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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윤경이라는 극장에게

신촌극장 <미드-필ㄷ-ㅓ(mid-field-er) X허윤경>

박하늘

218호

2022.05.12

안녕하세요, 윤경 님. 하늘입니다. 당신이라는 극장을 만나고 와 이렇게 편지를 씁니다. 움직이는 당신의 몸을 따라 <미니어처 공간극장>, <피부와 공간의 극작술을 위한 신경다양성 스터디>, <생활나눔> 그리고 <미드-필ㄷ-ㅓ(mid-field-er)>까지 함께 지나왔습니다. 그 과정에서 윤경 님의 몸이 나타내는 것들이 무엇을 향하고, 무엇과 어떻게 왜 관계 맺는지 살펴볼 수 있었어요. 각자의 몸으로서 제법 가까이에 모여 보는 것이 가능했고 관심이 생겨났습니다.
<생활나눔>에서 윤경 님께 전해 들었던 작업방식 매뉴얼 같은 것도 기억이 나요. 정확히 다 기억하고 있진 않지만, 내가 있고, 내가 이 공간에서 무엇인지, 무엇과 만나서, 어떻게 움직이는데, 그 둘의 속성은 어떠하며, 움직이는 형태는 어떠하고, 움직임이 아니라고 할 수 있는 어떤 것을 추가한다면 냄새나 온도 같은 것은 어떻고, 그렇게 만나 움직인 끝에 그 둘은 혹은 각자는 마지막에 어디에 도착하는지-였던 식이 맞을까요?

윤경 님의 공연, 이라기보다는 움직임이라고 표현하고 싶어요. 그리고 허윤경이라는 극장을 만나고 왔다고 하고 싶고요. 당신의 공간에 가면 꼭 내가 있고 나를 만나고 옵니다. 그곳에는 당신의 작업 세계관과 방향성이 느슨하지만 재미있게 구성되어 있고, 충분히 준비되어 있지만 누군가의 접속 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는 관계 맺기가 필요합니다. 거기에는 진솔한 이야기나 사연을 전하는 감정의 덩어리들이 아닌 담백하면서 투명하고 열린 마음이 있다고 느껴요. 그래서 일상적이지 않은 세계를 경험하고, 극장에 가서 어린 시절처럼 놀다 오는 기분이 들어요. 혹은 어떤 곳이든 당신이 있고 그곳을 따라가면 뭐든 일어날 것 같아요. 극을 위한 갈등이 아닌 “야광으로 커다랗게 쓴 글씨들 가운데 서 있”거나 하는 일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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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극장과 관객 사이 간격을 좁히고 싶어졌다. 그러나 그 시도는 어떤 사정에 의해 끝까지 가진 못했다고 한다”라는 글을 극장 바닥에서 보았습니다. 윤경 님의 작업은 웜홀이나 구멍을 통해 이곳이 아닌 어떤 곳으로 연결되는 걸 상상하고 있는 듯해요. 서로의 신호를 받은 사람들이 한순간에 모이는 것이죠. 혹은 ‘이곳’이라고 규정짓고 안다고 착각하는 것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렇게 일반적인 구조들을 다른 각도에서 생각해 보는 시도들을 계속하시는 것 같아요. 그리고 이건 결말이 있는 시나리오가 아니니까 만남을 시도하는 흔적만이 서로에게 남는 것이겠죠. 등장인물 역시 ‘등장공간’, ‘등장사물’ 중심으로 언제든 바꿔보는 게 가능하고요.
그래서 역시나 제목부터 mid-fielder가 아닌 mid-field-er로 의심해 보고 사이 간격을 두신 게 맞을까요? 찾아보니 미드필더란 축구 경기에서 경기장의 중앙 부분을 책임지며 팀의 공수 전환에 ‘고리 역할’을 담당한다고 하네요. “경기를 읽는 시야가 넓고 정확한 패스 등 경기를 지배하는 능력이 요구되는 포지션이다” 그런데 여기에 중간 바가 더해지며 mid-field-er1)로서는 다음과 같은 의미가 되더군요. ‘들판 가운데의 에, 저…’ 혹은 ‘밭 가운데에서 에, 저… 하며 무엇과 관계 맺는 허윤경’이라고 해도 몹시 잘 어울린다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용서하세요. 하나하나를 분리해서 강조하고 연결 지어봤습니다.

