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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하기를 멈추지 않고

0set 프로젝트 <다음 이야기 - 장소>

정효선

제223호

2022.10.13

9월 18일은 그늘을 조금만 벗어나도 땀이 주륵 흘러내리는 날이었다. 한여름에도 시원한 커피를 먹은 적이 없는데 급기야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먹은 날로도 기억된다. 이날 오후 2시부터 성북천 분수광장에서 0set 프로젝트의 <다음 이야기 - 장소> 공연이 예정돼 있었다. 성북천 분수광장은 내가 대학로에서 집으로 걸어 들어가는 날이면 늘 가로지르게 되는 곳이다. 지난 5월 <저 너머로의 발걸음> 공연 당시, 지하철 4호선을 달려 안산 고잔역과 생명안전공원 부지를 오가는 여정에도 다녀온 터라, 집 앞 공연 소식에 발걸음은 반가움을 숨기지 않았다.

가로등 기둥을 축으로 0set 프로젝트의 <다음 이야기 – 장소> 공연 배너가 나란히 걸려 있다. 주황색 배너 뒤쪽으로 파란 하늘이 보인다.

영점에 맞추어 다시 생각해 보기를 시도하다

0set 프로젝트는 우리 사회에서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것을 영점에 맞추어(zero set) 다시 생각해보기를 시도하는 공연을 기획해 오고 있다. 극장에 ‘입장’ 가능한 접근성에 대한 질문(<연극의 3요소>(2017), <불편한 입장들>(2017))부터, 보고, 만나고, 함께 있는 방식에 대한 질문들(<관람모드-보는 방식>(2019), <관람모드-만나는 방식>(2020), <내가 말하기 시작할 때>(2020), <관람모드-있는 방식>(2021)), 그리고 세월호 참사를 겪은 이들의 이야기(<기록의 기술>(2020), <저 너머로의 발걸음>(2022))를 귀 기울여 듣고, 펼쳐 놓기도 했다.

이들 공연 중 더러는 참여하기도, 더러는 참여하지 못하기도 했다. (이상하게 ‘보다’ 대신 ‘참여하다’라는 동사가 0set 프로젝트의 공연에 더 어울린다) 당연하게 여기는 것에 대한 질문과 더불어 매 공연을 관통하는 장치는 관객의 이동이 수반된다는 점이다. 극장이라는 정해진 공간에서 관객이 배우가 등장한 무대를 바라보는 형태가 아닌, 한 거점에서 다른 거점으로 이동하며 진행되는 공연. 이 과정에서 관객은 마치 공연의 참여자 혹은 배우가 된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공연을 ‘보다’가 아닌 ‘참여하다’를 쓰게 되는 이유 중 하나다.

<다음 이야기 - 장소>는 공연 혹은 퍼포먼스와 함께 다섯 개의 전시·체험이 ‘다음 이야기’의 ‘장소’인 광장을 채웠다. ‘[ ]는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가’라는 질문을 통한 극장 경험 설문에 응답하고, 장애인거주시설 ‘향유의집’에 대한 기록을 다시 만나볼 수 있는 전시가 마련되었는가 하면, 서랍장 형태의 부스에서는 세월호 참사의 이야기를 담은 ‘그날이 우리의 창을 두드렸다’의 기록을 볼 수 있었다. 지난 공연 <저 너머로의 발걸음> 지하철 여정에 함께 했던 노란리본 매듭 잇기 체험과 4.16 공방의 양말목 꽃키링, 코르크 컵받침 만들기 부스도 한 편에 꾸려졌다.

파라솔 밑에 책상이 펼쳐져 있고, 책상 주변에 십여 명의 사람들이 앉거나 서서 양말목 공예를 하고 있다. 노란색 티셔츠를 입은 여성이 두 어린이에게 완성된 키링을 건네고 있다.

함께 사는 방식에 대해 묻다: 탈시설

탈시설은 장애인이 비장애인과 지역사회에서 살 수 있는 동등한 권리를 가진다는 운동으로, 지난해 4월 폐지된 장애인거주시설 향유의집은 탈시설 역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향유의집에 다녀오는 여정을 담은 공연 <관람모드-있는 방식>(2021)의 ‘다음 이야기’는, 대구에서 탈시설 자립생활을 4년째 이어오고 있는 장혜란, 백문애를 화상으로 연결하고, 탈시설 장애인들과 장애인거주시설에 거주하는 장애인들의 모임인 노들장애인야학 ‘에스쁘아’의 공연으로 이어졌다.

