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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녀들이 요리하는 바다 이야기

주식회사 해녀의부엌 <해녀의 부엌: 해녀 이야기>

김연재

제198호

2021.04.15

아기자기하고 평화로운 풍경을 가진 제주도 종달리. 해변을 따라 쭉 걷다 보면 항구 앞에 하얀 건물이 나온다. 과거 활선어 위판장이었지만, 지금은 ‘해녀의 부엌’이라는 명패를 단 공연장이다. 공연장 안으로 들어가니 해녀 복장을 한 배우들이 QR체크인과 체온확인, 손 소독을 돕는다. 천장은 물질할 때 쓰는 망사리1) 로, 벽면은 테왁2)으로 장식되어 있다. 바닷속이라고 느껴지는 소리가 공간을 가득 메우고, 조명과 영상이 일렁이는 물결을 한껏 연출해내고 있었다. 관객층은 단위와 세대가 다양했다. 필자 앞에는 제주도 1년살이를 하는 올케 소개로 시누이들과 함께 오신 분들도 있었다.
<해녀의 부엌: 해녀 이야기>는 ‘공연 20분-해산물 이야기 25분-해녀의 밥상 50분-해녀와 함께하는 Q&A 40분’으로 구성되었다. 공연은 해녀 네 분의 이야기로 만들어졌으며, 공연일정에 따라 다른 이야기를 관람할 수 있다. 필자가 본 공연은 올해 90세가 된 권영희 해녀의 이야기였다. 바다로 생계를 꾸려나갔지만, 모든 걸 바다가 앗아가기도 한 애환을 절절한 배우의 독백으로, 움직임으로 그려냈다. 첫 번째 장면은 관객석 가운데에서 물질하는 어멍의 숙명을 들려주었다. 바다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남자는 뱃일, 여자는 물질이었기에, 인생과 바다는 하나로 얽혀 있었다. 두 번째 장면은 숨비소리3)로 시작했다. 무대공간을 넓게 사용해 시야를 확장하고 공간을 환기했다. 절망에서 일어나도록 도와준 언니마저 바다가 앗아간, 삶을 지탱하는 것들을 잃는 순간을 몸짓으로만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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쿵짝, 호흡으로 만들어가는 바다 이야기

공연이 끝나면, 이야기의 실제 주인공이 등장하여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간다. 열 살부터 시작한 물질, 5남매를 돌보며 바쁘게 살았음에도, 효도를 못 했다는 아쉬움을 토로한다. 어머니가 하신 말씀을 90 평생 새기며 물질을 하셨다고 한다. 해녀는 교육기관이 따로 존재하지 않았기에, 어머니로부터 배우고, 생을 겪어내며, 바다를 스스로 배워나간다. 이런 이야기를 배우와 해녀가 관객 앞에서 만담하는 형식으로 풀어간다.
배우와 해녀는 관객과도 호흡을 잘 맞춘다. ‘해산물 이야기’는 40년 경력의 임정순 해녀가 배우와 함께 진행했다. 제주에서 볼 수 있는 재료인 뿔소라, 군소, 성게, 전복, 톳, 우뭇가사리 이야기를 관객 투표를 통해 들려준다. 제주도의 기후와 지형 특징에 따라 특별한 생김새를 갖게 된 뿔소라를 맛있게 먹는 방법을 알려주고, 눈앞에서 뿔소라 분리쇼(show)를 보여준다. 배우는 관객 사이를 오가며 앞에서 설명한 재료를 가까이에서 볼 수 있게 해준다. 재료 이야기를 들으며 식사에 대한 기대가 높아졌다. 어패류를 좋아하지 않아서 식사를 걱정했지만, 어떤 식감을 가졌을지, 어떤 맛일지 궁금함이 더욱 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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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상에서 만나는 해녀들의 터전

드디어 ‘해녀의 밥상’ 시간이었다. 스토리텔링으로 입맛을 돋운 후, 해녀들이 바닷속에서 건져 올린 재료를 후각과 미각, 촉각으로 체험하는 시간이었다. 궁금했던 군소를 유심히 보고, 젓가락으로 조심히 들어 올려 음미했다. 앞서 들은 이야기들이 음식의 생생함을 더해주었다. 씹을 때마다 무리 생활을 하던 군소가 해녀 손에 이끌려 수면 위로 올라와 점점 줄어들고, 꼬들한 식감이 생겨나는 ‘군소의 일대기’와 무거운 군소를 보며 검은소라고 반가워하고, 춥고 배가 고프지만 재료를 보존하기 위해서 손질 먼저 하는 해녀의 모습까지, 밥상에 오르기까지의 여정이 다시 펼쳐졌다. 음식과 함께 곁들일 오메기술과 화이트와인, 도라지 위스키도 판매했지만, 낮이라 참았다. 그러나 뿔소라 꼬지를 한 입 먹자마자 어쩔 수 없었다. 마셔야 했다. 경조사 때 귀한 손님에게만 대접한다는 요리답게 즐거운 맛이었다. 청귤로 만든 음료도 있어, 해산물과 함께 새콤달콤하게 즐길 수 있었다.
식사 중에, 배우들이 관객 개개인에게 다가가 ‘지금 먹고 있는 음식들은 종달리 해녀분들이 만들었으며, 당근, 무, 감자는 해녀들이 바다에 나가지 않을 때 밭일로 거둔 재료’라고 알려주었다. 해녀의 손으로, 제주 땅에서 거둔 농산물, 바다에서 거둔 재료로 직접 차린 밥상이었다. 정찬이 끝날 무렵, 마지막 코너인 ‘해녀 Q&A’를 위해 권영희 해녀가 배우와 함께 다시 등장했다. 해녀박물관에서 보게 될 얇은 해녀복을 보여주기도 하고, 바다에서 부르는 마법의 주문을 관객과 함께 외쳐보기도 했다. 이야기를 들으며, 검은색 비닐봉지가 얼마나 해녀들에게 위협적인지 알게 됐으며, 돌고래와 함께 춤을 추는 바닷속 해녀들의 삶을 상상해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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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개자, 배우, 예술가

