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너메뉴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하단메뉴 바로가기

개별적인 윤리와 공동체의 의식 사이에서

한국문화예술위원회 한국예술창작아카데미 <차세대 열전2021!> 공연예술 다원분야
서상혁 <Re:장례 - 아직 보내지 못한 이들을 위한 산책>

김민관

제213호

2022.01.27

혁신적인 장례문화!?

<Re:장례 - 아직 보내지 못한 이들을 위한 산책>(이하 <Re:장례>로 표기)는 기존 장례문화 시스템의 관성을 지시하며 대안적인 장례문화의 표본을 제시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익숙한 사회적 외양을 빌려오는 것에서 시작되는데, 관객이 가장 처음 발을 들여놓는 “라운지”는 광고와 선거 구호의 양식을 전용해, “장례문화 테마파크 추진위원회”라는 조직이 설계하는 “테마파크”, “장례문화 산책지도자”라는 새로운 직종이 안내하는 테마파크 내 “산책”, 나아가 실제 장례 시 개개인의 맞춤 서비스―“기본 서비스 상품 프로세스”―까지 새로운 장례문화의 세계로 인도할 것을 예시한다.
<Re:장례>는 일상과 결부된 의사-현실적 체험을 의도하며 계속되는 이동을 통해 체험의 성격을 다변화한다. 이에 따라 문화비축기지1)는 새로운 장례문화를 체험하는 장소로 탈바꿈된다. <Re:장례>는 임시 천막으로 구성한 라운지가 위치한 T0 문화마당에서 출발해, T1에서 T5에 이어 다시 라운지로 오는 길에서 체험하는 ‘사유의 길’, 다시 라운지에서 출발해 T1 전까지의 ‘인연의 길’을 경유해 첫 번째 세 갈래 길목에서 각각 세 집단으로 나뉘어 자리하는 ‘선택의 길’, T1 안의 ‘기억관’과 ‘회고관’을 지나 T2의 ‘영결광장’에서 끝맺는다. “산책”이라는 개념처럼 <Re:장례>에서의 장소와 공간은 계속해서 변화하며, 한 곳에 고착되지 않고 다른 단계로의 변환을 의도하는 불확실하고 과도기적인 상태인 전이 영역으로 자리한다.
각각의 공간이 주는 특정 체험을 살펴보며, 개별적인 애도가 어떻게 공동체적 수행으로 확장될 수 있을지, 또는 통합을 염두에 두는 공동체 의식(儀式) 아래 개인의 의식(意識)은 완전히 분해되지 않을 수 있을지, <Re:장례>가 개체화된 현대 사회에서 개인의 애도와 사회적 의례 사이에서 어떤 서사를 구성하고 있는지에 초점을 맞춰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본문이미지01

