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너메뉴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하단메뉴 바로가기

어떤 소리를 듣는가

전시 <초대의 감각>

손옥주 (공연학자)

제202호

2021.06.10

이 전시는 초대라는 단어를 둘러싼 여러 물음들, 누구를 초대할 것인가,
누가 초대할 것인가의 문제에서부터, 이 단어와 연결되는 다양한 쟁점들을
여러 감각을 통해 표현한다. (중략)
우리는 이 전시를 통해 가장 멀리에 있는 사람을 초대하고,
가장 멀리에 있는 사람에게 초대받는 감각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 <초대의 감각> 리플렛 중에서
지난 5월 1일부터 17일까지 ‘탈영역우정국’에서 진행된 전시 <초대의 감각>은 일반적인 전시 메커니즘에서 다소 빗겨나 있는 듯 한 인상을 준다. 이 전시는 초대의 대상을 예측하지도, 초대의 목적을 전제하지도 않는다는 점에서 그러하며, 더 나아가 관람객의 참여를 도모함으로써 (먼저) 초대하는 자로서의 작가와 (나중에) 방문하는 자로서의 관람객이 작품을 사이에 두고 겪게 되는 얼마간의 시차(Interval)를 전시의 조건으로 삼지 않는다는 점에서 더욱 그러하다.
참여는 가령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아무도 없는 빈 전시장에 홀로 앉아 기울어진 나무 테이블 위에 귀를 가만히 대어본다. 이어 누군가가 남긴 시간의 흔적이 빼곡히 적힌 책을 넘기다가 여백만이 가득한 새 페이지에 당도한다. 그리고는 다음 페이지, 그 다음 페이지로 이어질 누군가의 글을 상상하며, 펼친 페이지의 한쪽 귀퉁이에 끄적끄적 지금 바로 이곳에서 흘러가는 시간을 담는다. 때로는 철저히 혼자인 채로, 때로는 알거나 알지 못하는 몸들과 함께인 채로 전시장 이곳저곳을 오가다가 원하는 때쯤 문득 테이블 가까이에 앉아 또다시 책을 펼친다. 그리고 또다시 쓴다. 책의 표지에는 (작품의 창작자인 오로민경 작가의 필체일 법한) 손글씨로 ‘Complex Body, 복잡한 몸을 위한 용기와 사랑’이라고 적힌 테이프가 붙어있는데, 제목 때문인지 <초대의 감각> 속 참여란 ‘무엇인가를 함께-함(Mit-Machen)’에서 오는 정서적 연대 이전에 ‘벗어날 수 없는 최종 심급(Instanz)’으로서의 몸에 대해 환기토록 하는, 일종의 제의처럼 느껴진다.
본문이미지1
오로민경 <눈뒤에 귀 뒤에 앉아> 사진_이야기
이번 전시는 “상호 의존하는 차이들”을 조각(fragments)으로 삼아, “이 조각들에 기반하여 미래의 예술을 상상”1)하고자 하는 공공예술 프로젝트 <환대의 조각들>의 일환으로 기획되었다. 예술 활동에 참여하는 창작자 주체에 대한 고민을 다양성의 관점에서 이어나가고자 하는 프로젝트의 방향은 <초대의 감각> 전시에도 반영되었는데, 그 때문인지 흥미롭게도 이번 전시에서는 특정한 기준이 제시되지도, 감각되지도 않았다. 초대하는 자와 초대되는 자의 정체성을 이루는 기준들, 전시의 내외부를 구획 짓는 기준들은 기준의 위치(‘어디가 혹은 무엇이 기준인가’)에 대한 모호함 이전에 기준을 세운다는 행위, 그 구획에의 욕망에 대해 되묻는 참여작가들의 질문 속에서 파편처럼 흩어진다. 전시 메커니즘이 오랜 기간 쌓아온 문지방 위에서 안 또는 밖을 선택하기보다는 기꺼이 그 문지방 위에 위태롭게 머물며 안도 밖도 아닌, 그러나 동시에 안이기도 밖이기도 한 어떠한 중첩의 상태에 놓인 4인의 작가들(구은정, 양승욱, 오로민경, 정진호). 그들은 그와 같은 파편에서부터 출발해 이를 봉합해내기 위한 인위적인 노력 없이 그저 자신들이 살아가며 느끼는 매일의 상태를 전시의 언어로 치환해낸다. 그래서일까. 전시장에서 듣거나 보거나 만질 수 있었던 모든 것에는 작가마다의 자연스러움(Natürlichkeit)이 각인되어있었다.
