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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르의 좌표축 옮기기

제2회 세계여성공연예술축제
공원 <지도 프로젝트-부산> X 마담패밀리 <해녀>

변영미

제223호

2022.10.13

제2회 세계여성공연예술축제 개막작 <지도 프로젝트>와 폐막작 <해녀>는 ‘지금 나는 어디에 서 있는가?’를 질문하게 만든다. 현재 한국이 처한 현실에서 ‘여성’을 내걸고 민간에서 추진하는 국제행사가 짊어져야 할 무게가 녹록지 않음에도 연대와 지원과 열린 가능성의 장으로서 축제 조직과 참여 예술가들의 의미심장한 협업이 두 작품에 녹아있다. 서로 다른 결과 색을 간직하며. 기획에서 공연과 유통, 국제 교류를 지원하는 글로윙 아티스트로 작년에 선정되었던 두 작품은 다른 지역의 예술가들이 만나 장르의 경계를 포개고, 교차시키고, 충돌시켜 삶과 무대 위의 현존을 확장시킨 흥미로운 시도이다. 코로나 이후 가상과 실제, 온라인과 오프라인, 현존과 원격현존의 근간이 흔들렸다고는 하나, 여전히 공연예술계는 장르를 구획하고 선을 그어 기존의 좌표축 찍기를 고집하는 현실에서 이러한 시도가 시사하는 바는 크다.

박수영의 <지도 프로젝트>는 보고 만지고 생각하며 나의 역사를 탐험하는 여정이다. 자신에게서 시작하여 삶의 공간으로, 그리고 공간을 공유하는 이웃들에게로 그 탐구영역을 확장해 나가는 방식이 동양미술에서 춤으로 장르를 확장해온 작가의 세계와 닿아 있다. 지도는 ‘찰나의 영원성처럼 과정과 변형을 통해 만나는 지역의 사람들이 살아 숨 쉬는 현재로서’1) 존재에 대한 연결이자 시간과 공간에 대한 사고이며 세계를 구성하는 사람과 환경에 대한 성찰로 이어진다.

<지도 프로젝트>의 공연 사진이다. 무대 뒤편 스크린엔 한 건물의 모습이 영사되고 있다. 무대 중앙에는 흰 옷을 입은 두 여성 무용수가 바닥에 누워서 움직이고 있다. 그 뒤쪽으로 다채로운 색상의 의상을 입은 다섯 명의 여성 출연자가 검지를 편 양손을 관자놀이 근처에 대고 무용수를 내려다보고 있다.

무대는 단촐하다. 스크린이 있고, 그 중심에 위도와 경도, X축과 Y축, 가상의 전파를 시각화시킨 듯 다채로운 색상의 긴 축들이 세로로 매달려 있다. 얼핏 중국집 출입문에 매달린 실커튼 같기도 하다. 스크린에는 60~70대 여성 생활예술인들의 몸과 일상이 손과 발, 귀와 눈, 시장과 지하철 등 조각 난 편린으로 영사된다. 그들을 인터뷰한 음성도 소리에서 시각언어로 변환되어 스크린을 디자인하고 드문드문 들려오는 장구 장단과 음악은 정서를 부추기기보다 틈을 만든다. 움직임과 기억과 음악과 언어는 엇박처럼 기묘하게 어긋나 낯선 감각을 창출한다. 어린 시절 살구 열매를 따 먹던 기억, 남편과의 첫 미팅에서 쓴 커피를 마시고 뱉어내었던 기억, 머리맡에 과자를 두고 가시던 아버지에 대한 기억 등 전쟁과 가난, 급속한 경제 성장이라는 격랑의 역사를 살아내었던 여성들의 삶은 같은 동작으로 되풀이되다 한데 모여 서로를 쓰다듬으며 커다란 기억의 덩어리가 된다. 그리고 밝고 다양한 빛깔 옷을 입은 일곱 여성들 삶의 궤적은 흰 옷 입은 세 움직임꾼(무용수와 배우)의 몸을 통해 다시 그려진다. 묵자의 그것처럼 세 움직임꾼은 여성들의 그림자인 듯, 조종사인 듯, 그들의 기억을 자신들의 몸으로 되새김질한다. 그들 몸으로 그린 지도는 닮은 듯 다르고, 무채색인 듯 다채로우며, 어딘가 익숙한 듯 낯설다. 이를 통해 개인의 기억과 삶은 시공이 비틀린 공간 속에서 해체되고 다시 조합되어 내 것도 남의 것도 아닌 경계의 역사가 된다.
한국의 태안과 부산에서든, 슬로베니아와 독일과 불가리아에서든 가족을 위해 삶터를 바꾸고 자기를 내어주기하는 여성들의 삶에서 ‘시대와 장소와 인종을 초월하여 여성들의 서사를 꿰어주는 것은 사랑’2) 이라는 지극히 보편적 사실을 경이롭게 발견해나가는 박수영 작가는 보이는 것을 맹신하지 않고 낯설게 하여 틈을 만듦으로써 오래된 미래를 창출한다.