개개인의 회복을 위한 여정

‘라운지’는 “Re: 장례”에 대한 소개, 과정 진행에 대한 일부 정보 등을 주는 곳으로 활용된다. ‘사유의 길’에서는 개별적인 산책의 시간을 관객에게 주는데, 이후의 시간은 모두 임시적 공동체의 체험으로 주어진다. 산책에는 음성이 따른다. 이는 문화비축기지 야외에 마련되어 있던 스피커들을 활용한 것이다. 마치 명상이나 최면을 유도하는 것 같은 목소리는 산책의 효능을 일러주는 것에서 시작해, 일상의 변화 없음 속에 죽음만이 예외적인 순간임을 각인시키는 것으로 흘러간다. 스피커와 스피커의 간격을 끊임없이 맞는 이동에 따라 소리는 이따금 다가오고 또 스쳐 지나간다. ‘사유’로 지칭되는 목소리와 함께, 스피커의 간격, 곧 소리의 간격을 확인하는 물리적인 체험은, 먼저 출발한 앞사람과의 간격을 신경 쓰는 것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그리고 동시에 울려 퍼지는 스피커의 공통된 소리를 저마다의 위치에서 확인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사실상 완전한 개별자로서의 체험과는 다르다.
‘인연의 길’을 관객은 각자에게 온 문자에 대해 답변하며 오른다. “그 사람을 생각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감정은 무엇인가요?”, “왜요?”, “당신은 그 감정을 어떻게 다루고 있나요?”, “그 감정이 당신을 힘들게 하거나, 불편하게 하나요?”라는 네 개의 질문은 애도의 구체적인 대상에 대한 예매 시 사전 질문에서 연장된 질문들로, 이전과 달리 ‘애도’라는 개념을 쓰지 않고 있다. 비교적 짧은 구간을 지나 ‘선택의 길’에 이른 후에는 처음 ‘라운지’에서 노랑, 빨강, 파랑 세 개의 야광 링 중 선택한 색상별로 세 집단이 나뉜다. 각 집단은 세 갈래 길을 따라 각자의 장소에서 원의 대형을 만들고, 산책 지도사의 진행 아래 집단별로 감당할 수 없는 기억에 대한 대처법 같은 걸 차례차례 공유하며 ‘인연’을 강화한다. 여기서 <Re:장례>는 사전 질문에서의 직접적인 애도의 대상 대신에 애도 이후 관객 자신의 기억과 일상에 초점을 맞추고 있음이, 나아가 서로 간 대화와 공감을 통해 일상에서 관객 개개인의 회복을 지향하고 있음이 엿보인다.

본문이미지23

정보와 체험의 화력을 높이는 구간

‘인연의 길’과 ‘선택의 길’ 이후, 관객은 ‘기억관’과 ‘회고관’을 차례로 통과하게 된다. 그 사이에는 여러 층으로 된 기다란 하얀 문발로 된 ‘기억의 문’이 있으며, 이는 ‘기억관’과 ‘회고관’을 오가며 두 번 거쳐 가게 된다. ‘기억관’은 천장에서부터 늘어뜨려 설치한 여러 패널에 각각 여러 책에서 죽음에 관한 문구를 뽑아 전시하고 있는데, 관객은 입구에서 받아든 손전등으로 이를 비춰 보게 된다. 여러 저자의 문장은 뒤섞이며 사라지는데, 한편으로 휴대전화로 이전되는 우리의 기억 연장 행위를 좀처럼 수행하기 어려운 조건이 체감되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 이 문장들은 저자를 명시하며 순수히 참조의 자리를 묵묵히 지키지만, 대체로 죽음을 겪거나 살핀 이들의 ‘뒤늦은’ 깨달음이자 충고의 의미를 띠기 때문이다. ‘기억관’의 문장들은 개별 저자의 특정 문체가 두드러지기보다는 잘 구분되지 않는, 죽음에 대한 추상적인 선각자의 진리 체험처럼 감각된다.
이러한 집적된 정보는 짧은 시간 안에 다소 과잉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말들이 개별적인 맥락을 상실하며 죽음에 대한 진리로 부상하는 차원은, 신비주의적인 전략 아래, 체험에 대한 강력한 전언으로 <Re:장례>가 코드화되고 있음과 일정 정도 연관된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회고관’에서 그러한 전략은 강력하게 ‘화력’을 발사하는데, T1 파빌리온에서 유리창을 보며 뒤돌아 앉아 창문에 어른거리는 불꽃 영상과 갖가지 사운드의 혼합 체험은 관객에게 적당히 멍한 상태를 제공한다. 기조음 성격의 전자음 아래 장작, 방울, 종, 목소리 등 다섯 개 이상의 다른 소리 시퀀스가 재생되는데, 순서에 따른 침투를 통해 하나의 소리를 초점화하기 힘든 상태를 만든다. 분산된 주의는 멍해진 주의를 초점화한다. 파빌리온을 덮는 꽉 찬 사운드 스케이프는, 실제적인 명상 효과를 일으킨다. ‘회고관’과 ‘영결광장’은 강력한 스펙터클을 통해 변성 체험을 유도한다고도 할 수 있겠다. 불이 산화되어 가고, 이윽고 물로 영상이 바뀐다.
고인의 화장을 지켜보는 시뮬레이션으로 생각해볼 수 있을 ‘기억관’에서 이미 장례 절차가 마무리되었다면, 마지막 ‘영결광장’은 집단으로 정면을 향해 앉아 사전 질문들과 ‘인연의 길’에서 발신한 문자들이 화면을 채우는 걸 지켜보는 것으로 진행되는데, 공동의 사유 광장이라 할 수 있을 마지막 이 공간은, 각자의 생각들을 모두 날려 보내는 식으로 공연, 그리고 공연과 나 자신의 관계를 장례 치르는 곳으로 볼 수 있을 듯하다. 여기에는 생명의 나무가 중심 기표로 떠오른다.