“나는 사실, 공연을 할 때 오히려 내가 관객이 되는 것 같기도 하다. 다만 조금 더 다양한 각도에서 사람들을 구경할 수 있는데, 그렇게 내가 보고 싶은 각도에서 보는 것이 바로 내 공연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움직임으로써 객석의 위치가 변하고, 바라보는 위치가 변한다. 각자가 모두 객석과 무대를 들고 다니는 것 같다. 그냥 모두가(각자의 몸이) 객석이면서 무대인 것도 같다.”

“하는 공연”을 만들어주어 기뻐요. 함께 공연을 만들 수 있다니. 서로를 구경한 우리는 지금 어떤 상태가 되어있는 걸까요? 아니면 그 만남의 순간만이 영원히 우리에게 남은 것일까요? 저는 지금 모니터를 구경하는 객석인가요? 저라는 무대를 매일 짊어지고 살면서 때때로 객석이 되는 이 몸. 한편으론 객석만이 있는 비좁은 무대 같은 것이 우리의 일상이 아닌가 싶어 슬프기도 합니다. 이렇게 사고가 건드려지는 당신의 언어를 저는 좋아해요. 그렇게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다른 물성으로 느껴지는 것이 재미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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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장을 나와서 너무나 획일화된 일상 속에 있는 저를 발견했습니다. 비슷한 건물들, 소음들, 각진 공간들, 반복적인 배경으로 느껴지는 사람들, 늘 움직이던 대로 이동하고 있는 제가 보였습니다. 어른이 되면서 잃어버린 감각을 되찾아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무엇을 위한 일반화, 사회화로서 움직이고 있었는지 되돌아볼 수 있었어요. 허윤경이라는 극장을 만났을 때는 미드-필ㄷ-ㅓ와 함께 놀 준비가 되어있었는데 말이죠. 어린 시절 친구들과 함께 이불이나 우산으로 집을 만들고 속닥이고 소리치며 놀던 마음이 꿈틀거렸습니다.

지금껏 제가 경험한 윤경 님 공연에서 ‘극장과 관객 사이 간격’에는 어떤 메시지들이 항상 놓여 있었어요.

“극장에 한 존재가 조용히 등장한다. 그는 그냥 극장 바닥과 사람들의 마음속을 간지럽히고 지나가는 딱 그 정도다. 그를 주목하게 만들어진 지형을 타고 다니되, 조명을 받지 않는 배역을 연기한다.”
“내가 입고 있는 옷과 살 사이의 공간을 느끼기 위해 움직여주세요.”
“그는 빛 속에서 그러나 어둠 속에서 남몰래 등장하듯 그만이 아닌 세계를 몸에 두르고”
“혹은 이런 일이 벌어졌을 수도 있다. 국지성 호우가 내린다. 공간의 일부에만 비가 내리는 것이다. 그 비는 한 사람만 쫓아다닐 수도 있다. 흠뻑 젖은 그가 지나는 곳마다 물기가 흔적으로 남는다.”