무대 왼편 앞쪽에서는 세 무용수가 각각 앞으로 나아가는 자세를 취하며 움직인다. 무대 오른편 뒤쪽에는 여섯 명의 여성 출연자가 두 줄로 서서 정면을 바라보고 있다.

<지도 프로젝트>가 한 존재의 좌표축 찍기에 전념했다면 <해녀>는 집단의 힘을 녹여내었다. 마담패밀리는 추상의 움직임이 내포한 가능성을 한정할 수도 있는 위험을 무릅쓰고 해녀들의 강인함과 생명력과 연대를 부각시키기 위해 구체적인 서사와 대사를 입히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보여주고 싶은 몸이 아니라 보여줘야 하는 몸을 그려내는 젊은 춤꾼들의 패기는 쉼 없이 무대 위를 질주하며 해녀들을 향한 아름다운 헌사가 된다.
무대 위에 펼친 커다란 반투명 비닐의 서걱이는 소리와 그 속을 자맥질하는 무용수들의 역동적인 몸짓, 타악 라이브의 박진감 넘치는 에너지에 힘입어 무대와 극장은 거대한 바다가 된다. 물레처럼 되풀이되는 해녀들의 질곡 진 삶은 공연의 시작과 끝에 들려오는 ‘이어도사나’ 노래에 실려있다. 이어도사나는 격랑의 역사를 견디는 힘을 주는 삶의 찬가도 되었다가 파고에 휩쓸려간 혼을 다스리는 구슬픈 만가가 되기도 한다. 그래서 뒤돌아서 뱃머리에 선 해녀들을 바라보는 마지막 장면은 보는 이들의 가슴에 묵직하고 아련한 파문을 일으킨다. ‘다시 태어나도 꼭 해녀를 할켜.’3) 하고 말할 수 있는 해녀들의 몸은 바다 속에서 섞여 이미 바다를 품고 있으며 바다보다 더 너른 바다를 경험하게 만든다. <해녀>는 춤과 극의 느슨하고 유연한 만남이 어우러진 흥미로운 시도이다. 이 공연은 ‘실용무용으로 무용극을 처음 시도한’4) 마담패밀리와 무언극의 움직임 연출과 완급 조절에 강한 역량을 발휘하고 있는 극단 배관공(배우, 관객 그리고 공간)의 주혜자 드라마트루그가 만나 한 시간에 이르는 긴 공연으로 거듭난 것이다. 작품 속에는 상군, 중군, 하군이 다른 캐릭터로 등장하여 대사와 연기로 주제를 선명하게 제시한다. “저마다 타고난 지 숨이 있는 기다. 그기 욕심 부린다고 되는 게 아니다. 지금처럼 욕심내어 앞도 뒤로 안보는 그런 때가 젤로 위험한 거다. 물질은 옆에 동무 믿고 서로 지켜가며 해야 된다. 시대가 사람 목숨 파리같이 다룬다 캐도 우리는 한 알 한 알 진주 품듯이 한 생, 한 생 귀하게 안고 가야 한다” 하는 신중하고 지혜로운 상군 해녀(박복남 분)는 무대 상단에서 바다를 굽어보며 중군 해녀(박주원 분)에게 당부의 말을 전하고, 한 해녀(엄지영 분)는 객석 가까이 다가와 갈매기들(관객)의 박수를 유도한다. 춤 속에 자리 잡은 극은 작품 전체의 흐름을 끊기게 하는 점도 있었지만 만남이 낳은 낯선 변주곡으로서 경계를 열어줄 또 다른 가능성을 품고 있다.

<해녀>의 공연사진이다. 족쇄눈(물안경)을 쓰고 해녀 복장을 한 배우 한 명이 낫을 들고 서서 이야기를 하고 있다. 뒤편에는 마찬가지로 해녀 복장을 한 배우 두 명이 바닥에 앉아 이야기하는 배우를 바라보고 있다.

