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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의 말

서울연극제 단막 스테이지
공연예술제작소 비상 〈성난 파도 속에 앉아 있는 너에게〉

권혜린

219호

2022.05.26

제43회 서울연극제 단막스테이지 <성난 파도 속에 앉아 있는 너에게>는 많은 것을 이야기하는 친절한 연극은 아니다. 45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금이 나온다는 저수지를 배경으로 어두운 분위기를 조성하면서 인물들의 등장과 연속적인 사라짐을 ‘보여 줄’ 뿐이다. 초반에는 정민, 지호, 연우가 공모하여 연우의 아버지를 죽이고 완전 범죄로 은폐하려는 것처럼 전개되지만 이후에 그 사실이 뒤집힌다. 또한 저수지에 던져진 아버지와 달리 세 사람이 스스로 저수지로 들어가는 장면에서는 그들이 진짜 죽은 것인지 아닌지 불확실하다. 이러한 구성은 극이 진행되는 동안 머릿속으로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게 한다.
사실상 제목이야말로 모호함의 끝을 보여준다. 제목에는, 저수지에는 없는 ‘파도’라는 단어, 극 속에 등장하지 않는 자세인 물속에 ‘앉아 있다’라고 하는 단어, 어떤 인물을 의미하는지 명확히 알 수 없는 ‘너’라는 단어가 나온다. 그러니 이 연극을 곧이곧대로 보는 것은 연극을 반만 본 것일지도 모른다. 완벽한 현실도, 완벽한 비현실도 아닌 그 경계쯤에 이 연극을 놓을 수 있을 것 같다. 극장을 나온 뒤에도 연극이 말하지 않은 그림자를 한참 동안 생각했다. 보이는 것 이면에 있는 그림자의 말 없는 말을 듣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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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난 세상 속의 성난 이들

이 연극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세상에서 패배한 채 밑바닥에 있는 이들이다. “매일 자꾸 더 깊은 나락으로 떨어”지는 듯하고, “어느새 커다란 웅덩이에 갇혀 있는” 듯한 기분을 느끼는 것이다. 서울에 아파트를 사고 아이를 낳고 싶은 꿈을 지니고 있는 정민, 돈이 목숨보다도 중요하다고 주장하는 거친 성격의 지호, 처음부터 아버지의 시선을 계속 느끼면서 위축된 듯한 연우가 등장한다. 세 사람은 연우의 죽은 아버지가 담긴 짐 가방을 힘들게 끌며 저수지로 온다. 돈을 위해 존속 살인을 한 것으로 암시되는 상황에서 그들은 저수지로 던지기 위해 짐 가방에 돌을 집어넣는다. 불안해하던 연우는 죽은 아버지의 지갑에서 돈을 꺼냈으면서도 자신은 아버지를 사랑했노라고 중얼거린다. “어차피 망가진 인생”이라고 자조하는 그들의 모습은 검은 단상과 커튼으로 표현된 저수지처럼 검은 안개가 깔린 인생을 보여주는 듯하다. 이들의 수중에는 아무것도 없다. 이들의 인생 자체에 성난 파도가 치면서 모든 것을 쓸어가 버린 것이다.
이렇게 자생할 수 없는 상황에서 이들이 기대할 수 있는 것은 돈을 지닌 이를 없애 그가 가진 것을 빼앗거나, 아무도 모르게 묻혀 있는 금을 요행처럼 얻는 것이다. 그러나 이들이 지닌 모든 기대는 철저하게 배반당한다. 목숨과 맞바꾼 아파트 서류는 연우의 어이없는 실수로 저수지에 수장되고, 금인 줄 알고 기뻐했던 것은 그저 조금 더 반짝이는 돌이었다. 불투명한 색이 아니라 투명한 색으로 표현된 돌은 그들의 적나라한 욕망을 투명하게 드러낸다. 비눗방울처럼 보였던 돌과 파도처럼 너울거리는 커튼은 제자리에 머무르지 않고 금방 사라져 버리는 희망을 암시하는 듯하다. 결국 이들에게 남은 것은 파국뿐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죽은 아버지는 유령처럼 저수지를 배회한다. 억울한 일을 당한 것일 수도 있는 상황에서, ‘성남’에서 비켜난 인물은 아버지뿐이다. 이러한 유령-아버지는 제목에 나와 있는 ‘성난 파도 속에 앉아 있는 너에게’ 말을 걸 수 있는 인물이기도 하다. 처음부터 그들을 지켜보고 있는 시선으로 말없이 등장하면서, 그들의 뒤에 그림자를 드리우면서 끝까지 장악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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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지도 눕지도 못한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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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의 배경이 ‘금이 나오는 저수지’라는 것이 신선했지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그곳은 동시에 ‘시체가 둥둥 떠오르는’ 저수지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그 저수지 속으로 세 사람도 차례로 사라진다. 그들은 ‘다시 떠오르면 다시 살고 싶을까 봐’ 자기 자신의 몸에 돌을 넣고, 또는 수영을 못하니 돌이 필요 없어 맨몸으로 저수지 안에 들어간다. 땅이 발에 닿을 정도로 수심이 얕지만 모두 사라진다. 현실 속의 실제 저수지가 아니라 마음의 저수지이기도 한 그곳은 심연으로서 그들을 집어삼킨다. 절망이 이들을 집어삼켰다고 할 수도 있겠다. 이들은 성난 파도가 다가오는 것을 보고도 평온하게 서 있지도 못하고, 무기력하게 누워 있지도 않고 그저 앉아 있을 뿐이다. 물속에서 앉아 있는 것만큼 부자연스러운 일은 없다. 모든 것이 실패한 뒤, 마지막에 힘껏 시도하는 것이 어둠 속으로 온몸을 내던지는 일인 것이다. 무거운 가방을 끌고 와서 실현하고자 했던 공동의 목표는 다시 무(無)라는 공동의 목표로 돌아간다.
그래서 이 연극이 블랙코미디라는 것에는 온전히 동의하지 못했다. 물론 코미디와 관련된 요소는 곳곳에 배치되어 있다. 세 친구의 외양이 키가 큰 인물, 키가 작은 인물, 덩치가 있는 인물 등으로 되어 있어 외적인 요소에서 보이는 들쭉날쭉함이 있다. 중요한 서류를 어이없이 잃어버리기도 하고, ‘수영을 못하니 돌을 넣을 필요가 없다’라는 대사가 반복적으로 나오기도 한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어둡고 무거운 분위기가 지배하고 있다. 단 하나 지을 수 있는 웃음이라면 씁쓸한 미소 정도일까. 금을 찾으려다 실패한 것조차 해프닝이 아니라 겹의 실패로 다가오는 상황에서 남은 건 이들을 절망에서 건져 올릴 수 있는 단 하나의 위로뿐이다. 그것도 살아 있는 인물이 아닌, 그림자 같은 유령-아버지의 위로 말이다.