본문이미지45

“Re: 나도 너를 생각해”에 대한 반문

무형의 존재와 그에 대한 감정을 상상하고 대답하며(‘인연의 길’, ‘선택의 길’) 듣고(‘기억관’) 그 ‘무형의 존재와 감정’이 무언가로 나타나고 사라지는(‘회고관’, ‘영결광장’) 가운데 ‘우리’의 앞선 말을 되새기는 과정(‘영결광장’)이 지금까지 진행되었다. 여기서 남는 건 우리 자신에게 가해진 질문에 대한 (조금) 명확해진 대답인가. 아님, 죽음과 개인이 무화되는 경계 끝에 마주하는 너덜너덜한 자아 자체인가. 인식론적인 깨달음보다는 존재론적인 전이를 지향하는 듯한 <Re:장례>는, ‘기억관’이 개별적인 저자성을 혼합시키며 형해화하듯, 관객 각자의 말들을 하나의 평면적 입체로 전시함으로써 구별할 수 없는 공동체의 몸을 한층 가속한다. 여기에는 ‘기억관’이 적어도 저자의 이름을 명시한 데 반해, 관객의 이름들을 언급하지 않는 부분 역시 작용한다.
‘영결광장’에서 거대한 스크린의 문자들은 앞서 ‘선택의 길’에서 서로 간의 내밀한 말이 소집단별 공동체 경험으로 확장되던 순간처럼 은밀하고 긴밀하게는 전혀 체험되지 않는데, 무엇보다 ‘회고관’에서 이어지는 거대한 이미지/사운드 스케이프가 ‘영결광장’에서 역시 부각되는 가운데, 말들은 2차원으로 고정되지 않고 일렁이는 스크린 화면에서 꿈틀거리고 흐릿한 분자들로 열화되기 때문이다. 하나하나 읽기에 충분한 시간이 주어짐에도, 말들은 특정한 발신자를 잃고 말‘들’의 무덤으로 분한다. ‘애도’라는 말이 빠진 자리에는 거대한 죽음과 천연덕스러운 삶이 솟아난다. 지칭할 수 없는 각자의 대상의 공통적 죽음(‘회고관’의 일체화된 화장 시스템)과 자연으로의 회귀(‘회고관’의 불에서 물로의 변화)와 새로운 순환(‘영결광장’의 자라나는 나무) 이후, 죽음은 일상으로 통합된다. 대상과 주체의 거리는 ‘완전히’ 지워진다, 장례를 통해. 그러나 과연 그럴까.