움직임에는 어떤 동력이 필요합니다. 이야기가 있는 공연은 아닌 것 같아도 당신이 준비한 것엔 이야기가 있어요. 어떤 미션, 메모, 질문, 그것은 저를 긍정적으로 자극하기도 하고, 개중에는 얼른 흡수되지 않는 것도 있지만, 또다시 읽고 싶은 욕구를 일으킬 만큼 중요하게 다가오기도 합니다. 그리고 질문을 수행해낼 때 우리는 마치 뷰포인트2)를 하는 것 같기도 하고요. 이러한 지령들로 극장 안의 우리가 결합해 움직임을 만들고, 관객이자 플레이어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극장이란 공간은 우리가 채우기 나름일 테니까, 그 ‘우리’가 서로 관객이자 출연자라는 역할을 번갈아 해내며 ‘우리’가 있는 ‘극장’을 만드는 게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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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우리가 만난 흔적은 이렇게 포스터에 써진 말처럼 서로에게 남는 듯합니다. 찢기고 접힌 흔적이 있지만 네모반듯한 흰 종이에 날림체로 파랗게 적힌 말, “지금 새벽 같아요 새벽에 눈을 뜬 것 같아요”. 그리고 마치 답변처럼 연필로 흐리게 적힌 말, “아마도 나와 같은 시간을 보내셨군요”. … 곰곰이 생각해 보니 공연을 보기 전엔 침침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비슷한 존재와의 연결을 기대하는 것처럼 다가오고, 공연을 보고 나서는 우리만의 놀이를 추억하는 말로 다가오는 것 같아요. 그래서 잠 안 자고 몰래 놀았던 새벽은 서로가 있어 침침하지 않았어요…!
저는 개인적으로 공연을 할 때 사람들 앞에선 너무 떨려서, 연습하면서 공연팀 사람들과 충분히 만나는 그때를 더 좋아하기도 하는데요. 공연 전까지 연습실과 극장에서 보내는 시간을 좋아해요. 그래서 모처럼 신촌극장의 모든 문을 활짝 열고 (화장실 문은 닫고) 햇살과 바람, 골목의 소리들과 함께할 수 있어 시원하고 편안했어요.
극장에 들어선 처음엔 사람을 관찰하고, 바닥의 메시지를 읽고 공간을 누비며 적극적으로 수행하는 몸이 되다 말았는데요. 놀 준비가 잔뜩 되어 있었지만 누군가에게 방해가 되지 않으려 신경 썼는데 괜찮았나 모르겠어요. 윤경 님이 짜 놓은 흐름 안에서 말과 움직임을 전해 받으면서, 오브제나 움직임의 모양새들이 그냥 좀 다르게 해보는 차원에 그치지 않고 맥락이 있는 공연으로 구성되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우리’를 매개로 움직이며 공간을 구성해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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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에 참여할 준비가 되어서인지 쿵쾅거리던 제 심장 소리가 아직도 기억이 납니다. 윤경 님이 청진기를 갖다 댄 슬리퍼에선 무슨 소리가 나고 있었을까요? 답을 찾아내기보다는 그런 궁금증을 유발하는 상태 자체를 기억합니다. 그런데 당일에 해보지 못한 시도들이 이제 와 생각나는 건 왜일까요? “웜홀을 통과”해 또 만나고 싶은 마음입니다. 친구들과 다음 날 또 만나 노는 것처럼요. 친구가 늦었다고 화내거나 문을 걸어 잠그기보다는, 지금처럼 활짝 열어두고 언제 오는지 물으면서 올 때 뭘 조심하라고도 알려주고, 기다림을 함께 보내는 시간으로 만들어내는 열린 태도를 우리 곁에서 오래 유지해줬으면 좋겠어요.
그렇게 열린 문으로 더 다양한 몸들이 만나는 극장이 되면 좋겠습니다. 언제나 친절하게 맞이해주는 전진모라는 극장에게도 공연 관람에 반갑고 흡족한 인상을 남겨주어 고맙다는 말 전합니다. 팬레터는 여기까지! 읽어주어 고마워요! 극장에서의 어느 날 또 편지할게요.

애정을 담아 하늘 드림.

[사진 제공: ⒸPopcorn]

신촌극장 <미드-필ㄷ-ㅓ(mid-field-er) X허윤경>
일자
2022.4.21.~4.23

장소
신촌극장

안무·출연
허윤경
사운드
김현수
조명
서가영
오브제 제작 도움
온달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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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정보
https://www.facebook.com/theatresinchon/photos/a.1585700358123901/5655752757785287/
  1. mid: 중앙의, 중간의, 중부의, 가운데의, 중…,
    field: 들판, 밭, 사육장, 장, 내보내다, 수비를 보다,
    er: 에, 저(할 말을 생각하면서 내는 소리), (접미사) ‘무엇을 하는 사람이나 도구, 기계 등’을 나타냄, ‘어떤 물건이나 특질을 지니고 있는 사람이나 사물’을 나타냄, 접미사 ‘어떤 일에 관계하는 사람’을 나타냄 (출처_네이버 영어사전)
  2. "뷰포인트는 배우, 연출, 디자이너 등 공연예술가들이 움직임과 공간 그리고 시간에 대한 예술적인 지각과 이를 극대화시킬 수 있는 근육을 만들어내는 과정이다. 그리고 이러한 뷰포인트적인 인식을 바탕으로 작품이나 작품의 일부를 만들어내기 위한 즉흥적인 과정을 콤포지션이라고 부를 수 있다”. 앤 보가트, 티나 란다우, 『뷰포인트 연기 훈련』, 비즈앤비즈, 2014. 책 소개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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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하늘

박하늘
연극과 다원예술 분야에서 배우, 창작, 음성해설 등을 협업하고 있습니다.
@skypark_hane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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