동그란 원으로 모여 앉은 이들이 앉아서 발을 구르다가, 악기 연주에 맞추어 독무로, 군무로 춤을 추었다. 화상으로 연결된 대구에서도 이 모습을 함께 감상하며 어깨를 들썩여 장단을 맞추었다. 그리고 광장에 자리한 시민들이 함께 어우러져 춤추는 장면도 연출됐다. 우리는 자주 엇박자가 났지만 내리쬐는 가을 태양 아래 땀범벅이 된 채로 누구든 먼저 이렇게 묻는 듯했다. “여기서 함께 살지 않을래?” 그러자 누구나 먼저 대답하는 듯했다. “그래!”라고. 그래, 우리 이곳에서 함께 살자고.

성북천 분수광장의 나무 데크를 가득 채우는 주황색 원이 바닥에 그려져 있다. 삼십여 명의 사람들이 그 원을 따라 한 방향으로 돌며 춤을 추고 있다.

각자의 방식으로 사유하고 질문하기

박하늘과 홍성훈은 <관람모드-만나는 방식>(2020)에서 만난 적이 있다. 홍성훈의 휠체어와 노트북은 그의 다리와 입이 되어 준다. 그는 세상과 소통하기 위하여 단어를 고르고, 쓰는 사람이다. 박하늘은 자신의 아픈 몸을 녹음하는 방식을 통해 사유한 바 있다. 해가 지글거리는 한낮의 광장 가운데 홍성훈이 자리했다. 그는 묵묵히 자판을 두드렸고, 그가 자판을 두드리자 그의 말이 화면을 통해 글자로 전달되었다. 다정하고도 치열한 질문하기이자 글쓰기가 우리를 두드린다.

이와 동시에 혜화동에 있는 서울연극센터에서부터 박하늘이 이곳으로 걸어오기 시작한다. 그의 이동 과정이 스크린으로 중계되었다. 이번 공연에서는 거점으로의 관객 이동은 없었지만 지난 공연에서 관객의 여정 일부를 이끌었던 박하늘이 그것을 대신했다. 우리는 그가 오랜 시간 녹음기에 대고 독백했을 아픈 몸에 대한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가 이곳에 당도하기를, 화면의 카메라를 통해 비친 얼굴을 곧 실물로 마주하기를 기다렸다. 마침내 그가 마지막 횡단보도를 건너 광장에 도착했을 때 사람들은 박수를 보내며 반가워했다. 그가 떠난 여정, 곧 만나리란 기대, 마침내 만났을 때의 기쁨이 어우러졌다.

휠체어에 앉은 홍성훈과 한쪽 무릎을 바닥에 대고 쪼그려 앉은 박하늘이 마주 보고 있다. 박하늘의 오른손에는 마이크가, 왼손에는 스마트폰을 장착한 셀카봉이 들려 있다. 두 사람 뒤쪽으로 설치된 큰 스크린에 홍성훈의 뒷모습과 박하늘의 얼굴이 클로즈업된 영상이 보인다.

<관람모드-만나는 방식>에서 만난 또 한 사람 유현주는 농인으로, 농인들의 학교 ‘소리를 보여주는 사람들(소보사)’의 교사이기도 하다. 농인은 눈과 손, 그리고 얼굴의 온 근육으로 이야기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표정이 다채로운 사람이 전하는 이야기에 호기심 또한 가득 차오른다. 그의 손에도 표정이 있었다. 이야기를 마친 그가 마지막으로 덧붙였다. “각자 열심히 살다가 다시 만납시다.” 그에게 박수 수어를 배운 관객들이 어느새 손을 들어 반짝반짝 흔들었다. 광장 주변을 지나는 자동차의 경적이며, 성북천의 물소리가 모두 고요해졌다.

