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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응시하는 ‘어린 시절의 나’를 환대하는 시간

<2021 코미디캠프 : 어린 시절>

장윤정_연극평론가

제200호

2021.05.13

"수어통역 영상보기"
(촬영/편집 : 김지성, 녹음 : 윤비원, 음향 믹싱 : 임나윤)
음성낭독_윤예은
음성낭독_이승민
‘틈’은 코미디의 근간이다. 옹졸할 정도로 닫힌 세계에 숨구멍을 여는 것은 무의미와 역설로 점철된 코미디/틈이다. ‘코미디/틈’은 사회뿐 아니라 우리 내부에도 존재한다. 나조차 미처 몰랐던 나의 모습으로, 나를 수식하는 의미들을 벗어던졌을 때 오롯이 남는 ‘주체’로, 시간을 횡단하여 늘 나와 공존해온 ‘어린 시절’의 흔적으로. 이러한 지점에서 <2020 코미디캠프 : 틈> (이하 <틈>)과 <2021 코미디캠프 : 어린 시절> (이하 <어린 시절>)의 키워드들 사이에는 섬세한 의미망이 형성된다. <어린 시절>은 관객에게 유년기의 자신을 회고하는 동시에 역설적으로 ‘어른’이 된 현재의 나를 돌아보게 만드는 공연이다. 그 시절에 꿈꾸던 미래의 나와 실제 현재의 나 사이에 얼마만큼의 간극이 존재하는지 확인하게끔 만든다. 작품은 회상과 공감, 역설과 웃음을 매개로 하여 교감하는 시간을 형성한다.

작은 우주로의 초대

<어린 시절>은 티켓부터 인상적이다. 티켓은 그림이 그려진 작은 인쇄물이었는데, 우주를 연상하게 만든다. ‘코미디캠프 : 어린 시절’을 중심에 두고 그 주변을 ‘2021’이 마치 행성처럼 맴도는 그림이다. 불변하는 어린 시절을 중심으로 시간이 흐르는 것, 우리 모두의 ‘어린 시절/나’는 하나의 우주와도 같음을 상징하는 것처럼 보인다. 한편으로는 ‘2021’과 ‘:’이, ‘코미디캠프’와 ‘어린 시절’이 서로 대칭되는 위치에 그려져, 현재의 나와 어린 시절의 나가 공존하고 있음을 상상하게도 만든다. 놀이는 이미 티켓에서부터 시작되고 있었다.
<틈>에서 캠프의 분위기를 자아내는 데에 일조했던 따스한 느낌의 알전구들이 이번 공연에서도 활용되었다. 객석의 천정에 알전구들을 설치하여, 관객들의 시야에 배우와 전구가 동시에 들어오게끔 했다. 본래 공연 중엔 객석 등을 끄기 마련인데, 알전구 조명을 지속해서 켜둠으로써 이 공연이 엄숙함에서 벗어난 하나의 ‘놀이’임을 인식하게 했다. 이번 작품은 신강수, 김은한, 안담, 배선희 총 네 명의 배우가 스탠딩 코미디 형식으로 이끌어갔다. 작년 공연에도 등장했던 신강수, 김은한, 안담 배우는 지난 <틈>에서 보여주었던 코미디에서 연장된 이야기들을 들려주었다. <어린 시절>은 <틈>의 스핀오프 같았다. ‘코미디캠프’의 세계관이 점차 확장되는 과정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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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기와 친구의 상관관계