전재희 배우는 무대 뒤에서 권영희 해녀가 ‘오랜만에 좋은 날씨가 찾아왔다, 어서 놀러 가라고 관객을 공연장에서 빨리 보내야 한다’는 말을 했다고 관객들에게 알렸다. 해녀는 관객을 살피는 마음을 들켜 쑥스러워했다. 해녀들은 <해녀의 부엌> 공연 초반에는 물질이 더 중요하다며 공연 참여에 미온적이었지만, 점점 관객과 만나는 것을 즐기고, 출연에 필요한 소품도 직접 제작했다고 한다. 해녀들이 <해녀의 부엌>에 애정을 갖는 데에는 자신들의 무대가 마련되어, 자신의 이야기를 스스로의 입으로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는 것, 그리고 눈앞에 자신의 말 하나하나를 소중하게 들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시간 때문이 아닐까 싶다.
공연을 제작하며, 타인의 삶을 전시하는 것을 경계하는데, <해녀의 부엌>은 이야기를 들을수록 일본의 장인문화가 머릿속에 떠올랐다. 80년 동안 얇은 천 하나를 걸치고 세계로 원정 물질을 다닌 몸을 대면하며, 그 몸이 다른 인생을 경험하고 있는 순간을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더불어 배우는 해녀들과 지내면서 겪은 에피소드, 해녀문화와 관련해 재미있는 부분을 들려주어, 이야기꾼이자 일종의 큐레이터 역할을 수행한다. 제주 방언을 사용하는 해녀 분과 소통이 어려운 경우에는 관객에게 통역을 해주고, 해녀분의 마음을 잘 전달하기 위해 노력한다. 무엇을 보게 할지 정하고, 잘 보이도록 하고, 흥미롭게 느끼도록 표현하는 배우는 공연 중에 매개자의 역할을 한다. 배우의 존재처럼, <해녀의 부엌>은 관객과 지역사회/해녀문화/공연예술을 연결하는 역할을 하고 있었다.

해녀문화와 지역상생 문화예술의 랜드마크

공연장 안을 메운 사람들 간에 장단이 잘 맞아서 가벼운 마음으로 140분을 즐길 수 있었다. 공연장에 들어선 순간, 시각과 청각으로 바닷속에 들어간 기분이 들고, 음식으로 오감을 충족하며, 관객 질문과 해녀의 생생한 이야기로 풍부한 상상도 펼칠 수 있는 시간이었다. 공연장을 나오자, 해녀만이 맛본 바다를 오랜 시간 즐기고 나온 기분이 들었다.
<해녀의 부엌>은 일본에 수출 의존도가 높은 뿔소라를 국내에 알리기 위한 문화상품으로 기획됐고, 청년예술가와 지역사회가 잘 결합한 사업 모델로 알려졌다. 지역주민과 지역 특성에 맞춰 청년예술가들의 역량을 드러낸 사례다. 제주도 여행 중에 ‘해녀’를 만나고 싶다면, 공연이라는 장르를 편안하게 즐기고 싶다면, 한 번쯤 들러봐도 좋다. 영국이나 파리, 뉴욕 등 외국에 가면 반드시 들르는 극장이 있는 것처럼, 제주에 가면 한 번쯤 들러 볼만한 극장으로 잘 자리 잡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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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월 말부터 <해녀의 부엌: 부엌 이야기>를 새롭게 선보였다. 공연 45분, 밥상 45분 구성으로 공연이 짧아 아쉽다는 관객의 목소리를 수렴하여 만들었다고 한다. 맵핑기술을 활용한 영상기반 콘텐츠며, 매주 목요일마다 만나볼 수 있다.

[사진촬영 : 주식회사 해녀의부엌]

주식회사 해녀의부엌 <해녀의 부엌: 해녀 이야기>
일자
매주 금, 토, 일 1일 2회 공연 (12시, 17시 반)
장소
제주도 제주시 구좌읍 종달리 477-16
출연
권영희(해녀), 임정순(해녀), 강인화(해녀) 전재희(배우), 김신혜(배우), 송주연(배우)
공간미술
정유미
관련정보
www.haenyeo.space
  1. 해녀의 그물 가방.
  2. 해녀 전용 튜브이자 부표. 물질 도중 매달려 해녀들이 쉬기도 한다.
  3. 해녀가 잠수했다가 물이 떠올라 길게 내쉬는 소리. 서로의 안전을 확인하는 신호가 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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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재

김연재
연극과 전시를 하며 작가, 연출가, 드라마터그, 월간 <한국연극>에서 객원기자로 활동한다.
candylock@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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