이런 진공상태를 김원영X프로젝트 이인의 공연에서도 느낄 수 있었다. 안무가 이본 라이너(Yvonne Rainer)의 <트리오 에이(Trio A)>(1968)를 휠체어 버전으로 재해석해낸 <무용수-되기> 공연은 휠체어를 탄 김원영(그는 작가이자 변호사이자 퍼포머이기도 하다)과 비장애인 최기섭이 상호작용하며 움직이는 과정을 보여준다. 성북천 광장 바닥을 걷거나 구르거나 기는 방식으로 이는 마치 움직임을 넘어선 움직임처럼 보이기도 한다. 닭강정을 먹으며 가을밤을 산책하던 이가 느닷없이 몸에 대해, 몸에 대한 고정관념에 대해 각자의 방식으로 사유하게 되는 순간이었을 터.

세월호 참사에 답하기

지난 5월 말 <저 너머로의 발걸음>(2022) 공연이 안산의 고잔역부터 생명안전공원 부지까지의 여정을 담았다면, 오늘 공연에서는 생명안전공원 부지와 팽목 세월호기억관, 광화문 세월호 기억관 세 곳을 화상으로 연결했다. 세 곳 각각 불법건축물에 부과되는 ‘이행강제금’이 통지되거나, 철거 조치가 시도되거나, 조성이 지연되는 등의 어려움을 겪고 있어, 이를 지키기 위해 애쓰고 있다. 팽목항(진도항)은 세월호 참사로 숨진 희생자들이 뭍으로 옮겨져 가족들을 처음 만난 곳이고, 광화문 광장은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참사의 진실을 밝히고자 고군분투한 현장이다. 생명안전공원은 안전 불감 사회에 경각심 일깨우고, 생명에 대한 존중을 되새기고자 조성 예정인 공간이다.

‘고통을 똑바로 마주하고 기억하고자 하는 이들’의 이야기는 노래로도 계속되었다. 우주 빼고는 안 가본 곳이 없다고 할 정도로 전국 방방, 세계 곳곳을 돌며 노래했다는 4.16 합창단. 그들의 마음이, 그들의 이야기가 성북천 광장에 고요하고 웅장하게 울려 퍼졌다. “끝이 없는 터널에 갇힌 기분”으로 8년여라는 시간을 보냈을 이들에게 우리는 뭐라고 답할 것인가.

삼십여 명의 4.16 합창단이 노란색 티셔츠를 입고 스탠딩 마이크 앞에 합창 대열로 서 있다. 그 앞에는 검은색 티셔츠를 입은 지휘자의 뒷모습이 보인다. 무대 뒤쪽의 대형 스크린에는 합창단의 모습이 클로즈업되어 보이고, 다음과 같은 자막이 쓰여 있다. “가사가 기억 잘 안 나신다 하시면 휴대폰으로 가사 한번 찾아보시고요. 마음으로 함께 불러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묻고, 답하며 이야기를 계속 이어가기

피날레는 유쾌했다. 주황색의 상의를 입고 내내 우리를 안내하던 스태프들이 짐을 챙겨 다음 장소로 이동하는 퍼포먼스. 고잔역으로 향하는 4호선 지하철에서, 그리고 ‘다음 이야기’의 ‘장소’인 이 광장에서 내내 노란 리본을 엮어가며 매듭지었듯, 지금 여기로 오는 사람 박하늘이 잇고, 공연에 참여한 수많은 이들이 걸음을 통해 이었듯, 펼쳐 놓아 잘 엮어진 이야기들이 다음으로 향하기 위하여 매듭을 짓는다. 매듭은 다시 이어져 엮일 것이다. 그것은 또 다른 ‘공간’으로의 물리적 이동뿐만 아니라 그 과정의 사유를 담지하고 있다. 다음 이야기의 장을 펴기 위해 옮겨가는(이동하는, 사유하는) 사람은 누구인가? 임무를 완수하고 다음 이야기를 위해 홀가분하게 발걸음을 옮기는 저들, 이야기 계속하기를 멈추지 않는 바로 ‘우리’일 것이다.

[사진 제공: 성북문화재단]

0set 프로젝트 <다음 이야기 - 장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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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효선

정효선
대학에서 한국어문학을 전공하고, 현재 지역 활동가로 일하고 있음.
hyosame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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