신강수 배우의 어린 시절은 ‘친구’로 구성되었다. 그는 어릴 적 영웅을 꿈꾸던 아이들처럼 보자기를 멋지게 어깨에 두르고 어린 시절로 돌아간다. 보자기로 용기를 덧입은 채 친구를 사귀기 위한 71가지의 장기 자랑을 선보인다. 관객이 무작위로 번호를 부르면 배우가 그에 해당하는 장기 자랑을 하는 형식인데, 당연히 모두 과거에 유행하던 놀이들이다. 낯선 유행어와 성대모사는 관객과 배우 사이에 어색한 공기의 흐름을 만들어, 그것이 오히려 뜻밖의 웃음을 자아내곤 했다. 관객과 배우 사이에 웃음으로 친밀감이 형성되면 신강수 배우는 두르던 보자기를 다시 벗어둔다. 친구 사이에 ‘용기’라는 부담은 굳이 필요하지 않다는 의미로 읽힌다. 그는 어린 시절 가졌던 꿈을 이야기하며 현재 자신은 “어린 강수에게 부끄럽지 않게 잘 자라고 있는가” 하는 화두를 남긴다. 이어서 팬클럽 해체식을 여는데, 그는 지난 <틈> 공연에서 관객들을 대상으로 ‘백설’이라는 팬클럽을 결성했고 이번 <어린 시절>에서는 스타와 팬의 관계를 정리하면서, 대신 “친구”라는 새로운 관계를 형성한다. 관객은 배우의 자리에 어느새 자신을 대입하여 어린 시절 꿈꾸었던 미래를 떠올리며 현재를 성찰하게 되고, ‘친구’라는 이름이 새삼스레 가슴 먹먹해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신강수 배우의 코미디가 <틈>과 연속성을 띠는 지점은, 무엇보다 장애인 정체성에 대한 소통의 장을 마련한다는 점에 있었다. 그는 장애인로서 코미디를 만들고 전달하면서, 관객으로 하여금 장애인에 대한 과장된 감상성을 지워내는 작업을 하고 있다. 이번 작품에서는 별다른 차등 없이 야단치셨던 한 선생님과 그러지 않았던 선생님들의 일화를 비교하면서, 무익한 선의가 때때로 경계와 배제를 형성할 수 있음을 사유하게 했다. 전작에서는 장애로써 코미디를 할 수 있음을 이야기했다면, 이번 작업에서는 그러한 코미디를 하는 장애인 배우 신강수가 조명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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뫼비우스의 띠 같은 어린 시절

김은한 배우는 고유하고 독특한 결의 코미디를 만들어내는 데에 능통하다. 지난 <틈>에서는 카프카 소설을 소재로 코미디를 만들었다면, 이번 <어린 시절>에서는 오롯이 현재의 김은한과 어린 시절의 김은한을 소재로 이야기를 구성했다. 그의 작품은 구조가 매우 이색적인데, 요컨대 뫼비우스의 띠와도 같다. 액자식구성으로 이야기 속에 다른 이야기가 담겨 있는 것 같으면서도 어느새 시간이 지나면, 담겨 있던 이야기가 외부의 이야기와 연결된 형식이 된다. 즉, 그의 이야기에 집중하여 따라가다 보면 관객은 어느새 두 이야기가 하나의 이야기로 연속되어 있음을 발견하게 되고, 다시 이야기를 되짚어가며 의미를 재구성하게 된다.
이번 작품에서는 지금의 김은한이 어린 김은한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데, 그 과정에서 또 이들을 응시하는 제3의 김은한이 등장한다. 먼 미래의 혹은 영혼만이 남은 김은한일 텐데, 배우는 극의 안팎을 오가며 관객과 소통한다. 그저 가벼운 코미디라고만 여겼던 관객은 이야기의 끝에서 생각지 못한 극의 독특한 구조를 발견하고서 경탄하게 된다. 또한 배우의 이야기는 기묘한 세계로 구성되어 있어서, 아기자기한 동화 같은 이야기에 뜻밖의 공포가 자연스럽게 등장한다거나, 그러한 그로테스크를 유머로 표현하거나, 아이러니한 상황들을 연속적으로 연출하여 코미디를 형성한다. 완전히 새로운 결을 가진 유머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는 이 지점을 두고 이번 <어린 시절>에서 “무서운 이야기를 지어내는 감각과 코미디를 하는 감각이 닮았다”고 말한다. 이렇듯 이 작품은 공포와 코미디라는 이질적인 두 감각이 서로 닿아 있을 수 있음을 발견하게 하는 이색적인 작품이다. 김은한 배우의 ‘어린 시절’은 최초의 좌절과 실패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었다. 수많은 좌절과 실패를 겪음에도 불구하고 지속해서 나아가야 하는 삶을 겪으리라는 어른 김은한의 전언은, 우리 자신의 과거이자 현재였고 관객들에게 전하는 작은 위로의 메시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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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가 부적응하는 나

안담 배우는 <틈>에서와 마찬가지로 긴 줄의 유선마이크를 들고서 등장했다. 그녀의 코미디는 늘 스탠딩 코미디의 정석과도 같았다. 의자 하나와 마이크 하나, 재미난 입담과 강력한 펀치라인으로 좌중을 흔든다. 이번 <어린 시절>에서 안담 배우의 키워드는 ‘사회화’였다. 인생 최초의 사회였던 유치원과 그 후 경험했던 학교에 대해 촌철살인 같은 말들로 묘사하며 웃음을 전했다. ‘나는 사회에 잘 적응했는데, 사회가 나한테 적응하지 못했다’는 역설은 유머인 동시에 일면 고개를 끄덕이게끔 한다. 타인의 특징을 분석하고 따라 해보려 해도 결국 뜻대로 되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 나의 ‘개성’이고 ‘특성’임을 역설한다. 사회화의 기준이 창피에 대한, ‘인지’의 유무라면, 창피의 ‘역치’는 개인마다 상대적이므로, 결국 절대적으로 ‘완벽한’ 사회화 같은 건 없다는 것을 생각하게 한다. 그녀의 능청스러운 연기와 입담은 한바탕 환상처럼 무대를 휩쓸었다. 그리고 그 자리엔 각자의 고유함과 특별함을 존중하는 사회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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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랭한 세월 속에서도 나를 지켜온 나에게

