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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기억하려는 그들의 이야기. 그들은 슬픔을 먹고 기억하기로 했다.

혜화동1번지 [2022∞세월호] 엘리펀트룸 <세월호 학교>

성준혁

제219호

2022.05.26

2014년 4월 16일, 그 당시 나는 초등학교 3학년의 철없이 놀기만 좋아하는 제주의 꼬마였다. 내가 기억할 수 있는 그 날의 처음은 창문에 비치는 보슬보슬하게 떨어지는 비의 모습이었고, 그날의 비는 살짝쿵 더 눅눅한 느낌이었다. 눈을 비비며 텔레비전을 틀었던 나는 ‘세월호’라는 이름의 배가 서서히 바다에 가라앉는 모습을 보았다. 커다란 배가 바다 한가운데에서 천천히 내려가고 있었고, 사람들이 배에서 천천히 구출되고 있었다. 사실 그 모습을 처음 보았던 나는 별로 크게 놀라지 않았다. 어른들이 배를 타고 있던 사람들을 구출하러 갔다고 했으니까, 텔레비전에도 이렇게 생생히 나오니까 나는 크게 동요하지 않았다. 나는 그저 ‘언젠가 다 끝나겠지’라고 생각했었다. 나는 학교에 갔다 오자마자 텔레비전을 틀었다. 그 당시 내가 좋아하는 애니메이션을 보기 위해서였는데, 채널을 돌리던 중 나는 아침에 본 세월호의 모습을 보았다. 분명 0이었던 사망자 칸의 숫자는 하나둘씩 늘어나고 있었다. 그리고 배는 이미 잠수하고 있었다.

시간은 흘러 나는 성인을 앞두고 있는 고등학교 2학년이 되었다. 사실 연극을 보기 전 나는 기대는 하지 않았다. 이 전에도 세월호에 대해 어렴풋이 알고 있었고, 겨우 1시간 동안만 진행되는 연극이니 크게 흥미롭지는 않았기 때문이었다. 계단을 내려가 지하 극장에 들어서자 쾌쾌하면서 익숙한 오래된 냄새가 느껴졌다. 그 냄새는 극장이 갖고 있는 오래된 기억들을 보여주기에 충분했을 정도로 짙은 농도를 가지고 있었다. 극장에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네 개의 책상, 그림자 진 채로 앞을 보고 있는 두 명의 인물, 스피커로 들리는 학교의 소리들, 현장은 시작 전부터 관객에게 말을 전하려는 듯했다. 그들이 어떤 기분으로, 어떤 느낌으로, 어떤 표정으로 묵묵히 어두운 앞을 보고 있었는지 나는 알 수 없었지만, 내가 짐작할 수 있던 것은 그들의 뒤는 그 어떤 것보다 황량했다는 것이다. 뒤에 있던 두 개의 책상에 앉을 사람은 극 중 한 번도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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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은 학교의 종소리가 울리며 시작되었다. 길고 정겨운 종소리 뒤, 벽에 비치는 사각형의 조명은 오후의 텅 빈 학교를 연상시켰다. 연극은 단순했다. 인물 두 명이 책상과 의자, 작은 칠판을 가지고 무대를 뛰어다니며 극을 이끌었고, 두 인물은 관객에게 질문하였다. 세월호에 대하여 질문을 받은 나와 다른 관객들은 대답을 잘 하지 못하였다. 말하기가 어려웠는지 잘 알고 있지 못해서였는지 모르지만 대부분 대답을 잘 하지 못하였다. 두 인물들은 이미 예상하고 있었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조금 씁쓸해 보이는 표정으로. 제목인 ‘세월호 학교’처럼 연극은 하나의 수업을 받는 듯한 느낌이었다. 미처 알지 못했던 세월호의 사실들과 아직 진상규명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현 상황, 그리고 그들이 갖고 있는 단단한 의지와 결심을 관객들에게 말해주었다. 그것도 아주 당당히 말해주었다.
두 인물은 괴롭고 슬퍼도, 어떤 일이든 기억해야 된다고 말했다. 어른이 될 아이들과 이미 어른이 되어버린 아이들을 위해 기억하고 약속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들은 잠시 침묵했다. 이 짧은 침묵에는 후회가 있고, 미안함도 같이 섞여 있으며, 책임감이 들어있었다. 두 인물이 이리 당당히 말하기까지, 슬픔들을 이겨내고 기억하려 다짐했을 때까지의 고통은 헤아릴 수 없지만, 나 스스로가 느낀 두 인물의 침묵은 한없이도 무거웠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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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의 마지막, 두 인물은 이런 말을 하였다. ‘미안해’. 그리고 두 인물은 마지막으로 침묵했다. 관객을 바라보면서. 종소리가 울리며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한 교시가 그렇게 막을 내렸다. 기억하려는 사람들의 이야기, 연극 ‘세월호 학교’는 현재까지, 그리고 안전한 세상이 만들어 질 때까지 약속된 세상을 위해 끝없이 목소리를 낼 것이다. 그들이 보여줬던 목소리를 내기 위한 침묵처럼, 마지막까지 기다리고 있겠다는 노란 리본이 그려진, 연극이 끝난 무대의 칠판처럼 말이다.

내가 제주에 살았을 때나 서울에 상경했을 때, 내가 만나본 어른들 중 대부분은 아픈 과거를 입에 담고 사는 것을 꺼렸다. 오히려 그 과거를 부끄러워하며 감추려 했다. 나는 그러한 어른들을 보며 어른이 되면 모든 사람들이 그런 어른이 되는 줄만 알았다. 하지만 연극 <세월호 학교>에서 본 두 인물은 그 누구보다도 당당히 세월호 참사에 대하여 말하였고, 우리 사회가 기억해야 하고 약속해야 한다는 것을 굳세게 주장하였다. 슬펐고, 힘들었다. 그러니 일어서려 하고,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게 약속하려는 것이 그들의 신념이자 염원이다. 슬픔을 먹고 일어난 기억하는 사람들의 이야기, 연극 <세월호 학교>는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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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제공: ⓒ 이미지 작업장 박태양]

혜화동1번지 [2022∞세월호] 엘리펀트룸 <세월호 학교>
일자
2022.5.5 ~ 5.15

장소
연극실험실 혜화동1번지

출연
김민주, 김보은
작·연출
김기일
기획
김민솔
조연출
정인혁
조명디자인
이세영
그래픽디자인
정호연
무대감독
박세련
자문
김은빈, 오유주
관련정보
https://tickets.interpark.com/goods/22004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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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준혁

성준혁
글을 쓰고, 영화를 만듭니다. @snow1sfall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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