컨셉은 다음과 같다. ‘퍼포먼스1’은 ‘워킹메디테이션’, ‘퍼포먼스2’는 ‘확인’, ‘퍼포먼스3’은 ‘관찰’로, 비교적 가벼운 참여에서부터 적극적인 참여까지 그 정도가 각기 다르다. ‘퍼포먼스1’에서 관객은 퍼포머가 안내해주는 길을 말보다는 감각에 집중한 채 따라 걸으며 함께 명상한다. ‘퍼포먼스2’는 ‘퍼포먼스1’과 크게 다르지 않은 루트를 두 사람이 함께 걷는다는 점에서 유사해 보이나 가벼운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점, 퍼포머가 여러 차례 관객에게 두 갈림길 중 하나를 선택하게 한다는 점, 퍼포머가 관객의 상태를 여러 번 확인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마지막으로 ‘퍼포먼스3’은 앞의 두 퍼포먼스에 비해 관객의 보다 적극적인 참여를 요한다는 점에서 다른 성격을 띤다. 관객은 경의·중앙선 신촌역 광장을 시작으로 카카오톡을 통해 실시간으로 미션을 받는다. 예컨대 연세대학교 병원 앞 시계탑이나 대학약국 간판 속 글자 ‘약’을 팔꿈치와 함께 찍어 보내는 등 난이도가 조금씩 다른 미션을 수행하기 위해 신촌 일대를 유심히 ‘관찰’하며 이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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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해야 할, 유추하고 해석해야 할 메시지가 존재하지 않는 공연 속 퍼포머와 관객은 서로의 미묘한 움직임과 호흡을 새로운 기호로 삼는다. 그러다 보니 서로를 더욱 예민하게 감각하게 되는데, 이는 ‘퍼포먼스1’에도 다분히 묻어나오는 정서이기도 하지만 ‘퍼포먼스2’에서 더욱 증폭되어 나타난다. 퍼포머는 자신의 걸음걸이가 너무 빠르지는 않은지 관객의 앞길이 너무 어둡지는 않은지와 같이 계속해서 관객의 상태를 확인하고 살핀다. 서로의 존재를 가장 잘 ‘확인’하고 느끼는 순간은 단연코 두 사람을 비추는 거울 앞에 멈춰 설 때이다. ‘퍼포먼스2’ 동안 퍼포머와 관객은 때론 앞으로 열 걸음 때론 뒤로 네 걸음 발걸음 수를 함께 소리 내어 새며 총 네 개의 거울과 마주한다. 두 사람은 거울 속에 비친 연극적/일상적 무대 위에 서 있는, 매개 대상 없이도 퍼포먼스를 이루고 ‘완성’하는 퍼포머와 관객 또는 퍼포머1과 퍼포머2를 눈으로 ‘확인’한다.
‘퍼포먼스1’과 ‘퍼포먼스2’가 관객과 퍼포머의 관계를 구분 짓는 동시에 ‘동행자’라는 명칭을 통해 그 경계를 흐리고 있다면, ‘퍼포먼스3’은 ‘관객의 퍼포머화’를 넘어 관객과 퍼포머의 관계를 ‘역전’시킨다. 관객은 공연 설명에 따라 자신의 역할이 주변을 잘 ‘관찰’함으로써 미션을 하나씩 수행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퍼포먼스3’이 여기에 심어둔 반전은 바로 퍼포머가 (눈에 크게 띄지 않게) 관객을 동행하며 역으로 ‘관찰’한다는 사실이다. 관객은 자신을 관찰하고 동행했던 퍼포머이자 또 다른 ‘관객’의 존재를 (도중 눈치를 챘을 수도 있지만) 공연이 끝난 후에야 알게 된다. 이러한 역전은 퍼포머에게는 관객의 시선을 받던 익숙한 위치로부터 일시적으로나마 벗어나 새로이 퍼포머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관객의 움직임을 관찰하게 하고, 관객에게는 퍼포머로서—셰익스피어의 말마따나—“온 세상이라는 무대”를 자유롭게 누빌 수 있게 한다. 그렇게 관객은 퍼포머와 함께 손짓과 눈짓으로만 소통하던 무언의 세계(퍼포먼스1), 두 사람의 목소리와 거울이라는 언어/상징의 세계(퍼포먼스2), 경적과 카톡 알림이 뒤섞이는 놀이의 세계(퍼포먼스3)를 지나온다. 해석해야 하는 텍스트(작품)가 아닌 뛰어들어야 하는 무대로서 ‘떨어져 있는’ 세상과 익숙하고도 낯설게 조우한다. 때론 정태적으로, 때론 역동적으로.
퍼포먼스의 완성과 세상과의 매개
이틀에 걸쳐 세 명의 퍼포머와의 동행을 마친 후, 맨 처음 질문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았다. 만약 공연의 ‘목적’이 되는 작품이 없다면 기존에 퍼포머가 갖고 있던 ‘매개자’로서의 역할과 그로 인한 관객과 퍼포머의 관계는 어떻게 달라지는가? 이 답에 대한 실마리는 ‘퍼포먼스2’ 후 창천근린공원 정상에서 노을을 바라보고 있는 나의 사진과 함께 도착한 문자 메시지에서 찾을 수 있었다. 거기에는 “조주영님과 퍼포머 손지민의 동행(대화)으로 <불가능한 매개> 퍼포먼스2가 완성이 되었습니다.”라고 적혀 있었다. 당시에는 멋진 사진과 공연을 ‘함께’ 완성했다는 사실에 그저 기분이 좋았던 것 같은데, 이는 어쩌면 <불가능한 매개>를 관통하고 있는 말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목적이 없다 하더라도 퍼포머와 관객만 있다면 공연은 얼마든지 ‘완성’될 수 있다는 것. 