새로 합류하게 된 퍼포머 배선희 배우는 노래로 코미디를 만들어냈다. 웃음을 자아내는 포인트는 단연 어린 시절 누구나 한 번쯤 겪어보았을 감정들을 묘사해내는 데에 있었다. <좋아해서 사무치는 마음>, <잘하고 싶었어, 피아노 콩쿨>, <혼자 좋아해도 괜찮아> 이 세 노래로 자신의 이야기를 전달한다. 어릴 땐 좋아하는 줄도 몰랐던 음악을 좋아하는 점, 모두의 기대에 긴장하고 좌절했던 어린 날의 마음, 응원 받지 않더라도 좋아하는 마음을 지켜내는 것만으로도 대단하다는 이야기들을 노래한다. 이러한 노래들의 의미가 선명히 드러나는 두 장면이 있는데, 어린 시절 합창부에 들어가지 못하고서 울음보가 터지던 모습과 연이어, 디즈니 애니메이션 <인어공주>를 신나게 설명하는 모습이 그러하다. 누군가의 인정을 받아야만 했던 음악과 오롯이 내가 사랑한 음악에서의 온도 차는 <혼자 좋아해도 괜찮아>의 ‘형편없이 못’하고 ‘더 잘하려 안 해도’ 괜찮다는 의미와 맥이 닿는다. 그녀에게 <인어공주>는 행복했던 과거의 일순간으로 돌아가는 마법 같은 세계였고, 그렇게 음악을, <인어공주>를 ‘좋아하는 마음을 지켜낸’ 나 자신이 소중하며 언제나 응원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관객은 그녀의 공연을 통해 문득 자신은 어린 시절부터 지금껏 지켜온 무언가가 있었는지 돌아보게 된다. 무엇을 좋아했었고, 무엇을 잊고 있었는지 새삼 과거를 통해 지금의 ‘나’를 성찰하게 되는 것이다. 그 끝에서 어린 내가 마치 흔적처럼 남은 지금의 나를 발견하게 된다.

응답하라, 어린 시절

생(生)의 에너지가 충만하게 넘쳐흐르고 있었음에도 그것을 알아채지 못하던 시기. 너무할 정도로 하루가 길었던 시기. 친구의 한마디에 세상이 열리고 무너지던 시기. 어린 시절은 그렇게 제멋대로 여리고 섬세해서, 단단히 벼리어져만 가던 시절이 아닐까.
<어린 시절>은 깊숙이 묻어두었던 그때의 나를 다시 길어 올리게 한다. 마치 흔적처럼, 그림자처럼 늘 내 안에 존재하며 지금껏 나를 응시해온 어린 시절의 나를 마주하게 만든다. 어쩌면 현재의 나를 ‘나’로 만들어 주는 것은 어린 시절의 나일지도 모르겠다. 요컨대 그 응시에 응답하며 환대할 때, 사회로 인해 정제된 나로부터 조금 더 자유로운 나를 만나게 되지 않을까. 문득, 어린 시절 버릇처럼 뱉곤 했던 한마디가 입안에서 맴돈다. “꼭 무엇이 되어야 해?” 그 무엇이 되지 않아도 ‘너로서 괜찮다’는 응원과 위로로써 <어린 시절>은 오래된 질문에 답을 보내오는 듯하다.

[사진제공 : 지금아카이브]

<2021 코미디캠프 : 어린 시절>
일자
2021.4.7-12

장소
대학로 스튜디오SK

작.출연
김은한 배선희 신강수 안담
음악
배선희
조명
정유석
기획.예술감독
김진아
관련정보
https://www.facebook.com/weNowArchive/posts/9124267028926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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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윤정

장윤정
연극비평집단시선, 공연과 이론의 모임, 『한국희곡』 편집위, 문화잡지 『쿨투라』 소속. 연극평론가 및 드라마투르그로 활동한다. yjlife1@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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