본문이미지6

‘영결광장’의 마지막 말은 ‘우리’의 말이 아닌, “Re: 나도 너를 생각해”라는 우리의 발신에 대한 어떤 유령적 답신이다. ‘너’의 자리에는 절대적인 존재의 강림이 놓인다. 왜냐하면, 우리 각자의 ‘너’는 이미 애도의 대상이자 다시 한번 장례를 치른, 두 번이나 죽음의 의식을 통과한 무형의 대상이기 때문이다. ‘re’는 반복의 의미와 함께, 편지의 회신을 의미하기도 하는데, <Re:장례>는 우리가 이미 한 번 장례를 치렀다고 생각하는 대상을 몇 개의 의사-장례 절차의 통과와 함께 ‘재’장례하고, 무형적 존재의 ‘회신’이라는 메시지로 끝맺으며 ‘re’의 중의적인 의미를 구체화한다. <Re:장례>는 그 같은 일회적인 존재의 부상과 함께 그 대상에게 위로받으며 고통과 슬픔과 아픔과 같은 기억으로부터 비로소 자유로운 존재가 되었음을 선언하는 듯하다.
그렇게 ‘회고관’에서부터 뭔가 거대하지만 단순한 선전이 꿈틀거린다. 하지만 대상은 그렇게 명확해지고 온전한 무엇으로 부상할 수 있기보다는 우리의 잔여물로 남아 우리의 삶과 동거할 것이다, 아마도. <Re:장례>는 개인적 애도와 공동의 집단의식을 오가며 그 두 행위 모두에 온전히 정착하지는 못한다. 그 결과, 제3의 새로운 길을 만드는 것 역시 아니다. 계속 다른 길을 통과하고, 무언가를 읽고 듣고 마주하는 시간성 자체가 주체의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음을 보여준 것이 <Re:장례>의 미덕이 아닐까. ‘선택의 길’에서의 소박한 위로와 공감의 실재는 일상의 변용과 유대의 새로운 이정표를 만드는 방식 아니었던가. 따라서 ‘나도 너를 생각해’의문장에서 ‘나’와 ‘너’는 나의 특정한 대상과의 관계―‘나는 너를 생각해’―에 대한 ‘너’의 긍정의 답신이 아니라, 이곳에 함께 공동 경험을 치르고 있는 새로운 우리의 생산에서 출현하는 문장으로 보고자 한다. 곧 ‘나는 (현재 내 곁에 있는) 너(의 말)를 생각해’.

본문이미지7

[사진 제공: 후즈살롱, 촬영: Chad Park]

한국문화예술위원회 한국예술창작아카데미 <차세대 열전2021!> 공연예술 다원분야
서상혁 <Re:장례 - 아직 보내지 못한 이들을 위한 산책>
일자
2022.1.21. ~ 1.23

장소
문화비축기지

출연
길덕호, 김유리, 박경주, 안소영, 오선아, 정회권
출연·무대스태프
김근환, 조재현, 한에스더
사운드디자인
베일리홍
영상디자인
송주형
조명디자인
김성구
조명어시스턴트
지소연
무대디자인
불나방, 정혜진
무대감독
임석현
무대어시스턴트
권혁재
음향감독
박호진
음향오퍼레이터
정현우, 홍진선
기술감독
주왕택
기록사진
Chad Park
기록영상 촬영·편집
Hez Kim
기록영상 촬영
김우아, 이원희
그래픽디자인
김보휘
운영·홍보
한민주
운영스태프
고은지, 하영오
공동구성·대본
허영균
공동구성·연출
서상혁
기획·제작
후즈살롱
주관
서상혁, 후즈살롱, 21세기장례문화테마파크추진위원회
주최
한국예술창작아카데미
후원
한국문화예술위원회
협력
문화비축기지
관련정보
https://www.instagram.com/p/CY08pzjJv72/?utm_source=ig_web_copy_link
  1. 문화비축기지는 원래 5개의 석유탱크가 자리하는 마포석유비축기지를 일곱 개의 T(‘T’ank, 탱크) 동으로 재생한 공간으로, 다양한 문화 행사가 열리는 시설로 사용되고 있다.

기사가 좋았다면 눌러주세요!

좋아요 선택 버튼

김민관

김민관 아트신 편집장
아트신(www.artscene.co.kr) 편집장. 예술을 체험하고 기록한다. 다양한 예술 관련한 아카이브에 관심을 두고 이를 실천하고자 한다. 좋은 예술이란 무엇일까라는 탐문과 함께 비평적 관점으로 동시대 예술의 계보를 재구성해 나가려고 노력 중이다. 최근에는 비평, 기획, 창작의 교환과 매개에 대한 관심으로, 여러 작업을 병행 중이다. 퍼포먼스 관련 서적의 편집에 다수 참여한 바 있으며, 저서로 『퍼포먼스아트의 다층적 시선』(2011)이 있다.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