본문이미지2
구은정 <만지는 마음> 사진_이야기
그러나 동시에 이번 전시는 바로 이 자연스러움에 대한 태도를 관습적이지 않은 관점으로 바라보고 질문하는 실천의 장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판단과 구별의 전제가 되는 기준이 부재함에 따라 작가의 자연스러움이 작가만의 자연스러움으로 읽히는 순간, 다시 말해 ‘일반적. 공공, 관습화, 다수’ 등의 수식어로부터 탈각된 상태에 놓인 작가와 작품을 만나는 순간, 전시와 일상 사이에 놓여있던 임계의 지점에 도달했음을 감지하게 된다. 이곳은 분명 전시장을 표방한 공간이지만, 바로 그 공간에서 정작 만나게 되는 것은 ‘사람’이라는 느낌. 그와 같은 느낌은 가령 ‘목소리(Stimme)’를 매개로 관람자에게 스며든다. <초대의 감각>은 보는 전시이기 이전에 듣는 전시이기도 했는데, 여기서 중요한 점은 바로 ‘어떻게 듣는가’ 또는 ‘(내용상) 무엇을 듣는가’의 문제이기보다는 오히려 ‘어떤 소리를 듣는가’에 관한 것이었다. 스피커에서 진동을 타고 전해지는 소리, 헤드폰 너머에서 들려오는 소리는 어떤 소리인가. 어떤 리듬과 음색, 즉 어떤 시간성과 공간성을 지닌 소리인가. 그런데 그 소리는 대체 왜 낯선가.
전시장 곳곳에서 만날 수 있었던 여러 질감의 소리 가운데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바로 정진호 작가의 목소리, 그리고 양승욱 작가의 사운드 작업에 등장한 서로 다른 두 인물의 목소리였다. 이 소리들의 공통점은 인간의 육성이라는 것인데, 다른 소리와는 달리 무엇인가를 이야기할 때 들려오는 목소리야말로 화자의 신체 상태와 정서를 동시에 현현(顯現)한다는 점에서, 그리고 청자에게 말(言)과 상(像)을 동시에 전달한다는 점에서 이번 전시가 지닌 의미를 직접적으로 구현해내는, 매우 중요한 요소라 할 수 있다.
본문이미지3
정진호 <에스텔라이즈의 천사들> 사진_이야기
자폐증의 일종인 아스퍼거 장애를 가진 정진호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에스텔라이즈의 천사들>이라는 제목의 드로잉 작품을 발표하며 작품에 등장한 캐릭터들을 직접 설명하는 사운드 장치를 시도했는데, 관람객은 누구나 전시장에 마련된 4대의 헤드폰을 통해 사전 녹음된 작가의 음성해설을 들을 수 있었다. “‘에스텔라이즈’는 신의 규칙에 의문을 품고 루시퍼에게 가담한 14명의 타락천사들”이며, “황도 12궁과 12간지를 적절히 섞은 컨셉”(출처: <초대의 감각> 프로그램)이라는 작품 설명을 통해서도 알 수 있듯, 이번 작업에서 작가는 지금까지 이어온 작업 방식과 마찬가지로 동서양의 신화를 모티프로 삼아 게임, 만화 등 대중문화 속 캐릭터를 재해석해낸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서로 다른 외모와 특성을 지닌 캐릭터에 대한 작가의 음성해설에는 시공간을 넘나드는 각각의 캐릭터에 최대치로 몰입한 작가의 현재 상태가 고스란히 담겨있다. 현학적인 어휘의 나열과 고조된 음성에서 느껴지는 열정의 강도는 작가의 작업이 어떠한 대상에 대해 ‘마치 그러한 것처럼’ 재현해내는 것을 목표로 하지 않음을 분명하게 전해준다. 작가의 지금이 온전히 반영된 목소리는 분명 그 어디서도 들을 수 없는 낯선 물성을 전한다. 그러나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작가는 작품 안에서 언제나 생동한다.