나아가 이 공연에서 퍼포머의 역할은 더 이상 작품과 관객 사이를 매개하는 데 있지 않고 ‘세상’과 관객 사이를 매개하는 데 있다는 것. 목적이 사라진 빈자리를 다른 것들이 채우고 있었기 때문이다. 혼자였다면 좀처럼 가지 않았을 길들, 오르지 않았을 계단들, 확인하고 관찰하지 않았을 것들이 그 자리를 채우고 있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나는 대부분의 날들 속 놓치고 있는 해질녘 풍경과 부유하는 낙엽들을 볼 수 있었다. ‘매개’의 정의처럼, 안내자이자 동행자인 퍼포머는 그야말로 관객과 그로부터 ‘떨어져 있던’ 것들 간의 관계를 맺어주는 새로운 매개자로 거듭난다. 목적의 앞뒤, 좌우, 위아래에 있던 무수한 것들을 조명하면서. 그 덕분에 관객은 때론 아무 생각 하지 않거나 때론 한없이 밀려드는 생각의 편린들 속을 들여다보게 된다. 송골송골 맺히는 땀방울을 느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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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명의 퍼포머, 한 명의 관객, 그리고 퍼포먼스
<불가능한 매개>는 QR 체크인, 체온 체크, 손 소독이 새로운 루틴이자 의식으로 자리 잡은 시대 속 단 두 명만으로 어디에서나 공연은 가능하다고, 담담히 세 번 읊조리는 것만 같았다. 퍼포먼스 동안 마스크에 땀이 찼을 관객을 위한 새 마스크를 구비해둔 채로. 그렇기에 세 퍼포먼스 동안 가장 오랜 시간 머무른 생각이 ‘퍼포먼스’에 관한 것이라는 점은 우연이 아닐 테다. <불가능한 매개>는 도구화되지 않고 그 자체로 기능하는 (세상이라는) 극장과 퍼포머를 통해 공연이라는 본래 대면 장르에 대한 치열한 고민이었다. 그것은 예전만큼 극장에 가지 못하는 시기 속 공연을 이루는 최소 단위들 하나하나에 대해 최소한의 인원으로 하는 애정 섞인 고민이기도 했다. 더 나아가 이는 자연과 문명, 인간과 비인간 사이의 다공성을 다시금 뼛속까지 느끼고 있는 지금, 공연예술을 향유하는 인간 동물, 호모 루덴스에게 절실히 필요한 생태학적 상상력이자 대화이기도 했다. 그 대화는 이렇게 끝이 나고 있었다. 우리 함께 불가능한 매개 속에서, 불가능하든 가능하든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매개를 해보자고. 이럴 때일수록 더더욱 아무 말 없이 동행하고, 무심코 사탕을 건네고, 지극히 일상적이고 사소한 서로의 행동을 확인하고 관찰하는 존재가 필요하지 않겠느냐고. 매일 같은 길을 걷고 있을 그때와 지금의 한 명의 퍼포머, 그리고 한 명의 관객을 떠올려보자고. 퍼포먼스당 6번씩 도합 18번 동안 같은 길에서 명상을 하고, 같은 거울을 보고, 같은 미션을 수행한 퍼포머/관객을 떠올려봤다. 그러니 다음 (불)가능한 매개를 조금은 더 씩씩하게 기다릴 수 있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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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_신촌문화발전소]

불가능한 매개
일자
2021.02.26.(금)-2021.02.27.(토)

장소
신촌문화발전소 외 (이동형 공연)

콘셉트
신혜진
공동창작
전보람, 손지민, 주혜영
출연
전보람, 손지민, 주혜영, 이주원
드라마투르그
장지영
리서치/비주얼디렉터
이주원
조명디자인
공연화
공간콘셉트/디자인
공연화
그래픽디자인
홍진학(STUDIO WRONG)
의상콘셉트
노화연
진행
이민진
주최
팔륙, 신촌문화발전소
주관
팔륙
후원
서울문화재단
관련정보
https://www.scas.or.kr/product-page/20210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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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주영

조주영
대학교 2학년 때 우연히 한 연극을 접한 이후, 친구들과 연극을 만들고 영미드라마를 공부하게 되었습니다.
이화연극에서 연극잡지를 만들고 있으며 최근에는 생태비평 및 생태연극에 관심을 갖고 공부하고 있습니다.
joocho21@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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