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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초에 기계음이 있었다

류한길 사운드퍼포먼스 <⑥>

이지현

제219호

2022.05.26

이 리뷰는 똑똑한 AI 번역기 파파고의 한국어 음성으로 재생됩니다.

삐이이입, 삐이이이이, 뚜구둑, 뚜구둑, 삐이이이입.

태초에 기계음이 있었다. 여기는 퍼포먼스 공간 윈드밀, 용산구 원효로에 있지만 지리적 체감으로는 마포의 맨 끝자락이다. 일요일 오후 5시, 흐릿한 날씨에 넘실대는 한강물을 마주보는 이곳에서, 음악가 류한길은 기계음의 향연을 시작한다.

삐이이이입, 삐이이이, 뚜구둑, 쿠쿠쾅.

어두운 지하 거대한 공간, 불빛이 거의 없어 시야가 흐릿하다. 방석, 접이식 의자, 초록색 편안한 의자 가운데 선택해서 가져와 원하는 위치에 앉을 수 있다. 류는 한쪽 모퉁이에 자리를 잡고, 그를 중심으로 각각 대각선으로 마주보는 벽면 사이에 거대한 스피커 두 대가 서 있다. 그 가운데 바닥에는 로봇처럼 생긴 작은 물체가 흐릿하게 보인다. 사운드 퍼포먼스에 무지한 나는, 류가 그 물체를 고정시켰을 때 로봇 퍼포먼스가 시작되었다고 혼자, 착각했다. 그러나 후에 어느 사운드 아티스트에게 저 로봇의 정체가 무엇인지 자문을 구했을 때에야, 그저, 그것은 레코더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미 무지한 관객이었지만 무지에 무지가 더해지는 기분이었다.

삐이이이이.

그러므로 이것은, 소리만의 문제이다. 아니, 소리만의 문제가 아니라 소리가 만드는, 기계음의 파동이 만들어내는 세계와 몸을 관통하는 문제이다.

쿠쿠쾅.

공연을 겪는 동안 점점, 소리의 파동을, 물리적인 실체를 몸 전체 부위로 자각한다. 소리는 그리고 통각임을, 때로는 이를 지나는 신체에 통증을 부여할 수 있음을 자각한다. 기계음에, 망치 소리와 같은 부딪침이 더해지고, 그 속에서 멜로디를 이루기도 하면서 소리의 세계는 때때로 들리는 감각을 수용하는 귀가 견딜 수 있는 세기의 한계점을 시험한다. 물리적으로 몇 번의 작은 고비들이 생성된다. 물론 그 고비는 내 몸에서 일어나는 감각적 반응일 뿐, 앞 뒤 양옆으로 앉은 다른 관객이나 음악가의 것이나 그 공간에 속한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

삐이이이입.

공연의 제목은 ⑥, 그러니까 소리를 내어보자면 동그라미 안의 숫자 6이다. 이 작품은 류한길이 작년에 발표한 ③, 동그라미 안의 숫자 3 공연에서 출발한다. 설명에 따르면 동그라미 안의 숫자 3은 “비자연적인 소리의 창출을 희망하며 만들어낸 음향 합성기 Pulsar Generator의 프로그래밍 과정에서 든 생각이 음속허구일 수 있다는 자각”에서 비롯되었다고 하며, “음향 합성기를 통해 의도한 소리를 출력하기 위해서는 3가지 변수들의 반복이 필요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여기에 다시 3개의 세밀한 조건을 추가하여 동그라미 안의 숫자 6 공연이 만들어졌다고 한다.

꿔어어어어, 끼이이이이, 꾸우웅.

작품에 대한 설명은 이처럼 명료하다. 세 가지 변수들의 반복에 세 가지의 조건을 추가하여 음향 합성기를 통해, 의도한, 비자연적인 소리를 창출한다. 여섯, 가지의 요소들로 창출한 비자연적 소리의 향연은, 이를 경험하는 관객 한 명 한 명의 감각에 어떻게 가닿을까? 류는 이 세계가 어떻게 가닿기를 원했을까?

류는 자신의 저서 『프린스 오브 다크니스 ― 허구의 생산과 증폭의 가능성에 대하여』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경험한 적 없는 리듬과 소리를 통한 음악보다 보편적인 음악 구조를 현재의 기술로 재현하는 것에 더 가치를 부여하는 문화는 부위별로 잘려 있는 고기들을 한꺼번에 넣고 형태가 사라질 때까지 끓여버림으로써 더 이상 미래에 대한 추론과 개입의 능력을 상실한 것처럼 보입니다. 현대의 소비적인 문화는 과거의 부활, 유령의 호출, 시체들의 재활성화, 분해된 고기들로 점철되어 있습니다. …”

동그라미 안의 숫자 6은, 경험한 적 없는 리듬과 소리. 생고기, 결합된, 살아있는 신체, 미래에 대한 추론과 개입을 가능하게 하는 음악. 그 가능성의 틈새를 발견하게 하려는 시도의 연장선일까? 차크라를 찌르는 듯한 금속성 소리. 소리만으로 구성된 세계에서 점차 시야가 뜨인다. 앞 사람 가방에 꽂혀 있던 어렴풋한 물체가 우산이고, 그 색깔이 빨간색임을 지각할 때쯤,

삐이이입, 삐이이이이, 뚜구둑, 뚜구둑, 삐이이이입.

“감사합니다”라는 류의 목소리로 세계가 닫힌다.

윈드밀을 나와, 바닷바람처럼 출렁이는 강바람을 맞으며 걸어가는 길. 이제 이곳은 체감상 마포의 끝자락이라기보다도, 그러니까 이곳의 지리를 인식하는 몸에는 류의 파동이 깊이 더해져, 폐부를 찌르는 미세한 통증이 이어지고 두 눈을 잇는 혈관이 얼얼하다. 공연도 끝나고, 관객으로서의 역할도 끝났음에도 여전히 신체에 침투해서 빠져나갈 줄 모르는 이 파동을 어떻게 빼내야 할지, 혹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여전히, 망설이고 있다.

동그라미 안의 숫자 6,
미트볼,
경험한 적 없는 리듬과 소리,
떨리는 피부,
진동하는 신체,
어렴풋한 시야,
초록색에서 빨간색까지,
미래에 대한 추론,
풀드포크,
뚜구둑,
끼이이이익,
쾅.

태  ·  초  ·  에  ·  기  ·  계  ·  음  ·  이  ·  ·  ·  ·  ·  ·

류한길 사운드퍼포먼스 <⑥>
일자
2022.5.7.~5.8

장소
윈드밀(서울시 용산구 원효로 13가, 지하 2층)

기획·연주
류한길
주관·주최
윈드밀
관련정보
https://docs.google.com/forms/d/e/1FAIpQLSfSgQGG1dUwl_gDff8kn74zE8uDxdFMK1gV2HuFLjx0d9rQNA/viewfor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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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현

이지현
연극적인 삶을 추구하는 사람. illang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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