본문이미지4
양승욱 <I hear you> 사진_이야기
이번 전시에서 소개된 또 다른 작품인 양승욱 작가의 <I hear you>는 패브릭 프린트와 사운드 장치로 구성되었다. 과거 우정국의 금고였을 법한 좁은 구석 공간에 들어서면 공중에 걸려있는 패브릭 프린트 두 작품을 만나게 되는데, 각각의 작품에 담긴 사람의 형체가 크고 작은 원으로만 구성된 까닭에 성별, 나이, 체형 등 이들의 정체성에 대한 질문은 자연스레 폐기될 수밖에 없다. 한편, 공간에 놓인 작은 스피커로는 누군가의 목소리가 흘러나와 프린트된 이미지 속 인물이 서 있는 공간과 입고 있는 옷 등을 해설해준다. 그런데 이때 듣게 되는 목소리가 꽤나 낯설다. 음역대와 발성, 어투 등 목소리의 특징을 통해 구분 가능하다고 믿어왔던 여성과 남성 간의 성차를 구분 불가능한 조건으로 환원시키는 트랜스젠더의 목소리로 해설이 진행되는 것이다. “목소리로 성별을 판단할 수 있을까?”(출처: <초대의 감각> 프로그램)라는 작가의 질문은 그리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속도 안에서 또박또박 이어지는, 그러나 서로 다른 세계가 포개어져 있기에 구분과 분별이 불가능한 누군가의 목소리를 통해 ‘판단의 기준과 판단의 주체’에 대한 비판적 성찰로 나아간다.
이처럼 전시 <초대의 감각>의 중심에는 특정 정체성으로의 귀속이 아닌, 서로 다른 상태들의 중첩 안에서 이어지고 또 이어지는 삶이 놓여있다. 다소 낯설게 느껴질지 몰라도 마냥 낯설지만은 않은 이야기, 그리고 그 이야기를 실어 나르는 목소리의 정동(Affekt)을 감각하며 전시 프로그램에 언급된 ‘초대’의 의미에 대해, 또한 그것이 전제하는 ‘세계’와 ‘타인’에 대해 떠올려본다.
누구와 어떻게 만날지는 몰라도 일단 모두를 초대의 대상으로 가능한 한 열어두는 것,
타인에 대한 우리의 감각을 가능한 한 멀리 내보내는 것,
타인의 다른 감각 앞에서
우리의 표현이 어떤 맥락에 놓이게 될 것인지를 끊임없이 생각하는 것.
- <초대의 감각> 프로그램 중에서

[사진제공 : 다이애나랩]

<초대의 감각>
일자
2021.05.01.(토) ~ 2021.05.17.(월)

장소
탈영역우정국

참여자
구은정 양승욱 오로민경 정진호
디자인
노다예
나무 가구/경사로 제작
스튜디오 에어
주관/주최
다이애나랩

후원
한국문화예술위원회
협력
탈영역우정국
관련정보
http://ujeongguk.com/dianalab/
  1. 출처: <환대의 조각들> 홈페이지 https://fragments1444.ink

기사가 좋았다면 눌러주세요!

좋아요 선택 버튼

손옥주

손옥주 공연학자
베를린 자유대학에서 연극학, 무용학 전공 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이후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아 무용 오리엔탈리즘에 관한 포스트닥터 연구 프로젝트를 수행하였다. 현재 학술 연구와 동시에 리서치 파트너와 드라마터그로 공연 현장에서의 활동도 이어가고 있다. '춤의 감수성과 문학적 상상력은 서로 맞닿아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오늘도 춤을 닮은 글을 쓰기 위해 노력 중이다.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