누구나 가능한 너

정민과 지호를 내버려 두고 가장 먼저 저수지에 들어갔다가 돌아온 연우는 종이를 한 장 들고 온다. 물속에서 아버지를 만났으며, 편지를 받았다는 것이다. 이 역시 이미 현실/비현실의 경계가 뚜렷하지 않다는 생각을 하자 수월하게 수용할 수 있었다. 아버지가 보낸 편지의 수신자는 아들인 연우이고 정민의 이름까지만 언급되어 있다.
그러나 편지의 수신자, 그리고 성난 파도 속에 앉아 있는 ‘너’는 세 사람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다. 누구나 ‘너’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연우의 말에 대한 응답처럼 “사는 거 별거 없다. 그냥 살아라”라고 하는 유령-아버지의 목소리는 의미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허무주의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이는 이들의 발버둥을 무화하는 것이 아니라, 파도에 몸을 맡겨 흘러가다 보면 조금 가벼운 마음으로 현실을 수용할 수 있다는 위로이다. 현실을 바꿀 수 없지만 저수지로 들어오려는 발걸음을 지연시키고 싶은 약간의 위로 말이다. 세 사람의 사연이 자세히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안간힘을 쓰다 마지막에 온 곳이 저수지라는 점에서 삶이 무거웠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런 이들을 위로하는 유령-아버지는 이 연극에서 유일하게 너라는 타자를 인지하는 인물이다. 세 사람이 함께 있으면서도 각자의 심연에만 골몰하여 다른 이를 헤아리지 못할 때, 유령-아버지는 자신을 해치려고 하는 의도나 마음을 알았을 텐데도 이들을 포용하고자 한다.
자신에게 죽음을 줄 수도 있는 이들에게 인생 별거 없다고, 그냥 살라고 할 수 있는 마음을 모두 짐작하기는 어렵다. 그래도 전달되는 것은 분명히 있었다. 텅 빈 무대 위로 떨어진 ‘별거’ 없는 인생을 ‘그냥’ 살라는 말은 극이 끝나고 나서도 내내 맴돌았다. 저수지에 드리운 어둠이 무대와 객석을 완벽하게 가르는 것은 아니라고, 누구나 언제든 그 저수지에 빨려 들어갈 수 있다고 하는 묵직한 전언이 무대를 통과해 다가왔다. 별거 없는 인생을 살다가 저수지에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 들 때, ‘그냥’ 살라는 대사가 마치 파도처럼 밀려올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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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제공: fotobee_양동민]

서울연극제 단막 스테이지
공연예술제작소 비상 〈성난 파도 속에 앉아 있는 너에게〉
일자
2022.5.4. ~ 5.8

장소
씨어터 쿰

윤미희
연출
김정근
드라마투르그
배선애
출연
정충구, 조남융, 구도균, 김귀선
조연출
백다영
음악감독
류승현
무대디자인
임민
조명디자인
김건영
의상디자인
김정향
소품디자인
신지희
분장디자인
김효란
기획
아트리버
포스터디자인
디자인SNR
홍보
방수연
관련정보
https://tickets.interpark.com/goods/22003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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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혜린

권혜린
문학 연구자, 강사, 작가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더 자유롭게 읽고 쓰기를 꿈꿉니다.
lingi3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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