객석 좌우에 위치한 타악 연주자들(이영재, 이상호)은 악기의 울림을 몸 전체로 전파시키며 역동성을 증폭시키는 군무의 일부가 된다. 그들이 연주하는 뒷모습은 해녀들이 연대하듯 해녀들은 지켜보는 시선이자 힘들 때 도움을 주는 보호자 역할을 겸한다. 춤꾼들이 숨을 돌리는 시간을 주기 위해 역할 바꿈을 하며 연주자가 무대 위로 뛰어올라 힙합을 추며 장난끼를 발동할 때도 있다. 반주자들 몸을 통해 객석으로까지 이어진 무대에서 관객들은 해녀들이 숨을 참을 때 함께 머금고, 숨비소리를 내뿜을 때 함께 내쉬게 된다. 위험을 경고하는 호루라기 소리를 닮은 안도의 숨비소리, 그 소리는 얇은 옷 하나로 차가운 바닷물을 감내하며, 해산물의 무게보다 더 무겁게 짓누르는 참은 숨의 무게를 견뎌야 하는 해녀들의 몸과 함께 관객들이 호흡하도록 만들어준다.
오정화 안무가는 ‘해녀’를 오롯이 전달하기 위해 뚝심 있게 돌진한다. 현악기 없이, 나풀거리는 예쁜 치마도 입지 않고, 하얀 물적삼과 검정 물소중이에 물수건과 족쇄눈을 머리에 걸친 옛날 모습 그대로 해녀들이 견뎌온 역사를 구현한다. 해녀들의 목숨을 부지해주던 가장 강렬한 연대의 힘은 춤꾼들의 몸과 타악의 강렬한 진동뿐 아니라 안무로까지 연결되어 있다.
오래전임에도 TV에서 봤던 해녀 다큐멘터리에 대한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울 엄니는 나 고생시키려고 낳았나”로 시작하는 해녀들의 노랫소리가 지닌 처연함에 아름다워 목이 멨던. 여성이 품고 있는 몸은 생물학적으로 구별되는 것으로서가 아니라 포용하고 받아들이는 가능성의 차원에서 무한하고 아름답다. 경계와 배제가 아닌 서로 만나 공명하며 떨림을 창출해가는 공감의 장으로서 여성의 몸, 그 아름다움을 목격하게 해준 공연이<지도 프로젝트>와 <해녀>이다.

해녀 복장의 일곱 무용수가 무언가를 안은 듯 양팔을 쭉 펴서 둥글게 모으고 한 발을 든 채 춤을 추고 있다.

“말하고 움직이고 세상을 바꾸다”는 이 축제의 모토처럼 내 말과 움직임이 세상을 바꿀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다. 하지만 적어도 말하기 이전과 움직이기 이전에 내가 서 있던 의식의 좌표축은 틀림없이 변할 것이리라. ‘경쟁적으로 자기만의 가치를 빛내야만 하는 메이저 무대가 아닌 느슨하고 맘 편하게 온전히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5) 열린 협업과 연대의 플랫폼을 다져가고자 하는 세계여성공연예술축제를 응원한다.

[사진제공: 세계여성공연예술축제추진위원회]

2022년 제2회 세계여성공연예술축제
공원 <지도프로젝트-부산> X 마담패밀리 <해녀>
공원 <지도 프로젝트-부산>
  • 일자 2022.8.26 ~ 8.27
  • 장소 창조문화활력센터 소극장 624
  • 출연 박수영, 김혜윤, 송윤아, 김수경, 이수경, 류연정, 윤경숙, 윤혜원, 이정숙, 이정은 연출·안무·영상 박수영 음악 최윤상 (wHOOL) 조명감독 이하슬 무대감독 송지현
  • 관련정보 https://gwf.kr/program/official_viewop_2022.php
마담패밀리 <해녀>
  • 일자 2022.9.3 ~ 9.4.
  • 장소 부산 영화의전당 하늘연극장
  • 무용수 고영현, 김동길, 김동욱, 김소래, 김수민, 김지희, 김예빈, 김현진, 나도연, 서민지, 신영채, 유승이, 이나현, 이다연, 이예주, 이예진, 이은지, 정재훈, 조상연, 조상진, 최민영, 황지예, 황창민 고수 이상호 배우 엄지영, 박복남, 박주원 안무 Madame big(오정화) 협력연출 이동원 드라마트루그 주혜자 음악 이영재 조명디자인 장훈석 조명감독 김신욱, 최동일 무대감독 이하슬 무대팀 이영석, 이상호 음향감독 윤해리 영상감독 손희승 음향·영상 오퍼레이터 송지현
  • 관련정보 https://gwf.kr/program/official_viewcl_2022.php
  1. 박수영 <지도 프로젝트> 연출·안무· 영상 작가와의 인터뷰
  2. 박수영 <지도 프로젝트> 연출·안무· 영상 작가와의 인터뷰
  3. 오정화 <해녀> 안무가와의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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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주혜자 세계여성공연예술축제 예술감독과의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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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영미

변영미
한국과 인도의 전통극과 고유의 빛깔을 지닌 공연에서 많은 영감을 받고 있으며 동시대 예술과 예술가들을 비평적으로 아카이빙하는 데 열을 올리고 있다. 경계와 존재를 확장시키기 위해 ‘몹.쓸.짓.(몹시 쓸 만한 몸과 짓) 프로젝트’를 시나브로 추진하고 있으며, 독립활동가로서 지쳐 포기하지 않기 위해 요가 호흡과 명상을 한다.
https://www.facebook.com/youngmi.byun.5&www.instagram.com/swaraindia_yog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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